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는 천년고찰 운문사가 자리하고 있다. 운문사는 어떤 곳이냐?. 557년 신라 진흥왕 18년에 한 신승이 현 북대암옆 금수동에서 3년 동안 수도 정진하여 도를 깨닫고 내려와 도반10여명의 도움을 받아 560년 신라 진흥왕 21년에 7년 동안 오작갑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오작갑사인 운문사는 대작갑사(현운문사), 가슬갑사, 천문갑사, 소작갑사(현 대비사.대비갑사라고도 함),  소보갑사와 함께 창건하였다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현 대작갑사인 운문사를 중앙에 두고 동서 남북으로 사갑사를 배치하였다 한다. 600년인 신라 진평왕 22년에 원광국사가 주지로 와 중창을 하게 된다. 원광국사는 대작갑사와 가슬갑사에서 주석을 하며 가슬갑사에서 화랑인 귀산과 추항에게 화랑도의 기본 정신인 세속오계를 전해주어 신라가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큰 역활를 하였다. 이때 신라는 삼국통일을 위하여 국력을 키우고 군비증강을 위하여 불교와 손을 잡고 운문사 일원에 화랑도의 훈련장이 들어서게 된다. 운문사는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로서 화랑도의 병참기지 역활을 하였으며 운문면 일대에는 선사시대때 부터 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문화유적이 많이 출토 되는데 문헌상으로 남아 있는 마을의 흔적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부터만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이전의 기록들은 남아 있지 않다.이 모두 화랑도등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운문사의2차 중창은 보양국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한후 왕건을 도와 이 일대를 평정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왕건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보양국사에게 운문선사란 사액을 내리고 전지500결을 하사하였다. 그후 1105년에 원응국사 학일스님이 왕사로 책봉되고 운문사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며 1277년 고려 충렬왕때 일연선사가 주지가 되어 삼국유사를 집필하게 되었다 한다. 그 후에도 여러번의 중창을 거듭하며 오늘날의 운문사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현재의 대 가람으로 변모를 하였다.


운문사를 자세히 보면 여타 사찰과 다른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그 이유를 보면 운문사는  대웅전 비로전 금당등 모든 건물들이 운문산와 마주보고 있다. 즉 남쪽의 산을 향해 건립되었는데 풍수학적으로 보면 배산임수와는 정 반대이고 왼쪽은 복호산, 우측은 장군봉인 호거대로 운문사의 가람배치가 배산임수를 그대로 따라 운문산을 등지고  건물이 서 있었다면 현재의 운문사는 볼 수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한다. 그 이유는 운문사 옆으로 흐르는 약야계가 절 앞으로 곧장 빠져나가 재산을 모을 수 없고 운문산의 화기가 절을 덮쳐 비보 차원에서 다른 절과 반대방향인 가람배치를 하였다 한다. 

사실 운문사 경내를 들어설때 보통 일주문을 통과하는데 운문사는 일주문 대신 2층의 법종루 밑으로 통하면 된다.

영남알프스에 걸 터 앉은 절집 현판에는 모두 그 뒤 모산의 산명을 따라 이름을 붙인다. 가지산 아래 가지산석남사가 그러하고 통도사는 영축산통도사, 재약산표충사등 모든 사찰들이 그러하다. 영남알프스 운문사만은 유독 ‘운문산운문사’가 아닌 ‘호거산운문사’로 현판에 적혀 있어 어... 호구산이 어디지, 왜 운문산이 아니고 호거산으로 하였지 하며 궁금해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호거산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어느곳도 정답이 없으며 단지 현재의 우리도 옛 자료를 보며 추측을 할뿐이다. 먼저 운문사는 사찰이름에 나왔듯이 운문사란 이름이 먼저인지 아니면 운문산이 먼저인지 의문이 간다. 운문사란 937년인 태조20년에 후삼국통일을 도운 보양국사에게 왕건이 보답으로 '운문선사'란 사액과 전지500결을 내렸다한다. 그러면 운문산 보다 대작갑사로 불리던 운문사가 먼저 이름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이전부터 운문산으로 불리었을까하는 의구심도 해 본다..

호거산은 과연 어디를 두고 하는 말일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운문사로 들어서는 왼쪽으로는 바위가 절벽을 이루는 두 봉우리가 있다. 산세의 모양이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이라 통점과 염창등 신원마을에서는 복호산으로 부른다. 그리고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를 창건 할때에도 신승이 북대암옆 금수동에서 도를 깨닫고 운문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이곳을 호거대, 호거산으로 보는 이가 많은 것 같다. 다른부류는 운문산 일대로 범봉과 억산을 포함한 이곳을 호거산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하나는 운문사 입구 우측의 툭 튀어오른 암봉이 호거대로 보는 시각이 있다. 신원리에서는 등선바위, 등심바위, 등신바위등으로 불리는 바위로 운문사에서 이 암봉을 장군봉으로 부르고 있다. 청도 향토사학회장 경북향토 사학회장인 박윤재 선생도 운문사 옆 호거대와 그 인근을 호거산으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호거산을 ‘호랑이고 걸터 앉아 있는 산’이 아닌 다른 해석을 내 놓은 것이다.

