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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화성여행)용주사 범종, 국보 제120호인 용주사 범종.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인 융릉과 건릉 수호사찰 화성 용주사 국보인 범종을 만나다. 

경기도 화성의 용주사는 처음에는 갈양사의 폐사지였습니다. 그러다 정조의 명에 의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고 양주 배봉산에서 옮겨온 현륭원의 수호 사찰로 지어졌습니다. 갈양사의 창건은 신라 문성왕 때 가지산문의 제2세 염기화상에 의해서입니다.




 현재 용주사에 남아 있는 유물은 ‘용주사 범종’으로 국보 제 120호이며 1964년 3월30일 지정되었습니다. 범종의 종소리를 두고 용주사 홈페이지에서는 “중생의 마음속에 깊이 울려 어리석은 몸과 마음을 자비로운 부처님의 품으로 이끌게 하는데 종소리만 들어도 번뇌가 없어지고 지혜가 자라난다”고 합니다.

 지금의 범종각은 1911년에는 보신각이라 하였습니다. 용주사 범종은 높이가 1.44m에 입 지름이 0.87m, 무게는 1.5톤으로 꽤 큰 종에 속하며 한국 사찰종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종의 정상부에는 신라 종에서 볼 수 있는 용뉴와 용통이 있습니다.

 용머리는 종 정상부의 보주를 물어서 두 발로 종의 정상부인 천판을 잡고 종 전체를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용통(음관)은 연주문을 돌렸고 여섯 단으로 구분하여 당초문(唐草紋)과 연꽃잎을 장식하였습니다. 그리고 천판에는 아무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상대와 하대는 서로 다른 무늬를 하였습니다.

 상대는 신라 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원권을 아래위에 교대로 배치하고, 그 사이에 당초 무늬를 장식하였습니다. 종의 밑에 돌린 하대는 연속된 당초무늬로 장식하였으며 하대의 무늬에 당초가 한번 돌아갈 때마다 그 중앙에 8엽 내지 9엽의 연꽃무늬를 독립하여 배치하였습니다.

 

 

 

 

 

 

 

 

 유곽의 문양대는 안쪽과 바깥쪽의 작은 띠 주변에 연주무늬를 두르고 그 가운데에 서로 연결되는 당초무늬 띠를 둘렀습니다. 유두는 둥근 연꽃잎 위에 도드라져 각 유곽마다 아홉 개씩 있습니다. 종신 아래 둥그런 당좌의 가운데 부분은 8엽의 연꽃무늬를 새기고 그 밖으로 연주 무늬 띠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연주무늬를 다시 두르고 가장 바깥의 띠에도 연주무늬를 돌려 새김으로써 마무리하였습니다.

 종의 몸통에는 비천을 두 곳에 새겼고 그사이에는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삼존불상을 조각하였습니다. 보살의 천의자락이 휘날리며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비천상과 두 광을 갖추고 결가부좌를 한 채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삼존불상이 번갈아가며 새겨져 있습니다.

 범종에 새겨진 명문을 보면 854년에 주조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종의 형태가 고려양식을 띄고 있어 명문의 내용과 다르며 후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합니다. 범종에 새겨진 명문의 내용을 보면

 

“성황산(成皇山) 갈양사 범종 한 구 석(釋) 반야(般若)가 2만 5천근을 들여 조성하였다. 금상(今上) 16년 9월 일 사문 염거(廉居) 연기(緣起)“


 용주사 범종의 제작 시기는 고려 초기의 종으로 추정을 하며 용통에 조금 금가고 유두가 깨어졌으나 대체로 범종의 보존 상태는 양호합니다. 조각 수법 등 종의 전체적인 모습은 아주 예술성이 뛰어나며 고려시대 종의 걸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참고와 발췌: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용주사 홈페이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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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화성여행)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융릉·건릉.  사적 제206호 사도세자 융릉과 정조의 건릉을 여행하다. 


