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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여행/구례여행)지리산 천은사. 단풍으로 곱게 물든 화엄사 말사 지리산 천은사 여행. 


어머니의 산이라는 지리산에는 수많은 골짜기를 파 놓았습니다. 그 많은 골짜기를 비집고 들어선 게 절집입니다. 수많은 절집 중에서도 지리산을 대표하는 3대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와 그 말사인 천은사. 그리고 쌍계사입니다.




 지리산 둘레 길을 걷다가 시간을 내어 찾아갔던 남방제일선찰 화엄사 말사 천은사, 천은사 가는 길은 지리산 여행길에 여러 번 지났지만, 막상 천은사를 찾았던 기억은 3번쯤 되는 것 같습니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에 자리 잡은 천은사.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찾았던 천은사는 골짜기의 너른 품만큼 대단한 규모였으며, 수많은 봉우리에서 흘러내려 오는 지리산의 맑은 계곡 물이 천은사를 완전 가을빛으로 물 들이고 있었습니다.

 

천은사의 화기를 잡기위한  이광사의 필

 

 천은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리산을 관통하는 성삼재 도로에 세워진 산문을 통과하면 천은사 구역의 시작입니다. 이곳을 지나도 한참 도로가 이어지다 천은사 주차장이 나옵니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붉은 단풍에 가을빛이 물든 아담한 일주문을 지나면 그윽한 운치를 자랑하는 천은사 계곡에 걸린 수홍문을 통과하고 천은사 경내가 시작됩니다.

 

 

 가람의 연륜만큼 오랜 세월을 지켜온 고목의 모습은 지리산의 웅장한 산수와 어울려 더욱 빼어난 모습입니다. 천은사는 신라 때 창건한 사찰로 흥덕왕 3년인 828년 인도 승려 덕운이 지리산에 들어와 감로사를 창건하고 그 후 도선국사께서 중수를 했다 합니다.

 

 

 

 처음 창건 당시 사찰에는 달고 맛있는 샘이 경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이 샘에 능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샘가를 찾는 사람을 놀라게 했는데 이에 스님 한 분이 용기를 내어 그만 능구렁이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 뒤부터 감로수로 철철 넘치든 샘물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하여 “샘이 숨었다”는 뜻인 천은사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일이 있었던 뒤 천은사는 찾은 화재가 이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조선의 4대 명필 중 한 분인 원교 이광사가 절을 찾아 물이 흐르는 필체로 ‘지리산 천은사’란 글자를 쓴 뒤 일주문 현판으로 걸게 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천은사에는 더 이상의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 합니다.

 

 

 천은사는 고려 시대에 들어와 더욱 사세가 확장되고 충렬왕 때는 ‘남방제일선원’으로 지정되어 지리산을 대표하는 수행처가 됩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등 전란을 겪으면서 천은사는 방화로 소실되었고 1610년 광해군 때 혜정 선사가 소실된 천은사를 중창 불사하여 절의 모습을 다시 갖추게 됩니다.

 

 1679년 숙종 때에 단유 선사가 절을 중수하면서 ‘샘이 숨었다’하여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뒤에도 사찰은 중수를 거듭하다. 영조 때인 1774년 혜암 선사의 중창불사로 오늘날의 천은사 사격을 갖추었습니다.

 천은사의 성보 문화재는 보물 제1340호인 천은사 괘불. 보물 제924호 천은사 극락전 아미타 후불탱화, 보물 제1546호 나옹화상 원불불감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천은사 극락보전은 아미타여래상을 안치한 천은사의 중심 건물입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기와 건물로 용마루 부분에 삼각형의 벽과 팔(八)자 모양으로 널판지를 붙인 팔작지붕 형태이며 공포는 외3출목의 조선 중기 이후 다포양식인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

 

 

 

 

 천은사 보리수나무입니다. 천은사 암자와 경내에 20여 그로가 있었으나 모두 죽고 명부전과 설선 당 사이에 현재 한그루 남아 있습니다. 수령은 2~300년으로 추정하며 부처님이 이 나무에서 깨달음을 얻었다해서 보리수로 부리게 되었고 알은 염주를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천은사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지리산의 아름다운 단풍도 만나고 천은사 구경도 해보세요. 

 

 

 

 

 

 보리수나무

 

 

 

 

 

 

 

 

 

 

 

 

 

 

 

 

 

 

 

 

 

 

 

 

 

 #지라산 천은사 #천은사 #가을지리산 #여행 #구례여행 #사진 

참고:천은사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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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고성여행)동해면 구절산 폭포암. 고성에 유일한 폭포 구절폭포와 함께 구절암 흔들바위도 만나보세요.


경남 고성군은 남해와 인접해 있어 전망이 빼어난 곳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고성의 구절산은 군내에서 유일하다하는 구절 폭포가 있습니다. 높이 10m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용두폭포, 사두암 폭포로도 불리는데 비가 온 뒤 정상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그야말로 굉음과 함께 장관이라 합니다.




이곳 구절 폭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오랜 옛날 구절 폭포 아래 웅덩이에서 살던 못된 용이 하늘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계곡에는 동네 아낙네들이 멱을 감고 있었는데 등천하던 용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숨어서 그 광경을 훔쳐보려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때려 용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몸통은 구절 폭포를 병풍처럼 두른 암반이 되었습니다.


용의 머리 위로 폭포수가 흘러 용두폭포라 부르게 되었고 내장은 녹아내려 동굴이 되었습니다. 그 동굴에 호랑이가 살게 되었고 이 굴을 백호굴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현재 폭포암 산신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용의 뿔은 구절산 정상에 솟은 바위 전망대가 되었고 눈은 폭포 왼쪽에 있는 보덕굴이 되었습니다. 100여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크기지만 현재 입구가 막혀 출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용왕 당으로 사용 중인 반달 굴은 용의 생식기가 변하였으며 이곳에는 신비한 약수가 흐른다 합니다.








대웅전 왼쪽에는 폭포암에서 유명한 흔들바위가 있습니다. 한사람이 밀거나 여러 사람이 밀어도 똑 같이 흔들린다는 신비의 흔들바위는 용의 꼬리가 잘리면서 바위에 걸려 지금의 흔들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랜 옛날 폭포 위에 사두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이끈 승군들이 이곳에서 화살을 만들었으며 왜군이 알아채고 사두사를 공격하여 그만 소실되고 말았다합니다.





현재 세워진 구절산 폭포암은 사두사의 법통을 잇기 위해 불기 2522년 현각 스님이 상주하면서 용두폭포 옆에다 절을 세운 뒤 폭포암이라 불렀습니다. 이곳 폭포암은 한국의 마터호른이라 불리는 거류산과 마주하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합니다.


폭포와 함께 흔들바위는 방송과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습니다. 구절산 폭포암의 흔들바위도 흔들어 보고 소원도 빌어보세요.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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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석굴암에 군위 삼존 석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군위사찰 여행을 하다 보면 본존불인 부처님을 모신 곳은 대부분 부처님을 몸을 의미하는 대웅전에 모십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인데 조금은 특별한 부처님을 모신 곳이 석굴입니다. 필자가 가보았던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은 너무나도 유명하며 또한 덜 알려졌지만, 부산 경남에서는 유명한 천성산 미타암의 보물 제998호인 ‘석조 아미타여래’입니다.




