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와 함께 창녕군에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그러니까 창녕군에서 두 점의 국보 중 하나가 이곳 술정리 동 삼층석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있는 것을 보니까 같이 술정리 서 삼층석탑이 어디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전화:055-530-1473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2015/12/18 - (경남여행/함안여행)용화산 능가사. 남지철교와 낙동강을 끼고 앉은 최고의 절집 용화산 능가사 여행하기.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맞습니다. 술정리 서 삼층석탑도 있으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 사찰로 보기에는 힘들어 보였고 술정리 동·서삼층석탑으로 명시된 것에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인근에 절의 표시나 절을 알리는 당(깃발)을 묶은 깃대를 고정한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일단은 사찰 터가 있었다고 생각되었으며 품었던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당시 가람배치의 형태는 대웅전 앞쪽에 좌우로 각각의 탑을 세우는 2탑 1금당 형식이며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절터에서 동·서 어느 쪽인지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라 이름 한 것도 1km쯤 떨어진 서쪽의 삼층석탑(술정리 서 삼층석탑. 보물 제502호)과 알기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진 명칭이라 합니다.







2004년 11월 (재)동아문화연구원에서 낸 보고서에서는 “2002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동삼층석탑에 대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고 석탑을 둘러싼 주변 사지(寺址)의 규모와 성격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의 수집을 위해 이 일대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한 결과, 동삼층석탑 주변 일대의 민가와 담장 등에서 확인되는 석재와 각종 문헌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 ‘인양사(仁陽寺)’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술정리 동 삼층석탑 일대는 인양사지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번 창녕여행에서 창녕 군청 옆 비각 안에 인양사 조성비를 보고 왔던 터라 그 조성 비문에서 인양사조성비를 금당 뒤쪽에 세웠다고 추정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 부근에 절의 중심건물인 금당이 있었고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인양사 삼층석탑이라 보면 인양사의 규모는 정말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이층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입니다. 

그리고 불국사의 석가탑과 비슷한 모습에 군더더기 없는 절제미에 위풍과 당당함을 갖춘 아름다운 탑이며 경상남도에 남아 있는 석탑 중에는 가장 오래된 탑입니다. 

일명 ‘사지탑(寺址塔)’이라고 불리는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1965년 해체복원을 했습니다.





당시 해체를 하는 과정에서 3층 몸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잔형사리용기, 사리병과 사리7과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현재 상륜부는 모두 남아 있지 않으며 납의 높이는 5.75m에 이릅니다. 

또한, 탑은 크고 웅장하며 기품있는 모습입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이층의 기단을 올렸습니다. 

아래 기단과 위층기단의 각 면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가운데 기둥인 두 개의 탱주를 새겼으며 몸돌은 각 모서리에 우주만 새겼습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끝 모서리님 귀가 약간 들렸습니다. 

그 아랫면에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2008년 10월~2009년 7월까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에서 석탑의 서편지역에서 문지로 보이는 건물지 1동과 계단 유구, 일부만 남아 있는 3동의 건물지를 확인했습니다. 

고려 시대로 보이는 건물지 1동에서 ‘송림사’ 명문이 들어간 기와가 발견되어 한때 송림사로 불렸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술정리 동삼층석탑을 보고 난 뒤 그 너른 광장 끝에는 국가 민속문화재 제10호인 창녕 진양 하씨 고택이 있습니다. 

이집의 특징은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초가집이란 점입니다. 

대문채에도 초가지붕이라 처음에는 이게 문화재인 초가집이구나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진양 하씨고택인 초가집은 이 대문채가 아니고 대문을 들어서면 그 안쪽에 자리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습니다. 

대문에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평일에만 개방하고 주말에는 폐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요일에 찾았던 터라 개인 살림집인 고택 주인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멀리서 찾아간 우리로서는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대문채 앞으로 기와건물인 사랑채가 있고 그 뒤에 초가지붕인 안채가 있어 밖에서는 까치발을 들어도 보고 보일만 한곳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아도 초가집이 워낙 낮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으며 다음번에 평일 날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구조는 4칸의 일자형 건물로 흔히 말하는 초가삼간입니다. 

맨 왼쪽 1칸은 부엌이며 그다음은 안방 1칸에 대청이 1칸, 대청과 연결된 건넛방이 1칸입니다. 

728x90

728x90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창녕 군청을 지나 왼쪽 아담한 산봉우리에 팔각정이 보였습니다. 

이곳이 창녕읍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손색없는 창녕문화공원입니다. 창녕문화공원을 찾다가 그 전에 왼쪽 아파트와 개인 주택 사이에 둘러싸인 밭 가운데 비각이 보였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창녕 인양사 조성비였습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번지

창녕 인양사 조성비 전화:055-530-1472




2013/01/07 - (경남여행/창녕여행)제주도 돌하르방이 왜 여기, 관룡사의 비보역활을 한 창녕 관룡사 석장승

2013/01/11 - (경남여행/창녕여행)관룡사 용선대.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반야용선을 의미,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좌상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관룡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부도탑이 원구형의 탑신에 불안. 관룡사부도탑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깨닮음을 얻어 도통할 것 같은 청룡암. 관룡사 청룡암.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2016/09/24 - (창녕여행)창녕석빙고. 요즘 같은 지진에 더욱 빛나는 우리 문화재, 석빙고의 무지개 천장에 내진 설계가 적용된 조선시대 얼음창고 창녕석빙고.




언뜻 생각해도 옛날에 인양사를 창건하면서 그에 관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문화재를 찾아다녔고 폐사지 여행을 다녔지만, 불상의 복장유물에 종이로 기록한 것은 여럿 보았지만 이리 비석에 사찰의 조성 기록을 남긴 것을 보는게 창녕 인양사 조성비가 처음 입니다.

 


일단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미라 창녕문화공원을 잠시 미루고 인양사조성비를 보기로 했습니다. 

창녕인양사 조성비는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좁은 폭에 양면에다 남쪽은 인양사 조성기록을 새겼으며 북쪽인 뒷면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는 통일신라시대인 771년(혜공왕 7년) 인양사 종을 만들면서부터 조성비를 세운 810년(헌덕왕 2년)까지 40년간의 행적을 기록해서 세운 비로 인양사(仁陽寺) 비상(碑像) 이라고도 합니다. 

인양사 금당 뒤쪽에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일대에서 신라와 고려 시대 때 만들어진 기왓조각 등이 여러 발견된다고 하며 규모로 봐서는 큰 규모의 사찰로 여겨집니다. 

이런 조성비까지 세워진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양사 조성비는 직사각형의 바닥돌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올렸습니다.





인양사 조성비의 비문을 보면 10행에 각 행은 28자로 해서체에서 변형된 육조체라 합니다. 

비문은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실려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인양사와 인양사와 관련 있는 여러 사찰의 범종, 석탑, 불상과 금당, 요사 등의 조성연대와 제반 사항을 빠짐없이 기재해 놓았습니다.



뒷면에 조각한 스님의 형상은 지장보살이라는 설도 있으며 인양사를 조성하면서 관련된 고승을 비석에 새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는 금석문과 연대가 확실한 불상 조각으로 귀중한 문화재라 합니다.

 


현재 인양사지에 지키고 있는 유일한 유물이지만 머리가 유실된 석불좌상 1구도 함께 있었다 하나 현재 석불좌상은 창녕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이 인양사조성비에는 6.25 한국동란에 비석의 서쪽과 북쪽에 총탄흔적이 있다 하며 이번 여행에 확인을 못 했습니다.

 


비석의 높이는 1.58m이며 폭은 48cm, 두께는 18cm이며 1963년 1월에 보물 제227호에 지정했습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