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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반시, 소 싸움, 복숭아, 역전 앞의 추어탕 그리고 운문사다. 비구니 사찰의 운문사 정류장 앞에는 실내장식이 특이한 음식점이 있다. 음식점 겸 찻집도 겸해 하는 집을 소개할까한다. 운문사 매표소와 버스정류소 사이에 있는 '어화벗님(054-372-6638)'이다. 이름도 실내장식처럼 특이하다. 후배가 지어준 이름으로  "어화 둥둥 내사랑아" 할때 어화를 따 오고 그 뒤에 벗님을 붙혔다 한다. 사진 작가인 배춘옥 씨가 6년째 운영중인 이 집은 손칼국수와 녹두감자전 등이 특히 맛있다. 그리고 동동주는 안주인이 직접 담구어 판매를 하며 내부의 실내장식은 부군께서  직접 꾸몄다하니 안.밖으로 재주가 많은 분들이다. 다양한 야생화 차와 직접담근 동동주에 안주는 역시 창밖에 보이는 영남알프스 경관이다.  2층 모서리 창가 자리는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인기 있는 테이블. 배씨가 직접 키운 봄꽃도 예쁘다. 운문사 스님들도 자주 들른다.


교통편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3200원. 50분 소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운문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출발. 운문령 너머 삼계리를 지나 운문사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운문사 앞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후 2시30분, 5시25분(막차) 등에 있다. 40분 소요. 3000원.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으면 신원리 운문사 주차장까지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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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동에 가면은 500년의 풍상을 이겨낸 노거수가 있다.
느티나무로 마을의 중앙에 떡 버티고 있는 노거수는 수령500년의 깊이 만큼 세월의 무게를 나무에 덕지덕지 붙이고 있다.
심천동 마을의 유래를 모두다 알고 있는 듯 마을을 굽어 보고 있는 노거수는 심천동 사람들에게는 많은 위안이 되고 있다.

 



그래서 경상북도 도나무로 1982년 10월에 지정이 되어 관리 되고 그럴듯한 이름표를 달고 있다.
느티나무 허리춤에는 세사람이 팔을 벌여야 할 정도로 겨우 손끝이 닿을 정도이며 지나가는 어르신의 얼굴에 파인 주름살처럼 느티나무도 그래 견더 왔을 것이다. 
한여름에는 심원재로 넘어가는 길손에게 그늘을 제공하였고 마을의 쉼터를 자임하며 마을사람들의 애환을 듣고 어루만지며 달래고 하였을 당수나무는 말 없아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심천동 계곡이 얼마나 깊으면 '지푸네'로 부를까?.
지푸네의 터줏대감인 느티나무는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앞으로도 물 맑고 하늘 밖에 볼 수 없는 이곳에 그늘과 쉼터가 되어 주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교통편
부산 노포동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새벽 5시30분부터 10분 간격 운행. 4500원, 50분 소요. 경주버스터미널에서 산내까지 간 후 일부리행 352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산내행 350번 버스는 오전 6시, 6시30분, 7시15분 등 하루 28회 운행한다. 산내에서 일부리행 버스는 오전의 경우 6시20분과 7시40분에 출발하는 2대밖에 없다. 이 버스를 놓치면 산내 개인택시(054-751-5955)를 이용한다. 심천마을까지 1만2000원 안팎. 건천ic에서 내려 우측 산내청도방면으로 우회전하면 단석산 입구인 우중골도 지나면 산내면을 알리는 표지판과 당고개(땅고개)이다. 산내면 소재지인 산내사거리에서 청도, 운문댐 방향으로 우회전 하면 20번지방도  '외칠리·일부리' 표지판을 보고 좌측으로 진입, 다리를 건넌 후 좌회전하면 외칠리에 닿는다. 다시 우측으로 상록병원 일부리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심천마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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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봉암은 통영의 벽방산 아래에 위치를 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벽방산과 머리를 맞대고 있는 천개산 바위 아래에 제비둥지처럼 위치하며 벽방산 정상을 올려다 보고 있다.  안정사의 일주문에는 벽방산이 아닌 벽발산 안정사로 불려지고 있지만 언제 부터인가 벽방산으로불려지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은봉암은 신라 성덕왕3년에 징파화상에 의해 창건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지만 지금은 변변한 문화재 하나 없는 볼품없는 사찰로 변하고 말았다. 은봉암은 벽방팔경의 세번째인 은봉성석을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로 많은  수도승을 배출하였다. 은봉성석은 월래는 세개가 서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한개가 남아 있다. 그 연유를 보면
세개의 성석이있을때 혜월선사와 종열선사가 수도하여 미래불로 성불을 하였을 때 한개씩 무너졌고 현재 남아 있는 성석한개도 용맹정진하여 득도의 경지에 이를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한다. 은봉암은 성철스님이 한때 머물려 동안거 하안거를 하였을 정도로 유서가 있는 사찰로 미래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원래 세개가 서 있었다는 성석, 혜월,종파 두 선사가 나오면서 무너지고 또 한분의 성인을 기다리는 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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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천개산~벽방산
다도해 170여 섬들 굽어보며 불심(佛 心)에 젖다
5시간 능선산행 중 빼어난 전망대 곳곳서 조우
바위에 뿌리 박은 천년송 보면 경외감 들 정도
벽방산 정상부 절벽인 '만리창벽' 낙조 풍경 황홀

 
 

덕유산 향적봉이나 지리산 천왕봉 같은 한반도 땅덩어리의 제법 높은 곳에 서더라도 이 땅이 실제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인지 아닌지 육안으로는 통 알 길이 없을 터. 하지만 고성반도처럼 아담한 반도는 높은 곳에 서면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바다에 에워싸였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 게다가 그 바다에 흩뿌려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면 그 조망은 더욱 일품일 게다.

  


 

 < 한려해상국립공원 제1전망대로 불리는 통영 벽방산은 남쪽 천개산을 거치는 종주코스로 산행할 경우 더 깊은 조망을 맛볼 수 있다. 벽방산으로 향하던 취재팀이 천개산 정상 인근 천년송 바위에 올라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다. >
 
이번 주 산행지는 경남 고성반도를 남에서 북으로 치고 오르는 코스인 통영 천개산(天開山·524.5m)~벽방산(碧芳山·650.5m) 종주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경상도 권의 170개가 넘는 섬들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제1전망대로 손꼽히는 벽방산이 주봉이고 그 남쪽의 천개산 또한 조망이 만만치 않다. 특히 통영의 주산으로 일컬어지는 벽방산은 천년 고찰이면서 대한불교 법화종 최대 사찰인 안정사와 의상암 가섭암 은봉암 등 유서 깊은 암자를 끼고 있다. 당연히 불교적 색채가 강한 데다 기이한 전설까지 산봉 곳곳에 깃들어 있고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 현장을 내려다 볼 수 있어 빼어난 조망과 역사·문화적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산이다. 설연휴를 맞아 가족끼리 찾아도 썩 괜찮을 듯 싶다.

 

코스는 전반적으로 육산에 능선산행이어서 과히 힘들지 않다. 그렇다고 밋밋한 산행도 아니다. 벽방산 정상부 암릉의 호쾌함과 중간 중간 만나는 천혜의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조망에 홀려(?) 버리면 산꾼의 시간이 멈춰 버릴 수도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야 할 듯하다. 일반적으로는 안정사를 기점으로 하는 벽방산~천개산 원점회귀 산행이 대세지만 취재팀이 굳이 종주코스를 택한 것은 다도해 조망의 참맛을 보다 깊이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개산 정상 10여 분 전에 만나는 일제강점기 폐광굴의 모습. >
 
산행은 통영시 광도면 노산리 가락종친회관~매바위~천년송~일제강점기 폐 광굴~천개산~헬기장~갈림길~은봉암~임도~안정치(재)~만리암터 산죽지대~암벽 나무계단~벽방산 정상~의상암~가섭암~안정사로 연결되는 9.9㎞ 코스다. 걷는 시간만 5시간 정도.

 

들머리는 가락종친회관 옆 등산 안내도 왼쪽이다. 완만한 능선 길을 오르다 보면 능선 왼쪽으로는 취재팀이 타고 온 14번 국도가 내려다보이고 오른쪽엔 광도면 면소재지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언덕을 살짝 넘어 걷는 능선 길은 솔가리가 흩어져 있는 포근한 흙길이다. 들머리로부터 15분 뒤 철탑을 지나면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10여 분을 치달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쯤이면 '쉬었다 가라'는 뜻인지 중간에 확 트인 전망대가 나타난다. 땀을 훔치며 바라보면 대전~통영 고속도로 너머로 원문포 앞바다와 죽림신시가지, 통영시 용남면의 야트막한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오고 더 멀리는 거제도의 산봉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5분가량 더 오르면 작은 돌탑과 나무 벤치 6개가 마련돼 있는 봉우리 쉼터. 드디어 정면 저 멀리 벽방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전두마을, 관대바위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안정재 5.4㎞' 방향으로 직진한다.

내리막을 살짝 내려서는데 집채보다 큰 바위가 떡하니 길을 막아선다. 매바위다. 높이 15m가량의 철계단을 타고 매바위 정상으로 올라설 수도 있고 우회하는 길도 있다. 철계단을 통해 매바위에 오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철계단을 내려서면 '전망 좋은 봉 2.1km'라는 푯말이 있다. '전망좋은 봉'은 바위에 뿌리를 박고 홀로 선 '천년송'이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안부를 거쳐 다시 오르막을 15분가량 가면 다시 철계단이 있는 전망대다.

   
 

<벽방산 은봉암 절집 처마끝에 바짝 붙은 채 수직으로 서 있는 은봉성석. >
 
철계단을 내려와 15분 뒤 만나는 쉼터에서는 왼쪽으로 사천 와룡산과 그 앞의 고성만이, 오른쪽으로는 당동만과 멀리 진해만, 가덕도까지 보인다. 이어지는 능선길은 좌우로 거칠 것 하나 없다.

 

갑자기 가팔라진 길. 밧줄을 타고 봉우리에 오르면 다음 봉우리에 '천년송'이 보인다. 철계단을 타고 안부로 내려서 대촌마을 표시가 된 이정표를 지나 직진한다. 15분 가량 걷다가 밧줄을 잡고 오르면 돌탑이 버틴 봉우리 정상에 선다. 이정표 상의 '전망 좋은 봉'이다.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20m 지점에 외롭게 선 천년송이 있다. 트럭 크기 바위 위에 키 3m 남짓한 소나무가 가깝게는 안정국가공단과 멀리는 거제도의 계룡산 노자산, 다도해의 섬들을 내려다보며 홀로 수도하듯 버티고 섰다. 천년송을 가까이 보기 위해 바위에 올라가 봤다.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채 수백 년 풍상을 겪고도 말없이 서 있는 소나무의 의연한 자태 앞에 서니 절로 숙연해진다.

천년송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성큼 다가온 천개산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천년송에서부터 천개산 정상까지는 1.9㎞. 계속되는 능선을 타면 15분 뒤 한퇴골농원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하면 10분 후 비암바위(뱀바위)를 지난다. 비암바위 위쪽 등산로변에 마삭줄 군락지가 있다. 마삭줄은 땅이나 바위 나무둥치 등에 붙어 자라는 넝쿨식물. 5~6월에 피는 바람개비 모양의 하얗고 노란 꽃이 어여쁜 식물이다. 5분 뒤 돌탑이 세워져 있는 도덕산 갈림길을 지나 계속 직진하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눈에 띄는 푯말 하나. '광굴(鑛窟). 일제시대 납석 금 채광, 좌측 3공 우측 1공'. 등산로 왼쪽에 수직으로 파내려간 광산 입구 3개가 보인다. 입구 크기가 1.5~2m가량 되는 제법 큰 굴이다. 사람이 빠지지 않게 목책으로 막아 놨다. 씁쓸함을 곱씹으며 5분여 더 올라 철탑 밑을 통과, 오른쪽으로 꺾으면 어느새 천개산 정상이다. 들머리로부터 5.7㎞ 지점. 2시간40분가량 걸렸다. 쉼터를 겸한 정자와 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해발 524.5m의 천개산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거대한 암봉의 모습을 한 벽방산 정상부가 눈에 확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우리가 온 능선이 꼬리를 문다.

   

매바위에서 바라본 한퇴골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한퇴골
 
천개산 정상에서 안정치, 벽방산 쪽으로 살짝 내려서면 헬기장이다. 오른쪽 안정사 방향 이정표가 있다. 무시하고 직진하면 다시 나오는 갈림길. 여기서 안정치 방향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오른쪽 은봉암 쪽으로 내려선다. 2분가량 가파른 내리막을 갔을 때 왼쪽 암벽의 금빛 불상을 만난다. 은봉암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험하고 가팔라 발을 조심해야 한다. 이윽고 10분 뒤 은봉암에 닿았다. 은봉암 대웅전 옆에는 높이 6m, 폭 1m, 두께 0.5m 크기의 광개토대왕비 모양을 한 바위가 수직으로 서 있다. 이 바위가 바로 안정사 8경중 제3경인 은봉성석(隱鳳聖石)이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 이 바위는 3개가 있었는데 혜월선사와 종열선사가 도를 통했을 때 2개는 쓰러졌고 마지막 하나가 세번째 도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은봉암 앞에서는 임도를 만난다. 오른쪽에 안정사 1.0㎞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이 길로 하산해도 무방하겠다.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600m가량 오르면 안정치(재)다. 일종의 사거리 역할을 하고 있는 안정치에서 오른쪽 30m뒤에 왼쪽 벽방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를 탄다. 벽방산 정상 0.7㎞ 남았다는 이정표를 뒤로한 채 정상까지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겨울 평일이어서인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다른 산행객들을 만나지 못했는데 정상부까지 오르는 중에는 하산 중인 사람을 몇 만날 수 있었다. 저마다 탄성이다. "대단하군, 대단해."

20분가량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면 길 오른쪽에 돌탑 3기가 서 있는 산죽지대에 닿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자리잡은 산죽숲에 20여 평 남짓한 평평한 공터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만리암터. 곧이어 벼랑을 오르는 나무계단을 탄다. 계단 중간쯤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고성만과 인근 다도해 섬들이 그림처럼 다가오며 가슴이 확 트인다. 특히 일몰 광경은 석양에 반사돼 붉게 물든 절벽과 마찬가지로 붉은빛을 머금은 고성만 해수면이 어우러져 가히 황홀경이다. 통영의 일몰 조망 1번지라고 하는 달아공원의 그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만리암터 절벽과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벽방 8경의 으뜸인 제1경 만리창벽(萬里蒼壁)으로 불린다.

10분 뒤 벽방산 정상. 통영시와 고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650.3m 높이의 벽방산에서의 풍광은 360도 거칠 것 없는 '남도제일파노라마'라 할 만하다. 남쪽으로는 통영 시내와 한산도 미륵산, 거제도의 계룡산 선자산 옥녀봉 망산 등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가덕도와 멀리 부산 앞바다, 서쪽으로는 사량도 칠현산과 지리산, 사천 와룡산, 남해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또 북동쪽으로는 흔히 벽방산과 함께 거론되는 고성 거류산과 고성평야가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고 그 뒤로 연화산과 철마산이 보인다. 특히 북쪽 멀리로는 지리산 주능선까지 눈에 들어온다. 어째서 벽방산을 한려수도 제1전망대라고 일컫는지 실감하게 된다.

하산길은 의상암 방향이다. 호쾌한 암릉을 타고 내려와 15분 만에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 닿았다. 뒤쪽으로 벽방산 0.7㎞, 오른쪽 아래로 의상암 0.2㎞를 표시해 준다. 직진해 200m만 가면 벽방 8경 중 제6경인 의상선대(義湘禪臺)를 감싼 의상봉이 나오지만 취재진은 의상암 방향으로 내려선다. 곧이어 의상암. 신라 문무왕 5년(665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의상암은 한 때 번성했던 기도도량의 자취는 간데 없고 인적마저 뜸해 스쳐 지나는 산꾼의 마음이 애잔하다.

의상암에서부터는 임도를 4차례 정도 가로지르며 가섭암 방향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하산길을 재촉한다. 20분가량 더 내려서면 가섭암. 부처의 십대제자 가운데 가섭존자를 기려 신라 문무왕 9년(669년) 봉진(奉眞)이 창건했다는 가섭암의 저녁 종소리는 그 소리가 은은하고 아름다워 벽방 8경 중 제5경 가섭모종(迦葉暮鐘)이라 명명됐다. 가섭암에서 안정사까지 마지막 구간은 10분 정도면 주파할 수 있다. 고찰 안정사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10분여 걸어 내려 오면 노선버스가 다니는 안정할인마트 앞 77번 국도에 닿는다.

 

◆ 떠나기 전에

- 한국전쟁 기간 40대 성철 스님 수도지로 유명

벽방산과 천개산에 둘러싸인 1000년 고찰 안정사의 일주문에 '벽발산안정사(碧鉢山安靜寺)'라고 적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불가(佛家)에서는 벽방산이 아니라 '벽발산'이라고 부른다. 신라 태종무열왕 1년(654년) 원효 스님이 안정사를 창건할 당시에 '의발(衣鉢)을 간직한 채 내세불(來世佛) 미륵을 기다리는 벽발산(碧鉢山)은 참으로 마땅한 절터'라고 언급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벽발산이라는 이름은 부처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벽발(碧鉢·스님들의 밥그릇)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만큼 불교적 색체가 강한 산인데, 원택 스님이 쓴 성철 스님의 일대기 '성철 스님 시봉이야기'에 따르면 성철 스님이 마흔 되던 1951년부터 1954년까지 4년간 은봉암과 안정사 위 천제굴에서 동안거와 하안거를 했다고 한다. 한편 '벽방 8경'이라 해서 제1경 만리창벽(萬里蒼壁), 제2경 옥지응암(玉池鷹岩), 제3경 은봉성석(隱鳳聖石), 제4경 인암망월(印岩望月), 제5경 가섭모종(迦葉暮鐘), 제6경 의상선대(義湘禪臺), 제7경 계족약수(鷄足藥水), 제8경 한산무송(寒山舞松)을 안고 있다. 한산무송은 안정사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이 겨울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일컫는데, 안정사 소나무의 빼어남은 조선 영조대왕이 금송패를 내려 보호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산행 후 시간이 나면 인근 고성 거류산 자락에 있는 '엄홍길 전시관'을 들르는 것도 좋다. 고성 출생인 엄홍길 씨를 기념해 2007년 10월15일 개관했다.

 

◆ 교통편

- 통영터미널서 시내버스 타면 광도초등 앞 하차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통영행 시외버스 첫 차는 오전 6시1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막차는 오후 7시40분이며 요금은 1만100원이다. 1시간 50분~2시간 소요. 통영버스터미널에서는 64, 65번 시내버스로 광도면 소재지가 있는 노산리까지 간다. 시내버스는 오전 5시25분께부터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광도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해 도로를 건너 초등학교 정문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3분 가량 가면 차도 너머 작은 다리(충혼교) 건너 가락종친회관에 닿는다. 1시 방향 등산안내지도가 있는 곳이 들머리. 산행 후 안정삼거리 앞에서 통영터미널까지는 64, 65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요금은 1000원.

승용차로는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마산TG~내서TG를 거쳐 고성 통영 방향으로 14번 국도를 타고 간다. 통영시 노산삼거리(북통영IC 입구)에서 거류 광도 방향으로 77번 국도를 따라 좌회전한 후 지구촌가구마트 앞에서 좌회전, 충혼교를 건너면 가락종친회관이 나온다. 산행 후 주차 장소로 가려면 안정할인마트 앞에서 통영시내 방향 64, 65번 버스를 타고 광도초등학교 앞에 하차한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9
글=이승렬 기자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큰바위위에 뿌리를 내린 천년송

 

바다를 배경으로 선 천년송


천개산 정상에서 본 벽방산

천개산 아래 헬기장 갈림길

만리암터의 산죽, 그뒤로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벽방산 아래에서 본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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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암

(여느 절집과 달리 두개의 큰 바위가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다. 오봉산 정 상 바로 옆에 위치를 하고 있어 식수가 사실은 귀할 것 같다. 그래서 식수는 현재 아래로 관로를 뚫어 지하수를 올려 사용을 하고 있다 한다. )  


 



신라시대 문무왕때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낙동정맥이 오봉산을 살짝 비껴가는 형상으로 신라시대 때에는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어 산성을 쌓았다.
 이름하여 부산성, 또는 주사산성으로 창건당시부터 이절에서 죽어 나간 사람이 없다하여 불사처라 하였다 한다. 그런데 지금 주사암을 방문을 해 보니 천촌리로 내려서는 등산로 입구에 근래에 세운 부도탑 한기를 볼 수 있는데 이제 불사처라는 기록은 깨어 졌는지 궁금하다.
걸어서 주사암에 가 보면 오봉산 정상에 위치를 하고 있다. 즉 다섯봉우리인 주봉과 2봉 사이에 주사암이 위치를 하고 있는데 신평리에서 보면은 오봉산 정상에서 아화리로 내려서는 능선을 만삭의 여인내가 한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한다.
그리고 부산성과 함께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부산성 축성 당시 의상대사는 예언을 하기를 부산성 안에다 이 주사암을 두면 신라는 언제까지라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는데...산성은 주사암을 비껴가 축성을 하였다 한다.
그 예언 후 몇백년 뒤에 신라는 백제에 의해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연회를 배풀다 죽음을 당하고 의상대사의 예언대로 신라는 망하는데 예언을 어찌 받아 들여야 할지.

 

그리고 주사암의 창건설화에 대해서는 현 주사암이 있는 위치 뒷면인 북쪽으로는 바위굴이 있었는 것 같다.
그 굴속에 난승이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여인네 알기를 돌 같이 아는지라, 아무리 빼어난 미녀가 와도 자신의 마음을 빼앗지 못할 것이며 수도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 호언장담을 하였다한다.
그의 말을 들은 귀신은 노승의 마음을 시험해 볼 욕심으로 반월성의 궁궐에서 궁녀를 잡아다가 노승 옆에 두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밤마다 궁녀들이 나갔다 들어오니 반월성의 왕에게 까지 이야기가 귀에 들어가고 임금은 괘씸하게 여겨 궁녀에게 붉은 모래 즉 주사를 주며 오늘밤에도 그런일이 생기면 동굴 주위에 붉은 모래를 뿌려라는 명을 내렸다.

(바위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주사암의  모습입니다. 산사면에 계단을 내어 건물을 배치하였습니다.)

궁녀가 없어진 것을 안 임금은 모든 병력을 풀어 찾아보니 오봉산 정상 부근에서 붉은 모래를 찾게 되어 뒤에 큰 동굴이 있는지라 병력을 동원하여 노승을 잡을려 하니 그 노승의 주변에는 신병들이 보호를 하고 있었다.
왕은 부처님이 보호를 하는 분으로 여겨 궁궐로 모셔 나라의 스승으로 삼았다 한다.
노승이 수도를 하였던 그 굴을 밀어 내고 그 자리에 주사암 사찰을 창건하였다 하며 1400년을 이어온 주사암은 가람의 배치 또한 다른 절과 달리 좁은 면적으로 인해 한일(一)자 가람을 하고 있다.
보통 사찰은 대웅전을 중심에 모시고 좌우로 가람을 배치하는 아(亞)자 형태이지만 주사암은 영산전을 제일 앞에 두고 가람을 배치하여 지형을 적절히 이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도 주사암을 찾아 들어 가는 길은 여느 절집과 달리 일주문이 없다. 일주문은 두 개의 큰 바위가 일주문을 대신하고 그 사이로 들어서면 주사암 절집과 만날 수 있다.

 

주사암 옆에는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을 빼 놓을 수 없다. 수백명이 거뜬이 쉴 수 있는 마당바위가 있어 지맥석이라 불리는 이 바위는 보리를 늘어 술을 빚어 부하들과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지금도 천촌리 쪽으로 바라보는 바위의 끝에 나가보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이다.

 

입구에서 본 주사암입니다. 화장실은 아주 멀리 두고 있습니다. 좌측의 건물이 정낭입니다.

건물이 3동 길게 배치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안쪽의 석등이 보이는 곳이 영산전입니다.




영산전 위의 삼성각으로 주사암에서 가장 위쪽으로 배치를 하였습니다.

삼성각을 내려 오면서 본 주사암입니다. 앞에 영산정을 볼 수 있습니다. 

천촌리 방향으로 내려 보고 있는 범종각입니다.




주사암 영산전입니다. 주사암의 대웅전으로 이절의 중심건물 입니다. 좁은 지역의 층계식 터에더 조성을 하여 규모면에서는 아주 적은 것 같이 소박합니다. 창건연대는 조선시대 후기로 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부속건물들

밑에 보이는 건물이 공양간입니다.

바위아래 자리 잡은 공양간입니다. 천촌리에 내려가는 길은 공양간 아래로 나 있습니다.

아래에서 본 주사암 모습입니다. 바위를 축대로 쌓은 것으로 봐서 아주 급한 산사면에 조성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사암 창건 이래 죽어 나간 사람이 없어 불사처라 하는데 근래에 조성 된 것으로 보이는 부도탑입니다.

주사암 옆의 마당 바위로 김유신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옵니다. 일명 지맥석으로 김유신이 마당바위에 보리를 늘어 술을 빚어 부하들과 나누어 마셨다합니다. 수백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넓이 입니다.