화성의 융릉과 건릉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건릉은 조선 22대 왕인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이며 융릉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헌경왕후(혜경궁 홍씨) 합장능입니다. 500년 조선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드라마의 소재인 숙종~경종~영조~사도세자~정조와 순조의 왕위 계승에서 피 말리며 숨 막히는 반전의 역사는 요즘 역사를 알아가는 저에게는 많은 흥미를 느끼게 했습니다.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과 정조의 건릉을 여행하기 전에 먼저 숙종으로부터 이어오는 간략한 역사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숙종과 희빈 장씨로 알고 있는 장소의와 사이에 태어난 이윤은 세자로 책봉되면서 훗날 조선 20대 왕인 경종에 오릅니다. 경종은 모두 다 아는 장희빈과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도 순탄치 않았는데 경종은 즉위 4년 만에 죽었으며 그의 죽음에 많은 의문점이 있다합니다.

 연잉군(훗날 영조)이 올린 게장과 생강을 먹고 죽었다하여 분분히 말이 많았으며 장희빈의 죽음과 함께 드라마에서 가장 긴장감을 주며 끝까지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소재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경종의 이복동생인 연잉군이 권좌에 오릅니다.

 연잉군은 부왕인 숙종과 어머니 숙빈최씨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궁중의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 때문에 항상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론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잡은 영조는 소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들고나온 게 붕당정치 타파인 탕평책이었습니다.

 요즘 정치판도 나 아니면 너로 갈라져 서로 물고 뜯는 판인데 당시는 모가지가 걸려있어 노·소론과 남·북인의 행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안될 것 같아 후다닥 진도를 나갑니다.

 영조에게도 두 왕자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정성왕후 사이에 경의군 이행이며 세자로 책봉했으나 10세의 어린나이에 그만 죽고 맙니다. 그러다 영조는 후궁인 영빈 이씨 사이에 사도세자인 이선을 낳지만 서자 출생이라 하여 정비 정성왕후의 양자로 입적하고 경의군인 효장세자의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됩니다.

 

 이선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영조의 세자 사랑도 남달랐던 모양입니다. 3살 때 대신들 앞에 하여 ‘효경’ ‘동몽선습’ 등 글을 읽었으며 ‘천지왕춘’이라는 글자를 쓰자 대신들이 깜짝 놀라며 글을 서로 가지려고 했다합니다. 이때 영조의 마음은 보통의 아버지와 똑같았던 모양입니다.

 

 똑똑하고 의젓한 아들을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은 어린 세자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의 나이 9세가 되자 영조는 직접 홍봉한의 딸을 며느리로 간택하고 혜경궁 홍씨는 세자빈에 책봉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조의 세자사랑은 유별났으며 왕위 계승을 위해 영조는 엄격한 왕세자교육을 했습니다.

 또한, 사도세자의 나이가 15세가 되자 영조는 대리청정으로 세자에게 후계자로서 경험을 쌓게 하는데 이게 노론과 소론 모두에게 예민한 문제였습니다. 영조 또한 왕세자 때 숙종의 대리청정으로 벌어졌던 ‘신임옥사’를 겪었던 터라 노론과 소론 사이에서는 사도세자의 대리청정이 분란 사항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영조와 노·소론 등 당파 사이에서 벌어진 정치적 갈등으로 세자는 정신과 육체적으로 더욱 비폐 해졌습니다. 또한, 심리적 압박 때문인지 새 옷을 갈아입지 못하는 의대증과 심리적 불안 증세로 가슴 통증 등 갖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한번 영조의 눈 밖에 나자 회복 불가능의 상태가 되었던 와중에 구중궁궐의 압박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영조 몰래 20일간 관서지방을 돌아보고 온 게 화근이었습니다. 서명웅과 윤재겸의 상소가 올라와 영조는 대노하였고 둘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였습니다.

 화완옹주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의심하였으며 또한, 세자의 반란모의를 상소한 나경언이를 영조가 직접심문하면서 은신군 이진과 청근현주 생모인 수칙 박씨를 때려 죽게한 죄, 여승 가선이를 궁으로 불러들인 죄 등 사도세자의 10가지 죄목을 알게 되었고 사도세자를 휘령전으로 불러 자결할 것을 명합니다.

 세자는 신하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영조는 왕세자의 직위를 거두어들이면서 서인으로 강등하여 뒤주에 가두고 건초를 덮게 하였습니다. 뒤주에 갇힌 세자가 8일 만에 절명하자 영조는 다시 사도란 시호를 내려 세자의 예로 장례를 치루게 하여 양주 배봉산에 매장한 뒤 묘호를 수은이라 했습니다.

