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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관아

밀양시 내일동인 아북산 자락인 밀양시장 맞은편에는 조선시대의 밀양관아 터이다.

1895년 고종32년에는 이 곳이 밀양군청으로 사용이 되다가 1927년 삼문동으로 밀양군청이 옮겨가면서 밀양읍사무소, 밀양시청, 내일동 사무소로 변천을 하면서 사용을 하게 되었다. 2010년 국권회복 차원에서 밀양관아가 복원을 하였다.

조선시대 밀양관아를 복원하기 위해 밀양관아터를 2008년부터 발굴을 하게 되었다. 밀주구지에 따르면 밀양읍성이 축성될 당시에 함께 세워졌는데 100여칸의 웅장한 건물로 축성이 되었다 한다. 본래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인 선조25년 즉1592년에 모두 불타버린 것을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32년인 1599년에 밀양부사인 이영이 영남루 경내에서 집무를 보다가 1611년인 광해군 3년에 와서 밀양부사 원유남에 의해 현재자리에 밀양관아를 세웠다.

중건후 300년동안 관청 건물로 사용이 되었는데 조선 후기에 와 동헌, 정청, 매죽당, 북별실, 내삼문, 연훈당, 전월당, 신당등의 건물이 있었다 하나 현재에는 정확한 규모와 세워진 위치를 알 수가 없어 내삼문, 동헌, 매죽당, 북별실이 복원되어 있다.

지방의 수령이 공무를 보던 관아의 중심은 동헌으로 근민헌(近民軒)으로 불렀는데 목민관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었다.‘백성을 친근히 하되 낮추어는 보지 않는다’. 사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큰 건물과 마주 한다. 그 중간에 집무를 담당하던 부사의 모습이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동헌에 앉아 백성의 마음을 읽는 목민관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든든하다.

내삼문 계단을 올라서기 전 좌측편으로 19기의 비석이 자리를 하고 있다. 이 비석들은 조선시대 밀양 부사와 밀양을 관할하던 관찰사의 행적에 관한 기록들이 소상히 적혀 있는 유허비로 밀양 목민관의 논공행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동헌 우측으로 담장을 둘러 중문을 달아 관아와 분리를 한 곳은 매죽당으로 관아의 별실이다. 이 건물은 부사의 비서가 사무를 보던 곳이며 밀양관아의 자재들이 공부를 하던 곳으로 이용을 하였다 한다.

좌측의 관리동 뒤로는 누각건물이 들어 서 있다 . 조선시대 대표적인 건축양식으로 ‘ㄱ’자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북별실로 정확한 용도를 알 수가 없다. 다만 별실이란 이름에 의해 공무는 동헌에서 보았지만 업무 이외의 일들을 보던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부산역에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열차로 밀양역까지 간다. 무궁화호 첫 차는 오전5시10분에 있고 20~4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 앞에서 영남루를 지나 밀양시장 앞에 가는 시내버스는 수시로 있다. 1, 1-2, 5, 6번 등 다양하다. 10분 소요.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에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긴늪사거리에서 직진, 밀산교를 건넌 후 표지판을 따라 영남루 옆으로 가면 된다.


내삼문의 모습으로 포졸 두명이 관아를 지키고 있다.

밀양 부사및 관찰사들의 행적을 소상하게 기록한 19기의 유허비


동헌의 모습으로 현판에는 목민관이 마음에 새겨야 할 '근민헌'





관아의 자재들이 공부를 하던 장소 도는 부사의 비서가 업무를 보던것으로 관아와 분리를 해 놓았다.




부사의 별업으로 업무는 동헌에서 보지만 그 이외의 일들을 본 것으로 추정을 하는 북별실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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