특별한 장소답게 모두 국보 또는 보물로 아주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입니다. 최근에 매우 가보고 싶었던 곳인 군위 석굴사원인 석굴암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경주 석굴암보다 100년이나 앞서서 세워졌다는 군위삼존석굴은 그 발견 경우도 아주 특별납니다

지금은 계단을 설치하여 누구나 쉽게 오르고 내리게 했지만 발견 당시에는 큰 자연 암벽의 굴속에 안치되어 있어 영겁의 세월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7년 인근 한밤마을 최두환씨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위에서 줄을 묶고 내려오다 우연히 발견을 하게 되어 석굴암의 존재를 알았다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계단의 안전과 석굴암 삼존불의 보호를 위해 출입을 할 수 없습니다. 밑에서 보게끔 굴의 턱을 깨어 밑에서도 삼존불을 볼수 있습니다.



군위 석굴암은 경주 남산 석굴암과 구분을 짓기 위해 통칭 제2 석굴암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군위 석굴암은 신라시대 제19대 눌지왕 때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삼존불이 모셔진 석굴은 아도화상이 용맹정진하며 깨달음을 얻어 아도굴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절벽동굴인 석굴암에 모셔진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미타 삼존불이라 하며 삼존불을 7세기경 석굴암에 봉안한 분은 원효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위 삼존불이 있는 팔공산의 골짜기 곳곳에는 8만 9 암자가 있었다 할 정도로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임진왜란과 함께 팔공산의 사찰 대부분 화재로 불태워졌습니다. 그때 군위의 석굴암도 함께 소실되어 세월 속에 잊혔다 발견이 되었습니다. 정부로부터 1962년 국보 109호로 지정되었고 지금의 석굴암은 1985년 12월에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발원하여 오늘날의 도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군위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좌상입니다. 경상북도 유향문화재 제258호입니다. 9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불교 양식으로 광배는 없고 대좌 또한, 파손되어 사찰에서 보호 중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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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용인여행)와우정사. 남북통일를 기원하는 독특한 부처님 동산 용인 와우정사 여행.

경기도 용인시에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사찰이 있습니다. 용인 와우정사이며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창건된 사찰입니다. 와우정사의 창건 취지를 주지 스님께 들어 알 수 있었습니다. 

와우정사는 신라의 호국불교를 계승하여 세워졌으며 우리나라의 숙원인 남북통일 기원 사찰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창건되었습니다. 완만한 골짜기에 넓은 터를 조성하여 세워진 와우정사의 규모가 대단합니다.

신라의 사찰인 황룡사의 종과 같은 방식으로, “통일의 종”을 국내 최대의 황동 범종을 조성하였으며 청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인도네시아의 스님이 보내준 향나무로는 “누워 계신 석가모니불”을 조성하였습니다.


대웅보전 또한 우리나라 최고의 건물인 국보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같은 양식으로 세웠고 황동 8만 근으로 10년이란 긴 세월 공덕을 들여 조성한 장육존상5존 불은 대웅전에 봉안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와우정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스리랑카 스님이 보내준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찰로 대웅보전 앞에는 현재에도 공사가 진행 중인 높이 약 250척의 석가모니 부처님 입상이 조성 중입니다. 불두와 함께 현재 와우정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모습입니다.




전국사찰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보낸 돌로 세웠다는 통일의 탑과 금동 53존불, 아미타불 입상, 약사여래불, 5백 나한상, 석가모니 부처님 고행상 등을 조성하여 과연 부처님 동산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규모입니다.

용인여행에서 와우정사를 찾아 남북통일도 기원하고 사찰 내에 조성된 부처님 동산도 만나보세요. 와우정사는 요즘 용인에서 떠오르는 여행 코스입니다.

◆용인 와우정사 사진으로 보기◆














































◆(경기도여행/용인여행)와우정사 여행 안내정보

★용인정사

★주소: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 223

★전화:031-339-0101

★사찰

★대형 주차장 유

경기도 용인시청에서 초청 진행하는 팸투어에 참가해 작성한 포스팅입니다.



2015/06/05 - 경기도 용인공용버스터미널 시간표, 여행을 계획하신다고요? 용인공용버스터미널 시간표.


2015/06/03 - (경기도여행/용인여행)용인숙박지 호텔 라고모텔, 용인 여행에서 잠자리 걱정은 끝 호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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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에 천년사찰 운흥사가 있습니다. 운흥사는 가창 저수지를 절 앞 정원으로 둘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며 대구광역시 전통사찰 제3호 사찰입니다. 운흥사의 창건은 신라 흥덕왕 때인 832년 운수화상에 의해 동림사로 개산을 하여 1620년 조선 광해군 12년 무념스님이 중수를 하면서 수암사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1751년 조선영조 27년 치화대사 때 최정산 정상 인근에 있던 절을 현 위치에다 새롭게 옮겨 중건중수를 한 뒤 운흥사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천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개명을 여러 번 거쳤지만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운흥사도 한때는 대가람을 이룰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습니다. 임진왜란직전 까지만 해도 수백명의 스님이 구름 때처럼 몰려 수행도량으로 이름을 떨쳤고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 송운대사도 승병을 이끌고 이 절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운흥사에는 보물이 한점있습니다.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2014년 1월 보물 제181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복장 후렴통과 발원문 등 봉안사찰, 제작년도, 제작자 등 조성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기록한 불상으로 17세기 불상연구의 귀중한 자료 입니다.


 

1653년 조각스님인 도우의 첫 작품으로 용연사 삼존좌상과 같은 양식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필자는 문화재를 사진으로 남기는 게 취미라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찍기 위해 운흥사에 들렀습니다.


 

대웅전등 단출한 전각에 비해 마당에 자리한 벚나무와 고목에서 더욱 고풍스러운 모습을 느꼈습니다. 삼존상은 통유리로 막고 있어 사진을 담을 수 없어 앞 유리에 카메라를 데고 한 컷 찍었습니다. 대구 운흥사주위를 둘러보면서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아름다운 절집입니다.


 

 

 

 

 

 

☞(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교통편.


부산에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 운흥사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열차가 편리합니다. 부산역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무궁화와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하차를 합니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칠성시장 역에서 내려 칠성시장 역(서문프라자 앞)버스 정류장에서 ‘가창2번 정대행’ 버스를 반드시 확인하고 타면 끝 입니다. 종점인 칠성고가정류장에서 오전 6시31분, 7시48분 9시02분 10시18분 11시36분에 출발합니다. 오2리 정류장에서 하차. 운흥사 절집 구경을 했다면 대구시내 방향으로 나오는 가장2번 버스는 오후 3시11분 4시23분 5시42분 6시57분 등 10시40분(막차)에 있습니다. 오2리 정류장 도착은 약 10분 더하면 된다. ‘경상감영공원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동대구역으로 이동하여 부산으로 오면 됩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신대구~부산 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수성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월드컵로 대구 미술관(대구스타디움) 방면으로 좌회전합니다. 경기장 네거리에서 유니버시아드로 범물 방면 우측도로를 약 1.2km 가다 범안삼거리에서 범안로 범물동 방면으로 좌회전를 합니다. 삼덕톨게이트를 통과 후 4.8km 이동, 파동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청도 방면 우측도로를 약1.1km 이동합니다. 헐티로 각북 방면 오른쪽으로 꺾어 가창저수지 둑을 지나면 곧 운흥사가 나온다. 

내비게이션은 가창면 운흥사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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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7 - (대구여행/달성여행)국립대구과학관. '나도과학자' 국립대구과학관에 가면 누구나 과학자가 된다.


2013/11/12 - (대구여행/달성여행/강정고령보)강정고령보 디아크, 물수제비 뜨기에 너무 좋을 것 같은 강정고령보 디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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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예산여행)덕숭산 수덕사. 만공대선사의 원력으로 선종 도량이 된 예산 덕숭산 수덕사.


