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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행/제천여행)제천시 상천리 금수산 입구 백운동마을 600년된 소나무 둘러보기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금수산 들머리인 백운동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금수산은 조선 중기 한국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임 때 단풍이 든 백운산을 보고 ‘비단에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라고 감탄하였고 그 이후 부터 백운산이 금수산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충북 수산면 상천리 상천리마을회관 주소: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1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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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3 - (충북여행/제천여행)사자빈신사지사사자석탑. 고려시대 거란족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세웠던 월악산 사자빈신사지사사자석탑의 아름다움에 깜짝 놀랐습니다.

2015/12/02 - (충북여행/제천여행)청풍명월 제천여행. 제천향교 교동벽화마을 청풍호와 제천한방엑스포공원 월악산과 박달재, 청풍문화재단지 1박2일 제천여행 떠나기.




백운산의 흔적은 금수산 남쪽 아랫마을에 백운동이란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백운산의 옛 흔적입니다. 

금수산 아래 상천리 백운동에는 당시 단양군수였던 퇴계 이황이 찾았을 때도 그 장면을 지켜보았고 백운산에서 금수산으로 바뀌었을 금수산 출생의 비밀을 지켜보았을 미려한 소나무가 있습니다.

 



이 소나무는 백운동 마을인 금수산 입구에 자리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금수산을 오르면서 눈여겨보다가 하산해서 들렀습니다. 

제천시 보호수로 2013년 1월 지정되었습니다. 

지정번호는 ‘제천-90호’이며 수고가 15m, 나무 둘레 2.7m에 수령이 600년이 되었다고 표지석은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호수인 소나무를 보면서 주위 여러 소나무보다도 자태가 빼어나서 꼭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호수를 보다가 문득 이황 선생의 단양군수 재임 때 관기였던 두향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당시 이황은 부인의 상처와 아들이 먼저 죽는 등 가족사로 마음의 상처가 매우 컸습니다. 

그때 거문고와 글솜씨가 빼어났던 두향이가 마음의 위안을 찾게 해주었고 자연스럽게 서로 플라토닉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요? 하여튼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이황은 풍기군수로 부임하게 되었고 관기의 이동은 법으로 금해 있어 두향하고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두향은 이를 슬퍼하며 이황의 짐 속에 수석 두 개와 매화 화분을 넣어주었고 그 매화나무가 안동 도산서원 입구에 심어져 아직도 봄이면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이황이 떠나자 두향은 관기 생활을 그만두고 이황과 추억이 있는 남한강 가에 움막을 짓고 생활했습니다. 

뒤에 이황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빈소를 찾고는 그도 남한강에 몸을 던져 임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지금도 퇴계 후손은 두향의 묘도 함께 벌초하며 넋을 기린다고 합니다.

 



이 상천리 백운동의 보호수인 소나무가 관기 두향의 모습이 화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만큼 앉아있는 자태가 꼭 임을 기다리는 두향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그냥 넋두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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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청도여행)매전면 구동창 보호수. 교통사고를 당해 피해 보상 청구 재판에서 승소한 구동창마을 느티나무 보호수가 완전 회복되었네요. 


농촌과 어촌마을치고 마을입구 정자껄이나 마을 안에 그늘 쉼터를 하는 노거수 한 그루쯤은 모두 있습니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산나무역할을 겸하는 정자나무입니다. 




경상북도청도군 매전면 동창리 구동창마을에는 조금 특별한 마을나무가 있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어떤 나무인 고 하니 수령 오백년을 훌쩍 넘긴 느티나무입니다. 마을입구를 떡하니 버티고 마을을 들어오는 모든 악귀를 감시하는 듯 수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미남형 나무였습니다.


지금은 느티나무가 많이 회복되어 푸름을 잃지 않고 있지만, 1997년경 마을을 지키는 당산목에 큰 변고가 일어났습니다. 밤에 덤프트럭이 마을로 진입하여 느티나무와 정면충돌을 하였습니다.

느티나무는 우산처럼 너른 수관을 자랑했지만 그만 한쪽 날개를 꺾여버렸고 급기야 반쪽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500년이 넘은 보호수는 마을의 큰 위안을 주었는데 마을주민은 운수회사에다 피해보상 소송 전을 벌였고 급기야 대구지법에서 나무에 피해를 보상하라며 승소 판결을 내렸다합니다.

그러니까 나무가 재판에서 이겼던 것입니다. 그후 느티나무는 재판에 승소한 대단한 나무로 알려졌습니다. 느티나무는 1997년과 2011년 찢겨나간 가지에다 대대적인 외과수술과 시멘트로 메우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또한, 2003년에는 가지가 한쪽으로만 치우치다 보니 나무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남아 있는 동쪽 가지에다 지주목을 받쳐 나무의 중심도 잡아주었습니다.