 

 사도가 죽자 다음날 영조는 세손인 정조를 동궁에 책봉하며 대통을 잇는 후계구도를 완성합니다. 영조는 53년간 왕위에 올랐고, 그의 나이 83세를 일기로 승하하였습니다. 영조의 뒤를 이어 정조가 조선 22대 왕에 올랐으며 정조는 먼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회복을 추진하고 시호를 장헌으로 격상하여 오늘날 사도세자 또는 장헌세자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배봉산의 사도세자 묘를 영우원이라 고쳐 불렀습니다. 그 후 1789년 정조는 현재의 화산으로 영우원을 이장하면서 현륭원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고종은 1899년 장헌세자를 장조로 추존하고 현륭원을 융릉으로 고쳐 지금은 융릉이 되었습니다.

 #융릉

 융릉과 능선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건릉은 장헌세자의 아들인 정조 이산과 효의왕후의 합장 능입니다. 정조는 49세를 일기로 온몸에 퍼진 종기로 인해 죽었습니다. 24년 동안 재위하면서 세종과 함께 조선의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평가받는 정조도 그의 죽음을 두고는 정확한 진위는 알 수 없지만, 독살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왕위에 오르지만, 아직 어려 영조의 왕비인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으로 경주김씨가 정권을 잡게 되자 홍봉한 일족은 혜경궁 홍씨만 남고 모두 척살되었습니다. 피의 보복은 권불 10년이란 말이 무색하게 정순왕후의 죽음으로 인해 경주김씨가 다시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데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사도세자의 빈인 혜경궁 홍씨는 나이 60세를 넘기면서 자전적 회고록인 ‘한중만록’을 남겼는데 우리에게 ‘한중록’으로 더욱 알려졌습니다. 필사본은 6권 6책이며 혜경궁 홍씨가 회갑을 맞으면서 정조가 수원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었던 회갑 잔치와 그 당시가 한중록에서 가장 행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외의 3편은 부군인 사도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음에 이르는 참담함과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살았을 혜경궁 홍씨의 파란만장했던 일상사를 한글로 그려낸 작품이며 궁중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융릉과 건릉은 키 큰 소나무가 울울창창 둘러싸여 그야말로 한적한 공원 분위기입니다. 먼저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을 찾았습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헌경왕후(혜경궁홍씨)의 능입니다. 왕릉이라 그런지 그 규모는 어마무시 했습니다. 또한, 능 주위로는 가까이 갈수 없는 게 정말 아쉬웠습니다. 융릉은 봉분을 둘러싼 병풍석을 십이지신상이 아닌 모란과 연꽃 문양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봉분과 지면 사이에 와침석을 깔아 장식하였으며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는 정조의 지극한 효성이 융릉을 조선 왕조의 능에서 가장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이와 이웃한 곳에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 있습니다. 원래 정조의 능은 융릉의 동쪽언덕에 있었는데 효의왕후가 승하하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겨 합장했습니다. 1899년 고종은 정조를 정조선황제로, 효의왕후를 효의선황후로 추존하였습니다. 

 

 #건릉

 융릉과 다르게 봉분은 병풍석을 하지 않고 난간석으로만 둘렀으며 규모와 형식은 융릉과 아주 비슷합니다. 능 앞의 문인석과 무인석은 조각이 매우 정교하며 특히 문인석은 문무백관이 국가행사에 입는 대례복인 금관조복을 입고 있습니다.

 

 화성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융릉과 건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사적 제206호입니다. 이번 화성여행에서 사도세자의 융릉과 정조의 건릉을 참배하고 온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융릉·건릉 안내정보 

#융릉·건릉(조선왕릉)

★융릉·건릉 관리사무소 주소: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187-49

융릉·건릉 관리사무소 전화:031-223-8364

융릉·건릉 입장료:유료

융릉·건릉 관람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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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화성·수원여행)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융릉 건릉 용주사와 수원화성 행궁 신풍루, 화홍문, 방화수류정, 북암문, 동북포루를 당일치기 여행하고 왔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융릉 건릉 용주사와 수원성인 화성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부산에서 당일치기로 수원과 화성 두 곳을 여행하고 온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산에서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답사하는 모임인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서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을 쫓아가는 여행을 계획한다기에 주저 없이 신청했습니다. 




