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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서면 가볼만한 곳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걷기.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우리나라 대기업의 모태가 된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그중 내가 사는 부산도 한곳입니다. 

당시 부산에서 시작한 기업 대부분은 부산진구 서면 근방에 몰려 있었습니다. 

부산진구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그룹의 면모를 일신하며 승승장구하는 기업도 여럿이 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도 있습니다. 

궁금했던 게 부산진구에서 기업을 일구어 대한민국 굴지의 회사로 성장했던 업체와 지금은 가물가물한 장소였습니다.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안내도





2015/05/11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부산시민공원 송상현광장 부산 연등축제. 부처님 오신 날 광명으로 온세상을 비추는 부산 연등축제를 보다.

2015/05/26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천태종 삼광사. 단일 사찰 최대의 연등 축제 부산 천태종 삼광사 연등 축제.

2015/11/09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돌산공원과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우리의 삶이 벽화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여행.

2016/05/10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부산 정중앙 표지석. 부산의 정중앙인 부산의 배꼽이 궁금하다면... 금계포란형의 명당인 부산 정중앙 표지석을 만나다.

2016/05/13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백양산 선암사. 천년고찰 백양산 선암사 여행. 부암동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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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때 만 해도 이 모든 기업이 부산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찾아가봤자 아파트 뿐이지만 그 당시를 회상하며 꼭 한번은 부산에 있었던 산업 현장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 기회가 빨리 찾아왔습니다. 

한일그룹의 모태인 경남 모직의 옛터는 전포동에 있었습니다.

 


삼성그룹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던 제일제당 터는 부전동에 있었으며, LG그룹과 GS그룹 모태였던 락희화학(럭키치약) 터는 연지동에 있었습니다. 

국제그룹의 모태였던 국제상사와 동명목재, 대양고무, 진양고무 등 수많은 기업이 부산 진구에서 발판을 마련했고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기업환경과 변화의 큰 파도를 넘지 못한 기업도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부산진구에서 태동하여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룹의 모태와 서면 영화관을 잇는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부산 진구청에서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조성했으며 2개 주제로 4개 코스입니다. 

한때 부산 경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신발산업입니다. 

6대 신발기업이 있었을 정도로 부산하면 신발입니다. 

그 중심에 부산진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스 이름도 그때의 생각을 반추해보는 황금신발길 A·B 코스와 서면영화길 A·B 코스입니다.



이들 코스는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 각각 2시간쯤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4개 코스를 한번에 엮어서 걷기로 했습니다. 

걷다보니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코스에서 조금은 벗어나 지름길로도 걸었습니다.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걸어보고는 개인적으로 걷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는 이정표와 제반 시설이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전체적인 거리는 대략 9km에 4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거리는 별로 의미가 없지만,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기업의 뿌리가 되었던 곳을 빠지지 않고 보려는 노력은 했습니다. 

지금부터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출발합니다. 

출발지는 양정 송상현부사 동상에서였습니다. 

송상현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래성의 성문을 걸어 잠그고 결사 항전을 벌이다 순절한 분입니다.


롯데캐슬스카이아파트 옆 대양고무 흥아타이어 안내판

왜장은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다면 길을 빌려 달라“고 했지만 송상현부사는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으로 답하고 부사와 동래성을 지키던 군졸과 백성은 끝까지 동래성을 사수하다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송상현광장을 가로질러 서면 방향으로 향합니다.



메타세콰이어나무가 일렬로 늘어선 사이로 난 길입니다. 

보도블록이 갈려있는 길이지만 키큰 나무로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광장 너머에는 높은 아파트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롯데캐슬스카이아파트이며 옛날 흥아타이어가 공장을 돌렸던 곳입니다.

 그 왼쪽 도로 건너편에는 대양고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서면 한신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은 슈퍼카미트란 브랜드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부전시장

당시 군계일학의 여러 유수업체가 부산 신발산업을 꽉 잡고 있었을 때인 1976년에 혜성같이 나타났던 슈퍼카미트 브랜드 대양고무는 1993년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겨가면서 전포동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흥아타이어 또한 파란만장한 역사의 부침속에 그 명맥은 끝까지 유지하였고 현재에는 공장을 옮겨 넥센타이어로 생산 중입니다. 

지금은 롯데캐슬아파트 옆 담벼락에 당시 진양고무와 흥아타이어가 있었다는 작은 안내판만 서 있습니다.

 

부전역 곰장어거리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적십자빌딩과 옛 부산 동부터미널이 있던 자리입니다. 

동부터미널은 온천동 롯데백화점자리로 옮겼다가 지금은 노포동 부산종합터미널로 옮겨 갔습니다. 

