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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리서낭당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에 가면은 2007년 4월6일 마을 공동으로 세운 서낭당이 있다.

한때 이곳은 오지중의 오지로 주위에 영남알프스 연봉들이 마을을 감싸 않아 천재로 인한 피해와 맹수들의 피해로 부터 마을의 안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서낭당이 세워 져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와 관리를 하지 않아 황폐화 되었다 한다.

 


 

 1970년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홍영기씨가 주축이 되어 다시 이곳에 서낭당을 건립하였는데 40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흉물로 되어 버린 것을 마을 주민들이 서낭당 재건위원회를 꾸려 2007년 4월에 새로운 모습으로 서낭당을 건립하였다 한다. 이곳의 삼계리는 지리적으로 보면 언양에서 청도 땅을 넘어 오는 길중 가장 빠른길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 진다. 어사 박문수도 언양의 관현에서 청도땅을 밟기 위해 이 운문령을 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금은 지방도가 뚫여 있지만 언양 방향에서는 도로가 지그제그로 나 있어 힘들게 오르며 청도땅의 생금비리 계곡은 구절양장의 긴 계곡을 드리워 한낮에도 컴컴하다. 지금도 이러한데 예전에는 맹수와 도적으로 인해 넘어 다니기 힘든 고개 였을 것이다. 또 다른 고개인 배너미재는 어떠한가. 밀양 산내에서 경주로 들어가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 아랫재를 넘는 것이다.  심심이골을 내려와 배너미고개를 올라서면 삼계리가 지척이다. 이곳을 지나 수리덤계곡을 걸어 경주 산내면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삼계리재를 넘어야 한다. 심원사 옆 구름재를 다시 올라 건너편 숲고개로 넘어야만 산내면 소재지로 민가다운 곳을 만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만큼 삼계리는 오지중의 오지로 마을의 평안과 맹수로 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민간신앙이 그만큼 절실하였을 것으로 보고있다.


역사적으로는 어떠한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의 화랑도들이 훈련을 한 장소로 영남알프스와 그 인근을 택했다. 지리적으로 경주와 가깝고 전술적으로도 험준한 산세 때문에 고구려, 백제에 전력이 노출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잇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삼계리는 오작갑사의 하나인 가슬갑사가 있었다 한다. 가슬갑사는 원광국사가 화랑인 귀산과 추항에게 화랑의 기본이념인 세속오계를  전하였던 곳이다. 그리고 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공격할때 이곳 지룡산과 복호산 일원에 산성을 쌓아 신라를 멸망케 하였는데 현재도 지룡산성,호거산성 또는 견훤산성이라 부르고 있다. 근대에 와서는 서로  이념이 다른 무리들의 피난처로 이 깊은 골짜기를 택하여 숨어 들었다. 속칭 '뺄갱이"라 어릴적 부터 들어 왔는 소리로 군경의 소탕작전과  좌익들의 양민 학살로 인해 삼계리와 영남알프스는 조용한 날이 없었을 것이다. 생금비리골, 배넘이골, 계살피골이 만나는 삼계리 서낭당은 이러한 앙금을 다 씻어 내며 오늘도 이자리에 서서 마을의 안녕과 지나는 길손의 무사기원을 빌어 주고 있다.

찾아가는길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3200원. 50분 소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삼계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출발. 운문령 너머 삼계리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가지산 온천방향인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으면 운문산 자연 휴양림을 지나면 삼계리가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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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717> 제6코스 : 경주 심천~청도 삼계리

계살피계곡 비경 바라보며 '세속오계' 가르침 되새기네

 

가설갑사 절터 옆의 계살피계곡으로 '가설갑사옆 계곡'이란 뜻을 가졌다. 삼계리 마을 부터 이어지는 계곡은 자연의 풍광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여과 없이 보여 주는 문복산의 주 계곡이다. 