예산 덕숭산 수덕사는 현재 문헌상의 창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백제 위덕왕(554~597)때 고승 지명이 세운 것으로 추정을 하는데 일설에는  599년 신라 진평왕 21년에 지명이 창건하고 원효스님에 의해 중수를 하였다고도 전합니다. 

 


그 후 제 30대 무왕때 혜연스님이 '묘법연화경'을 강설하면서 수덕사의 위상이 더 높았고 고려 31대인 공민화 때에 나옹선사가 주석하며 중수를 하였습니다. 현재의 수덕사 규모는 조선 제26대인 1865년 고종2년에 만공스님의 중창으로 선종 유일의 근본도량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예산의 수덕사를 찾아가는 길은 예사 거리가 아닙니다. 큰 마음을 먹고 찾아간 수덕사는 여행을 가기전 부터 필자에게는 많은 궁금증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가요인 '수덕사의 여승'를 들어면서 자랐던 저로서는 수덕사에 까까머리 여승들의 처연한 모습을 실제 만날 수 있을까도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덕사를 찾아간 필자는 이곳도 여느 사찰과 똑 같은 모습인 것을 보았습니다. 수덕사의 환상이 깨어졌다고 할까요?. 나뭇가지를 때리는 겨울바람의 처연한 울음소리만 들리는 수덕사를 보기 위해 덕숭총림 수덕사 선문을 통과하였습니다. 



와!!!! 눈이다. 부산에서 좀체 보기 힘든 눈이 남아 있습니다. ㅎㅎ 반가움에 눈도 밟아 봅니다. 


'삼일수심 천재보 백년탐불 일조진'은 "삼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물은 하루 아침 이슬과 같다네" 참 좋은 법어입니다.


원담스님 부도탑을 지나면 덕숭산 수덕사로 들어서는 일주문이 반깁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덕숭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수덕사을 찾아 그야 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필자도 그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일주문 뒤쪽 현판에 동대제일선원인가요 누가 현판에다 지렁이 붙혀 놨네요. ㅋㅋ 좀 쉬운 글씨 채면 너무 좋은데 말입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이 머물렀다눈 수덕여관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덕숭산 수덕사 유래가 궁금합니다. 보통 천년사찰에는 한두가지의 창건설화가 전해오는게 정설입니다. 수덕사도 예외가 아닌 두가지 전설이 전해 옵니다. 



먼저 덕산 향토지의 내용입니다. 어느 마을에 수덕이란 도령이 살았는데 하루는 사냥을 갔다가 우연하게 낭자를 보고 그만 첫눈에 반하여 사랑에 빠집니다. 수덕도령은 그 낭자를 잊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건너 마을의 덕숭낭자 임을 알게 되어 청혼을 하지만 여러 번 퇴짜를 맞습니다. 끈질긴 청혼에 덕숭낭자는 자기 집 옆에다 절을 하나 세워 줄 것을 조건으로 걸면서 청혼을 승낙합니다. 그 날로 수덕도령은 불철주야 절을 짓기 시작합니다. 여러번 절을 완공하지만 그때 마다 절에 불이나 다 타버리고 맙니다. 또 다시 절을 짓기 시작하면서 탐욕스런 마음도 버리고 덕숭낭자도 잊고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절을 짓습니다. 절이 완공되자 낭자는 어쩔 수 없이 도령과 혼인을 하지만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껴안는 순간 하늘에 천둥번개가 일면서 덕숭낭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낭자의 버선 한 짝만 남았습니다.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였고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는데 버선꽃이라 합니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그 이후부터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 수덕사가 되었고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 덕숭산이 되었습니다. 



또한 전설은 수덕사가 창건 된 후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을 하게 됩니다. 불사를 일으키기 위한 불사금을 모우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어느 날 공양주를 자청하는 여인이 나타납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요즘 말로 절세미인이 수덕사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은 빠르게 인근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 날부터 수덕사에 여인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 때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어느 날 신라의 재상 아들인 정혜라는 사람이 소문을 듣고 수덕사를 찾아 와 여인을 보고 한눈에 반해 혼인을 하자며 청혼을 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수덕사의 대 중창 불사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청혼을 받아 들이겠다합니다. 이에 정혜도령은 자신이 불사금을 내어 절을 완공한 후 낙성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령은 여인보고 이제 같이 떠나자며 여인의 손을 잡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쩍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 짝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도 봄이면 바위 틈으로 버선을 닮은 꽃이 피는데 이를 버선꽃이라부릅니다. 야생화를 찍는다고 다닌 경험이 있는 필자가 자세히 보니 ‘골담초’ 꽃입니다. 골담초가 버선꽃으로 불리는 사실과 수덕사 창건 전설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 여인이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수덕이라 불렸으므로 수덕사라 부르게 되었고 정혜도령은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며 덕숭산으로 들어가 작은 절을 짓고 정혜사라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관음보살님 나빠요?????? 두 청년을 울리시니 말입니다. 흑흑(참고;수덕사 홈페이지)



덕숭산 수덕사 창건설화에 수덕도령과 덕숭낭자 정혜도령의 이름을 따 수덕사와 덕숭산, 정혜사가 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수덕사 대웅전을 향하기 위해 금강문을 들어섭니다. 금강역사 두분이 좌우로 험상궂은 모습을 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그 문을 통과하면 사천왕문이 나옵니다. 사대천왕이 지키고 있어 온갖 악귀로 부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늠름한 모습을 보니 나쁜 놈들은 이 문을 통해서 절 안으로 한발짝도 들어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근무중 이상무"



지금부터 수덕사 사찰 구경을 천천히 하면 됩니다. 




먼저 문화재 자료 제181호인 수덕사 7층 석탑입니다. 1931년 일제강점기때 만공대선사에 의해 건립된 석탑으로 기단을 만들지 않고 바로 탑신과 옥개석을 올렸습니다. 문화재의 문외한인 필자 눈에는 너무 높다보니 약간 엉성하며 불안하게 보입니다(개인적인 생각).  


웅장한 코끼리석등의 모습입니다. 


황하정루 아래로 나가면 됩니다. 편액은 덕숭총림 수덕사 전 방장 원담 진성스님께서 쓰신 글씨입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이 있는 수덕사 마당입니다. 



수덕사 금강보탑입니다. 중창불사를 하면서 전탑좌대가 현위치에 발견되어 고증을 거쳐 석탑을 세우고 금강보탑이라 하였습니다. 금강보탑 내부에는 1988년 원담대선사께서 스리랑카를 예방하면서 한·스리랑카간의 우의 차원에서 스리랑카로 스님으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증정 받았습니다. 수덕사에서 십수년간 친견 법회를 열다 2007년 금강보탑을 완공한 후 봉안하였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입니다. 1962년 12월에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고 현존하는 목조건물인 국보 제15호 봉정사 극락전과 국보 제18호인 부석사 무량수전 다음으로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정면3칸, 측면 4칸의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1937년 중수를 하면서 발견된 묵서에는 1308년인 충렬왕 34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의 단 아래에 위치한 수덕사 3층 석탑은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처음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된 탑으로 원효대사가 중수를 하였다하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른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기단은 2층이며 위층은 4매의 돌로 면석을 조립하였습니다. 또한 각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표현되었고 지붕돌인 옥개석과 몸돌은 각각 1개의 돌로 만들었습니다. 1층은 5개의 옥개 받침을 하였고 2층과 3층은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면에는 1단의 받침으로 그 위에 몸돌을 받치고 있으며 지붕돌은 끝이 치켜 올라갔습니다. 보륜만 남아 있던 상륜부는 현재 찰주, 보개, 복발, 노반을 새로 만들어 올렸습니다.