중앙대로를 건너 부산 최대의 시장인 부전시장으로 갑니다. 

‘없는 것이 없다’는 부전시장은 특히 기장에서 동해남부선을 운행하는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직접 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반티에 이고서 부전시장에서 퍼뜩 팔고는 다시 돌아가던 애환이 점철된 부전시장을 나오면 바로 부전역입니다. 

부전역은 동해남부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늦게까지 사람들로 항상 붐볐고 그러다보니 기장에서 잡아온 장어로 부산에서 가장 먼저 곰장어 거리가 생겼습니다. 소줏잔을 기우리는 서민들의 배를 불려 주었던 곰장어는 자갈치가 유명하지만, 부산 곰장어의 원조는 부전역 곰장어 거리라고 합니다. 

광복 직후부터 시작하여 대부분 40~50년은 훨씬 넘겼다고 합니다.





부전역 계단을 올라 육교를 건너면 미군 부대는 이전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부산시민공원이 있습니다. 

이 일대가 1900년대 초에는 비옥한 농경지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세수를 목적으로 서면 경마장이 들어섰고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는 기마 부대 설치와 1941년 태평양전쟁을 대비하여 제72병참경비대와 임시군속훈련소(노구치부대)를 설치했습니다.


부산시민공원



일제는 해방이 될 때까지 군수품 야적장으로 사용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들어섰습니다. 

부산시민공원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비로자나반가석불과 협시불이 있어 옛 절터였나 싶어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옆에 마두관세음보살 표석이 있는 것을 추정하면 경마대회를 열면서 사고사나 병사한 말의 위령재를 올렸을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부산 시민공원 역사관










부산시민공원 내 옛 서면 경마장 경주로



이곳을 나오면 국립부산국악원입니다. 

우리나라 국립국악원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이 부산이라 합니다. 

이곳을 지나 초읍 어린이대공원으로 가는 도로에 ‘LG사이언스홀’ 건물이 있습니다.

 LG그룹의 모태인 옛 락희화학(럭키화학) 자리입니다.

 








우리나라 치약의 대명사였던 럭키화학 공장은 연지자이아파트 자리이며 옛터 한쪽에 1998년 LG그룹의 모태를 상징하는 엘지사이언스홀을 개관했습니다. 

다시 서면 방향으로 내려오면 진양사거리입니다. 

진양은 국제화학을 창업한 양태진 회장에게 두아들이 있었습니다. 

국제상사 양정모 회장과 진양고무 양규모씨입니다.


진양사거리 황금신발상



국제상사는 ‘프로스펙스’를 상표로 진양고무는 ‘왕자표’ 신발을 생산했습니다.

이곳 진양사거리부터 부산 진구청 일원까지 진양고무가 있었던 곳입니다. 

한때 한국 신발산업의 메카였음을 보여주는 황금신발상을 2015년에 설치했습니다. 

바로 인근에 굴다리가 있습니다. 

굴다리 담벼락에는 서면 근대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벽화를 보면서 옛 추억도 떠올려봤습니다.

 





굴다리마을

이곳을 지나면 이번에는 동해남부선 철로에 놓인 굴다리입니다. 

이곳의 마을은 경부선 선로와 서로 엉키며 삼각형을 하고 있고 굴다리를 통행해서 마을로 들어선다 해서 굴다리 마을이라 부릅니다. 

다시 철둑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부전역 쪽으로 가면 부산진구 상징탑과 황령산 봉수대 모형이 나옵니다.




부산진구 조형물


황령산 봉수대 조형물


서면 로터리 조형물



영광도서 앞에서는 옛날 서면로터리 상징탑 모형을 지나 롯데 백화점 옆에 설치된 스웨덴 참전기념비를 찾았습니다. 

스웨덴은 중립국으로 한국전쟁에 의료지원으로 참전했습니다. 

1950년 9월23일 이곳에 설치되었던 유엔군 사령부 산하의 스웨덴 야전병원은 1950~1953년까지 한국전쟁에 참가했어 세운 기념비입니다.

 




이제 옛 서면 극장가를 찾아갑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1947년 서면 최초의 극장인 북성극장, 동보. 태화, 대한극장 등 총 16개의 극장이 성황을 이루었으나 현재에는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 극장 뒷골목은 베어링 볼트 등을 판매하는 부산 최대의 공구골목이었습니다.


서면 공구거리 조형물





지금은 카페와 맛집으로 모두 바뀌었으며 공구건물의 흔적은 보도블록에 스패너 모양과 인근에 공구를 형상화한 노란 원통형 조형물만 남았을 뿐입니다. 

이면도로를 따라 범냇골방향으로 갑니다. 한전부·울지역본부가 예전 전차가 다녔던 서면 종점이며 직진하면 동천앞입니다.

