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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하면 제일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 등대가 있는 신선바위와 망부석 일원일 것이다.
부산지역 명승지 일번지인 태종대는 신라시대인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여기 태종대에 들러 활쏘기를 하였다는 곳으로 이곳은 현재 활쏘기를 하는 태종무열왕은 찾을 수 가 없지만 바닷길을 안전하게 유도하는 등대 불빛이 활을 대신하고 있다.



태종대의 등대는 흔히 태종대 등대로 알고 있지만 영도등대라 부른다.
정식면칭은 영도항로표지관리소이다. 영도등대는 1906년 12월에 국내에서 10번째 설치 되어 100년을 넘긴 등대로 부산에 있는 유인등대인 가덕도 등대, 오륙도 등대보다도 규모면에서는 최고를 자랑한다. 2004년에는 영도등대가 새롭게 태어났다,

총 45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영도등대를 개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하였다.
등대는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한 뱃길을 밝혀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이곳을 지키는 파수꾼인 것이다. 등대의 불빛은 50만촉광의 빛을 18초 간격으로 3번의 흰 빛을 내보낸다. 모두 4명이 근무하는 이곳은 근무환경이 여타 등대보다는 괜찮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맑은날에는 대마도등 주변의 조망이 탁월하다.

현재 영도등대는 무료로 개방을 하였다 등대탑이 전망대로 개방을 하여 누구나 쉽게 올라가 볼 수 가 있으며 갤러리및 자연사 박물관도 꾸며져 있어 알차게 하루를 즐길수 있다.












등대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길

등대 전망대에서 본 모습









자연사 박물관








찾아가는 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포동 6번출구를 나와 8번,30번, 88번을 이용하면 되고 부산역방면 9번 출구에서 88번 101번을 이용하면 태종대까지 갈 수가 있다.
이용시간은 오전10시~오후5시까지이며 모두 무료로 이용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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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불원은 옛합판 왕국 동명목재 고강석진 회장께서 사재를 털어 창건을 하여 부산시에 헌납을 하였다 합니다.
1977년 5월22일 개원하여 처음으로 불법을 펼쳐진 날이라 합니다. 사실 동명불원에 가 보면 우리네 절집같은 푸근한
마음이 들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왜 일까요.
지금까지 생각하고 왔는 우리 사찰의 건물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동남아의 영향을 받아 올린 건물이라 용마루가 길게 뻗어 나와 있으며 외관 또한 화려하게 지어졌습니다. 건물의 규모는 엄청 큰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스님들이 있는 절집의 분위기 보다는 어느 사원에 들어선 것 같은 분위기는 나만의 생각일까. 



먼저 일주문과 만나게 됩니다.

사찰을 들어서는 이 건물은 용당으로 넘어가는 도로위에 지어져 모든 차들이 이 밑으로 통과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건물을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동명불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그 위에 전각을 올려 범종각이 조성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모든 번뇌에서 구재해 준다는 범종은 무게가 27톤으로 경주 에밀레종보다 6톤이나 더 무겁다하며 국내에서는 최대의 종이라하네요.


부산시 남구 용당동 비룡산 동명불원은 동남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전체적으로 건물들이 용마루가 뻗어 나간 형태로 지어 졌다. 대웅전을 본전으로 부속건물로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관음전,극락전,나한전의 당우가 있다.





사찰을 들어서기 위해서는 일주문을 지나 좌측으로 틀면 천왕문 격인 사천왕상을 통과해야 한다. 불국정토를 지키고 불법을 수호한다는 사천왕상은 악귀들을 밟고 서 있으며 사천왕문의 설계는 입상작으로 결정되어 지어졌다 한다.



대웅전

안의 내부에는 석가세존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미륵보살을 우측에는 제화갈라보사릉 3본을 모섰다. 법당의 높이는 16m로 가운데는 기둥을 세우지 않아 전체적으로 공간의 활용과 시원한 공간배치를 할 수 있도록 하였고 양쪽 벽에는 비천상과 천장의 중앙에는 4마리의 용머리로 꾸며 놓았다. 큰 대웅전에 걸맞게 목조개금불상은 국내 현존하는 불상중에서는 가장 큰 것이다.




대웅전 우측의 관음전입니다. 들어오는 입구 건물의 종각 반대편에 있는 건물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곳으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삼존불 즉 중앙의 아미타불과 좌우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보시는 곳이다.