만삭의 여인이 배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의 오봉산입니다. 신평리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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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리서낭당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에 가면은 2007년 4월6일 마을 공동으로 세운 서낭당이 있다.

한때 이곳은 오지중의 오지로 주위에 영남알프스 연봉들이 마을을 감싸 않아 천재로 인한 피해와 맹수들의 피해로 부터 마을의 안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서낭당이 세워 져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와 관리를 하지 않아 황폐화 되었다 한다.

 


 

 1970년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홍영기씨가 주축이 되어 다시 이곳에 서낭당을 건립하였는데 40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흉물로 되어 버린 것을 마을 주민들이 서낭당 재건위원회를 꾸려 2007년 4월에 새로운 모습으로 서낭당을 건립하였다 한다. 이곳의 삼계리는 지리적으로 보면 언양에서 청도 땅을 넘어 오는 길중 가장 빠른길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 진다. 어사 박문수도 언양의 관현에서 청도땅을 밟기 위해 이 운문령을 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금은 지방도가 뚫여 있지만 언양 방향에서는 도로가 지그제그로 나 있어 힘들게 오르며 청도땅의 생금비리 계곡은 구절양장의 긴 계곡을 드리워 한낮에도 컴컴하다. 지금도 이러한데 예전에는 맹수와 도적으로 인해 넘어 다니기 힘든 고개 였을 것이다. 또 다른 고개인 배너미재는 어떠한가. 밀양 산내에서 경주로 들어가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 아랫재를 넘는 것이다.  심심이골을 내려와 배너미고개를 올라서면 삼계리가 지척이다. 이곳을 지나 수리덤계곡을 걸어 경주 산내면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삼계리재를 넘어야 한다. 심원사 옆 구름재를 다시 올라 건너편 숲고개로 넘어야만 산내면 소재지로 민가다운 곳을 만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만큼 삼계리는 오지중의 오지로 마을의 평안과 맹수로 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민간신앙이 그만큼 절실하였을 것으로 보고있다.


역사적으로는 어떠한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의 화랑도들이 훈련을 한 장소로 영남알프스와 그 인근을 택했다. 지리적으로 경주와 가깝고 전술적으로도 험준한 산세 때문에 고구려, 백제에 전력이 노출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잇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삼계리는 오작갑사의 하나인 가슬갑사가 있었다 한다. 가슬갑사는 원광국사가 화랑인 귀산과 추항에게 화랑의 기본이념인 세속오계를  전하였던 곳이다. 그리고 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공격할때 이곳 지룡산과 복호산 일원에 산성을 쌓아 신라를 멸망케 하였는데 현재도 지룡산성,호거산성 또는 견훤산성이라 부르고 있다. 근대에 와서는 서로  이념이 다른 무리들의 피난처로 이 깊은 골짜기를 택하여 숨어 들었다. 속칭 '뺄갱이"라 어릴적 부터 들어 왔는 소리로 군경의 소탕작전과  좌익들의 양민 학살로 인해 삼계리와 영남알프스는 조용한 날이 없었을 것이다. 생금비리골, 배넘이골, 계살피골이 만나는 삼계리 서낭당은 이러한 앙금을 다 씻어 내며 오늘도 이자리에 서서 마을의 안녕과 지나는 길손의 무사기원을 빌어 주고 있다.

찾아가는길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3200원. 50분 소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삼계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출발. 운문령 너머 삼계리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가지산 온천방향인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으면 운문산 자연 휴양림을 지나면 삼계리가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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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718> 제7코스 : 청도 삼계리 나선폭포 ~ 운문사

개울 건너 솔밭길 지나 아, 벌써! 운문사


 
'명산(名山)에 대찰(大刹)'이라고 했던가. 영남알프스에는 그 넓고 깊은 자락에 어울릴 만큼이나 이름난 천년고찰들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특히 양산 통도사, 밀양 표충사, 청도 운문사는 영남알프스를 대표하는 3대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이번 주에 걷게 되는 제7코스는 이 가운데 하나인 청도 운문사(雲門寺)를 찾아가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양바위 앞 운문천을 건너고 있다. 왼쪽의 암봉은 복호산이다. 운문사 가는 길은 높낮이 없는 쉬운 길 . 그래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갈 수 있다.
'운문사'라는 이름이 전해주는 '울림'은 결코 간단치 않다. 한 신승이 진흥왕 21년(560년) 대작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절은 원광법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일연 스님 등 우리 역사에 커다란 자취을 남긴 스님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또 현재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승가대학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200여 명의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부처님의 법과 진리를 터득하고, 나아가 계도중생의 뜻을 펼치기 위해 일과 공부를 구분짓지 않고 조용히 용맹정진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전 문화재청장)는 "운문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비구니 학인스님들이다"라고 했다. 오늘날 운문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손꼽히는 것도 바로 이 학인스님들의 새벽 예불 광경이다. 수백 명 스님들이 함께 새벽을 여는 낭랑한 염불소리와 절제된 행동은 '더할 것 없는 경건함' '모자랄 것 없는 장엄함'의 극치다. 그 외에도 운문사가 주는 '울림'은 수없이 많다. 그래서 가슴 떨리는 길이다.


 


40m 직벽 나선폭포 거쳐 천년고찰까지 14㎞ 구간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운문사로 가는 제7코스는 평지에 자리 잡은 대가람을 찾아가는 길답게 줄곧 평편하고 쉬운 길이다. 그래도 어쩐지 중간에 실컷 딴청도 부려 보면서 최대한 느리게 걸어보고 싶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급하게 운문사로 가면 정갈하고 평온한 절집의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서일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많이 느리지만 그만큼 꼼꼼하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걷는 길은 그 길이 내뿜는 숨소리를 들으며 가는 '호흡의 길'이요 비로소 '길과 하나 되는 길'이다.

출발지는 제6코스 종착지였던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 칠성가든 앞이다. 배너미계곡 중간에 숨어 있는 나선폭포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출발지로 되돌아온 후 운문사로 향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코스를 살펴보면 칠성가든~천문사 입구~나선폭포~천문사 입구~성황당~수리덤계곡 입구~통점마을 당산나무~신원 삼거리~방지초등 문명분교 3·18독립운동기념관~양(용)바위~신원 삼거리~운문사 버스터미널~솔바람길~운문사 순이다. 총 길이 14㎞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휴식 등을 포함하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배너미계곡 기슭에 자리 잡은 나선폭포의 위용.
칠성가든 앞에서 북쪽에 보이는 천문사(天門寺) 입석을 보고 천문사로 향한다. 천문사 방향으로 가면 눈앞에 우뚝 솟은 2개의 뾰족한 암봉이 보이는데 바로 쌍두봉이다. 천문사 일주문 못 미쳐서 '등산로' 표시를 따른다. 잠시 후 하천을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진행하면 천문사 후문이다. 중수 공사가 한창인 천문사를 일별한 후 다시 나와서 왼쪽을 보면 담장 옆으로 길이 보인다. 곧바로 쌍두봉 등산로 갈림길이다. 오른쪽 길을 택해 배너미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임도처럼 넓은 계곡길이 호젓하다. 15분쯤 가면 작은 돌무더기가 서너 개 있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배너미재를 넘어 학소대계곡 학심이골 등으로 갈 수 있지만 나선폭포는 오른쪽 길로 5분가량 올라야 있다.

단일 폭포의 높이로만 따지면 영남알프스의 수많은 폭포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나선폭포는 높이 40m가 넘는 직벽 폭포다. 아직까지 고드름이 폭포에 매달려 있어 이곳은 여전히 겨울이라고 강변하는 듯하다. 2002년 이후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자연 빙벽훈련장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원천 끼고 도는 낮고 평편한 길에서 여유 만끽 

 
  운문사 들머리 마을인 신원리 본동의 흙벽돌 골목길.
다시 천문사 입구 69번 지방도로까지 돌아오는 데는 20분 정도 걸린다. 사실 제7코스는 나선폭포 왕복 구간을 제외하면 운문사 입구까지 대부분의 구간이 아스팔트 도로를 따르게 된다.

69번 지방도를 타고 청도 운문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수리덤계곡 입구를 지나 10분쯤 가면 왼쪽 산자락에 이름 없는 바위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3분 후 왼쪽에 알프스펜션이 보이는데 그 앞 신원천 풍경이 빼어나다. 너럭바위와 이름 없는 소(沼)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물은 걷는 이의 가슴 속까지 청량감을 전해준다. 차를 타고 가면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다. 운문면 사무소와 삼계리마을 주민이 봄철 환경정화운동을 펼치며 상춘객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삼계리마을에서 통점마을로 가다가 만난 신원천의 맑은 무명소.
통점마을 회관 앞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는데, 마을 회관 맞은편 목향공방 뒤편에 수백 년 된 키 큰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보인다. 18세 때 시집 와서 평생을 살았다는 한 70대 할머니는 "우리 동네 최고 어른"이라며 당산나무를 가리킨다. 그는 또 "이 동네는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아. 그래서 신원천 물로 생활을 했지. 우물이 없는 마을인 셈이지"라며 마을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당산나무를 가까이서 본 후 다시 주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에 웅장한 암봉이 보인다.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복호산(伏虎山)이다. 차도 우측에 잔디가 곱다. 느릿하게 걷기에는 딱이다. 운문사와 청도읍 방향으로 갈리는 신원삼거리까지는 통점마을에서 25분 걸린다. 운문사는 왼쪽으로 2㎞ 정도 가야 하지만 일단 오른쪽으로 간다. 방지초등 문명분교에 있는 '운문면 3·18독립운동 기념관'에 들르기 위해서다. 1919년3월18일 청도 최초의 현대식 사립학교인 문명학교(현 문명분교) 교직원과 학생, 졸업생들이 주도해서 펼친 청도 운문면 일대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해 세운 시설이다. 평소 문은 잠겨 있지만 학교 측에 요청하면 기꺼이 문을 열어준다.

◇ 포근한 신원리 흙담 골목 지나 옛 양반 놀이터도 구경

 
  운문사 매표소를 지나면 이 절의 명물인 '솔바람길' 속으로 빨려든다.
기념관을 둘러본 후, 잠시 학생 수 8명뿐인 시골학교 교정에서 우뚝한 복호산을 바라본다. 신선봉으로 불리기도 했던 복호산의 모습이 참으로 웅장하다. 1908년 문명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이 유서 깊은 학교에 다닌 모든 학생들도 저 웅장한 암봉을 보면서 큰 뜻을 품었으리라.

교문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회관 왼쪽 골목길로 들어선 후 '용바우 민박'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따라가 본다. 흙을 구워 만든 붉은색 흙벽돌과 황토를 적절히 섞어 쌓은 흙돌담길이 전통있는 향촌의 풍모를 자아낸다. 골목 끝 운문천 변에서 건너편 물가 왼쪽 바위가 양반들이 소풍놀이를 즐겼다고 해서 양바위, 또는 용을 닮았다고 해서 용바위로 불리는 바위다. 주변 또 다른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차를 타고 운문사를 찾을 때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절경이다.

다시 골목길을 돌아 나와 신원삼거리에서 복호산 등산로 입구 무덤 아래 불망비(不忘碑)를 보고 운문사로 향한다. 두 그루의 낙락장송을 지나는 데 멀리 정면에는 억산 깨진바위가 눈에 확 들어온다. 주변에 미나리 재배 하우스가 많다. 운문사 버스터미널에서 좀 더 가면 매표소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매표소를 통과하면 그 유명한 운문사 송림이 반겨준다. 차도 오른쪽으로 '솔바람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솔길이 나 있다. 300~400년 된 소나무 수천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사이로 오른쪽 호거대를 타고 넘어온 봄바람이 싱그럽다. 잠시 휴대전화를 꺼 놓아야 할 것 같은 길이다.

◇ 전국적 명성의 운문사 '솔바람길'에도 봄기운 성큼

 
  운문사 극락교와 이목소(離目沼).
솔바람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운문사 절 직전 주차장에 닿는다. '호거산 운문사(虎距山 雲門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범종루까지 가는 길 오른쪽은 높지도 낮지도 않아 더욱 정갈한 느낌이 드는 돌담, 왼쪽에는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농사짓는 텃밭이다. 길 양옆으로 벚나무가 도열해 있다. 4월 중순이면 소리 없이 핀 벚꽃이 꽃비를 휘뿌릴 것이다. 그런데 이 돌담은 1980년대 초반 비구니학인스님들이 계곡에서 주워 온 돌을 골라서 쌓은 담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어서도 안된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운문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쏟은 땀과 정성이 깃든 담장이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했다는 이 절 범종루를 통과하면 500년 넘은 반송(盤松·천연기념물 제180호)이 우선 반겨준다. 매년 봄 가을로 막걸리 25말을 마신다는 유명한 처진소나무다. 삼월삼짇날(음력 3월3일)에 막걸리 드리는 행사를 볼 수 있다. 7개의 국가지정 보물을 간직하고 있기도 한 절인 탓에 순례객들이 간과한 채 잘 못 보고 지나가는 곳이 있다. 비로전 (오래 된 대웅보전) 서쪽 계곡을 가로지르는 극락교와 그 아래 웅덩이인 이목소다. 사실 운문사에서 무언가를 보겠다는 마음은 욕심이다. 그저 호젓한 분위기에 젖어 본다는 느낌이면 그만이다. 일반인은 건널 수 없는 극락교와 그 아래 이목소는 운문사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그만인 장소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보양국사와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에 얽힌 전설을 떠올리면서 남쪽 멀리 우뚝한 운문산을 바라본다. 산과 산 사이로 구름문이 열렸다.


# 떠나기 전에- 이목소 전설

- 서해 용왕 아들과 보양국사의 우정과 의리 전해져

운문사 경내 극락교 아래 이목소(離目沼)가 있다. 옛날에는 사방 100m가 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연못이었다고 알려진 이 야트막한 웅덩이에는 10세기 중반 운문사를 중창한 보양국사와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離目)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일연 스님이 이 절에서 집필을 시작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다. 보양국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서해 용왕의 초청으로 용궁을 방문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지면서 용왕이 자신의 아들 이목을 데리고 가 달라는 부탁을 하자 보양국사는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용의 모습을 한 이목은 이 연못에서 지내며 스님의 사찰 중창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해 심한 가뭄으로 인근 주민들의 기근이 극에 달하자 스님이 이목에게 부탁해 비를 내리게 했다. 그러나 정작 하늘의 천제가 격노한 것이 문제였다. 비를 뿌리는 것은 하늘의 조화인데 감히 바다 용왕의 아들이 이를 거슬렀다는 것이다. 천제는 보양국사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이목을 벌하려 했다. 보양 스님은 진짜 이목을 툇마루 밑에 숨게 하고 법당 앞의 배나무(梨木)를 가리켰다. 이에 천제의 사자는 배나무에 벼락을 때리고는 하늘로 돌아갔다. 골짜기 연못에 사는 큰 뱀을 일컫는 '이무기'라는 말도 바로 이목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으로 전설같은 이야기다.


# 교통편 & 먹을 곳

- 언양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버스 오전 9시에 출발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3200원. 50분 소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삼계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출발. 운문령 너머 삼계리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운문사 앞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후 2시30분, 5시25분(막차) 등에 있다. 40분 소요. 3000원.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칠성가든까지 금방이다.

음식점 겸 찻집도 한 곳 소개한다. 운문사 매표소와 버스정류소 사이에 있는 '어화벗님(054-372-6638)'이다. 사진 작가인 배춘옥 씨가 6년째 운영중인 이 집은 손칼국수와 녹두감자전 등이 맛있다. 다양한 야생화 차와 동동주도 맛볼 수 있다. 2층 모서리 창가 자리는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인기 있는 테이블. 배씨가 직접 키운 봄꽃도 예쁘다. 운문사 스님들도 자주 들른다.


# 운문사 터 잡은 호거산은 어디?

- 청도 사학계 "호거대가 바로 호거산"

 
  운문사 매표소 부근에서 바라본 호거대.
둘레길 제7코스의 핵심은 역시 종착지인 천년고찰 운문사(雲門寺)다. 그런데 범종루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운문산 운문사'가 아니라 '호거산(虎距山) 운문사'라고 돼 있어 호기심 많은 순례객이 머리를 갸웃거리곤 한다. 공식 지형도 그 어디에도 없는 이름인 호거산. 한자의 뜻 대로만 보면 '호랑이가 걸터앉은 모양의 산'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 문제를 놓고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정확한 답은 없다. 다만 이 문제를 풀기위해 고심하고 공부하다 보면 운문사는 물론 영남알프스 일대를 좀 더 깊이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청도 지역 향토사학계의 의견과 고지도 등에 나타난 호거산의 위치 등을 종합해 간략하게나마 고찰해 본다.

우선 호거산 위치에 대한 여러 주장들부터 살펴보자. 절의 남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인 현재의 운문산(1195m)을 원래의 호거산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고, 억산과 범봉 일대를 통틀어 일컫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내원암 사리암 청신암 등과 함께 운문사의 4대 부속 암자이면서 운문사 창건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모암(母庵)으로 알려진 북대암이 자리잡은 북동쪽의 복호산(伏虎山·678m)과 지룡산(池龍山 또는 地龍山·659m)을 합쳐서 호거산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운문사 매표소 오른쪽(서쪽) 산등성이 위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는 모습이 보이는 '호거대(일명 장군바위 등선바위 등심바위·516m)' 주변 일대 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각 주장마다 나름대로의 근거도 있다.

하지만 향토사학계의 해석과 김정호 작 대동여지도 등에 나타난 호거산위치 등을 고려할 때 '호거대=호거산' 설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우선 대동여지도를 살펴보자.그런데 먼저 주목할 것이 바로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운문산의 위치다. 고산자 선생은 지동에서 운문산의 위치를 현재의 운문산과 판이한 곳에 표시했다. 가지산과 고헌산 사이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뻗은 큰 산줄기 상의 높은 산으로 표시한 것. 즉 현재 문복산의 위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산에서 서쪽으로 흐른 지능선은 현재의 옹강산 줄기로 보이고 그 맥은 큰 하천 두 개가 합수되는 지점, 즉 현재의 신원천과 운문천이 만나는 운문면 신원리 신원교 인근까지 뻗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합수지점 서쪽의 능선상에서 작은 글씨로 호거산을 표시했다. 현재의 운문천 서쪽 자락 능선이다. 또 호거산 표기 지점의 동쪽을 흐르는 운문천 줄기에 '약야계(若耶溪)'가 표시돼 있다. 현재도 운문사 서쪽 하천을 약야계라고 부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고산자 김정호는 호거대 또는 그 주변을 호거산으로 봤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청도 향토사학회장 겸 경북 향토사학회장인 박윤재 선생도 호거산의 위치를 현재의 호거대라고 단언한다. 박 회장은 "운문사 절 서쪽에 호거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호거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때 원광법사가 중국 유학을 다녀온 후 운문사에서 주석을 할 때 중국 소주의 호구산(虎丘山) 이름에서 음을 따 온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가 걸터 앉은 모습의 산'을 뜻하는 '호거산'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광법사는 중국 유학시절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소주(蘇州)의 호구산에 들어가 그곳에서 수도하며 평생을 마칠 생각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청에 못 이겨 펼친 강론에 청중들이 감화되는 것을 보고 세상에 나가 중생계도를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전한다. 그만큼 높이 37m의 비록 아주 낮은 언덕 같은 산이지만 호구산은 원광법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또 하나 현재 운문사 약야계도 소주 호구산과 연관돼 있다. 오왕 합려가 죽은 후 제위에 오른 부차가 아버지의 무덤을 만든 곳이 호구산이고, 부차는 월나라 출신 미녀 서시에게 빠져 결국 패망의 길을 걷는 인물이다. 서시는 호구산에서 오왕 부차와 자주 노닐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약야계'란 범려가 서시를 발견한 절강성 소흥의 아름다운 하천 이름이다. 그 약야계가 운문사 옆 하천의 이름이 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사실 '호거대=호거산' 설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김정호 선생도 틀릴 수 있기에. 다만 이런 고찰을 통해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이야기가 더욱 풍요로워 질 수는 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둘레길 7코스 출발점으로 천문사를 입석을 보며 나선 폭포를 보기위해 따라간다.

천문사 방향으로 들어가면 형제 용의 전설이 서려 있는 쌍두봉이 정면이다.

배너미게곡으로 따라간다. 멀리 학심이계곡으로 넘어가는 배너미고개가 보인다.


현재 불사가 진행중인 천문사 경내

나선폭포로 영남알프스에 속해 있는 폭포로 한겨울철에는 부산경남 클라이머에게는 빙벽의 기쁨을 맛보게하는 곳이다.

운문사로 향하는 도로상에서 보이는 기암

신원천에서 만나는 작은 폭포와 소로 물이 맑기로 거울같이 투명하다.

]

통점마을의 당산나무로 이마을 최고의 어른이라 이야기를 하며 여러기의 소나무가 자라 있다.

통점마을의 노거수

운문면 일원의 3.18독립만세운동으로 문명분교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청도군에서는 사학재단으로는 1호로 개교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산골의 학교이다. 8명의 전교생이 현재 수업을 하고 있다.

3'18운동의 자료를 모아 놓은 곳으로 문명분교 안에 있다.

운동장에서 본 복호암으로 신원에서는 복호암의 정기로 문명초교에서 이름난 분들이 많이 나왔다고 자랑을 하신다.

신원리 염창마을의 돌담길로 운치가 있다. 대부분 돌담은 솥을 구운 가마터의 흙으로 쌓아 놓았다.염창마을은 삼국시대때는 화랑들의 식료품창고이며 그 후 운문사가 번창을 하였을때 운문사의 해산물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한다.

양바위로 양반들이 물맑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놀았다하여 부르게 되었는데 근래에 와 용바위로도 부른다 한다. 

양바위를 보고 운문천을 건너는 취재팀 뒤로 갈대가 무성하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다하여 복호암으로 부르고 있다.


호거대, 등선바위 장군봉 덧니바위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 일대가 "호거산"이라 하며 "호거산 운문사"란 사찰 이름이 생겼다 한다.

운문사 매표소로 소나무 숲길이 운치 있는 솔바람길이다.



운문사 를 들어서는 문으로 일주문은 따로 없다.

매년 막걸리를 마신다는 처진 소나무와 만세루

처진소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수령은 500년으로 보고 있다.

이목소로 극락교 아래에 있다 현재는 둘레와 깊이가 형편없는 하천이지만 이목소가 메워지지 이전에는 넓고 검푸른 소 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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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산내면 심원사

심원사를 찾아가는 길은 은둔의 세계를 찾아가는 길이다.
초행길은 길 찾기가 쉽지 않은 심원사길.

산내면에서는 은둔지의 수행 처가 따로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만큼 오지의 산골이다. 가도가도 산이요, 머리를 들어도 하늘 밖에 볼 수 없다는 산내면.

그 안 골짜기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심원사는 천년고찰의 이름이란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변변한 당우하나 없는 그저 수더분한 사찰이다.

 


오가는 사람 또한 만날 수 없지만 심원사를 찾는 길손도 보기 힘들다. 내가 찾은 그날도 심원사는 주인은 간데없고 대웅전의 부처님만 어둠을 밝히며 반길 뿐이다. 봄볕을 째고 있는 노승마냥 심원사는 한가로이 졸고 있다.

심천동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심원사의 뒷 골짜기는 도수골로 부른다. 그 깊은 골짜기의 정점은 일부리에서는 애써 집뒷 산에 이름은 무슨 이름. 그저 부르기 쉬운게 좋은 것이라고 도수골 만디라 부른다하니 바라보는 쪽에서 그 이름을 달리한다. 삼계리에서는 수리덤 계곡의 정점으로 아주 오랜 옛날에 이곳에서 하늘을 비행하는 수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런 것 갔다. 일부리, 삼계리, 대현리에서 보는 서담골봉은 삼면이 피라미드 처럼 솟았고 중간중간 직립한 암벽에 험준한 산세까지 가지고 있어 수리의 서식지로 적합하지 않았나 쉽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는 서담골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다. 누군가 수리덤의 오기가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심원사는 사실 들어오는 입구가 북쪽 방향 한곳이다. 심원지 우측의 방매산과 그 아래 안부가 삼계리재에서 숲고개를 있는 구름재이다. 구름재에서 문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오르면 만나는 삼밭맥이(거산마을에서는 그래 부름)에서 우측으로 서담골봉까지 이어진다. 능선은 내려않는데 그 언저리에 삼계리재를 만들었다. 다시 옹강산으로 이어져 심원사를 둘러 싸고 있어 그야말로 연꽃속의 꽃술에 해당하며 부처님을 모시는 도량으로는 최고의 자리인 것 같다.