 



장미길


동천약어조형물


왼쪽에 장미길이 있고 더샵센트럴스타 아파트입니다. 

삼성그룹의 핵심 공장이었던 백설표 제일제당이 1953년에 공장가동을 시작했던 곳입니다. 

맞은편 동천 건너 범냇골과 부산금융단지 일대는 합판 왕국으로 이름 날렸던 옛 동명목재 부지였습니다. 

경남공고를 거쳐 부전 카페거리를 지나면 경남모직 옛터인 NC백화점입니다. 







경남공고 교정의 고 강수영 열사 기념비







부전 카페거리



1956년 미국의 원조를 받아 전포동에 경남모직이 처음 세워졌으며 K 앙고라 텍스는 양복과 양장 원단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곳에서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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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넘은 전통의 동래시장 부근에는 많은 문화 유적이 있다. 동래 읍성을 비롯해 송공단, 동래부 객사터, 동래향교, 복천동 고분군등 하루에 돌아보기 힘이 들 정도로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송공단 입구로 앞으로는 동래시장이며 안내판과 문화재임을 알리는 빗돌이 서 있다.


 




송공단으로 대통령 박정희란 각자가 선명하다.



 들어서면 정 중앙에 송상현 순절비가 서 있고 동단에는 조영규, 노개방등을 서단에는 문덕겸등을 모섰다.

좌측으로 별도의 첨단을 만들어 송상현의 첩 금섬등을 따로 모섰다.


양정로타리에 있는 송상현 동상으로 주변에 빌딩 숲으로 가려 있어 상대적으로 외소한 느낌이다.

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11호

동래시장 건물 뒤인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229-78에 송공단의 건물이 있다. 임진왜란때 동래읍성을 지키다 순절한 병사와 그리고 끝까지 싸우다 성은 함락되자 송상현은 정원루에서 순절을 하였는데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을 영조18년(1742)에 동래부사 김석일에 의해 세웠다. 여기에서 송상현이 충절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1592년 4월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군들이 송상현이 지키고 있는 동래읍성으로 쳐들어와 길을 내주기를 요구한다.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길을 빌여 달라”는 통첩을 받고 답글을 보낸다.“싸워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여 주기는 어렵다”는 송상현은 군사들의 수도 열세이지만 서울로 올라가는 길을 내 줄수 없다며 결전을 벌리지만 성은 함락되고 죽음으로 결말을 맺지만 그의 충절을 모신 곳이 송공단이다. 송공단 이전에는 현 동래경찰서 자리가 예전에는 농주산이었다. 그 자리에 임진왜란때 순절한 분의 전망제단을 세웠는데 동래부사 송상현과 양산군수 조영규, 동래교수 노개방등 동래읍성 전투에서 순절한 분을 모셨다 한다. 1742년에 송공단이 세워지자 이곳으로 옮겨 왔다. 처음에는 동서남북으로 재단을 만들어 북단에는 송상현 조영규 노개방을, 동단에는 유생 문덕겸등을, 서단에는 송상현의 첩 금섬등을, 남단에는 향리 송백등을 모섰다. 처음에는 다대포에서 전사한 윤홍신과 부산진에서 전사한 정발장군을 모두 함께 모섰지만 그후 윤공단에는 윤홍신, 정공단에는 정발장군의 위패를 따로 모시게 되었다하며 송공단에는 동래읍성 전투에서 전사한분만 모시게 되었다 한다. 일제시대 때부터 동래 기영회에서 매년 음력 4월15일에 향사를 지낸다.

그리고 현재의 송공단 안의 모습은 2005년 11월에 충렬사지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을 하여 정면에는 송상현의 순절비와 동단에는 조영규 노개방을 서단에는 문덕겸등을, 별도로 첨단을 만들어 송상현의 첩 금섬을 모시었고 송공단에는 7단 16기를 현재 모시고 있다.

입구 송공단의 현판을 자세히 보면 대통령 박정희라 되어 있다.

송공단의 가을 모습으로 중문을 통해 들어서야 송상현 순절비를 만날 수 있다.

중문의 모습, 이문을 들어서면 된다.

그중에 동래시장 본 건물 좌측의 골목에 작은표지석이 서 있다.
동래부 객사터로 봉래관으로 불렸다며 지금은 모습을 찾을 수가 없고 위치만 알리고 있다. 객사에는 조선시대때 왕의 초상을 대신하여 목패를 봉안하여 배례를 올리던 곳이며 서울에서 지방으로 관리가 내려 오면 관원들의 유숙장소로 이용을 하였다, 그리고 외부의 손님들이 찾아오면 영접하고 회의실로도 이용을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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