관음바위 앞에 봉안된 관음보살상입니다. 온화한 미소가 너무 나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입니다. 석가모니께서 입적한 후 56억 7천만년을 지나 미래의 부처인 미륵보살이 출현 할때까지 중생을 고통으로로 부터 구해주는 대자대비의 보살이 관음보살입니다.  







수덕사 창건설화가 전해지는 전설의 관음바위입니다. 갈라진 바위 틈으로 버선꽃이 봄이면 피어 난다고 하니 봄에 찾아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음바위를 지나면 덕숭산과 정혜사로 오르는 산길이 시작됩니다. 필자는 만공탑과 능인선원인 정혜사를 오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오르다 시간상 제약으로 그만 두고 사면 석불과 화소대를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하였습니다. 

사면석불입니다.



화소대 가는 오솔길

비구니 김일엽스님이 머물렀다는 화소대




두마리의 사자가 불법의 진리를 만방에 밝히는 석등을 들고 있는 쌍사자 석등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을 내려오면서 많은 관광객이 보고 있어 그냥 지나졌던 포대화상을 다시 만났습니다. 득남한다는 전설 때문인지 배쪽으로 손길의 흔적이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환회대도  만나고




금강문을 지나면 다시 일주문입니다. 오를 때 스쳐지나간 고암 이응노 화백의 수덕여관을 보기위해 찾아갑니다. 충청남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이응노선생이 작고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던 곳입니다.



수덕사 관람요금 안내


대웅전 양옆에는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백련당과 청련당이 있고 조인정사와 정혜사를 오르는 1,020계단, 미륵불입상, 만공탑, 금선대, 진영각등과 만공스님이 참선 도량으로 세운 정혜사가 있습니다. 또한 부속 암자로는 비구니스님들의 참선도량인 견성암, 선수암, 극락암등이 있으며 견성암에는 비구니들이 참신정진하는 덕숭총림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보물제1236호인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 보물 제1381호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복장유물, 수덕사 유물인 거문고 소조불상좌상등이 남아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수덕사를 다 만나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방문이라 수덕사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만났는데 혹 다음에 또 다시 수덕사를 방문할 기회가 찾아 온다면 정혜사와 견성암등을 위주로 돌아 보고 싶습니다. (참고: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문화재 안내판)

◆수덕사 주소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전화:041-330-7700



수덕사 경내 조감도




2015/01/16 - (충남여행/예산여행)고암 이응노 화백과 수덕여관. 수덕사 여행길에 꼭 들러봐야 할 곳 이응노 화백의 수덕여관.


2015/01/13 - (충남여행/예산여행)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국보 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을 만나다.


2015/01/04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 보원사지. 서해안 폭설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서산 보원사지 여행.


2015/01/02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상.


2014/12/31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간월도 간월암. 서산 낙조 일번지라는 간월도 간월암의 해넘이 구경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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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고성여행)남해안 3대 기도도량 고성 무이산 문수암을 찾아가다. 


남해를 바라보며 많은 암자가 있습니다. 남해도 금산의 보리암과 여수 금오산 향일암 그리고 고성 무이산 문수암을 남해 3대 기도도량으로 불립니다. 얼마 전 부처님오신날 직전에 찾아간 무이산 문수암은 그야말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자리에 절묘하게 자리를 잡아 남해 3대 도량의 첫 번째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조망이 좋았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 말사인 문수암은 신라 31대 신문왕8년(688년)때 의상대사가 창건을 하였습니다. 의상대사의 문수암 창건 설화를 보면은 대사께서 남해 금산(보광산)으로 기도를 가던 도중 이곳을 지나다가 얼 풋 선잠을 들게 되는데 그때 노승이 나타나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가보라”는 꿈을 꾸다 깨어납니다.



 



의상대사는 꿈결이지만 이상타 생각하며 아침을 맞았습니다. 과연 의상대사 앞으로 한 걸인이 걸어가는게 아닙니까. 어디로 가시는 길이냐고 물어보니 무이산을 간다하기에 의상은 같이 갈 것을 부탁하며 동행을 하게 됩니다. 



 




걸인을 따라 산속을 걸어가던 대사는 점점이 떠 있는 수많은 섬들과 무이산 정상부 아래를 이루는 천길 단애에 다섯 개의 바위가 마치 오대산의 오대 중 중대라 하며절경에 감탄을 합니다. 걸인과 대사가 큰 바위 앞에 다다르자 걸인이 바위를 가르키며 “저곳이 나의 침소다”하니 또 한 걸인이 나타나 함께 바위 틈새로 사라져 버려 의상대사는 두 걸인이 들어간 바위를 유심히 보며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 바위틈에서 문수보살을 보고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꿈속에 노승은 관음보살이고 두 걸인은 문수와 보현 보살임을 알게 된 의상은 이곳에다 문수단을 세우고 문수암을 창건합니다. 지금도 문수암 대웅전 안 오른쪽에 있는 바위 틈 석벽에 천연의 문수보살상을 볼 수 있도록 유리문을 달아 놓았습니다.


 

 




문수암은 의상대사 이후 많은 고승들이 거쳐 갔고 신라 화랑도가 이곳에서 심신을 연마하였을 정도로 산자수려한 모습으로 이곳을 오르는 모든 관광객은 감탄을 합니다. 문수암은 중창과 중건의 사료는 알 수 없고 워낙 급한 산비탈에 터를 닦아 세운 암자다 보니 사라호 태풍때 건물이 붕괴되어 새로 중건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71년 입적한 청담스님은 1955년 이곳 문수암에서 수도를 하였고 한국불교 정화운동과 통합 조계종 2대 종정, 총무원장등을 지낸 한국 불교계의 큰스님으로 1973년 신도들에 의해 문수암에 청담대종사의 사리탑이 모셔져 있습니다.

 



 

청담대종사 사리탑

 




 




 




 




 




천불전

 




 




 




 




 




 




오른쪽의 유리문을 보면 문수 보현 두 보살이 들어 갔다는 바위 틈을 볼 수 있습니다.

 




 




 




 




 



 




반야사 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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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공주여행)계룡산 갑사. 봄의 향기를 따라갔던 계룡산 갑사 가을 갑사못지 않습니다. 


지난 가을에 질정 없는 발걸음이 추갑으로 유명하다는 갑사로 옮기게 하였다면 이번에는 춘마로 유명한 마곡사를 찾아가든 길에 들러 보았던 계룡산 갑사. 명산에 명찰은 계절을 상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춘마추갑의 가을갑사라지만 봄의 갑사도 봄바람난 여행객의 발걸음을 잡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나뭇가지마다 봄기운을 받아서인지 연둣빛 색감으로 서서히 옷을 갈아입는 갑사 오름길을 그야말로 자연의 천국이라 불러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재잘거리는 새소리와 겨울을 지낸 다람쥐의 몸동작에도 봄의 소리를 아는지 흥이 묻어나 있습니다. 갑사를 오르는 오리의 숲길에는 지난 가을의 붉은 단풍은 어디론가가고 대신 노란 황매화가 마치 마이다스의 손 인양 갑사를 황금의 사원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상관없이 계룡산은 돋아난 용의 등처럼 울퉁불퉁한 능선이 갑사와 함께 어우러져 마치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습니다. 4월의 갑사는 한창 바쁜 모습입니다.





5월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위해 예쁜 오색 연등이 갑사 하늘를 수놓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소원을 담은 연등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계룡산 갑사의 창건은 고구려 아도화상입니다.





아도화상은 신라에 불교를 전래한 분으로 신라최초의 사찰인 선사의 도리사를 창건하고 고국인 고구려로 돌아가는 길에 계룡산을 지나게 됩니다. 그 때 상스러운 하늘의 기운이 계룡산을 비추니 아도는 그 빛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곳에는 천진보탑이 세워져 있어 부처님을 모시기에 위해 아도는 420년에 갑사를 창건합니다. 통일신라에는 의상대사가 갑사에 주석하여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도량의 법맥을 있게 됩니다.





