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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주논개의 약사
1574년 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출생
부친 주달문과 어머니 밀양박씨의 외동딸로 태어남
집안은 대대로 훈장집으로 주위의 존경을 받았서며 논개는 4갑술(갑술년,갑술월,갑술일,갑술시)의 사주를 안고 태어났다 한다. 그래서 주달문은 딸아이의 사주가 예사롭지 않아 여자애지만 장차 크게 될 인물임을  알았다한다.
논개란? 딸이 술(戌)시에 낳았으니까 개을 낳은 것과 같고, 거꾸로 읽어면 "놓은 개"즉 논개가 되므로 역신도 시샘을 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란다.
1578년 5세때 부친 주달문 사망 후 모녀는 숙부 주달무집에 의탁함.
숙부는 어린 조카 논개를 김풍현집에 민며느리로 보낸다고 약조한후 금품을 받고 달아남.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어린 논개를 데리고 친정으로 피신을 하지만 김풍헌의 제소로 장수관아로 잡혀와
재판을 받게된다. 재판관은 최경회현감으로 모녀에게 무죄로 석방을 하니 갈곳이 없는 논개모녀는 최경회의 집에 머물며 잔심부름을 하며 지냄.
논개나이 17세(1590년)때 담양부사인 최경회와 부부의 연을 맺음.
그후 모친상을 당하여 관직을 사임한 후 고향인 화순을 가면서 논개는 고향 장수로 보낸다.
2년뒤 1592년 임진년에 임진왜란이 터져 상중이지만 최경회는 전라우도 의병장이 되어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진주성 전투때 패한후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을 한다.
논개는 남편 최경회가 순국했다는 소식에 논개는 왜놈들이 전승을 축하하는 연회에 관기들과 함께 촉석루에 들어간다. 관기처럼 곱게 단장한 주 논개는 촉석루 아래 바위에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안고 남강물에 투신하여 순국한다. 그후 뜻을 같이한 민관군이 논개의 주검을 안고 고향인 장수군 장계로 떠나지만 고향인 주촌의 논개집안에서는 출가외인으로 논개의 주검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을 하여 , 할 수 없이 함양군 서상면 깃대봉 아래 논개의 주검을 안장한다.   (사)의암주논개정신선양회에서  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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