다행히 마을주민의 노력으로 느티나무 보호수는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와 주민의 휴식처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수령은 약 500년, 높이 12m, 가슴 높이 둘레 4.5m, 사진으로 보면 굵은 가지가 한쪽으로만 치우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 굵은 가지는 찢겨나가 잘라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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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원여행)우산을 펼쳐든 모양을 한 400년된 진전면 여양리 소나무.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는 북으로 여항산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는 산간벽촌의 마을입니다. 태산 준령인 낙남정맥이 막고 있어 마을은 궁색할 정도로 옛 모습을 간직한 산골로 이곳 여향리 산 38번지에 400년의 풍상을 견뎌온 소나무가 있다하여 찾아 갔습니다.

 

독립가옥 집 뒤 언덕에 우산를 펼쳐든 모습의 여양리 소나무는 풍모가 예사 소나무가 아닙니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사시사철 푸르름 때문에 선비의 곧은 절개와 비교를 하여 정자 옆에 풍치림으로 많이 심었는데 이곳 여양리 소나무에도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곳 여양리는 밀성(밀양)박씨 집성촌으로 옥방에 거주하던 박선비는 진주로 왕래 할 때 호랑이를 불러 타고 다녔고 이 소나무가 호랑이를 맞이하였다는 전설입니다. 소나무의 높이는 10m, 둘레는 3m, 너른 품으로 모든 사람을 품어 줄 듯한 인자한 어머님의 모습을 닮아 여양리 마을사람들을 모두 품을 것 같습니다. 여양리 소나무는 정자목으로 1993년 3월 창원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였고 여양리 밀양박씨 문중에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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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는 시골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개곡마을이 있다. 마을 뒤 송골산에서 내려오는 두 개곡이 맞난다하는 개곡마을은 이곳에는 김해 김씨와 동래정씨 집성촌으로 김해김씨의 훈련원정 김경원이 선조24년 인 1591년에 이 마을에 처음으로 복거를 하였다. 그 이듬해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혁혁한 공을 세워 나라로부터 선무삼등공신에 책봉된다.


김경원의 입향으로 동래정씨와 의형제를 맺었는데 현재에도 이 일대 김해김씨와 동래정씨는 400년간을 의좋게 살며 사돈을 서로 맺지 않는다는 풍습이 있다. 이곳 개곡마을 입구에는 아주 오래된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일명 누운 소나무 모양으로 이 마을에서는 왕소나무로 부르고 있다. 안내판을 보면은 1983년에 250살로 나와 현재는 280살이 되었지만 이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김경원이 개곡리에 입향을 하면서 심었다고 전해지는 소나무로 수령 약 42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한다. 소나무는 오래 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 향나무등은 천년을 넘은 나무도 종종 볼 수 있지만 우리 주위에는 소나무는 보기가 힘들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최장수 소나무는 600년 정도의 영월의 관음송등 몇개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보면 이소나무의 위용도 쉽게 볼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만큼 소나무의 뿌리와 줄기가 아직 왕성한 기운이 뻗쳐 있어 이 마을에서는 신성시하는 나무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해 전 폭설로 주민들의 쉼터를 제공하던 넓은 소나무 가지도 그 눈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뿌러져 마을주민들은 안타깝다며 이야기를 하신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예. 옛날에는 소나무가지가 엄청 뻗어 나왔다 아니가’하시는 아주머니의 말을 보아도 개곡마을의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알 수 있다.









개곡마을의 풍경이다. 다랭이 논으로 계단을 이루고 있는   논에는 누런 벼가 머리를 숙이며 수확의 날만 기다리고 있다. 
올 한해의 풍년 농사도 이곳 마을의 주민들은 당산에 있는 당산나무의 보살핌으로 돌리는 순박한 마을어르신들...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밭일을 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우리 윗 어르신들의 삶과 고단함을 옅볼 수 있어며 비단 이마을 만의 이야기일까.
 



송골산에서 내려오는 두개곡이 만나는 개곡마을은 송골산이 둘러싸고 있어 한결 아늑고 조용하다. 그러나 현대의 불청객 ktx 선로가 최근 마을 앞을 지나감에 그 문명의 진동 소음이 개곡마을을 깨우고 있다. 이 부분이 많이 거슬리는 개곡마을의 모습이다.


개곡마을에서 법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개곡마을에서는 이골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이골재라 부른다. 개곡마을에서 오르는 길은 2차선 도로로 포장이 되어 닦여 있고 반대편 법기리에서는 아직 좁은 농로로 이어져 있어 걸어보기에 아주 좋은 마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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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동에 가면은 500년의 풍상을 이겨낸 노거수가 있다.
느티나무로 마을의 중앙에 떡 버티고 있는 노거수는 수령500년의 깊이 만큼 세월의 무게를 나무에 덕지덕지 붙이고 있다.
심천동 마을의 유래를 모두다 알고 있는 듯 마을을 굽어 보고 있는 노거수는 심천동 사람들에게는 많은 위안이 되고 있다.

