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석골 복호폭포·오룡골 삼백척반석… 발길 닿는 골마다 숨은 비경 줄줄이
영남알프스에는 크게 5개의 큰 줄기가 있다. 그 가운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거쳐 시살등 오룡산 염수봉으로 이어지는 남동릉은 대도시권에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산줄기다. 그렇다보니 부산 울산 양산 지역민들에게는 그만큼 친숙한 능선이기도 하다. 소위 '문명세계'와 가깝다는 것은 또한 그만큼 많은 길을 품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배내골 대리에서 '석계 시살등' 고개를 넘어 양산시 상북면 내석마을까지 걸었던 지난 주(제18코스) 코스는 어쩌면 어머니 뱃속 같은 영남알프스의 속살을 헤집고 매끈하게 치장한 피부 표면으로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 드는 길이었다.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발길 닿는 골마다 숨은 비경과 호비등길 영남알프스 둘레길 19코스
이번 주 제19코스는 소위 '내석 임도'라고 불릴 정도로 촘촘하게 얽혀 있는 오룡산 남쪽 및 동쪽 자락의 임도를 타고 걷는 길이다. 그렇다고 삭막한 포장도로만 상상한다면 오해다. 좀처럼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비경도 발견할 수 있고, 사람의 발길이라고는 닿지 않은 것 같은 한적한 숲길도 걷는다. 임도 구간 또한 절반 이상은 걷기 편한 흙길이다. 우렁차지 않은 대신 살며시 속삭이듯 귓전을 적시는 계곡물 소리는 여름 둘레꾼의 영원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출발은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 마을회관앞이다. 오룡골과 외석리를 거쳐 삼감리 마을회관 앞에서 끝낸다. 총거리는 16㎞,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40분이다. 식사 및 휴식시간까지 포함하면 6시간쯤 걸린다.
■ 오룡산 휘감는 임도· 숲길 걷는 16㎞ 구간… 6시간 걸려
영남알프스의 숨은 비경인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의 2단 폭포인 복호폭포는 의외로 유량이 많다. 한때 마을 주민들의 여름철 물맞이 장소였다. |
승용차 1대 정도 통행 가능한 마을길. 우측으로는 내석천 맑은 물이 흐른다. 8분 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내석고개(옛 이름 당곡고개)로 오르는 임도길이지만 내석천을 따라 오른쪽 길로 직진한다. 계곡 건너 작은 다랑이논에서 정성들여 손발을 놀리고 있는 촌부의 염원을 아는 것일까. 6월의 연둣빛 모는 어느새 초록빛 벼로 성큼 자라나 있다. 그렇다. 여름은 만물이 성장하는 '성숙의 계절'이다. 3분 후 오른쪽 오전교를 건너 오르막을 탄다. 오전마을로 가는 길. 시멘트 포장길이다. 5분쯤 갔을까. 두 굽이째를 돌고나면 반사경 20m 못미친 곳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임도를 벗어난다. 복호폭포 또는 오전폭포라고 불리는 숨은 비경을 보기 위해서다.
숲길을 10m가량 내려서면 김해 김씨 묘가 있는데 묘 앞에서 왼쪽으로 비집고 들어가 계곡으로 내려서자 저만치 숨어 있던 2단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단 직폭은 높이 4m 정도 밖에 안되지만 그 위 상단폭포까지 합치면 13m는 족히 될법한 대형 폭포다. 내석마을 주민들이 옛날부터 등이나 어깨에 물맞이를 했다는 이 폭포는 그동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개척단이 비로소 세상에 그 존재를 널리 알리게 되는 것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개척하면서 갖게 되는 가장 큰 보람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소개하는 기쁨인 것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들머리인 내석리 오전교 부근 다랑이논과 삽을 든 농부. |
■ 큰 능선 2개 넘어야 하지만 힘들이지 않고도 주파 가능
오룡산 허리를 휘감아 도는 흙길을 걷고 있는 둘레길 개척단. |
'오룡반석'에서 몇몇 양계장 및 축사 앞을 통과해 석계공원묘지 입구까지는 15분, 다시 광명사표지석 앞 갈림길까지는 5분쯤 걸린다. 광명사 방향인 왼쪽길로 들어서야 하지만, 200m정도만 직진해서 연구대(蓮龜臺)를 보고 되돌아온다. 연구대는 옛날 양산의 많은 선비들과 시인 묵객들이 풍월을 읊으며 더위를 식혔던 곳으로 바위에는 많은 한시가 음각돼 있지만 그 내력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 없어 아쉽다. 몇몇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숯불을 피워가며 피서를 즐기고 있을 뿐.
