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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김천여행)도선국사가 창건한 수도도량 김천 수도산 수도암 여행. 김천 수도산 수도암


김천 수도산 수도암은 859년 헌안왕 때 

도선국사가 청암사를 창건하고 

수도도량으로 세운 암자입니다.





김천 수도산 수도암 주소: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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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께서 수도산 정상 아래에서 

수도암터를 찾아내고는 너무나 기뻐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수도암은 

수도 도량으로 선풍을 일으켜 

불령산으로 불리던 산이 

수도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수도암은 6·25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전소되었으나 현재 대단한 규모 중창했습니다. 

수도암은 청암사의 부속암자이지만 

본 사찰인 청암사를 능가할 만큼 큰 규모였습니다.

 


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보물 제296호),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보물 제297호),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307호)이 남아 있으며 

창건 당시로 보이는 건물의 초석과 기단석이 남아 있습니다.



수도암은 근대 선승으로 추앙받는 경허스님과 

한국 전쟁에 전소되면서 법전대종사가 크게 중창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당우는 대적광전 약광전 선원 관음전 

나한전 노전 등이 있습니다.

 




대적광전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상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석굴암의 불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예술성은 정말 대단하다고 합니다.

 


이 불상을 9세기경에 경남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하여 

노승이 등짐으로 운반하게 되었습니다. 

노승이 절 앞까지 와서 그만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자 

산신령을 불러 칡덩굴을 없애라고 크게 꾸짓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수도암 주위로는 칡덩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필자는 노승이 등짐으로 옮겨온 불상은 

대적광전에서 스님들이 불경을 외우며 

행사를 진행해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대신 대적광전과 약광전 앞에 각각 서 있는 

삼층석탑과 약광전 안의 약광전석불좌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도암삼층석탑은 도선이 수도암을 창건하면서 세웠다고 하는데 

수도암 절터가 옥녀가 베를 짜는 형국이라 하여 

두 기의 삼층석탑을 베틀의 기둥으로 삼아 세웠다고 합니다.

 


도선국사 글귀가 선명한 

돌 기둥입니다.





약광전 석불좌상 관을 쓰고 있어 

보살상으로 보이지만 

손가짐에서 여래불로 보이며 

약광전에 모신 것을 보면 약사여래불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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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김천여행)김천 10대 피서지중 한 곳, 무더위도 무색하게 하는 무흘구곡 9곡 용추폭포.


무흘구곡이라 아세요. 

무흘구곡은요?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과 김천시 증산면을 끼고 흐르는 계곡입니다.

김천의 수도산에서 시작하여 가야산을 돌아내려 가는 골짜기이며 굽이치는 계곡마다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멋들어진 경관을 만납니다.





김천 무흘구곡 9곡 용추폭포 주소: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한강 정구선생이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인 무이9곡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아홉 곳의 절경지마다 이름을 짓고는 칠언절구의 시를 남겼습니다.

 


무흘구곡에 대해서 알아보면 성주 쪽에는 1곡 봉비암, 2곡 한강대, 3곡 배바위, 4곡 선바위, 5곡 사인암인 5곳이라면 김천 쪽에는 4곳이며 6곡 옥류동, 7곡 만월담, 8곡 와룡암, 9곡 용추폭포입니다.

 


무흘무곡의 거리는 대략 35㎞ 내외라고 합니다. 

이번에 차를 타고 성주호에서 김천 증산면의 수도리 방향으로 여행하면서 차창을 통해 본 대가천의 무흘9곡은 절경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하나 안내판이 붙어 무흘구곡을 안내하지만 자는 무심코 목적지를 향해 지나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을 달래려고 무흘구곡의 9곡인 용추폭포는 꼭 보고와 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았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그 아래에 내려 우레와 같은 굉음과 함께 꽂듯이 떨어지는 물줄기는 한마디로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진짜 한강 정구선생이 아니라도 시상이 저절로 떠오를듯했습니다








한강 정구는 무흘9곡의 시에서 9곡 용추를 노래한 7언절구를 옮겨보았습니다.

 

“구곡회두갱위연(九曲回頭更喟然)

 

아심비위호산천(我心非爲好山川)

 

원두자유난언묘(源頭自有難言妙)

 

사차하수문별천(捨此何須問別天)“을

 

“아홉 굽이 머리 돌려 다시금 한숨 쉬나니

 

내 마음 산천이 좋아 이러함이 아니로다

 

근원은 본디부터 말로 못할 묘함이 있나니

 

이곳을 버려두고 다른 세상 물어야만 하나?“로 안내판은 뜻풀이하고 있습니다.


 









용추(龍湫)는 용이 사는 연못을 뜻하며 그만큼 신비로운 느낌이 듭니다. 

가뭄이 심할 때는 이곳에서 기우재를 지냈다고 합니다.






무흘구곡의 대미를 장식해서 그런지 때마침 17m 높이에서 바위 홈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는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물보라와 함께 흩어지는 물줄기를 보면서 금방이라도 용이 하늘로 올라갈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수도산에서 타고 내려온 수도계곡은 불영동천이라하여 옥동천으로 불립니다. 

용추폭포는 김천시의 여름철 10대 피서지로 이름을 올리는 곳이라서 그런지 폭포 주위에 많은 피서객이 마지막 무더위를 즐겼습니다.