원광법사가 중국에 유학을 하였던 소주에도 똑 같은 이름의 호거산이 있는데 원광법사가 그 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신라로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원광법사는 운문사에 거주를 하면서 바위가 있는 호거대 일원을 호거산으로 지칭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그 사이의 계곡인 운문사를 가로자르는 큰골도 약야계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그래서 호거산은 원광법사가 중국의 소주 호거산에서 그 이름을 따 왔어며 위치는 호거대와 부근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인지 모르지만 장군평 뒤 우뚝 솟은 봉우리를 보호한다는 뜻인 호산으로 부르고 있다.




운문사의 경내로 들어서면 처음 반기는 것이 500년 된 반송이다. 가지를 밑으로 축처저 일명 처진소나무로 불린다. 봄에 25말의 막걸리를 마시는 나무로 유명하며 안내판에는 어떤 고승이 소나무 가지를 꺽어 심었다하며 높이는 6m,둘레는 3.5m로 나와 있다. 천연기념물제180호.




처진 소나무 옆으로는 만세루가 자리를 하고 있다. 정면7칸 측면4칸의 단층으로 된 팔작지붕이다. 약150평의 크기이며 목조건물이다. 넓은 우물마루에 천장은 천장은 산자를 노출시킨 연등 천장으로 기와명문에는 강희17년, 상량문에는 순치12년이라 명문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1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이 되며 용도는 대웅전과 마주 보고 있어 법회나 설법을 하던 장소로 보고 있다.


새로 건립된 대웅보전이다.
대웅보전의 내부 모습








대웅보전으로 조선 숙종 44년에 중건되었다.정면3칸 측면3칸으로 다포계 양식이며 마륵전이라고도 부른다. 운문사의 대웅보전 터는 행주행으로 전복되는 배모양이다. 그 지세를 누르기 위해 대웅보전 앞에 쌍탑인 삼층탑을 세워 놓았다. 보물제835호




삼층석탑 보물제678호



오백전안의 모습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7호

운문사 사천왕 석주 보물제318호





원응국사비 보물제316호.



이목소
보양국사가 중국 유학길에서 귀국을 할때 서해 용왕의 초청을 받고  용왕을 만나 설법등 해박한 지식으로 용왕을 감동시키니 용왕은 그에게 자신의 아들인 이목(離目)을 같이 데리고 가 스님을 도우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니 보양국사도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귀국울 한다. 이 후 용의 모습을 한 이목은 운문사 옆 깊은 소에서 지내며 보양국사를 도우며 지내게 되는데.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어 인근의 주민들이 기근에 시달리게 되자 스님이 이목을 찾아와 비를 내리게 하였다. 그러나 천제는 하늘의 율법을 어기고 비를 내리게 한 이목을 잡아오라고 사자를 보양국사에게 보내었다. 보양은 이목을 마루 밑에 숨기고 나서 이목을 내어 달라고 하는 사자에게 법당앞의 배나무를 가르키며 '이목 여기 있소' 하니 사자는 배나무에 벼락을 때리고는 하늘나라로 돌아 갔다 한다. 이 이야기는 일연스님이 집필한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이야기이며 용이 되지 못한 뱀을 두고 이무기 또는 꽝철이라 하는데 이무기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한다. 운문사 오백전 뒤 극락교 아래에 있는 이목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의 이목소는 잦은 사태로 인해 메워지고 사찰의 중창으로 메워져 볼품없는 작은 웅덩이에 불과하지만 보양국사가 부임하던 때에는 아마 둘레가 100여m나 되는 깊은 연못이었는 것 같다.

찾아가는길;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3200원. 50분 소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삼계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출발. 운문사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운문사 앞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후 2시30분, 5시25분(막차) 등에 있다. 40분 소요. 3000원.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 신원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운문사 매표소는 금방이다.

 

 

 

  1. Real Estate Directory 2012.03.13 16:47

    나를 위해, 장소 이런 종류의이 나를 항상 붐빕니다. 내가 너무나도 자연을 좋아해요.


근교산&그너머 <718> 제7코스 : 청도 삼계리 나선폭포 ~ 운문사

개울 건너 솔밭길 지나 아, 벌써! 운문사


 
'명산(名山)에 대찰(大刹)'이라고 했던가. 영남알프스에는 그 넓고 깊은 자락에 어울릴 만큼이나 이름난 천년고찰들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특히 양산 통도사, 밀양 표충사, 청도 운문사는 영남알프스를 대표하는 3대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이번 주에 걷게 되는 제7코스는 이 가운데 하나인 청도 운문사(雲門寺)를 찾아가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양바위 앞 운문천을 건너고 있다. 왼쪽의 암봉은 복호산이다. 운문사 가는 길은 높낮이 없는 쉬운 길 . 그래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갈 수 있다.
'운문사'라는 이름이 전해주는 '울림'은 결코 간단치 않다. 한 신승이 진흥왕 21년(560년) 대작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절은 원광법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일연 스님 등 우리 역사에 커다란 자취을 남긴 스님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또 현재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승가대학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200여 명의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부처님의 법과 진리를 터득하고, 나아가 계도중생의 뜻을 펼치기 위해 일과 공부를 구분짓지 않고 조용히 용맹정진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전 문화재청장)는 "운문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비구니 학인스님들이다"라고 했다. 오늘날 운문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손꼽히는 것도 바로 이 학인스님들의 새벽 예불 광경이다. 수백 명 스님들이 함께 새벽을 여는 낭랑한 염불소리와 절제된 행동은 '더할 것 없는 경건함' '모자랄 것 없는 장엄함'의 극치다. 그 외에도 운문사가 주는 '울림'은 수없이 많다. 그래서 가슴 떨리는 길이다.


