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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5산 종주 -3- 금정산 계명봉~장군봉~고당봉~백양산

낙동정맥 284봉을 지나 만나는 벼랑끝 너른 전망대에서 서면 계명봉(왼쪽)과 장군봉(오른쪽) 그리고 그 사이로 저 멀리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발아랜 경부고속도로. 동영상 www.kookje.co.kr



어딜 내놓아도 당당한 '부산의 산' 새삼 확인

이번 주는 부산 5산 종주의 마지막 구간. 이하봉~계명봉~장군봉~금정산 고당봉~백양산으로 이어진다. 해운대에서 출발해 기장군을 가로지른 후 이번엔 양산을 찍고 부산에서 끝을 내는 일정이다.

기장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번 구간도 산행팀은 산악 마라토너들과 달리 불가피하게 피할 수 없는 임도 구간을 제외하고는 능선과 능선을 이었음을 밝혀둔다.

산줄기 잇기 개념으로 접근하면 부산 5산 종주 코스는 기장군 소두방재에서 용천지맥과 헤어진 후 잠시 숨고르기를 하다 계명봉 못 가서 낙동정맥과 만난 후 줄곧 낙동정맥길로 이어진다.




구체적 여정은 양산시 동면 동면우체국~감만조경~이하봉(222m)~임도~사거리(낙동정맥 갈림길)~284봉~지경고개(녹동육교)~농장 가로질러~밀양 박씨묘~계명봉(599m)~잇단 고당봉·장군봉 갈림길~장군평전(억새군락지)~장군봉~장군샘~금정산 고당봉~고당샘~금정산장~북문~원효봉~의상봉~제4망루~무명안부~부채바위 갈림길~나비안부~동문~산성고개~대륙봉~케이블카 정상~남문~만덕고개~철학로~금정봉 갈림길~만남의 숲~산불초소(돌탑봉)~불태령~백양산~어린이대공원 학생문화회관 순. 동문까지 걷는 시간만 5시간50분, 동문에서 어린이대공원 학생문화회관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린다.

양산 동면우체국 정류장에서 내려 영천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으로 간다. 동면우체국과 길모퉁이 '10번지 식당' 그리고 하천을 잇따라 지나 우측으로 가면 간이화장실. 좌측 너른터를 가로지른다. 알고 보니 '감만조경' 마당이다. 산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갈림길. 우측 능선 끝으로 가면 입구에 산길이 열려 있다. 들머리다.

7, 8m쯤 올라가면 '부산 5산 종주 들머리, 이하봉 0.4㎞'라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8분쯤 급경사길을 오르면 전망대. 정면 철마산을 기점으로 좌측 백운산, 우측으로 거문산이 손에 잡힌다. KTX 철로공사가 한창인 7번 국도 건너편이 기장 철마면, 산행팀이 오르는 이곳이 양산시 동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들머리에서 18분이면 이하봉(222m)에 올라선다. 작은 팻말이 걸려 있다. 조망은 없지만 숲 사이로 뾰족봉인 계명봉이 얼핏 보인다. 내려서면 밤나무밭을 지나 임도. 잡풀이 우거져 삭막하지는 않다. 5분 뒤 너른터. '전망대'란 팻말이 걸려 있을 만큼 시야가 트인다. 우측 저 멀리 운봉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낙동정맥과 그 뒤 천성산이 확인된다. 여기서 친절하게 걸린 '등산로' 안내 팻말을 따라 좌측으로 올라선다. 키 큰 억새길을 거쳐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갈림길. 흔히 반듯한 좌측길로 가기 쉽지만 산행팀은 우측으로 올라선다. 이후부터 산길 좌측은 부산CC와 연결된다.

원효봉에서 바라본 금정산성. 정면으로 의상봉 무명바위가 보인다.

야산이지만 아름드리 나무가 간혹 눈에 띄는 등 숲이 생각보다 울창하다. 5분 뒤 사거리. 리본이 많이 걸려 있다. 낙동정맥과 만나는 지점이다. 직진한다. 이제부턴 낙동정맥 종주길이다. 지그재그 된비알로 8분 정도 힘겹게 올라서면 암봉인 284봉. 비로소 계명봉과 그 우측으로 고당봉 장군봉이 한눈에 시야에 들어온다. 3분 뒤 길 우측에 벼랑끝 너른 전망대가 기다린다. 정면으로 경부고속도로와 방금 본 계명 고당 장군봉이, 그 우측으로 낙동정맥이 실핏줄처럼 이어지는 낮은 능선, 그리고 저 멀리 선암산 토곡산 등 양산의 산과 염수봉 시살등 영축산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남동부 능선도 희미하나마 확인된다.

이어지는 산길. 12분이면 도로(지경고개)에 내려선다. 바닥에 '5산 종주'라고 적혀 있다. 좌측은 부산CC, 산행팀은 우측 녹동육교를 건너 부산~양산 지방도를 건너 우측으로 간다. 부산-양산 시경계 안내판을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올라선다. 입구에 '자두농원'이라 적힌 간판이 서 있다. 포장로를 따라 7분쯤 오르면 갈림길. 방법은 두 가지. 직진형 왼쪽으로 가면 독립가옥을 가로질러 곧바로 산으로 오르는 너른 길이 열려 있다. 오른쪽으로 가도 역시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왼쪽에 보인다. 두 길 모두 잡풀이 무성한 개활지 좌우 끄트머리로 올라 숲으로 진입한 후 밀양 박씨묘를 지나 만나는 갈림길 앞에서 만난다. 두 곳 모두 리본을 걸어 놓았다.

갈림길에선 왼쪽으로 오른다. 코가 땅에 닿일 만큼 급경사다. 6분 뒤 밧줄을 잡고 오르면 전망대. 정면으로 천성산과 그 우측으로 대운산 석은덤 철마산 거문산 등이 보이고 발 아래론 방금 지나온 능선길과 부산CC가 한눈에 펼쳐진다.


장군봉 억새평전에서 바라본 금정산 고당봉.

계명봉은 전망대에서 5분이면 올라선다. 계명봉은 오래전엔 독립봉으로 보고 계명산으로 불렀지만 지맥이 금정산과 이어져 있어 계명봉으로 불린다. 돌무더기로 쌓은 제단 위에 검은색 키작은 정상석이 서 있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금정산 주능선 쪽으로는 시야가 트여 있다. 고당봉을 기점으로 왼쪽으로 원효봉 의상봉 무명암 부채바위 나비암이 확인된다. 좌측은 계명암 범어사 봉화터 방향, 산행팀은 우측으로 내려선다. 15분쯤 뒤 안부 갈림길. 왼쪽은 범어사 고당봉으로 이어지는 임도, 산행팀은 장군봉을 향해 직진한다. 산악마라토너들은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 임도로 고당봉 아래로 달린다.

이어지는 산길. 도중 작은 계곡을 두고 길이 갈린다. 둘은 만나지만 계곡 건너편 길이 주 산길이자 능선길이다. 9분 뒤 임도 같은 갈림길. 오래전 철탑을 세우기 위해 만든 길로 왼쪽은 고당봉, 산행팀은 오른쪽으로 간다. 한 굽이 올라서면 우측으로 샛길이 열려 있다. 지름길이자 원래 산길이다. 그늘진 오르막 숲길이다. 15분쯤 오르면 시야가 트이며 전망대에 선다. 정면으로 5산 종주의 출발점인 바다를 낀 장산을 시작으로 기장과 양산을 거쳐 지금까지 내달려온 능선길과 봉우리가 한눈에 가늠된다. 우측으론 고당봉이, 발아랜 내원암과 범어사도 확인된다.

6분 뒤 길찾기에 유의해야 하는 갈림길. 왼쪽은 고당봉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길, 산행팀은 낙동정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장군봉을 찍고 고당봉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소위 억새군락지인 장군평전이 시작된다. 낙동강을 배경삼아 펼쳐지는 키작은 억새의 몸부림이 살갑게 다가온다.

9분이면 장군봉에 올라선다. 멀리서 보면 장군의 늠름함이 느껴져 구덕산악회 고 장두석 회장이 이렇게 명명한 후 일반화됐다고 전해온다. 가덕도 연대봉을 기준으로 우측으로 봉화산 보배산 굴암산 불모산 신어산 무척산 오봉산 토곡산 선암산 천마산 오룡산 영축산 천성산 대운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왔던 길로 내려간다. 갈림길서 좌측 낙동정맥 갈림길 방향 대신 우로 내려선다. 15분 뒤 장군샘. 물 한 잔을 들이켜고 내달리면 조그만 바위 앞에 눈길이 꽂힌다. '梵魚寺基(범어사기)'라고 음각된 화강암이다. 범어사의 토지 경계를 알리는 이른바 석표(石標)다.

이어 잣나무길을 지나 산죽길을 벗어나면 마애불 갈림길. 마애불은 80m쯤 내려가면 만난다. 1000년의 오랜 성상 동안 비바람에 씻기면서 말없이 방문객을 맞아 준다. 다시 잣나무 숲길. 정면에 고당봉의 암벽이 웅장하다. 곧 임도와 만난다. 산악마라토너들은 계명봉에서 내려와 이 임도로 올라온다.

이제 산행은 반듯한 길의 연속. 고당봉은 불과 600m. 금정산 특유의 보석 같은 바위들이 산사면에 속속 박혀 있다. 기암괴석들은 괜히 '천구만별(千龜萬鼈·천 마리의 거북과 만 마리의 자라)'이라 불렀겠는가.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풀과 한 화면에 넣으면 멋진 풍광으로 다가온다.

이내 정상 직전 갈림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하지만 산악마라토너들은 좌측길로 돌아 고당샘으로 내려온다. 고당봉을 우회하는 셈이다. 바위길을 올라 나무계단과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이내 고당봉. 8분쯤 걸린다. 거칠 것 없는 조망이다. 북으로 장군봉 천성산, 동으로 계명봉, 남으로 원효봉 의상봉, 서쪽으로 신어산 동신어산 오봉산 등이 보이고 1300리를 흘러온 영남의 젖줄 낙동강은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졸고 있다.

북문을 향해 내려선다. 수백년간 비바람을 맞고 자리해오고 있는 당집인 고모당과 고당샘을 지나면 금정산정과 북문. 샘터인 세심정도 있다. 20분 걸린다. 왼쪽 북문을 통과해 내려가면 범어사, 오른쪽 임도 방향은 옛 천주교 목장을 지나 산성마을, 산행팀은 동문(4㎞) 방향으로 직진하며 오른다.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구간인 이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트레킹 코스라 해야 더 어울린다. 잘 정비된 너른 돌계단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 단단해진 흙길은 실망스럽지만 국내 최장 금정산성의 매끈한 곡선미는 언제 봐도 매력적이다.

15분이면 삼각점이 위치한 원효봉에 올라서고 이어 의상봉도 지난다. 의상봉은 멀리서 볼 경우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빼닮아 사자봉으로도 불린다. 그 옆(동쪽)으로 금정산 최대 암장인 무명암이 뻗어 있다.

중성과 연결되는 제4망루를 지나면 북문과 동문의 중간지점인 무명안부. 오래전 암벽등반을 하던 산꾼들은 여기서 텐트를 치고 무명암과 부채바위를 오갔다. 나비 안부는 여기서 13분 뒤. 20, 30년 전 할머니 파전으로 유명했던 이곳에는 '구서동 2.9㎞'라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산행은 막바지. 나비안부에서 동문은 20분 걸리고, 여기서 산성로 버스정류장까지는 5분 소요된다.

산행팀은 여기서 산행을 접었다. 동문에서 백양산을 거쳐 어린이대공원까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데다 거의 외길이어서 길찾기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후 여정은 산성고개~대륙봉~제2망루~케이블카 정상~만덕고개~자연학습장~금정봉 갈림길~만남의 숲~돌탑봉(산불초소)~불태령(주지봉 갈림길, 돌탑봉)~백양산 직전 낮은 돌탑봉~백양산~어린이대공원 내 학생문화회관 순이다. 동문에서 대략 5시간 정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장군샘, 지역 산악인 최남준씨팀 조성, 공로상감

장군봉에서 고당봉 가는 길에 위치한 일명 장군샘은 국제신문 2대 산행대장을 역임한 최남준 씨가 후배 산악인인 조병주 김무길 그리고 최근 타계한 김희조 씨와 함께 사비를 들여 만든 샘터이다. 최 대장은 금정산의 장군샘 이외에도 남문 인근 수박샘, 동문 인근 북바위샘도 역시 사비로 후배들과 함께 조성했다.

최 씨를 잘 아는 한 지인은 "약수터 조성을 위해선 돈은 물론이고 장마철 평상시 갈수기 가뭄 때 등 적어도 네다섯 번 정도를 가야 하는 성의가 있어야 된다"며 "산을 사랑하지 않으면 엄두도 못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산 악계에서 단연 공로상감이지만 아직까지 이를 아는 산꾼들은 드물다.

장군봉의 정상석에는 해발고도가 734.5m라고 표기돼 있지만 국토정보지리원의 최신판 지형도에는 737m로 정정돼 있다. 산행팀은 최신판의 해발고도를 따랐다. 계명봉에도 601.7m로 적혀 있지만 새 지형도에는 599m로 표기돼 있어 역시 최신 버전을 따랐음을 밝혀둔다.

◆ 교통편

- 울산행 버스 타고 양산시 '동면우체국' 정류장서 하차

지하철 1호선 노포동종합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에서 울산 가는 아무 버스나 타고 '동면우체국' 정류장에서 내린다. 환승을 하기 위해선 부산 버스를 타야 하지 않을까. 날머리 동문에서 오가는 산성 버스의 배차 간격은 20분이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글=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출발은 동면 우체국에서 시작된다. 감만조경 안으로 들어서서 우측 끝에소 오르면 이하봉 400m의 플레카드를 볼 수 있다.

이하봉 오름길에서 전망대와 만난다. 발아래 출발한 동면 우체국과 건너편 철마산과 우측으로 거문산이 웅장한 기장군의 산이다.


이하봉 정상에서 좌측형 직진으로 진행을 하면 낮은 산이지만 울울창창한 숲이 지리산의 어느 능선을 산행하는 것 같다.

경부고속도로가 일직선으로 달리고 양산시의 외송리 일대가 펼쳐진다. 왼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이 장군봉이다.


부산cc와 경부고속도로의 지경고개인 녹동육교를 건너고 있는 취제팀, 그리고 양산시 경계를 넘어 자두농원을 찾아가고 있다.

계명봉에서 본 고당봉과 계명봉정상석


두개의 빗돌로 전자는 자두농원에 들어서는 입구에 양산 동래라 세겨져 있는 것을 보니 경계구역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후자는 범어사기로 범어사 토지경계를 의미한다.


장군평전에 올라서면 정면에 장군봉 좌측으로 가야할 고당봉, 그 우측으로 1300리 낙동강이 흘러 내려온다.


장군봉 정상석.구덕산악회 고장두석씨가 명명하여 현재 부르고 있다.


장군봉에서 금정산 고당봉을 보고 있는 취재팀, 고당봉 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먼저 산길이 암부까지 내려가 다시 고당봉으로 올라선다.


올라온 장군평전을 보고 있다. 지금쯤 억새가 한창 바람결에 이리저리 몸을 맏길 것이다.


장군샘과 고당봉 직전의 잣나무 조림지대를 지나고 있다.


고당봉 아래 사거리 갈림길로 왼쪽 고당봉 바위아래로 따라간다.


근래에 설치된 달팽이 형태의 계단길, 예전에는 이 부분을 오를 때는 로프를 잡고 오르는 힘든 난코스 구간이다.

정상석으로 이어지는 암릉으로 고당봉은 큰 바위덩어리로 된 산임을 알 수 있다.

부산의 진산인 고당봉 정상, 낙동강이 마지막으로 바다와 만나는 곳을 확인할 수 있으며 낙동정맥의 마루금이 사실상 여기서 끝을 맺는다.

고당봉을 내려서면 만나는 목제계단, 그 앞으로 금정산성길인 취재팀이 걸어가야 하는 산길이다.

금정산장 내부와 외부의 모습이며 우측으로 샘터인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정이 있다.

범어사로 내려서는 북문이다. 이문을 통과하면 범어사로 하산을 하며 동문은 다시 직진을 하여 성곽 우측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원효봉에서 바라본 금정산성으로 왼쪽의 큰 성체같은 바위가 무명암이며 그 끝부분에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하여 일명 사자봉인데 의상봉으로도 부른다.

사자봉으로 불리는 의상봉과 대통령기 등산대회 암벽부문이 치루어 진 바위라 하여 대통령바위로 부리는 볼더

허물어져 복원을 기다리는 4망루, 여기서 보는 금정구 동래구의 모습이 거대하다. 멀리 광안대교 가지 볼 수 있다.

이름이 없다하여 무명암. 바위 끝을 따라 올라가는 릿지코스가 개발되어 있어며 사진중앙에 여러개의 암벽등반 코스가 개척되어 있다.

맨 우측의 잔잔한 주름이 부채살과 같다하여 붙은 부채바위, 한때 금정산 암벽등반의 메카로 떠올라 많은 클라이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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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5산 종주 -2- 아홉산~함박산~문래봉~철마산

내륙엔 산의 물결, 동해바다엔 파도가 일렁

해운대 장산에서 출발한 부산 5산 종주 두 번째 구간은 모두 기장군에 속해 있다.

쌍다리재에서 공동묘지를 지나면 갑자기 시야가 확터인다. 좌우, 뒤로 시원한 조망을 자랑한다.







까마중과 고들뻬기
















아홉산,함박산,철마산 정상 이정표 또는 정상석




동해바다를 끼고 있는 기장군의 내륙에는 의외로 산이 지천이다. 실제로 기장군을 제외한 부산 전역의 산을 합해도 수적인 면에서 기장군이 한 수 위다. 기장의 동쪽 동해바다엔 광활한 파도가 일렁이지만, 기장 내륙엔 산의 물결로 넘쳐난다. 하지만 이를 아는 산꾼은 사실 드물다.

기장의 산은 최고봉인 철마산(605m)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봉우리가 300~500m대로 고만고만한 동네 뒷산 정도다. 이 점이 되레 장점으로 다가와 그리 힘들이지 않고 산을 오르내리며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찾는 산꾼도 생각보다 적어 호젓한 산행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인 요소이다.

5산 종주 두 번째 구간의 산행은 기장군 기장읍 쌍다리재~(용천지맥길)~320봉~일광산 테마임도(정자)~아홉산·일광산 갈림길~263봉~테마임도(다리 공사중)~산불초소~테마임도~아홉산(360m)~테마임도~체육시설(정자)~함박산·곰내재 갈림길~함박산(457m)~곰내재(함박생태터널)~문래봉(511m)~소산벌~소두방재~574봉~억새군락지~임도(차단기)~철마산(605m)~기장군 철마면 입석마을~송정리 송정버스정류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7시간5분 되는 긴 산행이다. 갈림길이 워낙 많아 헷갈리지만 리본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면 무난히 산행을 마칠 수 있을 듯하다.

이 구간의 5산 종주 산악마라톤 코스는 거의 대부분 임도로 이어지지만 산행팀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능선을 이었음을 밝혀둔다.

아홉산으로 가는 도중 만난 산불초소가 서 있는 너른터에서 본 기장군의 대장산인 달음산(왼쪽 암봉)과 광활한 동해바다로 튀어 나온 고리원전(흰 건물). 사진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우측으로 일광산이 포진해 있다.

재부 함북도민 공동묘지인 영락동산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넌다. 기장과 반송을 잇는 14번 국도로 이 지점을 흔히 쌍다리재라고 부른다.

산악마라톤 코스는 여기서 우측으로 향하지만 이 길은 일광산 테마임도까지 연결되는 임도의 연속이여서 산행팀은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 '무인카메라 단속중'이라 적힌 안내판 옆 포장로로 발길을 옮긴다. 용천지맥길이다. 100m쯤 오르면 갈림길. 직진하면 부산진교회 부활동산, 산행팀은 왼쪽 산길로 향한다.

10분 뒤 숲을 벗어나자마자 이내 갈림길. 왼쪽으로 잡풀을 헤치고 나아가면 시야가 트인다. 좌측으로 금정산 고당봉과 장군봉 계명봉 토곡산이, 그 앞으로 윤산이 확인된다.

이어지는 산길. 가을 전령 억새가 흩날리는 가운데 길섶에는 쑥부쟁이 등이 보이고 시선을 우측 저 멀리 돌리면 광활한 동해바다가 가슴에 와 닿는다. 뒤돌아보면 장산이 손에 잡힌다. 산악마라톤 코스는 산행팀이 걷는 등산로 우측 10~15m 떨어진 지점에서 나란히 달리며 어떤 지점에선 5m까지 접근하기도 한다.

너른터에선 임도와 만난다. 이 너른터 끝나는 지점의 갈림길에선 능선인 산길로 직진한다. 야산 수준의 조그만 봉우리를 살짝 넘는다. 고들빼기 짚신나물 이질풀도 보인다.

국제신문 2대 산행대장 최남준 씨가 걸어 놓은 '용천지맥 320m, 준·희'라고 적힌 팻말도 지난다. 이 팻말은 이후에도 길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320봉을 내려서는 도중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은 칼치재 운봉산 개좌산 방향, 산행팀은 오른쪽으로 향한다. 4분 뒤 일광산 테마임도와 만난다. 쉬어가라고 입구에 정자가 서 있다. 산악 마라톤 코스와 만나는 지점이다. 이후 마라토너들은 좌측 임도로 달려가지만 산행팀은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임도를 가로지르며 산길로 올라선다. 입구에 '기장 MTB 경기코스'라는 팻말이 서 있다. 6분 뒤 갈림길. 바로 위에서 만나므로 무시한다. 한동안 호젓한 오솔길이 계속되다 '용천지맥 357m' 팻말을 지난다. 3분 뒤 시야가 트이는 갈림길. 조망이 기가 막히다. 기장군의 대장산인 정면 달음산을 기점으로 왼쪽으로 함박산(치마산) 곰내재 문래봉 철마산이, 함박산 앞쪽의 낮은 산이 아홉산, 함박산 우측 뒤로 용천산과 대운산 그리고 함박산 뒤 제일 높은 산이 천성산이다. 직진하면 바다 쪽인 일광산, 산행팀은 좌측 아홉산 방향으로 내려선다.

급내리막길이다. '용천지맥 263m' 팻말을 지나 또 다시 내려서면 테마임도와 다시 만나지만 현재 공사 중이다. 철마와 일광을 잇는 도로가 건설 중이어서 그 도로를 가로지르는 테마임도 부분은 다리로 연결하기 위해 현재 공사 중이다. 해서, 우측으로 에돌아 테마임도로 가지 않고 산길로 들어선다.

7분쯤 숲길로 오르면 산불초소가 서 있는 그늘진 너른터에 평상이 하나 놓여 있다. 오래 전 정자가 있었지만 태풍으로 인해 날아가고 기둥만 남아 있다. 조망이 아주 좋아 왼쪽 달음산, 우측 일광산, 그 가운데 고리원전과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시 200m대의 무명봉을 3개나 오르내리면 테마임도와 만난다. 연합목장으로 이어지는, 마라토너와 재회하는 지점이다. 임도를 따라 150m쯤 걸으면 좌측으로 안내리본과 함께 산길이 열려 있다. 12분이면 아홉산 정상에 올라선다. 오르는 길 주변 숲은 소나무 재선충에 의해 망가지고 있지만 3년 전과 마찬가지로 방치돼 죽음의 숲으로 변하고 있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장산에서 산성산을 거쳐 방금까지 지나온 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달음산과 동해바다도 역시 시야에 담을 수 있다.

이제 우측으로 내려선다. 정면으로 곧 오를 곰내재와 함박산이 보인다. 20분이면 다시 테마임도와 만난다. 우측으로 가면 임도 갈림길. 우측은 새로 조성한 임도, 산행팀은 직진한다. 7분 뒤 정자가 있는 체육시설에선 차단기 쪽으로 향한다. 10분 뒤 역시 정자가 위치한 체육시설. 왼쪽 임도는 마라토너들이 내달릴 곰내재 가는 길, 산행팀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오른쪽 산길로 오른다. 곧 갈림길. 직진형 좌측으로 치고 오른다. 체육시설에서 19분. 길찾기에 유의해야 할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은 함박산을 오르지 않고 곰내재 가는 길, 산행팀은 우측으로 오른다. 치마산으로도 불리는 함박산은 사실 용천지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산행팀은 종주 개념으로 오르기로 했다. 7분 후 또 갈림길. 알고 보니 갈림길 뒤 숲이 삼각점이 숨은 함박산 정상이다. 여기서 오른쪽은 달음산 가는 길, 산행팀은 왼쪽 곰내재 방향으로 내려선다.

기장 철마와 정관을 잇는 고개인 곰내재는 30분이면 내려선다. 지난해 조성된 함박생태터널을 지나면 곰내재공원.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여기서 길을 건너면 곧바로 산행이 이어진다. 입구에 '천마산'이라 적힌 표기는 '철마산'의 오기인 듯하다.

형제복지재단 건물 철망과 나란히 오른다. 30분 뒤 숨고르기를 하라며 경사가 한번 주춤한다. 알고 보니 문래봉 정상이다. '용천지맥 문래봉'이라 적힌 이정표가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을 정도다. 숲 사이로 저 멀리 철마산이 보인다.

이제 내려선다. 습기 머금은 축축한 길과 지계곡 그리고 산죽을 잇따라 지나면 정면으로 마을이 하나 보인다. 산중 마을인 소산벌이다. 곰내재와 거문산 철마산을 잇는 간이역인 셈이다.

산기슭에 닿아도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산길로만 따라간다. 울산 박씨묘를 지나 묘지 4기가 있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열린, 리본이 많이 걸려 있는 산길로 향하면 이정표를 만난다. '거문산 정상' 방향으로 직진하면 또 갈림길. 우측 '5산 종주 울트라마라톤'이라 적힌 리본이 보이는 쪽으로 간다. 4분 뒤 또 갈림길. 좌측 거문산으로 가는 너른 길 대신 우측 소두방재 방향으로 향한다. 20m쯤 뒤 갈림길에선 우측 억새 오름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라토너들은 거문산 방향으로 가다 임도를 만나면 우측으로 간다.

철마산 중봉에서 본 금정산과 부산의 야경.

옛날 정관사람들이 동래 쪽으로 넘나들던 고갯마루였던 소두방재는 16분이면 오른다. 우측은 망월산 백운산 가는 용천지맥, 산행팀은 여기서 용천지맥길을 버리고 좌측 철마산으로 향한다. 잠시 뒤돌아보면 백운산 용천산 망월산, 그 뒤로 천성산이 보인다.

12분 뒤 574봉. 주변 산들을 죄다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정면으로 철마산과 금정산 고당봉이, 그 왼쪽으로 거문산 문래봉 함박산 천마산 달음산이 확인된다. 이곳 주변은 또 부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억새군락지. 멋진 조망까지 포함한다면 개인적으로 장산 억새밭보다 한 수 위라 평가하고 싶다.

억새길을 따라가다 보면 갈림길을 만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좌측으로 내려서면 임도 차단기로 내려선다. 마라토너들이 소산벌에서 소두방재를 거치지 않고 달려간 임도와 만나는 지점이다.

임도를 건너 이제 철마산을 향한다. 도중 정관 임기마을로 가는 하산길이 있지만 무시하고 애오라지 직진만 하면 26분 뒤 정상에 올라선다. 크고 작은 정상석이 하나씩 서 있는 이곳에 서면 이웃한 거문산과 회동수원지, 발밑에는 금정경륜장 등이 보인다.

하산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우정밀' 방향으로 내려선다. 밧줄에 의지하는 등 시종일관 급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이후에는 '입석마을'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야 한다. 55분 뒤 철마면 입석마을에 닿고, 여기서 송정리 버스정류장까지는 14분 걸린다.

함박산과 문래봉을 잇는 곰내재의 함박생태터널.

# 떠나기 전에

- 기장군, 등산 안내판 하루빨리 정비해야

산행팀은 '부산 5산 종주' 두 번째 구간을 그동안 지면을 통해 띄엄띄엄 소개했다. 철마산~거문산, 함박산~석은덤, 달음산~아홉산, 철마산~백운산 하는 식으로. 해서, 모든 산길은 아니지만 정상은 한번씩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봉우리가 하나 있다. 바로 아홉산이다.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소나무 숲은 온통 재선충에 의해 망가지고 있지만 어디 하나 손 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기장군은 테마임도를 지금도 홍보를 하면서도 테마임도에서 5분만 오르면 빤히 보이는 아홉산 죽은 송림은 왜 방치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기장군의 등산 이정표도 문제다. 산성산과 수령산이 같은 산이면 이정표를 통일해야지 대형 안내판에는 산성산이라 표기하고, 조그만 팻말에는 수령산이라 적고 있다. 한 번만이라도 '산성산(수령산)'이라고 표기했으면 큰 혼란을 야기시키진 않았을텐데.

산행팀은 산성산 정상 직전 '기장산성'이라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오래 전에 산성이 있었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다. 하지만 정작 정상석에는 '수령산(성산)'이라 음각돼 허탈감을 안겨줬다.

이정표에 적힌 내용도 엉터리였다. 소산벌~소두방재 구간은 산행팀의 경우 16분 걸렸지만 이정표에는 6분으로 적혀 있질 않나, 임도 차단기에서 우측 방향으로 망월산 백운산이 위치해 있지만 백운산은 좌측으로 표기돼 있는 등 속된 말로 '개판 5분 전'이다.

이해할 수 없는 정상석도 하나 만났다. 소두방재에서 임도차단기를 건너 오르면 만나는, 조망이 아주 빼어난 574봉에 난데없이 세워져 있는 '당나귀봉'이라고 적힌 정상석을 두고 한 말이다.

무릇 산 이름은 산아래 마을사람들이 산세나 산의 모양 그리고 지명 전설 등을 근거로 하여 명명하거나 고서에 표기된 이름을 찾아 복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나귀봉'은 한마디로 난센스라는 것이 동행한 산꾼들의 견해였다. 부산의 모 단체가 지난 8월말 세운 이 정상석 뒷면에는 이 당나귀봉이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의 약어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산깨나 좀 탄다는 산꾼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발생했다"며 "굳이 정상석을 세우려면 574봉이 철마산의 전위봉임을 감안할 때 '가지산 중봉'처럼 '철마산 중봉'이나 소산벌 뒷산이기 때문에 '소산봉'쯤으로 명명했다면 모든 산꾼들이 수긍하며 박수를 쳤을텐데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 교통편

- 183, 188번 타고 만화리 쌍다리재에서 하차

들머리 기장군 기장읍 쌍다리재(만화리 영락동산)로 바로 가는 버스는 183, 188번. 이 두 버스를 못 탈 경우 73, 115-1, 129, 129-1, 189, 189-1번을 타고 (옛)반송검문소 버스회차 지점에서 내려 길을 건너 183, 188번으로 환승하면 된다.

날머리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송정버스정류장에선 노포동종합버스터미널행 2-3번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15~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밤 11시 넘도록 운행한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글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함박산에서 곰내재로 내려서는 산길이다. 마지막에는 넓은 산길이 이어진다.



