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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도여행/영도가볼만한곳)흰여울문화마을. 영화 변호인 촬영지 흰여울문화마을이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흰여울길


부산의 특징 중 하나는 산복도로에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마을입니다. 부산의 판자촌 유래는 6.25 한국전쟁과 8.15 광복으로 그 역사는 올라갑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총알받이로 끌려갔던 우리 조선인은 귀국선을 타고 부산항으로 들어왔으며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들까지 몰려들어 그야말로 부산은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2014/09/23 - (부산여행/영도흰여울길)변호사 촬영지 흰여울길, "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 촬영지 흰여울길을 여행하다.

2014/02/20 - (부산여행/영도여행)변호인촬영지 절영산책로에서 봄을 마중하다. 흰여울길.







부산은 평지보다 산이 많아 비좁은 평지만으로는 그 많은 사람을 다 수용할 수 없어 급기야 산을 깎아 내고 공동묘지도 뭉개고 하여 비를 피하는 움막집을 짓고 살았는데 부산의 많은 판자촌 중 영도의 흰여울 길 문화마을도 피난민 마을 중 한곳입니다. 흰 여울이란 이름은 영도의 주산인 봉래산에서 흘러내린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떨어지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는 게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같아 흰여울길이라 불렀습니다.





흰여울문화마을 주소: 부산시 영도구 영선동 4가

 





흰여울길 문화마을은 서구 암남동의 송도를 제1 송도라 하면서 그에 견주어 제2 송도라 하였습니다.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의 단애 위에 집을 지은 흰여울길을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산의 산토리니니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해안가 절벽의 친퀘테레를 연상시킨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만큼 흰여울문화마을은 포근하며 사람사는 정이 묻어 있습니다. 또한, 남항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바다 주차장 묘박지의 많은 배와 반짝하는 바다의 몽환적인 풍경은 이곳 흰여울 길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흰여울길 문화마을은 여러 번 포스팅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집과도 가까워서 자주 찾는 곳으로 매번 올때마다 흰 여울 문화마을의 골목은 변화를 거듭하였습니다. 아마 흰 여울 문화마을을 전국 관광지로 떠오르게 한 것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이었습니다.



 



돼지국밥집을 하는 할머니 김영옥이 살았던 집으로 변호사로 나오는 송광호가 집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할머니를 기다리는 신을 촬영한 곳입니다. "니 변호사 맞제"





물론 영화 변호인 말고도 '범죄와의 전쟁'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티브이 드라마 '딴따라' '드림' 등이 촬영되었습니다. 1960년~1980년의 우리나라 산업화의 현장으로는 당시와 정말 잘 어울리는 이만한 촬영지도 여기 말고는 없습니다. 바다와 함께 옹기종기 붙은 집들은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지금은 골목길이면 골목길 계단이면 계단 모두 아름다운 페인트로 칠을 입혀 화려함은 더했지만, 회색의 거친 시멘트 느낌은 사라져 예전같이 수수함은 많이 사라져버려 정말 아쉽습니다.





이탈리아 리비에라 절벽의 친퀘테레 마을을 연상시킨다는 바위 절벽 위의 집, 오른쪽 그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로 간담이 써늘합니다. 아마 이 담장이 없다면 오금이 저릴듯합니다.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변호인 촬영지가 나옵니다.





보이나요. 바다 주차장 묘박지, 긴 항해를 끝낸 배들이 이곳에서 지친 몸을 뉘이며 기름과 선원들의 부식을 보충하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묘박지에 세워진 수많은 배와 함께 이른 아침의 어슴푸르하게 밝아오는 바다의 모습은 이곳만의 매력입니다.






지금 흰 여울 문화마을은 다닥다닥 붙은 슬레이트집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곳도 매번 진화를 거듭하여 번듯한 건물이 자꾸자꾸 들어차 곧 흰 여울 문화마을의 모습도 새롭게 지도를 그릴 것 같습니다.




흰 여울 문화마을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 바위 절벽에는 절영도 해안 산책로를 연결하는 어마무시한 천국의 계단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계단이 까마득할 정도로 높아 꼭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이라나 뭐라나, 하여튼 입이 쩍 벌어지는데 지금은 모두 계단을 알리는 이름이 하나씩 척하니 붙어 있습니다. 총 4개의 계단이 있는데 첫 번째 만나는 계단이 맏머리 계단이며 이곳에 맏머리 샘이 있었다 합니다.






꼬불꼬불 흰 여울 문화마을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골목길





이제 흰여울 점빵도 생겼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만나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산업화 시대를 만났다면 이곳 흰여울 카페에서는 현재의 가장 인기품인 '코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흰 여울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데 이곳 의자에 척 걸터앉아 찐한 커피 향에 바다와 호흡해보세요. 어디선가 비릿한 바닷냄새와 산업화의 상징인 사람들의 땀내음이 아른한 향수가 되어 밀려옵니다.