 


40m 직벽 나선폭포 거쳐 천년고찰까지 14㎞ 구간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운문사로 가는 제7코스는 평지에 자리 잡은 대가람을 찾아가는 길답게 줄곧 평편하고 쉬운 길이다. 그래도 어쩐지 중간에 실컷 딴청도 부려 보면서 최대한 느리게 걸어보고 싶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급하게 운문사로 가면 정갈하고 평온한 절집의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서일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많이 느리지만 그만큼 꼼꼼하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걷는 길은 그 길이 내뿜는 숨소리를 들으며 가는 '호흡의 길'이요 비로소 '길과 하나 되는 길'이다.

출발지는 제6코스 종착지였던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 칠성가든 앞이다. 배너미계곡 중간에 숨어 있는 나선폭포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출발지로 되돌아온 후 운문사로 향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코스를 살펴보면 칠성가든~천문사 입구~나선폭포~천문사 입구~성황당~수리덤계곡 입구~통점마을 당산나무~신원 삼거리~방지초등 문명분교 3·18독립운동기념관~양(용)바위~신원 삼거리~운문사 버스터미널~솔바람길~운문사 순이다. 총 길이 14㎞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휴식 등을 포함하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배너미계곡 기슭에 자리 잡은 나선폭포의 위용.
칠성가든 앞에서 북쪽에 보이는 천문사(天門寺) 입석을 보고 천문사로 향한다. 천문사 방향으로 가면 눈앞에 우뚝 솟은 2개의 뾰족한 암봉이 보이는데 바로 쌍두봉이다. 천문사 일주문 못 미쳐서 '등산로' 표시를 따른다. 잠시 후 하천을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진행하면 천문사 후문이다. 중수 공사가 한창인 천문사를 일별한 후 다시 나와서 왼쪽을 보면 담장 옆으로 길이 보인다. 곧바로 쌍두봉 등산로 갈림길이다. 오른쪽 길을 택해 배너미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임도처럼 넓은 계곡길이 호젓하다. 15분쯤 가면 작은 돌무더기가 서너 개 있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배너미재를 넘어 학소대계곡 학심이골 등으로 갈 수 있지만 나선폭포는 오른쪽 길로 5분가량 올라야 있다.

단일 폭포의 높이로만 따지면 영남알프스의 수많은 폭포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나선폭포는 높이 40m가 넘는 직벽 폭포다. 아직까지 고드름이 폭포에 매달려 있어 이곳은 여전히 겨울이라고 강변하는 듯하다. 2002년 이후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자연 빙벽훈련장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원천 끼고 도는 낮고 평편한 길에서 여유 만끽 

 
  운문사 들머리 마을인 신원리 본동의 흙벽돌 골목길.
다시 천문사 입구 69번 지방도로까지 돌아오는 데는 20분 정도 걸린다. 사실 제7코스는 나선폭포 왕복 구간을 제외하면 운문사 입구까지 대부분의 구간이 아스팔트 도로를 따르게 된다.

69번 지방도를 타고 청도 운문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수리덤계곡 입구를 지나 10분쯤 가면 왼쪽 산자락에 이름 없는 바위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3분 후 왼쪽에 알프스펜션이 보이는데 그 앞 신원천 풍경이 빼어나다. 너럭바위와 이름 없는 소(沼)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물은 걷는 이의 가슴 속까지 청량감을 전해준다. 차를 타고 가면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다. 운문면 사무소와 삼계리마을 주민이 봄철 환경정화운동을 펼치며 상춘객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삼계리마을에서 통점마을로 가다가 만난 신원천의 맑은 무명소.
통점마을 회관 앞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는데, 마을 회관 맞은편 목향공방 뒤편에 수백 년 된 키 큰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보인다. 18세 때 시집 와서 평생을 살았다는 한 70대 할머니는 "우리 동네 최고 어른"이라며 당산나무를 가리킨다. 그는 또 "이 동네는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아. 그래서 신원천 물로 생활을 했지. 우물이 없는 마을인 셈이지"라며 마을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당산나무를 가까이서 본 후 다시 주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에 웅장한 암봉이 보인다.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복호산(伏虎山)이다. 차도 우측에 잔디가 곱다. 느릿하게 걷기에는 딱이다. 운문사와 청도읍 방향으로 갈리는 신원삼거리까지는 통점마을에서 25분 걸린다. 운문사는 왼쪽으로 2㎞ 정도 가야 하지만 일단 오른쪽으로 간다. 방지초등 문명분교에 있는 '운문면 3·18독립운동 기념관'에 들르기 위해서다. 1919년3월18일 청도 최초의 현대식 사립학교인 문명학교(현 문명분교) 교직원과 학생, 졸업생들이 주도해서 펼친 청도 운문면 일대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해 세운 시설이다. 평소 문은 잠겨 있지만 학교 측에 요청하면 기꺼이 문을 열어준다.

