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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삼랑진에는 만어산이란 작은 산이 있다.
그곳에는 만어산의 명성을 알리는 작은 사찰이 자리 하고 있어 더 유명하다.
만어사로 고려시대 명종10년인 1180년에 보림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 한다.
그러나 만어사의 창건은 그 이전부터 창건설화를 가지고 있어
그 설화로 인해 만어사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 되고 있다.

실제로 만어산을 올라보면 만어사에만 그런것이 아니라
산 골짜기 마다 바위들이 에워싸고 있어 신비감 마저 든다.

그 수많은 바위들은 물고기의 설화를 가지고 있어 더욱 신비롭다.
밀양의 3대 신비로 불가사의로 분류된다.
창건연대는 가락국의 수로왕까지 연대가 올라간다.
못된 독룡을 불법으로 버릇을 고쳐 주기 위해 부처님에게 부탁을 하는데
여섯 비구와 일만의 천인을 대리고 왔다는 전설로
지금 대웅전 앞의 너덜들이 비구와 천인들이 변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또 하나는 동해 바다의 왕자가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무척산의 스님을 찾아가 자신이 거쳐 할 곳을 부탁하니
그 스님이 가다가 서는 곳이 인연이라 이야기를 하였다.
왕자 뒤를 일만의 물고기가 따랐다하는데 현재 만어사 위치에서 인연이 닿아 서 버렸다.
그래서 왕자는 하나의 바위로 변하고 지금은 그 바위를 왕자가 변한 미륵불이라 한다.
왕자를 따르던 일만의 물고기 떼는 지금 대웅전 앞의 너덜인 바위로 변했다 한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전설 같은 바위들이 이리 보면 물고기 같은,
저리 보면 사람 같은 수많은 바위들이 얽키고 설키고 하여 계곡을 메우고 있다.
그중에는 여섯비구가 변해버린 바위에는 청아한 종소리나 쇳소리가 난다하여 더욱 신비롭다.
지금 만어 불영 경석을 보면 바위 마다 쇳소리 종소리를 확인해 볼려고
돌맹이를 두들겨 바위마다 맞은 상처가 여기저기 나 있는 것 또 한 사실이다.

많은 탐방객들이 얼마나 두들겨 대면

거주하시는 스님 왈

‘만어사 바위 다 깨진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다 치실까.

근래에 와서는 전에 없던 소원바위가 있다.
큰 나무 밑에 둥근 바위가 놓여져 있다. 먼저 바위를 들어보면 잘 들리지만 내려 놓은 뒤 소원을 이야기하고 들면 잘 들리지 않는다는 소원바위가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잡고 있다.

창건설화대로라면 이 사찰은 2000년이 되어 가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지금은 가람의 형태가 단출하지만 한때는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선사가 이곳에 들러 미륵불을 직접 참배를 하였다 한다.

‘멀리서 보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사라져 부처영상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고 하였다.
바위의 미륵불을 보면 대단한 힘을 느낄 수 있다.
부처 영상의 모습을 떠나 바위에서 느낄 수 있는 힘이랄까.

그 무언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만어사 8부 능선에 자리잡은 만어사는 허왕후가 도래한
고대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해 주는 전통 고찰이다.

이곳은 오랜 가뭄이 지속되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신라 왕의 공불처였다고 되어 있다한다.

만어사불영경석이 지방기념물 제152호에서 2011년 1월 천연기념물로 제528호호 승격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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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 삼층석탑

보물 제466호

소재지: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일연선사가 쓴 삼국유사의 어산불영조(魚山佛影條)에 보면은
만어사삼층석탑은 고려시대 명종10년인 1180년에
동량 보림스님이 만어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건립된 삼층석탑이라 한다.

 

1단의 기단 위에 올린 삼층석탑으로 총 높이가 3.7m이며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한 개 씩의 돌로 만들어 올렸다.
기단이나 탑신부는 모두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으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안아 후에 다른 석재를 이용하여 보주를 올렸다.
전체적으로 탑신부의 비율이 안정감 있게 만들어 졌고 단아한 모습의 고려시대 탑이다.
현재 삼층 석탑이 서 있는 자리 뒤로 넓은 터가 옛 법당자리이며
지금의 대웅전은 원래의 법당지에서 옮겨 건립되었다 한다.
그러나 삼층석탑만은 창건될때의 그 자리에 위치를 하고 있다 한다.






위의 만어산 삼층석탑은 몇해전의 모습으로 현재는 탑신부의 이끼며 바위의 이물질이 모두 정리가 된 모습입니다. 