 


 



경주와 청도 사이에 솟아 있는 문복산(文福山·1014m)은 한때 영남알프스 권역에 포함되지 못한 채 '설움'을 겪었다.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일부 수도권 산꾼들이 언제부턴가 가지산 운문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 등 7개 봉우리만 '영남알프스'로 대우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그들은 운문령 동쪽과 북쪽에 있는 해발 1000m급 봉우리인 고헌산(高獻山·1034m)과 문복산은 영남알프스와는 별개의 봉우리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는 문복산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의 인식일 뿐이다. 현재 영남의 산꾼들 가운데 문복산을 영남알프스 산군에 포함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당당히 1000m가 넘는 높이 면에서 뿐 아니라 이 산이 꼭꼭 숨겨두었던 계살피계곡의 깊고 아름다운 비경(秘景) 때문에라도 당연히 영남알프스에 포함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신라 삼국통일의 주체 세력이었던 화랑도의 윤리적 근간이자 실천이념이었던 세속오계(世俗五戒)가 바로 이 산에서 시작됐음을 안다면 과연 이 산을 그렇게 무시할 수 있을까. 영남알프스의 그 어떤 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역사성까지 갖춘 산이 바로 문복산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는 문복산의 북쪽에서 서쪽 자락을 휘돌아 가는 길이다. '신라의 정신'을 넘어 우리 민족의 중요한 정신적 계율로 승화된 세속오계의 발상지를 찾아가는 길이면서 솔 향기 그윽하고 진달래 군락 지천인 걷기 좋은 숲길을 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또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는 가슬갑사터를 지나며 1400여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전해주던 장면을 상상해 볼 수도 있는 길이 바로 둘레길 제6코스다.

■ 삼계리재 넘어 가는 13.5㎞ 4시간이면 충분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는 문복산과 옹강산 사이의 삼계리재를 통해 경주에서 청도로 넘어가는 청정 숲길을 걷는 맛이 일품인 구간이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낙엽깔린 길을 따라 삼계리재에서 수리덤계곡 쪽으로 내려서고 있다.
제5코스의 종착점이었던 경북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에서 출발, 심원사를 거쳐 삼계리재(또는 심원재)를 넘어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에 닿는다. 삼계리마을에서는 계살피계곡 왼쪽 길을 따라올라 세속오계 발상지인 가슬갑사터를 들렀다가 계곡 깊숙이 자리 잡은 폭포를 보고 나서 계살피계곡을 건너 우측길을 따라 다시 삼계리마을 칠성슈퍼 앞으로 내려선다. 총 길이 13.5㎞에 걷는 시간은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당산나무와 정자가 나란히 서 있는 일부리 심천마을에서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경로당을 지나고 3분쯤 가면 수령 500년 된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반긴다. 포장도로를 따라 좀 더 남쪽으로 가면 5분 후 우측 논바닥에 놓인 길이 4m 안팎의 바위가 보인다. 일부리지석묘다. 받침돌은 보이지 않는다. 지석묘를 선사시대 유적으로 분류한다고 볼 때, 관리가 참으로 부실하다는 느낌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10분쯤 남쪽으로 이어가면 심원저수지 둑에 닿는다. 이 저수지는 산내면 측에서 동창천의 생태보존 및 청정지역화를 위해 일부러 어류 방류를 한 곳으로 낚시 투망 등 일체의 어획 행위가 금지돼 있다. 반짝거리는 물살을 보며 심원지 오른쪽을 따르는 길은 운치가 그만이다. 멀리 왼쪽에 문복산 자락의 서담골봉이 보인다.