◇ 포근한 신원리 흙담 골목 지나 옛 양반 놀이터도 구경

 
  운문사 매표소를 지나면 이 절의 명물인 '솔바람길' 속으로 빨려든다.
기념관을 둘러본 후, 잠시 학생 수 8명뿐인 시골학교 교정에서 우뚝한 복호산을 바라본다. 신선봉으로 불리기도 했던 복호산의 모습이 참으로 웅장하다. 1908년 문명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이 유서 깊은 학교에 다닌 모든 학생들도 저 웅장한 암봉을 보면서 큰 뜻을 품었으리라.

교문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회관 왼쪽 골목길로 들어선 후 '용바우 민박'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따라가 본다. 흙을 구워 만든 붉은색 흙벽돌과 황토를 적절히 섞어 쌓은 흙돌담길이 전통있는 향촌의 풍모를 자아낸다. 골목 끝 운문천 변에서 건너편 물가 왼쪽 바위가 양반들이 소풍놀이를 즐겼다고 해서 양바위, 또는 용을 닮았다고 해서 용바위로 불리는 바위다. 주변 또 다른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차를 타고 운문사를 찾을 때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절경이다.

다시 골목길을 돌아 나와 신원삼거리에서 복호산 등산로 입구 무덤 아래 불망비(不忘碑)를 보고 운문사로 향한다. 두 그루의 낙락장송을 지나는 데 멀리 정면에는 억산 깨진바위가 눈에 확 들어온다. 주변에 미나리 재배 하우스가 많다. 운문사 버스터미널에서 좀 더 가면 매표소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매표소를 통과하면 그 유명한 운문사 송림이 반겨준다. 차도 오른쪽으로 '솔바람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솔길이 나 있다. 300~400년 된 소나무 수천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사이로 오른쪽 호거대를 타고 넘어온 봄바람이 싱그럽다. 잠시 휴대전화를 꺼 놓아야 할 것 같은 길이다.

◇ 전국적 명성의 운문사 '솔바람길'에도 봄기운 성큼

 
  운문사 극락교와 이목소(離目沼).
솔바람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운문사 절 직전 주차장에 닿는다. '호거산 운문사(虎距山 雲門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범종루까지 가는 길 오른쪽은 높지도 낮지도 않아 더욱 정갈한 느낌이 드는 돌담, 왼쪽에는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농사짓는 텃밭이다. 길 양옆으로 벚나무가 도열해 있다. 4월 중순이면 소리 없이 핀 벚꽃이 꽃비를 휘뿌릴 것이다. 그런데 이 돌담은 1980년대 초반 비구니학인스님들이 계곡에서 주워 온 돌을 골라서 쌓은 담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어서도 안된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운문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쏟은 땀과 정성이 깃든 담장이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했다는 이 절 범종루를 통과하면 500년 넘은 반송(盤松·천연기념물 제180호)이 우선 반겨준다. 매년 봄 가을로 막걸리 25말을 마신다는 유명한 처진소나무다. 삼월삼짇날(음력 3월3일)에 막걸리 드리는 행사를 볼 수 있다. 7개의 국가지정 보물을 간직하고 있기도 한 절인 탓에 순례객들이 간과한 채 잘 못 보고 지나가는 곳이 있다. 비로전 (오래 된 대웅보전) 서쪽 계곡을 가로지르는 극락교와 그 아래 웅덩이인 이목소다. 사실 운문사에서 무언가를 보겠다는 마음은 욕심이다. 그저 호젓한 분위기에 젖어 본다는 느낌이면 그만이다. 일반인은 건널 수 없는 극락교와 그 아래 이목소는 운문사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그만인 장소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보양국사와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에 얽힌 전설을 떠올리면서 남쪽 멀리 우뚝한 운문산을 바라본다. 산과 산 사이로 구름문이 열렸다.


# 떠나기 전에- 이목소 전설

- 서해 용왕 아들과 보양국사의 우정과 의리 전해져

운문사 경내 극락교 아래 이목소(離目沼)가 있다. 옛날에는 사방 100m가 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연못이었다고 알려진 이 야트막한 웅덩이에는 10세기 중반 운문사를 중창한 보양국사와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離目)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일연 스님이 이 절에서 집필을 시작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다. 보양국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서해 용왕의 초청으로 용궁을 방문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지면서 용왕이 자신의 아들 이목을 데리고 가 달라는 부탁을 하자 보양국사는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용의 모습을 한 이목은 이 연못에서 지내며 스님의 사찰 중창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해 심한 가뭄으로 인근 주민들의 기근이 극에 달하자 스님이 이목에게 부탁해 비를 내리게 했다. 그러나 정작 하늘의 천제가 격노한 것이 문제였다. 비를 뿌리는 것은 하늘의 조화인데 감히 바다 용왕의 아들이 이를 거슬렀다는 것이다. 천제는 보양국사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이목을 벌하려 했다. 보양 스님은 진짜 이목을 툇마루 밑에 숨게 하고 법당 앞의 배나무(梨木)를 가리켰다. 이에 천제의 사자는 배나무에 벼락을 때리고는 하늘로 돌아갔다. 골짜기 연못에 사는 큰 뱀을 일컫는 '이무기'라는 말도 바로 이목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으로 전설같은 이야기다.


# 교통편 & 먹을 곳

- 언양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버스 오전 9시에 출발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3200원. 50분 소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삼계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출발. 운문령 너머 삼계리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운문사 앞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후 2시30분, 5시25분(막차) 등에 있다. 40분 소요. 3000원.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칠성가든까지 금방이다.