심원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심원사에서 추측하건데 신라 선덕여왕 2년에 일지선사가 창건을 하였다 하는데 그에 관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애석할 따름이다. 남아 있는 기록은 1913년 화준대사가 중창을 하였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심원사를 이루는 건물은 정면3칸, 측면 2칸에다 팔작지붕과 공포를 올린 형태로 뒤의 산과 잘 어울리는 단아한 모습을 한 대웅전과 제일선원이란 편액이 걸린 당우 그리고 스님들의 처소가 전부이다. 한때는 심원사 절의 규모가 엄청 낮다 한다. 심천동 마을 방매산 아래 볼록 솟은 봉우리가 마을어른들은 “중지뿔대”라 부른다 한다. 그 당시 스님들이 농사를 짓고 밥을 하기 위해 풀을 베고 했다하니 심원사 절의 규모가 엄청난 것을 알 수 있다. 운문사와 통도사를 말사로 거닐 정도의 대가람이였던 심원사, 지금은 불국사의 말사이다. 현재의 심원사는 이제 봄의 기지게를 켜듯이 불사의 흔적을 볼 수가 있다. 대웅전 옆 밭때기에다 새로운 절집이 들어서고 있고 그리고 심원사 스님들이 천년사찰의 흔적을 되찾고자 계곡건너 절터의 흔적을 찾아 나선 것이다. 금당터도 찾아내고 절 뒤로는 암자터와 시왕상도 찾았다 한다. 그 흔한 문화재도 하나 없는 심원사는 그 나름대로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깊은 골짜기인 만큼 자랑할 만한 맑은 물을 가지고 있어 찾는 이의 목을 축여 줄 것이다.

교통편
부산 노포동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새벽 5시30분부터 10분 간격 운행. 4500원, 50분 소요. 경주버스터미널에서 산내까지 간 후 일부리행 352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산내행 350번 버스는 오전 6시, 6시30분, 7시15분 등 하루 28회 운행한다. 산내에서 일부리행 버스는 오전의 경우 6시20분과 7시40분에 출발하는 2대밖에 없다. 이 버스를 놓치면 산내 개인택시(054-751-5955)를 이용한다. 심천마을까지 1만2000원 안팎. 건천ic에서 내려 우측 산내청도방면으로 우회전하면 단석산 입구인 우중골도 지나면 산내면을 알리는 표지판과 당고개(땅고개)이다. 산내면 소재지인 산내사거리에서 청도, 운문댐 방향으로 우회전 하면 20번지방도  '외칠리·일부리' 표지판을 보고 좌측으로 진입, 다리를 건넌 후 좌회전하면 외칠리에 닿는다. 다시 우측으로 상록병원 일부리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심천마을에 닿는다.

심원사의 절 앞 다리를 건너면 벗꽃나무가 도열해 서 있다.


심원사 대웅전으로 정면3칸, 측면2칸으로 팔작지붕과 공포를 올린 형태이다.




제일선원으로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으며


조용하고 한적하고 깔끔한 절임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옆 밭때기에 불사를 일으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부도밭으로 심원사 입구의 다리를 건너기 전에 우측 심원재로 오르는 입구에 서 있다. 1700년대에 조성된 부도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심원사 앞의 심원지로 절을 끼고 있어 운치를 더해 준다. 저수지 끝 부분에 희게 보이는 점이 심원사이다.


심원사 옛 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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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샤브샤브********


 



********복까스*************








 햇살복집(055-867-1320).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활처럼 해변을 감싸고 있는 삼동면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내려다 보이는 물미해안도로(3번국도) 우측 언덕배기에 위치한 복요리 전문점이다.

이집 안주인 전미아(52) 씨는 미조항에서 어장을 경영하던 부친 밑에서 자라 어릴 적부터 복어를 자주 접했다.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전 씨는 이후 한식 일식 복요리 자격증을 취득, 3년 전 이곳에 문을 열었다. 이곳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남해 최고의 복요리 전문점으로 알려진 데는 바로 남해 특산물인 구수한 마늘과 유자 소스를 첨가한 복요리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마늘복수육 마늘복튀김 마늘복껍질무침 마늘복수육 마늘복어육회 등이 주 메뉴. 어린이를 위해 개발한 복가스도 아주 담백하고 맛있다. 지난해 열린 제1회 전국마늘요리 창작경연대회와 부산서 열린 2007 부산 건강 및 음식박람회에 참가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전 씨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경성대 복어 최고 전문가 과정과 일본 복어전문학교 연수를 통해 이론과 실기를 겸해 한 단계 도약했다.

그냥 복국을 시켜도 복국과 함께 김가루와 양념장 참기름을 얹은 냉면그릇이 하나 더 나온다. 여기에 복국속의 콩나물과 미나리를 건져 넣고 밥을 비빈 다음 복껍질무침을 곁들여 먹는다. 남해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남해군청과 삼동면에서도 이처럼 생긴지 얼마 안 된 식당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라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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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리산 삼신봉
노고단~천왕봉, 병풍 펼친 듯 '좌~ 악'


 



 

이땅의 산꾼 가운데 지리산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그런데 지리산이라는 곳은 그 품이 너무도 넓고 깊어 산행 코스도 각양각색, 수백 갈래의 길이 있다 보니 좋아하는 코스도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역시 주능선 종주"라고 답하고, 또 다른 이는 "칠선계곡으로 올라 천왕봉, 세석평전을 거쳐 한신계곡으로 내려와 봐. 진짜 지리산의 맛을 느낄 수 있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리산을 많이 다녀본 이들 중에는 주능선 못지 않게 호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품은 남부능선의 매력을 첫손에 꼽는 이도 적지 않다. 계절별로도 좋아하는 철이 따로 있기도 하고, 4계절 모두 좋다는 산꾼도 많다. 그만큼 지리산은 부산 경남뿐 아니라 전국의 산꾼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명산이요, '어머니 산'으로 통한다.

   
 

삼신봉에서 내삼신봉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석문 위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가운데 멀리 보이는 봉)에 흰눈이 쌓여 있다.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찾은 산행지는 그 지리산 자락이면서도 주 능선에서 뚝 떨어져 있어 독립 산행 코스로 취급되는 삼신봉(三神峰·1284m) 원점회귀 코스다. 경남 하동군의 청학동을 기점 삼아 시계 반대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한바퀴 도는 10㎞ 남짓한 산행. 걷는 시간은 5시간 정도다. 삼신봉은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중에서 주능선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최고 전망대 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당일로 지리산을 찾는 산꾼들로부터 많은 지지표를 얻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찾는 이가 많지 않은 데다 소원을 비는 기복신앙의 영험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조용히 산길을 걸으며 설 연휴 쌓인 피로를 풀고 한 해의 각오를 다져 보려는 이에게는 최적의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산행은 행정구역상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속하는 청학동 마을 도인촌 입구에서 시작해 갓걸이재~삼신봉~내삼신봉~송정굴~쇠통바위~독바위 앞~불일폭포 쌍계사 갈림길~상불재~청학동 삼성궁 순으로 이뤄진다.

해발 800m가 넘는 곳에 자리잡은 청학동은 입구에서 바라볼 때 왼쪽은 삼성궁, 오른쪽은 도인촌으로 구분되는데 산행은 오른쪽 도인촌 입구의 청학교 옆 탐방지원센터(안내소)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행탐방로를 타고 본격 시작된다. 이정표는 '삼신봉 2.5㎞'라고 가르쳐 준다. 이곳 출발지점은 하동터미널에서 오는 노선버스의 종착지점이기도 한데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 왼쪽에서부터 독바위 쇠통바위 내삼신봉 외삼신봉이 호위하듯 늘어서 있다.

밤새 내린 눈이 3㎝가량 바닥에 덮여 있어 청량감을 더해준다. 겨울철 산행의 묘미는 역시 적당히 눈을 밟는 재미가 곁들여져야 제격이라 할 수 있을 터. 먼저 간 이가 없는 듯 탐방로엔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다.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완만하게 오르는 탐방로 변에 허리높이의 산죽(山竹)이 지천이다. 산죽은 등반길 내내 외로운 산꾼의 친구가 돼 준다.

   
 

삼신봉을 지나 독바위 쪽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잔설 쌓인 산죽숲길이다.
 
계곡을 따라 천천히 오르면 작은 구름다리가 나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샘터를 만난다. '삼신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샘터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한여름 가뭄때도 마르지 않는다는 삼신천이건만 한겨울 추위에는 도리가 없나 보다. 청학동 출발지로부터 1.7㎞ 지점, 출발후 50분 만에 도착했다. '삼신봉 0.8㎞'라는 이정표를 따라 5분여를 걸으면 계곡과는 작별을 하고 계단식으로 잘 정비된 된비알을 오른다. 샘터에서 10분 만에 능선 고개마루에 닿으면 비로소 북쪽 정면에 툭 튀어 올라 있는 천왕봉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고갯마루는 '갓걸이재'로 불리는 곳으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돼 경남 김해 신어산까지 이어지는 낙남정맥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외삼신봉(1288m)를 거쳐 낙남정맥이 이어지지만 취재팀은 왼쪽 삼신봉 정상 방향으로 향한다. 정상까지는 10분 거리. 정상 아래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세석 7.5㎞' 왼쪽으로는 '쌍계사 8.9㎞'를 가리키고 있다. 이 지점이 바로 지리산 남부능선과 낙남정맥이 갈라지는 삼거리인 셈이다. 바로 옆 오른쪽에 우뚝 선 바위를 타고 삼신봉 정상에 서면 어째서 이곳을 지리산 주능선 최고 전망대라고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북쪽으로는 구곡산에서부터 황금능선을 거쳐 웅석봉 써래봉에 이어 우뚝 솟은 천왕봉이 보이고 그로부터 재석봉 장터목 연하봉 촛대봉 세석평전 영신봉을 거쳐 반야봉 노고단 왕시루봉까지 이어지는 장쾌한 지리산 주능선이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진다. 남부능선을 중심으로 왼쪽의 큰 계곡은 단천골, 오른쪽 큰 계곡은 거림골이다. 촛대봉 오른쪽 아래 도장골도 눈에 들어온다. 도장골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야전병원이 있던 곳이다. 남쪽으로 돌아서면 남부능선의 하동 형제봉 시루봉이 들어오고 청학동에서 소설 '토지'의 주 무대인 평사리로 넘어가는 회남재가 보인다. 더 멀리는 하동 옥산, 광양 백운산, 거제도와 남해바다까지 조망할 수 있다.

 

   
 

자물쇠 구멍에 열쇠를 꽂으면 극락세계가 열린다는 쇠통바위 오름문.
 
한동안 넋 잃고 바라보던 지리산 주능선 조망을 뒤로한 채 '쌍계사방향' 내삼신봉을 향해 간다. 하산길이라고 하지만 내삼신봉이 1354m로 더 높아 내리막이 아닌 오르막이다. 능선을 타고 걷다 거대한 석문을 타고 오르면 30여분 만에 내삼신봉 정상에 닿는다. 정상 표지석엔 '삼신산정(三神山頂) 1354.7m'이라 쓰여져 있다. 내삼신봉의 조망 또한 삼신봉의 그것에 손색이 없을 만큼 일품이다. 북동쪽으로 조금 전 거쳐 온 삼신봉 정상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 멀리 천왕봉이 솟아 있다.

 

내삼신봉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암릉구간을 거쳐 15분가량 가면 조선시대 문신인 송정 하수일 선생이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피해 기거했다는 송정굴에 닿는다. '탐방로 아님'이란 안내판 바로 뒤에 집채만한 바위가 있는데 그 아래 사람이 기거할 수 있을 정도의 너른 터가 있다. 굴 안쪽을 보면 뚫어진 곳으로 천왕봉이 보인다.

송정굴에서 능선을 따라 가며 왼쪽 계곡 아래 청학동 마을을 조망하노라면 20분 뒤 거대한 쇠통바위를 만난다. 쇠통바위 오름문을 통해 바위 위에 오르면 열쇠를 끼울 수 있는 것처럼 홈이 파여진 자물통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청학동의 자물쇠바위를 이 쇠통바위의 구멍에 끼워 열면 극락세계가 열린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쇠통바위에서 전망 좋은 봉우리를 지나 30여 분 가면 하동 독바위 앞 이정표다. 예전에는 독바위쪽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열려 있었지만 겨울철이어서인지 닫혀 있다. 높이만 60m가 넘는 하동 독바위는 함양 독바위, 산청 독바위와 함께 지리산의 3개 독바위 중 하나로 조망이 빼어난 곳이지만 접근을 막고 있어 계속 쌍계사 방향으로 직진한다. 15분가량 가다 보면 상불재다. 이정표상에는 쌍계사 4.9㎞, 왼쪽으로 삼성궁 2.3㎞라고 표시돼 있다. 이곳에서 왼쪽 삼성궁 방향으로 180도 틀어 사면을 타고 300여 m 가면 안부 능선에 닿는다. 왼쪽은 독바위 지나 상불재 못 미친 능선에서 바로 내려오는 길이고 오른쪽은 관음봉 하동 형제봉, 회남재 지나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길이다.

'삼성궁 2㎞' 이정표를 따라 계곡쪽으로 내려선다. 계곡 이름은 '가는골'. 내리막 초반 200여 m가 매우 가파른데다 눈길이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10여 분 만에 계곡속으로 들어선다. 계곡 바위에 소담스런 흰눈이 눈부시다. 바위에도 나이테가 있다면 저 눈들이 겨울 보내고 봄 볕에 녹을 때마다 한 겹씩 생겨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20여 분 걷다 보면 삼성궁 상단부에 닿는다. 포장길로 삼성궁 매표소까지 내려오면 산행은 마무리된다.


◆ 떠나기 전에

- 3개 봉우리 가운데 가장 키 작은 가운데 봉이 정식 삼신봉

 

지리산은 예로부터 한반도의 삼신산(三神山) 중의 하나로 통한다.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일컬어 삼신산이라 하고 신선이 사는 산, 불사초가 자라는 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반도에는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칭해 '삼신산'으로 대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삼신산 중 하나인 지리산에 또다시 삼신봉이 있고, 삼신봉에 둘러싸여 청학동의 도인촌과 삼성궁이 터를 잡고 있으니 그 영험함이 어떠할 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삼신봉을 구성하는 3개 봉우리 중에서 왼쪽의 내삼신봉(해발 1354m)과 중앙의 삼신봉(1284m), 오른쪽의 외삼신봉(1288m)이 있는데 이 중 '삼신봉 정상'의 영예는 중앙의 가장 낮은 봉우리가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이창우 산행대장은 "키는 가장 작으나 그 위치가 남부능선과 낙남정맥 큰 가지가 갈라지는 곳에 서 있어 봉우리 자체가 이정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교통편

 

- 하동터미널에서 청학동행 버스 하루 5대 운행

청학동으로 가야 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대전~통영 고속도로 단성IC에서 내리는 것이 하동읍쪽으로 가는 것보다 시간을 40분 이상 줄일 수 있다. 단성IC에서 나오면 만나는 사거리에서 직진한 뒤 '삼장 시천 지리산국립공원'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20번 국도 '지리산' 방향은 중산리 가는 길. 중간에 '청암 청학동 내대 거림'이라고 표시된 1047번 지방도를 따라 좌회전한다. 예치터널을 지나 1047번 지방도를 계속 따라가면 '청학동' '삼신봉'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한다. 묵계치 아래에 뚫려 있는 삼신봉터널을 통과한 뒤 '삼성궁' '도인촌' 안내판을 따라 우회전하면 된다. 겨울철에는 도로에 쌓인 눈이 얼었을 수 있으므로 스노체인을 준비하거나 스노타이어를 장착하는 편이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는 하동터미널을 거친다.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051-322-8306)에서 하동시외버스터미널(055-883-2663)행 버스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2시간20분 소요되며 요금은 1만 원이다. 하동에서 부산행 막차는 오후 7시30분이다. 하동터미널에서 청학동행 버스는 오전 8시30분, 11시, 오후 1시, 3시30분, 7시 출발한다. 청학동에서 하동행 버스는 오후 2시20분, 오후 5시에 운행한다. 1시간 소요되며 요금은 4200원이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9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GPS 도움=GPS영남 (http://cafe.daum.net/gpsyn)
 
글=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청학동 사무소를 지나면 만나는 삼신봉 입구 산행 들머리

삼신봉 삼거리 전에서 본 외삼신봉을 배경으로 걷는 취재팀

이승렬기자의 뒤로 가야할 내삼신봉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는 지리산





새찬 바람을 맞으며 포즈를 취하는 이슬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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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군 아미산



사실 군위의 아미산은 국제신문 근교산에서 언론매체에서는 처음으로 10년전에 취재 답사를 하여 소개를 한적있었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산으로 막상 아미산을 답사 할려고 하니 막막한 것은 사실이였다. 지금처럼 정보화의 홍수속에 클릭만하면 그 대상을 낱낱하게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당시의 최신정보란 현지 주민에게 물어 보는게 최고의 정보로 석산마을의 촌로 여러분에게 물어 보니 아미산이라 이름을 알려 주었다.
앗사!. 쾌재를 부르며 들뜬 기분이였다.
보통 부처님의 눈썹을 아미라 부르는 바 얼마나 아름다우면 아미산이라 부를까?. 막상 아미산을 쳐다 보면 동공이 확장됨을 느낄 수 있다. 아마 이산도 불교적인 색체가 강한 산인것 같다. 아니면 어여쁜 여인의 눈썹을 닮았던지. 뭐든지 간에 그 당시에는 이쁜산을 찾았다는 흥분은 지울수 없었다. 

그리고 석산마을에서 보면은 지금 있는 암봉들은 능선 맨 끝에 올망졸망 모여 있고 높은 봉우리가 방가산쪽으로 이어져 있어 마을분에게 마을 뒤의 높은 봉우리를 가르키며 아미산 정상이냐 물어보니 아니란다. 정확하게 아미산을 어느것을 두고 아미산이냐?. 제차 물어보니 마을에서는 바위가 있는 그곳이 아미산이라 다시 확인을 시켜준다.

취재때 이 산을 찾았을 때는 지금처럼 산행리본을 찾을 수 없는 처녀성을 지닌 숨은 산이였는데 그것도 초입을 찾을 길이 없어 개울을 건너고 여러번 입구를 찾고 들머리의 나무를 꺽어내고 한다고 고생을 하였는데 지금은 군위군에서 위험한 곳에 안전시설물인 데크를 설치를 하였다 하니 격세지감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때 취재때 확인을 한 사항을 다시 한번 언급을 하며
지금의 정상 위치는 아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에서 말하는 암봉이 있는 능선의 최고점이 진짜 아미산(402m) 정상이 아닐까 싶다.


"정상에 오를 땐 오금이 저릴 정도야. 아직도 발끝이 찌릿찌릿한데.”
  
산정에서 내려온 취재팀의 한 대원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출발하기 전, 지도로 가늠해 본 산세는 그리 거칠어 보이지 않았다. 해발 402M.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같은 야트막한 산이었다. 그러나 들머리에서 바라본 산세는 산꾼을 위압하고 있었다. 산 아래부터 시작된 바윗길이 멧부리에 이르러서는 숫제 바위덩어리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뜻하는 아미(蛾眉). 이 단어에서 음을 빌어온 ‘아미(峨嵋·峨眉)’를 산명으로 가진 산 치고 명산 아닌 곳이 없다. 중국 쓰촨성(四川省)의 아미산이 그렇고, 강원 홍천군, 충남 당진군, 충북 보은군, 전남 곡성군에 있는 아미산이 그렇다.

경북 군위군 아미산(峨嵋山)도 산명에 걸맞게 멋진 기세를 뽐내고 있는 산이다. 군위의 아미산은 주왕산의 촛대바위를 연상케 하는 3개의 바위봉이 어깨를 맞대며 주봉을 빚어낸다. 마치 설악산 공룡능선의 아랫도리를 잘라내고 암봉만 오롯이 평지로 옮겨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 아미산 기슭이 우려낸 물방울은 위천을 이루고, 위천은 낙동강으로 모여든다.
  

[아미산 정상 동굴을 빠져나온 설송산악회회원의 모습이다.]

산행은 ‘가암리 아미산 등산로 입구~콘크리트 하천보~바위 전망대~삼거리~능선 삼거리~동굴~아미산(402.4�)~능선 삼거리~바위3봉~봉우리 삼거리~무덤 4기~안부 삼거리~대곡지~ 908번 지방도’ 코스를 이어간다. 산행시간은 4시간 정도.


 가암리 아미산 등산로 입구의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위천에 설치된 나무덱을 타고 건너 50여m 가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5분 정도 가볍게 오르면 뾰족 솟은 바위전망대가 왼쪽에 나타난다. 높지는 않으나 가파르게 돌출돼 있다. 전망대에 서면 바위를 갑옷처럼 두른 아미산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산길을 잇는다. 오르막에서 잇따라 바위전망대를 지난다. 전망대 뒤 잠시 솔길이 시작된다. 솔길에서 삼거리를 만난다. 눈앞에 우뚝 솟은 것이 아미산 정상. 그러나 곧바로 오를 수는 없다. 낭떠러지가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삼거리에서 왼쪽 갈래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 정석이다. 낙엽이 푸석한 흙길이 기다리고 있다. 30여m만 내려오면 삼거리가 있다. 계속 길을 따라 내려가지 말고 바위봉 아래로 올라서는 오른쪽 오르막길을 택하도록 한다.

거친 길이다. 낙엽 아래 너덜이 숨어 있어 발 딛기가 까다롭다. 바위봉 바로 아래에 붙어 지나간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이어간다. 봉우리 아래를 지났을 즈음 오른쪽으로 크게 꺾어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아미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100여m가량 급경사길을 타고 오르면 바위능선에 닿는다. 바위능선도 삼거리를 머금고 있다. 능선을 따라가는 오른쪽이 정상 가는 길. 내려서는 왼쪽길은 다음 봉우리로 우회하는 길이다.

먼저 정상 정복에 도전한다. 오른쪽 능선을 따라 30여m 오른다. 능선을 걸터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위엄있는 바위 봉우리가 버티고 섰다. 봉우리 위가 정상이다. 왼쪽은 골 깊은 계곡. 바위 봉우리를 치고 오른다. 나무등걸을 붙잡고 올라서면 바위 틈새로 동굴이 나타난다. 20여� 길이의 동굴이다. 산 정상 부근에 이같은 동굴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 촛농이 흘러내린 것으로 보아 지역 무속인들이 이미 터를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굴을 지나면 10여명이 자리를 할 만한 평지가 나온다. 들머리였던 가암 삼거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밖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살짝 돈다. 정상 길이 숨어 있다.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높이 5m정도의 암벽을 타고 올라야 한다. 조심스레 기어오르면 멧부리다. 그러나 바위틈이 충분치 않으므로 암벽 경험이 많지 않은 산꾼이라면 오르지 않는 것이 좋다.

동굴을 되지나가 바위능선 삼거리로 다시 내려온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리막으로 간다. 잠시 떨어지다 왼쪽 바위 비탈로 붙는다. 능선에 오른다. 능선에서 왼쪽은 바위 2봉 꼭대기로 오르는 길. 오른쪽이 이어갈 길이다. 오른쪽으로 거북등 같은 암릉이 가로막고 있다. 조심조심 올라서면 바위3봉 정상이다.
  


바위3봉을 끝으로 암릉은 끝을 맺는다. 푹신한 솔가리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풀어 준다. 40분 가량 흙길을 걸으면 무덤 2기를 지나 삼거리가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튼다. 왼쪽은 방가산 가는 길. 오른쪽으로 틀어 25분 가량 가면 무덤 4기를 만날 수 있다. 옅은 산길을 따라 10여분 더 내려오면 순흥 안씨묘에 닿는다. 이를 지나 15분 가량 더 내려가면 안부 삼거리다. 능선을 버리고 오른쪽 갈래길로 꺾는다. 늦억새가 만개한 길을 헤쳐 가면 대곡지 길섶으로 나온다. 대곡지를 지나 콘크리트 수로를 타고 내려간다. 위천을 건너면 출발지였던 908번 지방도로로 되돌아온다.

/ 글·=박병률 기자

교통편
자가용을 이용할 때는 경부고속도로 영천IC에서 내려 35번 국도를 타고 영천 시내를 거쳐 청송 안동 방향으로 간다. 보현산 천문대 입구를 지나 만나는 상송삼거리에서 군위 방면으로 908번 지방도를 타고 좌회전, 고개를 넘어가면 군위군 고로면 석산리. 석산초등학교 앞을 지나 1㎞ 후에 가암리 가암교를 건너면 왼쪽에 아미산 표지석이 있는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에 주차하면 된다. 1시간40분소요. 고로택시(054-382-1466).
들머리인 가암 삼거리에서 석산 방향으로 15분 가량 가면 석산버스정류소(슈퍼)가 있다. 아미산 자락에서 난 자연산 표고버섯과 호도등을 판매한다. 054-383-0448


<지금 올려진 사진은 데크 시설 이전에 찍은 사진 임을 밝혀둔다>

 

 

 아미산의 암봉 모습

 

 402m의 암봉을 올라서면 동굴을 지나게 된다.

 

 

 

 

 

 

 

 순흥안씨묘로 소나무가 잘 어울리는 양지바른 능선의 무덤이였다.

 

 

 

산행이 끝나는 지점에 만나는 대곡지의 모습

인각사 


아미산 가는 길에 있는 인각사는 일연의 삼국유사 집필지로 경내에는 보각국사 탑(보물 428호)이 있다. 사찰 앞에는 흰 학이 살았다는 학소대,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병암(屛岩)이 있어 여름철에는 대구지역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지도는 최근의 지도이며 돌탑(669m)봉직전의 갈림길에서 촤측능선을 타고 내려 가면 원점산행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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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717> 제6코스 : 경주 심천~청도 삼계리

계살피계곡 비경 바라보며 '세속오계' 가르침 되새기네

 

가설갑사 절터 옆의 계살피계곡으로 '가설갑사옆 계곡'이란 뜻을 가졌다. 삼계리 마을 부터 이어지는 계곡은 자연의 풍광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여과 없이 보여 주는 문복산의 주 계곡이다. 