곰내재공원의 내부 모습입니다.


고선마을인 소산벌입니다. 주로 버섯을 재배하고 있다 합니다.





철마산 전위봉인 574봉. 부산의 숨은 억새군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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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대에서 새벽4시에 출발하다보s니 대승령 까지 사진이 없습니다. 대승령에 도착니 어스럼이 거치고 날이 밝아 왔습니다. 우측은 귀청가는 길 12선녀탕은 좌측으로 내려갑니다.





내려서는 정면으로 안산삼거리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가 보이고 우측은 안산 삼거리로 올라가는 설송산악회 회원님

좌측으로 장수대 건너 남설악의 주걱봉이 소뿔만양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흑선동 계곡인 내설악의 비경이 떠오르는 태양으로 새벽의 단잠을 깨운다 

장수대 건너 가리봉 주걱봉 삼형제봉의 남설악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안산 삼거리로 갈림길이며 안산 방향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로프가 쳐져 있다 여기서 하산길은 좌측으로 틀어 나간다. 즉 남교리 매표소 방향이다.

붉게 물든 단풍이 아침 햇살을 반아 더욱 빨강색이다.

하산하는 능선끝 쉼터에서 좌측으로 틀어 내려서면 정면에 안산의 바위가 빛을 발하며 설악산의 비경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안산을 가까이 보기 위해 당겨보았다. 자뭇 웅장하다


마지막 샘터 까지 바위길의 내리막 하산길이다.


대학산악부 시절 사연많은 마지막 샘터, 지금은 가물어 물이 많이 말라 있다.

12선녀탕의 우울창창한 수림들과 하산길







수백년된 주목,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묵이다. 속은 비어 있어 얼마나 오래된지 알 것도 같다.


야생화인 투구꽃과  메미의 영향으로 작은 간이용 다리가 놓여져 있다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하여 이름붙은 금강초롱 꽃과 12선녀탕의 상류의 작은 소

설악산은 대학 산악부 시절에 줄기차게 찾아가던 곳이다 부산에서 열차를 이용하여 찾아 들어간 곳이 남교리 십이선녀탕입구이다. 산노래를 항상 부르며 서북주 능선을 종주하였다

이름하여 서북주능

"12탕 계곡을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대승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물이 없는 능선에서 의지를 배우고

대청봉을 향해가는 서북주능선"이란

가사를 “전우여 잘자라”에 붙여 힘들때 부르곤 하였다.

그런 학창시절의 기쁨을 생각하며 여러번 설악산을 찾아 올랐다 항상 부산에서는 가을철에 설악의 골짜기를 찾아 산행을 하였다 오색약수~대청~천불동,한계령~대청~천불동, 설악동~공룡능선~천불동~설악동등 많은 코스를 찾아 올라 갔지만 대승령~12선녀탕을 이번 이른 가을에 댕겨 왔다.

시간이 많아 야영도 하며 다니던 학창시절의 재미는 사라지고 무박산행이란 산행에 장님 문고리를 잡고 오르는 산행 스타일이 요즘은 성행을 한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어 양날의 칼과 같다.
부산에서 먼거리로 밤에 이동하여 아침에 산행하고 오후에 돌아가는 장점은 있지만 새벽 4시에 떨어져 올라가면 초보산꾼이나 산을 잘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은 어디가 어디인지 앞사람의 엉덩이만 보고 해가 뜰때까지 그래 산행을 이어간다. 우리산악회도 바쁘다란 이유로 무박 산행을 매년 한번쯤은 하고 있다.

장수대에 도착을 해보니 많은 차량들로 분주하다. 많은 산악회가 한계령에서 대청으로 오르는 정상 등정 산행을 많이 해서 귀청이나 대승령 부근은 최근까지는 그래도 한적하였는데, 이제는 설악산도 한적한 코스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산꾼으로 넘쳐난다.
조용했던 장수대도 2년만에 최근에 풀린 12선녀탕을 보기 위해 많이 찾는 산행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장수대에서 간단하게 올라 대승령을 거쳐 오르는 산길은 몇 년전에는 없던 나무계단으로 산길이 넘쳐나 있다,
나무계단이 거의 대승폭포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밤이라 그런지 힘들지 않게 올라 왔지만 아쉬운점은 건너편의 가리봉과 주걱봉 삼형제봉등 남설악의 숨은 비경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고 우리나라3대 폭포의 하나인 대승폭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쉬엄쉬엄 올라 보니 대승령(1210m)까지 얼추 2시간이 소요되었다.
우측으로가면 귀청으로 가는 서북주능선길로 중봉대피소까지 12.1km. 넘어서면 흑선동계곡길로 지금은 출입을 할 수 없는 길이다 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왼쪽길, 12탕으로 가기위해서도 왼쪽으로 내려간다.
12선녀탕 공원입구 8.6kn로 안내판이 서 있다.
산길은 안산갈림길 까지 가기위서는 한번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 가야 한다 오래는 단풍이 영 시원 찮은 것 같다. 이른 것도 있지만 가뭄으로 잎이 말라 벌써 떨어지곤 한 낙엽이 많이 뒹굴고 있다.
등에 땀이 날쯤 안산갈림길에 30분 소요되었다. 직진을 하면 안산이지만 출입을 통제하는 비 법정등산로이다.
 우측 남교리(매표소 7.6km)로 내려서면 이제는 완전한 하산길이다.
여기서 충무김밥으로 아침을 먹는다. 새벽이라 그런지 땀이 식어 추워선지 모두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산길은 태풍 매미로 2년동안 출입을 통제하며 등산로 정비 작업을 하여 개방을 하였는데 등산로가 매우 궁금하였다.
사실상 대학시절에 찾던 12탕 계곡은 거의 인공 시설물이 전혀 없어 힘겹게 올라간 것으로 기억을 한다.
아침에 남교리에 내려 마지막 샘터에 가면 오후3시 쯤 되고 여기서 막영을 하던지 아니면 물을 충분히 보충하여 귀청 밑의 안부까지 가던지 였다.
지금은 귀청 밑의 안부에 샘터가 개발되어 예전 같은 번거러움은 안해도 되지만 그래도 여름철의 서북주능종주는 힘이든다.
대형배낭에 암벽장비를 넣은 배낭의 무게는, 거기다가 식량은, 그때의 식단메뉴는 감자 홍당무등 무거운 것 일색의 식단이었다.
지금은 후배들이 택배를 이용하여 짐을 부치고 한다는데... 12선녀탕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바위돌이 깔려 있는 길이다. 무릎이 안 좋은 나로서는 치명적인 하산길이다.
선두는 벌써 멀리 가버리고 조심을 하며 내려선다. 건너면 능선에서는 안산이 아침 햇살을 받아 하얀 바위가 반짝이고 산길은 선녀탕안으로 자꾸 급하게 빨여내려간다.
하산하는 만큼 건너편 안산 능선은 높이 달아나버리고 어느새 샘터에 도착을 한다. 일명 마지막 샘터로 서북주능선을 종주할 시에는 귀청 안부까지 물을 구할 수 없어 여기서 식수를 반드시 보충하고 갔는 추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대학산악부때 여대 산악부원 들과 서북주능선 종주를 하던 기억이 생각난다. 물을 아껴 먹어라고 신신 당부 했는데 여름철의 폭염은 우리를 가만 놔 두지를 않았다.
귀청을 지나 한계령갈림길 까지 반도 못가고 물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할 수 없이 선발대를 만들어 물을 떠 오도록 나와 먼저 출발을 하고 어느새 밤은 어둑어둑해지고 지금의 귀청전 언부에 도착을 하니 텐트가 한동 쳐져 있어 사정이야기를 하고 한 수낭을 얻어 대원들 쪽으로 달려가보니 가관이 아니다. 물은 떨어지고 목은 마르고 물을 뜨러간 대원은 안오고 할수없이 부식인 오이며 홍당무 생감자를 깍아먹고 별?다하고 있는 중이였다.
후배를 불러 조금씩 소금과 함께 물을 주게하고 있어니 후배왈~이밑에 다른팀 한팀이 또 퍼져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 팀에 가보니 여자는 완전 탈진을 해 정신도 없는 상태라 사탕을 물에 끓여 녹인후 당분을 섭취하게 하고 수낭의 물을 반 주고 우리는 배낭을 그 자리에 두고 비박장비와 비상식량을 챙겨 다시 귀청 안부에 도착을 한다.
샘터를 찾으러 전대원이 계곡으로 내려가 물을 가지고 올라와 물을 빌린 텐트에 가서 고맙다며 수낭을 내주고 우리는 거기서 비박을 하였다. 생각을 해보라 여름 방학이지만 1000m 이상의 설악산은 춥다는 것을 판초만 가지고 비박을 하니...
아침에 몰골이 아닌 모습으로 서로를 꼬집어 보고 확인을 하고 난리가 아니다. 아침에 물을 구하러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 아침을 해 먹고 안부에서 물을 가지고 배낭을 가지러 출발을 한다.
배낭이 있는 곳에 가니 밑의 텐트는 아직 기척이 없다.
깨워 물 반수낭을 주고 다시 귀청 안부에 오니 점심때 점심을 해 먹고 물을 보충하고하여 출발하여 소청에서 잔 기억이 생각난다.
22년 지난 이야기이다. ㅋㅋ

처음 12선녀탕의 계곡길은 그 당시에는 인공 구조물이 전혀 없었는데 22년전에 오니 복중아탕에 파이프가 박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은 메미때의 태풍영향으로 산길은 본래의 모습이 많이 바뀌고 작은 나무다리하며 통나무 다리가 걸여 있는 모습 옆으로 아직도 그때의 산사태가 흉직하게 드러나 있다.
자연으로 다시 복원을 할여면 수십년의 세원이 흘러야 하는데 말이다.
어느듯 계곡의 물소리가 커지고 작은 소가 연달아 나타나며 12선녀탕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단풍도 이제는 붉은 색으로 치장을 할 준비를 하고 있어 지금은 붉은 단풍잎이 12선녀탕을 물들일 것이다.
두문폭폭에 도착을 하니 전망이 탁트이며 우측으로 데크가 연달아 설치되어 있고 자연의 생체기가 더욱 심한 구간이다.
수량이 적어 미끈한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실폭처럼 흘러 내리는 물이 바로 복숭아 탕으로 흘러간다.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은 소에서 쉬고 다시 완만한 폭포에서 미끄러지길 반복한다.
이은상 선생님이 여길 와 8탕8폭이라 할 만큼 12선녀탕의 핵심인 복숭아탕이 있는 곳이다.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고 전망대에서 보면 복숭아의 느낌은 전혀 없고 찌그러진 ?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 복숭아의 하트모양을 볼여고 하면 전망대 밑에서 복숭아 탕 쪽으로 나가면 하트모양의 복숭아를 만날 수 있다.
이제는 볼장 다본 12선녀탕을 뒤로 하고 빠른 걸은으로 서둘러 내려간다.
십이선녀탕 입구 4km의 이정표를 뒤로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나 다리 건너 우측에 카돌릭대학 산악부 추모비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추모비 앞으로 산행을 했는데...복
숭아탕에서 60여분이면 12선녀탕 입구에 전 회원이 내려와 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다.

12선녀탕의 기암들

직각으로 떨어지는 두문폭포. 태풍의 영향으로 산사태로 인한 계곡의 파괴가 넘 엄청나다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이 8탕8폭을 거쳐 가는 12선녀탕의 비경지대인 복수아탕 부근


















복숭아 탕이 있는 전망대가 보이고 그 뒤로 블랙홀 같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전망대에서 본 복숭아 탕, 실제로 복숭아 같은 하트 모양은 아래편에서 봐야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숭아 같은 하트모양으로 이모양 때문에 복숭아탕이란 이름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남교리 12선녀탕 입구인 탐방 지원센타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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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계단 여인상"입니다. 40계단을 대표하며 양동이를 이고 아기를 업고 있는 우리의 어머님의 모습입니다. 이 동상은 인쇄골목 40계단 문화관 건물 앞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양동이를 이고 애기를 업은  어머님이 40계단을 내려오고 있네요. 40계단 여인상의 모델로 수도 없이 오르내렸을 이계단을....이분은 지금 어디예 계시는 궁금합니다. 40계단 문화관 5층에 전시를 해 두었습니다.

현재의 40계단 모습입니다. 중간에 아코디언을 켜는 아저씨가 않아있네요.
그분 등뒤에는 스피커가 들어 있는 박스가 있습니다 이박스의 보턴을  누르면 박재홍님의 경상도아가씨가 흘러 나옵니다.

 

그시절에는 계단 좌우로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계단 옆으로 집이 꽉 들어서 있습니다.

아코디언을 켜는 아저씨의 모습입니다. 그때 그시절에는 길거리의 악사들이 많은 시절이였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생각나는 모습입니다. 뻥티기를 하는 아저씨와 그옆에 꼬마의 모습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그때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뻥 소리와 함께 김이 무럭무럭나며 주위로 박상이 튀어나와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 먹을여고 두 귀를 막고 서 있는 모습... 

피난시절 고달픔도 잊고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 우리 어머님의 모습
입니다. 지금 난장의 옷가게가 진을 치고 있어 그때의 모습과 너무 대조적입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물이 귀한 시절입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수도꼭지를 틀면 뜨거운 물 찬물이 콸콸 쏟아지지만 그때는 공동우물로 물이 귀한 시절이였습니다. 온 가족이 총 출동하여 이고 지고하여 물을 져 나르는 모습입니다.

고단한 삶의 모습입니다. 전쟁후 먹고 살기 힘들때 지게를 지고 물건을 져 나르는 역전지게꾼이나 막노동을 하며 하루 날품팔이를 하는 우리 아버님의 모습입니다.
지게에 등을 데고 누워 있는 모습에 한켠에 고무신을 벗어 놓은 그 모습이 얼마나 힘이 드시는지...우리 모두의 아버님입니다. 아버지의 휴식

 테마 거리의 모습입니다. 전봇대하며 전봇대위의 까치집 그리고 중간의 영화 벽보하며 생각나는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40계단 테마거리를 알리고 있습니다. 중앙동 팔성관광에서 동광동으로 오르는 길이 중앙동 국민은행 옆으로 이어지는 테마거리를 알리는 안내판입니다. 팔성관광 건너편에 설치 되어 있습니다.


중앙동 국민은행 옆의 40계단 조형물입니다. 평화의 문으로 기찻길에는 희망찬 내일을 향한 등불을 형상화 했다합니다.

부산역을 나타내는 기찻길의 모습이 있어며

부산항을 나타내는 항구의 모습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힘든 고비를 넘기기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터온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1950년 6.25가 발발하고 전세는 불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으로 다 수용을 못하고 피난온 사람들은 부산의 대표적인 엄광산 구봉산 용두산 아래 터를 잡고 계단식으로 거적 데기나 판자로 엮어 만든 동네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판자촌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게 중앙동의 40계단입니다.
 40계단이 생긴지는 뚜렷하게 알 수 없지만 중앙동에 새마당이 생긴게 1908년이니까 미루어보건데 동광동5가 언덕베기 윗길에서 중앙동4가 새마당으로 내려오는 길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40계단이 널리 알려져 피난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곳이 된 것입니다.
6.25로 인해 피난민들이 이곳 40계단에서 구호물자로 흘러 나온 물건을 거래하는 난장이 생기고 국제시장과 함께 피난민들에게는 애환이 서린 곳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피난민들이 모두 모이다 보니 전쟁통에 잃어버린 가족과의 상봉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합니다.

지금도 부모님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박재홍님이 부른 “경상도 아가씨”로 첫구절에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로 시작되는 이노래는 가사가 피난민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 사십계단이 지금의 40계단으로 부산시 중구 동광동에는 40계단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40계단 문화관으로 동광동 인쇄골목에 위치를 하며 40계단과 함께 테마거리를 조성하여 부모님들에게는 피난살이의 힘겨웠던 추억을 생각하게하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도록하기 위해 그때의 물품이나 모형을 만들고하여 전시를 해 놓았습니다.

40대 후반 필자인 나도 추억이 떠 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양은으로 만든 도시락 구슬 딱지등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물건이 꽤 많아 꼭 한번 부모님과 자녀분과 함께 찾아 가 보길 권해봅니다.


이제 부터는 40계단 문화관의 모습입니다.



5층 입구에 들어면 만나는 모습입니다. 상설 전시실로 1876년 개항이전부터 개항기를 거쳐 일제 강점기, 광복 6.25등 중구의 역사를 이야기한 중구 연표가 전시되어 있다.


광복전후 부산의 사회상과 6.25로 인한 피난시절 부산 모습을 잘 나타내었어며



밥벌이 물전쟁 삶의 애환이 묻어 있는 그시절의 물품을 전시하여 장년층의 애환을  되살리고 있다.


피난시절의 꿀꿀이 죽 옥수수죽등 그때의 먹거리를 나타내었어며





전쟁중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배움의 꿈을 키워 왔던 천막교실의 모습입니다. 봉숭아학당의 저요저요 하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풍금에서 흘러나오는 반주에 노래도 부르고....

박재홍님의 경상도 아가씨와 그 당시의 음반들과 전축

어렵던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남감입니다. 생각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양은 도시락과 교복, 추억의 책가방등 그때의 학용품하며...

전쟁물자를 이용하여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을 하였습니다. 재떨이하며. 사물함 그리고 호롱불대신으로 사용을 하였다합니다.





닥종이로 그때의 모습을 만들어 6층 특별전시실에 일부 전시를 해 놓았습니다.
천막으로 엮은 집 앞에서 피난민들의 모습입니다.

망~개~떡~ 외치는 망개떡장수의 외침이 귓전에 맴돕니다. 



6층 특별전시실 중앙에 전시된 그 당시의 군용석유램프 그리고 화덕, 불을 피우기위한 시설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4개의 사각 기둥안에는 그 때의 모습을 찰흙으로 나타내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상영을 할때 돌리는 영사기입니다. 한참 재미 있을 때 보면 필름이 지지지~하며  끊어져 다음장으로 넘어가면 휙~하고 휘파람을 불며 난리를 치던 그때그시절의 영사기입니다.

풀빵입니다.지금이야 추억으로 먹지만 그때는 한끼를 때우기 위한 식사였습니다.

전쟁통에 죽이라도 얻어먹을여고 줄을 서는 모습입니다.

많은 식구가 단칸방에 칼잠을 자던 시절입니다. 자세히 보니 흥부네 가족입니다.


그때 난전의 모습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배고픈 시절에는 부러울 것이 없는 가게 아저씨입니다.

가마니로 엮은 움막입니다. 움막안에 자는 꼬마와 밖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는 엄마 그때의 모습입니다.

40계단 문화관 전경입니다. 5~6층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번쯤은 둘러볼 것을 권해봅니다.  


참고로 중구문화의집 051-600-4541
40계단기념관 051-600-4041
주소:부산시 중구 인쇄골목 2길81(동광동5가 44-3)
개관일:매주 화요일~일요일(월요일휴관)
관람시간:오전10시~오후7시까지이며 토.일요일은 오후5시까지
교통편은 지하철 1호선 중앙동역하차, 13번 출구로 나와서 5분거리임
버스는 17,26,27,40,41,61,81,82,85,87,88,103,134,508번임
홈페이지:www.bsjung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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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칠선계곡~천왕봉~백무동

10년만에 속살 내비친 생명의 골짜기…웅장함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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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의 들머리로 예전에는 매표소가 있던 자리와 두지터를 지나 선녀탕으로 향하는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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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터를 지나면 산불통제기간에는 여기서 출입을 통제한다. 칠선계곡은 이문을 통과해야만한다. 처음만나는 출렁다리를 건너야만 칠선계곡의 속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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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 칠선계곡의 비경은 지금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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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탕을 지나면 곧이어 만나는 옥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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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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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의 백미인 칠선폭포, 일곱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을것 같은 웅장함과 떨어지는 물소리가 계곡을 뒤흔든다. 칠선계곡을 대표는 얼굴마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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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을 지나면 합수점이다. 좌측 지계곡으로 들어서면 칠선계곡에서 가장 높은 대륙폭포와 만난다. 부산의 대륙산악회에서 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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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으로 구성된 폭포이며 아름다운 미폭으로 칠선계곡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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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폭포의 중단에 있는 소로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은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폭포로 떨어진다. 부산의 자일산악회에서 명명하였어며 자일3단폭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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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칠선계곡은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발아래 이끼며 지표식물의 표본인 관중하며 나무의 버섯등이 계곡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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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소를 지나면 자연 상태의 산길이 대부분이다, 고사목을 타고 넘고 하는 것이 다반사다. 계곡에 핀 야생화와 폭포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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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을 다 올라 왔다는 의미로 마지막으로 만난다하여 마지막폭포 즉 마폭으로 명명된 폭포






깊고 험준한 골짝은 천지를 뒤흔들 만큼 우렁찬 물소리를 토해내며 예의 빼어난 비경을 자랑했고 햇빛 한점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울울창창한 숲속의 물기 잔뜩 머금은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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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이끼는 널브러진 돌이나 아름드리 노거수를 감싸며 사방을 온통 초록으로 물들게 했다.

마지막 폭포인 마폭을 지나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1800m대의 헌걸찬 지리 마루금은 구궁심처 골짝에서 솟아오르는 희뿌연 구름과 한데 어울려 신선의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칠선계곡은 험하지만 분명 비경이다. 한신계곡 뱀사골 피아골 등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계곡에 비해 한 수 위다. 아니 급이 다르다.

흔히 산길이나 계곡은 풍광이 좋고 나쁨을 반복하지만 칠선계곡은 국내 여느 유명 계곡의 내로라하는 아름다운 구간만을 조물주가 부러 이어붙인 듯해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운치있는 오솔길을 따라가면 두지터로 갈수 있다

각좌측에서 부터 마폭포, 선녀탕, 옥녀탕, 비선교와 비선담, 삼단폭포 중간의 아주 깊은 소, 상류 지계곡에 놓인 외나무다리, 천왕봉에서 만난 4학년생 쌍둥이 자매(이후 종주했다), 이낀 낀 원시림, 칠선폭포, 500년 된 주목, 통천문, 대륙폭포.

지리산 천왕봉에서 북으로 곧장 떨어져 내리는 칠선계곡은 겨울이면 북향의 깊은 골짝이라 적설량이 많고 기온이 급강하하고,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급격한 지형변화로 조난사고의 우려가 높다. 인공시설물이 거의 없는 것도 또 하나의 요인이다.

이와 관련, 이창우 산행대장은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되기 전인 1980년대 칠선계곡은 비교적 한가했지만 지금처럼 비선담까지 설치돼 있는 인공시설물이 하나도 없어 베테랑급이 아니면 산행할 엄두를 못냈을 정도로 사실 난코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음은 있지만 일반 산꾼들로선 선뜻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 그런 코스였다.

세월이 흘러 칠선계곡은 지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자연휴식년제라는 명목하에 총 9.7㎞ 구간 중 3.8㎞ 지점인 비선담까지로 산행이 제한됐고, 올해부턴 국립공원 특별보호구로 지정됨과 동시에 산아래 추성동 주민들의 염원을 적극 수용해 지난 5월부터 국내 최초로 탐방예약 가이드제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내년까지 2년간 5~6월, 9~10월 넉달간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의 안내로 칠선계곡 산행을 할 수 있게 된 것.

바야흐로 칠선계곡이 10년 만에 공식적으로 부분 개방된 것이다.

산행팀은 사실 지난 4월말과 5월초 두 번이나 취재산행을 계획했지만 공교롭게 두 번 모두 장대 같은 비가 내려 발길을 돌렸다. 결국 삼세번만에 칠선계곡 품에 안긴 셈이다.

산행 코스는 함양 마천면 추성리 주차장~칠선계곡~마폭포~천왕봉~제석봉~장터목 대피소(1박)~백무동 순. 순수하게 걸은 시간은 10시간45분. 구간별로 보면 추성리~마폭 5시간30분, 마폭~천왕봉 1시간30분, 천왕봉~장터목 55분, 장터목~백무동 2시간50분. 걷는 시간만 그렇다는 뜻이며, 여기에 휴식 및 식사시간은 별도로 더해야 총 산행시간이 된다.

함양 마천면 추성리~마폭포

주차장에서 추성리 마을을 지나 포장로를 따라 오른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움푹 파인 국골이 초암능선과 두류능선을 좌우로 갈라놓고 있다. 추성리에서 25분이면 두지동(일명 두지터). 오래전 화전민들이 기거했던 산골마을이지만 지금은 6가구가 농사와 민박을 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담쟁이넝쿨로 에워싸인 담배건조막과 유난히 붉은 배롱나무꽃만 옛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바로 옆에는 최근 펜션이 들어서 있다. 두지터는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이웃 국골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식량창고로 사용했다는 설과 지형 자체가 쌀 뒤주를 닮았다는 설이 내려온다.

두지교와 입산통제 기간 중 출입문, 울창한 대숲 그리고 쇠줄로 만든 출렁다리를 잇따라 지나면 가파른 오름길. 칠선계곡은 출렁다리에서 잠시 맛만 볼 뿐 선녀탕까지의 40여 분은 물소리만 들릴 뿐이다. 도중 뜻밖에도 평탄한 길을 만난다. '칠시'라고 불렸던 옛 칠선동 마을터다. 자세히 보면 오래된 축대와 계단식 논의 흔적이 보이고 바닥에는 비닐장판 조각이 보인다.

지계곡을 건너 마당바위로 불리는 전망 좋은 너른 암반를 지난다. 이제 선녀탕까지는 1㎞. 진한 숲 향기를 음미하며 27분쯤 오르내리면 선녀탕을 알리는 이정표와 아치형 구름다리를 만난다. 일곱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전해오는 선녀탕(620m)은 다리에서 보면 숲 그늘이 드리워져 운치가 그저 그만이다.

이때부터 칠선계곡의 진면목을 감상하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선녀탕 바로 위에는 선녀탕보다 더 넓고 깊은 옥녀탕(650m)이 기다린다. 유난히 맑고 푸른 탕도 탕이지만 옥녀탕으로 쏟아내는 와폭 또한 일품이다.

옥녀탕부터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조성한 덱을 따라 걷는다. 10여 분이면 흔들다리인 비선교에 올라선다. 이 대장은 비선교 입구 쪽 암벽을 가리키며 예전에는 이곳으로 밧줄을 잡고 올랐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자세히 보니 밧줄의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목욕한 선녀들이 하늘로 올랐다는 다리 아래 비선담(710m)은 옥녀탕과 규모는 비슷하다. 비선교를 지나면 잠시 호젓한 숲길. 5분 뒤 다시 목재 덱을 만나면서 비경이 이어진다. 소와 와폭의 연속이다. 떨어지기 직전 소용돌이를 치는 폭포, 두 갈래로 유유히 떨어지는 쌍폭 등과 선녀탕이나 옥녀탕에 견줘도 하등 손색없는 소가 굽이굽이마다 시선을 빼앗지만 아쉽게도 이름이 없다. 칠선계곡을 두고 흔히 '7폭 33소와 담'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10분 뒤 다시 덱을 만난다. 공단 직원 두 사람이 근무를 서고 있다. 알고 보니 칠선계곡에 설치된 마지막 덱으로 비선담 통제소다. 위쪽 산길과 이어진 출입문에는 육중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여기서부터 천왕봉까지 5.4㎞ 구간이 특별보호구로 지정된 곳이다. 통제소를 지나면 숲이 확연히 달라진다. 더욱 짙어지고 길은 좁아지며 발밑에는 물기 머금은 싱싱한 이끼가 널브러진 돌과 나무 밑둥치를 감싸고 있다. 산죽 군락은 이에 뒤질세라 길마저 막고 있다. 원시 그대로의 비경 그 자체다.

6분 뒤 산죽길을 벗어나면 계곡과 만난다. 직진하기도, 좌측 산사면으로 치고 오르기도 마땅치 않다. 처음으로 물길을 바로 건넌다. 반복되는 이끼 수북한 산죽 숲길. 길 안내를 위해 돌 위에 뿌린 붉은 스프레이 표시도 이끼에 가려 그 흔적이 가물가물하다. 놓쳐선 안 될 볼거리가 하나 있다. 일명 청춘홀이다. 물길을 건너 100m쯤 거리에 위치한 표지목 지점쯤에서 좌측으로 바로 보면 보인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한데 어울려 생긴 너른 공간이다. 청춘 남녀가 비를 피해 들어섰다가 사랑에 빠졌다는 설도 있고, 오래전 목기를 다듬는 젊은 청년들이 청춘 흘러가는 것을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엔 바닥도 편평해 텐트 하나 정도는 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계곡 범람으로 인해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지계곡을 건너 우렁찬 굉음에 이끌려 물가로 내려선다. 칠선폭포를 보기 위해서다. 첫 인상은 함양 용추계곡의 용추폭포. 높이가 5m 안팎에 불과하지만 그 당당함은 이름 그대로 칠선계곡의 얼굴마담으로 손색이 없다. 통제소에서 30분. 혹 폭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을 놓쳤더라도 길에서 보이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끼 낀 돌길의 연속. 7분 뒤 자연스럽게 두 번째 물길을 건넌다. 이 지점은 중봉과 하봉 사이의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지계곡과의 합수점이다. 이 지계곡을 거슬러가면 40m쯤에 우측으로 열린 길이 향후 진행방향이며, 여기서 60m 더 가면 칠선계곡에서 최대 규모인 대륙폭포를 만난다. 지난 1964년 칠선계곡을 탐사하던 부산의 대륙산악회가 명명한 이 폭포는 약 15m 높이에서 하얀 물줄기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진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장엄하며 고색창연하다.

대륙폭포 이후 산길은 험하면서 동시에 가팔라진다. 무명봉 하나 넘는다고 생각하고 살짝 올라서면 계곡과 만나지만 건너지 않고 물길 좌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25분쯤 뒤 또 한 줄기의 폭포가 눈과 귀를 자극한다. 자일산악회가 명명한 (자일)삼단폭포다. 상류 쪽 두 개의 와폭에 이어 수직폭이 시원하게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폭포 좌측으로 오르면 가운데 와폭은 쌍폭이며 그 아래는 좁지만 깊이를 가늠키 힘든 아주 깊은 소가 소용돌이 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단폭포에서 마폭포를 만나기까지 80분 정도 또한 녹록지 않다. 이쯤 되면 계곡 폭이 좁아지고 유량은 줄어듬직한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되레 무명폭과 크고 작은 소가 줄을 잇고 또 잇는다. 칠선계곡의 저력을 실감케 하는 시점이다.

이끼 낀 크고 작은 돌길과 쓰러진 아름드리 나무들도 넘어야 하고 외나무다리도 건너고 때론 유일한 인공시설물이라 할 수 있는 얇은 밧줄에 의지해 암벽을 올라야 한다.

천왕봉으로 오르면서 마지막으로 만난다는 의미의 마폭포는 천왕봉과 중봉 사이의 골짜기에 걸려 있는 비경의 2단 폭포. 상단은 수직폭이고 하단은 와폭이면서 쌍폭이다.