음식점 겸 찻집도 한 곳 소개한다. 운문사 매표소와 버스정류소 사이에 있는 '어화벗님(054-372-6638)'이다. 사진 작가인 배춘옥 씨가 6년째 운영중인 이 집은 손칼국수와 녹두감자전 등이 맛있다. 다양한 야생화 차와 동동주도 맛볼 수 있다. 2층 모서리 창가 자리는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인기 있는 테이블. 배씨가 직접 키운 봄꽃도 예쁘다. 운문사 스님들도 자주 들른다.


# 운문사 터 잡은 호거산은 어디?

- 청도 사학계 "호거대가 바로 호거산"

 
  운문사 매표소 부근에서 바라본 호거대.
둘레길 제7코스의 핵심은 역시 종착지인 천년고찰 운문사(雲門寺)다. 그런데 범종루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운문산 운문사'가 아니라 '호거산(虎距山) 운문사'라고 돼 있어 호기심 많은 순례객이 머리를 갸웃거리곤 한다. 공식 지형도 그 어디에도 없는 이름인 호거산. 한자의 뜻 대로만 보면 '호랑이가 걸터앉은 모양의 산'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 문제를 놓고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정확한 답은 없다. 다만 이 문제를 풀기위해 고심하고 공부하다 보면 운문사는 물론 영남알프스 일대를 좀 더 깊이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청도 지역 향토사학계의 의견과 고지도 등에 나타난 호거산의 위치 등을 종합해 간략하게나마 고찰해 본다.

우선 호거산 위치에 대한 여러 주장들부터 살펴보자. 절의 남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인 현재의 운문산(1195m)을 원래의 호거산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고, 억산과 범봉 일대를 통틀어 일컫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내원암 사리암 청신암 등과 함께 운문사의 4대 부속 암자이면서 운문사 창건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모암(母庵)으로 알려진 북대암이 자리잡은 북동쪽의 복호산(伏虎山·678m)과 지룡산(池龍山 또는 地龍山·659m)을 합쳐서 호거산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운문사 매표소 오른쪽(서쪽) 산등성이 위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는 모습이 보이는 '호거대(일명 장군바위 등선바위 등심바위·516m)' 주변 일대 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각 주장마다 나름대로의 근거도 있다.

하지만 향토사학계의 해석과 김정호 작 대동여지도 등에 나타난 호거산위치 등을 고려할 때 '호거대=호거산' 설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우선 대동여지도를 살펴보자.그런데 먼저 주목할 것이 바로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운문산의 위치다. 고산자 선생은 지동에서 운문산의 위치를 현재의 운문산과 판이한 곳에 표시했다. 가지산과 고헌산 사이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뻗은 큰 산줄기 상의 높은 산으로 표시한 것. 즉 현재 문복산의 위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산에서 서쪽으로 흐른 지능선은 현재의 옹강산 줄기로 보이고 그 맥은 큰 하천 두 개가 합수되는 지점, 즉 현재의 신원천과 운문천이 만나는 운문면 신원리 신원교 인근까지 뻗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합수지점 서쪽의 능선상에서 작은 글씨로 호거산을 표시했다. 현재의 운문천 서쪽 자락 능선이다. 또 호거산 표기 지점의 동쪽을 흐르는 운문천 줄기에 '약야계(若耶溪)'가 표시돼 있다. 현재도 운문사 서쪽 하천을 약야계라고 부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고산자 김정호는 호거대 또는 그 주변을 호거산으로 봤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청도 향토사학회장 겸 경북 향토사학회장인 박윤재 선생도 호거산의 위치를 현재의 호거대라고 단언한다. 박 회장은 "운문사 절 서쪽에 호거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호거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때 원광법사가 중국 유학을 다녀온 후 운문사에서 주석을 할 때 중국 소주의 호구산(虎丘山) 이름에서 음을 따 온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가 걸터 앉은 모습의 산'을 뜻하는 '호거산'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광법사는 중국 유학시절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소주(蘇州)의 호구산에 들어가 그곳에서 수도하며 평생을 마칠 생각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청에 못 이겨 펼친 강론에 청중들이 감화되는 것을 보고 세상에 나가 중생계도를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전한다. 그만큼 높이 37m의 비록 아주 낮은 언덕 같은 산이지만 호구산은 원광법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또 하나 현재 운문사 약야계도 소주 호구산과 연관돼 있다. 오왕 합려가 죽은 후 제위에 오른 부차가 아버지의 무덤을 만든 곳이 호구산이고, 부차는 월나라 출신 미녀 서시에게 빠져 결국 패망의 길을 걷는 인물이다. 서시는 호구산에서 오왕 부차와 자주 노닐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약야계'란 범려가 서시를 발견한 절강성 소흥의 아름다운 하천 이름이다. 그 약야계가 운문사 옆 하천의 이름이 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사실 '호거대=호거산' 설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김정호 선생도 틀릴 수 있기에. 다만 이런 고찰을 통해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이야기가 더욱 풍요로워 질 수는 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둘레길 7코스 출발점으로 천문사를 입석을 보며 나선 폭포를 보기위해 따라간다.

천문사 방향으로 들어가면 형제 용의 전설이 서려 있는 쌍두봉이 정면이다.

배너미게곡으로 따라간다. 멀리 학심이계곡으로 넘어가는 배너미고개가 보인다.