 


 



경주와 청도 사이에 솟아 있는 문복산(文福山·1014m)은 한때 영남알프스 권역에 포함되지 못한 채 '설움'을 겪었다.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일부 수도권 산꾼들이 언제부턴가 가지산 운문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 등 7개 봉우리만 '영남알프스'로 대우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그들은 운문령 동쪽과 북쪽에 있는 해발 1000m급 봉우리인 고헌산(高獻山·1034m)과 문복산은 영남알프스와는 별개의 봉우리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는 문복산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의 인식일 뿐이다. 현재 영남의 산꾼들 가운데 문복산을 영남알프스 산군에 포함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당당히 1000m가 넘는 높이 면에서 뿐 아니라 이 산이 꼭꼭 숨겨두었던 계살피계곡의 깊고 아름다운 비경(秘景) 때문에라도 당연히 영남알프스에 포함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신라 삼국통일의 주체 세력이었던 화랑도의 윤리적 근간이자 실천이념이었던 세속오계(世俗五戒)가 바로 이 산에서 시작됐음을 안다면 과연 이 산을 그렇게 무시할 수 있을까. 영남알프스의 그 어떤 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역사성까지 갖춘 산이 바로 문복산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는 문복산의 북쪽에서 서쪽 자락을 휘돌아 가는 길이다. '신라의 정신'을 넘어 우리 민족의 중요한 정신적 계율로 승화된 세속오계의 발상지를 찾아가는 길이면서 솔 향기 그윽하고 진달래 군락 지천인 걷기 좋은 숲길을 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또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는 가슬갑사터를 지나며 1400여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전해주던 장면을 상상해 볼 수도 있는 길이 바로 둘레길 제6코스다.

■ 삼계리재 넘어 가는 13.5㎞ 4시간이면 충분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는 문복산과 옹강산 사이의 삼계리재를 통해 경주에서 청도로 넘어가는 청정 숲길을 걷는 맛이 일품인 구간이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낙엽깔린 길을 따라 삼계리재에서 수리덤계곡 쪽으로 내려서고 있다.
제5코스의 종착점이었던 경북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에서 출발, 심원사를 거쳐 삼계리재(또는 심원재)를 넘어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에 닿는다. 삼계리마을에서는 계살피계곡 왼쪽 길을 따라올라 세속오계 발상지인 가슬갑사터를 들렀다가 계곡 깊숙이 자리 잡은 폭포를 보고 나서 계살피계곡을 건너 우측길을 따라 다시 삼계리마을 칠성슈퍼 앞으로 내려선다. 총 길이 13.5㎞에 걷는 시간은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당산나무와 정자가 나란히 서 있는 일부리 심천마을에서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경로당을 지나고 3분쯤 가면 수령 500년 된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반긴다. 포장도로를 따라 좀 더 남쪽으로 가면 5분 후 우측 논바닥에 놓인 길이 4m 안팎의 바위가 보인다. 일부리지석묘다. 받침돌은 보이지 않는다. 지석묘를 선사시대 유적으로 분류한다고 볼 때, 관리가 참으로 부실하다는 느낌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10분쯤 남쪽으로 이어가면 심원저수지 둑에 닿는다. 이 저수지는 산내면 측에서 동창천의 생태보존 및 청정지역화를 위해 일부러 어류 방류를 한 곳으로 낚시 투망 등 일체의 어획 행위가 금지돼 있다. 반짝거리는 물살을 보며 심원지 오른쪽을 따르는 길은 운치가 그만이다. 멀리 왼쪽에 문복산 자락의 서담골봉이 보인다.

■ 천년고찰 심원사 지나 아늑한 숲길로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저수지 최상류에서 왼쪽으로 심원교를 건너면 천년고찰 심원사(深源寺). 한때는 신라의 큰 절이었고 심천마을 일대의 땅 대부분이 이 절 소유였다고 알려졌을 정도지만 지금은 작은 암자 같은 분위기다. 스님은 출타했는지 인적조차 없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다시 심원교를 건너와 갈림길에서 왼쪽 계곡으로 들어선다. 포장도로를 끝내고 숲길로 들어서게 되는 지점이다. 상수원보호 팻말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니 아담한 크기의 심원사 부도밭을 지난다. 3명이 나란히 걸을 만한 너비의 계곡길이 이어진다. 5분 후 계곡을 건너는 길과 우측길이 나뉘는 지점에서 계곡을 건너지 말고 우측의 옛길을 따른다. 진달래나무가 지천이다. 4월쯤이면 이곳도 진달래로 뒤덮일 것이다. 길 왼쪽의 계곡에는 크고 작은 소와 폭포가 이어진다. 5분 후 만나는 갈림길인 사거리에서는 곧바로 직진, 계곡을 계속 따라 오른다. 바닥에 깔린 낙엽이 무성한 길을 따라 여유롭게 20여 분 오르면 잘 알려진 삼계리재다. 왼쪽 능선길은 서담골봉(837m)을 거쳐 문복산으로, 오른쪽 능선은 옹강산(832m)으로 이어진다. 심천마을에서는 이 고개를 심원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개를 넘어 내리막을 탄다. 삼계리 방향이다. 편안한 길 양옆으로 낙엽이 수북하다. 길 자체의 상태와 주변 분위기가 전형적인 숲길인 탓에 개척단원들은 "영남알프스 속살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청도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의 세속오계 상징물.
20분쯤 내려서면 널따란 계곡. 일명 수리덤계곡이다. 큰 계곡과 만나는 곳 오른쪽에 산사면 중간에서 흘러나오는 샘터가 있다. 누군가 설치해 놓은 파이프를 타고 흘러내린 샘물을 마셔본다. 달콤하고 시원해 가슴 속까지 청량감이 전해진다. 계곡을 건너면 삼계리주말농원 권역이다. 임도길 수준으로 넓어진 길을 따라 한 차례 더 계곡을 건너고 '끈티서야영장'을 지나면 장승과 돌탑 숙소가 곳곳에 설치된 주말농원. 이곳을 지나 다리를 건넌 후 펜션단지를 통과하면 69번 지방도로상의 수리덤계곡 입구에 닿는다. 본격적으로 청도군 지역에 들어선 셈이다.

왼쪽 삼계리 방향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르는데 쌍둥이처럼 뾰족하게 솟은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쌍두봉이다. 삼계리마을 주민은 형제봉으로도 부르는데 산꾼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암봉이기도 하다.

■ 원광법사 머물던 가슬갑사터에 비석만 1개

 
  가슬갑사터로 오르는 길에 발견한 문복산 연리목.
삼계1교를 지나면 주민들이 복원해 새로 단장한 삼계리성황당이 있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에는 깊은 산골이었을 이 마을 주민들이 안녕을 기원하던 토속 신앙의 흔적이다. 그 우측에는 해발 256.3m를 표시한 국가시설물인 '수준점'이 보인다. 행정구역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속하는 삼계리마을은 3개의 골짜기가 모이는 곳이다. 문복산의 계살피계곡, 쌍두봉 서쪽의 배너미골, 그리고 운문령 방향의 생금비리 등 3개의 골짜기 물이 이곳에서 모여 신원천을 이룬 후 운문호로 흘러든다.

성황당에서 70m쯤 더 가면 계살피계곡 입구. 가슬갑사터로 가기 위해 지방도를 버리고 왼쪽 길로 들어선다. 왼쪽에 세속오계 정신을 기린 상징물이 보인다. 화랑도 2명의 동상이 세속오계가 새겨진 돌을 떠받치는 듯한 모습이다. 곧바로 삼계리경로당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등산로 입구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이정표는 '가슬갑사터 1.8㎞, 35분'을 표시하고 있다. 3분 후 갈림길. 왼쪽은 능선길이고 오른쪽 길은 계곡을 따르는 길이다. 오른쪽 길로 간다. 계곡을 끼고 완만한 오르막을 15분쯤 가면 두 그루의 소나무가 서로 엉겨붙은 일명 '문복산 연리목'이 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모양의 나무다. 너덜지대를 지나 10분쯤 더 가면 7세기 초 신라 진평왕 시대에 원광법사가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전한 곳으로 알려진 가슬갑사터를 만난다. 하지만 높이 50㎝가량의 표지석만 있을 뿐, 주변은 폐허나 다름없다. 절터 앞 계곡은 더없이 깊고 아름답건만 정작 절터는 황량하기만 하다.

■ 청정 계살피계곡에 이름 없는 폭포 즐비

 
  계살피계곡 가슬갑사터 위에 있는 무명폭포.
절터를 지나자마자 우측의 놀기 좋은 너럭바위를 비롯한 계살피계곡의 비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길이 우측으로 살짝 휘어지는 곳의 작은 폭포도 멋지고, 이곳에서 조금 더 가서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계곡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폭포도 그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영남알프스에 정통한 이창우 둘레길 개척단장은 "이름을 얻지 못한 폭포"라며 아쉬워한다. 맨 위 폭포 왼쪽으로 20m 정도만 오르막을 치면 다시 조금 전 폭포 밑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주 등산로와 만난다. 우측으로 10분쯤 가면 큰 갈림길. 해발 540m 안팎인 이곳에서 계속 직진하면 문복산 정상으로 향하게 되지만 개척단은 우측으로 계곡을 건너 내리막을 탄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주 등산로 역할을 했던 간이 임도다. 묵은 길 바닥에 잔돌이 많아 걸을 때 주의해야겠다. 35분 정도면 제6코스의 종착점인 삼계리 칠성가든 앞 69번 지방도로에 닿는다.


◆ 먹을 곳

- 칠성가든 오리양념불고기 매콤한 맛 일품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의 종착지에는 칠성가든(054-371-5287)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슈퍼마켓과 음식점 민박집까지 겸하고 있는 이 집은 사실 영남알프스를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심 좋고 맛도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매콤한 맛의 오리양념불고기(사진·3만5000원)와 산채비빔밥 된장정식(5000원) 등이 특히 인기있는 메뉴다. 밑반찬으로 계절에 맞는 산나물도 많이 올라온다. 요즘에는 봄나물인 냉이 달래도 보인다. 둘레길을 코스를 걷고 나서 시장기를 달래고 이야기꽃을 피우기에도 딱 좋은 곳이다. 산에서 직접 채취한 고로쇠 수액도 판매한다.

많은 사람들이 '칠성가든'이라는 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한다. 그저 17년 전 대구 칠성동에서 이곳으로 이주, 음식점을 시작할 당시 마땅히 지을 이름이 없어 전에 살던 동네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 교통편

- 경주서 산내 들러 일부리행 버스 갈아타야

부산 노포동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새벽 5시30분부터 10분 간격 운행. 4500원, 50분 소요. 경주버스터미널에서 산내까지 간 후 일부리행 352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산내행 350번 버스는 오전 6시, 6시30분, 7시15분 등 하루 28회 운행한다. 산내에서 일부리행 버스는 오전의 경우 6시20분과 7시40분에 출발하는 2대밖에 없다. 이 버스를 놓치면 산내 개인택시(054-751-5955)를 이용한다. 심천마을까지 1만2000원 안팎. 종착지인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에서는 언양행 버스를 탄다. 오후 2시40분과 5시40분(막차)에 있다.

자가용의 경우 두 대 이상이 동행, 먼저 제6코스 종착지인 삼계리에 한 대를 주차한 후 나머지 차량으로 출발지로 가야 차량 회수가 쉽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향으로 가다가 석남사·밀양 방향 24번 국도를 탄다. 석남사 램프 못 미쳐 청도·산내 방향 표지판을 보고 빠져나간 후 69번 지방도를 타고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칠성가든 앞에 닿는다. 삼계리마을에서는 69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가 운문댐 밑 삼거리에서 우측 경주 산내 방향으로 튼다. 20분쯤 가면 산내면 소재지 못 가서 우측으로 '외칠리·일부리' 표지판을 보고 진입, 다리를 건넌 후 좌회전하면 외칠리에 닿는다. 다시 우측으로 상록병원 일부리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심천마을에 닿는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동영상 http://www.kookje.co.kr


# '세속오계' 전한 가슬갑사터 단상

- 화랑 정신 발원지에 황량함만 감돌고…

 
  작은 비석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황량한 문복산 가슬갑사터.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에 굳이 문복산 계살피계곡에 있는 가슬갑사(嘉瑟岬寺)터를 포함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이곳이 신라 화랑들의 윤리적 강령이자 실천이념이었던 '세속오계(世俗五戒)'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황폐한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계살피계곡이 품고 있는 비경을 보지 않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점이다.

그래도 역시 첫 번째 이유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가슬갑사터는 한 마디로 황량하다. 과연 이곳이 삼국통일의 초석이 된 화랑들의 기본 이념이 발원한 곳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세속오계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발견되지만 특히 가슬갑사에서 원광법사가 추항과 귀산이라고 하는 두 명에게 계율을 일러 주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정확하게 전해진다. 그렇다면 가슬갑사는 도대체 어떤 절이었을까.

6세기 중반인 560년(신라 진흥왕 21년) 한 신승이 대작갑사(지금의 운문사)를 세우고 주변에 대비갑사 천문갑사 소보갑사 가슬갑사 등 4개의 갑사를 더 세웠는데 이를 신라 5갑사(또는 5대갑사)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이후 신라의 중요한 사찰로 자리 잡은 것은 물론이다. 그 중 하나인 가슬갑사는 서기 600년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당대 최고의 승려 원광법사가 대작갑사 중창 등을 마친 후 머무르며 수도했을 만큼 당시로써는 상당한 기풍을 지닌 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국 전란의 격화에 휘말려 절이 없어지고 난 후 여태껏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복원은 고사하고 절터만이라도 제대로 정비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개척단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끈 셈이다. 혹시 아는가.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이곳을 찾는다면 관할 지역자치단체에서라도 나서서 조금이나마 정비를 할지.


# 삼계리 쌍두봉과 두 마리 용 전설


- 승천 못한 용의 한 서린 '형제봉'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 종착지인 경북 청도군 삼계리마을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한 봉우리처럼 보이지만 상단부가 둘로 나뉜 암봉이 우뚝 솟아있다. 산꾼들은 이 두 봉우리를 묶어서 쌍두봉이라고 부른다. 조금 더 높은 봉은 해발 929m, 그 앞 낮은 봉은 862m다. 그런데 삼계리마을과 인근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이 두 봉을 '형제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는 두 마리 용에 관한 전설 때문이다.

먼 옛날 이 산 깊은 계곡에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깊은 소(沼)가 있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구렁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며 접근을 꺼렸다. 그러던 어느해 춘삼월 가까운 마을에 살던 형제가 사냥이라도 해서 고기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산에 들어갔다가 늦어져 할 수 없이 노숙을 했다. 새벽녘 동생이 소변을 보기위해 잠이 깼는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소에서 하늘로 솟구쳐, 구름 너머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침 이 소리에 놀란 형도 잠에서 깬 순간 다시 두 번째 용이 날아 올랐다. 이 때 형제가 놀라 자빠지며 동시에 "용, 용이 승천한다"라고 소리쳤다. 이로 인해 두 번째 용은 하늘에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승천하지 못한 한이 너무 컸던지 용은 떨어지면서 거대한 꼬리로 산 정상부를 내리쳤다. 그러자 봉우리는 두 개로 쪼개졌고 사람들은 이후 승천한 형님 용과, 그러지 못한 동생 용을 빗대어 형제봉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좀 더 높은 봉이 형님봉, 그 앞 낮은 봉은 동생봉이 된 셈이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둘레길 6코스는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동 당산나무에서 시작을 한다.  여러기의 당산나무 쉼터에서 요즘 마을마다 정자를 만들어 노아 운치를 더해주는 것 같다.

심천동마을의 500년된 느티나무로 보호수이다

심원사로 둘레길의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우측 논 한가운데 작은 바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석묘이다. 지금은 지석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이 바위를 괴었던 지줏돌이 있었다하고 그 지줏돌을 빼내었다 한다. 그리고 논은 복토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니 우리 문화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심원소류지 뒤로 보이는 서덤골봉으로 문복산과 옹강산 그리고 산내읍을 잇는 아부터재로 연결된다.

심원소류지 뒤로 보이는 잘록한 부분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개이다. 구름재로 지금은 산길이 묻혀 있지만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계리재를 넘어 심원사 앞을 거쳐 구름재를올라, 숲고개를 넘어 산내읍이나 내친김에 당고개를 넘어 경주로 걸어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지금은 구름재가 문명의 발달로 그 기능을 잃은지 오래고 마을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좌측 철탑이 있는 산으로 방매산이다.

신라시대 때의 고찰로 현재는 불국사 말사로 심원사이다.


삼계리재로 들어는 옆 계곡

심원사의 부도밭

심원재(삼계리재)로 올라가는 둘레길 옆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작은 소와 폭포가 조금 있어면 진달래가  분홍색 꽃잎을 피워 계곡수와 어울리면 장관을 연출 할 것 같다. 아마 이것이 둘레길의 매력이 아닐까?.

고개 막바지에서 봄기운을 받으며  걷고 있는 둘레길 팀원

일부리 사람들이 부를 때는 심원재로 부르고 삼계리에서 심천동으로 넘어 올때는 삼계리재로 부른다는 고개이다. 국립지리원 발행지도에는 삼계리재로 나와 있다. 이고개가 경주군 산내면과 청도군 운문면의 경계이며 둘레길도 경주 땅을 버리고 이제는 청도땅으로 들어는 순간이다.

청도땅으로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수리덤계곡으로 서덤골봉 이뤈에 예전부터 수리가 살았다하여 수리덤으로 불리며 혹 서담골봉도 그 이전에는 수림덤골봉 도는 수리덤으로 불렸는데 그게 세월이 가면서 잊혀지거나 아니면 잘못전달 되어서 서담골봉으로 되지 않았나 쉽은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수리덤골안의 주말농원의 목가적인 풍경으로 지금은 예전에 없던 펜션이 많이 들어서 있다.

삼계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최근까지 내려 오던 전통문화를 다시 복원해 새로 단장한 삼계리 성황당이 이다. 신작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깊은 산골이었을 이 마을 주민들이 안녕을 기원하던 토속 신앙의 흔적으로 안에 호랑이를 탄 산신령이 모서져 있다.

화랑도의 발생지로 청도에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원광법서가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인 화랑도의 기본 이념이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삼계리에 도로 옆에 두개의 홍보물을 설치해 놓았다.

화랑인 귀산과 추항이 세속오계를 받는 모습을 홍보물로 나타내어 놓았다. 

연리목으로 가슬갑사터를 찾아가는 둘레길 우측으로 소나무 두그루가 신기하게도 둥근 원을 나타내며 서로 붙어 있다. 이 나무가 세솟오계를 밭았던 귀산과 추항의 모습일까?.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앙에게 세속오계를 주었다는 가슬갑사터는 어떤 모습일까 ?. 가슬갑사터는 현재 청도군에서 열성을 다해 홍보하는 화랑도의 발상지에 비해 무방비로 방치를 해 놓은 상태이다. 표지석 외에는 그 어떤 안내문구도 없으며 절터로 추중되는 곳에는 낙석과 잡목으로 인해 진짜 이곳이 가슬갑사터인지 의구심을 들게 할 정도이다. 누군가 답답해서 인지 절터에다   편편한 돌을 세워 스프레이로 가슬갑사터라 써 놓았다.

현대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아픈 나무의 모습이다. 6~70년대 까지 송진을 채취하였던 모습으로 소나무에게는 많은 아픔을 주었다.4~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계살피계곡의 지계곡에 걸린 작은 무명폭포


계살피계곡의 무명폭포로 영남알프스둘레길에도 이제는 봄이 오고 있다.  한겨울 두터운 하얀 솜이불을 걷어 내고  속살을 내보이는 계살피계곡의 모습을 둘레길 팀도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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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무려 130여 m에 달하는 문복산의 랜드마크인 그 유명한 드린바위. 그 뒤로 산내면 불고기단지가 보인다.



 





문복산에서 본 드린바위. 그 뒤로 고헌산 등 낙동정맥 산줄기가 보인다.














이번 주 산행지는 경주 대부산~서담골봉~문복산. 대부산은 경주 산내면에 속해 있고 서담골봉과 문복산은 경주 산내면과 청도 운문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이들 세 봉우리의 동쪽으론 삼강봉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과 지난해 산행팀이 개척한 불송골봉이 나란히 내달리고 있고, 서쪽으론 옹강산이 포진해 있다. 이들 세 봉우리들은 산행팀에게 꼭 이 말을 전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먼저 문복산. "영남알프스 북쪽의 맹장으로 엄연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데도 간혹 멋모르는 산꾼들이 고헌산과 함께 영남알프스의 산군에서 빼놓더라구. 정말 어이가 없더군. 특히 지리적으로 먼 수도권의 무식한 산꾼들이 그러더군. '1000m 이상 되는 영남지역의 산군'이라는 정의에도 딱 부합되는 데도 말이야. 굳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되레 고헌산이 빠져야지. 날 포함한 나머지 8개의 영남알프스 봉우리들은 능선으로 이어져 있지만 고헌산은 산을 내려가 도로를 건너야 다시 올라갈 수 있거든. 물론 고헌산도 할 말이 좀 있겠지만. 하여튼 난 누가 뭐래도 영남알프스에 속한다구."

국토정보지리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도 표기돼 있는 서담골봉도 불만이 없지 않았다.

"부산의 진산 금정산보다 높은 837m의 엄연한 봉우리인데도 산꾼들은 날더러 문복산과 옹강산을 잇는 정거장 정도로 생각할 뿐이야. 내가 날 당당하게 소개하려고 해도 왜 서담골봉인지도 몰라. 그래서 아주 답답해. 이 점은 날 품고 있는 경주시나 청도군이 해결해야 될 문제인 것 같아. 다행인 점은 국제신문 산행팀이 수 년 전 닉네임을 하나 일러줬지. 산 넘어 북쪽 산내면 일부리 주민들이 이곳으로 오르는 계곡인 도수골 꼭대기에 있다고 경상도 사투리를 써 '도수골만디'라고."

대부산도 거들었다. "최근 나온 등산지도에는 날더러 조래봉이래. 알고 있지, 경주 산내면에는 조래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날 포함해 3개나 있다는 사실을. 장육산 북쪽의 조래봉, 단석산과 능선이 이어지는 조래봉이 그것이야. 산내면 사람들은 대부분 날 대부산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해서 날 조래봉이라 부르는지 모르겠어. 산 밑에는 대부산 이름이 들어가는 식당도 있는데 말이야. 하루빨리 나의 공식 명칭을 대부산으로 바꿔줘."

  



산행은 산내면 '동곡 앞' 버스정류장(921번 지방도)~서담골봉·대부산 갈림길~대부산(837m)~서담골봉·대부산 갈림길~일부리 심원사 갈림길~서담골봉(837m)~옛 철탑자리~먼산바위~드린바위 갈림길~문복산(1014m)~드린바위 갈림길~드린바위~기도터(석간수)~갈림길~921번 지방도(정원숯불갈비 입구)~대현3리(중리) 버스정류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3시간50분. 들머리와 초반 구간만 차질없이 잘 찾으면 이후 산행은 여유있게 진행할 수 있다. 초보자도 별 어려움 없이 완주할 수 있는 전형적인 가족산행지이다.

들머리는 921번 지방도의 '동곡 앞' 버스정류장 좌측 뒤로 열려 있다. 주변에 대형 간판이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쉬우나 정류장만 찾으면 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마을사람들은 들머리 바로 옆 좁다란 계곡인 소리골로 가면 길이 아주 좋은데 왜 없는 길로 가느냐고 우려섞인 말을 건넨다.

산자락을 깎아 도로를 만든 탓에 처음부터 급사면길로 올라야 한다. 5분 정도 숲속 희미한 길을 따라 발길을 옮기면 너른 터의 돌무덤을 만난다. 이곳만 찾으면 이후 산길은 별 무리없이 열려 있다.

직진한다. 겨우내 쌓인 낙엽 사이로 연초록 새순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전형적인 우리네 오르막 산길이다. 이방인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경계의 표시인지, 반가움의 환대인지 새들은 연신 울어대고 발밑에는 큰구슬봉이가 눈에 띈다.

  
  GPS 트랙 내려받기 취재협조=(주)발해

35분쯤 뒤 숲 사이 좌측으로 우뚝 솟은 문복산과 그 우측으로 먼산바위 서담골봉이 보인다. 문복산 좌측 큰 바위가 하산길에 만나는 그 유명한 드린바위이다. 이어 너덜에 가까운 돌길을 지나면서 정면으로 대부산이 손에 잡힌다. 시야가 트이는 지점으로 좀 더 오르면 맨 왼쪽 낙동정맥과 호미지맥의 분기점인 삼각봉을 기점으로 우측으로 백운산 소호령 고헌산, 불고기센터인 대현리(대현고개), 낙동정맥 분기점인 895봉, 문복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소호령 앞 봉우리는 불송골봉. 시원한 조망을 감상한 뒤 5분이면 서담골봉·대부산 갈림길이다. 대부산은 산행팀이 계획한 등로에서 북동쪽으로 약   간 벗어나 있어 우측 대부산을 다녀온 후 이곳으로 돌아와 좌측 서담골봉 방향으로 향한다. 3분이면 대부산에 올라선다. 삼각점과 '조래봉'이라 적힌 조그만 자연석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는 이곳에 서면 남으로 문복산과 그 뒤 상운산, 남서쪽으로 옹강산이 수목 너머로 보인다. 대부산에서 직진하면 산내면소재지인 의곡리 또는 아부터재 쪽으로 가는 길이다.