찾아가는 길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삼랑진IC~김해 삼랑진 58번(만어사 10㎞)~양산 삼랑진역 좌회전, 1022번 지방도~굴다리 통과(삼랑진역 앞에서) 양산 원동 좌회전~ 우곡리에서 만어사 표지판을 보고 만어사 방향~만어사 주차장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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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금정산하면 서울의 북한산, 대구의 팔공산,광주의 무등산 처럼 수식어로 따라 붙는 산이름이다.
그 만큼 금정산하면 부산 사람에게는 야구와 함께 떼어 생각 할 수 없는 명산이다. 그 산아래는 사실 많은 산길이 조성되어 있고 집앞을 나서면 산길로 연결되는 거미줄 같은 등산로로 봄철에는 더욱 붐비는 부산사람에게는 고마운 금정산이다.
평일 휴일날 오후에 늦게 출발한 금정산 산행, 코스는 별 생각 없이 호포로
지하철을 타고 간다. 호포역에서 나오면 바로 우측으로 주차장으로 가는 통로와 연결된다.
그 통로 한켠에 금정산을 안내하는 대형 지도가 걸려 있다. 여기서 눈요기 삼아 지도를 보고 난후 호포역사를 나오면
우측으로 지하 차도와 만난다. 
사실 부산에서 호포까지만 나가도 시골의 전원에 온 기분이 든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흘러가고 그 뒤로 김해 동신어산이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양산의 물금과 그 앞 작은 동산인 증산으로 신라와 가야가 대 격전을 벌린 장소로 유명하다,
지금도 증산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어며 그 만큼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호포가 최근에 새로운 들머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산행경로는 호포역~신기마을 금호사~임도~낙동정맥갈림길~고당봉~750m 스텐 사각~미륵사~금정산장~북문~금성동순 산행시간은 4시간정도.

호포역사 우측에서 호포새마을, 등산로(고당봉가는길),
부산교통공사가는길의 지하 통로를 빠져나와 시멘트 길을 걸어 펜스가 끝나는 지점이 나오면 갈림길 우측 다리를 건너 올라서도 고당봉으로 이어지지만 이번에는 포장길을 직진하여 신기마을로 올라가야 한다.
10여분이면 새로생겼다는 뜻의 신기마을인 금호사 제실 앞으로 올라서면 호포농원가는 길, 농원 앞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된다.  
소나무 숲길의 오솔길 입구에는 등산로 정비및 숲가꾸기 사업을 동면 면사무소에서 실시하고 있다는 안내문구를 볼 수 있다.
그 한켠에는 제선충을 알리는 글귀와 반출을 금한다는 죽은 나무들을 숙성시키는 흔적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논밭으로 사용 되었던 습지지역을 거슬러 오르면 완연한 봄이 온듯 산벗꽃들이 한창으로 꽃비를  뿌리고 있다.
제잘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올라서니 이번에는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게 산속을 흔든다. 아마 등산로 정비 사업을 하는 분인들인것 같다.  
절터의 흔적에 자란 산죽도 정비사업의 벌초기계에 힘 없이 서러지고 무엇을 위한 정비사업인지 의구심이 든다.
 
산길은 임도에 올라선다. 금정산 산허리를 가른 이 임도에서 우측으로 30m 걸어가면 이정표가 서 있다.
금정산 정상 가는 길1.7km, 직진하면 호포매운탕마을 4.2km, 뒤쪽은 가산 4km,  좌측 좌측 금정상 정상 가는 길을 따라 올라 50m 뒤에 갈림길, 두길 모두 금정산으로 오른 는길로 우측 계곡길이 100m 더 길다.
우측 계곡길로 오르기로 하고 게곡을 따라 오른다. 바닥에는 돌들이 깔려 있고 계곡은 좁아지면서 경사를 더 한다. 발아래는 현호색, 앵초가 봄을 알리며 피기 시작을 한다. 머리를 들어보니 계곡의 품이 갑자기 넓어 지고 키큰 소나무가 서 있다.
큰 바위들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곳을 지나니 갈림길, 우측은 화명 금곡동에서 올라오는 길, 금정산 정상은 좌측으로 1.1km 더 올라가야 한다.
갈림길에서 1.분 뒤 기도터의 흔적과 만난다. 금정산에 산재해 있는 기도터가 모두 헐리고 그 집터의 자리에 지금 쓰레기장이 착각 될 만큼 많은 물건들이 등산로 옆에 널부러져 있어 이마 살을 찌푸리게 한다.
상류라 그런지 계곡은 가뭄으로 물소리도 죽인지 오래고 좌측으로는 낮은 산죽이 펼쳐진다. 다시 10여분 뒤먄 갈림길로 머리를 들면 고당봉 정상이 서 있다.
좌측으로는 호포새동네에서 올라오는 길, 우측은 금정산 정상 방향, 우측으로 10m 뒤 넓은 임도급의 길과 만난다.
계석으로 내려가는 길로 좌측 금정산 정상 0.4km 이정표를 따라간다. 5분이면 사거리 길인 낙동정맥길로 매봉산에서 내려온 낙동정맥길이 여기서 쳐 받아 올라 금정산의 정점인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일명 고당봉, 장군봉의 갈림길로 넘어서면 범어사 3.4km 방향, 좌측은 철탑이 서 있고 호포 또는 장군봉, 고당봉은 우측길로 0.3km의 지척에 있다.
잣나무 조림지에서 산길은 정상을 향해 쳐 받아 오른다. 고당봉의 장벽을 실감 할 수 있다. 지금은 고당봉 정상 오른길에 철 계단과 달팽이 계단을 설치하여 누구나 쉽게 올라 갈 수 있도록 하였지만 설치 이전에는 정맥길의 고당봉 오름길은 크랙을 올라서야만 되는 위험한 곳이 한 곳 있었다.
계단 설치 후 말들이 많은 금정산 고당봉이였지만 지금은 잠잠함 상태가 되었다.  바위를 잡고 올라서면 계단길, 달팽이 계단을 올라서면 고당봉 정상으로 올라서는 임릉길, 우측으로 50m 바위를 잡고 가면 고당봉 정상을 알리는 정상석이 서 있다. 15분 소요. 