마폭포와 관련된 여담 한 가지. 지난 1964년 부산의 산악인들로 구성된 개척단에 참여한 곽수웅 씨는 "밑에서부터 이름을 붙이며 올라오던 중 소와 폭포가 끊임없이 나타나 이름짓기를 중단하고 마지막 폭포에 와서 명명한 것이 마폭포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웃한 바위 쉼터가 좋아 대개 여기서 폭포를 감상하며 물통을 채운다.

마폭포~천왕봉~장터목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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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폭포를 지나면 된비알의 오르막이 기다린다. 오르는 도중 지리산의 500년 된 주목을 만난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은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마의 코스. 급격한 체력 소진을 요구하는 구간이다. 3㎞ 정도의 이 구간은 거의 일직선형의 산길에 고도차가 500m에 이르러 급경사를 이룬 곳이 태반이다. 심한 곳은 경사 60~70도의 바위 사이로 길이 이어져 있다. 약간 과장하자면 코가 땅에 닿을 정도다.

하지만 이 구간은 지리산 최고의 원시림 지대로 그에 걸맞게 수해(樹海)가 펼쳐진다. 우선 마폭에서 300m쯤 오르면 등산로상에 보이는 500년된 주목. 밑둥치 둘레가 3.4m로 두세 명이 팔을 벌려야 닿을 만큼 굵은 이 주목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크고 굵고 오래 됐다. 주목 이외에도 우리나라 특산종인 구상나무가 군집을 이룬 가운데 전나무 잣나무 등도 아름드리 노거수로 자생하고 있다. 인간의 발길이 뜸한 사이 노거수들은 꾸준히 생명력을 키운 것이다. 이 대장은 "10년전만 해도 산사태의 흔적이 너무 많아 사태골로 불렀는데 지금은 많이 복원돼 당시 흔적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천왕봉을 1㎞ 앞둔 지점에선 이정표 뒤로 중봉에서 흘러 내린 암봉이 골짝에서 꿈틀거리는 구름에 가려 있다 잠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좀체 보기 드문 비경이다.

오래전 사태가 난 듯 정상적으로 오르기 힘들어서일까. 마지막 급경사 오르막은 철계단이 설치돼 있다. 하늘을 찌를 듯 빼곡히 원시림을 이루던 주목과 구상나무는 시야에서 사리지고 시나브로 구절초 쑥부쟁이 동자꽃 산오이풀 등 야생화가 활짝 웃으며 뭍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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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힘을 소진하면  천왕봉옆 칠선계곡으로 내려서는 펜스에 올라선다. 일주일에 4번 열리는 문이다. 그리고 천왕봉 정상에 올라선 취재팀, 그날은 시야가 흐려 주위의 조망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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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정상석 뒷면의 모습인 한국인의 기상~, 개스가 뒤덮힌 지리산 칠선계곡 방향의 봉우리와 울퉁불퉁한 바위 하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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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터를 지나는 취재팀과 비선담을 가로지르는 다리


충한 날씨 탓에 남한 최고봉인 천왕봉에 와서도 잠시 기념촬영을 할 뿐 등산객들은 하산을 서두른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잿빛인 데다 추위마저 느껴져 오래 머물 여유가 없다.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못 보는 기분이 꼭 이럴까. 문득 '천지에 올라 천지를 못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란다는 문구가 생각나 피식 쓴웃음이 나온다.

장터목 대피소로 향한다. 지리산에선 이곳을 통하지 않고선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는 통천문(1814m)을 내려서고 지리산의 명물 고사목 지대가 절경을 선사하는 제석봉(1808m)을 살짝 넘으면 마침내 장터목 대피소(1645m). 장터목은 옛날 천왕봉 남쪽의 산청 시천 주민들과 북쪽의 함양 마천 사람들이 매년 봄 가을에 물물교환을 하던 장터가 서던 역사의 현장으로, 현재에는 노고단 다음으로 많은 산꾼들이 몰려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산행팀이 찾은 날도 예기치 않게 해질 무렵부터 비바람이 몰아쳐 많은 산꾼들이 삽시간에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리산 대피소 중 시설은 아주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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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 통제소. 이후부턴 일반인들은 여기까지 밖에 산행을 할 수 없다.

장터목대피소~백무동

함양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은 지리산의 북쪽 관문. 이곳에서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지름길이 열려 있고, 세석평전으로 곧장 연결되는 한신계곡 코스도 있다. 백무동 코스는 거림골과 함께 지리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가장 편한 길이다.

백무동은 원래 100명의 무당이 거처했다고 하여 백무동(百巫洞)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백무동(百武洞)으로 쓰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지리산 천왕봉에 살고 있었다는 산신인 여신 성모(聖母)가 남자를 끌어들여 100명의 딸을 낳아 세상에 내려 보냈는데, 그들이 팔도로 퍼져 나간 출구가 백무동이었다고 한다.

새벽부터 장대비가 내려 천왕봉은 입산금지. 법천계곡도 물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위험해 대부분의 산꾼들은 능선길인 하동바위 코스를 타고 백무동으로 향한다. 장터목에서 5.8㎞.

망바위를 지나면 너른터에 닿는다. 소지봉(燒紙峰·1312m)으로 백무동까지 중간쯤 되는 지점이다. 옛날 백명의 무당(百武)들이 제를 지낸 뒤 '종이를 태웠다'는 봉우리다. 오래전 백무동(百巫洞)으로 불렸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여기서 400m 더 내려오면 참샘. 유난히 다람쥐가 많이 눈에 띈다. 오가던 산꾼들이 쉬면서 먹던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 주면서 다람쥐가 이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계속되는 돌길. 눈앞에 주위를 압도할 만큼 10m쯤 되는 엄청난 규모의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흔들다리를 건너면 이정표가 서 있다. 함양땅인데도 하동바위(900m)라고 한다. 바위 한쪽에는 '하동암'이라고 음각돼 있다. 하동지방을 바라보고 서 있어서 또는 하동군수가 지리산 구경을 왔다가 이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기 때문에 하동바위라고 불린다고 전해온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여기서 1.8㎞ 즉 45분 후에는 백무동 야영장을 거쳐 백무동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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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석봉으로 향하는 중간의 운치 있는고사목지대

#떠나기 전에

- 탐방예약 가이드제 9, 10월 한시 운영…인터넷으로만 접수

지리산 칠선계곡은 현재 추성리에서 비선담까지는 상시 산행할 수 있고 비선담에서 천왕봉 구간은 2027년까지 생태계 보호를 위해 특별보호구로 지정 관리돼 있어 산행을 맘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 국립공원사무소는 올해부터 내년말까지 5~6월, 9~10월 등 연중 4개월간만 '탐방예약 가이드제'를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월·목요일은 오전 7시 추성리 주차장에서 칠선계곡을 거쳐 천왕봉으로 '올라가기'를, 화·금요일은 반대로 천왕봉에서 추성리 주차장으로 '내려가기'를 한다.

매회 지리산 국립공원 직원과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4명의 가이드(안전지킴이)가 동행하며 회당 참여인원은 40명으로 제한한다. 참가신청은 '올라가기' 15일, '내려가기' 16일전 오전 10시부터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www.knps.or.kr)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 무료. 예약자는 개별적으로 여행자보험에 가입한 후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055)972-7771~2

산행은 오전 7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올라갈 때는 전날 추성리 부근에서 민박을 하고, 내려설 경우에는 장터목대피소나 로터리대피소에 올라 하루를 묵어야 한다. 예약 필수.

칠선계곡의 도둑산행은 절대로 피하길 권한다. 국립공원사무소 직원들의 감시가 물샐틈없이 조직적이고 치밀하다. 만일 적발되면 과태료로 50만 원을 물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칠선계곡의 등산로가 워낙 험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조난을 막기 위해서다. 국립공원 사무소에 따르면 요즘도 꾸준하게 평일 하루 3명 안팎, 주말에는 8~10명 정도가 도둑산행을 하다가 적발된다고 한다.

기자가 경험한 칠선계곡은 어떠했을까. 20여 차례나 칠선계곡을 경험한 이창우 대장과 함께 해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혼자였다면 3~4군데 길찾기가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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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한 곳 추천한다. 마천면은 지리산 흑돼지가 유명하다. 일교차가 심한 데다 청정수를 먹고 자라 육질이 아주 단단하고 한눈에 봐도 육질이 선홍색으로 싱싱하다. 1인분(200g) 8000원. 마천면 소재지에 위치한 '마천흑돼지촌'(055-962-6689)이 잘한다. 길 건너 식육점과 함께하기 때문에 언제가도 생고기를 맛볼 수 있다.

# 교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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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 산장의 내부

대전통영 고속도로 생초IC로 나와 화계 방면으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함양행 직행버스는 오전 7시, 9시에 있다. 2시간 소요. 1만2100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길건너 위치한 군내버스 터미널에서 추성행 군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매시 정시와 30분에 각각 출발한다. 1시간 걸리고 3300원. 백무동에서 함양터미널행 버스는 낮 12시30분, 오후 1시20분, 2시, 2시30분, 3시30분, 4시, 4시30분, 5시30분, 6시, 6시30분, 7시, 7시40분에 있다.

함양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 6시, 6시30분(막차)에 있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진주로 가서 부산행 버스를 타면 된다. 늦게까지 자주 있다. 승용차를 추성리에 주차했을 경우 백무동에서 택시(055-962-5110, 011-678-5119)를 불러야 한다. 1만20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 생초IC~화계 방면 좌회전~함양 마천 우회전~마천 함양 자연휴양림 좌회전~백무동 마천 좌회전~지리산 마천 직진~지리산 백무동 칠선계곡 마천~의탄교~칠선계곡 벽송사 서암 좌회전~추성리 주차장 순.


# 천왕봉 정상석 방향 돌려놔 주세요

예외가 없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면 반드시 기념 촬영을 한다. 남한땅 최고봉인 천왕봉에 힘들게 오른 만큼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천왕봉에서 찍은 기념 사진은 누구나 예외없이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지리산 천왕봉 1915m'이라 적힌 정상석 앞에서는 독사진 내지는 두세 사람, 많게는 네댓 사람이 전부다. 10명 이상의 단체 사진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혹 있다고 하더라도 뒷면, 다시말해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힌 뒷면이 배경이다.

왜 그럴까. '지리산 천왕봉 1915m'라고 적힌 정상석의 앞면에서 볼 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뒤로 물러날 수 있는 공간이 최대 3m 남짓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러나면 그야말로 벼랑이다. 이 때문에 정상에 오른 뒤 약간 상기된 채 사진을 찍을 경우 항상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 사무소에 문의를 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이 정상석은 지난 1982년 6월 2일 경남도에서 세웠다. 지금이야 지리산을 비롯한 모든 국립공원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관할하지만 당시에는 경남도가 맡았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그보다 한참 뒤인 1987년 설립됐다.

당시 지리산 철쭉제 행사를 겸해 시민등반대회가 열려 전국의 많은 산꾼들이 정상석 제막식에 참여했다. 높은 분들로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과 이규호 도지사가 함께했다.

남명 조식 선생의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라는 명문이 적힌 기존의 조그만 정상석 대신 헬기로 공수돼 온 1.5m 높이의 정상석의 제막식이 진행되면서 한쪽에선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정상석 뒷면에 '경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왕봉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경계에 위치해 있지만, 지리산은 함양 산청 이외에 하동 남원 구례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기 때문에 그 문구는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천왕봉이 남한땅 최고봉이여서 당연히 전 국민의 산으로 인식돼야 하기 때문에 '경남' 대신 '한국'이란 표현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그해 가을쯤 어느날 정상석에는 누군지만 모르지만 '경남' 대신 '한국'으로 바꿔 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기자는 정상석이 어느 방향을 봐야 한다는 원칙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지리산 사무소측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미 나왔다. 안전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상석을 돌려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좋은 생각이지만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민족의 영산, 남한땅 최고봉 지리산 천왕봉이라서 머뭇거리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만인을 위해 정상석 방향을 되돌려도 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만의 생각일까.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글·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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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통한다는 문으로 통천문을 내려서는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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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샘에서 식수를 보충하면 주위로 다람쥐가 달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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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수가 떨어져 죽었다는 하동바위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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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동 탐방지원센타.

천왕봉의 날씨로 보지못한 정상을 2008년 1월6일 산행한 겨울사진을 챙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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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자장암 금개구리. 통도사 자장암 금개구리를 보섰나요

자장암 관음전 뒤편 바위인 금와공으로 자장율사가 개구리 한쌍을  살게 하였다 한다.
실제 구멍의 높이를 보면 밑에 기단과 발받침대를 생각하면 꽤 높은 곳에 구멍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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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구멍을 만들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다하는 금와공

 

통도사에가면 산내 암자중 통도사가 창건되기 이전부터 통도사 창간주 자장율사께서 수도한 수도처가 있다. 자장방으로 불렸다는 자장암은 개구리로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금개구리, 즉 금와보살

자장율사가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바위에 손가락 하나 크기 만큼 구멍을 만들어 개구리 한쌍을 살게 하였다한다. 이구멍은 자장율사가 현 자장암 자리에서 수도에 정진할 때 개구리 한쌍이 떠나지 않아 기이하게 여겨 금와공에 살게 하였는데 이들은 벌과나비로도 변환을 한다는 신통력이 있다한다. 실제 금와공에 뚫인 구멍의 높이을 보면 성인의 키와 비슷한 위치에 있어 실제 개구리가 안으로 들어 갈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스파이드맨도 아닌 개구리가 암벽을 그것도 수직의 암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와공 안의 개구리를 본 많은 불자의 이야기가 있어며 필자도 실제로 구멍안의 개구리를 본적이 있다. 구멍안에서 두눈만 껌벅껌벅하며 있었다. 최근에 다시 찾은 자장암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불자들이 금와보살을 친견하기위해 금와공에 눈을 대고 구멍안을 들어다 보았지만 현재는 컴컴한 공간으로 비어 있다. 보살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 봄에 한쌍의 금와보살이 있었는데 봄에 출타를 하여 아직 돌아 오지 않았다 한다. 자장암을 찾아가면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볼 수도 아니면 못 볼수도 있다. 금와보살의 친견은 불심이 지극한 사람에게만 보인다하니 지금 부터라도 다시 마음을 씻어 봐야 할 것 같다.

금와보살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불교통사” 하권에 기술되어 있다.

“축서산(현영축산이라 칭함) 통도사 자장암 바위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구멍이 있어니

그 안에 작은개구리 한쌍이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데는 벌과 나비가 되어 수없이 변화한다한다, 여름철에는 바위가 가마솥처럼 뜨거워도 바위위를 활보하며 뛰어다닌다. 사승이 이를 일러 금개구리 즉 금와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산문 밖을 나가지 않는다고 하여 관리가 이를 믿지 아니하고 개구리를 함에 넣어 나가다 함을 열어 보니 개구리가 사라지고 없었다한다. 세존에 그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나타난 것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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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와보살을 친견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볼 수도 있고 못볼수도 있다한다. 마음을 비우고 여러분도 한번 도전해 보시길...
이 받침대는 항상 비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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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 살문 아래에 새겨진 금개구리 한쌍과 중앙의 연꽃이 자장암은 금와보살과 함께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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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 미숭산 능선상에서 볼 수 있는 돌불꽃 석화성 가야산의 웅장항 모습, 톱날 같은 능선은 가야산이 돌불꽃에 이의를 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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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은 서기42년 부터 520년간 대가야국의 석이정전 "대가야건국신화"에 의하면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이고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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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성 정상을 향해 오르는 설송산악회 회원님과 미숭산 정상직전의 산성 흔적. 주산성은 고령을 감싸고 있는 산성으로 흙과 돌을 섞어 만든 대가야시대 성으로 유사시 피난을 위한 배후 산성으로 만들어졌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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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에서 미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맨 좌측이 미숭산 정상, 그우측 맨뒤가 가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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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군의 미숭산 정상 안내판과 초라한 정상, 그러나 미숭산 정상의 합천군 이정석은 자뭇 웅장하다.

고령 주산~미숭산

높지도 그렇게 수려하지도 않으면서 한 고을의 진산인 산들이 있다.`높고 수려해야만 진산인줄 아느냐'고 타이르며 기세등등한 원정산꾼들을 굽어보는 산들이다. 이런 고을 진산들에는 대개 몇가지 특징이 있다.

산에 얽힌 전설이 숨쉬고 있다는 점. 지역주민들의 애정을 듬뿍 받아 등산로가 잘 가꿔져 있고 등산코스가 다양하다는 점. 스스로 우람하지는 못해도 조망 만큼은 시원하고 호쾌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한반도 고대국가의 대표주자였던 대가야의 요람 경북 고령의 주산(主山.310m)-미숭산(美崇山.757m)능선종주는 그 고장 진산을 밟는 유별난 맛과 재미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산행로다. 주산은 고령읍 내에서 바로 등산로가 열리는 야트막한 봉우리지만 이름에 주인 주(主)자가 들어가는 것만 봐도 이 곳 주민들의 생활속에 깊히 자리하고 있는 산임을 알 수 있다. 능선 주위에 고대의 고분군이 있고 등산로 입구에 대가야유물전시관이 조성돼 있다.

또 산 일대에 산림욕장과 체육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찾는 포근한 산인 것이다. 주산과 능선을 잇대고 있는 미숭산은 고려 말 이성계의 반란군에 끝까지 저항한 이미숭(李美崇)장군의 지조가 얽혀있는 역사의 산이다. 이미숭장군이 이 산을 근거지 삼아 성을 쌓고 군사를 조련해가며 이성계에 대항했고 그 절개를 기려 산의 이름이 이렇게 바뀌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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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미숭산 산행로는 짙고 아늑한 소나무숲과 곳곳의 철쭉군락지를 통과하며, 가야산 일대를 품는 능선일대의 쾌청한 조망이 일품이다.

이번 산행로는 미숭산 정상을 정점으로 3개 정도의 등산로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주산에 오른 뒤 미숭산 정상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반룡사 하산길로 내려오거나, 미숭산 정상의 진행방향 기준 왼쪽 하산길을 잡아 청소년수련원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고령이나 인근 대구등지의 산악동호인들이 즐겨찾는 일반적인 코스이다. 4-5시간 정도씩 소요.다시찾는 근교산팀은 잘 알려진 이 코스들 대신 미숭산 정상 오른쪽으로 난 능선길로 다시 접어들어 나대리-신리를 잇는 임도에 내려선 뒤 임도를 타고 하산하는 산행로를 답사했다.

산행코스는 고령시외버스터미널-주산산림욕장입구(인근에 대가야유물전시관)-주산정상-청금정전망대(412m봉)-반룡사하산로 고갯길-733.5m봉-미숭산정상-임도-고령읍 신리마을 하산으로 이어진다. 산행시간은 4-5시간 가량. 이번 산행은 초입찾기가 매우 쉽고 간편하다. 버스편으로 고령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읍내간선도로를 따라 고령경찰서와 고령향교입구 성주소방서고령파출소를 지나쳐 20분만에 들머리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안내판의 인도로 주산정상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길로 올라서면 된다. 표지판이 잘 구비돼 있어 길찾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등산로 역시 `고속도로'라 할만큼 말끔하고 넓직하다. 등산로표지판에 나와있는 주산-미숭산 전체 거리는 약 8Km. 주산정상까지 약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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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숭산 정상에서 본 주변의 산세, 별유산 비계산, 작은가야산등등...

산정상에서 직진하듯 5분정도를 내려선다. 능선을 타고 가는 도중에 시원한 사방 조망이 계속되며 진행방향 정면의 우람한 봉우리가 가야산이다. 1시간 정도만에 412m봉에 자리한 정자 청금정에 도착한다. 정자 주변은 사방경치가 완전히 뚫리며 바람이 유난히 시원해 푹 쉬었다 가기에 더없이 좋다. 여기서 25분이면 반룡사 하산길 열리는 사거리.

60분 정도 진행하면 733.5m봉을 거쳐 미숭산정상에 도달한다. 정상에는 큰 달각바위라는 큰 바위와 초소가건물이 있다. 가야산 매화산 의상봉 별유산등 합천 거창쪽 산세가 시원하다.

하산길은 초소에 닿기 직전에 오른쪽 숲속으로 열린 길을 따라 내려서면서 열린다. 25분 정도면 신리로 내려가는 임도에 닿는다.

취재팀은 애초 임도 맞은 편 입구를 통해 반대편 산으로 들어서 산행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맞은 편 산의 능선으로 올라서는 길을 버리고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을 잡았다가 가시덩쿨이 우거진 폐가촌으로 잘못 들어서 계곡쪽 하산길 찾기에 실패했다. 임도에서 곧장 오른쪽 신리방면으로 하산하는 편이 상책이다.

# 교통편

이번 산행은 들어갈 때 교통편이 편리하다.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령행 버스로 고령읍까지 들어가기만 하면 다른 차편은 따로 이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 고령으로 가려면 거창행 버스는 아무것이나 타면 된다. 오전 7시30분 9시20분 오후 12시40분 4시40분 6시 하루 5회.(거창까지 국도로 운행)거창 직통 버스편은 오전 7시 8시30분 10시40분등 하루 10회 운행. 막차 오후 6시40분. 2시간 소요. 요금 7천2백원.

고령읍 신리로 하산하면 고령행 시내버스가 오전 9시 오후 오후 5시등 2회밖에 안 다닌다. 하지만 오후 5시 버스를 놓쳤더라도 고령읍 버스터미널까지 콜택시가 5천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해 큰 부담이 없다. 고령개인택시 (0543)9541212. 9551212. 9561212. 9542747. 고령터미널서 부산까지는 오후 6시 6시40분 7시20분 8시20분 8시30분등에 있다. 또 대구까지 가는 버스가 10분 간격으로 밤 9시10분까지 운행하므로 지하철로 동대구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10시42분 열차를 타기에는 웬만해선 무리가 없다.

글:조봉권기자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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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숭산성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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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숭산 정상에선 필자와 능선길을 걷는 설송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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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률사 대웅전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호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에서 포항으로 가는 외각도로를 따라가면 보문단지 갈림길을 지나면 우측으로 작은 산이 나타난다. 경상북도 경주시 봉천동에 소재를 하고 있는 백률사는 일명 소금강산으로 불리는 동네 뒷산의 나즈막한 산에 터를 잡은 유서 깊은 사찰이다. 지금은 그때의 절규모는 사라지고 암자의 틀을  갗추었지만 한때는 만만찮은 절의 규모를 자랑하였을 것이다. 백률사는 삼국유사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란 절일 것이라 한다. 만약에 자추사가 맞다면 신라 법흥왕 14년(527)에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삼도록 순교한 이차돈를 기리기 위한 유서 깊은 절이기때문이다. 대웅전은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그후 다시 지어졋는데 단층의 목조건물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人)자인 맞배지붕이다. 기단부는 신라시대의 양식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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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률사 아래 굴불사지 석불상은 보물제121호로 백률사 아래에 있다.
주사위 같은사각의 바위면에 불상을 조각하였다. 경주의 북쪽인 소금강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며 높이 약 3m의 사방불 형태이다. 불상의 서쪽은 아미타 삼존불, 동쪽은 약사여래좌상, 남쪽은 삼존입상, 북쪽으로는 보살상 두분이 새겨져 있다. 북쪽의 보살상 중 한분은 팔이 여섯달린 관세음 보살입상으로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예술품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은 신라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때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나 땅을 파보니 사각모양의 바위가 나와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로 불렀다고 한다. 최근 발굴조사에서는 고려시대 건물터가 확인되었서며 출토된 유물중에는 굴석사란 명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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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은 순교로서 불교의 중흥을 꾀하였는데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한다

"법흥왕(신라 제23대 왕(재위 514∼540))이 창생(세상의 모든 백성)을 위해..

수복멸죄(복을 닦고 죄를 소멸하는..)의 성스런 곳으로서 사원을 지으려 하였으나..

조신(신하)들이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만 사인(12-13등급의 낮은 직책, 신라는 16관등제)인 위촉(이차돈)만이..

그 뜻을 알아 자신의 목숨을 바쳐 왕의 뜻을 실행할 것을 서원하고 결국 죽임을 당하였는데..

 베인 목에서 우유가 솟고 천지가 진동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불교가 흥하게 되고 사찰이 창성하게 세워지고..

탑이 즐비하게 이어지게 되니 이것은 삼성(아도화상, 법흥왕, 이차돈)의 공이다."

- ≪삼국유사≫ 3권 원종흥법 염촉멸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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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월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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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탐방지원센터에서 바라본 월악산 영봉, 중앙이 월악산 영봉이다. 월악산 들머리인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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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사 영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치는 송계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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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삼거리에서 본 월악산 영봉과 영봉을 오르는 악소리나는 계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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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정상인 영봉과 정상에 오른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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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봉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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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삼거리를 지나 덕주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는 산꾼과 960봉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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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8경중 하나인 월악산 영봉은 주봉으로서 장대한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이루는 남성적인 산으로 국사봉으로도 불린다. 영봉을 주위로 하봉과 중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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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에서 본 영봉과 좌측으로 보덕암으로 이어지는 중봉 하봉의 암봉도 영봉에 뒤떨어 지지않는 헌걸찬 암봉이다.


송계리~영봉~덕주골 5시간 소요…우리나라 3岳

수직절벽·암봉따라 가파른 돌길·돌계단 '헉 ~ 헉'

정상 오르면 아찔하게 펼쳐진 산맥·충주호 장관

수 백길 절벽의 거대 암봉의 연속인 월악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도끼로 잘라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사진은 정상인 영봉 인근에서 내려다 본 암봉과 주변 산세.

산꾼들에게 국립공원 월악산은 선망의 대상이자 기피 산행지 1호이다. 그야말로 극과 극의 반응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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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길 절벽의 거대 암봉과 코발트빛 충주호의 빼어난 경관은 명산의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는 아찔한 바위 절벽과 질리도록 이어지는 계단은 초보 산꾼들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흔히 설악산(1708m) 치악산(1288m) 월악산(1094m)을 두고 '3악(岳)'이라 부른다. 웬만한 산은 명함도 못내미는 험한 바위산이라 명명된 조어일 터. 이 중 월악산은 해발고도는 가장 낮지만 산세의 매운 맛은 나머지 두 산과 어깨를 견줘도 전혀 뒤질게 없다. 되레 으뜸으로 꼽힌다.

그래서 흔히 체력과 인내를 시험하고 싶으면 월악산으로 가보라고 하지 않던가.

'악! 악! 악!'.

실제로 밟아본 월악산의 느낌은 또 다른 '3악'으로 다가왔다.

글자 그대로 형언하기조차 힘든 거친 암벽과 계단의 '악', 길을 잘못 들어선나 할 정도로 예측 불능의 등산로에 또 한 번 '악', 그리고 너무나 빼어난 주변 조망에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감탄사 '악'이 바로 그것. 개인적으로도 이런 산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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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은 또 역사적으로 신라와 인연이 깊다.

워낙 험준해 감히 접근조차 꺼려지는 월악산 연봉이 거대한 울타리 역할을 한 덕분에 소국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덜 받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칠 것을 결정하자 왕자인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몸을 의탁한 곳도 월악산이다.

산행은 제천 덕산면 송계리 동창교매표소~자광사~송계삼거리~정상 영봉~송계삼거리~헬기장~960m봉~마애불~덕주산성(공사중)~덕주사~덕주산성~동문~학소대~덕주골 휴게소 순. 4시간30분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흔히 월악산 산행은 덕주골에서 올라 송계리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산행팀은 이와 반대 방향으로 올랐다. 기존 코스는 급경사의 나무계단이 질리도록 이어져 힘든데다 산행시간이 훨씬 길어져 해가 짧은 요즘 부산서 당일치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들머리에서 정상인 영봉이 우뚝 솟아 위압적이다. 산행은 처음부터 돌길과 돌계단의 연속. 물마른 계곡을 따라가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10분쯤 뒤 철다리를 건너면 산신각. 새끼줄에 흰 종이를 묶어놨다.

산신각을 지나면서 길이 약간 부드러워지지만 그것도 잠시. 푹신푹신한 낙엽길이 이 순간만은 간절하다. 이따금 만나는 산죽과 소나무만 푸를 뿐 앙상한 가지가 온통 잿빛이다. 완연한 겨울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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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의 누이 덕주공주가 새겼다고 전해내려 오는 마애불. 하지만 고려 불상 양식이다.

숨이 턱에 닿도록 헉헉거리기를 1시간30분. 마침내 1차 목표지점인 능선인 송계삼거리에 닿는다. 해발 950m. 왼쪽은 주봉인 영봉, 오른쪽은 마애불 방향. 산행팀은 좌측 영봉으로 올라 다시 이곳에 도착, 마애불 방향으로 갈 예정이다.

영봉까지는 1.5㎞ 거리. 5분 정도 지나면 나무 사이로 영봉 정상에 선 산꾼들의 옷색깔이 구별될 정도로 가까이 간다. 뿌듯하면서도 이내 걱정이 앞선다. 영봉은 기존에 보던 봉우리가 아니라 도끼로 잘라놓은 듯한 수직절벽이기 때문이다. 높이 150m, 둘레 4㎞. '길이 어떻게 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 정도다.

정상은 암봉을 우측으로 빙돌아 뒤쪽으로 오른다. 45분 정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코스지만 두어 번 질리게 한다. 예상을 완전히 무시한 등산로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영봉 등정은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한 굽이 돌면 오르막길이고 또 한 굽이 돌면 내리막이다. 두 번이나 내리막 오르막을 반복하는 셈. 이쯤되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마지막 오르막은 무려 343개의 계단. 절벽과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연결해 놓았다. 계단이 없었다면 과연 월악산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그 유명한 영봉에 섰다. 영봉 또한 뾰족 봉우리들의 미니어처 형상으로 발딛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영봉의 자랑은 무엇보다 장쾌한 조망.

현기증이 일 정도로 사방이 온통 장엄한 산맥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가운데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활한 충주호. 그 뒤로 비로봉 금수산, 날이 맑을 땐 원주의 치악산도 보인다. 남으론 포함산 대미산 등 백두대간 능선과 만수봉 주흘산 조령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 앞에는 조망도가 두 개서 있어 실제 산과 맞혀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제 하산. 송계삼거리에서 마애불 방향으로 간다. 헬기장을 지나 삼각점과 작은 돌탑이 있는 960m봉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길. 이후부터 마애불까지는 끊임없이 나무계단과 철계단, 그리고 바위 사이사이로 내려서는 수직에 가까운 등산로가 이어진다. 질린다. 대신 이곳으로 올라오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이 길은 힘든 만큼 월악산의 진면모를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등산지도에 '자연경관로'라고 표시돼 있다.

30~40분쯤 뒤 유난히 푸른 산죽이 보일 무렵이면 마애불(보물 406호)에 닿는다. 높이 13m의 마애불은 덕주공주가 월악산 덕주골로 와 덕주사를 짓고 자신을 닮은 불상을 새겼다고 전해지지만 고려 양식이다. 고려의 어느 석공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을 듣고 새겼지 않았나 하는 설도 전해온다.