담벼락의 바다 조형물입니다. ㅎㅎ 인어공주 아니 황옥 공주가 여의주를 들고 금방이라도 물속에서 튀어나와 "나 잡아봐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계단이 살아 있습니다. 거칠 계단 길에 더덕더덕 덧입혀진 시멘트는 꼭 우리들의 마음의 상처 같습니다. 덧칠된 시멘트 골목길이 과거의 모습이라면 아름다운 색으로 덧칠한 담벼락은 오늘을 뜻합니다. 무조건 아름답게만 보이려는 게 안타깝지만 그래도 마을이 한결 산뜻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습니다.





노란색이 정말 찐해 인상 깊었던 집으로 사진에 담았습니다. 하수구 위의 시멘트 맨홀 뚜껑을 보면서 그 위를 걸었던 사람들의 삶의 무게가 이 골목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기 꼬막 계단도 맏머리계단 처럼 바위 절벽을 타고 절영해안 산책로와 연결되는 계단입니다. 이곳에는 금술 좋은 할매할배가 고기도 잡고 조개도 따고 하며 살았다는 하꼬방 꼬막집이 있어 정겨운 이름인 꼬막 계단이라 부릅니다.





저 뒤 아파트는 아주 작아 미니아파트로 부릅니다. 원래는 공동묘지 자리였다는데 지금은 아파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흰 여울 마을에서는 그래도 제일 높은 건물입니다.





젊은 연인이 변호인을 촬영하였다는 집으로 향합니다. 역시 요즘 최고 대세는 스마트폰입니다. 무조건 팍팍 누르면 이리 사진으로 나오니 말입니다. 저도 오래된 스마트폰인 노트3로 열심히 담았습니다.





드디어 변호인을 촬영했던 현장입니다. 지금은 또다시 변신해서 흰여울 안내소란 간판을 달고 있습니다.





요 앞에 계단 보이지요 이 계단에 앉아 송광호가 국밥집 할매 김영옥을 기다린다 이잉교??? 그런데 지금은 시멘트로 덧칠하여 깔끔하게 했습니다. 그때의 분위기는 안나지만 들어가서 한번 보고 가입시다. 저도 바뀌고는 처음이라 내부가 궁금합니다.





매번 올 때마다 빈집이었는데 작은 마당에는 잡초가 막 자라 있고 변호인 촬영지가 아니라면 완전히 폐가 수순을 밟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방안도 깔끔하게 하여 흰 여울 문화마을의 홍보도우미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진과 함께 마을의 옛 모습을 알리는 작은 쉼터로 변호인 촬영지에서 보는 남항 앞바다는 또 다른? 분위기입니다. 분위기의 반전이라 할까요??? 70년대의 집에서 밖을 내다보면 2016년 오늘의 모습이 눈앞에 쫙 펼쳐집니다. 남항동과 암남동을 연결한 남항대교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고층건물인 아파트는 이곳에서 보면 마치 신기루 같은 느낌입니다.


  




방안 내부를 둘러봅니다. 




흰 여울 문화마을 홍보물과 부산 원도심 투어 팸플릿을 한 장식 챙겼습니다.







내부에서 밖을 본 모습입니다. 뷰가 그림 같습니다.





변호인 촬영지 마당입니다.





옆 작은 방에는 청춘사진관입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반백의 촌로들이 모두 젊은 청춘으로 다시 바뀌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찍어야 했는데 혼자라 아쉽지만 찍지 못했습니다.













영도의 흰여울길 문화마을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본 것은 우리가 힘들게 살아왔던 부모님의 모습의 흰 여울 문화마을이라면 현재와 앞으로의 흰 여울 문화마을의 밑그림은 더욱 많은 기대를 하게 합니다.





영도에서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꼭 가야만하는 여행지라면 역시 흰여울 문화마을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단디 찾아보고 가이소”






 




절영해안산책로의 해안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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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영도여행)변호인촬영지 절영해안산책로에서 봄을 마중하다. 흰여울길.


 부산은 해양도시라 합니다. 그와 함께 영화의 도시로도부릅니다. 그 만큼 부산에서 많은 영화가 촬영되었고 현재에도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 최근 1000만 관중의 흥행 돌풍을 일으킨 영화도 부산에서 촬영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변호인'입니다.

 

 

 

 

변호인 영화가 촬영되었던 영도 절영해안산책로의 흰여울길을 찾아가봅니다. 아름다은 이름을 가진 흰여울길의 뜻은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흰여울길은 예전에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림으로서 마치 흰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같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라 합니다.

 

 

 

 

흰여울길을 찾아가는 길은 두갈래입니다. 해안가를 따라가는 절영산책로길과  2송도로 이어지는 도로를 걸어가면 됩니다. 그래도 영도는 뭐니뭐니 해도 바다가 최고입니다. 절영해안산책로의 출발점인 반도 아파트 앞에서 해안을 끼고 걸어 봅니다.

 

 

 

지난주는 폭설로 부산에도 날씨가 지꾸젔고 일주일 내내 비가 오락가락 한 날씨였습니다. 그 뒤 끝에 맞는 주말에다 짱짱한 날씨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절영 해안 산책로를 걷기 위해 찾아 왔습니다.

 

 

 

오른편의 남항에는 모박지라 많은 배들이 바다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 왼쪽은 영도의 주산인 봉래산에서 흘러내린 급경사가 마치 절벽 같습니다. 덩덜아 무너짐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운 것이 마치 고대 로마의 성벽을 연상케 합니다.