이제 서담골봉 방향으로 내려선다. 큰 무덤을 지나 무명 봉우리를 살짝 넘어서면 갈림길. 우측 일부리 심원사 가는 길이다. 산행팀은 직진한다. 여기서 15분이면 서담골봉에 올라선다. 역시 '도수골만디'라고 적힌 자연석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산행팀은 우측 옹강산 삼계리재 방향 대신 좌측으로 내려선다. 문복산은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 뒤에 숨어 있다.

무명봉을 지나 모처럼 편안한 낙엽길을 걸으면 너른 터에 올라선다. 옛 헬기장인가 했는데 이창우 대장이 옛 철탑자리란다. 정면으로 산 아래 마을사람이 명명한 먼산바위, 좌측으로 들머리 동곡, 뒤돌아보면 대부산 좌측 뒤로 저멀리 단석산도 확인된다.

  


두 차례 정도 내려섰다 올라섰다를 반복하면 먼산바위. 너른 터에서 21분. 주변 조망도 멋지지만 카메라 렌즈에도 잡히지 않는 신록의 미미한 색감의 변화에 모두들 감탄한다.

계속되는 오름길. 우측으론 이웃한 옹강산이 우뚝 솟아 있다. 17분 뒤 숲속 갈림길. 좌측은 날머리인 중리 하산길이지만 이번 산행에선 무시하고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곧 너른 송림. 자세히 보면 송림 좌측으로 하산길이 열려 있다. 정상은 이제 코앞. 6분이면 올라선다. 삼각점과 정상석이 서 있는 문복산에선 좌로 고헌산, 우로 옹강산, 정면으로 저 멀리 밝얼산과 배내봉이 보인다. 직진하면 낙동정맥 분기점인 895봉, 우측은 영남알프스 북쪽의 베이스캠프격인 삼계리, 산행팀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 너른 송림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급경사길이다. 5분이면 시야가 트이며 드린바위의 웅장한 자태가 드러난다. 좌측 뒤로 불송골봉, 그 뒤로 삼강봉 백운산 소호령 고헌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 헌걸차게 내달린다. 드린바위는 여기서 10분이면 올라선다. 돌탑이 서 있는 이곳에서 뒤돌아보면 문복산 동남릉에 수 그루의 낙락장송이 걸린 기암절벽이 산사면 곳곳에 박혀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하산로는 왔던 길로 내려서자마자 우측에 열려 있다. 9분 뒤 드린바위 아래 동굴. 기도터로 바로 옆에는 석간수가 흐른다. 물맛이 아주 차고 좋다.

이제 하산로는 둘. 돌길을 따라 직진하는 계곡길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좌측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이다. 어느 길로 가더라도 산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 무덤 직전에서 만난다.석간수에서 28분. 산행은 사실상 끝. 여기서 2, 3분이면 산을 벗어나고, 이어 정원숯불갈비와 대현3리 복지회관 입구를 지나면 921번 지방도에 닿는다. 정면에는 'OK청소년수련원' 간판이 보인다.

여기서 우측으로 100m쯤 가면 대현3리(중리) 버스정류장이다.


   
 


# 떠나기 전에

- 드린바위, 해외거벽 등반 위한 클라이머 훈련장


문복산 동남릉에 위치한 드린바위는 폭 100m, 높이 130m에 이르는 웅장한 바위절벽이다. 두름바위 또는 코끼리바위로도 불리는 드린바위에는 지난 1975년 루트가 개척된 후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것을 고헌산악회 회원들이 1998년 요즘 등반 추세에 맞는 루트로 재탄생시켰다. 중급 이상의 실력을 요한다. 영남지역 최대 암봉으로 해외거벽 등반을 대비한 클라이머들의 훈련장소로 유명하다.

대부산에서 서담골봉으로 가는 도중 만나는 우측 갈림길은 경주 산내면 일부리 심원사로 내려가는 길. 심원사는 근교산 시리즈 339회 경주 옹강산 편의 들머리. 당시 이 길을 개척한 산행팀은 이날 이 길로 올라오는 산꾼들에게 길 상태를 물어보니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올라올 만하다고 말했다. 참고하길.

맛집 한 곳 소개한다. 문복산 가든(054-751-7043~5). 날머리 대현3리(중리) 버스정류장에서 산내불고기 단지 쪽으로 2㎞쯤 떨어져 있다. 암소를 마리째 구입하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고기는 얼리지 않고 신선하게 맛볼 수 있다. 뼈나 국거리도 판매한다. 식사를 할 경우 차량 편의를 제공해준다.

  

 

# 교통편

-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서 나와 언양 경주 방면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50분 걸리고 3200원. 언양터미널에선 금아교통 경주 산내행 버스를 타고 '동곡 앞' 정류장에서 하차.오전 10시50분. 1500원. 날머리 대현3리(중리) 버스정류장에서 금아교통 언양행 버스는 오후 5시20분경에 있다. 언양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밤 9시에 있다. 날머리 대현3리(중리) 버스정류장에서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도 있다. 오후 2시35분, 6시30분. 경주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15분마다 있으며 막차는 밤 9시5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언양 35번 국도~경주 봉계 35번~밀양 상북 24번~밀양 석남사~밀양 상북~창녕 밀양 24번~경주 청도 궁근정리~경주 청도~궁근정 삼거리서 경주 청도~경주~경북 경주시 산내면 안내판~경주 산내 921번 지방도~'동곡 앞' 버스정류장 순.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대부산~서담골봉 취재 뒷이야기

산행을 하다 보면은 이름없는 무명의 봉우리를 종종 볼 수가 있다.

국립지리원 발행의 지형도 상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산이름들이 여럿있다.

그중 대부산과 서담골봉도 하나로, 예전의 지형도에는 서담골봉도 이름을  찾을 수 가 없었는데

최근의 지형도에서 서담골봉이란 이름을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산아래 동네에서 부르는 이름을 찾아 산내면 일부리 심원사 아래 마을에서 확인한 이름이 도수골만디로

그 아래 계곡이 도수골이라 부르고 있는 것을 그 당시 취재시 확인을 하였다. 그 후 서담골봉이 지형도에 등재가 되였어니

앞으로 서담골봉으로 불리어 지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대부산은 예전에는 조래봉으로 확인을 하였는데 불송골봉 산행시 범골마을의 촌로에게 문의를 하니

대부산으로 불리어지며 그 산아래 대부산가든이란 이름의 상호를 걸고 영업도 하고 있는 것을 알여주었다.

최근 산행에서 동곡마을의 주민에게 다시 확인을 하니 똑 같은 대답이 일치하여 대부산으로 산이름을 고쳐 취재산행을 하였다.

산이름은 그 마을의 보는 방향에 따라 여러이름으로 불리어 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근교산 취재팀은 이름없는 무명봉에는 그 아래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산이름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며

혹 잘못된 이름의 사용과 봉우리의 위치등은 수정을 해 나갈 것있다.

일예로 최근에 경주 산내면 감산리 소목마을이 고향이며 저와 같은 경주이씨 한분으로 부터 메일을 받았다.

개척산행지인 만봉산과 석두봉의 위치가 잘 못 되었다고 지적을 해 주었는데, 만봉산은 전망대가 있는 그봉우리를 확인을 하였지만 바로 옆 봉우리가 더 높아 그 봉우리를 만봉산이라 칭하고 낙동정맥에 솟아 잇는 봉우리를 석두봉이라 마을에서 확인을 하였는데 악간 틀리는 부분이 있어 제차 확인후 잘못된 부분은 수정을 할 것이다. 다시한번 그분께감사를 드리며 대부산과 서담골봉으로 근교산 동호인께서는 산이름을 불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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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분이 있다. 이곳 강진에서 18년 동안 만덕산 아래에다 초당을 짓고 목민심서등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유배지이기 떼문이다. 그를 신임하던 정조가 승하하자 1801년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순조에 의해 강진으로 유배되어 외가인 해남윤씨에서 마련해준 이곳에서 유배가 풀렸던1818년 까지 머물며 제자를 가르키고 많은 저서를 남겼다 한다. 목민심서,경세유표, 흠흠신서 외에 60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하니 이곳 다산초당은 그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곳이다.

 





다산의 유배생활중 그의 스승이자 제자이기도 한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남다른 교분을 쌓았다. 그 교분을 이어준 길이 현재 천일각과 동암사로 내려오는 800여m의 오솔길로  다산이 혜장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르던 길이다. 길 옆 한줌 흙과 풀 한포기를 사랑했던 다산. 이 길 옆에는 현재 야생차밭과 천연기념물인 동백숲이 그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다. 동백꽃이 뚝~뚝~ 떨어 질때 다산은 혜장선사를 만나기 위해 이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

천연기념물 동백숲






'천일각'은 '하늘 끝 한모퉁이'란 뜻으로 천애일각을 줄인 뜻이다. 다산의 유배 생활때는 없던 건물이며 1975년 강진군이 건립하였다. 승하하신 정조대왕과 그의 형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를 가 있을 때 이곳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을 달랬을 것으로 추측을 하여 정자를 세워 다산의 추억을 떠 올리게 하였다.



'송풍루'라 불리는 '동암'에다 다산이 저술을 하기 위해 읽은 책 2000여권을 보관했다 한다. 그의 유배 생활 대부분을 여기에서 보내며 그의 저술인 목민심서도 여기서 집필을 하였다 한다. 1976년 서암과 함께 복원을 하였고 현판의 글씨인 보정산방과 다산동암은 추사의 친필과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다산초당은 해남 윤씨에서 거처를 제공한 장소로 해남윤씨 윤단의 산속 정자로 정약용과 교분을 나누면서 그의 거처로 제공을 하였다 한다.이곳에서 다산은 제자를 가르고고 목민심서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1957년 다산유적 보존회가 복원을 하면서 초가를 걷어 내고 기와를 얹었는데 다시 초가를 얹어 본래의 모습되로 복원을 한다하니 하루 빨리 원래의 모습이 되었어면 한다. 

다산초당 오른편에 작은 연못이 있다. 연지석가산으로 연못안에 돌로 쌓은 작은 산이다. 연못은 다산이 오기 전 부터 있었다하며 다산이 바닷가의 돌을 줏어와 연못에다 돌을 쌓아 작은 산을 만들고 잉어를 키웠다 한다. 이 잉어로 하늘의 날씨를 알아 내었고 유배가 풀려 난 후에도 제자들에게 잉어의 안부를 물었을 정도로 귀히 여겼다한다 . 



다조로 다산이 이곳에 거처를 정하기 전 부터 있었던 돌로 약천의 물을 떠와 솔방울로 불을 피워 차를 끓였던 부뚜막으로 사용을 하였다 한다. 다산초당의 3경


약천으로 다산이 초당뒤 촉촉이 습기가 베인 곳을 직접 파 만들었다는 샘으로 이물을 끓여 차를 마섰다 한다. 다산은 약천의 물이' 담을 삭이고  묵은 병을 낫게 한다'고 하였다,다산초당의  제2경


유배가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기전에 다산이 직접 새겼다는 '정석' 글자로 자신의 성인 丁자만 따서 새겨 놓았다.





그길을 따라 내려오면 죄우로 대나무를 잘라 펜스를 설치하여 운치를 다하고 먼저 만나는 서암은 지금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지붕이 곧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어 안타깝다. 서암은 윤종기등 18명의 제자가 머물며 차와 벗하며 학문을 연구하는 뜻으로 '다성각'이라 불렸다 한다 1808년에 지어진후 잡초에 묻혀 폐허가 된 이곳을 강진군에서 1975년 다시 복원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산초당을 내려 오는 길은 수림의 길을 찾아 내려 오는 길이다. 바람소리도 정겹게 들리는 오솔길을 따라 올라서면 먼저 산길에 뱀이 서로 몸을 꼬아 지옥의 형벌을 받는 느낌인 뿌리의 길과 만난다. 주변의 수백년된 소나무의 뿌리가 땅 위에 엉키고 설키고 하는 모습 또한 볼거리이다. 시인 정호승은 이곳 소나무의 뿌리를 보고 시를 남겼다. '어린 아들과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나도 눈물을 닦고 지상의 뿌리가 되어 눕는다'






교통편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이용, 순천IC에서 내린 후 시내를 통과해 순천만 방향으로 가다가 2번 국도를 만나면 보성 벌교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10분 후 삼거리에서 다시 보성 벌교 방향으로 좌회전, 계속 2번 국도를 타고 강진읍까지 간다. 강진읍 평동교차로 램프에서 다산초당 안내판을 보면서 우측으로 내려선 후 해남 진도 방향으로 좌회전, 18번 국도를 탄다. 1.6㎞쯤 가서 만나는 호산교차로에서 다산초당 백련사 방향으로 좌회전, 1㎞가량 가다가 기룡교를 지나고 강진만의 철새 전망대 그리고 백련사 입구,  다산초당 입구인 덕남면 만덕리 귤동마을이다. 강진콜택시(061-434-6161)


먹을만한집

강진에는 한정식이 유명하지만 그래도 한정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숯불로 돼지고기를 구워 나오는 집이 있다. 모든 그릇은 강진이 도예의 고장 답게 청자인 도자기에 음식물이 담겨져 나온다. 강진읍 영파리 소재 청자골식당(061-433-7404)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감칠맛 나는 숯불 돼지고기 정식을 먹을 수 있다. 남도 특산 홍어와 싱싱한 상추가 곁들여져 봄철 입맛을 북돋운다. 2인분2만원,3인분2만천원, 4인분2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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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가든'(055-962-6996). 찹쌀 조 수수 흑미 등 오곡밥에 더덕 등 20여 가지의 반찬, 그리고 된장찌개 꼬리곰탕 등이 한 상 가득 나온다(사진). 사태수육은 특히 별미다. 한약재와 된장 등을 첨가해 독특한 맛을 낸다. 8000원. 상림 주차장 인근에 위치해 있다. 함양IC에서 7분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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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우치 선착장


 




 돈지마을







 산행 내내 접하는 환상적인 암릉과 빼어난 조망은 단 한순간도 오감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만큼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달바위 가는 길에 만난 칼날 능선. 이런 암릉은 산행 내내 잊으려 하면 나타난다.




성자암갈림길




 달바위(불모산)에서 내려서면 이어지는 암릉길에서 본 주변 경관이 황홀하다. 사진상으로 우측의 잘린 산줄기가 산행팀이 오를 암릉이며, 중앙의 해변이 사량도 윗섬에서 유일한 대항해수욕장이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고동산이며 그 산 아래 마을이 들머리인 금평리 진촌마을이다. 진촌마을 건너 보이는 산줄기는 아랫섬 최고봉인 칠현산의 능선이다.




  달바위고개(매점)








 동그란 암봉인 아주 인상적인 연지봉.








옥녀봉



금평항



하산지점 kt



도다리회



도다리쑥국



최영장군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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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광 본 적 있나요




영동 천태산.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애틋한 전설이 서린 영국사와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가 우선 떠오르겠지만 75m 높이의 암벽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만큼 짜릿한 스릴을 선사한다.

날카로운 바위능선과 변화무쌍한 암릉이 마치 닭 벼슬을 한 용을 닮아 명명된 공주 계룡산.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유이다. 특히 설악의 공룡능선을 방불케하는 1.6㎞의 자연성릉은 가장 환상적인 코스로 알려져 있다.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을 가로지르는 백화산 한성봉. 부산에서는 덜 알려진 이곳은 물고기 등지느러미같이 길게 뻗은 암릉길이 좌우 모두 낭떠러지여서 기어가야 할 정도로 오금을 저리게 한다.

   
 

청송 주왕산. 들머리 대전사 뒤로 펼쳐진 당나라 주왕의 전설이 깃든 기암은 우리나라 자연미를 가장 잘 간직한 바위산으로 평가된다.

'땅끝' 해남의 자랑 두륜산. 아름다운 대흥사를 품어 '명산에 명찰'이란 말이 안성맞춤이지만 무엇보다 암릉길에 펼쳐지는 다도해 국립공원의 황홀한 풍광은 한 장면도 놓치기 아까운 한 폭의 그림 같다.

통영 미륵산. 해발 458m에 불과한 미륵산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과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을 만큼 조망이 탁월하다.

뜬금없이 전국의 명산을 떠올린 까닭은 바로 통영 사량도 지리산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알다시피 사량도 지리산은 우리나라 산꾼의 대표적인 필수 산행지 중 하나. 그 어떤 온라인 포털이나 산 관련 사이트에 접속해도 쉬이 정보를 구할 수 있어, 고백건데 산행팀은 이 지리산을 소개하기가 사실 부담스럽다.

한마디로 지리산은 앞서 언급한 산들의 장점을 모두 갖춘 명산 중 명산이다. 내로라하는 이들 명산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를 사량도 지리산에서 죄다 경험해볼 수 있다. 마치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산행은 사량도 윗섬 돈지리 돈지마을~지리산(398m)~달바위(불모산·400m)~가마봉(303m)~연지봉(295m)~옥녀봉(261m)~금평리 진촌마을 순. 걷는 시간만 3시간50분. 물론 평일 기준이다. 주말이면 수많은 인파로 인해 훨씬 더 걸릴 수 있으니 유의하시길.

들머리는 섬 서쪽 끝단인 돈지마을. 배에서 내리면 항상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18분이면 닿는다. 정류장 인근 공중화장실 옆 '지리산 등산안내도' 뒤로 열린 섬 순환도로를 따라 간다. 우측 저 멀리 보이는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근육질의 암봉 중 최고봉이 지리산이다. 첫 인상은 영락없는 주왕산.

10분 뒤 좌측으로 동백섬인 수우도와 해안절경이 시원하게 펼쳐질 즈음 길 우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들머리다. 오름길이지만 진한 솔향에 곳곳에 연분홍 진달래가 만개해 있어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25분이면 첫 이정표(지리산 1.2㎞)가 서 있는 암릉에 도달한다. 들머리 돈지마을과 한적한 포구가 그림처럼 내려다 보인다. 이제 암릉길을 따라 지리산으로 향한다. 성벽을 걷는 기분이다. 한 굽이를 오르면 눈앞에 거대한 암봉들이 겹치면서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흰 포말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어선이라도 보이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지리산으로 다가갈수록 안전을 위해 잇단 우회길이 열려 있다. 아슬아슬한 암릉길이 부담스러우면 이 길을 이용하자. 정상 직전 만나는 좌우가 벼랑인 물고기 등지느러미를 빼닮은 칼날 능선은 포성봉에서 한성봉(백화산) 정상 직전의 암릉을 연상시킨다.

지리산 상봉은 첫 이정표에서 50분. 바다 건너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잘 보인다 하여 '지리망산(智異望山)'으로 불렸다지만 잔뜩 흐린 이날은 바로 이웃한 남해 고성 삼천포의 산들도 보이지 않는다. 발아래 한적한 내지포구가 보일 뿐이다.

불모산으로 가는 길은 잡목숲과 암릉 그리고 우회로가 번갈아 등장한다. 옹강산 말등바위를 빼닮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암릉도, 농짝만한 바위 옆 좁다란 틈새를 지나기도 하지만 주등로는 역시 거친 암릉길이다. 이 즈음에선 친구 삼아 함께 걷던 들머리 돈지마을이 사라지고 윗섬과 아랫섬 사이의 바닷길이 열린다. 작은 해협인 이곳의 이름은 뜻밖에도 동강(棟江)이란다.

   
 
불모산이라고도 불리는 지리산 최고봉인 달바위는 반드시 암벽을 올라야 된다. 우회로를 타면 올라보지도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 때문이다. 지리산에서 1시간. '불모(不毛)'라는 이 말은 고려 때부터 이곳에 나무가 없어 명명됐다 전해온다.

지금까진 사실 가벼운 몸풀기.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이후 만나는 가마봉~연지봉~옥녀봉 구간. 시종일관 밧줄에 몸을 맡겨 오르내리거나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을 내려서야 하는 스릴 넘치는 구간이다. 열에 아홉은 연신 카메라 셔트를 눌러대기도 하고 한동안 풍광에 매료돼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이 구간 또한 우회길이 열려 있다.

달바위에서 내려와 달바위매점과 울퉁불퉁한 암릉길을 지나다보면 일순간 호흡이 멈춘다. 밧줄이 매달려 있는 커다란 암봉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가마봉이다. 이후 이보다 더한 암봉을 잇따라 만나지만 처음이라 놀라는 것이다. 막상 올라보면 밧줄이 필요없을 정도로 홀드와 스탠스가 좋아 쉬이 오를 수 있지만 문제는 내려갈 때. 거의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이 아찔해 상당히 위험하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오래 전엔 철계단은 상상할 수 없었고 밧줄마저 없어 상당히 힘든 산행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후부턴 암봉의 연속. 무명 암봉을 살짝 넘으면 둥그스럼한 암봉 앞에 선다. 역시 밧줄에 의지해 올라선다. 연지봉이다. 가마봉에서 17분. 낮은 돌탑이 있다. 금정산 정도로 생각하고 무작정 따라나선 초보라면 정말 큰코 다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낡은 나무사다리와 밧줄이 걸려 있는 연지봉 하산길이 어쩌면 이번 산행에서 가장 위험할 듯싶다. 사다리의 3분의 2 지점에서 덧댄 나무 간격이 길어 발이 닿지 않아 한순간 머리카락이 주뼛 서기도 한다. 내려와선 정면의 암봉을 좌로 우회한다. 이 길 역시 벼랑이어서 스테인리스 난간이 설치돼 있지만 방심해선 안될 정도로 만만치 않다.

  

천륜을 지키기 위해 절벽에 몸을 던진 옥녀의 안타까운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옥녀봉에는 커다란 돌무더기가 서 있다. 연지봉에서 13분. 정면 높은 봉은 고동산. 옛날엔 숲이 울창했지만 오래 전 산불이 나서 주변 수목들이 타버렸다고 한다. 사량터미널이 위치한 금평항과 동강 그리고 건너편 아랫섬 칠현산(근교산 444회 참조)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벼랑끝이 옥녀가 몸을 던져 죽었다는 지점이다.

이제 산행은 막바지. 하산 역시 예의 밧줄에 이어 철계단에 의지해 내려선다. 앞서 내려온 구간에 비하면 '누워서 떡먹기'다. 5분 뒤 만나는 갈림길에선 대항해수욕장 방향 대신 사량도면사무소 쪽으로 내려선다. 산을 벗어나 도로와 만나는 지점인 KT사량분기국까지는 19분 걸리며, 여기서 선착장까지는 8분 소요된다.


◆ 떠나기 전에

- 산행 후 섬에서 맛보는 봄도다리회·도다리쑥국 일품

사량도 지리산은 전형적인 봄산이다. 3월말부터 시작해 4월 한달 피크를 이룬 후 5월초까지 산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는다.

사량면사무소에 따르면 매년 4월 지리산을 찾는 산꾼들이 하루에 주말 5000명, 주중 500여 명을 웃돈다. 지난해말 기준 사량도 윗섬 인구가 1179명임을 감안할 때 엄청난 숫자이다. 주말이면 4시간 남짓 걸리는 산행 시간이 정체로 인해 상당히 지연되기 일쑤이므로 유의하시길.

  

달바위라는 이름은 암봉 중간쯤에 위치한 굴 안에 달덩이 같은 돌이 있어 명명됐다 한다. 실제로 달바위에 오르지 않고 우회로를 타면 볼 수 있다. 가마봉과 연지봉은 산 아래에서 본 모습 그대로 이름 붙여졌다 한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신형제횟집(055-643-3876). 사량면사무소 바로 옆에 있으며, 산을 벗어나 만나는 첫 번째 횟집이다. 도다리회와 도다리쑥국 전문이다. 굳이 이 집을 택한 것은 도다리 김치말이와 도다리쑥국 때문. 맛있게 익은 신김치에 싸먹는 담백한 도다리회의 조합은 먹지 않고선 상상할 수 없는 별미. 해풍을 받아 향긋함이 육지의 그것보다 진한 쑥을 곁들인 도다리쑥국은 봄처녀 같은 여린 맛이 잃었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4인 기준 한 접시 6만 원, 도다리쑥국 1인당 1만 원. 도심과 비교해 가격은 별 차이 없지만 양은 아주 푸짐하다.

특히 이집 김형주 사장은 이곳 토박이이자 산꾼. 사량도 지리산의 밧줄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설치된 것이라고 보면 될 정도로 지리산 전문가이다.


◆ 교통편

- 북통영IC로 내려 도산면 가오치 선착장서 배 타야

  

사량도 배편은 통영 도산면 가오치(사량)선착장(055-647-0147)과 고성 하일면 용암포선착장 두 곳에서 탈 수 있지만 부산에선 가오치가 더 편리하다. 오전 7시, 9시, 11시에 출발하며 사량도에서 나오는 배는 오후 2시, 4시, 6시에 있다. 4300원. 주말과 휴일에는 1시간 간격으로 증편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 통영 거제 방면~북통영IC~마산 고성 14번~도산면~사량(도선장) 도선 좌회전~사량도선장(5.8㎞). 북통영IC에서 15분 소요.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통영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40분부터 10~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50분 소요. 9500원. 터미널 맞은편 이마트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가오치행 버스는 부산교통(055-645-2080) 72, 73번을 타야 된다. 오전 8시55분, 9시45분. 1000원. 가오치에서 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4시25분, 5시, 8시, 8시55분(막차).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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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의 대표적인 폭포인 대혜폭포로 명금폭포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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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가 수도하여 득도하였다는 도선굴:천연동굴로 암벽에 큰 구멍을 대혈이라고 한다. 풍수가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득도후 도선굴로 불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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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본 금오산 도립공원, 시원한 물줄기뒤로 왼쪽 금오산 현월봉이 우측으로는 칼다봉능선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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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들머리의 채미정과 금오산성의 대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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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동학 글씨체와 해운사가 도선굴과 일직선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금강동학:조선 중종대 선산 대망동에서 출생한 명필가 덕상인 고산 황기로가 쓴 초서로 금오산은 깊고 그윽한 절경임을 뜻한다한다.

