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진안여행/진안가볼만한곳)마이산 고금당 나옹암. 마이산 전망 일번지 고금당 나옹암을 찾아가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 하면 언뜻 생각나는 게 말의 두 귀를 닮은 바위봉우리와 사람의 힘으로 쌓았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탑사입니다. 이갑용 처사가 30년 동안 쌓았다는 돌탑은 “불가사의”라 합니다. 현재 탑사에는 돌탑이 80여 기가 있습니다.






고금당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탑사가 마이산도립공원을 대표한다면 광대봉의 고금당과 나옹암은 마이산의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또하나의 볼거리입니다. 그 때문에 마이산을 찾는 등산객은 반드시 고금당과 나옹암, 마이산과 탑사는 빼놓지 않고 보고 옵니다.

 

 

고금당은 탑영제 아래에 있는 금당사의 모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처음 금당사가 있었다는 곳이 현재 고금당 자리입니다. 바위 면에 절묘하게 자리한 고금당은 고려말의 고승이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의 수도처인 자연 석굴입니다.

 

 

나옹화상께서 수도했던 굴이라 하여 나옹암·나옹굴이라 부르며 현재에는 석굴 입구에 목탑의 형식을 갖춘 독특한 모양의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 외관은 고금당과 함께 누런 황금색을 입혀 규모는 작지만, 꼭 황금색 사원을 보는 느낌입니다.

 

 

 

 

 

 

고금당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왔던 보덕스님의 제자 무상스님과 스님을 따르던 금취가 650년인 백제 의자왕 10년에 금동사로 처음 창건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해서 혈암사로 불리다가 절을 옮기면서 옛터에 있던 절은 고금당이라하고 옮겨와 다시 세운 절은 금당사가 되었습니다.

 

 

 

 나옹암

 

 

현재 고금당의 법당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좌우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셨습니다. 고금당에서 바라보는 마이산의 경치는 가히 감탄사가 연이어 터질 정도로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옹화상이 도통했다는 굴이자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꿈속에서 금척을 받아 훗날 조선을 건국했던 개국의 성지가 마이산 나옹굴이며 ‘금척천명지(金尺天命地)’라 칭합니다.

 

 

 

 

한, 동학농민의 녹두장군 전봉준 딸도 이곳 나옹굴에서 10여 년 동안 숨어 지냈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호남최초의 민중항쟁인 항일의병결사 창의동맹이 처음 시작되었던 애국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고금당 

 

 

어느날 이성계는 꿈속에서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고 깨어납니다. 그 후에 아지발도가 이끈 왜구와 남원의 운봉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마이산을 보고 이성계는 얼마 전 꿈에 금척을 받았던 곳과 주변 모습이 똑같았기에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이성계는 땅에서 솟았다는 용출산을 “선인에게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거 같다”하여 속금산(束金山)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성계의 성씨인 이(李)자가 나무목(木)이 있는 목성이라 금(金)성 과는 상극에 해당하여 “금의 기운을 묶어둔다”는 뜻이라 합니다. 그 뒤에 태종이 이 산을 보고 말의 귀와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한 게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성계의 전설이 남아 있는 천하절경 고금당과 나옹암을 가는 길은 마이산 남부 매표소를 지나 밀집한 상가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600m 거리에 2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룡대 전망대에서  본 나옹암과 고금당입니다. 

728x90

728x90




☞(전북여행/임실여행)성수산 상이암. 왕건과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다는 왕의 산 성수산 전설.


임실의 성수산은 장수의 팔공산에서 흘러 내려온 능선으로 이전에는 성수산도 팔공산으로 불리었다한다. 지금의 성수산으로 바뀌게 된 것은 태조 이성계의 전설로 인해 성수산으로 부르게 되었고 임실의 주산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성수산의 지세와 산세가 보통이 아니었는 것 같다.고려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을 한 두 스님이 일찍부터 이 산을 천자가 날 산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점 찍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신라말에 도선국사는 왕건에게 성수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게 하였다. 그 후 그는 궁예를 몰아내고 신라를 굴복시켜 고려를 세워 왕이 되었다. 왕건은 관음보살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 준 것을 크게 기뻐하며 그곳을 환희대라 명명 하였고 도선국사는 그 자리에 도선암의 암자를 지었다.