■ 천년고찰 심원사 지나 아늑한 숲길로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저수지 최상류에서 왼쪽으로 심원교를 건너면 천년고찰 심원사(深源寺). 한때는 신라의 큰 절이었고 심천마을 일대의 땅 대부분이 이 절 소유였다고 알려졌을 정도지만 지금은 작은 암자 같은 분위기다. 스님은 출타했는지 인적조차 없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다시 심원교를 건너와 갈림길에서 왼쪽 계곡으로 들어선다. 포장도로를 끝내고 숲길로 들어서게 되는 지점이다. 상수원보호 팻말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니 아담한 크기의 심원사 부도밭을 지난다. 3명이 나란히 걸을 만한 너비의 계곡길이 이어진다. 5분 후 계곡을 건너는 길과 우측길이 나뉘는 지점에서 계곡을 건너지 말고 우측의 옛길을 따른다. 진달래나무가 지천이다. 4월쯤이면 이곳도 진달래로 뒤덮일 것이다. 길 왼쪽의 계곡에는 크고 작은 소와 폭포가 이어진다. 5분 후 만나는 갈림길인 사거리에서는 곧바로 직진, 계곡을 계속 따라 오른다. 바닥에 깔린 낙엽이 무성한 길을 따라 여유롭게 20여 분 오르면 잘 알려진 삼계리재다. 왼쪽 능선길은 서담골봉(837m)을 거쳐 문복산으로, 오른쪽 능선은 옹강산(832m)으로 이어진다. 심천마을에서는 이 고개를 심원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개를 넘어 내리막을 탄다. 삼계리 방향이다. 편안한 길 양옆으로 낙엽이 수북하다. 길 자체의 상태와 주변 분위기가 전형적인 숲길인 탓에 개척단원들은 "영남알프스 속살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청도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의 세속오계 상징물.
20분쯤 내려서면 널따란 계곡. 일명 수리덤계곡이다. 큰 계곡과 만나는 곳 오른쪽에 산사면 중간에서 흘러나오는 샘터가 있다. 누군가 설치해 놓은 파이프를 타고 흘러내린 샘물을 마셔본다. 달콤하고 시원해 가슴 속까지 청량감이 전해진다. 계곡을 건너면 삼계리주말농원 권역이다. 임도길 수준으로 넓어진 길을 따라 한 차례 더 계곡을 건너고 '끈티서야영장'을 지나면 장승과 돌탑 숙소가 곳곳에 설치된 주말농원. 이곳을 지나 다리를 건넌 후 펜션단지를 통과하면 69번 지방도로상의 수리덤계곡 입구에 닿는다. 본격적으로 청도군 지역에 들어선 셈이다.

왼쪽 삼계리 방향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르는데 쌍둥이처럼 뾰족하게 솟은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쌍두봉이다. 삼계리마을 주민은 형제봉으로도 부르는데 산꾼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암봉이기도 하다.

■ 원광법사 머물던 가슬갑사터에 비석만 1개

 
  가슬갑사터로 오르는 길에 발견한 문복산 연리목.
삼계1교를 지나면 주민들이 복원해 새로 단장한 삼계리성황당이 있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에는 깊은 산골이었을 이 마을 주민들이 안녕을 기원하던 토속 신앙의 흔적이다. 그 우측에는 해발 256.3m를 표시한 국가시설물인 '수준점'이 보인다. 행정구역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속하는 삼계리마을은 3개의 골짜기가 모이는 곳이다. 문복산의 계살피계곡, 쌍두봉 서쪽의 배너미골, 그리고 운문령 방향의 생금비리 등 3개의 골짜기 물이 이곳에서 모여 신원천을 이룬 후 운문호로 흘러든다.

성황당에서 70m쯤 더 가면 계살피계곡 입구. 가슬갑사터로 가기 위해 지방도를 버리고 왼쪽 길로 들어선다. 왼쪽에 세속오계 정신을 기린 상징물이 보인다. 화랑도 2명의 동상이 세속오계가 새겨진 돌을 떠받치는 듯한 모습이다. 곧바로 삼계리경로당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등산로 입구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이정표는 '가슬갑사터 1.8㎞, 35분'을 표시하고 있다. 3분 후 갈림길. 왼쪽은 능선길이고 오른쪽 길은 계곡을 따르는 길이다. 오른쪽 길로 간다. 계곡을 끼고 완만한 오르막을 15분쯤 가면 두 그루의 소나무가 서로 엉겨붙은 일명 '문복산 연리목'이 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모양의 나무다. 너덜지대를 지나 10분쯤 더 가면 7세기 초 신라 진평왕 시대에 원광법사가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전한 곳으로 알려진 가슬갑사터를 만난다. 하지만 높이 50㎝가량의 표지석만 있을 뿐, 주변은 폐허나 다름없다. 절터 앞 계곡은 더없이 깊고 아름답건만 정작 절터는 황량하기만 하다.