화려하게 꾸며진 대웅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화려하고 큰 것 이외에는 감응이 전달 되지 않는 건물입니다.그리고 모든 건축물이 목재로 지어진 것이 아니고 시멘트로 올린것 같습니다. 자연의 조화가 아쉬운 마음입니다


 

 

 

 

 


 

 



불교에서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인 극락전읩니다.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극락보전, 무량수전,무량전, 보광영전, 아미타전이라고도 합니다.


 
산신각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본 동명불원입니다. 왼쪽 건물이 대웅전이며 덕망탑과 부덕탑도 보이는 군요. 전면에 보이는 건물이 관음전입니다. 건물의 형태는 'ㅁ'자로 지어져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주차공간으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앞으로는 두 개의 석탑이 서 있는데 좌측의 탑은 효자효부를 기리는 뜻에서 덕망탑이라 하고 우측의 탑은 부덕탑으로 젊은 선남선녀가 불법에 귀의하여 덕망과 부덕을 잘 닦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탑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처음 보는 탑의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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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남구 동명오거리에서 시작하는 신선대~이기대 갈맷길은 부산을 대표하는 해변의 산책코스이다. 하루 짬을 내어 들러 보면 부산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할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오륙도와 해운대 신시가지 그리고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태종대와 영도, 북항의 모습에 부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먼저 동명오거리에서 동명대학교를 올라가는 도로를 올라서자.

동명불원과 만난다. 비룡산 동명불원, 콘크리트로 지은 동명불원은 합판왕국 동명목재강석진회장이 사재를 털어 창건한 사찰로 너무 규모만 키운 것 같은 느낌이다. 동명불원 앞에서 산길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둘레길을 걸을수 있다. 해송이 둘러쳐진 산길에는 사유지로 동명학원의 재단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여럿 서 있다. 바위를 이룬 암반의 전망대와 만나지만 조망은 신통찮다. 이내 봉오리산 정상에 올라선다.

보이는 것은 신선대 부두와 북항의모습등이 화려한 채색을 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볼수 있는 봉오리산은 보오지산으로 용당의 주산이다. 용당을 들어서는 대문역활을 하는 산으로 이 산 아래를 대문녘이라 부르고 있다. 옛날에 이산에서 ‘봉화를 지피는 산’. ‘봉화지기가 있는산’이라 하여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다. 일제시때때 까지는 정상에 불을 피운 시설이 남아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으며 정상아래 작은 동굴에서 봉수군이 머물럿다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엿볼 수 있다.

다시 산책길을 따라가면 해경송신소 앞 삼거리 갈림길과 만난다. 직진을 하면 유선정 체육공원과 신선대길을 만난다. 봉우리에 올라서면 운동시설과 사각정자가 나오며 왼쪽은 천주교묘지를 거쳐 오륙도 앞 해맞이 공원으로 바로 가고 신선대는 직진을 한다. 화장실 이정표를 보고 내려가면 신선대와 봉오리산을 갈라 놓은 도로 직전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된다. 도로를 가로질러 가면 신선대로 이어진다.

매점 우측인 차단시설 뒤로 들어서면 산책길이다. 또 갈림길과 만나면 직진의 계단길을 오른다. 좌측길은 신선대에서 다시 나오는 길로 남겨 둔다. 바로 올라서는 봉우리가 신선대 정상이지 싶지만 정상은 직진하여 건너편에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이다. 신선대 갈림길을 건너 올라서면 정상, 태종대와 영도 북항의 모습이 바닷바람과 함께 시원하게 밀려든다. 발아래 신선대의 콘테이너가 쉴새 없이 움직인다.

신선대는 용당동 왼쪽 해안의 절벽과 정상을 일컫는데 이곳 주변의 산세는 못을 둘러싼 용의 모습과 같다하여 용당이라 부르며 비룡산의 산이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신라말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무제등에 신선의 발자국과 타고온 백마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다. 다시 산불초소 뒤로 내려서면 기념비가 서 있다.