현재 불사가 진행중인 천문사 경내

나선폭포로 영남알프스에 속해 있는 폭포로 한겨울철에는 부산경남 클라이머에게는 빙벽의 기쁨을 맛보게하는 곳이다.

운문사로 향하는 도로상에서 보이는 기암

신원천에서 만나는 작은 폭포와 소로 물이 맑기로 거울같이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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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점마을의 당산나무로 이마을 최고의 어른이라 이야기를 하며 여러기의 소나무가 자라 있다.

통점마을의 노거수

운문면 일원의 3.18독립만세운동으로 문명분교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청도군에서는 사학재단으로는 1호로 개교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산골의 학교이다. 8명의 전교생이 현재 수업을 하고 있다.

3'18운동의 자료를 모아 놓은 곳으로 문명분교 안에 있다.

운동장에서 본 복호암으로 신원에서는 복호암의 정기로 문명초교에서 이름난 분들이 많이 나왔다고 자랑을 하신다.

신원리 염창마을의 돌담길로 운치가 있다. 대부분 돌담은 솥을 구운 가마터의 흙으로 쌓아 놓았다.염창마을은 삼국시대때는 화랑들의 식료품창고이며 그 후 운문사가 번창을 하였을때 운문사의 해산물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한다.

양바위로 양반들이 물맑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놀았다하여 부르게 되었는데 근래에 와 용바위로도 부른다 한다. 

양바위를 보고 운문천을 건너는 취재팀 뒤로 갈대가 무성하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다하여 복호암으로 부르고 있다.


호거대, 등선바위 장군봉 덧니바위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 일대가 "호거산"이라 하며 "호거산 운문사"란 사찰 이름이 생겼다 한다.

운문사 매표소로 소나무 숲길이 운치 있는 솔바람길이다.



운문사 를 들어서는 문으로 일주문은 따로 없다.

매년 막걸리를 마신다는 처진 소나무와 만세루

처진소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수령은 500년으로 보고 있다.

이목소로 극락교 아래에 있다 현재는 둘레와 깊이가 형편없는 하천이지만 이목소가 메워지지 이전에는 넓고 검푸른 소 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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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풍재에서 범봉으로 가는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 서면 억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사진상으로 깨진 모습의 구분이 안 되지만 실제로 보면 독특한 형상이 확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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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봉을 오르기전 전망대에서 본 억산 깨진바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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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사입구에서 바라본 억산 깨진바위, 보이는 모습이 다르며 쪼개진 모습이 확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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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의 천문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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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사 앞 다리를 건너면 좌측 등산로 이정표를 따라간다. 곧이어 계곡 건너 부도밭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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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사를 지나면 만나는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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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풍재의 안내판과 전망대에서 본 밀양 산내면 쪽의 산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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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산 깨진바위 거참 희한하게 생겼네

산행 시·종점 각각 대비사 운문사…볼거리 무궁무진

오를 때 대비골, 하산 때 천문지골·큰골 모두 계곡산행

걷는 시간만 4시간5분…산행 답사 '두 마리 토끼' 가능

억산 정각산 개물방산 호거대 지룡산 등 모두 조망

천년고찰 운문사는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영주 부석사 등과 함께 전국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사찰 중 하나이다. 절로 향하는 길 주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빠알간 늦사과와 노오란 은행잎이 환상적인 영주 부석사만 만추에 유독 두드러질 뿐 나머지 사찰은 사시사철 꾸준하게 발길이 이어진다.

명산에 명찰이라 했던가. 선암사는 전형적 육산인 조계산이, 대흥사는 다도해 국립공원을 굽어보는 암봉인 두륜산이, 소백산 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는 부석사는 백두대간인 소백산 줄기가 품고 있다.

청도 운문사는 차고 앉은 형세가 다른 사찰과 사뭇 다르다. 통상 사찰은 산을 등지고 있는데 반해 운문사는 운문산과 마주보고 있다. 실제로 옛 비로전인 대웅보전 앞에 서면 운문산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한데, 절집 앞 현판에는 '호거산(虎踞山) 운문사(雲門寺)'라 적혀 있다. 호거산은 절 북서쪽에 위치한 호랑이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한 암봉으로 일명 등심바위. 통상 절이름 앞의 산이름은 가장 근접한 곳의 봉우리 이름을 붙인다는 관습에 따라 호거대라 불리는 암봉을 호거산으로 바꿔 붙였지 않나 싶다.

뜬금없이 운문사를 화두로 꺼낸 까닭은 독자들의 전화 때문. 그들은 한결같이 하산 지점이 운문사인 코스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운문사로 하산 가능한 봉우리는 운문사 북동쪽의 지룡산, 북서쪽의 호거대(등심바위)와 딱밭재에서 떨어지는 천문지골, 아랫재에서 시작되는 심심이골 그리고 상운산이나 가지산에서 출발하는 학심이골 정도.

지룡산 호거대 심심이골 학심이골 등은 최근 소개했거나 코스가 너무 길어 고민 끝에 산행팀은 청도 대비사에서 출발하는 범봉 코스를 택했다. 한적한 천년고찰 대비사에서 대비골로 올라 적당히 능선길을 걷다가 천문지골로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점이라면 원점회귀가 아니라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

구체적 경로는 청도군 금천면 대비사~대비골~팔풍재~전망대~등심바위(호거대) 갈림길~범봉~딱밭재~천문지골~큰골(운문천)~운문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5분 정도. 들머리와 날머리의 천년고찰 대비사와 운문사를 구경하고, 오르내릴 때의 대비골과 천문지골에서 발을 담그며 땀을 식히노라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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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천년고찰 대비사 옆으로 억산 깨진바위가 보인다. 

