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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신라 6대 지마왕릉을 찾아서. 경주 남산 지마왕릉


신라 제6대 왕인 지마왕릉을 찾았습니다. 

지마왕릉은 포석정과 배동삼존석불 사이에 있습니다. 

그럼 지마이사금(재위 112~134)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마이사금은 성은 박씨이며 이름은 지마, 지미입니다. 아버지는 신라 5대 파사이사금이며 태자였습니다.

 




경주 지마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30




2016/11/01 - (경주여행)황복사지 삼층석탑. 신문왕의 명복을 빌며 세웠다는 국보 제37호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다.

2016/10/31 - (경주여행)신라 27대 선덕여왕릉.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낭산 도리천의 선덕여왕릉 여행과 세가지 예지력.

2016/10/29 - (경주여행)신라 26대 진평왕릉. 천년 세월을 말해주는 듯 웅장한 노거수에 마음까지 편안한 경주 진평왕릉 여행. 진평왕릉

2016/10/28 - (경주여행)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 통일신라 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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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4 - (경주여행)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분황사 당간지주로 추정되는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를 여행하다.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어머니는 허루갈문왕의 딸인 사성부인이며 비는 마제갈문왕의 딸인 애례부인 김씨였습니다. 

즉위한지 4년만인 115년 가야가 국경을 건너 노략질을 일삼자 지마이사금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오늘날의 양산시 물금의 낙동강을 건너 가야를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가야의 역습에 걸려 겨우 목숨을 건져 돌아왔으며 그 이듬해 다시 군사를 일으켜 가야로 쳐들어갔습니다.

 




가야는 성문을 굳게 잠그며 별반 대응을 하지 않았고 지마의 군대는 우기와 겹쳐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야 정벌의 꿈을 접었습니다. 

121년에는 왜구가 쳐들어오고 다시 이듬해 재침한다는 흉흉한 소문에 민심이 들끓자 사태를 수습하고 왜구와 화친을 맺었습니다.

 





이제 한숨을 돌리나 했는데 이번에는 난데없는 말갈족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지마이사금은 백제에 구원병을 요청하였고 백제는 다섯 장수를 보내어 말갈족을 격퇴하면서 두 나라는 7대 일성이사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34년 지마이사금이 아들 없이 죽자 그의 작은아버지인 일성이사금이 왕위를 이어받았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신빙성이 좀 떨어진다 하겠습니다. 

지마왕의 재위 시절에는 하늘과 땅에서 천재지변이 여러 번 일어나는 등 많은 변고가 있었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마왕릉은 능의 밑 둘레가 38m이며 높이는 3.4m에 흙으로 봉분을 쌓은 단순한 형태입니다.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와 왜구.말갈의 침입을 막아 국방을 공고히 했다고 안내판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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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남산여행)경주 남산의 배동 삼릉과 경애왕릉 구경가기


경주 남산의 배리인 삼릉에는 현 재 다섯기의 왕릉이 위치를 하고 있다. 삼릉 좌우로 우측에는 경애왕릉. 좌측에는 지마왕릉이 있어 한번 들러보면 좋을 것 같다.

모두 소나무 숲 사이에 안장된 왕릉은 경주 남산을 배경으로 무심한 세월의 흔적을 남기며 현재까지 남아 있다.

현재의 왕릉이 자료나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의해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현재는 모두 하나의 역사속에 살아 있을 뿐이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터미널에서 500번501번502번등을 이용하여 삼릉에 하차한후 삼릉과 경애왕릉을 본후 삼존불 지마왕릉 포석정등을 둘러보면 하루 해 가 짧음이 아쉬울 뿐이다.

<삼릉숲>




*경애왕릉

사적 제222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3-1

신라55대 경애왕(재위924~927)을 모신 왕릉으로 삼릉의 우측에 있다. 53대 신덕왕의 아들로 927년 남산 포석정에서 연회를 열다.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는 비운의 임금이다. 삼국사기에는 경애왕을 해목령에서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일부에서는 경애왕릉이 해목령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아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 부근의 일성왕릉이 경애왕이 아닌가하고 추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높이가 4.2m로 흙으로 둥글게 쌓은 봉분으로 현재 남아 있다.





*배리 삼릉

사적 제219호

신라8대 아달라왕제 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무덤을 함께 모아 삼릉으로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자랑하고 냉골을 올라 남산을 오르는 산행로 또한 가장 많은 배동 삼릉에는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년중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아달라왕은 즉위시절 백제에서 침공을 하여 신라인을 잡아가자 아달라 왕은 친히 전장으로 달려갔고 백제군이 화친을 제의하자 포로를 석방하였다 한다. 능의 규모는 밑둘레 58m. 높이 5.4m 지름18m

효공왕이 후손이 없어 죽자 백성들과 문무백관들이 헌강왕의 사위인 신덕왕(912~917재위. 박경휘)을 추대하였다. 견훤과 궁예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진력을 하였다. 능의규모는 밑둘레 61m. 높이5.8m. 지름18m로 두차려에 걸쳐 도굴을 당하였다. 1953년과 63년에 내부조사가 진행되어 깬돌로 쌓은 횡혈식동방 형태의 무덤으로 밝혀 졌다.

경명왕(917~924재위. 박승영)은 신덕왕의 아들로 고려 태조 왕건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을 공격하여 물리쳤다. 능의규모는 밑둘레50m. 높이4.5m. 지름16m.





*지마왕릉

사적제 221호경북 경주시 배동 산30

황금대 능선 아래 포석정 인근에 있는 왕릉으로 신라6대 지마왕(112~134 재위)의 능이다.왕은 파사왕의 아들로 태어나 23년간 즉위하며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으로 부터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능의 규모는 밑둘레38m. 높이3.4m





<안내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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