 지난번 수원 팸투어에서 수원화성을 미리 여행했던 터라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인 융릉과 건릉을 그리고 그의 두 왕릉의 수호 사찰인 용주사를 꼭 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마침 이런 기회가 생겨 저 예겐 정말 좋았습니다. 그와 때맞추어 여행은 자못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강신재 소설 ‘사도세자 빈(행림. 1981)’을 보던 중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장시킵니다.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는 동궁인 세자 이 선을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는 처벌로 8일 만에 죽게 했습니다. 그 뒤 다시 세자로 신원을 회복시키고 사도세자란 시호를 내렸으며 세자의 예를 갖추어 양주 배봉산 기슭에 그의 죽음을 안장하였습니다. 

1777년 정조가 왕위를 이어받아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장조에서 장헌으로 격상시켜 오늘날 사도세자 또는 장헌세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융릉 (사도세자 합장릉)

  또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1789년 지금의 화성으로 이장하고 현륭원으로 바꾸었습니다. 다시 현륭원은 1899년 고종에 의해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하면서 융릉으로 승격시켜 오늘날 사도세자를 융릉이라 하며 정조대왕은 건릉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럼 정조 대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정조대왕은 사도세자와 빈이었던 홍봉한의 여식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때 할아버지 영조에게 달려가 아버지를 살려달라며 눈물로서 애원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뒤주에 갇혀 사사되었으며 영조는 세손을 바로 동궁에 책봉합니다.

#건릉 (정조 합장릉)

 소설 ‘사도세자 빈’을 보면 영조는 숙종과 어머니 무수리 사이에서 태어나 그의 이복형인 경종이 죽자 왕위에 오릅니다. 당시 노론과 소론이 서로 권력을 나누고 있던 터라 항상 자신의 정통성에 의해 영조는 끊임없이 고민하였으며 그의 줄 다르기는 두 세력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도세자는 소론의 영수를 스승으로 가르침을 받게 했습니다.


#융릉·건릉역사문화관

 이에 노론 측에서는 사도세자가 왕이 되면 자신들의 정치 생명은 끝이라 생각하였고 온갖 모략을 다 동원하여 세자를 죽이기 위해 사사건건 이간질을 했습니다. 서서히 세자의 목은 조여 목숨은 경각에 다다랐으며 잘못되면 세손까지 위험해 처할지도 몰라 사도세자 장인인 홍봉한과 빈인 혜경궁 홍씨도 어쩔 수 없이 노론 편에 서서 끝내 사도세자를 죽게 하였습니다.

 정조는 그의 큰아버지인 죽은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는데 그 이유는 영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에서 세손인 정조의 정통성 시비를 미리 차단하게 한 조처로 보입니다. 정조는 영조의 뒤를 이어 1776년 조선 제22대 왕에 오릅니다. 왕위에 오르면서 가장 먼저 아버지의 신원을 회복시켰으며 그의 정적이던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규장각을 설치하는 등 재위 24년 동안 왕도정치를 펼쳐 오늘날 500년 조선왕조에서 가장 위대한 성군은 세종과 정조라 모두 생각합니다.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화산 아래 있는 용주사는 854년 신라 문성왕 16년에 갈양사로 창건하였습니다. 952년 고려 광조 때 병란으로 소실되었던 절에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으로 이장하여 능의 수호사찰인 용주사를 1790년에 창건하여 부친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게 했습니다.

 #용주사

 천년고찰 갈양사에 세운 사찰이다 보니 7층 석조사리탑과 대웅전을 들어서는 입구의 천보루, 국보 제120호인 용주사 범종, 김홍도가 그렸다는 후불탱화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습니다. 이곳을 둘러보고 난 뒤 점심을 먹었는데 용주사 바로 앞에 있는 송산 한정식에서 한정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찾아 나선 수원화성 행궁입니다. 수원 화성행궁은 정조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의 행궁터는 2007년 4월1일 사적 제478호에 지정되었습니다. 행궁은 왕이 궁궐을 나와 머무는 별궁으로 화성행궁은 규모면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습니다.