■ 청정 계살피계곡에 이름 없는 폭포 즐비

 
  계살피계곡 가슬갑사터 위에 있는 무명폭포.
절터를 지나자마자 우측의 놀기 좋은 너럭바위를 비롯한 계살피계곡의 비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길이 우측으로 살짝 휘어지는 곳의 작은 폭포도 멋지고, 이곳에서 조금 더 가서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계곡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폭포도 그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영남알프스에 정통한 이창우 둘레길 개척단장은 "이름을 얻지 못한 폭포"라며 아쉬워한다. 맨 위 폭포 왼쪽으로 20m 정도만 오르막을 치면 다시 조금 전 폭포 밑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주 등산로와 만난다. 우측으로 10분쯤 가면 큰 갈림길. 해발 540m 안팎인 이곳에서 계속 직진하면 문복산 정상으로 향하게 되지만 개척단은 우측으로 계곡을 건너 내리막을 탄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주 등산로 역할을 했던 간이 임도다. 묵은 길 바닥에 잔돌이 많아 걸을 때 주의해야겠다. 35분 정도면 제6코스의 종착점인 삼계리 칠성가든 앞 69번 지방도로에 닿는다.


◆ 먹을 곳

- 칠성가든 오리양념불고기 매콤한 맛 일품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의 종착지에는 칠성가든(054-371-5287)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슈퍼마켓과 음식점 민박집까지 겸하고 있는 이 집은 사실 영남알프스를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심 좋고 맛도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매콤한 맛의 오리양념불고기(사진·3만5000원)와 산채비빔밥 된장정식(5000원) 등이 특히 인기있는 메뉴다. 밑반찬으로 계절에 맞는 산나물도 많이 올라온다. 요즘에는 봄나물인 냉이 달래도 보인다. 둘레길을 코스를 걷고 나서 시장기를 달래고 이야기꽃을 피우기에도 딱 좋은 곳이다. 산에서 직접 채취한 고로쇠 수액도 판매한다.

많은 사람들이 '칠성가든'이라는 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한다. 그저 17년 전 대구 칠성동에서 이곳으로 이주, 음식점을 시작할 당시 마땅히 지을 이름이 없어 전에 살던 동네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 교통편

- 경주서 산내 들러 일부리행 버스 갈아타야

부산 노포동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새벽 5시30분부터 10분 간격 운행. 4500원, 50분 소요. 경주버스터미널에서 산내까지 간 후 일부리행 352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산내행 350번 버스는 오전 6시, 6시30분, 7시15분 등 하루 28회 운행한다. 산내에서 일부리행 버스는 오전의 경우 6시20분과 7시40분에 출발하는 2대밖에 없다. 이 버스를 놓치면 산내 개인택시(054-751-5955)를 이용한다. 심천마을까지 1만2000원 안팎. 종착지인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에서는 언양행 버스를 탄다. 오후 2시40분과 5시40분(막차)에 있다.

자가용의 경우 두 대 이상이 동행, 먼저 제6코스 종착지인 삼계리에 한 대를 주차한 후 나머지 차량으로 출발지로 가야 차량 회수가 쉽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향으로 가다가 석남사·밀양 방향 24번 국도를 탄다. 석남사 램프 못 미쳐 청도·산내 방향 표지판을 보고 빠져나간 후 69번 지방도를 타고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칠성가든 앞에 닿는다. 삼계리마을에서는 69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가 운문댐 밑 삼거리에서 우측 경주 산내 방향으로 튼다. 20분쯤 가면 산내면 소재지 못 가서 우측으로 '외칠리·일부리' 표지판을 보고 진입, 다리를 건넌 후 좌회전하면 외칠리에 닿는다. 다시 우측으로 상록병원 일부리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심천마을에 닿는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동영상 http://www.kookje.co.kr


# '세속오계' 전한 가슬갑사터 단상

- 화랑 정신 발원지에 황량함만 감돌고…

 
  작은 비석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황량한 문복산 가슬갑사터.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에 굳이 문복산 계살피계곡에 있는 가슬갑사(嘉瑟岬寺)터를 포함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이곳이 신라 화랑들의 윤리적 강령이자 실천이념이었던 '세속오계(世俗五戒)'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황폐한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계살피계곡이 품고 있는 비경을 보지 않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점이다.

