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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산청여행)시천면 남명조식선생의 산천재와 남명매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 다’라며 노래 하였던 조선 중기 최고의 선비 남명 조식 선생. 그는 말년에 천왕봉이 바라 보이는 이곳에 산천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산천재의 의미는 ‘주역의 대 축괘로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란다. 




 



☞(경남여행/산청여행)시천면 남명조식선생의 산천재와 남명매. 천왕봉 닮고자...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내려 두 계곡이 합쳐지는 이곳 덕산은 그 당시 처럼 현재에도 한적하고 평화롭고 덕스러운 곳이다. 천왕봉에서 울리는 기개를 받으며 천왕봉처럼 삶을 살려고 하신 남명 조식선생. 61세 때 남명선생은 거쳐를 이곳으로 옮겨 와 돌아가실 때 까지 이곳 산천재에서 실천사상을 강조하였다. 






☞(경남여행/산청여행)시천면 남명조식선생의 산천재와 남명매.현재의 산천재 단청으로 의미가 바래.


그 영향으로 그 의 사후 20년 뒤 임진란이 발발하여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에 처할 때 의병장 곽재우등 그의 제자 50여명은 나라를 구하는데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다. 언젠가 지금의 산천재를 찾아 간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산천재가 빛바랜 활동 사진속의 올 곧은 선비를 보는 것 같았는데 최근의 산천제 모습을 보니 단청을 입혀 놓아 분바른 기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화려한 단청으로 인해 선생의 강직한 이미지가 퇴색되는게 아닌지 개인적으로 가슴이 아프다. 꼭 이리 단청을 올려야 했는지 의구심도 든다. 남명선생도 이런 모습의 산천재에서 후학을 양성하였을까.




☞(경남여행/산청여행)시천면 남명조식선생의 산천재와 남명매. 남명선생이 손수 심었다는 남명매.


그 산천재 앞에는 남명선생이 손수 심었다는 매화나무가 한그루 있다. 남명매로 불리며 단속사지의 정당매와 남사마을의 원정매를 일컬어 산청 3매로 부른다. 이곳 산천재 앞 왼편에 심어진 남명매는 남명선생이 손수 이곳에 심어 그의 기품과 강직한 마음을 사군자의 매화에 비유하였는 것 같다. 수령은 450년이 넘어 남명선생이 심었다하여 남명매로 부른다.





☞(경남여행/산청여행)시천면 남명조식선생의 산천재와 남명매. 산천재 교통편


이곳 산천재는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사리마을에 위치를 한다. 진주에서 산청의 중산리와 대원사행 버스를 이용하면 손쉽게 갈 수 있다. 사리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버스가 간 방향으로 100m 쯤 가면 남명기념관 맞은편에 산천재가 있다. 배차간격 약 30분.
승용차는 네비에 산천재를 치면 된다.



남명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 수령 450년



단청을 입히기의 산천재 모습. 이 모습이 더 멋스럽게 보이는 것이 올곧은 선비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남명선생문집책판 서고 건물













이곳에서 선생은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천왕봉을 닮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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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산청여행)시천면 덕천서원. 남명조식선생의 덕천서원


덕천서원은 남명 조식선생이 돌아가진 4년후인 1576년 선조 9년에 제자들의 후원에 의해 건립되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산림처사로 존경을 받던 남명선생의 학풍을 기리며 최영경 하항 하응도의 주도로 진주목사 구변과 경상감사 윤근수 후원으로 건립되었다. 남명선생이 이곳에서 초당을 짓고 세월을 보내고 거닐던 곳으로 하응도가 터를 기증 하였다.





 

 

 

☞(경남여행/산청여행)시천면 덕천서원. 남명조식선생의 덕천서원 대원군에 의해 훼철


1974년 2월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었고 1609년 광해군때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증 전란으로 인해  전소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중수를 거듭해 오다 대원군의 서원 쳘폐령에 의헤 훼철 되었다. 그 뒤 지역 유림에 의해 1930년에 다시 복원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남여행/산청여행)시천면 덕천서원. 남명조식선생 성리학 주창


 남명선생은 1501년인 연산군때 현재 합천의 삼가에서 출생을 하였다. 당시 퇴계이황과 쌍벽을 이루며 성리학을 주창하여 남명학파의 태두가 되었다. 그는 모든 벼슬을 버리고 이곳 시천면 덕산에서 제자를 가르키며 후진 양성에 힘을 쏟다가 1572년 선조5년에 7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덕천서원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반기는 것이 은행나무이다. 400년이 넘었다는데 하늘로 뻗은 가지가 남명선생의 올곧은 성정을 보는 것 같다. 홍살문을 지나면 솟을 지붕에 맞배지붕을 한 시정문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유생들을 가르키며 강당으로 사용하였던 경의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앞으로 좌우편에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제자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베롱나무가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경남여행/산청여행)시천면 덕천서원. 남명조식선생의 덕천서원


덕천서원의 현판이 걸린 경의당은 덕천서원의 중심건물로 정면5칸 측면 2칸의 팔직지붕이다. 중간에 대청을 3칸 넣었고 좌우로 1칸씩의 작은 방을 2개 넣었다. 방앞으로 툇마루가 달려 있다.