사실상 낙동정맥의 끝 지점으로 지금은 몰운대 까지 이어가지만 사실상의 낙동정맥 끝지점이다. 여기서 하산길은 산신할미를 모신 전각이 있는 동문5km,북문0.8km 방향과 화명동 쪽으로 내려서는 능선길이다.
미륵사를 가기 위해 정상석을 지나 바위를 내려선다. 요리조리 바위 틈을 빠져 내려서면 화명동으로 내려서는 능선에 다다른다. 이제는 또 다시 넓은 길, 이 길을 따라 내려서면 미륵사로 갈 수 있다.  
금곡동 4.5km, 화명동 7.9km 이정표를 뒤로하고 금정산성의 흔적을 따라간다. 교육원에서 세운 750m 스텐 사각봉을 뒤러하고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금정산을 붉게 물들인다. 칠바위 북문1.1km 갈림길 에서 직진하면 미륵암 암봉의 끝지점에 설 수 있다. 기존의 등산로 상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된다.
발아래는 천길 낭떨어지이며 여기서 보는 금정산 일원의 조망 또한 장관이다. 돌아나와  내려서면 좌측으로 미륵암 갈림길이다.
 종이를 코팅한 미륵사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직지하면  화명동으로 하산을 할 수 있지만 급한 길을 따라 내려서서 미륵사로   들어선다.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였다 하며 임진 왜란 때 부산 앞바다에 떠 있던 왜군 5만 병선을 물리치고 적장의 목을 베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서려 있는 호국성지이다. 염화전 뒤로 서 있는 미륵바위와 좌선바위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다가오는 부처님오신날이 몇일 남지 않아 모두들 바쁜 것 같다. 잠시 절 구경을 하고 미륵사를 나와 금정산장이 있는 북문 가는 길을 따라간다. 오랜만에 보는 산장 관리인 서재석 형님을 보기 위함이다. 여기서 하산은 북문을 거쳐 범어사 또는 산성마을 인 금성동으로 하산을 하면 된다.



  


호포의 신기마을에 있는 금호사 제실을 지나면  만나는 길, 이길을 따르다 좌측으로 들어서야 한다.

금호사제실

예전에는 농사를 지었을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는 습지젹으로 산 벗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꽃비가 떨어지는 것 처럼 보였다.


임도 갈림길,

앵초

고당봉을 볼 수 있는 지점


낙동정맥의 사거리 갈림길 안부


우측으로 돌아보면 고당봉의 바위장벽을 볼 수 있다. 이 중간으로 올라가야 하는 길이 낙동정맥길이다. 자세히 보면 목제계단과 달팽이 계단을 찾을 수 있다.

목제게단과 달팽이 계단


고당봉 바위 능선에 올라 북문으로 내려서는 나무계단길, 중간의 붉은 지붕이 고당할미를 모신 전각 


고당봉정상



연수원에서 설치한 750m 스텐 사각 기둥

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당봉으로 화명동 능선에서 본 모습


미륵사


금정산장

북문 사적 제215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숙종29년 1703년에 국방방호의 묵적을 두고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17km, 높이는 1.5~3m에 국내산성 가운데 가장 큰 성이다.





연수원 가는 길

중성의 석문


금성동으로 산성마을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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