그래도 역시 첫 번째 이유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가슬갑사터는 한 마디로 황량하다. 과연 이곳이 삼국통일의 초석이 된 화랑들의 기본 이념이 발원한 곳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세속오계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발견되지만 특히 가슬갑사에서 원광법사가 추항과 귀산이라고 하는 두 명에게 계율을 일러 주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정확하게 전해진다. 그렇다면 가슬갑사는 도대체 어떤 절이었을까.

6세기 중반인 560년(신라 진흥왕 21년) 한 신승이 대작갑사(지금의 운문사)를 세우고 주변에 대비갑사 천문갑사 소보갑사 가슬갑사 등 4개의 갑사를 더 세웠는데 이를 신라 5갑사(또는 5대갑사)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이후 신라의 중요한 사찰로 자리 잡은 것은 물론이다. 그 중 하나인 가슬갑사는 서기 600년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당대 최고의 승려 원광법사가 대작갑사 중창 등을 마친 후 머무르며 수도했을 만큼 당시로써는 상당한 기풍을 지닌 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국 전란의 격화에 휘말려 절이 없어지고 난 후 여태껏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복원은 고사하고 절터만이라도 제대로 정비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개척단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끈 셈이다. 혹시 아는가.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이곳을 찾는다면 관할 지역자치단체에서라도 나서서 조금이나마 정비를 할지.


# 삼계리 쌍두봉과 두 마리 용 전설


- 승천 못한 용의 한 서린 '형제봉'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 종착지인 경북 청도군 삼계리마을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한 봉우리처럼 보이지만 상단부가 둘로 나뉜 암봉이 우뚝 솟아있다. 산꾼들은 이 두 봉우리를 묶어서 쌍두봉이라고 부른다. 조금 더 높은 봉은 해발 929m, 그 앞 낮은 봉은 862m다. 그런데 삼계리마을과 인근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이 두 봉을 '형제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는 두 마리 용에 관한 전설 때문이다.

먼 옛날 이 산 깊은 계곡에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깊은 소(沼)가 있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구렁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며 접근을 꺼렸다. 그러던 어느해 춘삼월 가까운 마을에 살던 형제가 사냥이라도 해서 고기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산에 들어갔다가 늦어져 할 수 없이 노숙을 했다. 새벽녘 동생이 소변을 보기위해 잠이 깼는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소에서 하늘로 솟구쳐, 구름 너머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침 이 소리에 놀란 형도 잠에서 깬 순간 다시 두 번째 용이 날아 올랐다. 이 때 형제가 놀라 자빠지며 동시에 "용, 용이 승천한다"라고 소리쳤다. 이로 인해 두 번째 용은 하늘에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승천하지 못한 한이 너무 컸던지 용은 떨어지면서 거대한 꼬리로 산 정상부를 내리쳤다. 그러자 봉우리는 두 개로 쪼개졌고 사람들은 이후 승천한 형님 용과, 그러지 못한 동생 용을 빗대어 형제봉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좀 더 높은 봉이 형님봉, 그 앞 낮은 봉은 동생봉이 된 셈이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둘레길 6코스는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동 당산나무에서 시작을 한다.  여러기의 당산나무 쉼터에서 요즘 마을마다 정자를 만들어 노아 운치를 더해주는 것 같다.

심천동마을의 500년된 느티나무로 보호수이다

심원사로 둘레길의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우측 논 한가운데 작은 바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석묘이다. 지금은 지석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이 바위를 괴었던 지줏돌이 있었다하고 그 지줏돌을 빼내었다 한다. 그리고 논은 복토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니 우리 문화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심원소류지 뒤로 보이는 서덤골봉으로 문복산과 옹강산 그리고 산내읍을 잇는 아부터재로 연결된다.

