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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상주여행)특이한 모습으로 상주 여행에서 꼭 보고 와야 할 양진당 고택. 상주 양진당 여행


방가방가

경북 상주에서

 검간 조정선생의 고택 

양진당(보물 제1568호)을 여행했습니다. 





상주 양진당 주소:경북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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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양진당에서 느낀점은 

의적 홍길동의 산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ㅎㅎ

그 이유는 양진당을 들어서면 왜 !! 

필자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양진당을 평범한 양반가의 고택이 아닌 

왜! 산채로 생각했는지 함 보겠습니다.




상주 양진당은 검간 조정(1555~1636) 선생이 

1626년 처가가 있던 안동 천천동에서 

가옥을 해체하여 낙동강에 뗏목을 띄워 옮겨 지은 집으로

 '天啓 6年 丙寅 12月 28日 丙辰 上籃薰 趙基遠'의 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건립 당시의 양진당 규모는 

99칸의 대저택이었다고 합니다. ㅎㅎ



양진당의 종도리에서 발견된 

'崇禎後 180年 丁卯 11月 18日 乙酉 上宅主 趙述謙'의 기록에서 

1807년(순조 7)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66년의 대홍수로 낙동강이 범람하면서 

전면의 대문채와 사랑채 등이 유실되어 

‘ㄷ’자형태의 안채만 남았습니다. 



일부 건물이 유실되었지만 

양진당은 1975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4년에 와서 유실된 대문채와 사랑채를 복원하여 

현재의 ‘ㅁ’자 구조가 되었습니다.  



대문칸으로 들어서면서 

안채의 규모에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ㅎㅎ



지면에 바로 집을 올린 일반 고택과 다르게 

꼭 누각를 보는 듯 

땅에서 띄어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른쪽에 툇

마루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세워져 있습니다. ㅎㅎ




부엌이 있는 왼쪽에도 

툇마루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놓였습니다.



나무 계단에서 

툇마루를 통해 

안방으로 들어가게끔 된 

구조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너른 안채에 

일반 고택에는 대청이 1칸이나 2칸 쯤 있는데 

모두 방문이 달린 방만 있었습니다.



안방에 달린 부엌의 모습입니다. 

가마솥이 달려 있습니다. ㅎㅎ



부엌에 붙은 창살을 통해 본 

부엌의 모습입니다. 

풍양조씨 연수원으로도 사용해서 그런지 

식당에서 사용하는 스테인리스스틸 싱크대가 

여러개 보였습니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나무 계단을 올라 

툇마루를 밟아 보았습니다.

오래된 고택이라 그런지 마루판이 뒤틀려

 삐걱삐걱하며 소리가 엄청나게 났습니다.. ㅎㅎ



일본 궁에는 자인 닌자의 급습을 막기위해 

마루를 소리나게 설치한다고 하는데 

마루를 밟는게 꼭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ㅎㅎ




방문의 창살이 

전통적인 문양이었습니다. 

방문을 열어보려고 

문앞에서 헛기침을 하며 

방문을 살짝 열어 보았습니다.



제가 어릴적 시골에 살던 

그런 방안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ㅎㅎ

 낮은 천장하며 창살 붙은 창문하며...

 


양진당 집의 구조는 

방문을 다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방과 방을 연결하는 방문이 달려 있고 

안쪽으로도 창고로 사용했던 곳인지 

작은 방이 달렸는데 

방이 정말 많았습니다.

 


다시 툇마루로 나와 

대문채를 바라 보았습니다.



안채와 날개채로 꺾이는 부분에 

어릴적 예배당에서 본 

쇠종이 붙어 있습니다. ㅎㅎ

연수원의 원생들을 통솔하는데 

사용하나 봅니다. 


사랑채와 붙은 대문채는 

새로 복원해서 그런지 

안채에 비해 목재 등이 깨끗했습니다.



오른쪽 끝의 툇마루에서 본 

양진당 안채 모습입니다. 

중간 중간 건물을 고쳐 그런지 

부재로 사용한 나무의 색이 다릅니다.




양진당의 동쪽편에서 

서쪽편을 본 모습입니다.



마루입니다. ㅎㅎ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을 보는 듯 

세월의 무게가 마루에서 그대로 느껴집니다. 



툇마루에 달린 난간은 

아무 장식도 없이 

정갈하며 깨끗합니다. 



부엌 천장에 붙은 작은 방문입니다. 

문에 창호지가 붙은게 

창고가 아니고 방으로 사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최대한 공간 활용을 해서 

지어진 집으로 보입니다.

 


다시 툇마루를 내려와 

실내화를 벗고 

건물 외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진당 의 특징은 

주춧돌 위에 올린 

나무 기둥들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주춧돌에서 툇마루 연결 부위까지는

 4각의 기둥으로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에는 둥근 기둥으로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

또한 양진당은 굴뚝을 아주 낮게 만들었으며 

밥하는 연기가 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대문채를 나왔습니다. 

상주 양진당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인증

우수 전통 한옥 문화체험 숙박시설 인증패가 걸렸습니다. 



담장 왼쪽으로 돌아 보았습니다. 

양진당의 안채와 대문채를 연결하는 

서쪽 날개채의 뒷 모습입니다. 

부엌이 있어서 그런지 장독대도 보입니다.



외곽에서 본 

양진당의 모습입니다.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는 

쪽 날개채의 뒷모습입니다.

조금 높은 곳에서 

담장 안을 찍어 보았습니다.





다시 대문채로 돌아왔습니다.



대문채 오른쪽의 복원한 사랑채이며 

2칸의 대청이 있습니다.

대문채와 사랑채는 안채와 다르게 

높게 석축을 쌓지 않았습니다.ㅎㅎ



안채에 석축을 높게 쌓아 

집을 지은 것은 습기와 인근의 장천과 

낙동강의 홍수에 대비한 것으로 

필자는 생각해 봅니다.  ㅎㅎ

상주 여행을 한다면 꼭 보고와야 할 고택입니다.


양진당은 검간 조정 선생의 고택입니다.  

본관은 풍양, 자는 안중, 호는 검간, 

부친은 광천, 모친은 홍윤최의 딸이며 

약봉 김극일의 사위입니다.

한강 정구와 학봉 김성일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습니다. 

1624년 이괄의 난에는 공주까지 인조를 호가하였습니다.

벼슬이 봉상시정에 이르렀으며 

이조참판에 추증되어 

상주의 장천서원과 의성 속수서원에 봉향되었습니다. 

저서로는 '검진문집'과 '조정 임진란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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