 

 

 

 

터벅터벅 등산화의 걸음걸이가 둔탁하지만 발아래 느낌은 너무 좋습니다. 흰여울길 안내판을 봅니다. 이곳에서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었다합니다.

 



 

 

 

영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범죄와의 전쟁', 드라마 '영도다리를 건너다'등과 최근에는 '변호인'이 이곳에서 촬영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지역민과 함께 문화예술인을 위한 골목으로 만들어 예술인의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활용하며 '흰여울 문화마을'이 되었습니다.

 

 

 

 

 

안내판 오른쪽의 계단을 올라갑니다. 계단길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끝이 없습니다. 한발한발 밟아 계단길 막바지에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 봅니다. 흰여울길에서 보는 절경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같다 붙혀도 아깝지 않을 해안의 모습입니다.

 

 

 

 

일단 흰여울길을 처음 부터 걷기 위해 왼쪽 골목길을 따라갑니다. 일명 '하얀집'이 나옵니다. '전원가족연구소'란 작은 안내판이 달랑달랑 걸려 있습니다. 이집에서 많은 영화가 촬영되었다합니다.

 

 

 

이집안에서 보는 경치가 그저그만이라 합니다. 흰여울길은 사실상 여기부터 시작됩니다. 그럼 걸어 가보도록 합니다.

 

 

 

편편한 담벼락에는 요즘 유행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이 화려하지 않으며 수수하여 그저 마을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립니다. 골목이 예술인들의 문화창작 공간 같습니다.

  

 

 

골목길에서는 머리만 돌리면 바다를 보고 걸을수 있으며 오른편에 적당한 높이의 담벼락이 함께 달려갑니다. ㅎㅎ 담벼락 넘어에는 절개지입니다. 

 

 

 

 

올해는 청마의 해입니다. 영도는 말과 관계가 깊은 지명이라 2014년 올해를 영도구의 해라 말하고 싶습니다. 벽화에는 펄쩍 펄쩍 뛰는 적토마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자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른 말이 있었다는 영도에 흰여울길....

 

 

 

 그럼 벽화를 보고 걸어가 볼까요. 갑니다.

 

 

 

 

 

 

 

새들의 조잘거림이 이곳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평온한 풍경의 벽화가 마음까지 편안하게 합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장독대에 몸을 숨기며 아이가 숨박꼭질을 하고 있습니다. 아가야 장독 깬다. 술레잡기는 다른 곳에서 해야지...

 

 

 

 

오!. 이곳은 영화 변호인이 촬영된 곳입니다. 길게 이어진 골목이 보이나요 그리고 좁은 계단에 누군가를 기다리며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주머니의 집앞 계단에서 송강호가 밤을 새우며   김영애를 기다리는 모습이 언뜻언뜻 보입니다. 조기 보이는 계단에서 말입니다.

 

 

 그림을 따라가며 변호인을 그려보고 영선동의 옛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번듯번듯한 양옥집 사이에는 아직도 스레트 지붕과 양철지붕이 잇대어 우리의 6,70년대 모습입니다. 집은 옛 모습인데 분을 발라 새색씨 같은 모습의 벽화를 그려 놓은 흰여울길.

 

 

 

 

 

 

 

 

 

 

 

 

 

 

 

흰여울길에도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벌써 봄은 바다를 통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화가 예쁘지예...봄을 맞으러 아름다운 흰여울길을 함 걸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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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산 정상의 낙조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영도에 대해 알아보기

 

부산에는 크고 작은 섬이 있지만 그중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섬이 가덕도와 영도다. 영도는섬인데 육지라 해도 의견이 없을 정도다. 영도다리 부산대교 남항대교의 세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지금 북항대교가 공사중이라 교통면에서는 명실공히 부산의 섬이 아닌 육지로 분류해야 할 것같다. 지금 영도로 불리는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을 하였을까. 그리고 어떤 이름으로 불려 졌을까. 영도는 근대이전에는 절영도로 불렸다. 절영도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곳은 명마를 키우는 곳이었다. 부산에는 이곳외에도 서구 초장동에도 명마장이 있었다.

 



 

 봉래산 정상에서 본 남항 야경. 다리는 남항대교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절영도에 대해 알아보기

 

특히 영도의 명마는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하루에 천리를 달려 간다는 천리마가 이곳 절영도에 있었는데 그 말이 좀 달렸다하면 말 그림자가  말을 따라가지 못해 그림자도 말을 따라 잡지 못할정도로 빠른 명마를 생산하였던 곳이다,신라시대부터 국마장을 이곳 영도에 설치를 하였다. 신라 33대 성덕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의 뜻을 기려 그의 적손 김윤중에게 이곳의 명마를 하사하였다하며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왕건에게 이곳의 명마 한필을 선물하였다가 백제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받아 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럼 영도 지명은 언제부터 사용 되었을까. 해방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절영도에서 ‘’절‘자를 빼고 영도로 부르게 되었다한다.