 

 

 

 

 

사당인 숭덕사로 덕천서원 뒷쪽에 있다. 정면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중간에 남명선생 위폐를 모셨고 오른쪽에 제자 최응경의 위폐를 모셔 놓았다.

 

 

 

 

 

남명선생은 이곳 덕산에서 살면서 천왕봉이 되려고 하였던 것 같다. 산천재를 천왕봉이 보이는 곳에 짓고 천왕봉을 노래하였다.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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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놋점골의 당산나무 쉼터. 둘레꾼에게는 아주 쉬기 좋은 곳이다.

☞지리산둘레길 9코스 덕산에서 위태 지리산둘레길 걷기

 

지리산은 흔히 민족의 영산이니 성모신이 있는 산으로 어머니의 산으로 불린다. 이산의 둘레를 따라 올해 5월달에 지리산 둘레길이 완공되었다. 총 연장 274km22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그중 9코스인 산청군 시천면 원리 덕산에서 하동군 옥종면의 위태마을을 잇는 둘레길을 걸어 보았다. 보통 9코스는 사리마을의 산천제에서 시작을 하는데 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덕산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하여 출발하였다.

 



덕산 버스 정류장과 원리교 다리. 지리산 둘레길은 원리교를 건너 가게된다.

원리교에서 바라본 삼장천, 내원사와 대원사 방향이다.

 

덕산은 남명조식선생이 이곳에 산천재를 짓고 지리산을 바라보며 후학 양성을 하여 남명학파의 산실로 불리는 곳이다. 조식선생의 덕천 서원이 있었다하여 원리, 원촌으로 불렸고  덕산(德山)마을은 산천재가 있는 사리이다. 덕산 버스 정류장에서 타고 온 버스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좌우로 작은 상점들이 즐비한데 이곳은 지리산 천왕봉의 들머리답게 그래도 시천면이 활기찬 모습을 하고 있다. 많은 등산객과 여름철 피서객으로 더욱 붐비는 요즘이다. 우측에 농협 건물이 나오면 곧 원리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원리(院里)삼거리로 오른쪽은 대원사 방향이고 지리산국립공원, 중산리, 하동 방향으로 직진한다. 덕산중학교앞에서 왼쪽 천평교를 건넌다.

 

 덕천강 강둑을 따라 위태마을로 걸어간다. 뒤로 시천면 면소재지가 보인다.

 

 

 덕천강 건너 사리 남명조식선생의 산천재와 뒤 마근담골짜기

 

 시천면 면소재지와 왼쪽구곡산과 오른쪽뒤로 지리산 연봉들이 펼쳐진다.

문수암과 지리산둘레길 안내판이 다리 난간에 붙어 있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왼쪽으로 틀면 덕천강 강둑이다. 둘레길 안내판이 서 있다. 중태재까지 약7.0 km를 표시하고 있다. 흙길인 강둑길을 걸어면 천평마을에서 내려오는 콘크리트 포장길과 만난다. 마을 앞에 덕천강이 흐르고 넓은 들을 끼고 있는 마을이라하여 평광이라 부르며 큰 정자나무 덕택에 당산촌으로 불리다 그 후 천평(川坪)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덕천강 건너 산천재가 보이고 도로를 따라간다 강바람이 불어 오지만 그래도 이 무더위는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덕산터미널에서 30분이면 갈림길로 왼쪽 도로 교각방향이다. 중산리 하동으로 가는 새로 생긴 도로 다리 교각에는 피서객들이 벌써 진을 치고 더위를 달래고 있다.

 

 

교각을 지나면 만나는 약수터와 중태마을에 붙은 둘레길 지도 

 

 

 

교각 기둥에 중태마을이라 큼지막하게 글씨가 써져 있다. 교각을 지나 100m면 약수터인 옥수(玉水)가 기다린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샘물이 산의 정기를 느낄 수 있다. 내리쬐는 태양열도 지리산은 어쩌지 못하는지 숨이 턱턱 막힌다. 중태마을 이정표가 보이고 둘레길은 가든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산과 산 사이의 도로를 따라간다. 흡사 끝이 보이는 않는 블렉 홀로 빨려들어가는 길이다. 25분이면 노거수가 있는 중태(中台)마을이다. 마을 유래는 이 마을의 형상이 여인이 누운 모양이 중()자가 되고 세 개의 별인 당일당상용의 정격노리등과 비룡산이 좌의정, 학무산이 우의정이란데서 삼태성 태()가 되어 중태(中台)가 되었다. 또한 이곳에는 지리산둘레길 숲길에서 세운 중태 안내소가 설치되어 있다. 이 곳일대는 농산물과 임산물등 농민들이 피땀흘린 농산물도 보호하자는 의미로 공정여행을 위한 실천의 일환으로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중태마을의 쉼터와 지리산 둘레길 숲길에서 세운 중태안내소. 이곳에서 모두 실명으로 기록을 하여야 한다

 

 

중태리의 유점마을 풍경으로 예전에 이 깊은 골짜기에서 놋그릇을 만들었다 한다.