 #수원화성행궁

 정조의 효행심이 행궁을 세웠다하며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능침인 현륭원을 참배하고 행궁에 머물며 쉬어 갔다합니다. 당시 행궁건물은 봉수당, 경룡관, 복내당, 유여택, 노래당, 신풍루, 강무당 등 많은 건물이 웅장한 모습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일인들의 소행으로 의료기관과 학교 등을 세워 행궁은 파괴와 함께 본 모습을 잃었습니다.

 

 다시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를 일환으로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2003년 482칸의 화성행궁 1단계로 복원하였습니다. 구중궁궐인 행궁의 현풍루 누각을 들어서고 다시 두개의 문을 더 지나면 정면에 위풍당당한 봉수당 건물과 마주합니다. 정조는 정남헌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베풀었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봉수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으며 현재 행궁의 중심 건물로 수려한 봉황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정조어진


 #수원화성 #화홍문(북수문)

이번에는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북암문, 동북포루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지난 수원화성에서 화홍문을 야간에 들러보았습니다. 화려한 조명으로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듯 화려했던 모습이었는데 낮에 보는 화홍문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화홍문은 북수문이라고도 하며 무지개 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곳은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과 북암문, 동북포루와 함께 그림 같은 모습이며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경관을 보여줍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날이라면 수원천에 걸린 7개의 무지개 수문위에 올린 누각에 앉노라면 누구나 시인이 될 것 같습니다.

 수원화성 #동북포루

 1997년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당일 여행에서 화성 융릉과 건릉, 용주사, 수원화성의 행궁과 화홍문 방화수류정, 동북포루 등으로 알차게 꾸며진 일정인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했습니다. 이제부터 차곡차곡 쌓은 지식을 보고 느꼈던 만큼 수원과 화성 여행지를 하나하나 포스팅 하겠습니다. 경기도 화성과 수원여행에서 많은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4/04/11 - (경기도여행/수원여행)조선 행성의 백미 수원화성 연무대와 동북공심돈, 1박2일 퇴근미션 촬영지 수원화성 연무대에서 활쏘기 체험.


2014/02/11 - (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 숙박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 수원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오성급 호텔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


2014/01/31 - (경기도여행/수원화성여행)수원화성 화홍문과 동북각루, 까치까치 설날에 찾아가면 더욱 좋은 수원화성의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2014/01/15 - (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 지동벽화마을. 옛날옛적 동화 속 주인공이 벽화로 되살아난 지동마을.지동벽화마을


2014/01/02 - (경기도여행/수원여행)행궁동벽화마을. 문화재 수원화성과 행궁, 행궁동사람들의 벽화마을 구경하세요.


2013/12/31 - (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화성행궁, 정조대왕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수원화성행궁 세계유네스코에 지정된 우리 문화재


2013/12/20 - (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광교호수공원. "아빠 어디가"의 후와 아빠의 모습을 광교호수공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2013/12/16 - (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제일교회. 화성과 광교산을 볼 수 있는 수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 궁금하지 않나? 제일교회


2013/12/13 - (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화성을 구석구석, 화성열차를 타면 정조대왕이 된 기분이예요.


2013/12/11 - (경기도여행/수원여행)없는게 없다는 수원전통시장 못골시장 투어, 수원에서 이색여행못골시장


2013/12/10 - (경기여행/수원여행)수원화성,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대한민국 대표 관광명소 수원화성 야경에 감탄하고 왔습니다.


2014/07/21 - (수원맛집/수원화성 맛집)생생정보통에서 인정한 수원에서 가장 맛있는 통닭거리 용성통닭, 여행중 마시는 치맥 최고입니다. 용성통닭


2014/01/29 - (경기도맛집/수원맛집)수원화성맛집 가보정. 수원갈비의 전통을 잇는 진정한 갈비 맛집 가보정에서 갈비를 뜯다.


2013/12/25 - (경기도맛집/수원화성맛집)수원화성 행궁맛집 화성별관. 인수대비 채시라 김문수지사도 먹고 간 화성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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