 

 

 출발지 남항대교 야경 사진

 

 

 

 남항대교 위에서 본 남항과 자갈치 전경

 

 

절영해안산책로 입구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절영해안산책로 국내 아름다운해안길 베스트 5

 

제주도는 한라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라면 영도는 봉래산으로 이루어졌다. 동쪽은 산세가 완만하여 주민들이 산허리를 뭉게어 살고 있지만 서쪽에는 급격하게 급한 경사가 바다로 빠져버리게 되어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대신 이곳은 천애의 자연 절경을 이루는데 영도구에서 해안 절벽을 산책로로 개발하여 '절영해안산책로'를 만들었다. 지금은 영도 구민 이외 부산시민 그리고 태종대를 찾는 관광객에게까지 찾아와 이곳은 하나의 명승지가 되었다. 그 아름다움을 반증 하듯이 이곳 절영해안산책로가 국내 5대 해안의 아름다운길로 선정 되었다.

 

 

 

 

 

 배모양을 한 관리사무소 전경

 

 

 

 

 

 남항 어촌계 해녀들이 잡아온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정면에 피아노계단이 보인다.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봉래산~갈맷길 산행 경로

 

산행 경로를 보면 서구 송도 한진 매립지~남항대교~절영해안산책로 입구~피아노계단~2 송도파고라~백련사~함지골임도~함지골샘터~함지골~샘터 갈림길~복천사, 봉래산 능선 갈림길~봉래산 정상~6거리 안부(산불초소)~손봉(팔각정정자)~자봉~목장원,고신대학 갈림길 임도~함지골 편백 수목원 삼거리~목장원~75광장~절영해안산책로 전망대~출렁다리~매점~대마도전망대~무지개다리~영선사 갈림길~남항어촌계 가건물~2송도 파고라~관리사무소~남항대교~송도 한진 매립지)로 산행시간은 3시간30분이며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4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갈림길 왼쪽은 봉래산 정상으로 가고 오른쪽은 태종대 방향

 

 

 

 

 백련사

 

 

 

 

 

 함지골임도. 여기서 산불초소 왼쪽 산길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서구 송도에서 광안대교를 건너다.

 

먼저 부산 서구의 남항 대교를 건너면 바로 절영해안산책로 입구로 갈 수 있다. 남부민동 대림비치 아파트에서 하차를 하여 건널목을 건너 송도 찜질방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주유소를 왼쪽으로 끼고 방파제 방향으로 나가면 포장마차가 일렬로 반긴다. 오른쪽으로 꺽어 포장마차 앞을 통과하면 남항대교 밑이다. 이곳이 영도와 송도를 잇는 부산 갈맷길 코스다. 계단을 올라 남항대교를 따라 걷는다. 부산 남항을 연결하는 도로로 인도가 만들어져 있어 바다에서 자갈치시장과 용두산공원을 관망할 수 있는 곳이다. 남항대교 인도교 길이는 1.25km로 20분이면 건너가게 된다. 다리를 내려와 반도아파트를 왼쪽으로 끼고 간다. 5분이면 절영해안산책로 입구로 관리사무소가 있다. 건물의 모양이 배를 닮았고 이곳에 최근에 갈맷길 사무소가 생겼다. 이곳을 지나면 콘크리트 넓은 길로 인근의 시민들이 운동삼아 가족과 함께 나와 휴식을 즐기며 걷는 코스다. 오른쪽으로 외항선들이 바다위에 둥둥 뜨있어 이곳을 묘박지라 부른다. 묘박지는 큰배들이 부두에 정박할 수 없어 인근 바다에 대기를 하는 곳을 말하며 작은 부선들이 식품등 필요한 물품을 싣고 나르는 것을 볼 수 있다.잔잔하게 들리는 파도가 자갈에 씻겨 나가는게 아름다운 선율 처럼 들린다.

 

 

 

 함지골 너덜

 

 

 

 함지골의 모습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절영해안산책로에 피아노계단을 아세요.

 

7분이면 암벽에 가로막혀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왼쪽 오르막계단길을 올라가야하며 이정표에 중리해변, 2송도파고라 방향이다. 알록달록하게 색칠하여 피아노 계단이라 불리며 153계단을 올라서면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 내리막길은 태종대, 무지개다리 방향이며 뒤에 봉래산을 오른뒤 하산 후에 이곳으로 올라온다.  왼쪽 길인 2송도파고라로 올라간다. 벤치와 그늘막이 설치 되어 있고 남항 건너 암남공원과 진정산 장군산등 건너온 남항대교의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함지골에서 만난 야생화

 현호색 ,남산제비꽃

꿩의바람꽃 참개별꽃

 

 산자고 솜나물

 

 

 

 

 벤치의 나비조각

 

 능선의 사거리 갈림길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봉래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백련사로...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영도 순환도로인 절영로다. 백련사 버스 정류장을 건너 백련사로 올라간다. 20m 들어서면 오른쪽에 봉래산 숲길 안내도와 이정표(목장원 1.18km ,봉래산 정상 1.48km)가 있다. 산길을 들어서면 바위에 작은 굴이 뚫여 있는 곳에 삼거리가 있다. 좌측으로 올라서면 영선사 뒤를 돌아 15분이면 봉래산 둘레길 임도에 오른다. 정면에 산불초소가 있다. 오른쪽은 목장원 (0.65km). 왼쪽은 복천사 (1.21km)방향이다. 봉래산 정상은 산불초소 왼쪽 길로 들어선다. 정상까지는 1.0km. 입구를 지나면 돌탑이 수십기 서 있는 너덜을 지나고 편백숲을 지나면 오른쪽에 약수터가 있다. 이곳을 지나 함지골 계곡을 건너면 체육공원이다. 목장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서로 만난다. 노란색의 협조문 안내판 오른쪽으로 오른다. 바닥에 돌이 깔린 길이다. 다시 넓은 공터를 지나면 산길은 계곡의 바위길을 따라 올라간다.