구미 금오산(976m) 산행


“ 쉬자, 쉬자. 안 되겠다.”

 

“쉬었다 가면 더 못 올라간다.”

중년의 부부가 금오산을 오른다. 가장 힘든 구간이라는 할딱고개. 길 가운데 털석 주저앉은 아주머니는 연방 짜증을 낸다.

“못가겠는데 어이하노. (버럭 신경질을 내며) 저 우에 뭐가 있는데.”

“꼭대기 아이가.”

가파른 경사에다 바위면이 미끄러워 조심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들의 발걸음을 더 더디게 한다. 해발 1천m에 가까운 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참을 티격태격하다 바짓가랑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금오산은 도립공원이다. 국립공원보다 볼거리나 풍광이 한 단계 아래라서 도립공원인가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 단지 산세가 작을 뿐. 도선굴 대혜폭포 약사암 등은 할딱고개를 오른데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산행 전반부는 조금 가파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고 하산길은 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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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굴 오르는 길은 낭떠러지를 따라 나있다. 어른 팔뚝만한 쇠말뚝을 박은 난간을 잡고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찔하다

내리막이다. 가족산행이라면 정상 약사암에서 마애석불쪽으로 돌아 내려오면 무난하다. 산행코스는 주차장~채미정~매표소~금오동학~해운사~도선굴~대혜폭포~할딱고개~샘터~헬기장~금오산(976.6m)~약사암~전망대~법성사~주차장. 4시간 정도 걸린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시작되는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의 시비 앞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오른쪽에는 길재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 채미정이 있다. 채미(採薇)란 다른 왕조를 섬기지 않으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는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따온 말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55호.

메타쉐쿼이아 가로수 길이 이어진다. 5분 뒤에 매표소.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다. 100m 앞에 등산안내도를 보고 돌탑 사이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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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박달나무 산초나무 느릅나무 등이 등산로 주변으로 무성하게 자란다. 나무에 달린 이름표를 하나씩 확인하다 보면 금방 중턱에 닿는다.

 

금오산성 대혜문에서는 계곡을 건너지 말고 오른쪽으로 직진한다. 곧 샘터가 나온다. 지하 160곒 암반층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이윽고 해운사. 뒤로 병풍처럼 절벽이 버티고 있다. 절벽 중턱에 사람들이 서서 소리지르는 곳이 도선굴 입구이다.

조금만 오르면 도선굴과 폭포가 갈라지는 길. 도선굴에 들렀다 폭포로 간다. 도선굴은 신라말 풍수의 대가 도선국사가 득도했다는 곳이다. 낭떠러지 절벽 가운데 기묘하게 파진 구멍이다. 금오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전망대 구실을 한다. 득도는 몰라도 일주일 정도 머물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아찔하다. 굴 입구 왼쪽에는 세류폭포라는 작은 물줄기가 떨어진다.

도선굴에서 내려오면 대혜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높이 27m의 수직 벼랑을 떨어지는 물줄기가 세차다.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릴 정도로 우렁차다는 뜻으로 명금폭포(鳴金暴布)라 불리기도 한다.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라는 간판이 하나 섰다. 1977년 9월 이곳을 찾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깨진 병조각과 휴지 등으로 어지러진 것을 보고 “자, 우리 청소부터 하지”하고 말한 데서 자연보호운동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폭포에서 정상까지는 2.1㎞. 먼저 15분 정도 가파른 고개를 지나야 한다. 할딱고개로 불리는 이 길은 이제까지의 산보하듯 걷던 길과는 사뭇 다르다. 금오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숨이 찬 구간이다. 허리 한 번 펼 시간도 없다. 능선 옆 바위에 오르면 기막힌 전망이 펼쳐진다. 해발 460m 지점.

전망대에서 한숨을 돌리고 다시 출발한다. 조난표지판 8번 지점까지는 거친 오르막이다. 이 지점을 지나면 경사는 다소 완만해진다. 산허리를 밟고 나가다 해발 650m 지점에 정상 1.2㎞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10분 뒤 샘 금오정. 바로 위에 마애석불과 정상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으로 꺾어 보물 제490호 마애석불까지는 10분이면 충분하다. 능선의 돌탑 전망대를 넘으면 바로 나온다. 석불은 바위 모서리에 새긴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산불조심 기간에는 마애불상으로 가는 길이 통제된다.

정상과 마애불상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철탑. 전망대가 있고 5분 뒤에 금오산성에 닿는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계단을 따라 은근한 오르막을 15분 정도 올라야 한다. 널따란 헬기장이 있다.

정상에는 금오산 현월봉 정상석이 놓여있다. 하산은 거대한 바위틈에 지어진 약사암에서 시작한다. 약사암은 가람 자체는 볼품이 없지만 자리잡은 위치가 압권이다. 작은 봉우리에 선 종각은 구름다리로 연결돼 아슬아슬하다.

구름다리 아래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왼쪽에는 화장실이 보인다. 쭉 나가면 마애석불로 이어진다. 오른쪽에 있는 대문으로 들어간다. 좁은 마당에서 구미시내를 보고 내려간다. 눈을 들어 계곡을 훑어 내려가면 끝에 법성사가 보인다.

내리꽂는 듯한 급한 내리막. 15분 뒤 갈림길에서는 왼쪽으로. 지리산 통천문같은 바위 협곡을 지나면 다시 왼쪽 능선을 넘는다. 중간중간에 전망대가 많다.

이후에는 길이 뚜렷하다. 다시 30분 뒤 갈림길에서도 왼쪽이다. 능선을 거의 빠져나오면 무덤이 보이고 양옆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왼쪽. 개울을 건너면 ‘등산로’ 이정표가 있고 도로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금오산 입구 주차장까지는 15분 거리이다.

/ 글=김용호기자

/ 산행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떠나기 전에]

금오산의 금오(金烏)는 태양 또는 광명을 뜻하는 말이다.

금오산 대혜계곡은 구미시민들에게 태양같은 존재다. 식수를 공급하고 기름진 논과 밭, 서풍을 막아 준다. 대혜비폭이라 불리는 명금폭포는 경북 8경에 속하며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고려 때에는 남숭산(南嵩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능선은 현월봉(976m), 약사봉(958m), 서봉(851m)으로 이어진다. 정상에 초생달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현월봉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도선굴, 명금폭포, 채미정, 금오산성, 약사암 등은 수학여행 가는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산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과 함께 떠나보자.

도선국사, 임진왜란,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 등 금오산에 얽힌 역사이야기를 하면서 산행을 꾸며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하산은 약사암을 기점으로 마애석불과 법성사로 두 갈래로 잡았다. 가족과 함께라면 마애석불로의 하산을 권한다.

/사진.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교통편]

부산역에서 경부선 열차를 탄다. 무궁화호 출발시각은 오전  5:10, 5:40, 6:20, 6:35, 6:45, 7:55, 9:10, 10:30, 철도요금은 요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구미역에서 금오산까지는 12번과 12-1번 시내버스가 운행한다. 10분 정도 걸리며 30분 간격이지만 오후 4시 이후에는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거리가 가까우므로 택시를 타도  도착할 수 있다.

구미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는 구미역에서 부산행 열차는 무궁화호 오후 4시56분, 5시30분, 6시41분, 8시30분, 새마을호 오후 4시59분에 있다.

원점회귀 산행이므로 자가운전을 할 수도 있겠지만 거리가 멀어 부담스럽다. 개인적으로 간다면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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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의 범종각이 아슬아슬한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보는 맛이 그만이다. 그리고 약사암 일주문으로 들어서는 길이 다른 사찰에 비해 특이하다.  좌우로 옹립한 바위 절벽을 통과해야만 약사암으로 들어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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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딱고개와 할딱고개 전망대에서 본 명금폭포 상류, 도선굴로 돌아가는 철제 안전 시설물이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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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인 마애보살입상으로 바위모서리에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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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산 정상을 현월봉이라 한다, 정상에 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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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굴 옆의 폭포로 세류폭포라 하며 임진왜란 때에는 난을 피해 올라온 주민들이 칡덩굴을 잡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 먹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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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동편마을은 영남알프스 둘레길 5코스의 경유지이다. 상목골에서 디티재를 거쳐 헤미골로 내려 서면 만나는 마을로 동창천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편마을로 불린다. 이곳을 출발하여 단석산 넘어 건천읍으로 방향을 잡아 걸어 보았다. 동편교회 앞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마을 쉼터인 정자와 마을과 함께해온 당산나무를 만난다. 그 앞 농로길을 따라가면 된다.

 
독립가옥인 민가와 만나는데 이곳에는 사슴을 키우는 작은 농장을 지나간다. 외지인의 출현으로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반가운지 아니면 신기한지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사실 이길은 마을 사람 이외에는 그래 인적이 없는 길이라 외지인의 출현에 당혹해 하는 것 같았다.


이곳은  숲동네의 마을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청소년 수련마을로 조성이 되어 있었다  극기 훈련과 오토캠핑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구비하여 놓은 것 같으며, 이날도 많은 가족들이 텐트를 쳐 놓으며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수련마을 뒷편의 바위벽. 

수련마을에서 본 대현저수지로 동창천을 가두어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수련마을을 나오면 동창천을 건너는 다리와 만나는 데 다리에서 본 동창천의 모습. 그 뒤로 대부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련망르의 다리를 건너면 회골마을로 그 마을에서 수련마을을 보았다. 921번 지방도로를 따라간다.


대현지의 모습으로 농업용수를 위한 것 갔았다.


대현저수지를 지나면 우측으로 오래된 다리를 볼 수 있다. 상목골과 오케이 그린 목장으로 올라가는 곳이다. 이곳이 소태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이다리를 건너면 우측은 오케이 그린목장과 상목골, 좌측은 소태마을이다. 한때 이곳은 "솥"을 만들었던 마을로 "솔태"라고 불리다 "소태"로 불려 지게 되었다 한다. 이 마을이 단석산의 숨은 골짜기 단석골로 불린 계곡입구이다. 마을 뒷편으로는 조래봉이 단석산까지 능선이 이어지지만 그 중간에 잘룩이인 목을 형성하여 숨통을 열어 놓았다. 내일리와 대현리 등 자연 부락민들은 건천읍으로 나갈때에는 자연히 단석골을 넘어 원골로 갔다한다. 동창천의 물굽이가 조래봉에 막혀 좌측으로 틀어 긴 골을 형성하여 산내면 의곡리를 거쳐 청도 운문댐으로 들어가는데 그리하면 건천으로 나가는 길이 많이 돌게 되어 힘은 들지만 지름길인 이길을 따라 오르 내리곤 하였다 한다.



단석골을 찾아 가는 길로 봄이 오고 있어선지 농부가 지게에다 농기구를 올리고 단석골로 들어가고 있다.
마을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이 이길을 쭉 올라가다 좌측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하니 아마 좌측길은 오케이 목장에서 원골로 이어지는 임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래도 계곡으로 길이 나 있는 것 같다 싶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백운암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임도길의 정점에 백운암이란 작은 절집이 있다. 여기 농사일을 하시는 스님에게 제차 여쭈니 자기는 여기 온지 몇일 안되어 모르니 안에가서 물어 보고 오겠다 하며 잠시 기다려 달라신다. 점심도 못 먹은지라 점심을 먹으며 기다렸다.  둘레길 하시는 분이 언양에서 요기를 하라며 싸준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스님에게 돌아온 답은 마을 사람과 같은 대답이 돌아 왔다. 좌측의 돌무더기를 올라서니 희미한 산길이 계곡으로 이어졌다.


그것도 잠시 산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하여도 다 실려 내려가고 길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무공해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 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수량이 많지 않아 이리 저리 건너면서 넘어진 나무 사이를 빠져 나가니 제법 세찬 물소리가 들린다. 협곡의 암반사이로 4m의 작은 폭포가 걸려 있었다. 계곡으로도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며 주위에는 협곡을 형성하여 되돌아 나갈 수 밨에 없었다.


 되돌아 나와 우측폭포 좌측으로 무작정 올라 갔다. 옛날의 임도 길과 조우를 하는데 반갑기는 한데 반갑지가 않은 임도 길이였다. 까지덤불과 잡목으로 인해 임도의 기능을 잃은지는 오래전일이고 이리저리 길을 찾고 뽈뽈기고 하며 겨우 겨우 산길을 뚫고 나가니 오케이 목장에서 나오는 임도길과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원골마을은 좌측으로 조래봉과의 연결되는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된다.


임도에서 본 단석골로 고난의 골짜기 였다. 멀리 조금 보이는 것이 대현저수지, 그 뒤로 대부산과 문복산의 모습이 펼쳐진다,


원골마을의 한자가 새겨진 글씨바위이다.

 
당고개로 경주시 산내면과 건천읍을 잇는 경계 고개이다. 예전에는 산내쪽에 당집이 있었는데 그래서 당고개라 불렸다 한다.
 지금은 그 당집도 사라지고 없지만 터만 남아 있다 하며 새로 만든 표지석에는 땅고개로 나와 하루 빨리 수정을 하여야 겠다. 당고개는 낙동정맥길이며 역사적으로도 이길이 단석산과 영남알프스를 있는 가교 역활을 하는 중요한 고개이다.




단석산 신선사로 올라가는 우중골로 정상이 좌측 뒤로 솟아 있으며 단석산중 가장많은 사람들이 오르 내리는 등산로이다.
단석산과 신선사에는 김유신과 함께 얽혀 있는 전설이 있으며 국보인 마애불상군(199호)이 "ㄷ"자 모양 암벽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우중골마을로 신선사 들머리리며 좌측으로 휘어지는 골짜기가 신선사 입구이며 직진의 잘록이가 당고개인 낙동정맥길이다.


우중골 아래의 절골마을이다. 


송선 저수지로 절골마을에 위치를 하고 있다  꽤 큰 저수지이다.


절골에서 홈골로 들어서면 다시 작은 소류지와 만난다,


홈골소류지로 단석산 정상에서 내려 오는 물을 가두어 놓았다. 아마 단석산에서 내려 오는 골짜기가 홈통 모양으로 길어서 홈골로 불리는지...


홈골 저수지를 좌측으로 돌아 오르면 산죽과 만나는데 아마 단석산에 조릿대와 비슷한 산죽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시대 김유신이 이 산죽을 이용하여 화살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을 해 본다.


홈골 계곡의 풍광으로 꽤 많은 수량의 물이 내려 오고 있었다.



홈골은 초입을 들어서면 "Y"자로 갈라지는데 우측 계곡이 주 게곡으로 단석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단석산으로 오르는 홈골에서 만난 "연리근"으로 두개의 나무가 뿌리가 서로 엉켜 올라가는 모습을 찾았다. 연리지는 많이 보았
지만 연리근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이곳을 오르면 만나는 월성이씨묘지로 장군봉과 단석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만난다.
무작정 길을 떠나 보았습니다.

길옆에는 봄나물이 추어진 날씨 때문인지 몸을 움추리고 산골의 농부들은 아직은

 
빠르지만 농삿일을 생각하며 논밭에 나가서 한해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가 있었습니다.  곧 무척 바쁜 농촌의 일상을 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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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 안국사)
안국사 하면 대학시절 산악부 산행 때가 생각난다. 약25년전쯤 일이지 쉽다. 지금은 안국사가 적상호의 수몰 때문에 현 위치로 올라와 새로 복원을 하였지만 그때는 지금의 적상호 자리에 안국사가 위치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무주 지방에 많은 눈으로 적설량이 엄청나다. 그러니까 적상산 산행을 겨울방학때 올랐는데 지금이야 적상호로 오르는 드라이브 코스를 많이 이용하지만 그때 한겨울에는 신도는 물론 절에 거주하는 스님도 보기 힘든 오지중에 오지의 사찰이였다. 그 추운겨울날에 장도바위를 통해 올랐는데 엄청난 적설량으로 텐트 칠 분위기도 아니고 안국사로 찾아 들어 갔다. 안국사에 들어가니 동자승과 스님한분만 기거를 하고 있었다. 산행을 와서 하루 자고 가서면 하고 자초지종 설명을 하니 허락을 해 주었다. 그때는 극락전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 묵을 방이 있었는데 아무도 기거하는 분이 없어 냉골이라 동자승이 장작을 가지고 와 군불을 때 주며 나가기에 그때까지도 방이 안 뜨겁고 냉방이라 장작을 가지고 와 더 넣고 뜨끈뜨끈하게 하고 잠을 청했다. 아뿔사, 동자승이 넣어주고 간게 시간이 흘러야 구들장이 달아올라 뜨거운데 그 기에다 장작을 더 넣었서니, 밤에 뜨겁다 못해 살이 탈 지경이였다. 아랫목은 비워두고 모두 사각지대인 구들장이 없는 곳으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랫목을 보고 놀래 기절초퐁 할 뻔 하였다. 장판이 타가지고 새까만게 아닌가. 우리는 미안한 마음에 가지고 있던 양식과 부식(그때까지만해는 안국사에는 도로가 없어 몇시간을 걸어 다녔고 길이 험해 스님들도 오길 꺼리는 사찰이라 하였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야 밑의 마을에서도 사람이 올라 온다하니... 그래서 쌀, 부식도 귀한 시절이었다) 을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미안한 마음에 뒤도 안돌아 보고 하산을 했는데...

 


하산하는 오솔길이 지금은 도로로 변해 그때의 운치는 사라지고 북적이는 관광객으로 그때가 그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적상산성내의 유일한 고찰인 안국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月印)대화상에 의해 창건이 되었다. 조선초기에 와서 무학대사가 중창을 하였고 광해군 5년(1613)과 고종 1년(1864)에 중수를 하였다. 광해군 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을 설치하였다. 조선왕조 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적상산 사고에 봉안되었다. 적상산 사고를 방비하기 위해 호국사를 짓고 전부터 있던 안국사와 함께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하여 안국사로 불리워 졌다. 현재의 안국사는 양수발전소 상부댐인 적상호로 인해 수몰이 되어 옛 호국사지 자리로 옮겨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이 되었다. 안국사란 절이름도 여기에 연유하고 있다. 현재 안국사에는 보물제1267호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과 유형문화재 42호인 극락전, 제85호 호국사비, 적상산성(사적제146호)과 적상산사고(기념물제88호)가 있다

안국사 극락전

안국사 극락전(유형문화재 제42호):안국사의 본전으로 서방극락정토와 아미타여래와 관세움보살, 대세지보살을 봉안 하였어며 무량수전이라고도 하였다. 다포계의 건물로 맞배지붕으로 조성한 특이한 형태의 건물로 앞면과 옆면에 각 3칸씩으로 구성되었다. 학이 단청을 하다 날아 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보물제1267호):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불교 행사를 할때 걸어두는 그림으로 법회의 성격, 의식의 종류에 따라 맞는 것을 봉안한다. 이 그림은 영조4년 안국사에서 기우재를 지낼때 조성되었다. 조선영조4년(1728)에 천진스님과 의견스님에 의해 제작되었다. 가로 7.5m 세로10.75m이다. 중앙에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고 좌우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대세제보살과 다보여래, 아미타여래등 여섯분을 협시보살로 모신 석가 칠존도 형식의 영산회상도이다.

 

보살의 둥그런 얼굴과 밝은 표정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며, 석가모니뒤에 광채를 금색으로 채색하고 여백에 구름무늬를 넣은 점이 이채롭다.

안국사에는 성보박물관이 있다.
여러나라에서 수집한 불상이 전시 되어 있어 들러 볼 것을 권한다.

안국사 063-322-6162







극락전 내부의 모습이 화려하다. 학이 단청을 칠하다 날아 갔다는 전설이 있다.





지장전의 모습입니다.

항상 안국사는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사찰이 되었습니다.



안국사 천불전 내부입니다.

승보 박물관안의 불상입니다.

승보 박물관 내부입니다.


범종의 문양


안국사의 일주문으로 많은 차량과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입니다.

안국사 부도탑:안국사 역대 스님들의 사리을 봉안한 부도탑으로 적상산 사고지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청운당 사리탑과 봉골탑은 숙종43년(1717), 월인대사 영골탑은 영조 26년(1750) 보운당 사정탑은 영조 29년(1753)에 각각 세워진 것이며 석종형으로 조선후기의 부도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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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둘레길인 상목골에는 오래된 당산나무가 있다. 해발 4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 하고 있는 상목골은 산내의 고원으로 통한다.

예전 부터 내려 오는 이야기를 보면 이골짜기를 감싸고 있는 산의 모양이 누에의 형상을 하고 있어 이 산을 잠두산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누에에는 뽕잎이 먹이라 이골짜기를 뽕나무 상(桑)자를 붙여 상목(桑木)골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지금도 상목골은 윗상목골과 아래상목골 나누어 부르는데 아래 상목골에는 이마을과 함께한 상목골 당산나무가 있다.수령이 수백년은 넘은 두그루의 당산나무, 왼쪽에 있는 당산나무는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큰 가지가 떨어저 나가 있으며 우측의 당산나무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 상목골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었다.

나무아래 누군가의 정성으로 양초가 불을 밝히고 제단위에는 과일이 놓여져 있다. 우리 민족이 예로 부터 전해 오는 민긴 신앙의 모습이며 가족과 마을의 기원을 비는 소박한 꿈을 보는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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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1봉을 지나면 마운틴 탑과 슬로프를 볼 수 있고 왼쪽으로 두위봉도 모습을 보여준다.>

강원도 정선에는 과연 몇 개의 백운산이 있을까.
동강을 끼고 흘러가는 동강백운산은 많이 알려져 있는 백운산이다.
그에 반해 이번에 소개하는 고한의 백운산은 내 세울 것 없는 초라한 산골의 새 색시 같은 수줍음이 가득한 미완의 여성에 가까운 산인 것 같다.
그만큼 사람의 흔적을 느끼지 못하는 백운산, 그 능선을 올라보자.
하이원에서 백운산 능선에 하늘길이란 산길을 뚫었다.
월악산의 부봉 옆 탄항산과 포함산 사이에 있는 고갯길로 문경의 새재길 보다도 먼저 개척되어 우리나라 고개 1호인 하늘재에서 그 이름을 따 왔다 한다.
과연 하늘길은 어떤 길일까. 그 궁금증을 안고 멀고먼 정선의 고한으로 가보자.
고한역 앞에는 해발 700m임을 알리는 이정석이 서 있고 바람꽃의 수줍은 안내판에 수준점도 알리고 있다.

 



등산로 입구는 막골로 고한역에서 정면의 산 능선으로 올라가야하지만 고한역사와 절벽이 막고 있어 돌아가야 한다.
다시 정선방향으로 되돌아 가면 훼미리 마트와 국일 반점이 나오고 그 맞은편인 강원랜드 기숙사 “함백관” 안내판에서 좌회전을 하면 굴다리를 지난다. 다시 좌회전을 하면 백운산 등산로 이정표가 서 있는 막골에 갈 수 있다.
산행경로는 막골 백운산 등산로 표지석~약수암~1084m(율사봉)~망정봉(전망대)~콘돌라 철탑~하이원 호텔 갈림길~백운산 마천봉~1381m 안내판~마운틴 탑~정자 쉼터 사거리갈림길~도룡뇽 연못~소택지~화절령 삼거리~폭포주차장 순으로 순수 산행시간은 3시간30분~4시간 소요.
화전민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막골은  여기에 움막을 짓고 살았서 그래 부른 단다. 들머리인 입구에는 백운산 안내판과 등산로 이정석의 사잇길을 따라 오르면 시멘트 포장길을 벗어나 약수암의 작은 절과 만난다. 산길은 약수암을 좌측으로 돌아 올라간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낙엽송은 잎을 떨구고 발아래 떨어진 솔가리가 붉은 양탄자를 밟고 올라가는 개선장군의 레드 카펫이라면 너무 심한 착각일까?.
처음 오르는 산길은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쌍무덤에서 우측으로 틀어 능선으로 산길이 올라간다.

