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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상동 박연정. 강물에 노니는 물고기 수를 헤아렸다는 수어대가 있는 밀양의 박연정
조선 중기 학자이자 최초의
운문산 유람기인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을 남긴
수헌(壽軒) 이중경(李重慶·1599~1678)선생은 운문산을 들어서는 들머리를 이곳 박연정이라하였다.
운문산 유람기인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을 남긴
수헌(壽軒) 이중경(李重慶·1599~1678)선생은 운문산을 들어서는 들머리를 이곳 박연정이라하였다.
박연정은 양무공 김태허(1555~1620)장군의 별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원래는 이곳이 능성 현감을 지낸 이담용의 관란정이란 정자 터 였는데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이곳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터에다 양무공이 박연정을 지었다.
원래는 이곳이 능성 현감을 지낸 이담용의 관란정이란 정자 터 였는데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이곳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터에다 양무공이 박연정을 지었다.
그후 중창과 확장을 거쳐 박연정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약70년 뒤인 1682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소실이 되고 말았다.
이곳은 양부공의 박연정이 있었다는 곳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180년 뒤인 양무공의 9대손인 영장 김난규가 폐허가 된 이곳에 다시 정자를 중건하였다.
일제시대때인 1938년에 후손들에 의해
충의문이 세워지고 1966년에 추유재가 새워졌다.
박연정 뒤로 돌아나가는이곳에 수어대의 천길절벽이 서있다.
동창천의 물이 맑아 수어대 아래 연에서 노니는 물고기의 수를 헤아렸다.
그 위 갂아지른 절벽은 빙허대로 바위절벽을 돌아올라 동창천을 바라보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암반이 튀어 나와 있다.그래서 빙허대인가.
이방위 또는 아방위로 불리는 빙허대
바위의 모양이 어린애의 모습과 같다하며
주변의 오례산성과 그 아래 빼어난 절경으로 인해
넋을 잃고 허공에 의지하게 된다는 빙허대
그 암반위에 푸른노송이 용트림을 하듯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 만년송이라 부른다.
만년송과 빙허대 수어대 박연정이 함께 어울려 빼어남을 더한다.
'박연'은 임진왜란 때
밀양부사와 울산군수를 역임하며 전공을 세웠고
전후 정일품인 호위대장에 이른 무신인 양무공 김태허의 호(號)이다.
그는 관직을 버리고 이곳 고정리 뒷말리산(소천봉) 끈티인 박연정에서 만년을 보냈다.
이 쪽문을 통해 박연선생이 빙허대에 올랐을까.
찾아가는길
부산역에서 상동역 무궁화 열차는 7시45분. 상동역에서는 신곡리행 버스가 상동파출소앞 정류장에 오전9시5분경에 지나간다(밀양터미널에서 8시50분출발).모정마을 박연정 앞 하차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향으로 가다가 첫 번째 만나는 사거리(긴늪사거리)에서 청도 방향으로 우회전, 25번 국도를 탄다. 상동역 지나서 상동교를 건너지말고 고정리 매화리 방향 직진한다. 고정리를 지나 매화리 방향을 진행하면 모정마을 표지석과 만나고 그뒤로 박연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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