 

 

 

 봉래산 정상

 

 

 북항대교 연결이 되고 있는 모습.

 

 남항대교와 다리건너 출발지의 모습

 

 용두산공원의 부산탑

 

이기대와 신선대 부두의 모습

 

 부산의 상징 오륙도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함지골에 야생화 천지.

 

함지골로 정상 부근 능선에서 보면 함몰된 것 같이 보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 부터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남산제비꽃과 제비꽃 꿩의바람꽃 그리고 현호색은 등산로 좌우로 떼지어 피어 있고 개별꽃이 하얀 자태에 깨소금을 뿌린 모습으로 앙증맞게 길손을 맞이 한다. 그 중에서 산자고는 그래도 화려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나를 유혹하듯이 수줍게  몸을 숨기며 베시시 웃고 있다. 야생화를 보면서 오르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게 올라 갈림길까지 45분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오른쪽 산길도 봉래산 정상으로 갈 수 있지만 산길은 왼쪽으로 올라간다. .  곧 쉬어 가라고 나비가 이쁘게 조각된 벤치가 보는 이의 마음까지 푸근하게 하고 약수터도 있다. 봄이라 그런지 제법 수량이 많다. 5분이면 사거리로 이정표가 있는 능선에 올라선다. 왼쪽은 복천사방향이며 넘어서면  산제당 가는 길이다, 봉래산 정상(0.13km)은 오른쪽 산길로 약간 오르막이다. 5분이면 봉래산 정상(395m)에 오른다. 

 

 

 

 

 

 

 

 

 

 영도다리와 부산대교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봉래산은 봉황이 날이든 산 뜻

 

봉래산은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로 예로부터 신선이 살만한 곳이라 하였다. 정상석 뒤에는 높이 1.5m 에  경차만한 바위가 있다. 영도구민은 이 바위를 할매바위라 부르며 신성시 모시고 있다. 할매바위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는데 영도구민은 이 할매바위를 어머니와 같이 섬기고 있다. 자식이 어머니를 떠나 살 수 없듯이 어머니 또한 자식을 애뜻하게 생각하는게 이치라. 할매바위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영도주민을 잘살게 도와준다. 영도에 살다가 뭍으로 떠나는 자식에게는 매정하게 끊어버리는데 혹 할매가 보이는 곳에 정착을 하면 할매가 심술을 부려 3년안에 망하게하여 다시 영도로 들어오게 만들어 다시 자식을 품듯이 돌보아 준다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때는 한반도 점령을 위해 영도를 전초기지로 삼았고 봉래산으로 불리던 산을 고갈산으로 불러 우리민족을 말라 죽이려하였던 산이다

 

 

 

 

 

 

 

 

 

 자봉정상

 

 

 

 중리해변의 모습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봉래산 정상의 조망 일망무제.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그야 말로 일망무제다. 동으로는 이기대와 신선대가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오륙도와 해양대학이 있는 조도 태종산도 볼 수 있다. 북으로는 북항대교가 마지막 상판을 남겨두며 매립을 한 북항이 들판을 이룬다. 그 뒤로 엄광산과 금정산등 부산의 산이 파노라마로 다가온다. 큰 바위 뒤를 돌아 서쪽으로는 봉래산낙조가 유명하다. 가덕도로 떨어지는 저녁해야 말로 영도의 1경이 아닐까. 그만큼 아름다운 모습이다. 암남공원과 송도해수욕장, 구덕산 승학산과 멀리 김해의 모습도 확인된다. 발아래는 자갈치 영도다리와 부산대교 용두산의 부산탑등 부산의 여러 곳을 찾을 수 있다.

 

 

 

 

 

 손봉정상에서 본 모습 왼족에 해양대학이 있는 조도, 그 오른쪽이 태종산

 

 

 

 손봉정상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봉래산은 정상과 자봉 손봉의 3개 봉우리.

 

하산은 이정표에 '봉래산 손봉 0.85km', '목장원 1.6km'인 정상석 왼쪽 방향으로 내려 간다. 봉래산 할매바위 안내판이 설치 되어 있고 직진한다. 오른쪽에 전망대가 나타나며 함지골의 모습과 부산 실탄자격장의 건물이 계곡 끝에 자리잡고 있다. 내려서면 육거리 갈림길로 산불초소와 정자가 있다. 직진하여 봉래산 손봉과 광명고등학교 방면으로 살짝 오르면 작은 봉우리, 뒤돌아보면 좀전에 내려온 정상이 보이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꺽는다. 곧 산불초소안부에서 올라오는 우회길과 만나 직진하면 8각정자가 있는 자봉정상이다.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이다.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오르막을 살짝 오르면 전망이 시원한 손봉정상이다.