■ 연구대 삼감리 대숲길 등 빠트리면 아쉬운 곳도 많아
오룡골에는 길이 100m 이상 되는 암반 덩어리가 계곡 바닥을 이룬다. |
삼감리 대숲길. 햇볕 한 줌 들지 않아 보조광을 이용해 촬영했다. |
◆ 떠나기 전에
- 내석마을 가기 전 천연기념물 '신전리 이팝나무' 볼 만
여름철 둘레길을 걷다 보면 '모기와의 전쟁'을 치르기 일쑤다. 특히 숲길을 걸을 때가 심하다. 제19코스의 경우 막바지 구간인 삼감리 대나무숲길에서 모기떼의 습격을 받았다. 불과 100m 남짓한 대숲길을 통과하면서 물린 곳이 수도 없다. 뾰족한 대책은 없다. 다만 긴 소매 상의와 긴바지를 착용하고 다소 빠른 걸음으로 통과하는 것이 상책이다. 삼감리 대숲은 '호비등'이라고 불리는 능선의 끝자락에 있다. 마을 뒤 능선을 호랑이가 날아가는 듯한 형상이라고 호비등이라 했다고 전해온다.
한편 들머리로 가기 전에 석계 내석입구삼거리에서 삼계교를 건너 내석마을로 향할 때 첫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1㎞쯤 가면 천연기념물 제234호인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가 있다. 줄기 둘레 4.15m, 키 12m인 이 나무는 밑둥이 갈라져 있어 신기하다. 초여름이면 나무 전체를 덮은 하얀 꽃이 장관을 이룬다. 고목 한 그루가 그 어떤 문화재보다 인상적일 때가 종종 있다.
# 내석 이입정사 진입로 밝히는 달마도
- 대학 강단 떠나 불가 귀의한 황금산 스님, 내석~통도사 '명상의 길' 조성 염원 담아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 오전마을의 이입정사로 오르는 길은 달마도를 감상하며 걷는 길이다. |
과연 이 달마도는 어떤 연유로 이렇게 길 가에 걸리게 됐을까? 알고보니 이 달마도들은 '대한불교 약사종 총본산'이라고 부연 설명이 돼 있는 이입정사의 회주스님인 황금산(黃錦山) 스님이 직접 그린 작품들이었다. 황금산 스님은 동국대학교와 계명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의과학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던 선서화 화가 겸 학자다. 속명은 황신규 씨. 대한민국불교미술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국내에서는 달마도와 선서화(禪書畵)의 권위자 중 한 명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달마도와 선서화, 금니사경화 등에 관련된 많은 저서와 연구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교단에서 물러난 후 법명을 '금산(錦山)'이라 하고 불가에 귀의, 지난해 이입정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그가 직접 그린 달마도를 길 가에 전시한 까닭은 무엇일까? 황금산 스님은 "양산 내석에서 시작해 통도사 자장암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그야말로 걷기 편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은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참된 자아를 찾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걷기에도 딱 좋다. 그래서 참선과 수행을 강조하는 선사상의 태두이신 달마대사의 그림을 이 길에 걸어 보았다. 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고요함 속에 진실된 자아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고 밝혔다.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거대한 달마도 야외 전시장으로 꾸민 것이다.
그는 개인적인 염원으로 시작한 달마도 걸개그림 전시를 계속할 예정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석리에서 통도사까지 이어지는 길을 '명상의 길, 달마로'로 만드는 것이 작은 목표다. 그는 "흔한 말 같지만 영남알프스를 끼고 있는 이 길을 '명품 명상로'로 조성해 가꾸고 널리 홍보한다면 양산시 입장에서도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이라며 "물론 양산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협조와 지원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남은 여생을 이 일에 바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회갑이 다되도록 불교 신도로 살아오다가 교단을 떠나 결국 불가에 귀의하게 된 황금산 스님의 염원이 이뤄질 수 있을지 관심있게 지켜 볼 일이다.
◆ 교통편
- 지하철 양산역에서 내석행 시내버스 이용하면 편리
부산도시철도 2호선 양산역 앞 우측 버스정류소에서 내석행 시내버스(107, 10번)를 탄다. 오전 6시30분, 7시30분, 8시50분, 11시30분 등. 내석 마을회관 앞에서 하차한다. 40분 소요. 답사를 마친 후 삼감마을에서 내원사 입구 용연 버스정류소까지 걸어야 한다. 15분 소요. 부산행 12번, 13번 버스가 15~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부산지역 교통카드 환승 가능.
자가용 이용시 경부고속도로 양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 언양 통도사 경주 방면 우회전 후 5.7㎞쯤 가다가 석계리 내석입구사거리에서 좌회전, 삼계교를 건너 골짜기 안쪽으로 직진한다. 석계공원묘지 앞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내석마을회관까지 갈 수 있는데, 주차 공간도 마련돼 있다. 답사 후 차량 회수를 하려면 삼감마을에서 신평렌트카(055-375-8212)를 이용하면 된다. 요금 1만 원 안팎.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