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금사는 신라 선덕여왕 20년인 537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그 후 뚜렷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다만 조선 철종 함풍 7년 무오(1858)에 이우인이 중수하였다하며 고종 융희 2년 무시(1908)에 원인 모르는 불이나 대웅전을 전소시키는 화재가 일어나 유금사는 쇄락의 길을 걷다가 주지 김화한 스님이 다시 중수하여 사세를 키워왔다. 그뒤 이현호 스님이 다시 중수하면서 현재의 사세를 갖추었다. 유금사는 관내에서는 아주 오래된 사찰로 많은 문화재급 유물이 있었으나 잦은 화재와 도난으로 유실 또는 도난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현재는 대웅전 좌측으로 향로전과 우측으로는 서운루와 요사체를, 대웅전 우측으로 산왕각을 두고 있다. 대웅전 뒤에는 원래 대웅전 앞에 있던 삼층석탑이 자리를 하고 있다.
칠보산 유금사는 일곱보물을 간직한 산으로 두가지 이야기가 전한다한다.
첫 번째가 선덕여왕시절 일곱 공주가 이곳 유금사에 와서 보살이 되어 살다가 모두 선화한 선녀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중국의 두사충이 이곳을 지나다가 물맛을 보고는 이산에 일곱가지의 보물이 있다하여 칠보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원래는 바닷가의 영향으로 항상 칠보산이 구름을 이고 있어 등운산으로 불였는데 칠보산으로 부르게 되었고 지형도를 보면 등운산은 그 아래 767m로 따로 독립되어 있슴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는 대웅전과 종각, 장화부인 신령각 등을 갖추고 제법 큰 규모를 자랑했던 사찰로. 그러던 어느날 주지스님이 불국사에서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절 앞 용소에서 두 마리 용이 교미하는 것을 보고 고약하게 여겼는데 스님이 절에 도착하기도 전에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로 절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유금사는 장화부인을 모신 신령각을 두고 있었는데 애뜻한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신라 말엽에 마의태자에게 연정을 품은 장화부인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 유금사 금선암에 찾아와서는 마의태자가 왕에 오르기를 축원하고 기도하였다. 신라가 망하자 마의태자는 경주를 떠나 금강산으로 가게 되면서, 마의태자가 종적을 감춘것을 보고 아마 마의태자가 죽었다는 전갈은 받은 장화부인은 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다 그 자리에서 죽어 마을 사람들이 크게 장사를 지내주고 유금사에 장화부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신령각을 지었지만 현재는 유실되어 폐허가 되었다 한다. 유금사 동남쪽 약 500m 지점에 석축으로 조성된 거대한 고분이 남아 있는데 신라 경순왕의 후비 장화부인능이라고 마을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삼국시대때 부터 손으로 금을 주울 정도로 많이 생산되어 유금마을이라부르며 유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불국사 말사이다
찾아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건천IC~경주 영천 20번 좌회전~포항 영천 경주 좌회전~포항 20번~건천터널~경주 포항~경주터널~포항~말구불터널~포항천북20번~포항경주7번(북경주)~포항7번~울진포항7번~울진영덕7번28번~울진영덕28번~울진영덕7번~흥해읍~울진영덕28번(성곡ic)~울진영덕7번~영덕군~강구~울진평해7번~칠보산8km자연휴양림. 유금사6km좌회전~금곡리유금사2km~유금마을순
<자료 : 칠보산유금사 주지 玄煜 스님> 글을 정리함
*유금사 삼층석탑
보물제674호
소재지: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금곡리 815
자세한 정보는 문화제청 홈페이지입니다.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2,067400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