부석사, 해인사, 범어사, 화엄사 등과 함께 계룡산 갑사는 나라의 으뜸사찰인 화엄10대 사찰중 하나가 됩니다. 임진왜란때 영규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곳이 갑사로 전국 최초라 하며 영규대사는의병장 조헌과 금산성 전투에서 왜적과 용감히 싸우다 전사를 하게 됩니다. 갑사의 표충원에는 휴정, 유정, 영규대사의 영정이 함께 모서져 있습니다.


   



물소리 바람소리도 더욱 정겹게 들리는 봄의 계룡산 갑사, 계룡산과 함께 찾는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2014/04/09 - (충북여행/공주여행)마곡사신록축제 국고개역사문화축제 공산성수문장교대식 공주여행 여행블로거기자단 팸투어


2013/12/27 - (충남여행/ 공주여행)공주마곡사. 춘마추갑도 좋은데 가을 마곡사도 너무 좋아요.


2014/04/17 - (충남맛집/공주맛집)계룡산 갑사맛집 서울식당. 자연밥상 건강밥상인 갑사 서울식당 산채더덕구이 정식으로 봄을 먹었습니다.


2013/11/24 - (충남맛집/공주맛집)계룡산 갑사 맛집 꽃피는산골, 단호박 오리구이 정식 퓨전요리가 맛있는 꽃피는산골


2013/12/15 - (충남여행/공주여행)계룡산 갑사, 추갑으로 유명한 계룡산 갑사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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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여행하기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는 고려 왕건의 전설이 서려 있는 태조산이 있습니다. 태조산을 냉산으로도 부릅니다. 이곳 태조산 7부 능선에 해동최초가람 태조산 성지 도리사가 있습니다. 천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신라 최초라는 가람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도리사를 보고 왔습니다.

 

 

 

 

경주 불국사 부산 범어사, 양산 통도사 김천 직지사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사찰이 이곳 도리사에서는 고개를 숙입니다. 도리사는 신라 눌지왕(417년)때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불교가 일찍 전래 되었지만 삼국 중에 유일하게 신라만 불교의 박해가 심하여 전파되지 않아 아도화상이 신라 포교를 위해 국경을 넘어 오게 됩니다.

 

 

 

 

아도화상은 선산 도개면에 있는 모례의 집 지하를 파고 굴실을 지어 거처하게 됩니다. 그럼 아도화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도는 중국 위나라 아굴마의 아들로 묵호자라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고구려 사람으로 고도령입니다. 중국에서 사신으로 온 아굴마와 연정이 깊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아도입니다.

 

 



 

 

아도가 5살이 되며 출가를 시켰고 16세에 어머니가 출가한 아도화상을 찾아와 모든 사연을 이야기하며 아버지가 있는 중국으로 보내게 됩니다. 아버지 아굴마를 만나고는 현창화상의 문하에 들어가 3년간 수행한 후 고구려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어머니 고도령은 아들인 아도를 다시 신라 땅으로 보냅니다. 저는 아도화상의 어머님을 보고 맹자의 맹모삼천지교가 생각납니다. 그 만큼 그어머니에 그 아들인것 같습니다. 아도가 신라 땅인 선산 모례의 토굴에서 생활하게 된 과정으로 그는 이곳에서 포교활동을 시작합니다.

 

 

 

 

선산군 도개면 도개동의 우곡마을에서 낮에는 소와 양을 기르고 밤에는 마을 사람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설하며 지냅니다. 그 후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세우고 경주(서라벌)를 댕겨 오다 태조산 아래 세운 절에서 엄동설한의 겨울인데도 복사꽃과 오얏꽃이 광채를 발하며 만발한 것을 보고 도리사라 하였습니다.

 

 

 

 

이게 신라 사찰의 기원이 되며 그 아래 마을을 도개마을이라 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그 당시의 전설 같은 지명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도가 소와 양을 천마리 길렀던 ‘양천골. ’우천골‘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고 도개동의 윗마을은 외양간이 있었다하여 ’우실‘ 모례장자의 집터는 ’모례장자 터‘ 그리고 우물인 ’모래장자 샘‘이 현재에도 남아 있습니다.

 

 

 

 

신라 최초의 가람인 도리사에는 최초의 수식어답게 국보 한 점이 나왔습니다. 1976년 세존진신사리탑을 보수 복원하던중 금동육각사리함(국보제208호)과 부처님 진신사리 1과가 나왔습니다. 그 사리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래할 때 모셔온 사리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은 적멸보궁 뒤 금강계단에 모시고 있습니다. 그때 출현된 금동육각사리함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 보관되어 있습니다.

 

 

 

 

도리사에서 꼭 보고 와야 할 곳이 있습니다.도리사 주차장 앞에는 서대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이곳을 100여m 돌아가면 도리사 최고의 전망대를 볼 수 있습니다. 해평면과 구미의 진산 금오산과 그 앞을 휘감듯이 흘러가는 낙동강이 너무 편안한 모습으로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그럼 도리사의 문화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극락전

도리사 극락전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 318호

극락전은 도리사의 부속암자인 금당암의 법당으로 19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 됩니다. 1807년의 ‘도리사 금당암 중창기’와 1876년 ‘선산 도리사 법당 중수기’를 보면 극락전이 금당암 자리에다 세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면 3칸, 옆면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때 여덟 팔자 모양의 팔작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으로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사이에도 다포 양식으로 꾸몄습니다. 도리사 극락전은 1970년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의 공포 구성과 같은 모습으로 내부는 대단히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극락전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석탑

도리사 석탑

보물제 470호

도리사 석탑은 화엄석탑이라 부르는 고려시대 석탑입니다. 국내 남아 있는 석탑 가운데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입니다. 앏은 지대석을 놓고 장대석을 세워 기단을 만든 판석으로 갑석을 삼고 그 위에 모전 석탑처럼 작은 석재를 쌓아 탑 신부를 구성하였고 노반위에 연꽃이 조각된 보주를 올려 놓았습니다.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 불량탑 시주질비

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 불량탑 시주질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1호

아조화상 사적비와 불량탑 시주질비는 도리사 석탑 왼쪽 비탈진 송림에 세워져 있습니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1655년(효종6년)에 세웠고 신라에 불교를 전한 사적을 적어 놓았습니다. 배면에는 자운비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자연석으로 전면에는 쌍용이 후면에는 4룡을 조각하고 그 사이에 운용을 조각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불량탑 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불량탑을 시사한 시주와 전답량을 기록한 것으로 1712년(숙종38년)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도화상사적비와 도리사 불량탑 시주질비 앞으로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놓여 있습니다. 흡사 고인돌이라 해도 믿을 것 같은 바위입니다. 네 개의 받침돌 위에 큰 바위를 올려놓은 모습으로 윗부분은 반듯하게 손질이 된 모습입니다. 이 바위가 아도화상이 낙동강과 해평면을 바라보고 와불의 모습을 한 금오산을 보며 도를 깨우쳤을 바위로 좌선대라 부릅니다.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도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14호

도리사 극락전에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1600년경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1968년에 개금 불사를 하였습니다. 개금시 불상 밑에서 1731년(영조7년)에 도리사를 중수한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 높이는 129cm, 견폭 61cm, 슬폭이 93cm이며 몸에 비해 불두가 크며 평면적이고 네모진 넓은 얼굴이 당시 불상 조각의 양식을 보여줍니다. 머리에는 낮은 나발과 작은 육계를 갖추었고 양미간 중앙에는 작은 백호가 있습니다.

