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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여행/영덕가볼만한곳)의병장 신돌석장군 생가와 기념관인 유적지. 신돌석 의병장

 

영덕군 여행에서 보고 왔던 평민의병장 신돌석장군 생가지와 유적지. 사실 의병장 신돌석장군 생가지를 방문하기 전에는 학창시절 들었던 장군의 이름과 그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을 했던 게 아니었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생가를 방문하면서 알았던게 구한말인 1896년 일어난 명성 황후 시해 사건으로 전국에서 들볼 같이 의병봉기가 일어났으며 신돌석 장군 또한 영해에서 봉기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신돌석장군 생가주소: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528

신돌석장군 생가 연락처:054-730-6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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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은 태백산 호랑이라고 부를 정도로 전투에서는 용맹무상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정도로 신출귀몰했다고 합니다. 먼저 신돌석장군의 생가는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의 ‘복디미’ 마을에 있습니다. 생가터는 장군의 부친이셨던 신석주옹이 1850년경에 초가를 엮은 집을 지었으며 장군은 1878년 11월에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장군의 생가는 우리민족의 독립 의지를 꺾으려고 일본군은 정략적 차원에서 여러 번 불태워졌습니다. 1995년 민족정기회복 차원에서 앞면 4칸, 옆면 1칸 규모의 일자형 초가집을 옛터에 복원했습니다. 현재 생가는 도 지정기념물에 지정되었습니다. 장군은 왕건을 도운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후손입니다. 성장하면서 범상치 않을 정도로 기개가 남달랐다 합니다.

 

 

 

 

본관은 평산이며 자는 순경, 호는 장산, 본명은 태호입니다. 그러나 장군은 어릴 적부터 돌석으로 불렸기에 현재 신돌석장군 생가지와 유적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장군은 유년기에 육이당 이중립에게 학문을 익혔으며 1896년 일제는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상투를 자르는 단발령을 시행하자  이에 항거하며 전국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났었고 장군도 100여 명의 동지를 모아 영해에서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김하락의 이천의진이 경주에서 영덕으로 밀려와 신운석의 영덕의진과 연합하여 강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에 장군은 중군장으로 전투에 참여하며 초반에는 우세하게 전세를 이끌었으나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그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김하락 의병장은 자결하고 일월산으로 후퇴한 의병은 유격전으로 맞섰습니다. 신돌석장군은 영덕읍 남천쑤 전투에 참가하면서 그의 구국 의병 활동이 시작됩니다. 장군은 일본과의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수많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1904년 기울어가는 국운을 보고 평해 월송정에서 시 ‘우국(憂國)’을 짓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등루유자각망행(登樓遊子却忘行)

  가탄단허낙목횡(可歎檀墟落木橫)

  남아이칠성하사(男兒二七成何事)

  잠의추풍감개생(暫倚秋風感慨生)“으로

  그 뜻을 풀어보면

  “월송정 누에 오른 나그네가 갈 길을 잊고서

  떨어진 나무가 가로 놓인 단군의 터전을 한탄하노라

  사나이 27세에 이룬 것이 무엇이며

  가을바람이 부니 감개만 이는구나 “

  장군이 남긴 유일한 시로 우국충정의 굳은 마음과 신념을 알 수 있습니다.

 

 

 

 

신돌석장군 유적지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산 60-5

신돌석장군 유적지 전화:054-734-6397

 

 

 

 

 

 

1905년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3월에 영해지역 청년을 모아 영릉의병진을 조직하면서 본격적인 의병 항일을 전개하여 일본군 토벌에 나섭니다. 경상북도 청하, 영덕, 영해, 청송, 울진, 의성, 영양, 봉화, 삼척, 강릉 등 경상북도 북부와 강원도를 오르내리며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일본군은 태백산 호랑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합니다.

 

 

 

 

1908년 일본인은 더욱 간악하게 발악하자 그해 11월 장군은 의병대를 잠정 해산하고 만주로 활동무대를 옮기려고 장군의 외가가 있는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에 잠시 몸을 숨기려고 피신했습니다. 그러나 현상금에 눈이 멀었던 외사촌 김상렬, 상태, 상호 형제는 장군에게 독주를 먹이고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하여 장군은 만 30세의 짧은 나이로 12년을 의병 항쟁에 몸 바치며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고 1971년 국립묘지 유공자 묘에 안장했습니다. 또한, 영덕군과 국가보훈처는 선생이 태어난 축산면 도곡리에 생가 복원과 1999년 11월에는 사당과 동·서재 각 1동, 기념관을 조성하고 장군의 항일정신을 기억하는 성역화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왔습니다. 영덕대게축제와 영덕복사꽃축제가 열리면 많은 관광객이 영덕을 찾습니다. 영덕여행에서 평민의병장인 신돌석 장군 생가와 유적지를 찾는 여행도 매우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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