마애불을 지나면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25분 뒤 덕주사. 6·25때 모두 불 탄 폐찰을 30여년 전부터 불사를 시작해서인지 일주문도 없고 왠지 어수선하다. 절 앞에 서 있는 1m 남짓한 남근석 세 개가 눈길을 끈다. 월악산의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절을 나오면 피라미드의 단을 연상시키는 덕주산성과 성문(동문)을 볼 수 있고 이어 계곡을 따라 학소대 수경대 등 명승이 이어진다. 덕주사에서 통제소를 지나 덕주휴게소까지는 15분쯤 걸린다. 이곳에서 들머리 송계리 동창교탐방지원센터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송계삼거리 코스 오후 3시부터 통제

산 이름에 달 월(月)자가 들어간 산이 제법 있다. 추월산 월출산 월악산 등 모두 명산의 반열에 오른 산이다. 그 만큼 산세가 빼어나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아 달을 보고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이 가운데 월악산은 충주호를 끼고 있어 더욱 그 이름에 어울린다. 월악산은 비운의 왕자인 신라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기 전에 들러 망국의 한을 달랜 곳이라고 한다. 날머리의 덕주사는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월악산은 2개 도, 4개 시군에 걸쳐진 장대한 품으로 만수봉을 지나 백두대간인 대미산 능선과 연결된다.

월악산의 으뜸은 일명 국사봉인 영봉이다. 정상에 우뚝 솟은 150m 높이의 단애절벽만으로도 영봉은 월악산을 대표할 만하다. 철계단으로 마무리가 돼 있어 겨울철에 안전산행에 유의해야 한다. 송계삼거리에서 영봉으로 가는 길은 오후 3시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참고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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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로 내려서는 하산길은 계단과 소나무가 어울리는 운치 있는 하산길이다.

◇ 교통편

- 부산서 수안보행 시외버스 이용

부산서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충주시 상모면 온천리)로 가서 다시 들머리인 제천시 덕산면 송계리로 가야한다. 노포동종합터미널(508-9966)에서 수안보터미널(043-846-0438)행 시외버스는 오전 8시30분, 10시40분, 오후 1시, 3시10분, 5시에 있다. 2만2600원. 4시간30분 걸린다.

수안보에서 들머리 송계리까지는 오전 9, 11시에 있다. 1100원. 송계리에서 수안보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 5, 7시(막차)에 있다. 수안보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2시20분, 4시40분에 있다. 대중교통 편으론 부산서 당일치기가 불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화원IC~서대구IC~경부고속도로~선산IC(김천분기점)~중북내륙고속도로~북상주IC~함창 방면 3번 국도~충주 문경(새재)~충주 연풍~이화령터널~충주 수안보 온천~월악산~사문리 매표소~지릅재~제천시~송계리 동창교매표소 순.

/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51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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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은 여자의 모습을 한 산이라 해서 월악산으로 불런 것 같으며 풍수적으로 음기가 왕성한 산으로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근석을 세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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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와  동양의 알프스 월악산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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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으로 충북기념물 제35호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그 외각으로 석축울 쌓은 산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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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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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덕유산 시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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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교 입구의 산행 들머리와 설송산악회가 시루봉 산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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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로 달음재가 보이고  조림지를 지나면 만나는 오르막 산길, 한적한 시루봉 산길은 마냥 걷고 싶은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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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넓은 임도길을 따라 오르기도 하고 산길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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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리에 앉은 나비와 6.25전쟁중에 치열한 현장을 보여주는 m60 총알, 엮여 있던 총알이 서로 싹아 떨어져 있다. 30여발 획득후 파출소에 인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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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에서 묘지를 지나 만나는 전망대 바위에서 본 수리덤과 남령, 그리고 남덕유산, 그 밑의 계곡이 월성계곡이다.

덕성스러운 덕유능선 몸안에 스며들다

이번 주 산행지는 덕유산 시루봉(898m). 굳이 비교를 하라면 지리산 인근 함양 창암산이 적당할 듯 싶다.

함양읍내에서 오도재를 넘어 마천면 백무동으로 내달리는 도로 좌측에 우뚝 솟은 창암산(923m)은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을 위시한 주능선의 향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봉우리다. 칠선계곡과 백무동 사이에 오롯히 솟은 창암산은 천왕봉과 이웃한 제석봉에서 흘러내리는 능선과 이어진다. 비법정 탐방로 구간만 없다면 능선을 갈아타며 천왕봉으로 갈 수 있는 셈이다. 그만큼 천왕봉과 인접해 있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영신봉을 기점으로 주능선 남쪽의 삼신봉과 마주보는 북쪽에 위치해 있다.

산세는 그리 빼어나지 못하지만 숲이 울창하고 야생초 및 야생화가 지천이다. 단점이라면 사람들이 안 다녀 산길이 묵은 데다 숲이 과잉으로 울창해 지리산 주능선을 일부 가리고 있다.

지리산 턱밑에 창암산이 있다면 덕유산 코앞에는 시루봉(898m)이 있다. 시루봉은 거창에서 가장 풍광이 빼어나다는 북상면에 위치해 있다.

창암산이 칠선계곡과 백무동 사이에 있다면 시루봉은 덕유산 주능선에서 흘러내리는 병곡리계곡과 산수리계곡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빙기실계곡으로도 불리는 병곡리계곡은 옛날 영호남 보부상들이 토산물을 사고 팔기 위해 넘나들던 고갯마루인 덕유산 동업령이 발원지며, 마학동계곡으로 불리는 산수리계곡은 동업령과 이웃한 무룡산에서 시작된다. 특히 두 계곡은 자연히 살아 숨쉬는 '북상 13경'에 뽑힐 정도로 원시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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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중 만나는 잣나무 조림지에서 본 덕유산 능선. 왼쪽에서부터 삿갓봉 삿갓골재 무룡산 동업령 백암봉이 보인다. 산행팀이 오른 시루봉은 사진 우측 가운뎃부분에 위치해 있지만 잘렸다.

시루봉은 지금은 포장로로 변한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의 하고개를 기점으로 덕유산 무룡산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시루봉은 지금까지 아무도 밟지 않은 청정산길이다. 좋게 말하면 그렇지만 나쁘게 표현하자면 잡풀숲을 헤치고 없는 길을 만들어 가야 하는 고독한 개척산행길이다.

국내에서 최고로 덕성스럽다는 덕유능선을 가감없이 감상할 수 있는 데다 오가는 길에 '북상 13경'에 속하는 또 다른 볼거리인 사선대와 분설담을 구경할 수 있는 덤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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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거창 북상면 산수교 옆 월성버스정류장~무덤~전망대~조림지~임도~삼각점~임도~다람봉(성씨묘)~고사리 재배장~달음재(포장로)~시루봉(삼각점)~철망(개인 농장)~도로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 길찾기가 까다롭지만 그때마다 산행팀은 미력이나마 잡풀과 잡목을 제거한 데다 촘촘하게 노란 리본을 많이 붙여놓아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들머리는 함양 서상면과 거창 북상면을 잇는 37번 지방도에서 '병곡 산수' 방향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위치한 산수교 옆 월성버스정류장 맞은편 열린 산길. 곧바로 산으로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처음부터 된비알의 연속이다.

봉분이 거의 없는 방치된 무덤을 지나면서 차츰 길이 희미해진다. 아무리 사람의 흔적이 없더라도 옛날 산아래 마을 사람들이 나무 하러 다녔거나 1년에 한두 번쯤은 산소를 찾기 때문에 소로는 있기 마련. 꼼꼼히 살펴보면 희마하나마 진행할 수 있다.

15분 뒤 갈림길. 우측길은 무덤가는 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7분쯤 뒤 시선을 끄는 볼거리가 하나 있다. 굴참나무가 바위를 쩌억 갈라 놓고 서 있다. 바위 간격은 약 15㎝. 아무리 봐도 바위가 깨진 틈으로 자란 것이 아니라 비집고 올라온 것이다. 대자연의 오묘함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어지는 오름길. 주변 수종의 우점종이 낙엽송이라 조림한 듯하다. 5분 뒤 등로 좌측으로 전망대가 보인다. 왼쪽에서부터 월봉산 수리덤 남령과 그 우측으로 백두대간 덕유산자락인 남덕유 월성재 삿갓봉 삿갓재 무룡산이 푸근하게 다가온다. 조망을 방해하는 소나무는 베어내도 상관없을 듯하다.

10분쯤 뒤 잠시 숲을 벗어나며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 올라선다. 주변 야산을 개간, 돈이 되는 잣나무를 조림하고 있으며 발아래는 임도가 개설돼 있다. 앞서 본 무룡산 우측으로 동업령, 송계삼거리라 불리는 백암봉 지봉까지 확인된다. 백두대간에서 약간 비껴나 있는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은 백암봉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산행팀이 오를 시루봉은 떡시루를 엎어놓은 것처럼 볼록 솟아 있다.

30m쯤 걸으면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싸리나무와 소나무 잣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 뚫고 나가지만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10여 분. 상당한 인내와 체력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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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라고 했던가. 한숨을 돌리라고 임도를 만난다. 시루봉 임도는 여느 산처럼 먼지 풀풀 날리는 삭막한 임도가 아니라 잡풀이 우거진 정겨운 임도다. 금정산 북문에서 동문 가는 길보다 더 산길답다.

3분 뒤 다시 산으로 올라선다.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휴양림으로 유명한 금원산이다.

또다시 된비알. 그럭저럭 올라섰지만 정점에 와서 숲이 길을 막고 있다. 뚫고 나아가니 길 좌측에 뜻밖의 삼각점이 보인다. GPS상으로 해발 771m. 산행팀이 손으로 전지작업을 해둬 놓치진 않을 것이다.

정확히 북쪽으로 직진한다. 길 사정은 약간 나아진다. 낙엽송 숲길이며 좌측 저 멀리 시루봉, 우측 발아래 월성계곡이 확인된다. 잣나무 조림지에서 본 시루봉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지만 우회해서 막상 걸어보니 예상보다 멀고 험하다. 착시 현상이었던가 싶다.

이어지는 거친 산길. 알고 보니 발아랜 나물 천국이 아닌가. 사람들이 안 다녀 나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만일 곡우를 전후해 온다면 그야말로 나물산행지로 제격일 듯싶다.

산길은 차츰 좌측으로 휜다. 그러다 다시 임도와 만난다. 하지만 잡풀이 무성해 웬만한 산길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늘도 있고 적당하게 바람도 불어줘 걷기에 적합하다. 급경사 오르막은 비올 때 유실 방지를 위해 시멘트 포장이 돼 있다. 우측으로 금원산과 이웃한 현성산이, 좌측으로 여전히 덕유 능선이 보인다.

임도를 만난 지 25분 뒤 길 우측 다람봉(877m)인 성씨묘를 지나면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리본에 '다람봉'이라 적어 놓았다. 이후 길 우측 산사면은 온통 고사리 재배장. 안내판이 반대쪽을 보고 서 있다. 좀 더 멀리 보면 병곡리계곡과 호음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후 갈림길. 좌측 산수리 방향 대신 직진한다. 이후 좌측 숲으로 향한다. 멋진 낙엽송 숲길을 내려서면 포장로와 만나며 눈앞에는 철망을 쳐놓은 약초 재배장이 보인다. 다람재다. 마을사람들은 달음재라 불렀다. 좌측으로 시루봉 정상. 때문에 정상을 향해 좌측으로 포장로를 따라 내려가면 세 갈래길을 만난다. 맨 우측으로 가자마자 포장로가 끝날 무렵 능선으로 타기 위해 우측 급경사면을 올라선다. 잣나무 조림지다. 여전히 덕유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능선을 타며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무명봉 정점을 찍은 후 숲으로 진입한다. 낙엽길로 반듯하진 않지만 제대로 된 호젓한 산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햇빛 한 점 들어오지 못할 정도의 숲터널도 지난다. 그간 안 보이던 농짝만한 돌이 막고 있어 왼쪽으로 우회하며 올라서기도 한다. 정상 직전 아름드리 굴참나무와 바위군이 성벽처럼 막고 있지만 정면으로 치고 오르면 마침내 시루봉 정상. 숲에 가려 조망도 없고 삼각점만 달랑 하나 있다. 덕유능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엄연한 독립봉우리지만 대접이 영 시원찮다. 덕유산 전망대로 잘 가꿀 수 있는 토대는 돼 있는데 말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키 큰 두릅나무를 살짝 피해 직진하며 내려선다. 길이 없을 것 같지만 막상 2, 3m만 뚫으니 산길이 열려 있다. 18분 뒤 정면에 사유지인 듯 철망이 막고 있다. 왼쪽은 덕유능선과 이어지는 하고개 방향, 산행팀은 우측 병곡리 쪽으로 내려선다. 철조망을 따라 걷는 셈이다. 잠시 철조망과 거리를 두지만 이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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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맨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사선대.

40분쯤 뒤 철조망을 버리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9분 정도 걸으면 마치 조개가 땅에 박혀 있는 듯한 이끼 낀 바위를 지난다. 여기서 5분쯤 더 가면 잡목 때문에 길이 희미해지지만 시야가 약간 트이는 우측으로 나아간다. 능선길인데도 전혀 능선이라고 생각이 안 드는 이 구간에 산행팀은 리본을 촘촘히 묶어 놓았다.

20분쯤 뒤 좌측으로 병곡리 마을이 보이고 이어 만나는 무덤 좌측으로 내려서면 마침내 반듯한 길을 만난다. 임도였던 길이 잡풀로 묵었지만 걷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이어 만나는 포장로와 다리를 잇따라 지나면 마침내 병곡리로 가는 도로로 올라선다.

# 교통편

- 대전통영 고속도로 서상IC서 나와 장계 서상 방면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 서상IC~장계 서상 26번 좌회전~갈림길에선 왼쪽 즉 SK덕유관광주유소 방향~덕유산 국립공원(덕유교육원, 월성청소년수련원)~북상 신기 37번 우회전(좌측 월성청소년수련원 영각사 방향으로 가도 되지만 일부 구간 비포장, 두 길은 결국 만난다)~거창군 북상면 안내판(남령)~황점~월성청소년수련원~월성마을~주은휴양림~산수교 지나자마자 병곡 산수 좌회전~월성버스정류장 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거창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7시50분, 8시40분, 9시30분에 있다. 2시간40분 걸리고 1만1200원. 군내버스정류장은 거창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두 번째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중앙교를 건너면 만나는 중앙시장 내에 있다. 걸어서 10분 걸린다. 여기서 북상면 황정가는 버스를 타고 산수 입구 월성버스정류장에 하차한다. 오전 9시30분, 11시. 2400원. 하산 후 병곡에선 거창행 버스를 타고 중앙시장에서 내린다. 오후 3시30분, 5시30분(막차). 2450원. 승용차를 들머리에 주차했을 경우 거창행 버스를 타고 병곡 입구에서 내린 후 다시 황점행 버스(오후 4시15분, 6시15분)를 타고 산수교 옆 월성정류장에서 하차해야 한다. 950원. 버스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경우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북상면에는 없고 이웃한 위천면 택시 연락처는 (055)943-0300. 요금은 1만2000원.

거창 북상면 병곡리 산골에 위치한 전통찻집 '점터'. 날머리와 가깝다.

# 떠나기 전에

- 산행 후 분설담 사선대 전통찻집 점터 한번 가 볼만

이태 전 작고한 거창문화원 부원장이자 산악시인인 정태준 씨가 펴낸 '거창의 명산'에 따르면 거창 시루봉의 옛 이름은 사라봉(沙羅峯)이다. 현재의 시루봉이나 옛 이름 사라봉은 모두 산 모양새가 뾰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고 있다.

들머리 주변 월성계곡에는 볼거리가 둘 있다. 분설담(噴雪潭)과 사선대(四仙臺)가 그것. 산수 입구에서 위천면 쪽으로 차로 1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위치한 분설담은 너른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 흐름이 마치 눈이 흩날리는 듯해 붙여진 이름. 분설담을 에워싼 암벽은 채석강을 연상케 하고 고개를 들면 능선상에는 장군바위가 굽어보고 있다. 황점 쪽으로 가다 보면 사선대를 만난다. 포개진 바위가 4개이고, 그 돌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한편으론 기단 위의 삼층석탑을 닮았다. 그 경치가 기이하고 빼어나 18세기의 화가 김윤겸과 김희성이 '송대'라는 제목으로 담채 수목도를 남기기도 했다. 현재 각각 동아대 박물관과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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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기실 마을의 찻집 점터와 지금 오미자가 한창이라 오미자차 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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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터마을의 내부 전경

 또 한 가지. 날머리 인근 병곡(빙기실)마을에는 운치있는 전통찻집 '점터'(055-942-7921)가 있다. 황토와 통나무로 지은 이곳에는 주인 부부가 덕유산 일대에서 채취한 머루 당귀 등을 재료로 한 야생차와 직접 농사를 지은 오미자와 복분자차를 투박한 찻잔에 내놓는다. 특히 9월달은 오미자 생산시기여서 판매도 한다. 1㎏당 1만 원. 설탕 절임은 10㎏에 12만 원. 택배도 한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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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재(달음재)의 특용작물재배지와  나무사이로  보이는푸근한 덕유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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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 옆의 원시림과 오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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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의 길잡기가 되는 취재팀이 명명한 조개바위, 신선이 주변의 풍치에 반해 바둑을 두었다는 사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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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 직전의 수림을 오르는 설송회원님, 하산길에 만나는 원시림으로 주의를 해야하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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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제374호 율곡사 대웅전은 조선 초중기작품이며 정면3칸 측면3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정수산 산행의 들머리는 산청읍내에서 상여봉을 올라 이어지는 종주산행과 짧은 척지에서 오르는 산길,
그리고 정수산의 대표적인 사찰인 율곡사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
그 정수산의 대표적인 들머리인 율곡사는 경남 산청군 신등면 율현리 1034번지에 의 유서 깊은 사찰로 신라 경순왕 4년에 감악조사(感岳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대웅전 안내판에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였어며 신중동국여지승람에는 단성현에 있는 절로 기록되어져 있다한다.
 (산청군청에서는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고 감악조사가 중창을 하였다고 정리가 되어져 있다)
 
율곡사에서 대표할 만한 보물은 대웅전(보물제374호)과 율곡사괘불탱(栗谷寺掛佛幀)화(보물제1316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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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현재의 대웅전은 2003년 해체복원과정에서 어칸 종도리 하부에서 “강희십팔년기미월일상량기(康熙十八年己未月日上樑記)”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조선 숙종(1679년)때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슴을 알 수 있다.
율곡사는 대웅전에 관해 내려오는 전설 있다. 정수산 취재 산행시 궁금해 율곡사 스님에게 물어 보았다. 파랑새의 전설에 관해서....

“국내에서는 두군데 절집에서 똑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한군데가 율곡사 창건시에 대웅전을 짓고 난뒤 단청에 색칠을 하는데 화공이 이레동안 대웅전 안을 들여다 보지 말것을 당부하며 작업에 들어 갔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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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새가 그림을 그리다가 미완성으로 남은 산수와 두점. 2003년 대웅전 해체 복원시에 찾았다한다.

상좌승이 대웅전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하여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만 하루를 남기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파랑새가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본 상좌승은 소스라치제 놀라고 파랑새는 물고 있던 붓을 놓고 날아가 새신바위로 숨어 들었다”는 이야기를 여쭈어 보니 스님도 내소사의 전설은 자기도 잘 알고 있지만 율곡사 대웅전의 파랑새 전설은 최근에 와서 여러 관광객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며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들여주었다.

그러나 최근 2003년에 해체 작업을 할때 건물 천장에는 우물정자로 만들어져 있어 구조가 복잡하게 되어 있어 아래에서 보면은 볼 수가 없었지만 해체작업때 확인을 한 산수화 두점을 찾았다 한다.

미완성의 산수화는 전설속의 파랑새가 그리다 날아간 그 그림인지 알 수 없지만 대웅전 안에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고 스님이 들여주었다. 그리고 대웅전은 정면3칸과 측면3칸으로 작은 규모를 이루며 팔작지붕을 얹었다.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기둥인 3단 목조장은 복잡하면서도 아름답게 장식되었어며 조선조 중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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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다가 상좌승이 문틈으로 들여다 보자 입에 물었던 붓을 떨어트리고 여기 새신바위에 날아 앉았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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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사이에 두짝의 문을 달아 여러모양의 문살을  넣어 대웅전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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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철에 찾아가면 특히 붉은 감이 홍시가 되어 대웅전과 함께 아늑한 산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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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현리 도로가의 율곡사 안내석, 여기서 좌회전을 하여 도로를 따라간다.


율곡사 대웅전의 자세한 기록은 문화재청 홈페잊로 들어가보세요.http://www.cha.go.kr/unisearch/Uniresult_Db_View.jsp?VdkVgwKey=12,03740000,38&queryText=율곡사대웅전

산청군청 홈페이지 율곡사
http://tour.sancheong.ne.kr/program/assert/out.asp?menucode=030405&assertcode=9916&stype=&sstring=&sMcode=&open_main=3&open_sub=5&open
_sub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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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의 경내로 들어설여면 반드시 이문을 통과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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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경내로 들어서면 먼저 사찰을 에워싸고 있는 산세를 보면 명산에 대찰임을 실감할 것이다.왼쪽으로 천황산의 암봉이 오롯하고 우측으로 재약산에 걸린 암봉이 웅장하며 문수봉과 관음봉이 나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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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으로 향로산과 재약봉이 하늘금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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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에서 본 표충사이며 범종루 우측으로 천황산과 재약산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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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종루 좌측으로 붓끝형상의 문필봉도 확인된다. 표충사에서 본 필봉 끝에는 힘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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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본 필봉이다. 이리보아도 붓끝, 저리보아도 붓끝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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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 걸린 필봉과 백일홍이 더욱 조화를 이루며 백일동안 꽃을 피운다는 백일홍이 지금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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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을 통과하면은 대가람 표충사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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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귀를 쫒는다는 좌청룡 우백호 격인  수문장을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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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467호 표충사 삼층석탑으로 통일신라 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높이 7.7m의 삼층석탑이다.


흔히 사명당 하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시 비석에서 땀을 흘리며 앞으로의 변고를 예고해주는 표충비각, 보통 그 땀흘리는 표충비각이 현 재약산 표충사에 있는 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표충사 어디를 둘러 보아도 땀흘리는 비석은 없었다.

땀흘리는 비석인 표충비각은 밀양시 무안면에 있다. 사명대사의 출생지인 무안면 소재지에 자리잡고 있어 땀흘리는 표충비각까지는 동서로 극과극을 달리고 있다.

여기 재약산 표충사는 경남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31-2번지이다.
654년에 신라진덕여왕때 원효대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죽림정사란 이름으로 산문을 처음 열었다.
 
천황산과 이웃한 재약산 맞은편으로 향로봉, 마지봉, 법수봉, 우측은 재약봉, 문필봉,문수봉,보현봉,관음봉,지장봉, 미륵봉,사자봉이며 우측으로는 수미봉, 화엄봉, 미타봉, 중앙에는 사자봉, 전방에는 노적봉과 백마봉이 에워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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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의 사진은 영정약수로 신라 흥덕왕 4년에 셋째왕자가 불치병인 나환에 걸여 재약산의 산초와  약초 그리고 영정의 샘물로 완치를 하였다하여 영정사로 불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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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전 안의 석가모니불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대광전은 표충사 중심으로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안치하고 동쪽으로 질병과 무지를 다스리는 약사불, 서쪽으로는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봉안하였다. 신라시대에 처음 건축되었지만 전란등으로 소실되어 1929년에 다시 지어졌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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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년 신라 흥덕왕4년에 인도의 고승인 황면선사께서 부처님 진신 사리를 가져와 주석하였다. 그리고 흥덕왕의 셋째아들이 나환에 걸려 재약산 죽림정사에서 영정의 샘물과 재약산의 약초를 먹고 치유를 하니 임금이 기뻐하며 영정사란 절이름을 하사하였다한다.

그 후 1596년 선조 29년 임진왜란의 발발로 왜적이 퇴각을 할때 사명당은 영정사에서 승병을 모집하여 사자평에서 승병 훈련을 하였고 전장에 나가 왜적과 싸웠다.

그 후 무안면의 표충사당에 있던 서산, 사명, 기허 삼대선사 영정이 영정사로 옮긴후 표충서원이란 사액을 받아 재약산표충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표충사를 둘러 싸고 있는 산을 천황산과 재약산으로 불여지고 있다.

그러나 산꾼들에게는 재약산 사자봉, 수미봉으로 더 많이 불여지고 있다. 천황산이 일재시대때 일본인이 일본천황을 의미하며 붙였다 하여,밀양시에서 재약산 사자봉과 수미봉으로 명칭변경을 건의하였지만 그이전에도 천황산으로 불였다고 한다합니다. 그래서 현재에도 천황산 재약산으로 나누어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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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사진은 철확으로 직경 113.6cm철제솥으로 많은 사람들의 식사준비를 할 때 국 또는 밥을 하는 대 사용되었어며 목재함도 너비85cm 길이597cm인 목재함 역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밥을 담는 용도로 사용 한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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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과 우측 팔상전은 유형문화재 자료141호로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표현을 한 탱화와 존상을 모시는 법당이라 합니다. 팔상이란 하천, 탁태,강탄,출가, 항마, 성도, 전법륜,입열반으로 구성되어 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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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사진은 통일신라시댜 비석으로 추정되며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제467호)이 500여년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해 대중100여명이 뜻을 모아 개보수 한다는  기념비석이라하며 우측은 표충사 일주문이다.

재약산 표충사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면은 표충사 홈페이지로
http://www.pyochung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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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암벽의 모서리에 좌우로 조각된 특이한 마애보살입상으로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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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보물제490호로 구미시를 내려다 보고 있다.

구미 금오산은 구미시를 대표하는 산이다.

금오산은 도립공원 1호로서 자연보호 운동이 처음으로 실시하였던 곳이 대혜폭포 밑

이다. 30m의 높이에서 굉음을 울리며 떨어지는 물소리는 천지를 진동한다하여 명금폭

포로도 불린다. 그 폭포를 돌아 8부 능선상의 바위 모서리에 새겨진 보살상을 볼 수 있

다. 금오산 마애 보살상으로 보물 제 490호 1968년 12월 19일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구

미시 남통동 산 24-1이 주소지이며 금오산 현월봉 북쪽 할딱 고개를 거쳐 오르는 능선

상 좌측 자연 암벽 모서리를 깍아 조각한 특이한 보살상을 만날 수 있다.

모서리 좌우를 이용하여 입체감을 주어 살아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교하다.

크기는 5.5m로 전체에 비해서 손이 큰 것이 눈에 들어오며 세심한 옷 주름, 연꽃대좌
 
위의 발 또한 묘사가 투박하다. 그리고 마애보살입상 좌측 뒤로

광배를 처리한 것과 반원형 연꽃대좌등 고려시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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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상에 새겨진 정교한 옷주름과 전체적으로 큰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풍만한 얼굴모습과 가는 눈 작은 입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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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뒤로 처리한 전신광배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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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하게 묘사된 옷주름과 근엄한 모습까지 보이는 마애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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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다 보면 여러 종류의 불상을 볼 수 있다. 바위 모서리를 이용하여 좌우로 균형을 주어 만들어진 마애보살입상. 편편한 바위에 새겨진 입상은 여럿 보았지만 돌출된 바위 모서리를 이용한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같다.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2,04900000,37#
문화재청 홈페이지 가시면 더욱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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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산 공룡능선. 아기 공룡 둘리 수준으로 그래도 앙칼진 맛이 있다.

경주 남산 용장골~고위산 공룡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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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여평의 천룡사지 터에 남아 있는 신라시대 3층 석탑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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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룡사위 백운암과 칠불암으로 내려서는 소나무 숲길

헉! 헉! 숨차네…여기 남산 맞아?
급경사 비탈길·기암괴석 '공룡능선'…힘겨운 코스만큼 알짜관광 한번에
경주서 봉계행 버스타고 용장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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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에 앉아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용장사지 삼층석탑. 바위봉우리를 다듬어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탑신과 옥개석을 얹었다. 그 모습이 장엄하기 그지없다.

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들어선 후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높지는 않지만 위엄있는 산줄기가 길게 늘어서 있다. 신라인들이 천년을 두고 다듬었던 경주 남산(南山)이다. 한마리의 금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편안히 앉아 있는 형상이다.

40여개의 계곡과 산줄기로 이뤄진 남산에는 100여곳의 절터와 80여구의 석불, 60여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만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모두 44점이다. 한 구비 돌면 미소를 머금은 마애불이,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석탑이 뭍객을 맞는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만하다. 오죽했으면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을까.

  

흔히 사람들은 남산을 두고 '산행'이란 용어 대신 '답사'란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순례길만 70여개라는 표현이 너무 보편화된데다 초등학생도 너무나 손쉽게 남산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이번주 산행팀은 이런 남산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코스를 택했다. 가파른 비탈과 험한 바위벼랑, 그리고 변화무쌍한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는 예사롭지 않은 코스다. 현지 산꾼들의 입을 빌리면 '남산의 공룡능선'. 열에 아홉은 "와! 남산에도 이런 매서운 코스가 있었나"라며 힘겨워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렇다고 천성산이나 신불 간월산의 공룡능선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암릉구간이 10여곳, 크고 작은 봉우리가 8개 정도인 '아기공룡 둘리'의 등짝이다.

산행은 용장동~공룡능선~헬기장~고위봉 정상~천룡사지(삼층석탑)~백운암~백운재~봉화대~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칠불암 마애석불~봉호재~임도~삼화령~(금오봉)~용장사지 삼층석탑~마애여래좌상~석불좌상~용장사지~설잠교~용장동 순. 걷는 시간만 5시간. 문화재 관람시간은 덤으로 계산하면 된다.

용장골에서 출발했다. 산불초소 앞 '고위산'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개울을 건너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10분 뒤 정면에 상수도 보호구역 플래카드와 철조망이 보이면 계곡을 건너 우측 산길로 향한다. 5m 뒤 왼쪽, 다시 10m 뒤 우측으로 능선을 향한다. 곧 천우사 옆길. 이곳까지 왔으면 등산로 입구는 일단 찾은 셈.

동굴바위를 지나면서 공룡능선이 시작된다. 이 바위는 탁월한 전망대. 고속도로와 용장리 마을이 발아래 보이고 벽도산과 단석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죽길을 지나면 갑자기 앞이 트이면서 남산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화강암반이 곳곳에 드러나있고 그 위에 노송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너덜을 넘으면 경사진 암반. 그 뒤로 암벽. 밧줄을 잡고 힘겹게 오르면 또 암벽. 이르기를 수 차례. 정면에 고위봉이 기다린다. 잠시 내리막이 이어지다 다시 암벽. '정말 공룡능선이 맞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헬기장을 지나면 이내 고위봉 정상. 들머리에서 1시간40분 정도 걸린다.

  
  

가기 위해서다. 지금부턴 이정표가 잘 정비돼 길찾기가 쉽다. 초소를 지나 내려오면 방금 지나온 공룡능선이 한 눈에 펼쳐진다.