 

 

 

세존사리탑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세조진신사리탑.

세조진신사리탑

삼성각 앞으로는 세조진시사리탑이 있습니다. 1976년 보수공사를 진행하면서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려 올 때 모셔온 세존진신사리가 금동육각사리함에 봉안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을 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직지사에 위탁 소장되어 있습니다.

 

 

 

 

직지사 홈페이지 캡쳐




도리사 극락전

 

 

 

 

 

 

 

 

 

 

 

 

 

 

 

 

 

 

 

 

 

 

 

 

 

 

 

 

 

 













태조산 도리사 일주문으로 도리사 사찰에서 4.5km 거리에 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과 도리사 홈페이지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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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시여행)냉산(태조산)도리사. 신라 최초 사찰 도리사의 특이한 석탑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는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냉산(태조산)에 있습니다 주위에 소나무가 많아 송곡리로 불려질 정도로 소나무의 운치가 천년고찰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도리사의 유래를 보면은 신라 눌지왕때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래한 고구려 아도화상이 이곳에 처음으로 절을 세웠습니다.

 




아도화상이 불교 포교를 위해 경주 땅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냉산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멀리서 바라본 냉산 골짜기에 한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화려한 모습으로 피어 있어 아 곳에다 절을 세우고 도리사라 하였습니다. 신라 최초의 사찰 답게 이곳에는 현재 특이한 모양의 도리사 석탑이 보물 제47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벽돌을 쌓은 듯한 도리사 석탑입니다. 모양부터 아주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탑은 도리사 극락전 앞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 석탑입니다. 높이는 3.3m. 우리가 많이 보아 오던 석탑과는 그 형태를 달리하는 모습으로 모전석탑에 가깝습니다. 땅위에 10매의 길게 다듬은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탑의 기단 부분을 세웠습니다.


 



기단은 사면에 네모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의 각 면에 직사각형의 판석 6~7매를 병풍처럼 둘러 세웠고, 남면 중앙부에는 문짝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 부분은 3중으로 각층마다 작은 석재를 중첩하여 얽거나 짜서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벽돌탑인 모전 석탑의 형태입니다.


 



조각 양식과 돌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엽의 석탑으로 추정하며 석탑의 위부분은 노반위에 연꽃이 조각된 보주를 올려 둔 형태입니다. 국내의 모전 석탑은 재가 본것중에서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청도 불령사 모전석탑이 전부인데 그 만큼 귀한 석탑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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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원동여행)천태산천태정사. 웅장한 아미타여래좌상과 협시보살이 세계최대규모인 천태사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자리 잡은 천태사는 층암절벽에 비집고 들어 앉은 사찰이다. 천태사를 품은 천태산은 양산8경의 하나로 깊은 층덤을 이룬 바위가 태산같이 이루었다하여 천태암산으로 불려졌는데 실제로 천태정사 뒤로는 깎아지른 암벽이 양립하여 금강산을 옮겨 놓은 모습이다. 지금은 위에 상부댐인 천태호가 산을 막아 용연폭포의 낙차는 거저 민망할 정도로 볼품없게 되었지만 현재도 천태사와 함께 가장 방문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가을철 신불암재로 올라가는 곳에서 바라보는 천태사 골짜기의 비경은 경남100경에 올라 있다.

 

  



 

필자는 이곳 천태사를 오래전 부터 찾던 곳이다. 주로 천태사 암자 뒤 바위인 천태슬랩에 암벽등반을 위해 찾았는데 그 당시 천태사는 조용하며 찾는이가 없는 한적한 절집으로 지금에 비해서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가면서 천태사를 찾는 관광객이 늘고 물금에서 삼랑진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드라이브 코스가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는등 하면서 천태사의 규모도 많이 확장되었다.  

 

 



천태사는 신라때인 원효대사께서 창건하였다한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그당시 많은 고승대덕이 이곳의 풍치에 매료되어 수도정진을 위해 찾았다는데 현재의 천태사는 옛 사찰의 모습은 찾을 수 없는 근래에 중창 불사가 된 사찰이다. 

 






천태사 맞은 편 바위 절벽을 깎아 내어 16m의 거대한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앙에 모시고 협시 보살인 왼쪽 대세지보살입상과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 입상을 새겨 놓았다. 장엄하며 웅장한 부처님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천태사의 안내판을 보면은 무량수궁 아미타대불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천태사 중건주 진우대사는 천일기도 중 현몽으로 마애삼존아미타대불이 이곳 천연암벽에 모셔진 것을 알고 5년간의 불사 끝에 2009년 6월28일 봉안식을 가졌다. 아미타 대불과 좌우 협시보살은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 삼존아미타대불이라 하며 그 앞에서면 크기를 실감할 수가 있다.
































☞(경남여행/양산원동여행)천태산천태정사. 웅장한 아미타여래좌상과 협시보살이 세계최대규모인 천태사 교통편.


대중교통은 양산시 물금읍 물금에서 천태사를 오가는 137번 버스를 타야 한다. 오전 7시25분, 10시, 낮 12시40분 등 6회 운행. 천태사 물금으로 나오는 차편은 오후 1시30분, 4시, 6시20분, 8시40분 출발. 부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하여 원동역에서 내리면 편리하다. 부산역발 무궁화 열차는 오전 6시35분, 8시42분, 9시25분, 10시27분에 있다. 원동역에서는 원동초등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면 천태사로 갈 수 있다. 네비는 천태사를 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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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 공주여행)공주마곡사. 춘마추갑도 좋은데 가을 마곡사를 보고 왔습니다.


마곡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의 태화산 아래 자리 잡은 천년 고찰입니다. 또한 마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6교구 본사로 ‘춘마추갑’이란 애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휘하에 계룡산의 동학사 갑사를 말사로 두고 있습니다. 봄에는 마곡사요 가을은 갑사라 하여 호사가의 입에 '춘마추갑'으로 오르내립니다. 그 뜻은 봄에는 마곡사요 가을에는 갑사라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태화산 마곡사는 봄꽃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일주문에서 마곡사까지 이어지는 왕벚꽃나무는 마곡사에서는 장관을 연출하며 역시 춘마곡하며 혀를 두르게 합니다.


 

해탈문



마곡사 사적입안 의 기록를 보면 640년(백제 무왕 41년)에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하였습니다. 1172년 고려 명종때 보조국사가 중수하고 범일대사~도선국사~각순대사를 거치면서 마곡사는 보수와 중수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영산전의 사액을 내렸다는 유서 깊은 마곡사입니다.


 



현재 마곡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마곡사에 있는 보물로는 대웅보전(보물제801호), 대광보전(보물제802호), 영산전(보물제800호), 오층석탑(보물제799호)사천왕문 해탈문 괘불, 목패, 세조가 타던 연, 청동향로가 유형문화재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감지금니묘법연화경 제6권(보물제270호)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제 269호)도 남아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마곡사 까지 이르는 길은 오르막이 없는 평탄한 길입니다. 다리를 건너면 먼저 만나는 것이 마곡사 해탈문입니다. 불가에서는 해탈문을 법계로 들어서는 문이라하며 마곡사의 정문입니다. 1987년 충청남도문화재 자료 제66호로 지정되었고 해탈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탈문은 겹처마 팔짝 지붕이며 건물은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기둥 사이에 모두 판장벽으로 돌려 막아 내부에는 금강역사상과 보현밀 문수동자상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해탈문을 통과하면 다시 마곡사 천왕문과 만나게 됩니다. 마곡사에서는 두 번째 문으로 호법신장인 사천왕상을 모신곳입니다. 마곡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우락부락하게 생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악귀와 모든 잡신을 물리치며 마곡사를 보호합니다. 1984년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되었고 1출목 익공식 공포를 짜 올린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박공지붕집입니다. 정면3칸 측면2칸으로 1910년 6월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마곡사의 영산전은 현재의 마곡사 건물중 가장 연륜이 오래된 건물로 1650년 중수되었다고합니다. 이곳에 고려시대에 만든 목불7구가 남아 있습니다.