<콘돌라가 지나가는 능선상에서 본  하이원 골프장과 1100m의 높이에 있는 호텔>

<마운틴 탑과 슬로프에 어린이가 스키를 타며 내려오고 있다>

능선에서 한 숨을 돌리며 좌측으로 오르지만 곧 좌측으로 에돌아 가게 산길이 나 있다. 다시 능선길을 올라서면 삼거리봉 갈림길로서 우측 스키하우스 방향으로 하산을 할 수 있다. 산길은 좌측으로 이제 능선만 따라가면 된다.
하늘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1000m 대인 여기서 해발 400m을 더 올라가는 완만한  능선을 타면 백운산 최고봉인 마천대에 올라 설수 있기 때문이다. 1084m의 율사봉을 지나지만 사실상 봉우리에 오른 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구릉 같은 능선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막골의 안내도에서는 0.8km을 표시하고 있서며 정상까지는 3.7km 능선길만 따라가면 된다. 1000m가 넘는 하늘길은 이때까지 감추었던 하얀 눈을 조금씩 보여주고 바람도 제법 차가워 손이 곱아 오는 것 같다.
산죽과 강원도 특유의 수림들 사이로 보이는 백두대간 능선이 힌눈을 이고 그 정점에 함백산임을 알리는 레이더 기지가 멀리서도 보인다.
그 앞으로 보이는 고개가 만항재로 화방재와 연결되어 태백산 도립공원으로 갈 수 있고 만항재는 일반 대중교통 버스가 넘어 다니는 가장 높은 고개(1330m)라 하여 화재꺼리가 되었던 곳이다.
별 다른 특징도 없는 산길은 그저 조금씩 올라 갈 뿐이다. 산죽의 초록색은 흰색에 완전이 점령을 당하고 산길은 벤치가 있는 전망대을 보여 준다. 아마 여기쯤이 안내판의 망정봉으로 추정이 된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여기까지 30분.
발아래 하이원 골프장과 1100m에 있는 호텔이 흡사 그리스의 옛 궁전같이 우아하게 보이고 폐장한 골프장은 쓸쓸하기만 하다.하늘에 떠 있는 빈 콘돌라만 연신 바쁘게 왔다 갔다 한다. 우측으로 하이원 스키장의 슬로프가 모습을 보이고 산길은 우측으로 틀어 내려간다.
좌우로 철쭉나무가 많이 있어 봄철에도 찾으면 꽤 괜찮은 코스가 될 것 같으며 다시 앞에서 본 전망대로 똑 같은 모습이지만 태백산의 하늘금이 모습을 드러낸다.
30분이면 케이블카의 기계음이 더욱 크게 들릴때 우리는 콘돌라 아래에 도착을 하였다. 하이원 호텔이 바로 정면에 보이고 발아래 98m인 동양에서 두 번째 높다하는 콘돌라를 지지하는 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측의 콘돌라를 따라가면 밸리 탑을 지나 마운틴 탑으로 갈 수 있다한다. 등산로 안내판을 보고 마천봉은 직진한다.
구상나무와 산죽에 흰눈을 이고 있고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되면 설상산행으로 하늘길이 괜찮을 것 같다. 7분이면 넓은 공터로 헬기장이 나타나며 이정표와 만난다..
좌측은 하이원 호텔로 내려 가는길. 이정표에는 2.3km로 봄에는 얼레지가 만발해서 얼레지 꽃길로 부르며. 정상을 향하는 우측길은 바람꽃이 반겨주는 바람꽃길로 지금 추운 겨울철에는 그 이름만 생각해도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백운산 마천대 정상에 올라선 취재팀>
밸리탑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무시하고 직진을 하면 삼각형 모양의 백운산마천대(1426m) 표지석과 만난다. 그뒤로 전망덱을 설치하여 두위봉과 가을 억새로 유명한 민둥산을 안내판과 맞추어 보며 찾을 수 있다. 이제는 마운틴 탑 방향으로 직진을 하면 된다.
봄에는 산철쭉이 만발하는 산철쭉길, 그러나 지금은 서쪽 산사면으로 더욱 많은 눈송이를 이고 있다. 400m의 능선을 내려서면 운탄도로 갈림길로 마운틴 탑(1.4km)은 우측길이다. 겨울철에는 마운틴 탑으로 이어지는 산철쭉 능선은 전체적으로 많은 눈을 이고 있을 것 같다. 한 겨울 철에는 엄청난 폭설에 주의를 하여야 하고 정비가 덜 된 산길이라 산길 찾기에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
1381m을 알리는 안내판을 지나면 마운틴 탑이 보이고 정상에서 35분이면 슬로프에 내려선다. 슬로프를 따라 올라서면 마운틴 탑에 오를 수 있다. 3층의 마운틴 탑 안에는 45분 만에 한바퀴를 도는 회전식 레스토랑인 “탑 오버 더 탑”에서.몸을 녹인후 다시 출발. 마운틴 탑 좌측의 곤돌라 탑승장 뒤편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열려 있다.
이정표에는 화절령 삼거리 까지 2.4km라 되어 있다. 하산길은 아예 산죽밭이다. 이름하여 산죽길. 비좁은 소로 길로 지금은 산길의 모습을 찾을 수 가 있지만 눈이 많을 시에는 여기도 하산시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 잘못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빠질 수가 많은 구간이다. 14분이면 예전에 채탄을 나르던 운탄도로와 만난다. 좌측은 골프장이 있는 하이원 호텔방향으로 “하늘길 트레킹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며. 강원랜드 방향은 우측방향, 전방에 정자 쉼터가 있는 사거리 길이 보인다. 광부들이 배고픔을 달랠여고 진달래를 따다 허기를 채웠다 하는 화절령, 예쁜 이름뒤에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고개로 진달래꽃 시비가 있다.
하산길은 우측 화절령 삼거리 와 도롱뇽 연못 방향으로 내려간다. 30m 앞에 도롱뇽 연못이 있다. 흰눈을 이고 있는 연못 안내판에 유래를 읽어 보면 탄광촌의 애완을 느낄 수 있다. 채굴로 인한 지반침하로 생긴 연못에 살고 있는 도롱뇽에게 남편의 무사귀환을 비는데서 유래가 되었다 한다.
본격적인 운탄길을 따라 내려간다.
갱도에서 흘러나온 물은 중금속에 오염이 되어  물을 가두어 자연 정화시키는곳인 소택지를 지나면 화절령 삼거리 여기서 폭포주차장 까지 2.4km를 더 걸어 내려가야 한다.
운탄길을 보니 비닐 썰매가 생각난다.
같이 간 동료에게 말을 건네본다.
다음에 오면 비료 포데기를 준비해 오면 딱이다고...
우리에겐 스키장이 따로 없다고,
그리고 계곡에 흐르는 물은 주로 부근의 소택지에서 나오는 물이 많아 식수로 부적합하니 미리 먹을 식수는 준비를 하는게 좋을 것 같다. 


산행후 추위를 녹일 수 있는 맛집 한 곳 소개를 한다. 고한역을 지나 하이원 골프장 입구에 있는 황태명가9033-591-5288)로 황태 전문점이다. 용평의 황태덕장에서 직송하여 사용을 하여 믿을 만하다. 황태구이1만원. 황태찜 2만5천원~3만5천원, 그리고  시원한 속풀이용인 황태해장국 6천원

황태구이

황태찜

교통편은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제천IC~영월 제천~영월 단양(하이원) 38번~영월 38번~영월 쌍용~느릅재터널~강원도 영월군~영월 38번~영월 단양~평창 영월 38번~태백 영월 38번~태백 석항~태백~태백 석항~정선군 신동읍~태백 사북 38번~태백 고한 하이원리조트(스키장)~태백 고한 정암사 38번(사북 하이원 방향으로 가면 안됨)~고한 하이원리조트~고한역 못가 첫번째 패밀리마트 보이면 '함백관' 이정표 따라 우회전~굴다리 통과하자마자 좌회전~막골, 백운산 등산로 이정석.

고한역사로 해발 705m의 높이에 있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하늘열차길이다. 

고한역앞의 수준점과 표고점을 나타내는 안내판과 안내석

막골의 백운산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



고한역과 고한읍내 모습으로 아직은 무채색을 띠고 있다.

백운산 등산로 입구의 모습

초입의 약수암으로 산길은 좌측으로 나 있다.



레드카펫을 깔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백운산의 낙엽송길

능선에 올라서면 산행 내내 키 작은 산죽을 지나간다.



안내도상의 망정봉으로 추정된다. 여기서는 우측 등산로 안내판을 따라간다.


해발1100m에 있는 하이원호텔의 모습입니다. 골프장은 휴장입니다.

밸리탑을 거처 마운틴 탑으로 이어지는 콘돌라의 모습이 장관이다.

동양에서 두번째로 높다는 높이 98m의 철탑과 그 뒤로 하이원 골프장

 

 


 


얼레지꽃길과 바람꽃길이 서로 만나는 삼거리길로 좌측은 하이원 호텔 방향, 정상은 우측 바람꽃길을 따라간다. 밸리탑 갈림길에서 무지하고 직진하면 4분뒤 마천봉 정상석과 만난다.

백운산 마천봉 정상. 취재팀 뒤로 안내판과 두위봉의 능선이 보인다.

마운틴 탑 이정표를 따라가면 운탄대로 갈림길, 산철쭉길로 명명되어 있다. 지금은 하얀 눈이 철쭉 대신 반긴다.


지금은 적설량이 적어 산행을 하는데 별 무리가 없지만 적설량이 많을시에는 산길찾는데 주의를 하여야 할 것 같다.

슬로프에 내려서서 왼쪽으로 따라 올라가면 마운틴 탑. 여기서 잠시 몸을 녹이자.

마운틴 탑 내부 모습입으로 3층인 회전식 레스토랑입니다. 45분만에 앉아 있는 식탁이 한바퀴를 돈다고 합니다.

마운틴 탑 좌측에 콘돌라 탑승장 그 뒤로 화절령으로 내려가는 산길이 열려 있습니다.

산죽이 많아 산죽길불리는 하산길입니다. 여기서도 눈이 많을 때 산길 찾기에 주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려서는 운탄길로 채광시절 석탄을 나르던 길이라 합니다.
화절령 고개에선 이정표입니다. 봄이면 진달래를 따 먹어 허기를 달랬다는  화절령.

도롱뇽 연못으로  갱도에 들어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 올 수 있도록  도룡뇽에게 빌었다는 가슴 아픈 연못 입니다.

소택지라합니다. 폐광에서 중금속이 오염된 물을 가두어 자연정화를 시켜 내 보내는 곳으로 계곡수는 함부로 식수로 사용을 할 수 없습니다.


화절령 삼거리 입니다. 사태의 흔적도 보입니다. 왼쪽으로는 꽃꺽기재로 오르는 임도길로 영월 상동 방향입니다. 강원랜드가 있는 폭포 주차장 까지는 여기서 2.4km를 더 가야 하며 어둠이 내려 앉은 강원랜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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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715> 제5코스 : 경주 내남 괘전~산내 심천
고운 흙 깔린 산허리 길 오르니 낙동정맥 마루금도 어느새 '훌쩍'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걸을 때 낙동정맥을 넘지 않을 방법은 없다. 백두대간이 강원도 태백 매봉산에서 분기 해 동남쪽으로 커다란 산줄기 하나를 토해내는데 이것이 바로 부산 몰운대에서 바다와 만나는 낙동정맥이다. 414㎞에 달하는 이 커다란 산줄기는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의 동쪽에서 강과 나란히 내달리며 서서히 높이를 낮추다가 영남알프스에 이르러 다시 불룩 솟아오른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전체 구간 중 낙동정맥을 관통하는 곳은 2곳이다. 그 중 하나는 지난 1월 초 경남 양산 통도사 일주문에서 출발한 제1코스 답사 당시 이미 개척단이 통과한 바 있다. 통도환타지아에서 울산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로 향하던 길에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곳은 평지인 까닭에 마루금을 넘는 맛은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낙동정맥을 통과하는 제5코스에서는 제대로 된 마루금을 넘게 된다.

■ 경주 내남~박달 십리 임도 조망 운치 만점

 
  개척단원들이 낙동정맥 마루금인 상목골재 인근 전망대에서 단석산 선도산 복안산 등 주변 조망을 살피고 있다.
울산을 벗어나 어느새 경북권으로 접어든 둘레길 개척단. 이번 제5코스는 낙동정맥을 넘는 길인 탓인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산골마을을 잇는 해묵은 옛길을 따라 고갯마루를 세 개나 넘어야 한다. 경주에서 가장 깊은 산골이라고 하는 산내면이 코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둘레길 치고는 비교적 험로에 속한다. 그러나 그만큼 원시림이 살아 있는 청정 흙길이다. 둘레길 코스 중 가장 북쪽 구간에 해당하는 길이기도 하다.

출발지는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마을의 '산내 내일~내남 박달 임도' 입구다. 종착지는 옹강산 동북쪽의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 노거수 앞. 총 17.5㎞로 당일 걷기 코스로는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내남면 박달리 괘전마을 숫당산나무(소나무) 인근 임도 입구의 '산내고원 한방휴양마을' 표지판에서 시작되는 임도는 낙동정맥 마루금인 상목골재까지 연결된 총 4.02㎞의 흙길이다. 지난 2002년 경북산림한경연구원이 개설했다. 산허리를 돌며 이어지는 길은 빼어난 조망을 즐기면서 소나무 참나무 사이로 걷는 운치 만점의 길이다. 딱 기분 좋을 만큼의 땀도 흘릴 수 있다.

 
 
10분 뒤 목림농원 앞을 지나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동행자와 도란도란 얘기하며 걸으니 힘든 줄도 모른다. 30분 후 길이 살짝 휘어지는 곳에 높이 13m 가량의 무명폭포가 있다. 갈수기엔 그냥 바위절벽이지만 비가 많이 오면 자연폭포로 변한다. 괘전마을의 상수원이기도 하다.

다시 10분쯤 오르면 오른쪽이 확 트이는 전망대. 박달리와 박달저수지 일대가 내려다보이고 북쪽 멀리 단석산에서 부터 시계방향으로 입암산 벽도산 선도산 복안산 아미산 천마산 백운산 삼강봉이 연이어 파노라마를 펼친다.

전망대에서 비포장 임도가 끝나는 상목골재까지는 5분이면 족하다. 공식 지형도상의 상목골재는 이곳에서 북쪽으로 7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장승 무더기와 전원주택이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창우 개척단장은 "상목골 주민들은 이곳도 상목골재라고 부른다. 낙동정맥 종주 산꾼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결국 이 일대 전체를 상목골재로 보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개념도 참조). 좌우로 수십 개의 산악회 리본이 보인다. 낙동정맥 종주 산꾼들의 흔적이다. 쉴만한 공터도 있다.

■ 상목골재 디티재 아부터재 넘는 17.5㎞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낙동정맥 마루금으로 오르고 있다. 고운 흙과 자갈이 깔린 정감있는 임도 십리 길이다.
해발 470m인 상목골재를 넘어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산내면으로 접어든다. 갓 태어난 길가의 버들강아지가 '수줍은 봄 인사'를 하며 미소 짓는다. 조금 가니 왼쪽에 산내고원 참숯가마. 소위 '찜질방'이다. 10분쯤 더 내려가면 삼거리. 오른쪽은 지형도상의 상목골재 주변 전원주택단지로 가는 길. 왼쪽으로 꺾는다. 3분 후 윗상목골 입구 삼거리에서는 우측으로 틀어 내려간다. 표고버섯밭과 빨간우체통이 앙증맞은 시골집을 통과하면 갈대 울창한 개울 건너 왼쪽에 거대한 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상목골 당산나무다. 수백년은 됐을법한 당산나무 아래 누군가 밝혀 놓은 촛불이 마을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둘레길 개척단원들도 저마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돈다"며 감탄한다. 하지만 나무의 내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안내가 없어 아쉽다.

상목골이라는 이름은 뒷산이 누에를 닮았다며 '잠두산'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누에는 뽕나무가 제격이라는 의미에서 '상목(桑木)골'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 옛사람 넘나들던 묵은 옛길 걷는 맛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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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빨간우체통 집을 지나 표고버섯밭 앞까지 돌아가는데는 5분쯤 걸린다. 버섯밭 우측으로 난간 없는 작은 다리를 건너 상목골 골짜기로 접어든다. 신작로가 놓이기 전 내일리 상목골 사람들이 대현리로 가기 위해 즐겨 걸었던 옛길이다. 200m 후 작은 갈림길. 오른쪽 컨테이너 가건물을 지나자마자 왼쪽 작은 골짜기로 통하는 희미한 길을 찾아 들어간다. 리본을 참고하면 큰 어려움은 없다. 잡목의 잔가지들이 걸리적 거리지만 이것이 묵은 옛길을 걷는 재미가 아닐까. 5분 후 작은 능선을 넘고 산허리길을 따라 10분쯤 더 가면 습지 지나 디티재(해발 467m)에 닿는다. 낙엽이 무릎을 덮는다. 디티재를 넘어 화전민 집터를 지나면 계곡을 따라 내려서게 된다. 작은 폭포가 있는 이 계곡은 '해매기골'이라고 불리는데 10분 정도 제법 험한 길이 이어진다. 계곡 끝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산내면 대현리 동편마을 삼거리. 동창천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편마을이라 한다. 하천 건너 마을 이름은 당연히 '서편'이다.

대현교회 방향으로 왼쪽 골목길을 통과한 후 동창천으로 간다. 난간 낮은 다리에서 보면 오른쪽(북쪽)에 단석산과 조래봉이, 왼쪽(남쪽)에는 대부산이 솟아 있다. 동창천 물은 밀양강 낙동강과 잇따라 한몸이 된 후 부산 가덕도 앞바다에서 태평양과 조우한다. 다리를 건너면 921번 지방도로. 오른쪽은 산내면 소재지를 거쳐 경주 또는 청도로, 왼쪽은 산내불고기단지 지나 석남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왼쪽으로 간다. 파란하늘 푸른산 아래 산골마을의 까치집이 정겹다. 서편마을 대현정미소 앞 삼거리에서 직진한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울산 최고 오지인 소호마을로 갈 수 있다. 7분가량 직진, '안다미로'라는 작은 음식점을 지나면 오른쪽 계곡으로 연결되는 갈림길을 만난다. 우측 계곡으로 들어선다. 호랑이가 살았다고 해서 범골 또는 호곡으로 불리는 계곡이다. 3분쯤 가면 우측에 폐광산이 있다. 깊이 13m쯤 되는 광산굴이다.

■ 종착지 산내 일부리 '곤달비' 재배지 명성

 
  갓 피어난 버들강아지가 둘레길에 봄 기운을 전해준다.
다시 계곡을 오른다. 왼쪽 계곡 건너 산의 늠름한 바위는 '범바위'라고 불린다. 수십년 전까지 바위 아래 '범굴'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계곡의 채 다 녹지 않은 얼음 아래로 물이 흐른다. 졸졸졸. 봄이 '오시는' 소리다. 30분쯤 계곡을 따라 오르면 아부터재. 오늘 코스의 마지막 고비인 아부터재를 넘으니 제법 경사가 가파른 지형이다. 하지만 옛 사람들의 길이 대개 그렇듯, 길은 S자형으로 편하게 이어진다. 다만 낙엽이 많은 내리막이기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10분 후 전나무로 둘러싸인 묘비 없는 쌍무덤에서는 오른쪽 1시 방향으로 길이 열린다. 계곡을 따르는 길이다. 15분 가량 솔향기 맡으며 걸으면 어느덧 재궁마을에 닿는다. 마을에 큰 재실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전형적인 산골마을까지 경주 노선버스가 하루 세 차례 들어온다.

버스정류소 직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다가 도로가 합쳐지면 다시 왼쪽으로 조금 간다. 재차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 멀리 보이는 산수마을 방향으로 꺾어 5분만 더 가면 개울가에 수백년을 버틴 버드나무가 있다. 왼쪽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만나면 개울을 우측에 끼고 오른쪽으로 간다. 산수마을 버스정류소를 지날 때 오른쪽을 보면 마을회관 뒤쪽에 커다란 노거수가 눈에 들어온다. 산수마을과 그 주변은 봄 나물 중 으뜸이라는 '곤달비' 재배지로 유명하다.

산수2교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300m만 가면 제5코스의 종착점인 심천(深川)마을 당산나무 앞이다. 작은 정자가 당산나무와 잘 어울린다. 남서쪽에 우뚝 솟은 옹강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 교통편

- 경주버스터미널서 505번 오전 두 차례 운행

 
  디티재에서 내려서는 계곡길. 비교적 험로에 속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차량 회수 부담이 없어서 편하다. 부산노포동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는 새벽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요금 4500원, 50분 소요. 경주버스터미널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내남면 박달리 괘밭까지는 505번을 이용해야 하는데 오전 8시20분, 11시10분 등 하루 5회 운행한다. 40분 소요. 종착지인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에서는 경주터미널까지 오후 1시40분과 6시10분(막차)에 출발하는 352번 버스를 타면 된다. 1시간 소요. 경주 시내버스 시간표는 금아버스그룹 홈페이지(http://www.gumabus.com)에 접속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최소 2대 이상이 동행해 종착점인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까지 가서 일부 차량을 주차시킨 후 나머지 차량으로 내남면 박달리 괘밭마을까지 가서 출발하는 편이 그나마 낫다. 한 대만 이용해 출발지에 주차시킨 후 걷기에 나설 경우 차량 회수가 아주 번거롭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 종착점인 일부리 심천마을까지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건천IC에서 내려 청도 산내 방면으로 우회전, 산내면 소재지에서 청도 방향으로 가다가 방통마을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다리를 건넌 후 다시 좌회전 한다. 내칠리 외칠리를 지나 일부리까지 8㎞정도 가야 한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설치돼 있을 경우에는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를 검색하면 편리하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트렉·동영상 http://www.kookje.co.kr


# 경주 아랫상목골 김남이 할머니

- "차 한 잔 하고 걸어요" 선한 인정에 감동

 
"길에서 이러지 말고 집에 들어갑시다. 맛 있는 차 한 잔씩 대접할테니까. 어여."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아래상목골 마을에 사는 김남이(77·사진) 할머니가 인정스러운 표정으로 본지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의 발길을 이끈다. 55년 전, 방년 스물 두 살의 나이로 해발 400m에 위치한 이 산골마을에 시집 와서 평생을 떠나보지 못했다는 김 할머니. 그는 지금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도 시골집을 떠나지 않고 혼자서 산다. 외로움이 사무칠만도 하건만 표정 만큼은 소녀처럼 해맑아서 개척단원들을 놀라게 한다. 혼자 시골집을 지키고 있지만 붉은 색 모자에다 예쁜 귀걸이와 목걸이로 한껏 멋을 낸 것이 여느 도회지 할머니 못지 않은 멋쟁이다.

그는 "내가 시집왔을 때만 해도 우리 시댁이 이 마을에서 가장 논밭을 많이 가진 부잣집이었지. 지금도 산내면에서 '김남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 평생을 이곳에서 억척스럽게 살았으니, 모른다면 간첩이지. 그런데 지금은 놀리는 땅이 태반이야. 그래도 콩 표고버섯 고추 같은 것들은 밭에서 직접 기르고 있다오"라며 밝게 웃었다. 깔끔하게 새로 지은 양옥집에 대문이 없다. 도둑이 있으랴, 강도가 있으랴. 선량한 사람들만 살아가는 이 마을에서 대문이 무슨 필요 있을까 싶다. 집앞 당산나무가 한 해 동안 무탈하도록 지켜줄테니 무슨 걱정이 그리 있을 텐가. 할머니는 마당 한 켠에 주인 없는 예쁜 그네를 매달아 놓았다. 손자 손녀가 오면 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집 앞에 붙여 놓은 '자연산 팝니다'라는 작은 안내판이 궁금해서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파느냐고. 김 할머니는 "이것 저것 다 팔지. 콩 고추 버섯, 특히 송이버섯도 팔아. 주변 산에 가면 송이버섯을 심심찮게 볼 수도 있으니, 재미로 하는 것이지. 그래도 도시에서는 이런 것 못 사먹을 걸"이라고 대답한다. 길 떠나는 개척단이 안보일 때까지 연신 손도 흔들어 준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선뜻 집에 들어가서 얘기 좀 더 하자며 손을 이끄는 김 할머니의 마음은 둘레길에 걸쳐 있는 수많은 산골마을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의 체온과 호흡, 음성이 그리운 것일 게다.


# 시민 개척단원- 주부 김양숙 씨

- "고향서 마실 나가듯 걷는 정감에 매료"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마음 속으로 영남알프스도 둘레길이 열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마침 국제신문에서 둘레길 개척 프로젝트에 착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사 제쳐 두고 따라나섰어요."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 사는 주부 김양숙(54·사진·설송산악회) 씨. 그는 본지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첫 발걸음을 내디딘 지난 1월초 제1코스때부터 줄곧 시민개척단원으로 동행하고 있는 열성 시민이다. 산과 계곡이 수려하고 물 맑은 고장인 경남 거창 출신인 김 씨는 산에 대한 친숙함에 이끌려 지난 30여년 동안 전국에 가보지 않은 산이 없을 정도로 산행을 많이 한 숨은 베테랑이다. 영남알프스 산군들 역시 거의 대부분을 섭렵했다. 그런 그에게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보석 같은 존재다. 김 씨는 "나처럼 산행을 많이 하지 않는 친구들과도 함께 편안하게 걸으며 자연이 주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서로를 더 깊이 알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좋다"며 "나중에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들도 함께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김남이 할머니 처럼 둘레길에서 만나는 많은 산골 사람들의 순박함 속에서 작은 일에 연연하는 나 자신을 반성해 보곤 한다. 마치 고향의 오랜 친지를 만난 듯 반갑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산악시인 권경업 씨가 주도하는 히말라야 산골마을 병원 지어주기 사업단 단원으로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마을에서 산내면 내일리 상목골로 이어지는 흙길의 임도길

상목골재 직전의 전망대에서 박달리 내와리 주변의 산군을 살펴 보고 있다.