고위봉에서 25분 뒤 천룡사지에 닿는다. 고위봉의 절경을 배경으로 산중 평지 6만여평에 조성된 천룡사지의 백미는 역시 삼층석탑. 신라탑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산행은 탑에 닿기 직전에 본 이정표 '고위봉' 방향으로 간다. 천룡사를 지나 오거리와 연결되는 임도를 만나면 백운암 방향으로 간다. 절 입구 왼쪽 열린 길을 택한다. 산죽터널이 환상적이다. 10분 뒤 사거리. 칠불암으로 간다. 도중에 용장계곡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 길은 곧바로 칠불암으로 가고, 직진하면 봉화대를 들러 역시 칠불암으로 간다. 직진한다. 봉화골의 꼭대기에 위치한 봉화대는 지금은 흩어진 돌무더기만 남아있을 뿐 천년세월의 흔적은 오간 데 없다.

이어지는 능선길. 좌우에 시야가 트인다. 왼쪽은 고위봉, 오른쪽은 토함산. 10여분 뒤 금오봉 갈림길. 바로 금오봉으로 가지말고 우측의 신선암 마애보살과 칠불암을 보고 가자. 내려가는 길이 일품이다. 바위 사이 소나무가 그렇고 건너편 암벽 위 노송의 자태가 한폭의 동양화다. 지나는 길에 우측 토함산, 좌측 동대봉산 운제산이 보인다.

8분 뒤 신선암 마애보살. 한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천길 낭떠러지 신선대 절벽에 부처가 조각돼 있어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듯하다. 옛 석공의 노고가 한층 더했으리라. 발밑에는 칠불암. 가파른 산길로 15분쯤 내려가야 한다. 절벽을 등지고 반달처럼 깎아지른 병풍바위에 새겨진 삼존불과 그 앞의 모난 돌 4면에 조각된 사방불을 합해 불리는 칠불암은 남산 불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예술성이 뛰어나다.

  

다시 금오봉 갈림길로 돌아와 금오봉으로 향한다. 이른바 봉화대 능선으로 산행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편안한 길이다. 35분 뒤 임도와 만난다. 통일전 쪽에서 올라오는 길로, 금오봉 턱밑을 지나는 관광임도다. 자연상태로 보존된 고위봉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10분 뒤 삼화령. 고위 금오봉과 함께 남산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봉우리를 지칭한다. 머리 위 삼화령 꼭대기에는 미륵불은 오간 데 없고 지름 2m의 연화대좌만 남아 있다.

7분 뒤 좌측에 용장사지 가는 길. 직진하면 금오봉 정상 방향. 왕복 30여분 걸리므로 시간이 날 경우 다녀오자.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용장사지에서는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석불좌상을 잇따라 만난다. 이중 삼층석탑은 200m가 넘는 바위봉우리를 다듬어 하층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상층기단을 쌓고 탑신과 옥개석을 얹었다. 산중에 앉아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모습이 장엄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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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하였다는 용장사지, 지금은 묘지와 잡초만 무성하며 그때의 영화를 생각하게 한다.


 
밧줄을 타고 내려와 잠시 용장사지(금당터)를 둘러본 후 본격 하산한다. 산죽터널을 지나면 용장계곡(용장골). 고위봉과 금오봉 사이로 흐르는 용장계곡은 남산의 계곡 중 가장 깊고 맑은 물이 사계절 흐르는 곳. 지리산 계곡이 부럽지 않다. 김시습의 법호를 딴 아름다운 다리 설잠교를 건너 계곡을 따라 25분 정도 걸으면 산행 들머리인 산불초소 앞에 닿는다.

# 떠나기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불교 노천박물관'

  

국토정보지리원의 지형도에는 남산을 금오산(金鰲山·468m)과 고위산(高位山·494m)으로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서에는 남산으로 많이 기록돼 있다. 경주남산연구소나 신라문화원 등 시민단체는 이러한 용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남산이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남산 안에 금오봉과 고위봉이 있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했다. 남산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 노천박물관.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간 근교산 시리즈에서 남산은 몇 차례 소개됐다. 삼릉의 오붓한 산길, 천룡사지에서 틈수골로 가는 하산길, 봉화대에서 마석산으로 이어지는 때묻지 않은 능선길 등이 주요 등산로.

이번 코스는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공룡능선과 산행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동서방향의 고위능선과 남북방향으로 뻗은 봉화대능선, 그리고 남산 계곡 중 가장 깊고 맑은 계곡물을 자랑하는 용장골. 무엇보다 칠불암, 용장사지, 천룡사지 등 남산의 알짜배기 볼거리를 한번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가족과 함께 봄맞이 산행을 떠나보자.



# 교통편
# 경주서 봉계행 버스타고 용장서 하차

  
  단감농원 할매칼국수집의 칼국수와 파전, 그리고 동동주.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508-9966)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00원.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선 봉계 방면 버스를 타고 용장에서 내린다. 500 503 505 506 507 508번 등. 들머리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나와 직진~35번 국도 언양 방면 우회전~나정 포석정 삼릉 지나 용장동 순. 길 우측에 '용장암소숯불' 큰 간판이 보이면 맞은 편인 왼쪽에 '용장사지 천우사 기와집밥상 고위산' 이정표 및 간판이 보인다. 좌회전해 하천을 따라 간다. 들머리 입구에 유료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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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에는 '단감농원 할매칼국수집'(054-745-4761)이 있다. 우리밀로 만드는 칼국수다. 근처 10여곳 칼국수집이 있지만 원조다. 손두부 동동주도 일품이다. 골목 깊숙이 숨어 있어 물어물어 찾아가자.


글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51 사진=이창우 산행대장(051)245-7005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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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암 마애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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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봉황골의 칠불암 마애석불은 삼존불과 사방불로 조성되어 있어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좌우 여러방향에서 본 칠불암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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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골의 용장사지터에 조성된 용장사곡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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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으로 자연암벽을 이용하여 조각을 하였어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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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곡 석불좌상, 미륵장육상으로 추정되는 석불좌상으로 삼륜대좌위에 모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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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잠은 매월당 김시습91435~1493)의 법명으로 유서 깊은 용장골 골짜기에 용장사터가 있었서니 용장사에서 김시습은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와 유금오록을 집필하여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용장골을 건너는 다리에 설잠교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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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통안에서 1시간을 굽어 기름끼가 빠져 육질이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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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칠백리'(051-972-0702). 강서구에서 대동방향으로 가는 중간에 남해 고속

도로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들어선다. 큰 간판이 보여 찾기는 어렵지 않다.

돼지 오리 대나무 통구이(사진) 전문점이다. 말그대로 고기를 대나무통 안에 넣고 장

작불에 1시간 정도 굽기 때문에 기름이 빠져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돼지 1인분

8000원, 오리 1마리 3만 원. 이 집은 100년 된 일본식 가옥으로  일제시대에는 이 일대

가 일본인이 농장을 하였다 한다. 집안 구조가 모두 일본식으로 지붕 또한 기와로 되

어 있어 요즘은 보기 드문 집이다. 방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면 정겨운 맛이 있는 고향

툇마루에 않아 있는 기분이 든다.  내부 다다미만 걷어내고 온돌로 교체했을 뿐 원형

그대로라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곳으로 한번쯤 들러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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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더 넘은 일본식 가옥으로 다다미만 걷어 내고 온돌만 설치하고 그대로 사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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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구조로 된 가옥 내부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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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과 함암효과가 있다는 영지버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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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실한 밑 줄기를 잡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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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버섯도 만났습니다. 남자의 심벌과 닮은 버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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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버섯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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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버섯을 동시에 담아 보았습니다. 어린 심벌과 늙은 심벌 같이 보입니다.

산행을 하다보면 종종 많은 야생화와 그리고 야생 버섯을 만나게 됩니다.
야생버섯은 식용버섯과 독버섯으로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식용버섯보다 독버섯은 색상이 화려하며
이쁘며 손으로 꺽어보면 뚝 잘려나가는 특징이 있다합니다.
그야말로 보기좋은 떡이 독버섯입니다.
  죽은 참나무류 밑에는 재수가 좋으면 식용버섯인 영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붉은색을 띠는 영지는 시골의 장터에 가면 항상 할머니 좌판에 올려져 있습니다. 깔끔한 자색을 띠는 버섯으로 중국산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영지의 효엄은 고혈압에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항암효과도 있어 차로 만들어 마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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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버섯을 보았나요. 간식으로 예쁜 접시에 담겨져 나온 과자를 ,예쁘게 담아 볼여고 해도 힘들 것 같은데 자연이란 참 묘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독버섯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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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에 먹기 좋은 놈입니다. 그기다 덤으로 땅콩가루까지 뿌려져 있어니 얼마나 맛있어 보입니까. 고소할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유혹을 하는 것 같습니다. 먹어면 어찌 될까요. 독버섯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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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버섯도 식용은 짐승이나 벌레 들이 먹은 흔적이 있습니다. 독버섯은 짐승이나 벌레등도 외면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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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시설지구 대형 주차장에서 서왕교를 건너기 전에 약수 슈퍼를 끼고 오른다, 그리고 그림같은집 민박집에서 뫼두막산장 오르막을 따라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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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두막산장 담벼락의 필봉가는 길 의 산수화 그림과 마지막 민가 전의 화장실 옆으로 올라서면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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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옆의 영지버섯과 필봉 정상의 최남준씨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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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에서 본 표충사와 도래재 갈림길 작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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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 정상에서 본 매바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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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정상에서 필봉 삼거리로 걸어가는 중간에서 본 전망대 매바위가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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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숲이 우거진 전형적인 숲길이며 두번째 사진은 천황산 정상에서 한계암으로 내려서는 곳에서 멋진 소나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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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봉 부근의 전망대로 필봉능선으로 힘들여 올라온 취재산길이며, 우측은 천황산 정상석


밀양 필봉~천황산

용맹정진 고승대덕 폭포 보며 쉬었을까

석남사 운문령 남명리 통도사 등억온천 표충사 삼계리의 공통점은.

절 온천 고갯마루 그리고 낯익은 마을 이름도 보여 알 것 같기도 한 데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건 없다. 산깨나 탄다는 산꾼들도 한번씩은 들어봤지만 막상 공통점을 찾으라고 하니 사실 막막하다고 한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지역 산꾼들의 영원한 휴식처 영남알프스 산군의 권역별 베이스캠프이다. 석남사 운문령은 가지산권, 남명리는 운문산권, 통도사는 영축산권, 등억온천은 간월 신불산권, 표충사는 천황 재약산권, 삼계리는 문복산권 베이스캠프에 해당된다.

그럼 또 하나의 질문. 이 중 연중 가장 많은 산꾼들이 즐겨 찾는 곳은 어딜까.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산꾼들 사이에선 천황 재약산권의 표충사가 지배적이다.

천년고찰 표충사를 기점으로 이어지는 천황산~재약산 코스는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국내 최대 규모의 억새군락지인 사자평의 광평추파(廣平秋波)가 황홀하고, 금강폭포 층층폭포 홍룡폭포를 품은 금강동천과 옥류동천도 비경이다. 내달릴 수 있는 1000m급 주능선도 힘차게 뻗어 있고 여기서 바라보는 산그리메도 일품이다. 억새에 가려 알려지지 않았지만 봄철의 철쭉과 한겨울의 설경 또한 꽃산행과 눈꽃산행을 앞세우는 웬만한 산과 견줘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표충사 산행로는 표충사~한계암~천황산, 표충사~진불암~재약산, 표충사~고사리분교터, 표충사~층층폭포~고사리분교터 등 크게 네 가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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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낀 거무틱틱한 기암괴석 사이로 두 갈래의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는 금강폭포. 바로 아래 한계암이 자리하고 있다. 동영상 www.kookje.co.kr

이번 주 산행지는 필봉~천황산. 기존 등산로 대신 표충사 매표소 바깥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토박이 산꾼들이 즐겨찾는 한갓진 산길이다. 표충사에서 보이는 다섯 봉우리 즉 '재약 5봉'중 막내격인 필봉은 붓끝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암봉. 재밌는 점은 표충사에선 일필휘지로 휘두를 것 같은 위엄있는 암봉이지만 이웃한 향로산이나 절 입구 매바위마을에서 보면 그저 스쳐가는 암봉으로 보일 뿐이라는 것.

구체적 경로는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주차장~매바위마을~너덜~전망대~필봉(665m)~필봉 삼거리~헬기장~도래재 삼거리~남명리 삼거리~천황산(1189m)~금강폭포(한계암)~금강동천~표충사 순. 걷는 시간만 4시간50분 걸린다.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무료 주차장의 맨끝에서 우측으로 가서 서왕교 건너기 직전 '약수슈퍼'를 끼고 좌측으로 간다. 다리 위에는 '매바위 마을 600m'라고 적힌 안내판이 눈에 띈다.

도로 우측에는 금강동천과 옥류동천 물이 만나 내를 이뤄 피서객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으며 정면으론 병풍을 연상시키는 매바위와 여자 젖꼭지 모양을 한 필봉 그리고 그 우측으로 재약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14분 뒤 매바위마을 앞 첫 갈림길. 여기서부터 요리조리 미로를 통과해 산으로 접어 든다. 첫 갈림길에서 우측, 두 번째 갈림길에서 역시 우측으로 가면 '그림같은 집'이라 적힌 펜션이 보인다. 그 펜션 좌측 샛길로 오르면 좌측으로 '상수원 보호구역 입산금지'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이지만 이는 그야말로 안내판이 보이는 좌측 계곡 쪽으로 가지말라는 경고판. 산행팀은 우측 아름드리 벚나무가 서 있는 샛길로 올라선다. 입구에는 산꾼들을 위해 누군가가 '뫼두막산장' 담벼락에 '필봉 가는 길'이라고 적어 놓았다. 이것만 찾으면 들머리 찾기는 사실상 끝.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80m쯤 돌길을 따라가면 본격 들머리에 닿는다. 5분 뒤 갈림길. 좌측 돌길 대신 우측으로 오른다. 이때부터 숲길로 접어들지만 대신 된비알이다. 7분쯤 오르면 갈림길. 좌측은 산아래서 본 대규모 너덜겅 지대. 길은 없지만 과연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라는 의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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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겅에서 6분쯤 힘겹게 오르면 경사는 사그라지고 돌탑이 서 있다. 이 돌탑 좌측 숲 사이로 보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터가 보인다. 일각에선 워낙 명당이라 표충사에서 묏자리로 못 쓰도록 막아 놓았다고 한다. 잠시 후 너덜겅과 만난다. 앞서 본 너덜겅과 이어지는 것이다. 입구에 보이는 웅덩이는 옛날 표충사에 자주 출몰해 사람들을 괴롭히던 지네를 잡은 곳이라 한다.

이제 너덜을 가로질러 숲으로 향한다. 집채만 한 바위 사이로 지그재그길이 열려 있다. 한 굽이 올라서면 첫 전망대. 정면으로 영남알프스의 최고 전망대로 불리는 향로산이 우뚝 서 있다. 여기서 9분쯤 힘겹게 오르면 필봉 갈림길. 좌측 필봉을 본 후 다시 이곳으로 와서 천황산으로 향한다.

3분이면 필봉에 올라선다. 조그만 팻말이 걸려 있다. '준·희' 오렌지색 리본으로 유명한 국제신문 2대 산행대장인 최남준 씨가 걸어 놓은 것이다. 듣던 대로 필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역시 웅장미가 빼어나고 조망이 기가 막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정면 발아래로 집단시설지구와 향로산, 그 우측으로 만어 뇌암 취경 명필 종남 덕대 등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산그리메를 펼쳐 보이고 있고, 다시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병풍 모양의 장엄하고 엄숙한 매바위가 보인다. 산아래에서 보면 생긴 모양이 매와 흡사해 마을 이름까지 '매바위'로 명명된 이곳에는 실제로 매가 많이 살았다고 전해온다. 이게 조망의 전부가 아니다. 팻말 좌측으로 4, 5m만 내려서면 표충사와 산내 암자 그리고 이를 품고 있는 봉우리들이 한눈에 펼쳐져 하산까지의 등로를 가늠해볼 수 있다.

표충사를 기점으로 좌우측에 각각 금강동천과 옥류동천이, 산중턱 좌측으로 서상암과 한계암 그 아래 내원암이, 이를 감싸고 있는 봉우리가 좌측 천황산에서 우측으로 재약산 재약봉 향로산 등 이른바 '재약 5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제 천황산을 향해 나아간다. 사실 들머리에서 필봉까지의 구간이 된비알로 힘들 뿐 이후 산길은 완만한 경사로 그리 힘들지 않다. 산길 또한 외길이며 갈림길은 세 곳 정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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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경내에서 본 천황산 능선과 경내에서 본 뾰족한 암봉인 필봉.

필봉에서40분이면 삼거리(911m)에 닿는다. 왼쪽은 감밭산을 거쳐 삼거마을 방향. 삼거는 표충사 진입 전 삼거리로, 단장면과 산내면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다. 우측 천황산 방향으로 50m쯤 내려서면 전망대. 천황산과 재약산이 한눈에 보인다. 이후 천황산과 재약산이 등로 우측 시야가 트이는 지점이면 각도를 달리해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 안부에서 바닥을 친 뒤 12분쯤 오르면 헬기장. 3분 뒤 비교적 너른 터에 닿는다. 도래재 삼거리(940m)다. 진행 방향에서 보이지 않지만 반대쪽에서 보면 조그만 안내판이 나무에 붙어 있다. 왼쪽 도래재 정승봉 실혜산, 산행팀은 오른쪽 상투봉 천황산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때부터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소로로 변한다. 발밑에는 유난히 버섯이 자주 눈에 띈다.

16분 뒤 마지막 갈림길. 왼쪽길은 얼음골 사과의 본산인 산내면 남명리로 이어지지만 현실은 벤 나무를 깔아 산길이 아닌 것처럼 해놓았다. 이 대장은 수 년 전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때 이 길로 하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산행팀은 우측 천황산 방향으로 간다. 이때부터 햇빛 비치는 돌길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숲길이 반복된다. 갈림길에서 7분 뒤 이번엔 천황산의 반대쪽인 왼쪽 산내면 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맨 왼쪽 9시 방향으로 정각산, 그 우측으로 구천산 정승봉이, 발아래 산내천 뒤로 남명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뒤로 억산 운문산 아랫재 가지산 백운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또 한 가지. 지도상의 상투봉은 아랫마을인 남명리에서 보면 그 모습이 상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능선상에서 그냥 모른 채 스쳐가는 봉우리이다.

이제 숲길과 시야가 트이는 구간이 반복된다. 정글숲을 헤치듯 잡풀을 헤치고 올라서면 푸른 억새길. 백조를 꿈꾸는 미운 오리새끼마냥 아직은 키도 작고 억새로서의 품새도 갖추지 못했다.

천황산 정상은 5분 뒤. 예의 커다란 돌탑이 우뚝 서 있다. 직진하면 재약산 방향. 아직도 내리쬐는 햇볕이 부담스러워 서둘러 이정표가 가리키는 '한계암(3㎞) 표충사(4.8㎞)' 방향으로 내려선다.

답답한 돌길의 연속이다. 17분쯤 뒤 처음으로 시야가 트이며 재약산이 보이고, 여기서 13분 뒤 좌측으로 재약산, 우측으로 산행팀이 올라온 필봉 능선이, 정면으로 향로산이 동시에 보이는 지점도 지난다.

5분 뒤 너덜길을 따라 내려가면 13분 뒤 한계암에 다다른다. 암자 문은 잠겨 있고, 한 굽이 위의 그 유명한 금강폭포는 거무틱틱한 기암괴석 사이로 두 갈래의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비경이다.

암자 앞 흔들다리를 건너 산길로 내려서면 이내 금강동천의 본류를 만난다. 10여 분간 계곡미를 감상하며 계곡을 내려온다. 범람을 대비해 계곡 우측 바위에 밧줄을 고정했고, 위험한 지점에는 난간과 발판을 조성해 놓아 전혀 위험하지 않다. 폭이나 규모 면에서 국내 여느 계곡과 견줘도 경관 면에서 하등 뒤질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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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중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천황산 정상.

계곡을 뒤로한 채 산길로 3분이면 곧바로 도로로 내려선다. 여기서 표충사 경내까지는 12분, 이어 절에서 주차장까지는 20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마을서 본 필봉과 표충사서 본 필봉 모습 달라

표충사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3000여 명의 승병을 이끌고 조국을 구한 구국성지. 해서, 경내 유물전시관과 표충서원에는 사명대사와 관련된 많은 유품이 보관돼 있다. 임란 때 친히 입은 금란가사와 장삼, 임란 후 대사가 강화사절(講和使節)로 일본에 가 조선 포로의 송환문제를 다룬 문서 등 16건 79점이 소장돼 있다.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한 현대의 마지막 고승 효봉 스님이 말년을 보내고 열반한 곳도 이곳 표충사다. 스님의 커다란 사리탑이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또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를 탈고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당시 충렬왕은 표충사를 찾아 동방제일의 선찰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금강폭포 옆의 표충사 산내암자인 한계암은 원래 비비정(飛飛亭)이란 정자 자리로 예부터 고승대덕들이 자연과 벗하며 수행정진했던 터다. 임란 이후 못 쓰게 된 것을 돌아가신 혜각 스님(단청 중요무형문화재 1호)이 40여 년 전에 건물을 지었고, 이후 석정 스님이 지금의 요사채를, 선화(禪畵)에 일가견이 있는 통도사 축서암 한주 수안 스님이 대웅전을 조성, 그림 공부를 하며 수행정진했다고 전해온다.

특히 대웅전은 국내에서 가장 작은 전각이라고 한다. 성인 세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란다. 현재 한계암은 통도사 소속 동하 스님과 보살 한 분이 맡고 있다. 하지만 평일에는 거의 없고 주말에 이따금씩 찾는다고 한다. 대웅전의 부처님은 혜각 스님이 한국전쟁 때 금강산 유점사에서 갖고 내려온 철불이었으나 7년 전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개금불사했다고 한다.

한계암 위쪽 쌍폭은 금강폭포로 알려져 있지만 아래쪽 폭포는 이름이 일광(日光)폭포라고 한다. 금강폭포 금강동천과 함께 모두 혜각 스님이 명명했다고 한다.

화려한 배롱나무꽃이 한창인 표충사 경내에선 '재약 5봉'을 꼭 챙겨보자. 경내로 들어서면 좌측에서부터 뾰족한 암봉인 필봉 천황산(정상은 안 보임) 재약산 재약봉 향로산이 180도에 걸쳐 확인된다.

# 교통편

-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무료 주차장 앞에서 하차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24번~단장 표충사 1077번~단장면~표충 국민관광휴양지(집단시설지구) 주차장 순. 또는 경부고속도로 양산IC~배내골 어곡터널~어곡양산산업단지 좌회전~어곡터널~배내골 용선~밀양댐 배내골~에덴벨리 리조트~밀양 단장 직진~밀양댐 지나~표충사 우회전.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밀양행 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50분 소요. 3800원. 밀양터미널에서 표충사행 버스를 타고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앞에서 내린다. 오전 8시20분, 9시10분, 10시, 11시. 2600원. 날머리 표충사에선 정류장이 두 곳이다. 화장실과 대형 입간판이 서 있는 '절입구' 정류장에선 오후 2시10분, 4시10분, 6시20분, 7시10분, 8시에 출발하며 집단시설지구인 '표충상가' 정류장에선 오후 3시10분, 4시50분, 5시30분에 있다. 2600원.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입력: 2008.08.21 19:56 / 수정: 2008.08.21 오후 9:53:42

ⓒ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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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산 정상에서 우측 한계암 방향으로 곧장 내려서는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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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암으로 하산하는 산길에서 좌측으로 보면 재약산의 남성적인 암골미와 문수봉 관음봉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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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쉼터에서 바라보는 재약산 방향이며 한계암의 절집으로 통도사 말사이며 스님들의 수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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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각스님이 명명했다는 금강동천과 효봉스님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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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산 산행은 관문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철다리가 설치되어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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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내려 마을길로 따라가면 마을을 지키고 한여름에는 그늘을 제공하는 당수나무 밑을 통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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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골 특산인 사과이며 당수나무 밑에서는 마을 주민의 작은 좌판이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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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길을 지나서 까지 많은 차 들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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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만암을 지키는 강아지 두마리. 왠사람들이 이리 많이 올라가는 지 궁금한가보다.그리고 구만암의 작은 암자.

아침부터 부산를 떨어 년중 행사로 찾아가는 구만산 구만계곡 산행을 갑니다. 15명의 동료와 함께 24인승 버스는 잘나가는 신대구고속도로를 타고 밀양 ic로 빠져 갑니다. 24번 도로를 따라갑니다. 말이 지방도이지 왠만한 고속도로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구만계곡은 통수골 계곡으로도 불리는 데 들머리가 산내면 면소재지가 있는 송백에서 좌측으로 들어갑니다. 구만산장 입간판을 따라 가면 수월합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구만산 입구의 마을들은 한적한 시골 수준이었습니다. 도로도 넓혀져 마을사람들이 애로가 큰 가봅니다. 도로가 넓어지면 더 좋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예전에는 입구인 큰 도로에서 내려 걸어서 구만산 산행을 했는데 지금은 넓어진 도로 탓에 대형버스들이 마을 안으로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들이닥치니 주민들은 짜증이 나는 것 갔습니다. 한 주민이 줄지어선 대형버스를 보고 이 도로는 마을사람들이 농사 일를 편하게 하기 위해 넓혀진 길이라고 그러니 입구에 주차를 해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꽁무니를 붙이고 따라갑니다. 불을 쫓아가는 불나비처럼 날씨가 덥다고 너도나도 구만계곡을 찾아오는지 수십년 동안 찾은 구만계곡이 오늘처럼 사람으로 붐비는 것은 처음입니다. 구만산장입구를 지나고 예전에는 없던 집들이 구만암아래까지 펜션이나 음식점 이름으로 여기저기 생겨나 꼴 불견입니다. 구만암을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로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으로 밀여 기다려야 했습니다.

구만산은 종전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관문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특히 계곡물이 넘쳐날씨에는 철옹성이였습니다. 좌우로 수십암벽으로 둘러쳐저 있어 일반인들은 쉬게 오르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은 그 좌측으로 철 계단이 설치 되어 있어 아무나 오를 수 가 있습니다. 역시 철계단 주위에 도착을 하니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통 같습니다.

여기선 넘 많은 사람들이 바위를 밝고 빠지고 하는 바람에 바위가 모두 물에 젖이 있습니다. 너무 사람이 많아 다른 길로 암반을 밟기 위해 뛰었는데 그만 미끄러져 구만계곡으로 풍덩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의 산행은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젓은 옷은 둘째 치고 항상 걸고 다니는 카메라가 그만 물을 먹은 것 같습니다. 렌즈교환식으로 d70에서 업그레이드하여 d300을 구입하여 얼마되지도 않은 카메라인데, 카메라가 작동을 하지 않고 계기판에 에러가 나며 죽어가는 것이였습니다. 할 수 없이 밧데리를 빼고 배낭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구석은 찝찝하게 남아 산행 내내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뒤편 암벽사이로 떨어지는 약물탕의 폭포수도 내 마음을 씻어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폭포에 물을 맞어면 좋다는 구만약물탕을 보니 더욱 열이 쳐 받아 오르는 것이였습니다. 잊을 것은 잊고 산행을 하는데 몇 년만의 풍부한 수량을 보고 카메라가 무용지물이 되 버렸어니...산행속도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되었습니다.

계곡을 좌우로 건너 갔다 왔다를 반복하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을 하였습니다. 구만폭포 직전에는 큰 너덜이 있습니다 괭음과 함께 여기서 보는 구만폭포 상류의 물 떨어짐을 보니 장관입니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구만 폭포를 보는 둥 마는 둥하며 그냥 좌측 된비알의 오르막을 올라갑니다. 폭포를 보면 더 속만 상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구만폭포는 통수골 폭포로도 불리며 예전에 통장수가 통을 지고가다 그만 떨어져 죽었다합니다. 그리고 우측으로 바위 사이로 길이 있었다는데 지금 봐도 힘이 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때는 구만명이 난을 피해 이골짜기에 숨어 살앗다합니다. 그러나 그당시 구만명이라면 어마어마한 숫자인데 어디서 그 많은 사람을 모았겠습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숨어 들어와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구만계곡은 너른 품을 가진 편편한 골짜기입니다. 좌측으로 안전로프를 잡고 오르면 산길은 절벽으로 난 아주 작은 산길을 따라갑니다. 우측은 통수골 계곡이 발아래이며 큰 소나무 밑 둥치 안에 말벌이 집을 지어 수많은 말벌들이 웽웽~하며 저공 비행을 합니다.

이제는 폭포 위쪽으로 걸어온 계곡보다는 순한 넓은 분지형의 계곡입니다. 계곡을 건너면 다시 이정표와 만나고 다시 작은 지계곡을 건너면 산길은 본격적인 오르막길로 변합니다. 30여분 턱이 숨이 차고 비오듯이 많이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내면 큰 구만산 정상석과 만나게 됩니다. 여러번 구만산에 정상석이 서 있었는데 그때마다 정상석이 수난을 당하였습니다. 뽑히고 깨지고 아니면 사라지고, 그러나 지금 바위에 새겨진 구만산 정상석은 장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인계곡은 직진하면 됩니다, 편안한 산길이 5분 정도 지속됩니다. 다시 삼거리길, 이정표가 서 있는 중요한 삼거리입니다. 우측은 구만산장, 또는 인곡방향입니다. 가인계곡은 좌측입니다. 이 산길은 육화산 또는 억산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넓은 길을 따라 급한 내리막 산길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서면 안부입니다. 직진은 인령또는 억산, 가인계곡은 우측입니다. 지계곡도 건너고 너덜길도 만나면 인골계곡 즉 가인계곡에 내려섭니다. 우측 산길이며 계곡을 건너게 됩니다. 계곡물이 많아 산행을 마친 늙은 어린이 들이 물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예전 동심의 세계에서 오랜만에 놀아 보는 사람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옷을 입은체로 몸빨레를 합니다. 차디찬 냉수에 몸을 담가 보는 맛은 해본 사람만 압니다. 인골산장으로 가기위해서는 봉이저수지를 돌아가면 됩니다. 저녁 니콘 서비스 센타에 접수를 하니 담날 견적이 55만원 나왔더군요, 울며 겨자먹기로 어찌합니까. 수리를 하고 오늘 찾아온 d30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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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 절벽 밑을 지나는 산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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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계단을 건너기 전 여기서 미끄러저 물에 빠지는 바람에 카메라도 풍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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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수리비 영수증과 병원 같다온후 d300, 렌즈값 날렸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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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찾는 근교산 경주 남산(금오산~마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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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을 대표하는 상선암 마애석가여래좌상. 그뒤로 형산강 상류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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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의 금오산과 고위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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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가 달아난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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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육존불로 바위면을 끍어 육존불을 모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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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계곡 마애입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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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석

산에 불이 났다. 산비탈 하나가 통째로 화마에 휩싸였다. 수십년된 소나무들은 시커멓게 그을렸다. 한창 물이 올라야 할 이때 밑둥이 잘려 흉물스럽게 썩고 있다. 그루터기만 덩그렇게 남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 몇 그루가 섰다. 가지, 줄기는 물론 아슬아슬하게 달린 솔방울까지 검게 탔지만 그 속에서 돋아난 시퍼런 솔잎. 한때 울창했을 가지마저 다 부러지고 이제 한 뼘이나 될까말까한 작달막한 새 가지에 새 솔잎이 푸르름을 더한다.