고려의 왕권도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고 1380년 이성계는 아지발토와 운봉의 황산벌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려 승리하며 이를 황산대첩이라 부른다. 이성계는 전장에서 승리를 하고 부하장졸들은 다시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낸 뒤 그의 장수 8명과 함께 남원을 거쳐 개경으로 가기위해 전주로 가던중 일전에 무학대사가 그의 야심이 보통이 아님을 알고 이곳으로 안내하여 백일기도를 드리게 한것이 생각나 이성계는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올 것인가 생각하여 성수산의 상이암으로 발길을 돌려 찾아간다. 그는 그곳에서 하늘의 신에게 마음을 다하여 기도를 올리게 된다.


 



마침내 하늘도 그 정성에 감복을 했는지 하늘의 문이 열리며 어디선가 “성수만세” “성수만세” “성수만세”하며 세 번의 외침으로 화답을 하는데 이성계는 크게 기뻐하며 ‘삼청동’이라하였다. 그때문인지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여 권좌에 오르고 도선암은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하여 상이암이라 고치게하였다. 이성계는 성수만세를 3번 들었다하여 친필로 삼청동을 직접 쓴 바위를 하사하여 어필각을 지어 보존하게 하였다. 지금도 전주이씨종친회에서는 이곳을 전주이씨의 발상지로 여기고 있을 정도라 한다.


 




지금 상이암의 자리는 구룡지지의 명당으로 상이암에 삼청동이 모셔진 어필각 뒤 암봉이 용의 여의주라 한다. 여의주에 올라 기도를 하면 하늘의 기운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요즘에도 찾는이가 많다는 이야기다.







성수산 상이암을 오르는 길은 아름다운 숲속길이다.  성수산자연휴양림의 울울창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10월의 성수산은 피빛이 뚝뚝 계곡으로 떨어져 붉은 단풍을 물들게 한다. 이 가을에 이성계의 성수만세 소리야 우리 같은 소시민은 들을 수 없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세의 기운은 폐부의 찌든 마음을 치유하고도 남음이 있다. 상이암의 약수도 들이켜 보자. 하늘의 소리가 들리까 싶어 두귀도 쫑끗 열어두자. 그것이 아니라도 상이암 자체만으로도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하겠다.





☞(전북여행/임실여행)성수산의 상이암. 도선국사사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 현재는 선운사 말사.  


상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로 선운사의 말사다. 875년인 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고 1394년 인 태조 3년에 각여가 중수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불타 1909년 대원에 의해 중건되었다. 한일합방으로 이절을 근거지로 항일운동이 일어났는데 왜인들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건 되었다 1950년 한국동란때 다시 불타는 아픔을 겪는다. 현재의 건물은 1958년 상이암재건위원들이 세웠다한다. 경내에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4호로 지정된 부도가 3기 남아 있다.







































이성계의 친필로 쓴 삼청동 각자.










중앙에 삼청동 바위가 보관되어 있는 어필각이며 그 뒤 암봉이 용의 여의주라한다.




도선암이었던 암자를 이성계는 상이암으로 고쳤다.
















부도탑.


































728x90

728x90












 

 






 



흔히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면 그의 아들 문무왕에 와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도 동해의 용왕이 되어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기 위해 유언을 남겼다 한다.
그래서 신문왕은 그의 아버지를 경북경주시 감포 앞바다에 수장을 시켰는데 그를 수중릉 또는 대왕암이라 부르며 호국의 용이라 한다. 그 호국의 용이 뭍에서 흔적을 남긴곳이 있다.

 




지금 삼척의 죽서루 옆 자연석으로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용이 지나간 흔적의 자연석에 큰 구멍이 뚫여 있는데 이곳을 두고 신라30대 문무왕이 죽은 후에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오십천을 타고 올라와 죽서루의 벼랑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한다.
문무왕이 화한 호국용이 이곳 죽서루 옆의 자연석을 뚫고 지나간 흔적이라 하여 이곳에서는 용문바위라 부런다.




지금은 이 바위의 아름다움과 나라를 지킬려고 호국용으로 변한 문무왕의 전설때문이지 이굴을 통과하면 무병하고 장수하며 그리고 다복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와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이곳을 찾고 있다. 문무왕은 죽어서라도 이 나라를 지킬려고 한 그의 모습에서 용문바위에 내려오는 그의 전설이 허구가 아님을 믿고 싶다.


