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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미문화원이 있었다.
지금도 미문화원하면 40대 이후 새대들은 당장 대청동 어디어디 하며 설명을 해 줄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용두산공원 후문쪽에 있으며 용두산을 등지고 있다.
1982년 3월18일 이곳에는 국내의 모든 언론매체의 초점을 받았다.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 한 곳으로 최인순, 문부식, 김현장, 김은숙씨등 부산시내의 모 대학교 대학생들이 반미운동을 외치며 이곳 문화원에 불을 질렀다.

담당변호사는 고 노무현전대통령님, 사건을 재판한 판사는 이회창 전 총재였다.
지금 대청동의 미문화원건물은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모습을 바꾸어 시민들에게 어린시절의 향수를 갖게 하고 있다. 일제의 수탈현장이며 그 당시의 시가지 모습등 다양하게 전시를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때에는 이 건물이 동양척식주식회사건물로서 현재는 부산시 지정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보호를 받고 있다.
1929년에 건립된 이건물은 당시에는 혁신적인 건물로 평가를 받았다.
그 당시 철근콘크리트로 건물을 올리고 외형은 서구양식을 도입하여 외관의 품격을 돋보이게 한 건물로 몇 안남은 현재 보기가 힘든 건축물이라 한다.
 여기서 일제가 경제 수탈을 자행하여 국민의 피고름을 짜게 만들었다.
해방후에는 부산에 들어온 미군의 숙소로 사용이 되었고 1949년부터 미문화원으로 이용되었다. 미문화원방화사건을 거쳐 1999년에야 반환이 되어 부산근대역사관으로 탄생되었다.
지금 부산근대역사관의 모습을 찾아보면 우리 부모님 새대 삶의 모습을 알 수 있다. 40계단과  용두산 공원을 연계 하며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용두산과 그 인근의 모습으로 전찻길이 보이며 용두산에는 일제가 세운 신사 건물도 2동 보인다. 전차를 타고 이곳을 지날때는 모두 일어서 큰절을 하였다 하니 그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영도다리의 모습.




찾아가는길

버스 : 해운대방면 40,139,140.
서면방면 : 17,17-1 35,52-1,81,82,85,87,88,89,10
부산역방면 : 40, 42, 59, 81, 140

지하철 : 1호선 중앙동역 하차1번,5번, 11번 출구
남포동역 하차후 용두산공원을 거쳐 와도 된다


관람시간 : 9시 - 18시

휴관일 : 1월1일,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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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기념관의 안희제 선생님의 흉상입니다.




지하1층으로 내려서면 정면에 처음 만날 수 있습니다.

백산기념관은 부산 중구 백산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위의 회사원들이나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뛰였습니다.



현재 백산 기념관의 모습입니다. 옛 백산상회가 있던 곳으로 특이하게도 이 전시관은 지하에 설치 되어 있습니다. 지하1층이 백산기념관이며. 지하2층은 제2전시실로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정면으로 만나는 액자입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지하실로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하1층에 내려서면 먼저 백산선생님의 흉상을 만나게 됩니다.

입구에 쌀 수집통이란 단지가 있습니다.

 백산선생님은 의령군 부림면에서 출생하였어며, 생가 한학을 공부하였던 재실등이 스크랩되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관 내부의 모습입니다.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 백산선생님의 일대기를 보기가 쉽습니다.

 백산상회의 설립목적과 운영등에서도 설명을 하였어며 1970년과 1990년 때의 옛  백산상회모습이 사진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백산상회 운영에 관한 내용과 백산선생의 친필서한문등을 볼 수 있다.

 

 

 백산선생님이 사용하시던 유품이 전시되어 있어며

 백산선생님의 초상화입니다.

 국내에서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비밀결사 단체의 활동과 대동청년당 단규등이 나와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명예학사학위 증서

백산기념관이란?

백산 안희제(白山 安熙濟, 1885~1943)선생의 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중앙동 옛 선생님이 운영하던 백산상회 그 자리에 기념관을 세워습니다.
이름하여 백산기념관.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운영을 하시며 독립운동의 자금을 마련하였다 합니다.
그 뒤에는 백산상회를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장하였다 합니다.
범위를 확대하여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와 국내 및 외국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뛰는 단체에 활동자금을 지원하였다합니다.
그리고 독립을 위해 백산상회는 그들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어며 백산안희제선생님의 애국심을 기리며 후세에 그뜻을 길이 전하고자 백산기념관을 건립하였다 합니다.

선생은 일제식민지 아래에서도 민족교육, 민족기업육성,항일운동등 여러방면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한 민족독립운동가였습니다.

자는 태약(泰若), 호는 백산, 본관은 강진입니다.

안희제 선생님의 기념관을 살펴보면 출생과 성장, 교육구국운동, 국내 비밀결사 단체 활동, 백산상회 설립과 운영 언론학회활동,국외독립운동 기지건설과 대종교의 활동으로 나누어져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1885.8.4 경남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부농의 아들로 출생을 하였어며 그후 1905년에 보성전문학교 경제과에 입학을 하고 1907년에 구명학교, 의신학교를 설립하셨다.
1909년에는 대동청년당을 결성, 1911년에는 러시아로 망명도 하였다한다,
1914년에 귀국을 하여 백산상회를 설립하는 과정등을 볼 수 있으며 3.1운동 때는 영남일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고 동아일보 창립발기인에 참여를 그리고 중외일보 사장으로 취임을 하며 자력사를 설립하여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합니다.
국외에서는 발해농장을 경영하여 둑립운동의 기지로 이용을 하였어며 1942년 11월19일에 임오교변때 일경에 체포되어 그 이듬해 8월3일 순국을 하였다 한다.
백산선생의 일생은 나라의 독립를 위해 당신의 삶은 뒤로하고 오직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분입니다.

하늘 높은 가을날 백산안희제 기념관과 40계단 기념관을 찾아보세요. 불과 200여 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의 백산선생님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백산선생님의 교육열에도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합니다. 구명학교 의신학교 창남학교를 설립하셨고 1918년 서간도에서 망명생활을 할때 안효제의 부음을 듣고 애통한 심정과 장례절차등을 적어 안효제의 동생에게 보낸 조위문이
아래 액자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사용하시던 도장입니다.









터치스크린으로 선생님의 일대기, 업적등을 화면으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지하2층의 전시실 모습입니다.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전시 되어 있습니다.










백산기념관은
개관일:매주 화요일~일요일(월요일은 휴관)
관람시간:09~18:00(단 토.일요일은 17:00까지)
관람료:무료
교통편: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중앙동역에 하차, 3번 출구로 나오면 3분거리에 위치
버스정류소:백산기념관.부산데파트, 연안여객터미널
홈페이지:www.baeksan.bsjunggu.go.kr
문의전화:051-600-4067~8
주소:부산광역시 중구 백산거리 62(동광동3가 10-2) 60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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