경주 남산을 흔히 노천 박물관이라 일컫는다. 신라 천년의 숨결을 아직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남산 골짜기마다 서린 신라의 정신은 화상을 입은 몸으로 싱싱한 솔잎을 피워 낸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남산의 자락 금오산 비탈에 서서 시커먼 소나무가 피워 낸 푸른 잎사귀를 보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품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산행코스는 삼릉~석조여래좌상~상선암~전망대~금오산~476m봉~바람재~작은마석산~금천사~노곡리. 약 6시간 소요.

삼릉 정류장에 내려 길을 건넌다. 고개를 직각으로 젖혀야 가지가 보일 만한 미끈한 소나무 숲이다. 상선암 이정표를 따라 간다. 100m쯤 가면 삼릉. 능을 향해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가 왕에 대한 무한한 경배를 표하는 듯하다.

곧은 소나무, 굽은 소나무, 누운 소나무. 인간사의 고난과 절개와 기쁨을 표현하는 것 같다. 숲을 지나다 보면 너무나 예쁘게 자란 소나무들과 사랑에 빠진다.

15분쯤 가면 상선암과 금오산 갈래길. 상선암으로 오른다. 석조여래좌상과 마애관음보살상이 나온다. 다시 5분이면 선각육존불. 이때부터는 발걸음이 더뎌진다. 온갖 바위가 다 예술품으로 보이고 혹시 그 동안 발견되지 않은 신라 문화 유산을 내가 찾아 내지 않을까 두리번 두리번.

5분쯤 가면 검은 표지석이 있다. 왼쪽으로 올라 보물 제666호 석불좌상. 손상된 부분을 시멘트로 발라 석불은 부루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석불좌상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서 계곡을 건넌다. 무안박씨 묘를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여기서 상선암까지는 약 10분. 약수를 한사발 마시고 다시 출발. 5분 뒤 마애석가여래좌상 앞에 이른다. 은은한 미소로 냉골과 상선암을 굽어보고 있다.

올라서면 네 갈래길이다. 오른쪽 금오산으로.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멀리 경부고속도로와 남산 삼릉계곡 입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키 3m쯤 될까한 소나무가 섰다. 바위 틈에 뿌리를 박고 곱게 자랐다.

절벽을 타고 걷다 보면 지나온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100m 정도 가면 왼쪽 바위틈에 산신당이 있다. 갈래길에서 직진한다. 땀을 식힐 만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잠시후 금오산 정상(468m).

11시 방향으로 치술령, 10시 방향으로 마석산이다. 토함산에 안긴 경주 시내가 아득히 보인다. 고즈넉한 산에 뻐꾹새만 뻐꾹뻐꾹 운다.

임도를 보고 내려선다. 산불 피해지역에 남산 자생 소나무를 심었다. 1m쯤 될까말까한 엇비슷한 키에 하늘로 팔을 벌린 새로난 순 모양이 사막의 선인장 같다. 100m 가다 임도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왼쪽 능선으로.

능선 하나를 넘어 임도와 다시 만날 때쯤 오른쪽으로 용장골이다. 김시습이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했다는 용장사지가 있다. 임도에 내려서기 직전 연꽃 무늬가 선명한 삼화령 대연화 좌대. 좌대에 앉으면 용장골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임도에서 왼쪽으로. 15분쯤 가면 ‘전망대 2.5㎞ 칠불암 2㎞’ 이정표. 임도에서 나와 오른쪽 능선을 탄다. 10분에 걸쳐 두번 가파른 오르막이 있다. 정상에선 오른쪽으로 직진. 20분쯤 가다 갈래길이 나오면 왼쪽.

용장마을 3.4㎞를 가리키는 이정표 앞에선 직진한다. 5분쯤 가면 ‘칠불암 200m 금오산 2.9㎞’ 이정표.

여기서 왼쪽으로 몇 걸음 가자. 기막힌 전경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해발 500m도 되지 않는 남산의 산비탈 하나가 온통 바위로 이뤄진 장관을 펼쳤다. 지금까지 순탄하던 것과 달리 여기서부터는 다소 거칠고 갈래길이 많다.

‘새갓골석불좌상 750m’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면 능선을 빠져 왼쪽 아래로 내려선다. 내리막을 걷다 묘지 3기를 지나면 갈래길을 만난다. 왼쪽으로.

임도에 들어서 갈래길을 만나면 직진하고 10분쯤 걷다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선다. 10분 뒤 또 갈래길. 직진하고 다시 10분 뒤 임도 갈래길에선 왼쪽으로. 바로 등산로와 연결된다. 5분쯤 가다 갈래길에선 직진한다.

다소 지루하고 헷갈리는 등산로가 끝나고 임도를 만난다. 직진. 벌목지대와 무덤을 연속으로 지나다 능선에 오른다. 왼쪽으로 꺾이는 지점에서 임도를 벗어나 능선 등산로에 붙는다. 20분쯤 가면 다시 임도와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하산.

잠시 내려가다 왼쪽에 무덤이 있고 앞에 산죽 터널이 나오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여기서 금천사까지는 약 20분.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15분쯤 가면 노곡2리 백운대마을이 보인다.

논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면 산행이 끝난다.

/ 김용호기자

/ 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떠나기 전에

경주 남산은 신라 오악의 하나로, 옛 서라벌의 남쪽 땅에 웅크리듯이 솟아오른 작지만 큰 바위산이다. 500m도 안 되는 동네 뒷산 같은 야트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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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금오산(金鰲山· 471m)과 고위산(高位山·494m)을 가르켜 부르는 이름이다. 뻗어 내린 능선과 수많은 골짜기, 그리고 봉우리마다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재가 산재해 있으며 신라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신라 불교의 성지이다. 110여개의 절터, 118체의 석불과 마애불, 석탑과 폐탑이 96기에 이른다.

볼거리가 많은 남산 산길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가족산행으로는 삼릉-석조여래좌상-선각육존불-보물 제666호 석불좌상-상선암-마애석가여래좌상-금오산 정상- 옥수골마애대불-삼릉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3시간이면 충분하다.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 문화재에 대한 자료를 갖추면 더욱 좋은 가족산행을 할 수 있다.

근교산 지면에 소개되었던 포석정-금오산-고위산-천룡-틈수골 코스는 남산종주의 대표적인 코스로 5시간이면 산행을 할 수가 있다.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교통편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10분 간격 출발. 경주에선 삼릉행 시내버스를 탄다. 500 501 593 506 507번. 500번이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나머지는 하루에 서너 차례 있다. 25분 소요.

산행 끝지점인 노곡2리 옛날순대집 앞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506번이 16시25분과 18시50분에 지나간다. 508번은 18시30분쯤에 있다. 경유지이므로 시간은 정확치 않다. 여유를 둬야 한다. 여기서 20분쯤 걸어 이조마을까지 내려가면 봉계에서 내려오는 경주행 버스가 30분마다 지나간다. 금아교통 054-742-2690.

교통편은 변경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kyh73@kookje.co.kr
입력: 2002.05.2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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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부근에서 본 전경으로 왼쪽사진은 갈길인 고위산과 마석산의 전경이며 오른쪽사진은 건너 토함산의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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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에서 삼화령으로 내려가는 능선상에 대연화 좌대가 설치 되어 있다. 불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연꽃 무늬가 뚜렷한 좌대만이라도 앉아 있는 위치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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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화 좌대에서 본 고위산과 과 우측은 삼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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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화령에서 봉수대 방향으로 가다보면 칠불암 갈림길 이정표와 만나다, 칠불암 방향 중간에 바위벼랑을 끼고 보면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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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갈림길의 이정표와 바위절벽 밑으로 칠불암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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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갈 능선인 마석산이 왼쪽으로, 건너편 산은 박제상의 전설이 서린 치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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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의 공룡능선인 이무기 능선 고위산을 지나 틈수골능선상에서 보았다. 그뒤로 남성미가 넘치는 금오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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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삼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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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여기가 지리산 제1의 전망대, 삼신봉... 정상석 뒤로 영신봉 제석봉 천왕봉 중봉 하봉 등 지리산 100리 주능선이 병풍을 두르듯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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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능선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는 단연 삼신봉이다 . 삼신봉에서 본 지리산 25.5km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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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봉에서 남부능선으로 내료오는 능선이 뚜렸하다. 이 또한 낙남정맥의 출발점이며, 백두대간의 능선의 종착점이자 출발잠인 천왕봉,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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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 탐방지원센타를 출발하면 만나는 샘터, 능선에 오르면 삼신봉 이 좌측임을 알리는 이정표, 삼신봉 안부에서 남부능선 외삼신봉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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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삼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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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100리 능선길, 역사와 전설이 스며있는 기암괴석, 골짝골짝 피어오르는 야생화…. 국립공원 지리산이 다시 열렸다.

산불방지를 위해 폐쇄됐던 지리산 주요 등산로가 지난 16일 개방됐다. 근교산 취재팀은 올들어 첫선을 보인 지리산 삼신봉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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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남부능선에 위치한 삼신봉(三神峯)은 동서로 길게 누운 주능선이 영신봉에서 갈라져 내려오다 우뚝 선 1천2백고지의 고봉이다. 산악동호인들은 삼신봉을 지리산 남부지역의 최고 전망대로 손꼽는다.

삼신봉은 쇠통바위, 내삼신봉, 외삼신봉 등 3개의 봉우리를 품고 있다. 내삼신봉(1,354곒)이 그 중 가장 높지만 일반적으로 외삼신봉을 주봉으로 부른다. 외삼신봉은 조망이 뛰어난데다 지리산 주능선과 남부능선으로 가는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청학동 사람들은 외삼신봉 정상에 돌제단을 설치하고 기우제를 지내왔다.

이번 산행은 지리산 남부 능선의 백미를 이루는 구간이다. 산행코스는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 매표소~샘터~안부 사거리~삼신봉(1,284곒)~내삼신봉(1,354곒)~송정굴~쇠통바위~독바위봉~상불재~불일폭포~봉명산방~쌍계사~하동군 화개면 용강마을’이다. 산행거리는 20㎞내외, 산행시간은 5시간 30분~6시간이다. 청학동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버스 종점에서 임도를 따라가면 지리산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를 만날 수 있다. 우측 산길이 들머리이다.

지리산은 산행로가 잘 정비돼 있다. 매표소부터 탐방길이 시작된다. 산죽이 무성한 가운데 울울한 청송이 청량함을 더하는 숲길이다. 계곡을 따라 심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새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탐방로 길섶에는 노란 피나물꽃이 함박 펴있다.

탐방로를 따라 40분 정도 오르면 샘터에 다다른다. 샘터를 지나면서 길은 다소 가팔라진다. 그러나 통나무와 바윗돌을 괴어 계단을 만들어 놓았으므로 힘들지는 않다. 20분 정도 오르면 안부 사거리다. 왼쪽으로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가 삼신봉이다. 오른쪽은 낙남정맥으로 빠져 나가는 길, 직진해 고개를 넘어가면 거림지구로 떨어진다. ‘세석대피소’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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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자물쇠 바위를 끼우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쇠통바위.]

삼신봉 가는 길에는 금낭화가 무리지어 나타난다. 정상까지 500여곒 구간에 지천으로 깔린 금낭화가 산꾼을 반긴다.

삼신봉 정상은 지리산을 한 품에 앉은 듯 호쾌한 연봉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다가와 있는 천왕봉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제석봉 촛대봉 연신봉 칠선봉이, 오른쪽으로 중봉 하봉이 100리 능선 길을 이루며 뻗어나간다. 고봉을 뒤덮은 운무가 걷힐 때면 남쪽으로 다도해의 쪽빛바다가 은근슬쩍 보이기도 한다.

내삼신봉으로 가기 위해 서쪽으로 떨어진다. 만약 북쪽 능선길을 따르면 세석산장을 지나 지리산 주능선에 다다른다.

주능선은 산죽이 빽빽히 자라고 있는 조붓한 오솔길이다. 산철쭉도 이제서야 핑크빛 꽃을 펑펑 터뜨리고 있다.

내삼신봉까지 30분이면 충분하다. 내삼신봉 멧부리에는 ‘삼신산’이라 적힌 표지석과 돌탑(돌무더기)이 쌓여있다. 내삼신봉부터 상불재까지는 기암절벽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능선길이 기다리고 있다.

내삼신봉에서 10여분 쯤 가면 널찍한 관통굴을 만날 수 있다. 길이 20여곒, 너비 10여곒, 높이 2곒내외 되는 너른 굴로 ‘송정굴’이라 불린다. 조선중기 학자였던 송정 하수일 선생이 임진왜란 당시 이 굴로 피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정굴을 지나 조금더 가면 마치 자물쇠가 얹혀져 있는 모양의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쇠통바위다. 쇠통바위는 흥미로운 전설을 가지고 있다.

쇠통바위는 두개의 큰 바위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 사이로 큰 구멍이 생겼는데 옆에서 보면 바위 가운데가 뻥 뚫려 마치 열쇠구멍을 연상케 한다. 청학동 사람들은 학동마을에 있는 자물쇠 바위를 이 구멍에 꽂으면 천지개벽과 함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믿고 있다.

능선을 따라 15분 가량 가면 헬기장이 있는 독바위봉에 오른다. 이정표가 상불재까지 1㎞를 가리키고 있다.

삼거리인 상불재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취재팀은 직진해 불일폭포(3.1㎞)를 지나 쌍계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만약 왼쪽으로 꺾으면 청학동으로 되돌아가는 원점회귀코스다.

산길은 아래로 급격히 떨어진다. 물흐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 계곡길이다. 극심한 봄가뭄에도 불구하고 뼛속까지 시원한 청정수가 힘차게 흘러내리고 있다. 지리산은 품이 넓어 결코 계곡이 마르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청송의 푸른 그늘이 드리워진 하산길은 청량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바위조각이 많으므로 발목이 삐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40분 가량 돌밭을 지나 내려가면 잘 다져진 흙길이 나타난다. 나무울타리가 쳐진 문을 빠져 나오면 불일폭포(0.3㎞)로 가는 삼거리를 만날 수 있다.

불일폭포길은 좌측으로 난 좁은 계곡길이다. 미끄러운 바위길이라 쇠난간이 설치돼 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면 높이 60여곒에 이르는 장엄한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를 내리쳐 청학봉과 백학봉을 만들었는데, 그 사이로 물이 떨어져 폭포가 됐다는 전설이 있다.

불일폭포에서 되돌아 나와 하산로를 따르면 곧 봉명산방에 닿는다. 고변규화(64)씨는 이곳에서 20년 이상을 터닦고 살며 국토 모양의 연못인 반도지(半島池)와 소원을 빌 수 있는 소망탑을 세워놓았다. ‘봉명산방’은 지리산에 들어왔던 소설가 정비석씨가 이름 지었다.

40여분 탐방로를 내려오면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환학대를 지나 쌍계사에 닿는다.

/ 글=박병률기자

/ 산행정보 문의=다시찾는 근교산취재팀(051-500-5150) 이창우 산행대장(011-563-0254 · www.yahoe.co.kr)

승용차를 가지고 가거나 단체산행을 생각한다면 원점회귀코스를 추천할만 하다. 산행코스는 ‘청학동탐방지원센터~샘터~안부사거리~삼신봉~내삼신봉~송정굴~쇠통바위~독바위~상불재~삼거리~독립가옥~삼성궁~청학동’이다.

상불재에서 이정표를 참고한다. 왼쪽 청학동 방향으로 들어서면 형제봉으로 가는 주능선길이다. 20분 가량 가다 삼거리를 만난다. 청학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왼쪽으로 꺾어야 한다.

가는골 계곡을 따라 오솔길을 30여분 내려서면 독립가옥이 있다. 독립가옥부터 오솔길이 도로로 바뀐다. 두번째 독립가옥을 지난 뒤 왼쪽 언덕으로 난 오솔길을 따르면 삼성궁 청학동으로 이어진다.

산행 전 김덕준(73)씨에게 연락하면 청학동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055-882-7202

버스편으로 원점회귀코스를 돈다면 늦어도 오후 6시 이전에는 버스주차장까지 내려와야 한다. 오후 6시에 진주로 떠나는 버스가 있다. 하동행 버스는 오후 5시가 막차. 산행안내 지리산 청학동매표소 055-883-2609

▶교통편


쌍계사로 하산하면 오후 7시30분에 하동으로 떠나는 막차가 있다. 막차를 놓치면 택시를 타고 하동으로 간다. 화개택시 055-883-2240.

청학동을 갈때는 먼저 하동으로 가야한다.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051-322-8301~2)에서 하동시외버스터미널(055-883-2663)행 버스가 오전 7시부터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2시간20분 소요. 하동에서 부산행 막차는 오후 7시30분. 하동터미널에서 청학동행 버스는 오전 8시30분, 11시, 오후 1시에 각각 출발한다. 참고로 청학동에서 하동행 버스는 오후 2시20분, 오후 5시에 운행한다. 1시간여 소요.

 쌍개사 버스 정류장에서 화개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10분, 3시30분, 4시10분, 5시, 5시20분, 5시40분, 6시10분, 6시40분에 있다. 여기서 방법은 두 가지. 갈아타지 않고 부산으로 곧장 가는 시외버스는 오후 4시45분, 5시35분, 6시45분에 있다. 또 화개에서 하동행 버스는 오후 3시25분, 4시15분, 4시45분, 5시35분, 6시20분, 6시45분에 있다. 하동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30분, 5시30분, 6시30분, 7시30분(막차)에 출발한다.
부산행 버스를 놓치면 진주로 가서 부산으로 돌아온다. 진주에서 부산행 막차는 밤 9시10분이다. 그 이후는 심야버스를 타야 한다. 밤 10시30분, 11시30분 등이다.

*맛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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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입구 쌍계교 바로 앞에 위치한 '쌍계 수석원 전시식당'(055-883-1716). 소문난 영양 돌솥밥집(사진)이다. 장수 곱돌에 찹쌀 멥쌀 흑미 차조 쑥쌀 대추 검은콩 등 잡곡을 넣고 지리산 약수로 밥을 짓는다. 반찬은 지리산 깊은 골짝에서 채취한 취나물 고사리 등 산나물이 나오지만 이 집의 별미는 바로 물갓김치. 담백하면서도 톡 쏘는 갓김치 고유의 맛이 은은하게 살아 있다. 8000원.
글/박병률기자
사진/이창우산행대장www.yahoe.co.kr
brpark@kookje.co.kr 입력: 2001.05.2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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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불재  부근에서 본 형제봉 그 뒤로 광양 백운산이 구름에 덮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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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불재의 독바위, 청학동을 보며 홀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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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25.5km 능선의 파노라마.

*지리산의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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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의 전경으로 좌측 전망대봉에서 바위 능선의 영축산 정상. 맨위측 암봉이 병봉으로 이어지는 만만찬은 능선길, 그아래 영산면 구계리의 농가와 다랭이 논, 그아래 구계저수지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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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암 대웅전과 그 옆 함박산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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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선 설송산악회 회원님과 영산에서 부국온천으로 넘어 다니는도로와 영산읍의 산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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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오솔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회원님, 그리고 소나무가 주종인 산길을 오르는 산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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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계리 뒷산인 영축산의 전경, 암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만만치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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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야생화들이 산길 옆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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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개의 바위로 이우어진 종암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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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암산 정상에서 덕암산으로 내려서다 만나는이정표, 함박산과 큰고개를 알리고 있다.
 
이번주 근교산은 등산로 초입 유서깊은 함박산약수터가 산꾼의 발길을 반기고 하산길은 부곡온천으로 이어져 온천욕으로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새해 산행 코스로 안내한다.경남 창녕군 남쪽의 영산면에서 시작하는 함박산(501m)-종암산(546m)-덕암산 (544.5m)종주산행은 그리 높지 않은 산정상을 잇는 부드러운 능선길을 마음껏 걸어볼 수 있는 멋들어진 워킹산행코스다.산세가 온순한데다 산악동호인들의 발길이 뜸했던 산 답지않게 길이 또렷하고 잡목과 수풀의 훼방도 거의 없다.

눈아래로 펼쳐지는 부곡하와이의 전경과 손 에 잡힐듯한 창녕의 진산 영축산 조망도 그림같다.특히 등산로 입구에서 만나는 함박산약수터(향토문화경승지 제19호)는 1천2백 여년의 역사를 지닌 영산의 명소로 당뇨와 위장병에 특별한 효험이 있는 것으 로 알려져있다. 신라시대 한 효자나무꾼에 얽힌 전설을 간직한 이 곳에는 사시 사철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산행코스는 영산면 함박약수터에서 시작해 함박산-512m봉-491m봉-종암산-493m 봉-큰고개(296m)-덕암산으로 이어져 부곡온천에 인접한 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뒤로 하산한다.

산행시간은 5시간 30분 정도. 종주가 부담스러울 경우 덕암산 닿기전 큰고개에서 곧장 부곡온천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영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내리면 오른쪽으로 로터리가 보인다. 로터리에 서 영산파출소가 있는 왼쪽길로 들어서 100m쯤 가면 영산시장. 시장끝쪽의 영 산슈퍼앞 갈림길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가면 2차선 도로에 올라선다. 도로를 따 라 왼쪽으로 200여m 걷다보면 길가에 `영산약수터 500m 영산석빙고 200m'라고 적힌 표지판을 볼 수 있다.

표지판의 안내를 받아 영산(함박산)약수터에 닿으 면 본격 산행로가 열린다.오르는 길은 두갈래다. 약수터 옆의 약수암 앞을 돌아가는 완만한 길과 약수터 뒤로 바로 오르는 산길. 약수터 뒷편길은 길이 묵고 경사가 비교적 급해 오르 기 힘들지만 시간을 아낄수 있다. 계곡으로 이어져 산사면으로 올라붙는 미끄 러운 낙엽길로 40분 정도면 능선에 올라설 수 있다.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봉분 하나를 거쳐 10분쯤만 가면 함박산과 연결된 주능선에 닿는다.

왼쪽으로 틀어 뚜렷한 산길을 따라 5분만 더 가면 이내 함박산 정상에 도착한다.함박산은 높지 않지만 조망이 꽤 시원스럽다. 앞으로 가야할 종암 덕암산과 종 남산 불모산등의 실루엣이 또렷하다. 멀리로는 영남알프스의 능선도 눈에 들어 온다.함박산에서 종암산 정상까지는 제법 길이 길다. 직진방향으로 함박산 정상을 내려서면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매혹적인 산길이 열린다. 대부분 능선위 외길 을 따라가는 코스여서 길찾기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크게 급하지 않은 오르 내림을 반복하는 동안 아기자기한 산세를 감상할 수 있다.헬기장과 512m봉 491m봉을 거쳐 1시간 10분 정도면 종암산 정상까지 갈수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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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산 정상의 산그리메

이 구간에서는 종암산에 가까워질수록 잦은 오르막을 타야해 체력소모가 많아진다. 체력안배에 유의해야 한다.종암산 정상에서 약간 비켜난 바위전망대에서는 겨울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 나는 영축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정상부근이 바위로 뒤덮인 영축산의 독 특한 모습은 그야말로 일품이다.종암산 정상 바위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화왕 관룡능선 종주길 로 접어든다.

덕암산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조금 되돌아나와 남쪽(진행방향에 왼쪽)으로 열린 길을 택해야 한다.덕암산까지는 땀을 제법 흘릴 다짐을 해야한다. 540m대의 종암산 정상에서 높 이 296m인 큰고개까지 내려섰다 다시 올라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체력소모 를 고려하면 결코 만만하지 않다. 20여분쯤 내려서면 큰고개에 닿는데 이곳에 표지판이 서있다. 부곡온천까지는 1.2Km 덕암산정상까지는 1.4Km. 직진해서 길 게 이어진 오르막을 1.4Km 더 가면 덕암산 정상이다.하산길은 정상에서 직진하 면 마주치는 넓직한 평지를 지나 반대편으로 열린다.

쉬지않고 30분 정도면 농 협중앙회 창녕교육원 뒤편으로 내려온다. 연수원 정문을 통과해 20여분 내려가 면 원동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20여분 걸어가거나 택시로 기본요금이면 부 곡온천으로 갈수 있다. 원동마을에 있는 부곡농협 바로 옆에 택시회사 차고가 있어 택시잡기는 수월하다.

# 교통편

부산서부버스터미널(051-322-8306)에서 영산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8시10분, 9시20분, 10시20분에 출발한다.

날머리 창녕시외버스 부곡온천정류소(055-536-5008)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있다.
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바뀔수 있습니다. 터마널로 확인해 주세요

조봉권기자 입력: 2002.01.17 14:38 / 수정: 2006.11.23 오후 3:46:40

사진/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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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고개와 부곡온천으로 내려서는 전망이 터이는 지점에서 본 물매화로 순백의 고고함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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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산 정상에서 본 부곡온천과 덕암산 정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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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마치고 농협 연수원 앞에선 설송산악회 회원님

국제신문 金海祿기자의 함박산 기사 내용입니다.
「함박산약수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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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昌寧] 昌寧군 함박산(勺藥山)약수터는 新羅35대 景德王때 노모에 대한효성이 지극한 한 나무꾼에 의해 발견돼 1천2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국 제1의 약수터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昌寧군靈山면校리 산38의1에 주소를 둔 함박산약수터는 현재 군 향토문화재 경승지 제19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약수터는 邱馬고속도로 昌寧군 釜谷IC입구에서 釜谷방면으로 1 지점인靈山면에서 동북방향으로 약5백 거리에 있는 함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약수터가 발견될때 이 산에 `함박꽃이 가득 피었다'는 전설 때문에`함박산'으로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또 `함박'은 古語이며 `작약'은 그 借字로 옛사람들은 하늘(天)을 최대 최광명한 국토로 여겼으며 높은 산을 곧 하늘의 연장으로 생각해 `한밝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 함박산으로 변해 불려졌다는 설도 있다.산 중턱에는 함박꽃 나무가 없으나 입구산기슭에는 함박꽃나무가 아직도 청아한 꽃을 피우고 있다.

勺藥은 함박꽃이라고도 하는데 한밝산이 함박산으로 변하면서 한문을 빌려표기한 나머지 작약산으로 부르게 된 듯하다.新羅 景德王때 靈山에 정직하고도 효성이 지극한 나무꾼이 체증(위장병)에 걸린 노모를 치료하기 위해백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어 노모는 날로 쇠약해져 갔다.아들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음을 깨닫고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들여 어머니의 병환이 쾌유하기를 빌었는데 기도한 지 7일째 되는날 밤에 홀연히 기품 있는백발노인이 나타나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아노니 이 산 함박꽃 있는 곳을 찾아 오너라"고 하여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 나무꾼은 꿈이 너무나 뚜렷해 날이 새자마자 함박산에 올라 산중턱을 샅샅이 뒤졌으나 소나무 우거진 사이에 함박꽃에 만발하였을뿐 자신이 구하는 약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꽃밭을 뒤지다 실망한 나무꾼은 갈증을 느끼고 함박꽃에 둘러싸인 계곡에서 솟아 흘러내리는 淸水를 마시고는 너무나 향긋하고 시원함을 느껴 `신령님이주신 약이 바로 이 것이로구나'하는 생각에 그 물을 며칠간 어머님께 떠다 드렸더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

함박산 약수터는 유명세가 붙어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왔는데,특히 음력 4월 초파일과 5월 단오를 전후한 봄에는 密陽 咸安 宜寧 등지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하루 수천명씩 몰려들어 함박산은 약수를찾는 사람들로 대혼잡을 빚기도 한다.

8일 군관계자에 따르면 이 약수터의 성분은 탁도1도,수온 13도내외,수소이온농도 7도이하,염소이온 5mgl,철 0.2mgl,망간 0.1mgl를 함유하고 있다.

올해로 46년째 이곳에서 물을 떠다 마신다는 尹차옥씨(여.63.昌寧군靈山면城內리)는 "이 물은 아무리 오래 저장해두어도 찌꺼기가 전혀발생하지 않고 아무리 많은 양을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약수터의 물을 담은 물통은 예로부터 목적지까지 땅바닥에 놓지않아야만 약효가 있다는 속설이 있다.

이 약수터는 근래 釜谷온천과 군립공원인 火旺山개발에 밀려 방치되어 있다.

특히 昌寧군靈山면에서 지난 73년10月 靈山도시계획 고시때 공원지역으로 지정해 이 일대에서는 건물의 신 증축을 할 수 없다.

이때문에 주변 편의시설이 30여년전에 설치한 약수대 1개소와 여관1채(객실 10개) 구멍가게1개소 간이화장실1개소 1백평의 주차장이 있으며 여관은 낡고 비좁은 게 흠이다.

 
<金海祿기자>
  입력: 1993.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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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동 대신공원의 편백나무 숲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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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공원내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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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마을 갈림길의 이정표와 비가 그친 순간의 대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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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이런 곳도 있습니다.

구덕산과 엄광산 사이의 계곡에는 현재 대신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측으로는 동아대학교가 자리잡아 일제시대때 많은 일본인이 자리를 잡아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1900년도에 일본인이 거주를 하면서 부산에서 3대 수원지로 조성된 대신공원은 삼나무와 벚꽃, 편백등이 주종을 이루며 산림욕장 역할을 하고 많은 시민이 찾는 시민공원이다. 그러나 한때는 수원보호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를 하는 바람에 오늘과 같은 울울창창한 수림으로 변모하였다. 1966년도에 낙동강물을 원수로 끌어서는 바람에 대신공원 수원지는 제 기능을 잃고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산의 산으로 엄광산과 구봉산을 연결하는 대신공원은 대청공원, 민주공원과 함께 하나의 선을 연결하고 있다.

부산진구 중구 서구 사상구에 걸쳐있는 능선은 낙동정맥의 마루금도 연결된다.
산행은 동아대학 입구에서 출발을 한다.
동아대학 뒤편 약수터로 들어가도 되지만 오늘 산행은 산정음식점의 뒤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산행을 출발하기 전에 특이한 이력의 기념탑을 볼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 영모비로 임진왜란때 부산포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으로 왜적을 섬멸하신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충절과 위업을 추모하고 국난극복의 민족사를 후세에 전하고자 1957년에 충무동 경로회 회원들의 정성으로 충무동광장에 건립한 것을 1960년 도로확장으로 남부민동 해양 고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와 학생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였어나 1992년 해고가 다른 곳으로 이전을 가는 바람에 현재의 자리인 대신공원에 원상복원을한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산행은 근교의 공원답게 많은 사람이 올라간다.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가볍게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땀을 흘릴 때 쯤 편백숲으로 치장을 한 산길과 만난다. 마침 국지성 호우로 맑은 날씨가 갑자기 안개비가 내린다 그것도 잠시 장대 같은 비를 뿌린다. 갈등도 없이 비를 맞어며 올라간다.
편백숲사이의 오솔길이 운치가 있다. 꽃마을 갈림길을 지나면 산길은 엄광산 정상으로 치 닫는다. 모든 산이 고랑으로 변한다. 금방 파헤쳐진 고랑으로 물이 흘러간다. 등산을 즐기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빠른걸음으로 하산을 한다. 그러나 느긋한 마음으로 빗속산행을 즐기며 올라서니 엄광산 정상석과 만난다.
엄광산은 한때는 고원견산으로도 불렸다, 아니 엄광산의 산명은 모른체 고원견산으로만 알고 있었다.
일제시대때부터 왜놈들이 자국에서 관부페리호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오면 해상의 저 멀리에서부터 보이는 엄광산이 보였다. 그때부터 고원견산으로 불여지게 되었서며 우리이름 찾기에서 엄광산을 복원하여 정상석을 세웠다 한다. 헬기장과 부근에 TV중계소를 지나면 산길은 잠시 허리를 숙인다. 낙동정맥 갈림길이 좌측으로 열리면서 금정산으로 달아난다. 산길은 돌탑이 서 있는 봉우리에서 뚝 떨어지고 다시 헬기장의 봉우리에 올라선다.
그래 퍼 붓던 비는 그치니 하나둘 사람들이 올라온다. 잠시 후 수정산의 갈림길로 좌측으로 내려서면 안창마을 동의대학 가야봉 수정동으로 내려설 수가 있다. 직진을 하면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동네 장터 같은 안부에 내려선다, 많은 사람들로 웅성거림이 동네 마을 회관같다, 삼삼오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봉산으로 오르는 산길에 왠 모노레일...