그리고 이 용문바위에는 선사시대때부터 내려온 암각화가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가까운 울산의 방기리알바위처럼 여자의 생식기를 나타내는 둥근 구멍이 뚫여 있는데 이를 두고 성혈암각이라 한다.
성혈은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원시신앙으로 다산, 풍요, 생산등을 의미한다. 지금도 전국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성혈암각은 죽서루의 용문바위 부근에도 10여개 확인되고 있다.




















 

1991년 2월에 문화부는 송강정철의 날로 정하고 그의 가사문학의 업적을 기리기위해 관동팔경의 1경인 이곳 죽서루와 담양의 성산별곡의 무대인 식영정 인근에 각각 기념하는 탑을 세웠다 한다.

지금도 죽서루 한켠에는 그의 ‘송강정철가사의터’라는 비가 남아 있으며 높이 2m의 팔각기둥에 8각의 기단을 두었는데 각 면마다 그의 대표작과 친필, 수결, 가사창작의 배경등이 세겨져 있다.






 

 

찾아가기
부산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경주IC에서 빠져나와 서라벌대로 2.1KM 이동후 오릉네거리에서 포석로 시내방면으로 2.2KM 이동후 좌회전한다. 내남네거리에서 태종로 시청, 시의회(울산,감포)방면으로 우회전 후 697M이동한다. 팔우정삼거리에서 원화로 경주시청(포항)방면 으로 좌회전후 2.1KM 이동하면 원화로 지하차도 진입후 9.9KM 이동한다. 7번국도를 따라 산업로 고가도로 진입후 7.5KM 이동후 유금IC에서 영덕(울진)방면 우측도로로21.3KM 이동한다. 광명휴게소에서 동해대로 159.6KM 이동한다. 동해대로 새천년도로 삼척항(강릉 동해)방면으로 우측도로 328M 지난후 삼척교사거리에서 오십천로 시청 태백 방면으로 좌회전후 1.8KM 이동한다. 죽서루앞 삼거리에서 죽서루길, 삼척문화원(죽서루) 방향으로 좌회전 하면 죽서루가 보인다. 네비게이션에 삼척 죽서루 검색을 하면 된다. (다음지도 이용)



공양왕릉

 

삼척 근덕면 궁촌리에 가면은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릉이 있다 한다. 궁촌왕릉이라 부르는 이왕릉은 그의 아들 왕석, 왕우 3부자의 묘로 전해지고 있다.
1392년 공양왕 4년인 7월에 이성계가 이씨조선을 건국하며 왕위에 오르자 8월에 전왕을 폐하여 공양군으로 강등하여 강원도 원주로 귀양을 보내게 되었다.
혹 모를 옛 고려충신들과의 접촉등을 꺼려 불안한 나머지 다시 3부자를 간성으로 옮겼다.
그곳에서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어 1394년 태조3년인 3월 14일 지금의 왕릉인근인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로 귀양지를 옮기게 한후 한달 뒤인 4월17일 사약을 내려 모두 죽였다.



그 후 귀양 온 공양왕이 죽어 묻혔던 곳으로 전해지게 되는데 다시 경기도 고양시 식사리로 옮겨 갔다고도 한다. 그곳에도 공양왕릉이라하여 왕비릉와 함께 사적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연유를 보니 1421년인 세종3년 1월13일에 공양왕의 공주였던 단양군 이성범의 처가 임금에게 상소를 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공양왕으로, 그의 어머니를 왕비로 추봉을 하여 공양왕릉을 정릉으로 정한 기록이 현재 남아 있다.
이곳은 1837년 헌종3년 가을에 삼척부사 이규헌이 개축하였고, 1977년 삼척군수와 근덕면장에 의해 개축 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강원도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어 있다.

 








 

찾아가기
부산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경주IC에서 빠져나와 서라벌대로 2.1KM 이동후 오릉네거리에서 포석로 시내방면으로 2.2KM 이동후 좌회전한다. 내남네거리에서 태종로 시청, 시의회(울산,감포)방면으로 우회전 후 697M이동한다. 팔우정삼거리에서 원화로 경주시청(포항)방면 으로 좌회전후 2.1KM 이동하면 원화로 지하차도 진입후 9.9KM 이동한다. 7번국도를 따라 산업로 고가도로 진입후 7.5KM 이동후 유금IC에서 영덕(울진)방면 우측도로로21.3KM 이동한다. 광명휴게소에서 동해대로를 따라가다 삼척시 근덕면 궁촌IC에서 공양왕릉 표지판을 보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된다. 약1km를 옛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이정표가 잘되어 있고 우측으로 공양왕릉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