예전에는 상목골재로 오르는 계곡으로 도진마을에서 시작을 한다. 뫼주골로 불리는 이곳은 현재 사유지와 옛길이 묵혀 흔적을 잧을 길이 없었다.
상목골재로 산내면과 내남면의 경계이며 낙동정맥길이다. 박달리에서 나물을 캐 머리에 이고 이고개를 넘어 산내장에 반나절만에 갔다 왔다는 마을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윗상목골마을
상목골마을의 당산나무로 높은 지대에 있어선지 위엄과 기품이 넘처 흐른다. 누구의 정성인지 당산나무 아래 촛불이 켜져 있다.
상목골마을의 김남이할머니로 멋쟁이 였다. 시집와서 한번도 이 마을을 떠나본 적 없다는 할머니는 겨울철에는 지나는 사람이 반가운 것 같았다.
디티재로 오르는 취재팀이 옛길을 걷고있다. 상목골의 도로가 뚫리기전에 넘던 옛길이며 이길이 대현리 동편마을과 연결된다.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동편마을을 지나면 왼쪽으로 조래봉과 단석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도가도 산이요 머리를 들어도 하늘뿐 보이지 않는다는  산내면 산골이다.
동창천 넘어로 대부산의 모습이다.
서편마을로 향해가는 취재팀으로 이길이 대현고개를 넘어 언양으로 이어진다.
범골로 들어서면 만나는 범바위로 바위아래 굴이 있는 데 범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아연을 캤다는 폐광으로 길이는 13m쯤 된다. 범골 입구에 있다.
아부터재로 올라가는 취재팀

아부터재를 넘어면 만나는 재궁마을로 예전에는 박씨 재실이 있어 재궁으로 부른단다.
마을길을 나와 우측 곤달피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고목의 버드나무로 작은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따라가면 산수마을이다.
대현마을에서는 대부산으로 불리는 산으로 일부리에서는 산이름이 틀린다. 대부산이 종지맥이이며 그아래 낮은 안부가 낮은맥이 그리고 그 우측 봉우리가 산밭맥이로 부른다. 그리고 방매산과 사이의 심원사로 넘어가는 옛길은 구름재로 부른다는 마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종지맥이모습으로 그 아래 거산마을이 있다. 마을 뒤로 큰 산이 있어 거산마을로 부른다. 
뒤돌아본 재궁마을의 모습과 아부터재로 마을분의 이야기로는 아부터재가 나비가 날개를 펼쳐든 모습이라 이야기를 해 준다.
산수마을의 당산나무로 안강의 황씨성을 가진 사람의 산소가 있다하여 산소로 부른던것이 산수로 바뀌었다는 산수마을에는 여러기의 당수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의곡초교 일부분교로 아직도 학교로 남아 있다. 여기서 산내면 소재지 까지 너무 멀어서 일까?
5코스 마지막 종착점인 심천마을로 심천동이라 부른다." 아부터 "또는" 지푸네"로 불렸다는 심천마을은 옹강산. 서담골봉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과 삼계리재를 거쳐 신원리로 이어지는 깁고 긴 골짜기를 심천동이라 부르는 것 같다. 하루에 한사람씩 부자가 생겼다는 일부리는 지금은 곤달피를 재배하여 그 이름 값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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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무안면 홍제사. 땀흘리는 일이 없어면  좋을 것 같은 땀흘리는 표충비와 홍제사

*표충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홍제사


 



일명 땀흘리는 이 비석은 임진왜란때 승려로서 국난을 극복한 사명당 송운대사(1544-1610)의 높은 뜻을 기린 비석으로 영조18년인 1742년에 대사의 5대 법손인 남붕선사가 경산에서 가져온 옥돌로 건립을 하였다. 국가의 길흉사를 날씨에 관계 없이 땀을 흘려 사전에 미리 알려주는 비석으로 사명대사의 나라사랑을 볼 수 있다. 선조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스승 서산대사의 뒤를 이어 승군을 통솔하였다. 임진왜란 후 선조37년에는 국서를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꾸가와 이에야스와 담판하여 포로로 잡혀간 백성 3500명을 본국의로 송환을 하였다.


표충비 보호를 위해 너무 칸막이를 한 보호각에 틈이 좁아 비문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한때 이곳에는 서산, 기허, 사명대사 세분의 영정을 모신 표충사당이 있었으나 재약산 아래 표충사로 옯기고 현재 삼비문안에는 1742년 남봉선사가 조성한 표충비와 향나무,표충비를 보호하는 수호 사찰 홍제사만 남아 있다.

뒤에서 본 표충비각으로 우측에 수령 300년 된 향나무를 볼 수 있다.

 

홍제사는 사명대사의 표충비각과 표충사당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수호사찰로 창건 연대 또한 그때로 보고있다.



표충각안의 사명대사 영정

표충각안의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내외분의 영정도 걸려 있다.

 

홍제사와 표충비는 밀양면 소재지 편편한 평지에 민가와 함께 자리를 잡고 있어 지나가다 들러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홍제사로 들어서면 먼저 우측에 근래에 조성한 삼층 석탑과 좌측으로는 범종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표충비가 있는 표충비각은 우측으로 따로 중삼문을 두고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측으로 돌면 표충각과 향나무, 땀흘리는 비석인 표충비를 볼 수 있습니다.

 

홍제사 입구입니다. 표충비각 앞인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과 쉼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무안 고라리에서 태어나 직지사로 출가를 하신 사명대사의 영정과 땀흘리는 비석을 보시고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  땀흘리는 비석에  그분의 나라사랑의 마음을 읽어 봤서면 합니다. 무안은 이곳 말고도 홍제사 좌측 중산 표지판을 따라가면 고라리란 마을이 나옵니다. 현재 고라리는 사명대사 출생지인 생가터와 그 분의 기념관을 조성하여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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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보성여행)대원사가 있는 천봉산 산행.  가을과 겨울이 공존한 보성 천봉산 낙엽 산행

보성 천봉산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찾아낸 봉황의 터전

까치봉 말봉산과 함께 걸으면 3시간30분 걸려

대원사 입구에서 출발, 100% 원점회귀 코스

정상에 서면 모후산 무등산 주암호 등 한눈에

전형적 육산…산행 내내 환상적 낙엽융단길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阿度和尙)은 신라 미추왕 때 신라땅, 지금의 경북 선산으로 들어와 이 고을 사람 모례(毛禮)의 집에 살면서 불법을 전파했다. 어느날 아도화상의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 나거라. 아도!"

 


 

봉황의 다급한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서 봉황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도화상은 봉황의 인도를 받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지만 그곳에서 봉황이 사라져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천봉산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란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산의 물결이 펼쳐진다. 맨 좌측이 조계산, 가운데 주암호, 그 우측으로 호남정맥 산줄기가 보인다.> 

 

봉황의 인도로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석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매다 마침내 하늘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낸 후 산 이름을 천봉산(千鳳山)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곤 산 아래 대원사를 창건했다'(삼국유사).

이번 주 산행지는 봉황의 보금자리로 불리는 전라남도 보성 천봉산(608m). 보성땅 북쪽의 맹주로 이웃한 화순과 순천땅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다.

천봉산 대원사 가는 길은 입구부터 우선 색다르다.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는 6㎞의 벚나무 터널길은 탯줄을 연상시킨다. 풍광의 미추에 무심한 장삼이사가 보더라도 한눈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입구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왕벚나무 터널'이란 표지석이 서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가 아닐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아침 햇살을 받아 포근하게 다가오는 이 길은 벚꽃이 없어도 벚나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풍수지리에 눈밝은 사람들은 보성의 천봉산 대원사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진입로인 벚꽃길을 탯줄, 절터를 어머니의 자궁, 절터를 감싸고 있는 천봉산을 모태라고.

<천년고찰 대원사의 극락전과 그 우측의 태안지장보살.>

 

이를 실천한 이가 바로 지금의 주지 현장 스님이다. 스님은 지난 1990년 초반 30대의 젊은 나이에 주지로 부임했다. 한국전쟁 때 극락전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려 사세가 급격히 기운 대원사를 스님은 절집이 앉은 텃자리에 착안, 낙태나 죽은 아기의 영혼인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으로 일대 변신을 꾀했다.

극락전 옆엔 태아를 안고 있는 태안지장보살상을 세웠고, 경내 곳곳에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낙태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빨간 모자를 쓴 동자승을 많이 모셔 놓았다.

산꾼들이 천봉산을 지리산 계룡산 한라산 모악산과 더불어 어머니 산신을 모신 여산신 도량이라고 하는 것도, 호남 풍수에 밝은 사람들이 광주 무등산의 기운을 받쳐주는 모산이 바로 천봉산이라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럼 천봉산의 산세는 어떨까. 바위 하나 없는 어머니의 품과 같이 넉넉한 전형적인 육산인 데다 조망 또한 빼어나 주암호와 무등산 그리고 호남정맥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금까지 천봉산 대원사는 곡성 봉두산 태안사처럼 절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절구경만으로 끝날 뿐 산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천봉산은 아담해 산행 후 절구경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원사 입구에 위치한 '티벳박물관'. >

 

갑작스레 몰아닥친 강추위에 지레 겁먹지 말고 약간은 멀지만 상대적으로 따뜻한 천봉산으로 피한(避寒) 산행을 떠나보자. 산행팀은 이웃한 까치봉과 말봉산까지 보태 한 바퀴 돌았다.

산행은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대원사 주차장~삼거리봉~까치봉(572m)~마당재~말봉산(589m)~천봉산(612m·삼각점)~임도~산앙정(정자)~주차장 순의 100% 원점회귀 코스. 걷는 시간만 3시간30분. 우려와 달리 산길은 대체로 반듯해 초보자도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단 천봉산 정상 직전에서 하산길 찾기가 약간 애매모호하지만 이 점만 유의하면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오색 룽다가 펄럭이는 '티벳박물관'과 이국적인 하얀 불탑 수미광명탑이 훤히 보이는 대원사 주차장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보성군관광안내소 우측으로 보이는 '우리는 한 꽃'이란 현판이 걸린 일화문과 '천봉산 대원사'를 알리는 일주문을 잇따라 통과하면 이내 '천봉산 정상 6.5㎞'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들머리다.

산죽밭 사이로 침목계단을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산행은 대원사를 중심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셈이다. 곧 이동전화 소형기지국을 지난다. 기지국 한 면에 누군가가 매직으로 '까치봉→말봉산→천봉산'이라고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솔향기 그윽한 완만한 오름길로 시작되더니 어느새 산죽에 둘러싸인 끝물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는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급경사 오르막에선 수북이 쌓인 낙엽이 제법 미끄러워 체력소모가 심하다.

넉넉잡아 30분이면 돌탑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무명봉에 올라선다. 처음엔 까치봉인 줄 알았다. 정면 앙상한 가지 사이로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이 보이는 등 사방이 온통 산의 물결이다.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정면으로 까치봉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이제 나무들은 다가올 추운 겨울 생존을 위해 자신의 혼이었던 잎을 다 떨구고 호젓한 산길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황홀한 낙엽융단길을 내려섰다 살짝 올라서면 까치봉. 누군가가 나무를 잘라 '까치봉'이라 적어 놓았다. 하지만 지형도와 능선으로 이어지는 주변 산세를 고려해볼 때 까치봉은 눈앞의 봉우리로 추정된다. 해서, 산행팀은 이곳을 삼거리봉으로 명명한다. 직진하면 화순땅 남면 방향, 산행팀은 좌로 내려선다. 이 길은 군경계로 왼쪽은 보성, 오른쪽은 화순땅이다. 진짜 까치봉은 5분 뒤 닿는다. 앞선 삼거리봉과 비교해도 실제로 더 높다. 하지만 스쳐가는 봉우리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 유의하길.

<대원사 입구의 산행 들머리. >

 

이어지는 낙엽융단길. 이제부턴 오르내림의 연속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부담스러운 급경사길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좌측으론 향후 오를 천봉산과 말봉산이, 우측으론 모후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두 번째 무명봉을 지나면 그간 안 보이던 산죽과 유난히 수북이 쌓인 낙엽길을 만난다. 그 최저점이 이정표가 서 있는 보성 문덕면과 화순 남면을 오가던 고갯길인 마당재다. 좌측 사방댐(1.2㎞) 방향은 '티벳박물관' 쪽으로 보면 된다. 이제 천봉산은 3㎞ 남았다. 직진한다. 차츰 산길이 좌측으로 휜다. 동시에 좌측 발아래로 '티벳박물관'과 주차장, 정면으로 말봉산과 천봉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또다시 두 개의 무명봉을 살짝 넘으면 말봉산으로 오르기 직전 좌측으로 모든 것을 삼킬 듯한 태세로 입을 벌리고 있는 형국의 계곡이 시선을 붙잡는다. 그 뒤론 저 멀리 품넓은 조계산이 보인다.

잠시 후 말봉산에 올라선다. 마당재에서 30분. 앞선 삼거리봉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말봉산'이라고 적어 놓았다. 좌측으로 '티벳박물관'이 보인다.

직진하며 내려선다. 아마도 올 겨울 산행팀이 처음 오른 듯 낙엽 밟는 소리가 유난히 청량감있게 다가온다. 내달려도 좋을 만큼 평편한 양지바른 산죽터널도 지난다. 말봉산에서 18분쯤 뒤 다시 한번 더 능선이 좌측으로 휘면서 쏟아진다. 안부에서 숨고르기를 한 후 키 큰 산죽터널로 올라선다. 도중 이정표도 지난다.

잠시 후 이정표가 서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천봉산 300m, 왼쪽 정자(산앙정) 1.3㎞'라 적혀 있다. 산행팀은 정상을 다녀온 후 이곳에서 하산할 계획.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란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사방팔방 산의 물결이 펼쳐진다. 북으로 까치봉 말봉산 너머로 무등산과 그 우측으로 화순 모후산이, 동쪽 주암호 뒤로 조계산과 그 우측 뒤로 호남정맥의 종착지인 광양 백운산과 암봉인 금전산 그리고 소설 '태백산맥'의 중심무대인, 군부대철탑이 보이는 존제산이 확인된다. 참고로 정상에서 계속 직진하면 검문소를 지나 만나는 아치교로 내려선다.

산행팀은 왔던 길로 내려가 이정표가 서 있는 봉우리로 내려선다. 문제는 하산길 찾기.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론 길이 보이질 않는다. 해서, 이정표에서 20m쯤 직진해 식사를 위한 간이 쉼터를 지나면 꼬불꼬불한 하산길이 열려 있다. 길 좌측으론 방금 올라온 능선이 보인다.

침목계단과 가는 밧줄을 잡고 내려서면 주변이 온통 단풍나무 천지. 절반은 메말랐지만 그래도 예의 화려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이어 이번 산행에서 만나는 첫 바위를 지나면 침목을 덧댄 급경사길을 내려선다. 다시 한번 단풍나무숲을 지나면 임도와 만난다. 정상에서 27분. 바로 임도를 가로질러 산으로 올라서면 11분 뒤 산앙정(山仰亭)에 닿는다. 인근에는 이정표(천봉산 정상 1.6㎞)도 서 있다. 개울을 건너 도로로 올라서면 곧바로 주차장에 닿는다.

◆ 떠나기 전에

- 천년고찰 대원사 '티벳박물관' 등 볼거리 많아

- 맛집 '청광도예원' 닭도리탕·녹차수제비 일품

<청광도예원의 주메뉴인 닭도리탕.>

 

백제 무령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대원사 경내에는 여느 절집과 달리 눈길 끄는 볼거리가 유난히 많다. 모두 주지인 현장 스님의 아이디어다.

대원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인 구품연지 아래에는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철나무가 두 손을 맞잡고 있으며, 거기엔 대형 목탁이 걸려 있다.

여기에 머리를 부딪치면 나쁜 기억이 사라지고 지혜가 밝아지고 원수가 잘 된다는 속설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이가 없다. 극락전 뒤 계류가 흐르는 전망 좋은 곳엔 수관정이란 조그만 전각이 있다. 그 안에는 텅 빈 관이 하나 있다. 일종의 저승체험실이다. 벽에는 '죽음을 체험해보는 순서'라는 안내문도 적혀 있다.

경내에는 또 신라왕자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다불(茶佛)이 된 김지장 스님을 모신 김지장전과 황희 정승 영당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대원사의 자랑은 '티벳박물관'.

실내에는 주인인 김기찬 씨가 구운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현장 주지스님이 티베트와 몽골 등지를 순례하며 모은 불상 회화 등 불교미술품 1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사람 머리가죽으로 만든 북, 대퇴골로 만든 피리, 해골로 만든 목탁 그리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보이는 하늘 만다라도 눈길을 끈다. 1970년대 돈이 없어 고물상에 처분했다는 문제의 종도 뒤늦게 구입, 용접을 거쳐 전시돼 있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청광도예원(061-853-4125, 852-4157). 대원사 진입로인 시오리 벚꽃터널길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간판을 보고는 개인작업실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닭도리탕이 기가 막힌 집이다. 식당인 전통 한옥 바로 옆에는 주인인 도예가 김기찬 씨의 도예공방이 있다.

 

 

실내에는 온통 김 씨의 생활도예품이 가득 진열돼 있으며, 벽은 통유리여서 주암호 등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벚꽃이 한창인 4월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운치가 있다. 입맛에 눈맛까지 일거양득인 셈이다.

맛은 어떨까. 직접 키운 토종닭이라 육질이 담백하며, 음식이 담긴 그릇은 모두 김 씨의 작품이어서 수라상을 받은 기분이 든다. 도예품은 판매도 하며 민박도 한다. 닭도리탕 4인 기준 4만 원. 녹차수제비(7000원)도 일품이다.

청광도예원 인근에는 '백민미술관'이 있다.

지난 1992년 개관한 이 미술관에는 보성 출신 서양화가 백민 조규일 씨가 자신의 작품과 국내외 화가들의 작품을 기증해 세웠다. 오지호 허백련 손재형 조방원 오승윤 강연균 등 이 지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제정러시아시대 이콘,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 교통편

- 호남고속도 주암IC서 나와 송광사 방향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IC~순천 벌교 송광사 22번 좌회전~고흥 벌교 송광사 보성 우회전~송광면~보성 벌교 27번~광주 보성 우회전 15번~보성군 문덕면~광주 화순 우회전 15번~대원사 백민미술관 좌회전~대원사 주차장 순.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버스를 타야 하지만 당일치기론 불가능하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GPS 참조=GPS영남 (http://cafe.daum.net/gpsyn)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글·=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대원사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는 들머리로 오른쪽으로 올라서면 천봉산 산길이다

초입은 산죽이 많았습니다.

올라가는 우측으로 일주문을 볼 수 있습니다.


주능선의 힘든 오르막 산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무명봉을 올라서니 정면에 순천 조계산이 가까이 보였습니다.

조계산입니다.




건너편 능선으로는 대원사를 감싸고 있는 천봉산이 솟아 있다. 좌측으로 틀어서 능선을 따라간다.


마당재고개로 좌측은 대원사인 사방댐 방향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천봉산은 직진.

















날머리 산앙정의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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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행/울주여행)두서면 백운산 김유신 기도굴. 태화강의 발원지와 김유신 기도굴이 있는 백운산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를 통해 들어가는 탑곡은 울산의 오지로 통한다. 한때 이 골짜기는 천주교 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살았고 이념의 갈등속에 빨치산들이 마지막 항전을 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지 산아래는 부슬부슬 비가 와도 오지인 이곳은 흰눈이 소복이 쌓이는 백설의 천국이다. 이곳 탑곡에는 어느때 부터 인가 이곳에 사찰이 들어서고 그 사찰이 황폐화 되면서 탑만 남아 있다가 탑이 있는 골짜기라 하여 탑곡(골)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탑도 남아 있지 않고 이름만 남아 있는 이곳에 울산으로 흘러가는 태화강의 발원지가 숨어 있다. 백운산과 삼강봉 사이의 깊고 깊은 골짜기인 탑골샘은  47.54km의 태화강을 만들었다. 한때 가지산 쌀바위샘과 태화강의 발원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쌀바위 샘 보다도 2km 정도 더 긴 이곳이 태화강의 발원지로 확정을 하고 쌀바위 샘은 태화강의 상징적인 발원지로 교통을 정리를 하였다 한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에 있는 이곳 탑골샘 우측 낙동정맥 능선에는 포항의 호미곶까지 흘러 가는 능선이 발달되어 있다. 그 정점을 삼강봉이라 부른다. 삼강봉 꼭대기에 빗물이 떨어지면 이물은 태화강, 형산강, 밀양강으로 각각 흘러가기 때문에 삼강봉으로 부르며 내화마을의 어르신들도  삼강봉이라 이야기를 하시며 설명을 하였다. 요즘 기맥, 지맥 종주를 많이 하니까 그분들도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오지의 골짜기 답게 이곳에도 김유신의 전설이 있다. 김유신이 삼국을 통일하기전에 이곳 백운산 동굴에서 기도를 하는데 난승이 나타나 신검에 두줄기 빛을 내려준다는 그 김유신 기도굴이 백운산 정상인 감태봉 바위 아래에 있다. 열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있는 이굴에서 나와 김유신은 천마를 타고 감태봉 바위를 박차며 건너편 천마산으로 뛰었다는 이야기와 차리마을과  선필마을 사이에 솟아 있는 마병산에서 말과 병사를 훈련시켰다는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 온다.
신라때는 열박산으로 불렸으며 화랑들의 훈련장소로 많이 거론되고 있는 영남알프스와 단석산의 단석, 오봉산의 마당바위인 지맥석에서 휴식을하며 부하들과 막걸리를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속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탑골을 찾아가는 들머리인 내와리 내와마을

내와마을 뒤로 낙동정맥이 흘러간다. 삼강봉과 백운산을 찾을 수 있다.

탑골을 찾아가는 길이다.

탑골의 모습으로 한때는 많은 가구수가 골짜기에 살았지만 지금은 한적하다.

태화강의 발원지 탑골샘을 찾아가는 입구 안내판. 안내판 우측으로 들어서면 된다.

이 계곡물이 태화강으로 흘러 동해로 빠진다.


태화강 발원지 탑골샘을 알리는 표지석이 많은 눈속에 파 묻혀 있으며 샘터의 흔적이 찾을 길 없다.




감태봉 정상아래의 동굴로 난승에게 두줄기 빛을 받았다는 김유신 기도굴

김유신기도굴로 우측으로 물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고드름이 얼어 있다. 

1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기도굴의 내부


백운산의 정상인 감태봉으로 김유신이 천마를 타고 이 바위를 박차 올랐다하며 지금도 말 발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한다. 정면의 높은 봉우리 못가서 삼강봉이다.

백운산 정상

백운산 정상으로 이 바위 아래 김유신 기도굴이 있다.

탑골의 모습과 내와리, 천마산의 모습등을 볼 수 있다.

영남알프스 고헌산과 소호리 와항재 그리고 가지산의 모습

영남알프스 가지산과 문복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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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전마을의 늠름힌 기상과 힘을 느낄 수 있는 숫당산나무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마을의 암.수 당산나무
 
시골의 마을길을 걷다 보면은 그 마을을 지키고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당산나무가 마을 입구에 서 있다.
그 마을에서는 마을의 어른으로 모시고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당제를 지내며 당산나무에 대한 예우를 한다. 영남알프스 언저리를 걷다 보면 크고 작은 마을들을 지난다. 그 마을마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를 봐 왔다. 수 많은 당산나무는 소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서어나무 심지어는 버드나무까지 나무의 수종에 관계 없이 그 마을의 어른으로 삼고 있었다.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마을에는 특이하게도 두그루의 당산나무를 모시고 예우를 하고 있었다. 소나무와 느티나무로 각각 다른 수종이다, 괘전마을의 어르신들은  '골매기장"이란 닉네임으로 부른다. "골목의 최고 어른"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소나무는 홍송으로 숫당산으로 불리며 높이는 약30m. 둘레는 어른 둘이서 양팔을 벌리면 잡을 수 없는 굵기로 소나무로서는 꽤 큰축에 속한다. 늠름한 기상과 힘을 느낄 수 있으며 마침 보름 뒷날 찾아 갔을 때 마을의 안녕과 기원, 평화, 그리고 마을 주민의 건강을 빌며 동제를 지냈는데 하룻동안에 다 지내지 못했다는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괘전마을 안쪽에 있는 느티나무는 마을의 안쪽에 있어선지 암당산으로 부르고 있다. 수백년은 됨직한 이 암당산도 가지에는 딱다구리가 쪼아 둥지를 만들어 놓은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밑둥치에는 30cm의 구멍이 나 있는데 아마 느티나무의 숨 구멍으로 보인다.  세로1m, 가로1.5m 크기의 제단이 숨구멍을 막아 놓여 있었는데 지금은 한쪽을 깨내어 암당산 나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숫당산 나무는 박달고개에서 내려서면 마을의 입구인 큰 도로에 위치를 하고 있지만 암당산나무는 마을 안쪽에 있어 찾아가야 한다. 마을 회관 길을 100m 따라 들어가다 아담한 정원이 있는 집이 나온다. 그 앞에서 우측 감나무가 몇그루 서 있는 집으로 올라서면 암당산 나무가 그 집 뒤로 보인다  

 













괘정마을 안쪽에 있는 암당산으로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다. 





가지에는 딱다구리가 부리로 쪼아 구멍을 낸 흔적과 제단이 밑둥치의 숨구멍을 막아 깨어냉 흔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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