구봉산에 올라서니 봉수대터에 목재데크와 전망대 공사를 한다고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꼭 이런곳에다 전망대를 설치해야 하는 지 궁금하다. 산행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볼 수 있는 전망인데 말이다.
다시 하산을 하면 동네 마을 회관같은 분위기로 구봉산을 앞 뒤로 수정동 대신동 대청도 주민이 서로 만남의 광장으로 이용을 하는 것 같다. 이제는 대청공원으로 향한다. 구봉산 안내판을 지나고 대청공원 표지판을 따라가면 산복도로에 내려선다.
암남동과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까치고개가 펼쳐진다. 도로에서 좌측으로, 좌측은 중앙공원인 대청공원의 탑이 서있고 맞은편엔 근래에 만들어진 민주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때 대청동에 거주를 할때 대청공원에 올라보던 시절과 많이 변해 격세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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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개인 후의 전망대와  구봉산 아래 갈림길 이정표,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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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을 알리는 정상석과 구봉산봉수대를 알리는 표지석으로 지금 이곳에 목재데크 전망대를 설치하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다. 봉수대 복원이 먼저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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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리와 대청공원으로 내려서는 운치있는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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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원과 대청공원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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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공원을 지나 대청 공원으로 내려서면 영도의 봉래산과 자갈치 앞바다, 그리고 용두산 공원의 부산타워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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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풍재에서 범봉으로 가는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 서면 억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사진상으로 깨진 모습의 구분이 안 되지만 실제로 보면 독특한 형상이 확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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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봉을 오르기전 전망대에서 본 억산 깨진바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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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사입구에서 바라본 억산 깨진바위, 보이는 모습이 다르며 쪼개진 모습이 확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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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의 천문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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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사 앞 다리를 건너면 좌측 등산로 이정표를 따라간다. 곧이어 계곡 건너 부도밭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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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사를 지나면 만나는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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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풍재의 안내판과 전망대에서 본 밀양 산내면 쪽의 산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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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산 깨진바위 거참 희한하게 생겼네

산행 시·종점 각각 대비사 운문사…볼거리 무궁무진

오를 때 대비골, 하산 때 천문지골·큰골 모두 계곡산행

걷는 시간만 4시간5분…산행 답사 '두 마리 토끼' 가능

억산 정각산 개물방산 호거대 지룡산 등 모두 조망

천년고찰 운문사는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영주 부석사 등과 함께 전국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사찰 중 하나이다. 절로 향하는 길 주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빠알간 늦사과와 노오란 은행잎이 환상적인 영주 부석사만 만추에 유독 두드러질 뿐 나머지 사찰은 사시사철 꾸준하게 발길이 이어진다.

명산에 명찰이라 했던가. 선암사는 전형적 육산인 조계산이, 대흥사는 다도해 국립공원을 굽어보는 암봉인 두륜산이, 소백산 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는 부석사는 백두대간인 소백산 줄기가 품고 있다.

청도 운문사는 차고 앉은 형세가 다른 사찰과 사뭇 다르다. 통상 사찰은 산을 등지고 있는데 반해 운문사는 운문산과 마주보고 있다. 실제로 옛 비로전인 대웅보전 앞에 서면 운문산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한데, 절집 앞 현판에는 '호거산(虎踞山) 운문사(雲門寺)'라 적혀 있다. 호거산은 절 북서쪽에 위치한 호랑이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한 암봉으로 일명 등심바위. 통상 절이름 앞의 산이름은 가장 근접한 곳의 봉우리 이름을 붙인다는 관습에 따라 호거대라 불리는 암봉을 호거산으로 바꿔 붙였지 않나 싶다.

뜬금없이 운문사를 화두로 꺼낸 까닭은 독자들의 전화 때문. 그들은 한결같이 하산 지점이 운문사인 코스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운문사로 하산 가능한 봉우리는 운문사 북동쪽의 지룡산, 북서쪽의 호거대(등심바위)와 딱밭재에서 떨어지는 천문지골, 아랫재에서 시작되는 심심이골 그리고 상운산이나 가지산에서 출발하는 학심이골 정도.

지룡산 호거대 심심이골 학심이골 등은 최근 소개했거나 코스가 너무 길어 고민 끝에 산행팀은 청도 대비사에서 출발하는 범봉 코스를 택했다. 한적한 천년고찰 대비사에서 대비골로 올라 적당히 능선길을 걷다가 천문지골로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점이라면 원점회귀가 아니라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

구체적 경로는 청도군 금천면 대비사~대비골~팔풍재~전망대~등심바위(호거대) 갈림길~범봉~딱밭재~천문지골~큰골(운문천)~운문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5분 정도. 들머리와 날머리의 천년고찰 대비사와 운문사를 구경하고, 오르내릴 때의 대비골과 천문지골에서 발을 담그며 땀을 식히노라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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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천년고찰 대비사 옆으로 억산 깨진바위가 보인다. 

들머리는 대비사. 이 코스는 산 너머 밀양 석골사와 함께 억산으로 오르는 유이(唯二)한 산길이지만 오지여서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이 점이 되레 한적한 산행을 가능케 해주는 순기능 역할을 하고 있다.

호거대 아래 첩첩산중에 터를 잡은 비구니사찰 대비사 주차장 입구 '등산로'라고 적힌 조그만 이정표를 따라가며 산행은 시작된다. 절로 가는 길이 우측에 열려 있고 좌측 다리 건너에는 절벽 아래 부도전이 눈에 띈다.

들머리에서 4분이면 산으로 들어선다. 굴참 신갈 등 활엽수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곧 갈림길을 만나지만 좌측 계곡(대비골) 쪽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출입을 막고 있어 우측으로 오른다. 계곡과 나란히 걷지만 아직은 산길에서 접근이 어려워 무작정 오른다. 20분쯤 올라야 비로소 계곡으로 가는 소로가 열려 있지만 무시하자. 5분 뒤 계류를 건너기 때문이다. 바닥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유난히 물이 맑은 데다 아주 차다. 조금 더 오르면 나홀로 '알탕'을 하기에 제격인 작은 소가 여럿 보인다.

이어지는 산길. 농짝 내지 집채만한 바위가 정면에 병풍처럼 떡 버티고 있는 가운데 이끼 낀 작은 바위 사이로 산죽길이 기다린다. 이어 만나는 지계곡 물길을 건너면 산길은 지그재그로 바뀌며 상당히 가파른 된비알로 돌변한다. 여기에 바닥은 너덜길이 한동안 이어져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특히 주능선인 해발 770m대의 팔풍재로 오르기 전 300~400m 구간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GPS 단말기로 얼핏 봐도 45도의 경사는 될 법하다. 들머리에서 팔풍재는 2.6㎞로 1시간35분 걸린다.

팔풍재는 사거리. 우측은 왕복 40분쯤 걸리는 억산(0.6㎞), 직진하면 석골사(2.7㎞), 산행팀은 좌측 운문산(3.7㎞) 딱밭재(1.9㎞) 방향으로 향한다. 약간의 굴곡이 있어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전체적으로 내리막길로 수월한 편이다.

오르막은 8분쯤 뒤부터 시작된다. 12분쯤 지그재그길을 힘겹게 오르면 전망대에 닿는다. 억산을 비롯한 주변 산들이 한눈에 파악된다. 약간 정면이지만 쩍 갈라진 깨진바위의 확인이 가능하다. 우측으로 들머리 쪽인 대비지가 보이고 발아래 골짜기가 방금 산행팀이 올라온 곳이다.

억산 좌측 밀양 쪽에는 수리봉 실혜산 정각산 승학산 용암봉 종남산 덕대산이, 억산 바로 우측 저멀리 비슬산이 확인된다. 대비지 좌측 솟은 산이 개물방산, 그 뒤로 선의산 용각산 대왕산 통례산 학일산, 대비지 우측으로는 호거대, 그 뒤로 도롱굴산 서지산 옹강산 지룡산 서담골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3분쯤 급경사길로 오르면 등심바위(호거대) 갈림길. 좌측은 대비사 쪽으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능선길, 산행팀은 우측으로 오르다 다시 내려선다. 이제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범봉이다.

집채만한 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해 '좌 청도, 우 밀양' 산길을 걸으면 숲에 가려 조망이 하나도 없는 좁다란 공터에 닿는다. 범봉(969m)이다. 이정표와 119 구조 표지목이 나란히 서 있지만 범봉이라 적힌 정상석은 없다. 대신 누군가가 이정표 상에 검은 매직펜으로 '범봉'이라 적어 놓았다.

우측은 상운암계곡 또는 대비골 방향,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4분 뒤 좌측으로 시야가 트인다. 맨 앞 회백색 바위들이 보석처럼 박힌 능선이 지룡산줄기이며 정상은 10시 방향 쪽 봉우리다. 그 아래 북대암이, 산행팀이 선 곳에서 정면에는 사리암이 보인다. 그 사이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옹강산이며, 그 뒤 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룡산 단석산 문복산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내리막길의 종착지는 딱밭재. 전망대에서 10분. 옛날 이 주변에 닥나무가 많아 명명됐다고 전해온다. '글월 문(文)' 자가 들어가는 천문지골이란 이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다.

딱밭재 역시 팔풍재와 마찬가지로 사거리. 직진하면 운문산(2㎞) 우측은 석골사(2.9㎞), 산행팀은 좌측 천문지골을 거쳐 운문사(4.5㎞)로 향한다.

30분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칠고 순한 지그재그 너덜길을 내려오면 비로소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후 산허리길을 돌며 천문지골이 빚어낸 운치있는 풍광을 감상한다. 와류가 흐르는 제법 미끄러운 암반을 지나면 일순간 편하고 너른 길을 만난다. 3분 뒤 계곡과 만난다. 유량도 적절하고 주변 풍광도 빼어나 잠시 쉬어가기에 적합하다. 이 계곡을 지나면 사실상 산책로 수준의 산길. 10분 뒤 운문산 자연생태 조사를 위한 일종의 텐트인 트랩도 지난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계곡과 나란히 걷는다. 여유가 있으면 맘에 드는 계곡의 한 지점에 내려가 쉬어가면 어떠하리. 짧게는 3분, 길게는 9분 간격으로 네 번의 계곡을 지나 150m쯤 걸으면 갈림길. 딱밭재에서 1시간25분 소요. 좌측은 운문사 승가대학 학장인 법계 명성 스님의 처소인 죽림헌 방향, 산행팀은 직진형 우측으로 향한다. 잠시 후 다시 큰골을 건너면 사리암에서 운문사로 이어지는 포장로에 올라서고 여기서 입산통제 초소를 지나면 운문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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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경내와 등심바위 능선에서 잡은 운문사 전경

◆ 떠나기 전에

- 2만5000분의 1 지형도, 범봉 자리에 억산 표기 오류

이번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는 각각 천년고찰 대비사와 운문사. 모두 비구니 사찰이다. 신라 진흥왕 557년 한 선승이 청도 호거산(지금의 호거대)에 들어와 3년 동안 수도를 한 후 절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 스님은 현 운문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산허리 갑(岬)' 자가 들어가는 '오갑사(五岬寺)'를 7년 만에 완성했다. 동쪽의 가슬갑사, 서쪽의 대비갑사, 남쪽의 천문갑사, 북쪽의 소보갑사 그리고 중앙의 대작갑사가 바로 그것. 대작갑사와 대비갑사는 각각 지금의 운문사, 대비사이며 나머지 세 갑사는 폐사돼 찾을 길이 없다.

그 흔한 일주문이나 천왕문조차 없는 대비사는 그야말로 심산유곡 깊은 산골에 위치한 절집. 단청이 모두 벗겨져 고풍스러운 맛이 물씬 풍기는 맞배지붕의 보물 제834호 대웅전이 우선 눈길을 끈다. 이곳에선 깨진바위로 불리는 독특한 형상의 억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종점인 박곡(리) 도로변에 위치한 보물 제203호인 박곡리 석가여래좌상도 챙겨보자. 석굴암과 시기와 양식이 비슷한 이 불상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날머리 운문사는 설명이 필요없는 아름다운 사찰. 노송들의 빼어난 각선미는 언제 봐도 가슴을 뛰게 하고 천년기념물인 500년 된 처진소나무는 언제봐도 정감이 간다. 경내에선 남쪽으로 운문산이 포근하게 다가오고, 북동쪽으로 운문사보다 먼저 창건된 북대암을 품은 지룡산의 암봉이, 북서쪽으로는 호랑이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한 호거대(등심바위)가 손에 잡힌다. 수줍게 총총걸음을 옮기는 비구니들도 정겹다. 불전사물도 놓치지 말자. 법고 목어 운판 범종 순으로 시방세계에 어둠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이다. 불전사물을 두드리는 이가 모두 이승이며, 50여 명의 동료 학인스님들도 예를 갖추고 함께 동참해 눈길을 끈다. 또 한 가지.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행하는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범봉의 자리에 억산이라 표기돼 있고, 억산 자리에는 그냥 깨진바위라고 적혀 있다. 첨언 하나 더. 천문지골 학심이계곡 등 운문사를 끼고 있는 계곡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므로 하산길에 물가로 내려 몸을 씻는 행위는 삼가주시기 바란다.

◆ 교통편

- 운문사에선 사리암 오가는 직행 버스 이용하면 편리

열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부산역에서 청도행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6시45분, 7시55분, 9시10분, 10시30분에 출발한다. 1시간 걸리며 4800원(주말 5000원). 청도역에서 길을 건너 인근에 위치한 청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동곡에서 내린다. 오전 9시20분, 10시10분, 10시50분에 있다. 1시간 걸리며 3500원. 동곡정류장에서 들머리 대비사에 가기 위해선 박곡(리)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오전 9시45분, 11시30분. 1000원.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동곡정류장 입구에 있는 개인택시(054-372-3066)를 이용하면 된다. 9000원.

날머리 운문사에선 부산역에서 사리암을 오가는 직행버스(011-507-8801)를 타면 된다. 오후 4시30분(토요일만 오후 4시) 출발. 7000원. 이 버스를 놓쳤을 경우 청도로 가서 열차를 타야 한다. 청도행 버스는 오후 3시50분, 4시50분, 5시40분, 7시15분(막차). 3500원. 청도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는 오후 1시54분, 5시51분, 6시15분, 6시40분, 7시52분, 9시40분에 있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입력: 2008.08.13 20:27 / 수정: 2008.08.13 오후 8:48:58

ⓒ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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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봉정상과 딱밭재에서 천문지골로 내려서는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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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밭재의 급한 하산길로 지그제그길로 이루어 지고 습한 습지로 관중등 다양한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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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지골을 내려서면 만나는 지계곡 합수점의 암반으로 물이 흘러 내릴 시 주의를 해야하는 구간이며 천문지골의 옥수가 담긴 소가 여럿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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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흑돼지 육질이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다

함양군 마천면에는 일명 지리산 흑돼지라 불리는 똥돼지가 유명하다,
지리산 특유의 기온차에 의해 지리산 흑돼지는 다른 흑돼지에 비해 비계층이 얇고 육질 또한 부드러우며 쫄깃쫄깃 하고 맛 또한 좋아 많은 식도락가들이 지리산에 들러면 일부러 찾아 맛을 보고 간단다.

지리산의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신 흑돼지는 마천면 소재지 두곳에서 식육점을 겸하며 식당을 하고 있다.

월산식육식당(055-962-5025)은 2대째 가업을 이어 현재는 며느리가 전통을 이어 받아 영업을 하고 있어며 경남식육식당(055-962-5037)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집으로 두곳 모두 소문이 자자한 마천 흑돼지 집이다.

건물은 허름하지만 돼지고기의 맛으로 승부를 하기 때문에 밑반찬 또한 부실하다. 하지만 함양이나 지리산에 들러 볼때는 꼭 한번 지리산 흑돼지 맛을 볼 것을 권한다. 토종 흑돼지 1인분 200g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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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 정상에서 삼도봉으로 향해 내려가는 종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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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심원방향으로 본 산그리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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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애서 내려본 구례쪽의 구름들과 노고단으로 올라서는 입구,
아래사진은 노고단대피소 및, 이정표 방향인 우측의로 올라선다.

하늘과 산이 서로 맞 다은 부분을 흔히 마루금이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3대 종주라하여 지리종주, 덕유종주, 설악산 서북주능선을 이야기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긴 마루금 밟기는 지리종주를 말하며, 천왕봉과 노고단을 잇는 25.5km를 지리종주라 부른다. 그 마루금에 실핏줄 같은 등산로가 이어져 있다. 그 마루금에는 오늘도 많은 산꾼들이 지리종주 산행을 즐기며 추억만들기 산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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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마루금에는 음양의 조화가 있다.

솟아오른 것은 양으로 산의 능선이며 움푹 들어간 부분은 음으로 계곡이다, 이들을 연결하는 지리산은 두 개의 산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왕봉과 반야봉이다, 천왕봉에서 흘러내려간 계곡은 3가닥, 우리나라 3대계곡의 하나인 칠선계곡, 그리고 마야계곡, 또하나는 통신골로 뒤의 두계곡은 중산리 계곡에서 서로 만난다.

그 주위에 중봉의 국골, 두류봉의 얼음골, 새봉의 오봉계곡, 중봉의 조개골, 내원사계곡,도장골, 거림계곡, 대성골, 한신계곡, 그리고 반양봉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은 피아골, 뱀사골, 심원계곡,문수리계곡,화엄사계곡,광점골등 수 많은 계곡과 칠선계곡 좌측의 초암능선, 두류봉능선, 문창대능선,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 오봉능선 반야봉의 심마니능선등이 수많은 계곡을 가르며 지리산군을 형성하고 있다. 지리산에 들어서면 지리산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을 실감을 할 수 있다. 그 만큼 지리산의 품은 넓다,

지리종주의 첫발을 흔히 노고단에서 시작을 한다. 성삼재 횡단도로에서 수월하게 산행을 시작 할 수 있어 대다수 사람들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이번 뱀사골산행도 성삼재에서 시작하기로 한다.

산행경로는 성삼재~노고단대피소~노고단고개~노고단~(노고단고개)~돼지평전~임걸령~노루목~반야봉~삼도봉~화개재~간장소~재승대~병풍소~병소~와운교~반선으로 산행시간은 7시간은 족히 걸리는 긴 산행이다.

성삼재는 먼저 구례쪽의 전경이 펼쳐지는 전망대이다 . 발아래 구름이 흔들리며 올라온 높이를 가늠할 수 있다. 주차장을 지나 탐방지원센타에서 본격 산행을 시작한다. 자갈치시장의 복새통도 이곳과 비교할까.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뒤로하고 급히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노고단까지 이어진 임도 길은 중간에 두 번의 지름길이 설치되어 있다. 전자는 목재데크요 후자는 돌계단으로 노고단 대피소 앞까지 바로 올라선다. 대피소 우측 돌계단길에 이정표가 서 있다, 천왕봉 25.9km 반야봉5.9km 노고단고개 360m 돌계단길을 오르면 갑자기 앞이 탁 트이며 전면에 큰 산이 버티고 서 있다.

노고단고개(1437m)로 10분이면 오른다. 우측 노고단은 한때는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여 그 시간에 맞추어 와야 노고단 정상을 오를 수 있는데 지금은 개방을 해 두어 이참에 다시 오르기로 하였다. 발아래 목재덱을 설치하여 야생식물 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우리는 것 같다. 노고단에서 보는 조망은 시원하게 펼쳐진다.

온 바다가 사해로 구름이 덮혀 있고 천왕봉을 위시한 모든 산들을 눈에 넣을 수 있다. 이래서 지리산이구나 생각을 해 본다. 다시 되내려와 노고단고개에서 출발을 한다.

작은 문을 내려서는 길이 지리종주의 출발점이며 오늘 산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한때 자주 찾던 지리산이였지만 최근에 와서는 뜸해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그래도 산길은 예전 그대로 였다. 노고단 허리로 그어 놓은 산길은 습기가 많아 항상 축축하며 땅이 젖어 있다. 중간의 심원계곡 전망대를 잠시 보고 바로 노고단에서 내려서는 능선길에 올라선다.
이지점이 또 왕시루봉으로 빠지는 갈림길인데 지금은 영구 패쇄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지리산의 팔과다리가 자연 휴식을 이유로 잘려나가 있어니 산을 찾는 우리로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좁은 산길의 돼지평전은 많은 멧돼지들의 출몰로 이름 붙여져 있고 다시 돌출된 전망대에서 본 피아골 계곡의 산 그리뫼는 산수화를 보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다. 앞서간 일행을 따라가기 위해서 임걸령(1.2km)으로 발길을 돌린다.,
임걸령은 임씨성을 가진 산적의 본거지였다하며 지금은 각종 규제와 취사야영금지로 인해 예전의 야영하던 그 맛은 반감된 것 같다.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산길은 다시 반야봉으로 오르는 오름길, 된비알의 오름길이 숨 가프게 한다. 20여분이면 한숨 돌리고 다시 10분이면 노루의 목처럼 가날픈 안부와 만난다. 노루목으로 많은 종주자들이 꼭 거쳐가는 길이다.
그리고 한번쯤은 갈등을 느끼는 곳이다. 이정표에는 좌측 반야봉 1.0km, 직진 천왕봉 21.0km. 1kn의 고통을 맛보며 반야봉을 오르는야, 아님 편안하게 반야봉의 허리춤을 잡고 삼도봉으로 직행하는야, 일단 노루목 전망대에 올라 다시금 노고단에서 걸어온 산길과 피아골, 섬진강 넘어 백운산을 보며 결정을 해 본다,

앞 팀을 따라 이왕 온 거 반야봉으로 오르기를, 1km의 짧은 길이지만 300m의 고도차를 맛봐야하는 고통은 감수해야한다, 만나는 갈림길은 반야봉을 오른 후 되돌아와 왼쪽 삼도봉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니 선두팀이 벌써 내려오고 있었다. 달랑 3명, 다른분은 모두 반야봉의 허릿춤을 잡고 삼도봉으로 직행을 한 것 같다. 그래도 반야봉을 두고 갈 수 없어 전망바위 구간을 지나고 번개 조심을 알리는 철계단을 올라서고 나서 산길은 한풀 꺽여 숨을 돌리게 한 후 정상으로 치받아 오른다. 30여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반대편 출입통제인 심마니 능선쪽에서 빠시락 빠시락 하며 나무가 움직인다. 정상에는 혼자, 이거 곰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올라오면서 곰을 만나면 취해야 할 행동요령이 여러개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낡아 식별을 할 수 없었는데 못 보고 온것이 아쉽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땅바닥에 엎드려 숨을 멈추고 죽은 체를 한다, 아니지 요즘 이놈 덜도 디지털 시대라 교육을 받았을 건데. 땅바닥에 죽은체 엎드려 있는 놈은 꽉 밟아 뿌라고, 온갖 상상을 하는 찰라, 사람 머리가 쏙 나온다. 한순간의 놀라움이 반가움으로 변한다. 다시 내려오면서 본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깊이를 알 수 없는 피아골로 빨여 들어 가듯이 왔던길을 되내려 간다,

오를 때 만난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앞 지리종주를 하는 대학생을 추월하여 노루목에서 질러오는 산길과 만난다. 삼도봉에 오르니 누런 동인지 삼각형주 삼면에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라 적혀 있다, 예전에는 이봉우리를 날나리(낫날봉)봉으로 불렸지만 신성한 지리산에 날라리가 왼말이야 하여 새로운 이름찾기를 하였다,

그 후 삼도가 갈린다하여 삼도봉으로 개명을 하였다. 여기서도 직전마을 하산길은 영구패쇄로 닫혀 있다. 이젠 화개재로 내려가는 길 250m의 나무계단을 밟고나면 경남 하동군 화개에서 연동골을 따라 해산물등 소금이 올라오고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쪽에서는 뱀사골을 따라 삼베와 산나물등 임산물이 올라와 지리산 능선에 시장이 형성되어 물물교환을 하였던 곳이다. 직진을 하면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종주길, 뱀사골 계곡의 비경을 탐사할여면 좌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뱀사골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화개재의 안내판은 서 있지만 정작 필요한 뱀사골 하산로의 이정표가 없어니 하루빨리 설치가 필요한 것 같다. 계단길의 급한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면 예전에는 숲속의 보금자리인 뱀사골 대피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탐방지원센타의 작은 건물과 복원을 위한 토사유출을 막기위해 그물이쳐져 있다. 작은 다리에 식수를 위한 파이프가 걸려 있고 지금 부터는 너덜길을 밟고 내려가야 한다. 1km을 내려가면 검푸른 소와 만난다.

소금장수가 소금을 이고 화개재를 넘어 내려오다가 이곳에서 소금가마니를 빠트려 소금이 녹아 소의 물빛이 간장빛과 같아 간장소라 불였다한다 뱀사골의 비경은 지금부터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산길은 넓어 지고 탐승로 같은 분위기이다. 갑자기 협곡이 나타나며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골짜기가 좌측아래에 보인다. 제승대로 1300여년전에 송림사 불자의 애환과 시름을 대신하여 하늘에 제를 올였다는 곳으로 음침한 분위기에 압도 당한다. 제승교를 뒤로 하고

바위 절벽에 폭포가 걸려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소와 만난다. 산길 옆으로 내려서야 볼 수 있는 병풍소는 보는 이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음침한 병풍소를 뒤로하고 소의 모양이 병과 같이 생겼다는 병소를 지나면 산길은 와운교에서 끝을 맺고 다리를 건너 반선으로 향한다. 천년송을 알리는 안내판과 오룡대를 뒤로하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 오늘의 산행 종착점인 반선 뱀사골 탐방지원소가 눈에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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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장수가 소금을 빠트려 물빛이 간장빛이었다는 간장소, 지금은 푸름름에 한기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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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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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소의 물빛은 먹빛으로 등이 오싹할 정도로 음침하다. 실제 사진을 찍기위해 내려가보니 한기가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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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소

병소로 소의 모양이 병과 같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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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에 새로운 안내판과 구 안내판의 비교입니다. 뚜렷하게 식별가능한 새 안내판입니다.

