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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대장동의 성흥사는 사찰의 유명세 보다는
성흥사 계곡이나 굴암산(또는 팔판산)의
들머리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금이야 굴암산의 등산로가 다양하게 개발되어
김해의 장유등에서 오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이곳 성흥사를 들머리로 거쳐야만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거치게 되는 이 사찰은 사찰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않은 폼새가 요란하지 않으며 다소곳한 여인내의 모습이 느껴지는 깔끔한 사찰이다. 사찰경내를 들어서면 우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정갈한 배치이다. 정면에 대웅전과 좌측으로 나한전, 사천왕상을 모신 일주문을 통과하면 우측 2층의 범종각이 반겨주고 어느 고급주택의 정원처럼 관리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이곳 성흥사의 역사 또한 오래되어 창건연대는 신라흥덕광 8년인 8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건 동기도 여타 사찰과는 특이한데 이곳에는 남해안으로 왜구의 출몰이 잦았고 약탈이 심해 재임 초인 흥덕왕은 많은 고민을 하였다.
하루는 흥덕왕의 꿈에 하얀 옷에 수염의 노인이 나타나 흥덕왕에게 말하기를 지리산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 도승을 불러와 평정하라고 하고 하니 지리산 도승을 찾아 이곳 왜구들을 평정케 하였다.
그 도승은 무염국사로 도승은 팔판산으로 올라가 한손은 지팡이를 잡고 한손은 배를 두드리니 왜구들은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니 이소리가 신라군의 함성으로 착각하여 놀라 혼비백산하며 도망갔다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범어사14교구 말사
로 성흥사 대웅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에 흥덕왕은 무염국사에게 재물과 전탑을 주어 구천동에 절을 짓게 하였고 그 후 500명의 승려들이 기거하는 대찰이 되었다 한다. 1109년, 1668년의 큰 화재로 사찰은 소실되어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다가 1789년 정조13년 이곳 웅동 팔판산 아래에다 성흥사를 중창하게 되었다 한다. 현재의 대웅전은 중창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잦은 중수로 인해 그때의 모습은 많이 잃었다한다.
정면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이지만 맞배지붕으로는 드물게 화려한 포작을 구성하고 치마 끝을 들어 올려 간결함과 화려함을 같이 나타내었다.
그리고 성흥사 옆에는 이 사찰과 함께하는 노거수가 서 있다. 성흥사 중창과 때를 같이하며 약 220년된 시지정 보호수이다.





이곳 현판에는 불모산 성흥사로 표기하고 있다 이 뒤의 산은 굴암산(팔판산)으로 이산을 인근으로 여덞정승이 나왔다하여 팔판산으로 불리며 팔판산의 모산은 불모산이다. 부처님의 산으로 김해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부인 허왕옥이 일곱왕자를 이곳 불모산에서 출가 시킨데서 유래를 하고 있다.











찾아가는길

부산에서는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이나 지하철 하단역에 정차하는 20~25분 배차간격의 진해행 버스를 이용하여 웅동에서 하차를 한다. 30여분 발품을 팔면 성흥사 입구로 갈 수 있다.

승용차는 남해고속도로 서부산 톨게이트진입후 가락IC를 빠져나와 부산신항방면으로 진출후 9.3km 이동하면송정사거리가 나온다. 낙동남로 창원방면 우측으로 5.5km이동하여 마천삼거리에서 마천1길를 따라 성흥사 방면으로 우회전하고 다시 대장길 우회전후 550m 이동한다. 좌회전 후 2.2km이동을 하면 성흥사 주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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