심원소류지 뒤로 보이는 잘록한 부분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개이다. 구름재로 지금은 산길이 묻혀 있지만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계리재를 넘어 심원사 앞을 거쳐 구름재를올라, 숲고개를 넘어 산내읍이나 내친김에 당고개를 넘어 경주로 걸어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지금은 구름재가 문명의 발달로 그 기능을 잃은지 오래고 마을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좌측 철탑이 있는 산으로 방매산이다.

신라시대 때의 고찰로 현재는 불국사 말사로 심원사이다.


삼계리재로 들어는 옆 계곡

심원사의 부도밭

심원재(삼계리재)로 올라가는 둘레길 옆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작은 소와 폭포가 조금 있어면 진달래가  분홍색 꽃잎을 피워 계곡수와 어울리면 장관을 연출 할 것 같다. 아마 이것이 둘레길의 매력이 아닐까?.

고개 막바지에서 봄기운을 받으며  걷고 있는 둘레길 팀원

일부리 사람들이 부를 때는 심원재로 부르고 삼계리에서 심천동으로 넘어 올때는 삼계리재로 부른다는 고개이다. 국립지리원 발행지도에는 삼계리재로 나와 있다. 이고개가 경주군 산내면과 청도군 운문면의 경계이며 둘레길도 경주 땅을 버리고 이제는 청도땅으로 들어는 순간이다.

청도땅으로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수리덤계곡으로 서덤골봉 이뤈에 예전부터 수리가 살았다하여 수리덤으로 불리며 혹 서담골봉도 그 이전에는 수림덤골봉 도는 수리덤으로 불렸는데 그게 세월이 가면서 잊혀지거나 아니면 잘못전달 되어서 서담골봉으로 되지 않았나 쉽은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수리덤골안의 주말농원의 목가적인 풍경으로 지금은 예전에 없던 펜션이 많이 들어서 있다.

삼계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최근까지 내려 오던 전통문화를 다시 복원해 새로 단장한 삼계리 성황당이 이다. 신작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깊은 산골이었을 이 마을 주민들이 안녕을 기원하던 토속 신앙의 흔적으로 안에 호랑이를 탄 산신령이 모서져 있다.

화랑도의 발생지로 청도에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원광법서가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인 화랑도의 기본 이념이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삼계리에 도로 옆에 두개의 홍보물을 설치해 놓았다.

화랑인 귀산과 추항이 세속오계를 받는 모습을 홍보물로 나타내어 놓았다. 

연리목으로 가슬갑사터를 찾아가는 둘레길 우측으로 소나무 두그루가 신기하게도 둥근 원을 나타내며 서로 붙어 있다. 이 나무가 세솟오계를 밭았던 귀산과 추항의 모습일까?.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앙에게 세속오계를 주었다는 가슬갑사터는 어떤 모습일까 ?. 가슬갑사터는 현재 청도군에서 열성을 다해 홍보하는 화랑도의 발상지에 비해 무방비로 방치를 해 놓은 상태이다. 표지석 외에는 그 어떤 안내문구도 없으며 절터로 추중되는 곳에는 낙석과 잡목으로 인해 진짜 이곳이 가슬갑사터인지 의구심을 들게 할 정도이다. 누군가 답답해서 인지 절터에다   편편한 돌을 세워 스프레이로 가슬갑사터라 써 놓았다.

현대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아픈 나무의 모습이다. 6~70년대 까지 송진을 채취하였던 모습으로 소나무에게는 많은 아픔을 주었다.4~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계살피계곡의 지계곡에 걸린 작은 무명폭포