1797년 10월 윌리엄 브로우턴 함장과 승무원들이 ‘프로비던스’호의 부속선을 타고 이곳 용당포에서 주민들을 만나것을 기념하여 그의 상륙 200주년에 맞추어 그가 처음으로 올라 부산을 관측하였던 이곳에다 기념비를 세웠다 한다. 다시 매점까지 내려가는 길은 너른 임도길을 따라가면 된다. 신선대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애국지사 정몽석묘소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을 따라가면 된다. 경남하동 출생으로 1919년 3월 진주장날 독립만세를 주도 하였고 독립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한다.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됨. 매점이 있는 도로에서 우측으로 오륙도 선착장을 따라가면 된다.

sk뷰 아파트 좌측으로 들어서면 오륙도가 한눈에 바라뵈는 이곳은 해맞이공원으로 부른다. 쉼터와 각종 꽃들이 화려한 군무를 자랑한다. 밀물과 썰물에 의해 다섯 개에서 여섯 개로 보인다는 오륙도를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이기대 해안길을 걸어보자. 포진지위 갈림길, 직진은 순환도로, 농바위는 우측길이다. 700m, 흙길을 밟으며 부부기 다정히 손을 잡고 걷는 이길, 용호중대 밑 이정표를 지나면 농바위가 보이며 바닷가의 해안 선을 따라간다. 안전시설물도 잘 되어 있으며 느림의 미학을 느껴 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해녀들의 연락수단으로 이용하였다는 농바위를 뒤로 하면 본격적인 계단과 인공의 시설물을 많이 만난다.

러나 그 고생도 힘들지 않으며 파도 소리에 취해가면 어느새 치마바위 이정표와 만난다. 복잡한 해안 구조에 갈맷길을 내어 놓아 언제 걸어도 좋은 것 간다. 동해안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이 이곳 오륙도 출발지로 지금 해파랑길의 일부분을 걷고 있는 것이다. 동성말 2.8km 안내판을 뒤로하고 이어지는 바닷풍경과 해운대의 고층 건물들이 마천루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다. 영화 해운대 촬영지 안내판을 보고나면 동성말은 지척이다. 중간에 거북모양으로 만들어진 해녀막사와 만나는데 현재에도 10여명의 해녀들이 이곳에 자맥질을 한다고 되어 있다. 구름다리를 지나면 동성말 전망대로 갈맷길도 끝이 난다. .

























용당의 이기대는 어떤 연유로 부르게 되었을까.

조선시대 동래 지역 좌수영의 역사와 지리를 소상하게 기록한 책인 동래영지에도 이기대는 나와 있다. 좌수영에서 남쪽 15리에 이기대가 있으며 두기생의 무덤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하며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어 이기대의 이름에 관한 정확한 이야기를 알 수 없지만 수영출신의 향토사학자였던 고최한복씨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외군이 수영성을 함락하고 난뒤 기뻐서 축하연을 배풀었는데 수영의 두 기생이 연회에 참석을 하였고 술에 취한 왜장을 끓어 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었다하며 그후 두 기생의 무덤이 이곳에 있어 그리 부르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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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해안으로 둘러져 있는 도시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해안길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바닷가로 나갈 수 있다.
영도의 절영해안산책로, 송도해안길인 볼레길등 수많은 해안의 길을 가지고 있는 복 받은 도시이다.
이곳 이기대 해안길인 부산의 갈맷길은 해벽에 솟은 특이한 바위가 있다.

농바위가 그곳으로 흔히 농바위하면 장롱만한 바위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그 해석이 틀린다.
바닷가의 등대 역활도 하는 이 바위는 제주도 성산포에서 건너온 해녀들의
연락수단으로 부르게 되었다는데 그 이유가 재미 있다.
남천동에 거주하던 해녀들은 당시로서는 농바위에 물질간다는 등의 연락수단으로 아마 불런것 같다.
농은 보통 장롱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버들채나 싸리로 엮어서
함처럼 만들어 종이를 바른 궤를 포개어 놓은 모습이라 한다.
경상도말로 네모난 당시기 모양을 의미하는 것 같다.

농바위의 모양이 그 당시기를 여러개 얹어 놓은 모양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남구청에서 발행한 ‘남구의 민속과 문화’에 보면은 이 농바위를
부처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항해하는 배들의 무사 귀환을
비는 듯에서 돌부처상 바위라 부른다한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어부들은 무사히 조업을 마치고 만선을 꿈꾸며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농바위는 공깃돌 같은 바위들의 포개어 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위로는 작은 바위 두개가 포개어져 있고 그 밑으로
큰 받침대 역활을 하는 바위위에 서로 어긋나게 포개어져 있는 바위가 절묘하게 모습을 보인다 .
보는 사람들이 모두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저바위 입으로 후~~하고 불면 떨어지겠다 하며 연신 불안하게 생각을 한다.
그리고 보면 이곳은 한해에도 여러개의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인데도
아직도 굳굳하게 지키는 것을 보니 자연의 조화앞에 감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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