  

천왕문



대광보전은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전설이 내려옵니다. 최근까지도 법당안에 삿자리가 깔려 있었다하며 1788년 중창되어 마곡사의 중심건물입니다. 내부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셨는데 건물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보도록 특이한 배치를 하였습니다. 이런 특이한 배치는 영광에 있는  불갑산 불갑사에서도 보았습니다. 





대웅보전은 대광보전 뒤 축대위에 2층 구조로 지어졌습니다. 내부는 통층구조로 되어 있고 전각 내부에는 싸리나무 기둥 이 네 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은 낳는다는 설화가 내려온다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많은 신도분들이 이곳 싸리나무를 만지며 돌아 싸리나무가 윤이 나도록 반질반질하다 합니다.  대웅보전은 대웅전이라합니다.  법화경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큰영웅이라는데서 유래합니다. 대웅이란 부처님의 몸을 의미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석하시는 집으로 1785년에서 1788년에 걸쳐 중수되었다합니다.



마곡사에도 명부전이 있습니다. 사람은 한번 이세상에 태어나면 모두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죽음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보면서 그동안에 쌓았던 업장을 지장보살님께 참외하고 소멸을 하는 기도처를 명부전이라 합니다. 필자도 천봉산 대원사에서 미리 유언장도 작성해 보는 그런 경험도 해보았습니다만 죽음 앞에서는 모두 다 겸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마곡사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멋드러진 마곡사 오층석탑입니다. 대광보전 앞에 중심을 딱 잡고 자리하고 있는 마곡사 오층석탑은 다보탑 또는 금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탑의 2층 네면에는 ‘사방불’을 세겨 놓았고 상륜부에는 특이하게도 청동의 풍마등이 조성되어 라마식 보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곡사 오층석탑이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마곡사 오층석탑은 특이한 이력이 있습니다. 나라의 기근을 3일간 막는 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합니다.  





마곡사에는 특이한 건물이 대광보전 한켠에 있습니다. 백범당으로 백범김구선생이 이곳에 출가하여 머룰렀다합니다. 백범김구선생은 1896년 일본군 중좌를 살해하고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그 후 탈옥하여 마곡사에서 몸을 숨기며 지내다가 법명을 원종으로 하여 출가를 한 이력이 이곳 마곡사에 남아 있습니다. 그 후 나라가 해방 된 후인 1946년 다시 마곡사를 방문하여 향나무를 식수하였는 데 이 향나무가 백범나무로 불리고 있습니다.





마곡사에는 울울창창한 나무의 봄기운을 받으며 걸을 수 있는 많은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솔바람길, 백범길등 처연히 떨어지는 동백꽃이 안스러운 겨울이 지나면 만물이 생솟음치는 봄이 찾아옵니다. 봄과 함께 이곳 마곡사를 찾아보길 권합니다. 아마 ‘춘마곡’의 아름다운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필자는 춘마곡도 춘마곡이지만 빨간 낙엽이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마지막 가을 바람을 타고 갔습니다.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마곡사에는 그래도 아쉬움을 달래주는지 마지막 단풍이 제 색깔을 보여 주며 화려하게 입구를 장식하여 너무 좋은 가을 풍경을 접하고 왔습니다. 새봄이 찾아오면 다시 마곡사를 찾아갈 요량입니다. 질정없이 마음이 자꾸 마곡사로 가지는 것이 몸만이 아닌 마음도 마곡사의 봄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마곡사 홈페이지 발췌)


 




범종루







마곡사 오층석탑































대웅보전





































응진전










백범나무













대광보전































































◆공주 마곡사 찾아가는 길◆

마곡사 홈피 발췌



◆공주 마곡사 대중교통편과 시간표◆

마곡사 홈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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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영광여행)특이한 모양의 기둥에 깜짝, 불갑사 일주문. 일주문의 기둥이 두개.


천년고찰을 찾아 들어가는 길목에는 반드시 출입문격인 일주문을 지나게 된다. 절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으로 사찰의 규모를 나타내기도 한다. 보통  사찰에 따라 따르지만 일주문을 흔히 조계문이라고도 부른다. 범어사의 일주문은 조계문으로 부르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위풍 또한 당당하다. 두개의 기둥이 일반적이지만 범어사 일주문은 네개의 기둥이 한일자 모양을 하고 있어 웅장하며 장엄함을 함께 보여준다. 

  









(전남여행/영광여행)울퉁불퉁 특이한 모양의 기둥에 깜짝, 불갑사 일주문. 일주문의 기둥이 두개.


불갑사를 찾아가는 입구에도 큰 규모의 일주문이 반긴다. 다른 사찰의 일주문 보다 엄청 높고 웅장하며 공포에서 풍겨나오는 무게는 여타 사찰에서 느껴보지 못한것 같다.  불갑사의 일주문은 두개의 기둥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 기둥이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찰의 기둥은 깨끗하게 다듬은 원기둥을 사용한다. 그러나 불갑사의 일주문은 나무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기둥을 삼았다. 그러다 보니 울퉁불퉁한 가지가 정리가 되지 않은 모습으로 일주문을 받치고 있어  한번더 불갑사를 생각하게되는 것 같다.  대개 일주문등 큰기둥에는 수입목을 사용하지만 불갑사 일주문은 우리 느티나무를 자연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불갑사 여행시에 일주문의 기둥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해보세요 








(전남여행/영광여행)특이한 모양의 기둥에 깜짝, 불갑사 일주문. 일주문의 의미 알아보기.


일주문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조계문으로 불리는 일주문은 만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져 있어 삼해탈문이라고도 한다. 즉 세속의 번뇌와 흐트러진 마음이 조계문을 통과함에 따라 마음을 다잡으며 진리의 세계로 들어 왔다는 것. 즉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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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김해여행)신어산 동림사. 인도의 태자 장유화상이 창건 동림사.


 김해시의 주산인 신어산은 김해시를 둘러 하나의 울타리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에도 신어산은 엄마의 품속 같이 넓고 아늑하여 김해 시민에게는 휴식처로서 그 역활을 다하고 있다. 김수로왕의 가야시대에도 신어산은 지금과 같은 역활을 하지 않았을까.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왕옥은 인도의 아유타에서 오빠인 장유화상과 함께 돌배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경남여행/김해여행)신어산 동림사. 인도의 태자 장유화상이 창건 동림사.남방전래설을 주장(?).


장유화상은 아유타의 태자지만 승려로서 불교를 전래하였다. 국내에서 아직 공식적으로는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처음으로 불교를 전래한 인물로 회자된다. 장유화상에 의해 불교가 북방전래설로 들어 온것을 뒤집고 남방전래설로 들어 왔다며 그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와 유물이 현재 남아 있어 더욱 신빙성을 준다.





☞(경남여행/김해여행)신어산 동림사. 인도의 태자 장유화상이 창건 동림사.가락국의 안전과 번영을 염원하며 창건.


허왕옥의 오빠 장유화상은 이곳 가락국에서 서림사(현은하사) 동림사. 영구암, 부은암. 모은암, 장유암등 수많은 사찰을 창건하는데 오늘은 신어산의 동림사를 댕겨 왔다. 동림사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장유화상이 지금의 은하사(서림사)와 함께 가락국(43~532) 초기에 세웠다. 그 당시에는 규모가 꽤 큰 사찰로 서림사와 동림사를 창건하였는데 서림사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림사가 되었다한다. 장유화상이 이곳 동림사에 담은 뜻은 부처님의 뜻으로 가락국의 안전과 번영을 염원하며 창건을 하였다하며. 