계살피계곡의 무명폭포로 영남알프스둘레길에도 이제는 봄이 오고 있다.  한겨울 두터운 하얀 솜이불을 걷어 내고  속살을 내보이는 계살피계곡의 모습을 둘레길 팀도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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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태극종주(4) 문복산-고헌산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치닫다 영남지역에서 치켜세운 1천고지의 9개 봉우리가 있다. 산무리들은 아래서 바라보니 세가 웅장하더니 위에서 내려보니 탁트인 풍광이 천하 일품이다. 언제부터 이곳이 ‘영남알프스’라 불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것이다.
 영남알프스 9개 준봉을 잇는 태극종주 마지막 구간이다.
 영축산에서 시작했던 종주는 이제 단 두개의 고봉만 남겨놓았다. 이번 구간에서는 영남알프스의 최북단, 문복산~고헌산 코스로 간다.
 문복산은 신라의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했던 가슬갑사를 품었던 명산이다. 이 산은 육산의 모습을 보이지만 하산길에는 곳곳에 자리한 멋진 바위봉이 산꾼의 눈을 사로잡는다.
 고헌산은 언양의 진산이다. 언양고을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산정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고헌산은 두리뭉실한 산세를 가지면서도 산자락에는 깊은 골을 껴안고 있다.
 

 


 


 이번 산행코스는 ‘청도군 운문면 삼계리 칠성슈퍼~811곒봉~하늘문~너럭바위~문복산(1014곒)~ 바위전망대~894곒봉~산내 불고기단지~외항재~1020곒봉~고헌산(1033곒)~구암사~울산시 상북면 신기마을’로 이어진다. 산행시간은 7~8시간.
 동곡에서 언양행 버스를 타고 가다 삼계리에서 내린다. 이곳은 태극종주 3차구간의 종착지로 4차구간에서는 기점이다. 칠성슈퍼 앞에서 하차한 뒤 삼계2교를 건넌다. 삼계2교와 민가 사이, 오른쪽으로 골목길이 있다. 담벼락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간다. 두번의 삼거리에서 모두 왼쪽으로 틀면 나대지를 건너 ‘문복산 등산로 안내도’가 서있다. 이곳이 들머리다.
 산길은 솔숲 사이로 고즈넉이 열린다. 깨끗한 흙길을 따라 5분쯤 오르면 왼쪽으로 오르막길이 보인다. 너른 길을 따라 직진하면 가슬갑사지를 거쳐 문복산으로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길은 등산객이 많은데다 밋밋한 맛이 든다.
 왼쪽 비탈로 올라서면 등줄기에 땀이 촉촉이 맺힐 만큼의 경사가 기다리고 있다. 40분 가량 꾸준히 올라야 산등성이에 닿는다. 능선길은 진달래가 폭죽을 터트리는 멋진 산길이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진다. 헬기장을 지나면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다. 잡풀이 나있는 두번째 헬기장을 지나 25분쯤 가면 기묘한 바위를 만난다. 이 바위 밑으로 한사람이 기어 지나갈 수 있을 듯한 터널이 있다. 터널의 끝은 낭떠러지여서 반대쪽 입구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강렬하다. 이곳을 지난다면 선계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취재팀은 이 바위를 ‘하늘문’이라 부르기로 했다.
 하늘문을 지나면 울창한 산림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삼림욕장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그 끝머리에 반석이 자리하고 있다. 300여명은 족히 머무를 수 있을 듯한 너른 바위의 정면에 1천고지의 웅자를 드러낸 문복산이 우뚝 솟아 있다.
 