 



그래서 경상북도 도나무로 1982년 10월에 지정이 되어 관리 되고 그럴듯한 이름표를 달고 있다.
느티나무 허리춤에는 세사람이 팔을 벌여야 할 정도로 겨우 손끝이 닿을 정도이며 지나가는 어르신의 얼굴에 파인 주름살처럼 느티나무도 그래 견더 왔을 것이다. 
한여름에는 심원재로 넘어가는 길손에게 그늘을 제공하였고 마을의 쉼터를 자임하며 마을사람들의 애환을 듣고 어루만지며 달래고 하였을 당수나무는 말 없아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심천동 계곡이 얼마나 깊으면 '지푸네'로 부를까?.
지푸네의 터줏대감인 느티나무는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앞으로도 물 맑고 하늘 밖에 볼 수 없는 이곳에 그늘과 쉼터가 되어 주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교통편
부산 노포동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새벽 5시30분부터 10분 간격 운행. 4500원, 50분 소요. 경주버스터미널에서 산내까지 간 후 일부리행 352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산내행 350번 버스는 오전 6시, 6시30분, 7시15분 등 하루 28회 운행한다. 산내에서 일부리행 버스는 오전의 경우 6시20분과 7시40분에 출발하는 2대밖에 없다. 이 버스를 놓치면 산내 개인택시(054-751-5955)를 이용한다. 심천마을까지 1만2000원 안팎. 건천ic에서 내려 우측 산내청도방면으로 우회전하면 단석산 입구인 우중골도 지나면 산내면을 알리는 표지판과 당고개(땅고개)이다. 산내면 소재지인 산내사거리에서 청도, 운문댐 방향으로 우회전 하면 20번지방도  '외칠리·일부리' 표지판을 보고 좌측으로 진입, 다리를 건넌 후 좌회전하면 외칠리에 닿는다. 다시 우측으로 상록병원 일부리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심천마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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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내원사 입구인 일주문을 지나 삼성교를 건너면 그 유명한 내원사의 산신각을 만날 수 있다. 당나라 스님 일천명을 데리고 천성산(그때는 원적산으로 불림)으로 들어올때 천성산 산신이 마중을 나와 지금의 산신각이 있던 자리에서 산신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 후 그곳에 산신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그 곳 앞에 현재는 700살이 된 소나무가  내원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

 



1300년 전 이야기인 '원효척판구중"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천명의 대중을 구했다'는 전설을 알지는 못 하겠지만 700살이나 먹은 홍송이 아파 현재 주사를 맞고 있다. 어디가 아픈지 아니면 요즘 소나무에 유행하는 소나무의 흑사병인 소나무재선충인지 몹시 아파하고 있다. 내원사를 드나드는 예전에는 오솔길이 넓은 길로 확장이 되고 그 위에 벽돌로 덮어 있어니 700살중 근래의 몇십년이 소나무에게는 치명타가 되었을 것 같다.
뿌리의 성장을 막고 숨통을 막고 그 옆 내원천에 축대를 만들며 다리가 잘려나가고 현재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이며 700년을 활짝 열린 마음으로 살아 왔는데  최근에 닫힌 마음으로 갑갑하게 살다 보니 대한민국아줌마들의 울화병이 아닌지 모를일이다.



100년안에 국내의 소나무가 전멸한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나오는 요즘에 700년을 살아온 이 소나무도 현재 마음은 어떠할까. "나무 근처에 오지마세요. 이 소나무는  현재 약제 처리중에 있어 만지거나 송진 및 솔잎 채취 사용하면 위험하다"는 접근금지 경고문구를 허리춤에 달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형수가 되어버린 소나무의 마음은 어떠할까?

허리통 3.1m 키는 25m로 제법 근사하고 늘씬한 소나무는 2000년 3월18일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 상록수인 소나무는 하루빨리 원기를 회복하여 앞으로도 1000년을 더 살 수 있기를 빌뿐이다.

소나무의 이름표로 익성암에서 관리를 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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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른 봄이라 고목은 새싹을 다 피우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서 있었다.

봄이면 새잎을 달고 오고가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할 것 같다. 가지가 좌우로 뻗어 여름철에는 넓은 그늘을 만들어 쉼터 역활을 할 것이며 도갑사를 450년 동안 지켜온 터줏대감이 이 팽나무이다.
허리둘레는 장골 둘이서 양팔을 뻗어 겨우 잡을 수 있는 4.4m이며 팽나무의 높이 또한 8m로 낮지만 풍겨오는 무게감은 보는 이를 압도 하고도 남는다.  
1924년 12월 3일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고 위치는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58-2번지 도갑사 상가건물 한켠에 서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고목 답게 가지를 받이는 기둥이 여러개 서 있어 세월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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