들머리는 대비사. 이 코스는 산 너머 밀양 석골사와 함께 억산으로 오르는 유이(唯二)한 산길이지만 오지여서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이 점이 되레 한적한 산행을 가능케 해주는 순기능 역할을 하고 있다.

호거대 아래 첩첩산중에 터를 잡은 비구니사찰 대비사 주차장 입구 '등산로'라고 적힌 조그만 이정표를 따라가며 산행은 시작된다. 절로 가는 길이 우측에 열려 있고 좌측 다리 건너에는 절벽 아래 부도전이 눈에 띈다.

들머리에서 4분이면 산으로 들어선다. 굴참 신갈 등 활엽수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곧 갈림길을 만나지만 좌측 계곡(대비골) 쪽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출입을 막고 있어 우측으로 오른다. 계곡과 나란히 걷지만 아직은 산길에서 접근이 어려워 무작정 오른다. 20분쯤 올라야 비로소 계곡으로 가는 소로가 열려 있지만 무시하자. 5분 뒤 계류를 건너기 때문이다. 바닥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유난히 물이 맑은 데다 아주 차다. 조금 더 오르면 나홀로 '알탕'을 하기에 제격인 작은 소가 여럿 보인다.

이어지는 산길. 농짝 내지 집채만한 바위가 정면에 병풍처럼 떡 버티고 있는 가운데 이끼 낀 작은 바위 사이로 산죽길이 기다린다. 이어 만나는 지계곡 물길을 건너면 산길은 지그재그로 바뀌며 상당히 가파른 된비알로 돌변한다. 여기에 바닥은 너덜길이 한동안 이어져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특히 주능선인 해발 770m대의 팔풍재로 오르기 전 300~400m 구간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GPS 단말기로 얼핏 봐도 45도의 경사는 될 법하다. 들머리에서 팔풍재는 2.6㎞로 1시간35분 걸린다.

팔풍재는 사거리. 우측은 왕복 40분쯤 걸리는 억산(0.6㎞), 직진하면 석골사(2.7㎞), 산행팀은 좌측 운문산(3.7㎞) 딱밭재(1.9㎞) 방향으로 향한다. 약간의 굴곡이 있어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전체적으로 내리막길로 수월한 편이다.

오르막은 8분쯤 뒤부터 시작된다. 12분쯤 지그재그길을 힘겹게 오르면 전망대에 닿는다. 억산을 비롯한 주변 산들이 한눈에 파악된다. 약간 정면이지만 쩍 갈라진 깨진바위의 확인이 가능하다. 우측으로 들머리 쪽인 대비지가 보이고 발아래 골짜기가 방금 산행팀이 올라온 곳이다.

억산 좌측 밀양 쪽에는 수리봉 실혜산 정각산 승학산 용암봉 종남산 덕대산이, 억산 바로 우측 저멀리 비슬산이 확인된다. 대비지 좌측 솟은 산이 개물방산, 그 뒤로 선의산 용각산 대왕산 통례산 학일산, 대비지 우측으로는 호거대, 그 뒤로 도롱굴산 서지산 옹강산 지룡산 서담골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3분쯤 급경사길로 오르면 등심바위(호거대) 갈림길. 좌측은 대비사 쪽으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능선길, 산행팀은 우측으로 오르다 다시 내려선다. 이제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범봉이다.

집채만한 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해 '좌 청도, 우 밀양' 산길을 걸으면 숲에 가려 조망이 하나도 없는 좁다란 공터에 닿는다. 범봉(969m)이다. 이정표와 119 구조 표지목이 나란히 서 있지만 범봉이라 적힌 정상석은 없다. 대신 누군가가 이정표 상에 검은 매직펜으로 '범봉'이라 적어 놓았다.

우측은 상운암계곡 또는 대비골 방향,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4분 뒤 좌측으로 시야가 트인다. 맨 앞 회백색 바위들이 보석처럼 박힌 능선이 지룡산줄기이며 정상은 10시 방향 쪽 봉우리다. 그 아래 북대암이, 산행팀이 선 곳에서 정면에는 사리암이 보인다. 그 사이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옹강산이며, 그 뒤 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룡산 단석산 문복산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내리막길의 종착지는 딱밭재. 전망대에서 10분. 옛날 이 주변에 닥나무가 많아 명명됐다고 전해온다. '글월 문(文)' 자가 들어가는 천문지골이란 이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다.

딱밭재 역시 팔풍재와 마찬가지로 사거리. 직진하면 운문산(2㎞) 우측은 석골사(2.9㎞), 산행팀은 좌측 천문지골을 거쳐 운문사(4.5㎞)로 향한다.