 다시 오르막이다. 산길이 점차 흐려지면서 옛사람들이 다녔음직한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진달래 산수유 군락을 넘어 완경사 구간을 지나간다. 산정까지는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기에 취재팀은 촘촘히 리본을 묶어놓았다. 능선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잡목이 우거지며 시야를 가린다. 개척산행 구간이다. 메마른 가지를 헤치고 20여분이 지나서야 깨끗한 산길을 만난다. 이 길은 삼계리에서 가슬갑사지를 거쳐 올라오는 길이다. 정상까지 10분이면 충분하다.
 문복산 정수리는 시원한 조망을 갖고 있다. 남쪽으로 가지산 운문산 등 영남알프스의 준봉들이 첩첩이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마지막 목적지, 고헌산이 아담하게 자리해 있다.
 정상은 세 방향으로 갈라진다. 남동쪽이 고헌산으로 이어가는 능선길이다. 북동쪽은 살미등으로 내려선다. 헬기장을 지나면 돌무덤이 있는 삼거리다. 이곳에서는 고헌산을 보며 왼쪽으로 꺾어 내려선다. 50여곒 직진하면 멋들어진 바위 전망대와 만날 수 있다.
 하산 능선길에서는 왼쪽에 우뚝 선 하얀 바위봉우리가 단연 시야를 사로잡는다. ‘드린바위’다. 이 바위는 높이 130곒, 너비가 100곒에 이르러 영남지역에서는 수직벽을 가진 최대 암봉으로 손꼽힌다.
 오르내림이 있는 능선마루를 타고 철쭉밭을 지나간다. 정상에서 20여분 더 걸으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서는 오른쪽으로 튼다. 왼쪽으로 떨어지는 하산길을 무시하고 20분 가량 걸으면 문복산, 고헌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바위전망대가 나타난다.
태극종주 4구간을 천천히 음미하기에 좋은 자리다.
 전망대에서 세갈래로 찢어진다. 중요구간이다. 반드시 왼쪽 하산길로 내려서야 한다. 10분 뒤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른다. 울창한 송림 속으로 들어가다 40분뒤 895곒 삼각점이 있는 낙동정맥 봉우리에 올라선다. 세갈래 길인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하산길을 밟는다. 오른쪽으로 가면 운문령으로 빠져나간다.
 너른 능선길이 철쭉과 진달래를 헤치며 뻗어있다. 30여분 뒤 축사가 있는 산내면 불고기단지로 떨어진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도로에 이르면 많은 상점과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오른쪽 정상휴게소를 지나면 ‘간산사’ ‘속불암’ 표지석 사이로 좁은 도로가 열린다. ‘산내숲속숯불 생고기’ 간판이 서 있는 이 길을 따라 고갯마루까지 이어간다.
 15분 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외항재다. 도로 오른쪽으로 오솔길이 열린다. ‘고헌산 정상 3㎞’라는 표지판도 눈에 띈다.
 고헌산 정상길은 잘 가꾸어진 숲속 산책로를 연상케 한다. 이 일대는 천연림 육성지역이다. 정상까지 경사가 완만한 너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주작대로’ 같은 길을 따라 30여분 더 오르면 멧부리다. 돌무덤이 살짝 솟아있는 이곳은 고헌산의 제2봉인 1020곒봉이다. 왼쪽 너머에 솟아있는 봉우리가 고헌산 주봉이다. 제2봉과 주봉 사이의 간격은 약 100곒. 억새가 간헐적으로 손을 흔드는 1천곒능선을 따라 주봉으로 향한다.
 마침내 태극종주 마지막 목적지인 고헌산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8개 준봉들이 한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한다. 해질녘에 산정에 오르면 상운산으로 떨어지는 저녁노을을 만날 수 있다. 영남알프스 일대를 붉게 물들이는 고헌산의 낙조는 사람의 넋을 놓게할 정도로 황홀하다. 멧부리의 삼거리에서 남쪽 고헌사 방면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샘터를 지나 1시간 가량 떨어질 듯 내려닿는 곳이 신기마을이다.
<교통편>
 이번 산행은 가는 차편은 까다로운 대신, 돌아오는 차편은 넉넉하다.
 부산역에서 오전 6시15분 기차를 타고 청도로 간다. 평일 4천7백원. 청도역에서 200곒 떨어진 곳에 공용버스정류장이 있다. 이곳에서 동곡행 버스를 탄다. 오전 7시35분, 7시45분, 9시10분, 10시20분 등에 출발한다. 버스요금은 2천1백원.
 동곡에서는 삼계리·언양행 버스를 탄다. 오전 8시40분, 11시 등에 있다. 요금은 1천7백원.
 산을 내려오면 울산시 신기마을이다. 마을입구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317번 515번 370번 등 언양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즐비하다. 언양에서 부산직행은 오후 8시30분이 막차. 완행은 밤10시까지 있다. 직행 2천6백원, 완행 1천원.
/ 글·사진= 박병률기자
 / 산행정보 문의= 다시찾는 근교산취재팀(051- 500- 5150)
이창우 산행대장(011- 563- 0254·www.yahoe.co.kr)

brpark@kookje.co.kr  입력: 2001.04.1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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