옥동촌 소폭포









더위야 물럿거라란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용추폭포는 나의 마음과 등골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이제 무흘구곡의 9곡에서 첫발을 들였으니 어서 빨리 1곡에서 8곡 여행에 한번 나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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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동방오현의 한분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며 도동이란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동서원의 볼거리는 서원 입구를 지키고 있는 400년된 은행나무로 서원의 건립을 축하하며 한강정구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켜켜히 세월의 때가 묻어 시멘트 기둥에 한몸을 뉘이고 있지만 그의 풍모만은 하늘로 뻗어 올라가 꼿꼿한 선비의 기상을 보여 준다. 그런 이유로 서원 앞에는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강 정구가 심었다는 400년된 은행나무의 기품이  대단 도동서원


현풍IC에서 도동서원까지는 약 10km거리이다. 다림재를 넘어  낙동강을 따라  강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도동서원은 도산서원, 소수서원,병산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서원이며 보물제 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는 도동서원 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살아남아,


원래 도동서원은 1568년 조선선조원년에 비슬산 자락에  쌍계서원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화마로 불타고 1604년인 선조37년에 이곳으로 옮겨와 1607년에 도동서원으로 사액되었다. 1871년 고종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든 서원은 훼철되지만 도동서원과 함께 47개 서원은 제외되어 도동서원은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된다. 



400년된 은행나무로 도동서원 앞에 있다. 도동서원 완공기념으로 한강정구선생이 직접심었던 나무다.

 

 

도동서원은 기존의 서원과는 다른 형태다. 일반 서원은 남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도동서원은 낙동강으로 인해 북쪽을 향해 앉아 있다. 그때문에 중정당의 대청마루에 앉아 흘러가는 낙동강을 바라 볼 수 있는 도동서원의 풍치는 그야말로 가을의 노란 은행나무와 함께 장관을 연출한다.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구 도동서원, 중정당의 기단에 4개의 용머리는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위한 비보 역활 도동서원


도동서원으로 오르는 길은 1973년에 복원된 2층 누각 수월루를  지나가면서 시작된다. 좁다른 층층 돌계단을 올라 좁은 환주문을 들어서면 도동서원의 경내다. 정면에 강당인 중정당이 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두줄의 급한 돌계단이 퇴색한 모양을 하고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고 있다. 서원과 사당을 구분짓는 내삼문은  꼭꼭 잠겨져 있고 이곳은 김굉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그때 도동서원을 관리하시는 분이 올라오시며 보여줄것이 있다고 같이 가잔다.  사당옆의 담벼락을 가르키며 전국 서원에서 유일하게 도동서원에만 있다는 작은 창을 가르켰다. 문을 빼꼼히 밀어 왼쪽 담벼락을 보니 사각모양의 창틀이 보였다. 그 창틀의 용도는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축문을 태우는 곳으로 태울때 나는 연기를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게 하였다.


 


 

 

도동서원도 여느 서원처럼 수월루에서 사당까지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전학후묘의 양식으로 앞에는 공부를 하는 강당을 뒤로는 신주를 모신 사당이 위치함을 말한다. 




2층의 수월루. 이곳을 지나면 도동서원으로 올라갈수 있다.

 

 


강당인 중정당은 스승과 함께 학문을 닦고 배우는 공간이며 그 아래에는 동재인 거인재와 서재인 거의재를 서로 마주보게 두어 유생들은 이곳에서 생활을 하였다.  또한 중정당을 받치는 기단을 자세히보면 완구의 블록을 쌓는 것처럼 잘짜여진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와 다람쥐 모양의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용은 물의 신을 의미한다. 도동서원의 기단에 있는 4개의 용머리는 여름철에 수시로 낙동강의 물이 범람을 하여 서원으로 들이치지 못하도록 하며 아울러 화재로 부터 서원을 보호하기위한 비보책이다. 도동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흙과 기와로 쌓은 맞담으로 중정당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만큼 도동서원의 흙담장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도동서원의 중정당은 정면5칸에 측면 2칸반의  규모로 옆에서 볼때 사람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좌우 1칸씩은 온돌방을 넣었고 앞으로 툇마루도 달았다. 온돌방 사이에 3칸의 대청마루를 넣어 툇마루와 서로 통하게하였다. 가을의 도동서원은 샛노란 은행잎으로 인해 한층 더 중후한 모습을 선사하는 곳으로 많은 문화재 답사팀들의 단골코스로 익히 이름이 알려져 있다. 대구 달성 여행지의 도동서원으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중정당을 위해 들어서야하는 환주문 아래에 설치된 조형물.

 

 

서재인 거의재로 유생들이 생활하는 곳

 

 

 

 

 

 

강당인 중정당

 

 

바둑판처럼 퍼즐 맞추듯 쌓은 기단의 모습과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위한 비보로 설치한 용머리의 모습.

 

 

 

 

 

 

동재인 거인재

 

 

 

 

 

 

 

 

 

 

 

 

 

김굉필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내삼문.

 

 

 

 

 

 

 

 

김굉필의 신주를 모신 사당

 

 

사각 모양의 창틀이 다른 서원에는 없다. 그용도는 재사를 모시고 난뒤 축문을 태우면 저 창문으로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되어 있다.

 

 

 

 

내삼문 앞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

 

 

 

 

 

 

 

 

 

 

보믈로 지정된 아름다운 도동서원의 흙담장

 

 

 

 

 

 

 

 

 

 

 

 

도동서원의 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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