 

 

 

 

 

 함지골 편백수목원 앞 삼거리

 

 75광장에서 본 목장원과 봉래산정상

 

 절영전망대

 

 

 

 난파된 선박 해체작업

 

 

 

 새로생긴 출렁다리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목장원으로 내려간다.

 

봉래산 정상에서 이곳까지 약20분. 봉래산은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석옆에 축대를 쌓아두었다. 조선 태종임금이 이곳에 와 쉬었다 태종대의 태종산과 중리해변등이 발아래 모습을 드러내며 하산은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하산길이 급해진다. 이정표를 지나 15분이면 임도 갈림길이다. 왼쪽은 고신대학교 (0.51km), 오른쪽 목장원(1.08km)방향으로 따라간다. 10분이면 함지골 편백 수목원으로 임도삼거리다. 오른쪽은  봉래산정상 복천사 방향이고 목장원 방향은 왼쪽으로 450m다. 곧 고신대로 가는 봉래산둘레길 갈림길을 지나 목장원 뒤로 내려 오면 사실상 산행은 끝이다. 다시 절영해안산책로로 가기위해서는 직진하여 목장원을 지나 도로에 내려선다. 왼쪽으로 100m 이동하면 75광장으로 큰 2층 망루가 서 있다. 별뜻은 없고 75년도에 조성되어 그리 부른다. 이정표의 절영 전망대(80m)로 내려가기위해서는 절영해안산책로에 소나무 숲을 걸어야 한다. 전망대는 왼쪽에 있다. 중리해안쪽으로 큰 선박이 좌초되어 아직도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날씨가 흐려 대마도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대마도 전망대

 

 무지개다리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마무리는 남항대교 방면으로...

 

남항대교(2.5km)방향으로 스텐리스 계단을 내려간다. 좌측 절벽아래 노래미 낚시터가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최근에 만들어진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없던 것인데 새로 생겼다. 산책로 매점을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르면 대마도가 바라보인다는 대마도전망대다. 해안을 따라 걷는 재미가 솔솔하다.자갈이 깔린 길을 따라 파도소리를 듣고 걷는 길이 찌든 속까지 말끔히 힐링을 해준다.하늘 전망대와 무지개 다리 갈림길을 지나고 영선사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2송도파고라 0.4km를 보고 곧 남항어촌계 가건물을 지난다. 정면에 갑자기 바위 절벽이 나타나고 오른쪽 계단을 올라서면 오전에 이곳에서 왼쪽길인 2송도파고라 올라간 그 갈림길에 도착한다. 피아노계단과 관리사무소를 지나 60분이면 남항대교를 건너 출발지로 되돌아 온다

 

 

 

 

 

 이곳을 올라가면 봉래산을 오르기 위해 헤어졌던 갈림길

 

 

 

 갈림길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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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영도 갈맷길인 절영해안 산책로와 봉래산을 걷고 왔다. 요즘 걷기 열풍인지 많은 사람들로 이곳은 부산의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외지에서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는다. 산책로와 봉래산 등산로는 엄청 많은 안내판과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영도를 알리고 절영해안산책로를 알리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중 75광장이 있는 안내판에서 옥의 티를 찾았다. '역사속의 영도' 과연 우리역사속에는 영도가 어떤 위치였을까. 궁금하기도하고 하여 짬을 내어 읽어 보았는데 이상한 부분이 나오는게 아닌가. ''신라 33대 선덕왕이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의 공을되새겨 김유신의 적손에게 절영도 명마 한필을 하사~~~'하였다는 대목이다.

 

 



 

 

 

신라 33대 왕은 성덕왕이며 안내판의 선덕왕을  선덕여왕으로 보면 신라 27대로 김유신과 동시대를 살았던 분이라 말이 맞지 않는다. 아마 성덕왕의 오기로 보이는데 안내판을 만들면서 기록을 찾고 옮기는 작업을 할때 다시한번 확인작업을 거치지도 않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영문으로 번역을 한 것인데 이곳은 아예 33대 선덕여왕으로 만들어 버렸다. 번역자가 33대 선덕왕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확인만 하였서도 바로 잡을 수 있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밑의 한자 번역도 여왕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은데 글자 한자의 실수가 이리 엄청나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 담당자의 작은 실수가 세금으로 잘 만들어 놓은 안내판을 못쓰게 되어 세금 낭비에다 내외국인에게 우리 역사를 엉터리로 가르키는 잘못을 범하였다. 지금 한창 역사 바로 알기를 하고 있다. 이런 작은 것 부터라도 올바른 우리 역사를 알리도록 우리모두 힘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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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은 영도이다 이곳 영도는 봉래산이 원추형으로 이루어져 동쪽은 그래도 완만한 능선을 만들어 사람들이 발을 붙일수 있도록 하였지만 서쪽 절영산책로쪽으로는 그야 말로 급경사를 형성하여 사람들의 발걸음을 허용하지 않았다 . 그래서 인지 자연스럽게 왼쪽 북항방향으로 주거지를 이루게 되었다. 영도는 절영도의 줄임말로 말이 뛰어 자신의 그림자도 따라오지 못하는 명마를 의미하는 것으로 예전 신라시대부터 이곳에는 말을 키우는 목마장이 있었다 한다.




