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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는 쌍봉사란 사찰이 있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혜철 선사가 이곳에 여름을 지냈다는 기록과 855년 경에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철감선사가 이곳 쌍봉사에서 머물렀다는 것으로 보아 839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쌍봉사에 대해서는 차후 포스팅을 하기로 하고 이번 포스팅은 화순군에서는 유일한 국보 한 점과 그리고 보물 한 점을 소개할까 한다. 모두 철감선사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국보인 탑은 스님 사후의 부도탑으로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곳을 말하는데 그의 정교한 기술이 예술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철감선사는 798년인 원성왕 14년에 출생하여 18세에 불가에 귀의 하였고 28세때 중국 당나라로 건너가 수학하였다 그 후 847년에 범일 국사와 함께 귀국하여 금강산에 머무르며 수도에 전념하였다. 경문왕때 그는 이곳 산수의 아름다움에 거처를 정하고 그의 호를 따 쌍봉이라 하였다하는데 쌍봉이란 현재 쌍봉사의 앞 뒤로 솟은 봉우리를 의미한다. 868년 경문왕 8년 이곳에서 입적을 하였고 경문왕이 철감이란 시호를 내리고 탑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는데 현재의 국보 57호와 탑신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로 이수와 귀부만 남아 있다. 탑의 형태는 전체가 8각형으로 꼭대기의 상륜은 남아 있지 않다. 이탑의 모든 부분도 눈여겨 볼 일이지만 특히 막새기와 안에 연꽃무늬를 새긴 솜씨는 석공 필생의 역작이라 할 정도로 정교하며 신앙에 기인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 룰 수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문화재청의 사이트를 인용하면

탑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모습이며, 대부분 잘 남아 있으나 아쉽게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진 상태이다. 탑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밑돌·가운데돌·윗돌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특히 밑돌과 윗돌의 장식이 눈에 띄게 화려하다. 2단으로 마련된 밑돌은 마치 여덟마리의 사자가 구름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앞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흥미롭다. 윗돌 역시 2단으로 두어 아래에는 연꽃무늬를 두르고, 윗단에는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가 악기를 타는 모습을 도드라지게 새겨두었다. 사리가 모셔진 탑신(塔身)은 몸돌의 여덟 모서리마다 둥근 기둥모양을 새기고, 각 면마다 문짝모양, 사천왕상(四天王像), 비천상(飛天像) 등을 아름답게 조각해 두었다. 지붕돌에는 특히 최고조에 달한 조각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어서,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패여 있다.

http://www.cha.go.kr/unisearch/Uniresult_Db_View.jsp?VdkVgwKey=11,00570000,36&queryText=쌍봉사철감선사탑

 



 

 

 

 

 

 

 

 

 

 

 

 

 

 

 

 

 

 

 

 

 

 

 

 

 

 

 

 

 

 

 

 

 

 

 

 

 

 

 동리산 태안사의 광자대사탑  보물 제274호

국보와 비교 함 해보세요.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보물 170호

철감선사탑비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경문왕이 시호를 철감으로 내린후 탑과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도윤(798~868)의 탑비로 현재 거북받침돌인 귀부와 위에 얹혀진 이수만 남아 있다.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머리에 거북이의 형태를 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오른쪽 발은 올려진 모습이다. 이수는 운상인 구름문양으로 새겨져 있고 삼각형의 돌출형의 바위가 두 개 남아 있는데 한 개는 사라진 상태이다.  

http://heritage.daum.net/heritage/16509.daum

 

 

 

 

 

 

 

 

 

 

 

 

 

 

 

 

 

 

 

 

 

 

 

 

 

 

 

 

 

동리산 태안사의 광자대사탑비 보물 제275호

철감선사와 같은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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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삼층석탑

보물 제678호
소재지: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 경내

운문사 대웅보전 즉 비로전 앞의 쌍탑인 운문사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9세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원래 운문사의 탑은 금당 앞에 5층이 황탑이 있었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대웅전(비로전) 앞의 삼층석탑만 남아 있다. 대웅전 앞의 쌍탑인 삼층석탑은 운문사의 풍수지리와 관계가 있다. 운문사 사액을 보면 '호거산운문사'이며 왕건이 보양국사에게 고마움의 보답으로 내린 '운문선사'란 사액때문에  운문사로 개칭되었다 한다.
 

운문사는 여타 사찰에 비해 독특한 구조를 두고 있다.  보통 산을 등지고 가람배치를 하지만  운문사는 사찰건물과 험준한 산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비로전인 현 대웅보전은 운문사의 행주형으로 배에 비유를 하고 있다. 배는 언제던지 침몰을 할 수 있어 그 비보로서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인 쌍탑을 좌우로 배치하여 균형을 맞추었다 한다.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은 높이 5.4m의 쌍탑이며 상층기단 사면 안에 돌려 넣은 팔부중상의 모습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탑을 보면 상부보다 하부가 다소 약해 보여 다소 무거운 감이 있지만 간결하면서 군더더기가 없으며 세련미와 날렵함이 한층 느껴지는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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