놋점마을 전경

 

 둘레길을 걷는 꾼들은 누구나 기록을 하고 떠나야 한다. 이곳에서 지리산 둘레길 전구간 지도와 덕산~위태등 소구간의 지도도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인근에 약간의 음료도 구입이 가능하다. 위태마을을 지나면 좁은 골짜기 안으로 감나무 농원이 나온다. 이 곳 감은 시천면의 특산물이다. 덕산 곶감으로 당도가 높아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우수 품질이다. 작은 다리를 건너 20분이면 불당골로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삼화사 방향이고 왼쪽길은 '천왕봉 죽염'방향이다. 한굽이 모퉁이를 돌면 오른쪽 비탈길로 '천왕봉 죽염'가는 길로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이 유점마을이다. 이곳에서 옛날에 유기(놋그릇)을 만들었다 한다. 골짜기가 워낙 깊어 하늘만 열려 있다. 입구는 좁으며 안은 넓은 표주박형으로 둘레길은 중태마을의 놋점골로 향해 오른다.  

 

 놋점마을을 벗어나면 운치 있는 대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갈치재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놋점 마을 전경

 

 

 

놋점마을을 지나 중태고개를 바라본 모습과 중태고개인 갈치재 마루

 

둘레길은 작은 다리를 건너 놋점골 마을에 도착을 한다. 드문 드문 몇채의 가옥이 흩어져 있다. 무더운 날씨지만 마을을 통과하는 오르막이 보통 힘이 든 것이 아니다. 예수재림교회 건물을 지나면 작은 돌로 지어진 주택에서 둘레길은 왼쪽으로 돌아나간다. 곧이어 대나무 숲이 50m 정도 이어지고 나니 놋점골의 당산나무와 만난다. 큰 나무 네그루가 둘레꾼에게 그늘을 제공한다. 이 얼마나 고마운 그늘인가.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고요와 적막감만 남는 둘레길 여정에서 배낭을 내려 놓고 큰 대자로 뻗어 본다. 오랜만에 이리 누워도 보는 것 같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며 걷는 둘레길 여행...누구에게나 추천을 해 보고 싶다.

 

 갈치재를 넘어 하동 옥종면 위태마을로 내려서면 만나는 대나무 숲

 

 

다시 배낭을 메고 출발한다 옥종 위태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저 중태고개만 넘으면 하동군 옥종 땅이다. 사랑의 길 잇기 표지석을 지나니 길 옆으로 잣나무가 심어져 있다. 시멘트 포장길을 벗어나 오늘 오랜만에 밟아 보는 흙길이다. 다시 흙길의 임도길은 오른쪽으로 올라가고 둘레길은 왼쪽 돌계단으로 연결된다. 위태마을등 이 일대 부락민들이 덕산장에 오기 위해서 넘나들었던 옛길이다. 위태 갈치재 이정표를 뒤로하고 오르니 홍송의 모습들이 예사롭지 않다. 불당골 입구에서 35분이면 중태고개인 갈치재에 올라선다. 중태에선 중태고개라 부르고 위태마을에선 갈치재라 부른다. 사거리 안부로 오른쪽은 주산을 거쳐 지리산영신봉으로 이어지고 왼쪽은 두방산, 비룡산으로 능선이 이어진다. 둘레길은 직진하여 내려간다.

 

 

 위태마을로 내려서면 만나는 작은 소류지로 쉼터를 조성하였다.

 

 

소담스러운 옛길이 운치 있게 이어진다. 곧 대나무 숲이 이어지는데 이마의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 그때 들리는 댓잎의 사각 그리는 소리에 마음속에 세욕을 하나 내려 놓는다. 마른 계곡을 지나 둘레길은 다시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난다. 여기서 이마의 땀을 씻고 나니 작은 저수지가 나타난다. 그 옆으로 둘레길 이정표와 안내판 그리고 쉴 수 있도록 벤치가 조성 되어 있다. 이제 위태마을은 지척이다. 넓게 조성된 경운기 길을 따라가면 한가로운 농촌의 여름 풍경을 볼 수 있다. 모내기를 끝낸 벼 들은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는데 인간인 나는 그 햇볕에 녹초가 되어 진이 다 빠지니 말이다. 걷다보면 둘레길 이정표가 애매한 것이 나오는데 이쪽길인지 저쪽길인지 세심한 이정표 위치 선정이 아쉽다. 고개에서 25분이면 위태마을에 도착을 하는데 “T"자형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가면 위태마을 버스 정류장이다. 이곳에서 9코스가 마무리 된다.

 

위태마을에 내려서면 만나는 둘레길 조감도

 

 

 

 ☞(지리산 둘레길 교통편)

부산에서 진주행은 20~30분 간격으로 운행을 하고 진주터미널에서 덕산행 버스는 중산리와 대원사 방향 버스가 모두 덕산을 거쳐 가기 때문에 25분마다 1대씩 운행을 한다. 첫차6:35. 막차 21:35. 30분 소요 요금 3,800원

위태 상촌에서 진주행은 오후 18:50분 1대뿐이다. 옥종면 택시:055-882-8094, 덕산택시:055-972-6662. 진주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

☞ (지리산둘레길9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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