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여행/구례여행)지리산 천은사. 단풍으로 곱게 물든 화엄사 말사 지리산 천은사 여행.
어머니의 산이라는 지리산에는 수많은 골짜기를 파 놓았습니다. 그 많은 골짜기를 비집고 들어선 게 절집입니다. 수많은 절집 중에서도 지리산을 대표하는 3대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와 그 말사인 천은사. 그리고 쌍계사입니다.
지리산 둘레 길을 걷다가 시간을 내어 찾아갔던 남방제일선찰 화엄사 말사 천은사, 천은사 가는 길은 지리산 여행길에 여러 번 지났지만, 막상 천은사를 찾았던 기억은 3번쯤 되는 것 같습니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에 자리 잡은 천은사.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찾았던 천은사는 골짜기의 너른 품만큼 대단한 규모였으며, 수많은 봉우리에서 흘러내려 오는 지리산의 맑은 계곡 물이 천은사를 완전 가을빛으로 물 들이고 있었습니다.
천은사의 화기를 잡기위한 이광사의 필체
천은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리산을 관통하는 성삼재 도로에 세워진 산문을 통과하면 천은사 구역의 시작입니다. 이곳을 지나도 한참 도로가 이어지다 천은사 주차장이 나옵니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붉은 단풍에 가을빛이 물든 아담한 일주문을 지나면 그윽한 운치를 자랑하는 천은사 계곡에 걸린 수홍문을 통과하고 천은사 경내가 시작됩니다.
가람의 연륜만큼 오랜 세월을 지켜온 고목의 모습은 지리산의 웅장한 산수와 어울려 더욱 빼어난 모습입니다. 천은사는 신라 때 창건한 사찰로 흥덕왕 3년인 828년 인도 승려 덕운이 지리산에 들어와 감로사를 창건하고 그 후 도선국사께서 중수를 했다 합니다.
처음 창건 당시 사찰에는 달고 맛있는 샘이 경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이 샘에 능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샘가를 찾는 사람을 놀라게 했는데 이에 스님 한 분이 용기를 내어 그만 능구렁이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 뒤부터 감로수로 철철 넘치든 샘물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하여 “샘이 숨었다”는 뜻인 천은사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일이 있었던 뒤 천은사는 찾은 화재가 이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조선의 4대 명필 중 한 분인 원교 이광사가 절을 찾아 물이 흐르는 필체로 ‘지리산 천은사’란 글자를 쓴 뒤 일주문 현판으로 걸게 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천은사에는 더 이상의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 합니다.
천은사는 고려 시대에 들어와 더욱 사세가 확장되고 충렬왕 때는 ‘남방제일선원’으로 지정되어 지리산을 대표하는 수행처가 됩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등 전란을 겪으면서 천은사는 방화로 소실되었고 1610년 광해군 때 혜정 선사가 소실된 천은사를 중창 불사하여 절의 모습을 다시 갖추게 됩니다.
1679년 숙종 때에 단유 선사가 절을 중수하면서 ‘샘이 숨었다’하여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뒤에도 사찰은 중수를 거듭하다. 영조 때인 1774년 혜암 선사의 중창불사로 오늘날의 천은사 사격을 갖추었습니다.
천은사의 성보 문화재는 보물 제1340호인 천은사 괘불. 보물 제924호 천은사 극락전 아미타 후불탱화, 보물 제1546호 나옹화상 원불불감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천은사 극락보전은 아미타여래상을 안치한 천은사의 중심 건물입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기와 건물로 용마루 부분에 삼각형의 벽과 팔(八)자 모양으로 널판지를 붙인 팔작지붕 형태이며 공포는 외3출목의 조선 중기 이후 다포양식인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
천은사 보리수나무입니다. 천은사 암자와 경내에 20여 그로가 있었으나 모두 죽고 명부전과 설선 당 사이에 현재 한그루 남아 있습니다. 수령은 2~300년으로 추정하며 부처님이 이 나무에서 깨달음을 얻었다해서 보리수로 부리게 되었고 알은 염주를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천은사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지리산의 아름다운 단풍도 만나고 천은사 구경도 해보세요.
보리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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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천은사 홈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