30분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칠고 순한 지그재그 너덜길을 내려오면 비로소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후 산허리길을 돌며 천문지골이 빚어낸 운치있는 풍광을 감상한다. 와류가 흐르는 제법 미끄러운 암반을 지나면 일순간 편하고 너른 길을 만난다. 3분 뒤 계곡과 만난다. 유량도 적절하고 주변 풍광도 빼어나 잠시 쉬어가기에 적합하다. 이 계곡을 지나면 사실상 산책로 수준의 산길. 10분 뒤 운문산 자연생태 조사를 위한 일종의 텐트인 트랩도 지난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계곡과 나란히 걷는다. 여유가 있으면 맘에 드는 계곡의 한 지점에 내려가 쉬어가면 어떠하리. 짧게는 3분, 길게는 9분 간격으로 네 번의 계곡을 지나 150m쯤 걸으면 갈림길. 딱밭재에서 1시간25분 소요. 좌측은 운문사 승가대학 학장인 법계 명성 스님의 처소인 죽림헌 방향, 산행팀은 직진형 우측으로 향한다. 잠시 후 다시 큰골을 건너면 사리암에서 운문사로 이어지는 포장로에 올라서고 여기서 입산통제 초소를 지나면 운문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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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경내와 등심바위 능선에서 잡은 운문사 전경

◆ 떠나기 전에

- 2만5000분의 1 지형도, 범봉 자리에 억산 표기 오류

이번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는 각각 천년고찰 대비사와 운문사. 모두 비구니 사찰이다. 신라 진흥왕 557년 한 선승이 청도 호거산(지금의 호거대)에 들어와 3년 동안 수도를 한 후 절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 스님은 현 운문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산허리 갑(岬)' 자가 들어가는 '오갑사(五岬寺)'를 7년 만에 완성했다. 동쪽의 가슬갑사, 서쪽의 대비갑사, 남쪽의 천문갑사, 북쪽의 소보갑사 그리고 중앙의 대작갑사가 바로 그것. 대작갑사와 대비갑사는 각각 지금의 운문사, 대비사이며 나머지 세 갑사는 폐사돼 찾을 길이 없다.

그 흔한 일주문이나 천왕문조차 없는 대비사는 그야말로 심산유곡 깊은 산골에 위치한 절집. 단청이 모두 벗겨져 고풍스러운 맛이 물씬 풍기는 맞배지붕의 보물 제834호 대웅전이 우선 눈길을 끈다. 이곳에선 깨진바위로 불리는 독특한 형상의 억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종점인 박곡(리) 도로변에 위치한 보물 제203호인 박곡리 석가여래좌상도 챙겨보자. 석굴암과 시기와 양식이 비슷한 이 불상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날머리 운문사는 설명이 필요없는 아름다운 사찰. 노송들의 빼어난 각선미는 언제 봐도 가슴을 뛰게 하고 천년기념물인 500년 된 처진소나무는 언제봐도 정감이 간다. 경내에선 남쪽으로 운문산이 포근하게 다가오고, 북동쪽으로 운문사보다 먼저 창건된 북대암을 품은 지룡산의 암봉이, 북서쪽으로는 호랑이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한 호거대(등심바위)가 손에 잡힌다. 수줍게 총총걸음을 옮기는 비구니들도 정겹다. 불전사물도 놓치지 말자. 법고 목어 운판 범종 순으로 시방세계에 어둠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이다. 불전사물을 두드리는 이가 모두 이승이며, 50여 명의 동료 학인스님들도 예를 갖추고 함께 동참해 눈길을 끈다. 또 한 가지.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행하는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범봉의 자리에 억산이라 표기돼 있고, 억산 자리에는 그냥 깨진바위라고 적혀 있다. 첨언 하나 더. 천문지골 학심이계곡 등 운문사를 끼고 있는 계곡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므로 하산길에 물가로 내려 몸을 씻는 행위는 삼가주시기 바란다.

◆ 교통편

- 운문사에선 사리암 오가는 직행 버스 이용하면 편리

열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부산역에서 청도행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6시45분, 7시55분, 9시10분, 10시30분에 출발한다. 1시간 걸리며 4800원(주말 5000원). 청도역에서 길을 건너 인근에 위치한 청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동곡에서 내린다. 오전 9시20분, 10시10분, 10시50분에 있다. 1시간 걸리며 3500원. 동곡정류장에서 들머리 대비사에 가기 위해선 박곡(리)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오전 9시45분, 11시30분. 1000원.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동곡정류장 입구에 있는 개인택시(054-372-3066)를 이용하면 된다. 9000원.

날머리 운문사에선 부산역에서 사리암을 오가는 직행버스(011-507-8801)를 타면 된다. 오후 4시30분(토요일만 오후 4시) 출발. 7000원. 이 버스를 놓쳤을 경우 청도로 가서 열차를 타야 한다. 청도행 버스는 오후 3시50분, 4시50분, 5시40분, 7시15분(막차). 3500원. 청도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는 오후 1시54분, 5시51분, 6시15분, 6시40분, 7시52분, 9시40분에 있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입력: 2008.08.13 20:27 / 수정: 2008.08.13 오후 8: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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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봉정상과 딱밭재에서 천문지골로 내려서는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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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밭재의 급한 하산길로 지그제그길로 이루어 지고 습한 습지로 관중등 다양한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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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지골을 내려서면 만나는 지계곡 합수점의 암반으로 물이 흘러 내릴 시 주의를 해야하는 구간이며 천문지골의 옥수가 담긴 소가 여럿있다.

  1. 황민우 2013.05.03 07:58

    국제신문에 있는 산악자료를 많이 참고하고있습니다~
    다른 지도는 원본을 받아 사용하는데 범봉~천문지골만 원본지도가 다운이 안되서 그러는데 받을수 있을까요?? (mandal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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