시내버스의 얼굴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도심을 달리는 시내버스가 자기이미지의 모습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이다. 버스 전면 상단에 있는 노선번호와 기점, 종점의 안내문구가 들어 있는 안내판을 교체하는 것 같습니다. 기존안내판은  아크릴판 안에 형광등이 들어가 있어 비가 오거나 형광등 수명이 다되고 먼지가 묻을 시에는 식별하기가 힘이 들었는데 지금 도심을 달리는 안내판은 네온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간에도 칼라 색상이 들어가  뚜렷한 번호와 바뀌는 화면에 큰 글씨가 번갈아 나와 노인분들도 멀리서도  자기가 타야할 번호가 확인되어 이용하기가 편리한 것 같습니다. 버스운송사업체는 지금 고가의 유류난으로 어려운 시기 인 줄압니다. 그래도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시내버스 얼굴을 전면 교체를 하니 고객편의주위에 박수를 보냅니다.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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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안내의 비교와 화면이 바뀌어 번호판이 나오고 길건너편에서 보이는 안내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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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휴게소의 마이산 전망대 관광객들이 들러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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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과 똑 같은 모습으로 만든 조형물 뒤로 실제 마이산과 모습을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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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를 알리는 안내판과 팔각정자안에서 마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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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귀를 쫑긋세아  말의 귀를 닮았다는 마이산은 암마이와 숫마이로 나누어져 두개의 독립봉으로 이우어져 있다

요즘 국내의 고속도로 사정은 사통발달로 뚫여 일일생활권을 넘어 반나절이면 목적지까지 도달을 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을 하고 있어 더욱 편하게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다보면 꼭 한번은 들러보는 곳이 있다. 휴식을 위해 또는 식사를 위해 찾게 되는 휴게소가 음식의 맛을 둘째치고라도 이제는 쉬는 기능을 넘어 최고의 전망대에 않아 오고가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남해고속도로상의 남강휴게소는 주위의 방어산과 남강의 잔잔한 물흐름으로 많은 관광객이 머물고 대진통영고속도로상의 덕유산 휴게소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덕유산은 보이지 않는 먹통 휴게소이며 함양휴게소는 지리산의 고장답게 휴게소 건물 옥상에서 멀리 있는지리산을 산세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아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 휴게소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곳이 생겼다. 최근 개통된 장수~익산간 고속도로로 아직은 찾는이가 없어 한가롭다 못해 지나가는 차량을 보기가 힘들 것 같은 한적한 고속도로상에 진안휴게소가 상하 설치되어 있다.
 진안하면 마이산이 먼저 떠오르는 만큼 그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곳에 마이산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생겨 지나가는 차량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휴게소 들머리입구에 전망대 가는 길과 휴게소 건물 좌측으로 팔각정자에서 보는 마이산과 똑같이 만든 조형물을 번갈아 보며 암마이와 숫마이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또  보이는 그대로 마이산과 일치하도록 만들어 놓아 보는 맛이 그 만큼 좋다. 한번쯤 지나가는 길이면 들러 볼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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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건물 좌측의 팔각전망대에서 본 마이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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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와 마이산


마이산에 대해서....
마이산은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어며 신라때는 서다산, 고려때는 솟아 올랐다하여 용출산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속금산으로 불였다. 조선 태종이 지나다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으로 부르게 되었어며 시멘트로 어겐 것 처럼 타포니 지형을 이루고 있다.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여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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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배의 돛과 같다해서 돛대봉, 여름에는 용의 뿔을 의미하는 용각봉,  가을엔 마이산,겨울에는 붓처럼 보여 문필봉으로도 불리며, 먼  옛날 산신부부가 이곳에서 두 자녀와 함께 살다가 하늘로 되돌아갈 때가 됐다. 남신이 자신들의 승천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되니 밤에 떠나자고 하자 여신은 밤에는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한 아낙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질러 승천에 실패하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바위산을 이루었으며, 이때 화가 난 남신이 여신으로부터 아이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숫마이봉은 작은 암봉 두개를, 암마이봉은 자세를 돌려 않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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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과 제석봉으로 이어지는 종주길

지리산은 국립공원의 1호이다. 한반도 육지에선 최고의 높이를 자랑한다, 그 명승에 걸 맞게 수 많은 계곡과 능선이 지리능선에서 흘러 내린다. 그중에서도 산꾼들이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계곡은 백무동의 한신계곡일 것이다. 장터목에서 흘러 내리는 한신지계곡과 함께두 개의 계곡이 흘러 내려 백무동을 형성하는 한신계곡은 예전에는 많은 무당들이 백무동 골골에 터를 잡고 신내림 기도를 하여 한때는 백명의 무당들이 들어와 신내림을 하였다하여 백무동으로 불리는 비경의 골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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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계곡 최대의 비경인 가네소 폭포. 도승이 마지막 수행을 실패한후 떠난다고 하여 "가네"라고 한후 이름이 붙었다는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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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동에서 세석대피소로 오르는 한신계곡은 많은 소와 폭포를 걸어 두고 있다. 첫나들이,가네소, 오층, 한신폭포등 이름을 달고 있는 폭포 외에 무명의 폭포 들이 즐비하다. 여름철 수량이 풍부하여 지리산 산길 산행에서 최고로 자랑을 한다. 옛매표소를 지나면서 산길은 대로 같은 넓은 길을 형성한다. 야영장에서 하동바위 코스로 갈려지고 산길은 2km 넓은 길을 따라 편안하게 이어 갈 수 있다. 산길은 다시 갈라지는 계곡을 따라 둘로 나뉘는데 왼쪽으로 출입통제를 알리는 지점이 장터목으로 오르는 한신지계곡 오름길이다. 지금은 휴식년제로 출입을 할 수가 없다. 첫나들이 폭포를 지나 여기 부터는 안전 시설인 철다리를 3개 건너고 한신계곡 최대의 선물인 가네소 폭포와 만난다. 등로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협곡 사이로 떨어지는 물기둥이 검푸른 가네소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안내판을 보니 남자는 어쩔 수가 없나 보네요, 먼 옛날 도인이 12년 동안 이곳에서 수도를 한 후 어느날 마지막 과제인 가네소 폭포 양 끝에 줄을 묶고 눈을 가린후 밧줄위를 걸어가는데 지리산 마고할미의 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니 그만 가네소로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가네하였다 하여 가네소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이 소에서 가뭄이 들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 비내림을 기원하였다 한다. 시원함을 가슴에 담고 산길은 계곡을 건너고 돌길을 따라오르고 하면 오련폭포로 일명 오층 폭포로도 불린다. 다시 산길은 빤질빤질 산길을 따라 오르면 우측으로 한신폭포로 가는 갈림길. 등로와 떨어져 있다. 이곳을 지난후 게곡의 폭과 수량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세석대피소 까지 가파른 오르막산길이 이어진다. 한마디로 말해 고행의 산길이다. 백부동에서 출발후 4시간이면 세석마루금에 오른다, 능선에 올라서면 삼거리 갈림길 우측은 영신봉을 거쳐 노고단으로 가는 종주길이고, 좌측은 촛대봉을 거쳐 지리산 최고의 봉우리인 천왕봉으로 가는 길이다. 직진하면 세석대피소를 거쳐 거림 또는 삼신봉, 대성골로 내려가는 중심지로 좌측 촛대봉으로 향한다. 등로 좌우로는 나도 옥잠화 등 화려한 야생화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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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엉켜있는 촛대봉, 멀리서 보면 양초를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뽀쪽하여 촛대봉으로 불리는 지 모를 일이다. 여기서 보는 천왕봉의 웅장함이란, 가히 심장을 누르고 남을 일이다. “하늘은 울어도 지리산은 울리 않는다”는 성현의 말씀이 실감이 가는 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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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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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평전을 올라서면 만나는 갈림길로 우측은 영신봉을 거쳐 노고단 가는 길, 직진하면 대피소를 지나 거림, 삼신봉, 대성골로 하산하고 좌측은 촛대봉을 거쳐 천왕봉가는 길, 촛대봉을 거쳐 천왕봉을 오르는 누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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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일경 합천 가야산의 전경, 돌불꽃 석화성의 웅장한 모습이 장대하다. 왼편으로 해인사의 모습도 확인된다.

합천 매화산 남산제일봉

능선 뒤덮은 기암괴석 천태만상을 수놓다

오묘한 암릉지대 수석 전시장 방불

탁트인 조망· 시원한 계곡 '이름값'

불가선 천불산… 부처님 도량 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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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그 어떤 산과 비교해도 경관 면에서 전혀 뒤질 게 없다는 절승의 남산제일봉. 불가에서는 능선을 뒤덮고 있는 기암괴석이 천 개의 불상과 같다고 해 천불산(千佛山)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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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향해가는 능선상에서 우측으로 돌아보면 석화성 가야산이 우두봉과 칠불봉이 그리고 가야산 공룡능선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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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산인 매화산은 천개의 불상으로 뒤덮여 있는 수석의 전시장을 연상하게 한다. 기기묘묘한 바위군들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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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산 남산 제일봉에서 내려서는 계단길, 그 앞 왼쪽으로 부터 비계산 오두산 우두산 남산제일봉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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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를듯이 솟아 있는 천개중 하나의 불상일까?


경남 합천 거창과 경북 성주에 걸쳐있는 가야산 국립공원에는 '석화성(石火星)' 가야산이라는 명산이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 숨은 명산이 또 하나 있다.

가야산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남산제일봉이 그것이다. 만추의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홍류동 계곡을 가운데 두고 북쪽에 가야산이 있다면 남산제일봉은 남쪽에 위치해 있다.

해서, 혹자들은 남산제일봉을 두고 가야남산이라고도 한다. 가야산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산세를 지니고 있는 탓이다. 남산제일봉은 한마디로 바위산이다. 기암괴석과 날카로운 암봉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으며 온 산을 뒤덮고 있다.

하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설악이나 월악처럼 접근조차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오묘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장흥 천관산이 떠오를 정도로 친근감이 든다.

불가에선 남산제일봉을 천불산(千佛山)이라 일컫는다. 실제로 들머리의 천년고찰 청량사를 알리는 커다란 이정석에는 남산제일봉 대신 '천불산 청량사'라고 음각돼 있다.

송림 사이로 오글오글 솟은 기암괴석이 아마도 천 개의 불상이 능선을 뒤덮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명명된 모양이다.

도선 국사가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운주사를 품은 영구산 계곡과 산등성이에 천불천탑을 세우려 했듯이 청량사의 이름없는 한 노승이 도선을 그리면서 남산제일봉의 수많은 기암괴석을 보고 부처님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흔히 산꾼들은 매화산과 남산제일봉을 혼용하고 있다.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매화가 피어있는 형상인 매화산(954m)은 남산제일봉(1010m)에서 남동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산. 남산제일봉은 매화산 자락의 하나의 봉우리로 보면 무난하다. 지리산의 적지 않은 봉우리 중 천왕봉이 으뜸이듯 매화산에선 남산제일봉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매화산 남산제일봉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합당할 듯 싶다.

산행은 국립공원 가야산 청량동 매표소~청량사 갈림길~청량사~주능선~잇단 철계단~남산제일봉~돼지골~계곡합수점~임도~해인관광호텔 주차장~치인리집단시설지구(버스정류장) 순. 순수 걷는 시간은 3시간 안팎. 화려한 암릉미, 막힘없는 조망, 시원한 계곡수로 크게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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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산 입구인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타와 청량사 입구

매표소 바로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포장로를 따라 걷는다. 경사가 제법 만만찮다. 길 좌우에 숲을 이룬 노송의 자태가 수려하고 아름답다.

400m쯤 오르면 청량사 갈림길. 갈래길 사이에 음수대와 '남산제일봉 1.9㎞'라 적힌 이정표가 나란히 서 있다. 등산로는 좌측이지만 사찰쪽에서도 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절 구경을 위해 직진한다.

고운 최치원이 즐겨 찾았다는 신라 천년고찰 청량사의 첫 인상은 부산스럽지 않고 단정하다. 설영루를 통과해 대웅전으로 향한다. 각각 보물인 석등과 석탑, 그리고 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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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좌상을 둘러보고 '천불산 등산로'라 적힌 이정표를 따라 간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본격 등산로로 진입한다.

주능선까지는 숲이 울창하고 오름길이 연속인 그저 평범한 산이다. 돌계단과 침목계단을 연이어 오른다. 은근히 힘이 든다.

35분쯤 뒤 주능선. '민초정 0.3㎞, 남산제일봉 0.8㎞'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으로 향한다. 3분 뒤 전망대. 비로소 '돌불꽃' 가야산과 마주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 왼쪽으로 두리봉, 오른쪽 시계방향으로 저 멀리 팔공산 비슬산 화왕산 관룡산 자굴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발 아래는 매표소 바로 아래의 황산저수지와 그 뒤로 88고속도로가 확인된다. 무엇보다 천 개나 된다는 크고 작은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자태가 처음으로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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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제일봉 정상에서 본 가야산. 왼쪽에는 해인사가 보인다.

기암괴석군(群)에 발걸음이 멈춘다. 돌고래, 다정스레 손잡은 연인, 나들이 나온 가족 등 사람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천태만상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모여있다. 잠시 올라보자. 정면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매화산, 왼쪽 발아래로는 청량사 경내가 한 눈에 펼쳐진다.

이때부터 발걸음을 옮길수록 기이하고 아기자기한, 때로는 집채만한 기암괴석의 잇단 행렬이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치 키재기 경연을 하듯 첩첩이 쌓여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봉우리가 절승이다.

잠시 숲길을 지나면 다시 시야가 트이며 가야산이 더 가까이 보인다. 눈 앞에는 철계단이 아이들의 장남감 소방차 사다리처럼 기암괴석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본격 암릉지대. 70도 가량 되어 보이는 철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암봉 오른쪽으로 에돌아 가기도 한다. 때론 직접 타고 오르기도 하고 바위 틈새로 기어오르기도 한다. 중간중간에 급경사 침목계단과 돌계단도 이어진다.

이렇게 암봉을 힘겹게 넘자 정면에 또 하나의 암봉이 기다린다. 정상이다. 역시 철계단부터 시작되지만 중간중간에 예기치 못한 산길을 만난다. 집채만한 암벽 옆을 따라가기도 하고 편안한 숲도 잠시나마 지난다. 마침내 정상. 기암괴석군에서 50분.

정상석은 없다. 대여섯 평 되는 이곳 정상에도 기암괴석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정상석이 왜소해 보일 것을 우려한 배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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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청량사 대웅전과 앞의 삼층석탑 그리고 석등. 둘 다 보물이다.

우선 사위에 막힘없는 조망감이 절정을 이룬다. 가야산은 물론이고 해인사 홍제암도 확인된다. 발 아래 움푹 파인 곳이 홍류동 계곡이다. 해인사 반대방향으론 정상에 철탑이 서 있는 오도산과 두무산 비계산 별유산 의상봉 작은가야산 남산깃대봉 단지봉 좌일곡령, 그 뒤로 덕유산 남덕유 금원 기백 황석 거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비슬산쪽엔 대구 시가지도 보인다.

하산은 반대편 철계단으로 내려선다. 주변의 기암괴석들이 마치 활짝 핀 꽃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다. 명산의 반열에 올려도 전혀 손색이 없다. 철계단이 끝나는 지점은 갈림길. 단지봉을 거쳐 고운암 또는 별유산 의상봉으로 가는 능선종주길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법정 탐방로로 막혀 있다. 때문에 오른쪽 나무계단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내려선다.

이전과 달리 부드러운 숲길이다. 혹 길이 날머리인 해인사(치인리) 집단시설지구와 반대방향이라고 오해하기 쉬우나 길이 크게 시계방향으로 휘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는 없다.

샘터를 지나면서 물길과 만난다. 돼지골이다. 정상에서 30분 소요.

호랑버들나무 앞에서 계곡을 건너 10여 분 계곡과 나란히 달린다. 계곡수 탓인지 바람이 더욱 더 시원하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계곡 합수점. 치밭골과 만난다. 합수지점에 조그만 동굴이 눈길을 끈다. 유량이 늘어 제법 너른 소와 낮은 폭포도 보인다.

등로는 임도 수준의 산책로로 변한다. 사실상 산행 끝. 5분 뒤 해인관광호텔 주차장을 지나고, 여기서 집단시설지구 버스 정류장까지는 9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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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기전에

- '민초정'은 김동영씨 아호따온 샘터

당초 산행팀은 남산제일봉에 올라 단지봉을 거쳐 청량사와 함께 최치원이 말년에 머물렀다는 고운암으로 하산할 계획이었으나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비법정 탐방로로 묶여 있어 시원한 계곡이 일품인 돼지골로 하산했다. 때문에 산행시간이 예정보다 단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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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정과 관련, 한마디. 주능선에 오르면 '민초정 0.3㎞'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처음엔 민초정을 크고 작은 기암괴석이 몰려 있는 지점(사진)으로 파악했다. 언젠가 화순 운주사를 찾았을 때 수많은 불상 중 볕을 쬐러 나온 가족불상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우리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묘사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말이다.

정확한 위치와 유래 등을 알아보기 위해 산행 후 가야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문의했다. 유감스럽게도 정확히 아는 직원은 없었고, 대신 퇴직한 직원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사연은 이랬다. 민초는 'YS의 왼팔'이었던 고 김동영의 호였다. 10여 년 전 거창이 지역구인 그는 남산제일봉에 오른 후 당시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하면서 조그만 샘터를 손 봐 자신의 호인 민초를 붙여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민초정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민초정은 그와 함께 하늘나라로 가버렸는지 지금은 없었다. 퇴직한 그 분이 설명을 친절하게 했지만 산행팀은 하산할 때 샘터를 하나 봤을 뿐 오름길에선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민초정(民草쬱)이 민초정(民草亭)으로 변할 뻔한 위기는 다행히 넘겼다.

마지막으로 오가는 산꾼들의 목을 축여주기 위한 고 김동영 씨의 산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뒤늦게나마 근교산 지면을 통해 꼭 전하고 싶다.

# 교통편

- 대구서 해인사행 버스 이용 권장

부산서 합천행 버스는 많지만 합천서 해인사로 가는 버스는 오전 10시40분 한 차례밖에 없다. 때문에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간 후 거기서 수시로 다니는 해인사행 버스를 타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부산역에서 열차편을 이용, 동대구역에서 내린 후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부터미널이 가까운 성당못역에서 내린다. 서부터미널에서 해인사행 버스는 오전 9시25분, 9시40분 등 20~4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요금은 4500원이다. 하차는 해인사 직전 청량사 입구인 구원(리)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여기서 들머리 청량동 매표소까지는 걸어서 30분 걸린다.

해인사 집단시설지구 버스정류장에서 대구 서부터미널행 버스는 20~3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오후 7시5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 화원TG~화원 방향으로 나와 다시 U턴, 다시 고속도로 광주 마산 방면~굴다리 통과~화원TG~88고속도로 광주 성산~해인사IC~해인사 가야산 방향 우회전~청량사 남산제일봉 방향~근민교 지나~가야산 국립공원 청량동 매표소 옆 주차장. 날머리 집단시설지구 버스정류장에서 차가 있는 주차장까지는 택시(055-932-7262)를 이용하면 된다.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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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골과 치밭골의 합수점인 동굴과 돼지골의 시원한 계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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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골의 편안한 하산길과 계곡옆의 샘터에서 시원하게 목을 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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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www.yahoe.co.kr

입력: 2006.07.06 18:29 / 수정: 2007.02.27 오후 5: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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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구리봉~해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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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얼음골, 밀양 얼음골 못잖아요

열대야가 본격 시작된 여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쉴 새 없이 흐르는 땀방울. 찬물로 샤워를 해도 잠시뿐.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의 연속이다. 이쯤 되면 머릿속엔 찬바람이 쌩쌩 불어대는 한겨울이 그리워진다. 에어컨 바람 말고 대자연속의 시원한 찬바람이 부는 곳이 어디 없을까. 한여름속 겨울, 이한치열(以寒治熱)이 실제로 존재하는 그런 곳 말이다.

부울경 장삼이사들이야 대번 밀양 얼음골을 떠올릴 것이다. 산내면 남명리 천황산 기슭 해발 700m쯤에 위치한 신비의 골짜기 밀양 얼음골은 복더위에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더운 김이 솟는다. 얼음골 입구에서 불과 1.2㎞ 지점에는 뭣이라도 삼킬 듯한 호박소와 오천평반석까지 위치해 있어 얼음골은 이래저래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경남 밀양에 얼음골이 있다면 경북 청송에도 얼음골이 있다. 주당들이야 '청송 얼음골 막걸리'를 본거지라며 익히 알고 있겠지만 일반인들에겐 사실 새로운 사실일 게다. 밀양 얼음골이 시례빙곡(詩禮氷谷)이라는 정식 이름을 갖고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돼 있지만 청송 얼음골은 그 흔한 지방기념물로도 지정돼 있지 않아 어쩌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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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봉에서 하산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송 얼음골 전경. 해발 62m의 거대한 인공폭포와 태극방향을 이루는 얼음골계곡 물길이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왼쪽 뒤 저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영덕 팔각산이다.

청송군 부동면 내룡리에 위치한 청송 얼음골은 해월봉 2부 능선 돌무더기 사이에서 찬바람과 함께 얼음이 맺히는 곳이다.

밀양 얼음골이 주차장에서 도보로 25분 정도 걸리고 정작 얼음이 어는 지점은 햇볕이 내리쬐는 데다 울타리를 쳐서 접근을 막고 있는 반면 청송 얼음골은 주차장에서 폭 20m의 계곡을 징검다리로 건너면 곧바로 만난다. 이곳에는 약수터 조성을 위해 굴을 만들어 찬바람이 쌩쌩 부는 가운데 약수를 뜰 수 있어 한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 굴 위쪽에도 찬바람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한여름 피서지로 애용하고 있다.

청송 얼음골에서 930번 지방도를 타고 영덕과의 경계를 지나 5㎞쯤 떨어진 지점에는 옥계계곡이 있다. 영덕군 달산면 옥계리에 위치한 옥계계곡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괴석 아래로 이름 그대로 옥같이 맑고 투명한 계류가 흐르는 절승지. 청송 얼음골 물과 포항 죽장면 하옥리계곡수가 합류하는 이곳은 특히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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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말라리

유명하다. 조선 광해군 때 선비 손성을이 이처럼 빼어난 절경에 반해 옥계계곡에서 경관이 으뜸인 자리에 침수정이란 정자를 세워 '옥계37경'을 명명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온다.

이번 주 산행지는 청송 구리봉(595m)~해월봉(610m). 앞서 뜬금없이 옥계계곡과 청송 얼음골을 장황하게 늘어 놓은 이유는 들머리가 옥계계곡 인근이고 날머리가 청송 얼음골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두 봉우리는 인근에 우뚝 솟은 국립공원 주왕산과 팔각산 동대산 바데산의 명성에 가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이 점이 되레 때묻지 않은 청정 산길임을 뒷받침하는 보증수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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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영덕군 달산면 도전리 옥계유원지 팔각산장 주차장~옥계유원지 매표소(선경옥계 표지석)~송이채취 안내판~전망대~송이채취 움막~안부 사거리~김녕 김씨묘~541봉~잣나무숲~임도~경주 이씨묘~원구리 갈림길~구리봉~해월봉~돌탑봉~얼음골 전망대~목책~돌다리~얼음골 약수터. 걷는 시간만 3시간20분 정도 걸린다. 들머리와 날머리는 계곡이지만 산길은 샘터 하나 없는 전형적 육산이다.

팔각산장 주차장에서 나와 도로를 바로 건너 포장로를 따라 간다. 입구 좌측엔 옥계유원지 매표소, 우측은 '선경옥계(仙境玉溪)'라 적힌 대형 표지석이 서 있다. 잠시 뒤돌아보자. 상어이빨처럼 솟은 봉우리가 팔각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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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m쯤 뒤 좌측 계곡 쪽으로 내려선다. 계곡과 나란히 50m 정도 걷다 물을 건너 잡풀숲을 뚫으려고 했지만 불가능해 좌측 병풍바위 쪽으로 붙어 나아간다. 살짝 오르면 비닐하우스를 지나고 곧 이어 좌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본격 들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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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묵었지만 의외로 길이 있다. 8분 뒤 갈림길. 얇은 판자가 걸려 있는 우측으로 향한다. 간벌 후 뒷정리를 하지 않아 나뭇가지가 길을 막고 있다. 뚫고 오르면 무덤과 만난다. 무덤 좌측으로 오른다. 역시 나뭇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지만 60m쯤 올라서면 나아진다. 숲사이로 우측 바데산, 좌측으로 팔각산 능선이 보인다.

차츰 경사가 심해진다. 무덤에서 8분 뒤 부처손이 널려 있는 전망대에 서면 들머리 팔각산장 주차장과 팔각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20m쯤 올라서면 이곳이 송이가 나는 산임을 알리는 얇은 판자가 걸려 있다. 이후부터 10분 정도는 살인적 경사의 된비알. 낙엽까지 수북해 체력 소모가 심하다. 우측 전망대가 하나 보이지만 앞서 본 풍경과 큰 차이는 없다.

이어지는 된비알. 가마솥 더위에 거의 쓰러질 정도로 힘들다. 6분 뒤 송이 채취 움막을 지나면서 경사는 누그러지고 솔가리길이 기다린다. 영덕에서 청송으로 가는 길이다.

잠시 후 안부 사거리. 좌측은 영덕군 달산면 도전리 옥녀암 방향, 우측은 옥계유원지 쪽, 산행팀은 직진한다. 역시 오름길의 연속이다. 20분 뒤 김녕 김씨묘를 지나면서 잠시 오르막은 주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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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얼음골 약수터. 여름철엔 온종일 물을 뜨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얼음굴 옆으로 더위를 피해풍혈을 찾아 않아 있는 관광객들 좌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햇볕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청정 산길이 한동안 이어지다 잠시 내려갔다 정면에 보이는 봉우리로 올라서면 541봉에 닿는다. 김녕 김씨묘에서 19분. 이때부터 그간 안 보이던 안내 리본이 보이기 시작한다. 541봉은 청송 영덕 포항의 경계 지점이다.

직진하며 내려선다. 이 길은 '좌 포항, 우 청송'으로 이어지는 시군 경계길. 그러니까 이 길 좌측으로 포항 하옥리계곡, 우측으로 청송 얼음골계곡이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즉,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는 고개가 된다는 산경표의 주 이론이 딱 들어맞는 셈이다.

곧 좌측으로 잣나무숲이 펼쳐진다. 이후 산길이 우로 휘더니 시원한 바람이 부는 안부를 지나면 이내 임도에 내려선다. 우측 청송군 부동면 진흥사, 좌측은 포항시 죽장면 하옥리 방향. 잠시 땀을 식히며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감상한 후 임도를 건너 바로 산으로 올라선다. 경주 이씨묘를 지나며 오름길이 이어지고 이후 우측으로 잠시 평편한 길이 지속되다 3분쯤 오르면 무명봉. 돌과 나뭇가지가 널려 있는 거친 길로 내려서다 급경사길로 치고오르면 갈림길. 우측은 원구리로 가는 탈출로. 체력이 부치면 이 길로 하산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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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 부동면 진흥사에서 포항시 죽장면 하옥리로 넘는 고개 임도에서 쉬고 있는 취재팀

이어지는 완경사 오르막. 도중 1시 방향으로 저 멀리 해월봉이 보인다. 이후 산길은 능선으로 올라가지 않고 8부 능선쯤에서 우측으로 돈다. 운동장 트랙으로 비유하자면 안쪽으로 도는 셈이다. 길은 반듯하지만 잡풀이 웃자라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도중 길 왼쪽으로 시야가 트여 주변 산의 조망이 가능하다. 맨 왼쪽부터 숲사이로 일부만 보이지만 팔각산과 그 우측으로 바데산 동대산 내연산 삼지봉이 확인되고, 동대산 좌우로 경방골과 마실골의 위치가 가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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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팔각산 바데산 동대산 과 경방골 마실골이 확인된다.

다시 직진한다. 완만한 오름길이다. 좌측으로 잣나무가 또 보인다.서서히 경사가 가팔라져 지그재그 오름길로 변한다. 5분이면 구리봉 에 올라선다. 숲에 가려 조망은 없다. 정상석도 없고 '구리봉'이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한가운데에는 밀양 박씨묘가 자리잡고 있다.

날머리인 얼음골까지는 2㎞. 이제 해월봉을 향한다. 두 번의 내리락오르락을 반복하면 해월봉. 6분쯤 걸린다. 역시 조망은 없다. 이정표 옆에는 나무를 베어 만든 조그만 벤치가 여러 개 있어 쉬어갈 수 있다. 벤치 좌측에 보이는 '등산로 아님'이라 적힌 팻말이 보인다. 사실은 등산로다. 이 길로 가면 낙동정맥 통점령과 만난다. 이 능선 우측 계곡 건너 보이는 산줄기인 팔각산도 양설령을 거쳐 주산재로 이어져 결국 낙동정맥과 합치므로 결국 두 능선이 일정 거리를 두고 낙동정맥과 만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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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하산은 벤치 우측으로 내려선다. 6분 뒤 만나는 돌탑봉에선 왼쪽으로 내려선다.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나 싶지만 능선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돌아나간다. 돌탑봉에서 8분 뒤 만나는 전망대에선 발아래 거대한 폭포와 태극 방향을 이루는 얼음골계곡 물길이 눈길을 끈다. 비록 인공폭포지만 보기만 해도 더위가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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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막바지. 수차례 밧줄에 의지해 내려서면 숲사이로 얼음골 유원지가 보인다. 돌길이 끝나면 목책을 따라 동선이 안내된다. 도중 얼음골의 원리가 숨어 있는 대형 너덜을 본 후 돌다리를 건너면 '해월봉 등산로 입구 1.5㎞'라 적힌 안내판을 지난다. 얼음골 약수터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또 다른 돌다리를 건너면 바로 만난다.

산행 도중 바라본 풍경. 들머리 팔각산장 주차장과 저 멀리 팔각산이 보인다.

# 떠나기 전에

- 1억3000만 원 들인 높이 62m 얼음골 인공폭포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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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얼음골은 밀양 얼음골에 비해 지명도는 한참 떨어지지만 경북 내륙지방에선 꽤 유명한 여름철 관광지이다. 청송은 울타리를 쳐서 접근을 막고 있는 밀양 얼음골과 달리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얼음물이 나오는 지점에 굴을 조성해 찬바람을 돌 틈 사이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약수터의 유량도 많아 여름철이면 항상 물을 뜨려는 사람들로 북적된다.

얼음골의 명물 폭포는 청송군이 지난 1999년 밀레니엄 기념사업으로 1억3000여만 원을 들여 천연 암벽에 계곡수를 끌어올려 만든 인공폭포. 처음보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귀띔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높이 62m로 국내 최대 규모인 이곳에서는 매년 1월이면 폭 100m의 얼음벽을 조성해 청송 주왕산 빙벽대회를 개최한다.

폭포에서 약 150m쯤 영덕방향으로 가면 곡각지점에 인공폭포만큼은 못 돼도 제법 큰 규모의 절벽이 하나 보인다. 원구리다. 이번 산행 중 탈출로의 날머리이기도 한 이곳은 옛날 원님이 말을 타고 순시차 절벽을 넘다가 말과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져 명명됐다고 전해온다. 즉 원님이 떨어진 굴이라는 의미란다.

구리봉과 해월봉은 왜 이렇게 불리게 됐을까.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풀이했다. 구리봉은 산아래 굴이 있는 봉우리라, 해월봉은 정상에 오르면 달(月)과 등불을 밝힌 고깃배가 떠다니는 동해바다를 잘 볼 수 있다고 해서 명명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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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편

- 갈 땐 영덕에서 들어가고, 올 땐 청송에서 부산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울산 포항 경주 7번~포항 위덕대학교~포항 안강 7번~포항 울진 7번~울진 영덕 7번~위덕대학교 지나~울진 영덕~삼사해상공원 지나~팔각산 청송 달산 914번 지방도 좌회전(대금기사식당)~달산면 안내판~부남(팔각산 옥계유원지 주왕산) 좌회전~옥계2교 지나자마자 팔각산 등산로 입구 주차장(팔각산장 간판) 순.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영덕행 시외버스(포항 경유)는 오전 7시5분, 7시52분, 9시41분에 있다. 3시간 걸리며 1만1600원. 영덕터미널에서 옥계유원지행 버스는 오전 9시50분, 11시40분에 있다. 30여 분 걸리며 3260원. 날머리 청송 얼음골 휴게소 앞에선 청송터미널행 버스를 탄다. 오후 3시30분, 6시30분. 청송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2시30분, 6시에 출발한다. 3시간 걸리며 1만6100원. 또 얼음골 휴게소에서 오후 3시20분 영덕과 청송의 경계까지 가는 버스가 한 차례 있다. 여기서 영덕터미널행 버스가 연계된다. 영덕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3시5분, 5시32분, 7시5분(막차)에 있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취재산행 뒷이야기
청송군과 영덕군의 군경계에 세워진 옥계계곡 표지석, 군내버스가 오후 한번 여기서 서로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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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열대야가 기성을 부리는 현 시점에 산행지 선택이란 매우 어렵다. 보통 산은 필 수 이고 거기에다  옥구슬 굴러가는 청청의 계곡수가 거침없이 흐르는 곳에 폭포라도 하나 걸려 있어면 그 보다 더 좋은 여름 취재 산행지는 없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밀양 얼음골과 같은 원리로 얼음이 송글송글 맺히는 청송 얼음골을 선택하였다. 주위에 얼음골계곡이 흘러 옥계로 빠져나가고 포항의 죽장면 하옥리에서 내려오는 계곡수가 서로 만나는 합수지점에   침수정이란 정자를 세워 여생을 보낸 손성을, 그 주위에 옥계37경의 비경이 숨어 있어니 여름 취재산행지로 안성맞춤일 것이다. 옥계는 취재팀과 근교산꾼에게는 낮설지 않은 곳이다. 취재팀이 소개한 동대~바데,포항 내연산 삼지봉~동대산의 마실골~덕골,삿갓봉~향로봉, 팔각산등 많은 산행지를 계곡과 함께 소개를 하였다. 이번 여름에도 휴가철 또는 청송얼음골, 62m의 인공폭포의 장관과 함께 무더위를 날여 보내길 바랍니다. 능선상에는 식수를 구할 수 없습니다. 여름철에는 충분한 식수를 준비하며, 초반에는 긴바지 긴팔옷을 입어야 합니다. 교통편은 자가이용시 영덕과 청송의 군 경계선을 지나 출발지점인 옥계유원지까지 가기는 불편합니다. 지나가는 차를 이용하거나 오후 3시20분 청송과 영덕군의 경계지점까지 가는 버스를 이용하여 1.3km을 걸어가는 수고를 하여아 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시간과 힘을 허비하여도 주변의 경관에 비하면 수지맞는 장사입니다. 자, 얼음골로 함 떠나 봅시다.
 입력: 2008.07.24 16:50 / 수정: 2008.07.2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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