그만큼 신선들이 산다는 신령스런 곳이 영도의 봉래산이다. 그래서 인지 일제강점기때에는 잔악한 일본군들이 한반도 점령의 교두보로 조선의 정기를 끊고 조선의 기를 말라죽이기 위해서 봉래산을 고갈산으로 고쳐 최근까지 불렀다. 그러나 우리 산 이름 찾기의 일원으로 봉래산의 원래 이름을 다시 부르게 되었다하니 이 얼마나 반가운일인가.



영도 봉래산에는 도심의 산 답게 다양한 산길이 뚫여 있다 산길과 봉래산둘레길, 그리고 절영 해안 산책로등 문 밖을 나서면 봉래산을 밟을 수 있는 영도구민에게는 고마운 존재이다. 봉래산 산행과 절영해안 산책로, 태종대등은 여러번 소개를 하였기에 언급을 피하고 봉래산 둘레길을 소개하기로 한다.

둘레길 경로를 보면 신선초등학교-복천사 봉래산둘레길-산제당-청봉약수터-청학동생태자연공원-장사바위-고신대학갈림길-목장원 임도 삼거리-함지골 편백 산림욕장-복천사. 7.3km로 약 3시간의 편안한 산길이다.


롯데백화점 남포점의 영도다리 입구에 있는 정류장에서 6번를 이용하면 되는데 신선초등학교 입구에서 하차를 하면 둘레길 들머리에 손 쉽게 갈 수 있다. 학교 정문을 지나면 복천사 표지석이 서 있다. 봉래산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길이 있지만 복천사로 오르면 절 입구에서 봉래산 둘레길이 연결된다. 먼저 복천사를 둘러보자.


고려말에 나옹화상이 창건하였는데 영도에서는 가장 연륜이 있으며 영도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자료에는 고려시대부터 해운암으로 불리다가 1912년 복천사로 바뀌었다하며 유형문화재 7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여름의 장마로 인해 큰 생채기를 입어 아직도 복구가 끝나지 않았다. 복천사 입구로 다시 나오면 울타리 사이에봉래산 둘레길 안내판이 서 있다. 그곳으로 들어서면 이정표대로 산제당을 찾아가면 된다.



동네 뒷산 답게 좌우로 빠져 나가는 갈림길이 수 없이 많다. 그때는 산허리를 돈다고 생각하며 좌우로 많이 내려가거나 올라가면 되돌아와 다시 둘레길을 찾는게 현명하다. 20여분 후 영도를 지키는 산신할미를 모시는 산제당 뒷문으로 내려선다. 둘레길은 산제당 정문을 보고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이곳에는 작은 암자들이 연이어 만나는데 호국관음사, 극락암, 대법사를 돌아나가면 또다시 둘레길과 만난다. 이정표에는 해돋이 배수지이며 편백나무숲을 지나고 유림아파트 갈림길을 지나 우측으로 올라가면 청봉약수터와 만난다. 이곳에서 트럼펫을 부는 마을분을 만났다. 시원한 물을 한사발 들이키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15분이면 청학동의 생태자연공원에 들어서는데 울타리가 쳐져 있다.

 



편백 숲 사이로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설치 되어 있어 가족단위로 올라와 여가를 즐기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장사바위 혜련사 표지석을 지나고 엄층 큰 바위군을 만난다. 이곳에 이처럼 큰 바위가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안내판을 보니 장사바위로 자신에게 배풀어준 주민들의 은혜를 갚기 위해 그림자 같은 괴물과 담판을 벌여 죽었는데 그후 거인은 신발모양의 큰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지금도 바위위에는 장사가 신발로 변했다는 그 바위가 있다한다.




둘레길은 갈림길을 무시하고 목장원 이정표를 따라간다. 고신대학, 자봉, 손봉의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돌아가는 목장원이정표 방향으로 나가면 소로길은 임도길로 바뀌고 이길은 목장원으로 이어진다. 함지골 편백 산림욕장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 복천사 방향으로 따라가면 다시 오솔길의 둘레길로 바뀌게 된다.







