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행/밀양삼랑진여행)삼랑진 작원관, 임진왜란때의 항전지 작원관을 여행하다.
부산에서 한양으로 오르는 길을 영남대로라 부릅니다. 한양에 이르는 영남대로에는 두개의 관문이 있으니 밀양의 작원관과 문경의 유명한 주흘관으로 문경새재길을 말합니다. 오늘 포스팅은 밀양의 작원관으로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 101번지에 낙동강을 끼고 양산과 밀양의 경계지점에 있습니다.
작원관의 역할은 관원의 숙소이며 출입자와 화물 등을 검문하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남해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는 기능을 하였고 작원진에서 낙동강을 통해 오르내리는 화물과 사람을 검문하던 곳입니다.
물금에서 낙동강을 끼고 굽이굽이 돌아 삼랑진에 내려서기 전에 안태마을에서 왼쪽으로 낙동강을 바라보며 현재의 복원된 작원관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작원관은 현재의 자리보다 조금 더 양산쪽으로 내려가 있었다합니다.
밀양의 작원관에 대해 알아보면 밀양시가 3억원 이상을 들여 한남문과 누각인 공운루를 1년7개월만에 현재의 모습으로 1995년 완공하였다합니다. 작원관 옆 산비탈의 양지 바른 곳에 임진왜란때 장렬히 산화한 호국영령의 위령탑도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원동에서 삼랑진으로 신불암고개를 넘어가는 험준한 산세로 차량들도 숨이 차는지 갤 갤 그리며 힘들어 합니다. 그 당시에는 날짐승도 겨우 넘는다 할 정도로 바위도 많고 험한 곳으로 영남대로길은 낙동강을 따라 이곳 작원관지를 지나갑니다. 이 길을 험하다는 뜻인 작원잔도라 불렀습니다. 길이 너무 험하다 보니 한양으로 가던 관원들이 쉬어가던 원이 생기며 작원이라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때인 1592년 임진년 4월 왜인들이 동래성을 함락하고 물밀듯이 영남대로를 따라 작원관으로 향했다합니다. 소서행장의 휘하 마쯔우리가 지휘하는 왜군은 작원관을 공격하였고 이에 우리 조선군은 수 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밀양부사였던 박진과 그의 부하 이대수, 김효우 그리고 민관이 힘을 합해 최후까지 분전을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300여명이 목숨을 잃고 패한 곳입니다.
지금도 묵묵히 낙동강이 흐르는 것 처럼 역사도 따라 흘러 갑니다. 400년전의 임진왜란이 요즘 일본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다시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후손에게는 그런 참담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작원관의 위령탑을 보며 마음을 새기는 계기가 되어서면 합니다. 자녀와 함께 봄에 이 길을 찾아가 보길 권합니다. 안태호와 천태호를 잇는 벚꽃길과 천태사등 너무 좋은 야외 나들이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