☞(경남여행/김해여행)신어산 동림사. 인도의 태자 장유화상이 창건 동림사.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화엄스님에 의해 중건.


1500년의 법통을 이어오던 동림사는 1592년 임진왜란과 함께 소실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후 영구암에서 주석하시던 하엄스님이 잡초로 뒤 덮혀 있던 이곳을 찾아내어 현재의 도량으로 일구었다. 현재의 동림사는 최근에 올려진 사찰로 지장보살을 불전에 모시고 있다. 






☞(경남여행/김해여행)신어산 동림사. 인도의 태자 장유화상이 창건 동림사.은하사보다 한적한 동림사.


동림사는 일천한 역사에 비해 현재 남아 있는 문화재는 없지만 신령스러운 물고기란 뜻의 신어산를 뒤로 두고 분잡한 은하사에서 비해 한적하며 조용한 사찰로 한번쯤 찾아가 볼만 하다.






다대포에서 바라보면 거북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신어산. 그아래 자리잡은 동림사의 모습이 너무 조용하다.







대원보전




대원보전안에 모신 지장보살







동림사에서 머리를 들어보면 보이는 영구암의 모습




마침 찾아간 시간이 늦은 시간이라 비구니스님이 범종을 치고 계시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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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김해여행)신어산 은하사 범종루 의 나무 기둥에 경악.

 

신어산의 은하사에는 특별한 건물이 있다. 먼저 은하사 경내를 들어서면 절을 대표하는 대웅전도 아니요 우리를 압도하는 목조건물은 2층의 범종루다. 굵은 나무를 다듬은 듯, 다듬지 않은듯 생긴 모습 그대로 기둥을 삼아 2층을 올린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나무 하나하나의 둘레를 보면 장정 두세명이 두팔을 벌릴 정도로 크며 굵은 밑 둥치를 보면 2천년 역사인 은하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곳 범종각은 2000년경에 세워졌다하니 짧은 역사에 비해  감동은 더 없이 크게 느껴진다.

 



 

 

 

 

☞(경남여행/김해여행)신어산 은하사 범종루 의 나무 기둥에 경악. 은하사 달마야 놀자 촬영 사찰로 유명

 

 

김해와 부산에서는 은하사를 알 고 있지만 영화 '달마야 놀자'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지명도의 사찰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사실 이곳은 오랜 역사에 비해 변변한 문화재는 보기 힘들다. 그중 대웅전과 그 안밖으로 그려진 벽화 정도인데 이리 어마무시한 범종루를 만나게 되니 필자가 몇군데 가보지 않았지만 가장 크며 장엄한 범종루로 보여진다. 

 

 

 

 

☞(경남여행/김해여행)신어산 은하사 범종루 의 나무 기둥에 경악. 현수막등으로 경관 훼손.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범종루를 축대 높이로 맞추다 보니 2층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범종 목어등은 모두 2층에 올려져 있고 1층은 그냥 하나의 빈공간으로 남아 있는데 이것이 문제다.  종루 건물은 많은 시주를 들여 삐까번쩍하게 지어 놓고 1층 안을 들여다 보니 창고처럼 사용을 하고 있는게 관광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리고 기둥에다. 홍보용 현수막을 막 묶어 두는게 처음부터 기둥을 이리 현수막 묶는 기둥으로 사용을 할려고  만들었지는 않을 것이다.

 

 

 

 

☞(경남여행/김해여행)신어산 은하사 범종루 의 나무 기둥에 경악. 부산 김해시민에게 유명 사찰.

 

 

은하사를 찾는 관광객에게 좀더 나은 은하사로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도 현수막은 따로 걸 수 있는 기둥을 세워 질서 정연하게 걸고 1층 종각안과 밖의 잡동사니들을 치워 더욱 멋진 범종루을 보여 주면 관광객의 한사람으로 너무 좋을 것 같다.  그리하면 은하사의 범종루는 단연코 더욱 유명세를 떨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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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말사인 신어산 영구암. 맑은날 대마도도 바라보인다.





☞(경남여행/김해여행)거북이의 머리 부분에 위치한 신어산 영구암


영구암은 김해의 영산인 신어산의 8부에 자리를 하고 있다. 영구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 14교구 범어사의 말사이다.   





  

영구암 대웅전



☞(경남여행/김해여행)거북이의 머리 부분에 위치한 신어산 영구암. 범어사 말사.


창건 연대는 영구암도 은하사나 동림사와 비슷한 시기로 보고 있는데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인 승려 장유화상(허보옥)과 가락국 수로왕의 왕비로 허왕후(허왕옥)가 오빠인 장유화상과 함께 돌배를 타고 이곳 부산 강서구 망산도에 당도한 전설은 모두 알 것이다.




영구암 삼성각,



☞(경남여행/김해여행)거북이의 머리 부분에 위치한 신어산 영구암. 인도의 장유화상에 의해 창건.


그의 오빠 장유화상에 의해 후한 광무제 건무 18년(서기 42년)에 이곳 신어산의 서림주산에 김수로왕의 원찰인 영구암을 창건하였다 




삼성각내부



☞(경남여행/김해여행)거북이의 머리 부분에 위치한 신어산 영구암. 창건당시 구암사로 불리어.


신어산 정상부를 둘러 싸고 있는 바위병풍이 다대포 몰운대 방향에서 보면 거북이가 지혜의 바다로 중생을 태우고 나아가는 듯한 모습이라하여 창건당시에는 구암사로 불렀다.




영구암의 3층석탑의 노반.



그리고 영구암 주변으로 삐쭉삐쭉 기치 창검이 솟아 있어 영남에 오른쪽 금강을 의미하는 '우령 금강산'이란 명문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신어산은 거북이 몸체이며 영구암이 위치한 곳이 거북이 머리라 하여 영구암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다.







신어산의 이름에서 보듯 영구암 법당 밑의 우물에서 ‘신령스런 물고기’인 신어가 살았다는 전설에 의해 가야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영구암 삼층석탑의 자리는 거북이의 머리에 해당하며 그곳에서 본 전망은 일망무제다.




☞(경남여행/김해여행)거북이의 머리 부분에 위치한 신어산 영구암. 영구암 삼층석탑은 인도간다라 양식의 노반.


영구암 3층석탑이 자리한 곳에서 남으로는 맑은날 일출과 함께 일본의 대마도가 선명하며 일몰은 가락국에서 영구암이 으뜸이라하였다. 그리고보면 해뜰때 일출과 일몰을 같이 볼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을 것 같다.   



 




 흥덕왕때는 현재 영구암의 뼈대인 축대를 쌓아 고려때에 불상과 삼층석탑을 조성하여 사세를 지켜오다 근자에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법당을 세우며 여러번의 중수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대웅전 앞에 고려때 세워진 영구암 삼층석탑이 있다.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473호며 신어산의  거북이 머리부분에 해당되는 돌출된 바위위에 세워져 있다. 






원래 삼층석탑으로 추정 되는데 남아 있는 석탑의 모양은 상 하대갑석과 1,2,3층의 옥개석과 노발 그리고 복발부분이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부재로 보면 고려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추정되며 다른 석탑과 다른 특이 점이 발견되었다. 노반과 복발이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인도 간다라 지역 탑을 축소시켜 놓은 모습이라한다.





대웅전 내부


























흥덕왕때 처음 쌓았다는 영구암 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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