너널지대를 만나고 전망데크가 설치된 이곳에서 서구의 암남공원과 진정산, 장군봉, 천마산, 시약산, 구덕산, 엄광산등 다대포 몰운대까지 그 모습을 들어낸다. 돌탑이 있는 이곳을 지나면 약수터를 만나고 복천사는 지척이다. 그만큼 봉래산 둘레길은 조망의 길이다. 청학동방향에서는 백양산과 금정산, 황령산, 금련산, 장산, 이기대와 신선대, 해양대학의 조도와 태종산등부산시내의 왠만한 산들은 모두 조망을 즐길수 있는 갈맷길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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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맞은편에는 영도라는 섬이 있다. 누워서 머리만 돌려도 남항대교와 영도 그리고 절영도 해안 둘레길을 볼 수 있으며 겨울철 중리산 넘어로 올라 오는 아침해를 매일 쳐다 본다. 남항 대교가 개통 된지 몇년 되었지만 아직 남항대교를 한번도 건너보지 못해 오늘도 누워만 있다. 일어나 남항대교를 건너볼 요랑으로 작은 배낭에 물만 달랑 챙기고 출발하였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네!
바람막이 잠바 지프를 올리며 옷깃을 여민다. 대교 밑에 도달하니 엘리베이트가 서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트는 보아 왔지만
다리를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트가 .설치 되어 있어니말이다.
그만큼 다리가 높아서 일까.
엘리베이트를 타고 대교위로 올라서니1200m의 길이 다리를 건너게 된다. 

앞에 보이는 아파트가 내가 둥지를 튼 곳이다.
인도가 설치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운동삼아 걸어 다닌다.
자갈치 앞바다와 용두산공원의 부산탑, 그리고 그 우측으로는 롯데백화점등 남,북항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절영해안산책로 입구로 절영도란 영도의 옛 이름으로 그림자도 못 따라 올 정도로 빨리 달리는 말을 말하며 그래서 인지 영도는 신라시대때 부터 목마장으로 유명하였다 한다 . 신라33대 성덕왕때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의 성덕을 기리기 위해 손자인 김윤중에게 절영도의 명마 한필을 하사하였다 하며 후삼국때는 후백제의 견훤이 절영도의 명마 한필을 고려 왕건에게 선물을 하였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영도란 지명은 해방후에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절자를 빼고 영도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절영해안산책로를 들어서면 먼저 시원한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원양어선등 큰 배들을 볼 수 있다. 그 우측으로 암낭공원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장군봉을 거쳐 천마산으로 올라가 낙동정맥으로 연결되고 ...
절영해안산책로의 모습으로 남항대교와 반도아파트
함지골 해녀의 자맥질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영도의 해녀 할머니들은 거의 제주도에서 올라온 해녀들이라 이야기를 하였다.
피아노 건반을 밟고 올라가는 계단으로 피아노 계단으로 불리며 처음 만나는 오르막이다.
피아노계단 입구에 조성된 꽃길
백련사 갈림길에서 본 남항의 모습으로 내려서면 함지골이다. 해안가로 자갈이 깔려 있어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파도의 광장:산책길이 조성되기 이전에는 이곳에 쓰레기가 산을 이룰 정도로 많았는데 산책길 조성후 쓰레기 대신 파도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추어 들리는 야외 음악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함지골해녀촌에서 해녀 들이 ㅈ물질을 하여 소라 전복 멍게등을 잡아  팔고 있다.
365계단 갈림길로 절영해안 산책로는 많은 탈출로를 만들어 놓았다.









절영산책로의 유일한 구름다리



절영전망대: 한폭의 진경산수화를 볼 수 있는 곳일까.그림처럼 펼쳐지는 절영해안로를 걸어온길과 걸어가야 할 길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 돌려 놓은 작은 차돌에는 여러가지 사연을 적어 놓아 추억을 만들어 놓았다.


세월을 낚는 강태공





미역 톳등 각종 해산물을 채취는 아주머니
금강산의 모습이랄까. 아니면 신전을 찾아가는 미로길의 모습일까. 여러개의 바위능선이 내려와 있는 곳으로 그 틈만마다 갈맷길을 걷는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중리마을로 여기까지가 절영해안산책로이며...아파트 뒤의 산이 봉래산으로 부산에서는 가장 큰 부속섬이다. 영도는 예로부터 말(馬)과 인연이 많은 곳이다. 목마장으로 유명해 그림자 조차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빨리 달리는 명마, 즉 절영 명마를 생산한 섬으로 절영도가 줄어져 영도란 이름이 나왔다.

원래 봉래산이란 동쪽바다 한 가운데 있어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는 상상속의 영산이다.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로 영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산 전체가 원추형이며 산록의 사면은 가파른 편이다. 특히 남쪽 사면은 급경사로 바다에 거의 내리박듯 수직으로 돌입한다. 산기슭에는 기계적 풍화작용에 의해 쪼개진 바위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

봉래산을 일제시대에는 고갈산으로 불렀다. 목이 마른 산 혹은 말라서 없어지는 산이란 뜻이다. 일본이 산의 기세를 꺾어 한반도 점령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옛 이름인 봉래산으로 불러야겠다.



중리해녀촌에서 부터는 감지해안산책로이다. 중리산을 돌아 태종대 공원 입구까지 이어진다.

감지해안산책로의 전망대
감지해변과 자갈마당 그리고 태종산.
태종대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감지 해변 산책로는 군사 작전지역으로 최근까지 출입 금지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그 만큼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절영해안 산책로와 함께 걸어보는 갈멧길에다 부산 앞바다의 푸름에 놀랄 것이다. 해안가에서 보는 바닷물은 지리산 계곡물 만큼이나 맑고 투명하다..절영해안에서 3시간의 여유있는 걸음으로 봄볕을 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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