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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여행/창녕가볼만한곳)화왕산 화왕산성. 화왕산은 현재 억새 앓이 중. 임진왜란 홍의장군 곽재우와 의병들의 넋이 피빛인 억새가 되었다는 화왕산성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 정상부에는 둘레 2.6km에 달하는 화왕산성이 있습니다. 화왕산성은 정확하게 언제쯤 쌓았는지 알 수 없지만 대략 5~6세기로 추정을 하며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 시대까지 산성의 가치로써 그 효용성이 아주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화왕산성을 기술한 가장 오래된 기록을 보면 ‘태종실록’입니다. 기록에는 태종 10년 2월에 화왕산성과 경상도와 전라도의 산성을 고쳐지었다고 남아 있어 당시에도 화왕산성의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왕산성 남문 

그러나 성종 때에 이르는 200여 년의 계속된 평화로 화왕산성은 그 기능을 잃어 폐성이 되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에 남아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화왕산성은 창녕은 물론이며 현풍, 영산까지 포함하는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으며 홍의장군 곽재우가 화왕산성을 근거지로 의병활동을 하면서 무너진 산성을 고쳐지었습니다


 

 

 

화왕산성을 거점으로 곽재우의병장은 왜군이 진주를 거쳐 전라도 방면으로 진출하려던 계획을 차단하고 동시에 경상도로 들어오는 왜군까지 화왕산성으로 봉쇄할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그 후에도 여러 번 중수하여 지금까지도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화왕산성은 화왕산의 급격한 지세와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다 보니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했습니다. 또한, 위치에 따라 축성방법을 달리했다는 점도 이채롭습니다. 성내의 구조를 보면 동서남북으로 모두 성문이 있었으며 현재 남문과 동문만 복원되었습니다. 또한, 용지로 불리는 연못이 3곳 있었고 샘터도 각각 9개소가 있었다 합니다.


 

 화왕산성 동문

 

현재에는 연못 한곳을 복원했는데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도심지 분수대같이 복원하여 그저 허울뿐인 모습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차라리 복원하지 말고 그대로 두었다면 주변과 더욱 잘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복원한 연못은 창녕조씨 득성 설화지입니다.


 

 

1760년대에 만들어진 ‘여지도서’ 창녕조와 1832년 ‘경상도읍지’ 창녕조에, 1895년 ‘영남읍지’ 창녕조에 기록되었으며 창녕조씨 득성지에다 득성비를 세운이는 1897년 당시 경상관찰사 조시영이였습니다.


 

 

창녕조씨 득성 설화를 보면 신라 진평왕 때에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피부병을 얻어 고심하던 차에 화왕산 정상에 용지라 부르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서 목욕하면 피부병에 효음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향은 그 소문을 듣고 창녕화왕산 정상의 연못에서 목욕하다 그만 용의 아들과 사귀게 되었고 그사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이의 겨드랑이에 조(曺)자가 있어 성을 조 씨라 하고 계룡이라 하였습니다. 창녕조씨득성비는 높이가 2.5m. 너비가 1.6m의 자연석에 ‘창녕조씨 득성지지(昌寧曺氏得姓之地)’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용지로 불리는 3곳의 연못과 득성비는 도지정 기념물 제246호로 2003년 4월에 지정하였고 화왕산성은 1963년 1월에 사적 제6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창녕조씨 득성 설화를 보면 신라 진평왕 때에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피부병을 얻어 고심하던 차에 화왕산 정상에 용지라 부르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서 목욕하면 피부병에 효음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향은 그 소문을 듣고 창녕화왕산 정상의 연못에서 목욕하다 그만 용의 아들과 사귀게 되었고 그사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이의 겨드랑이에 조(曺)자가 있어 성을 조 씨라 하고 계룡이라 하였습니다.

 

 

창녕 화왕산성 주소:경남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산 322

 창녕 화왕산성 전화:055-530-8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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