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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을 하며 재사용된 목재의 상태와 단청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세요.




★복원을 한 후 단청을 깨끗하게 칠한 외부의 모습. 동영상을 보면 내부와 외부가 너무 상반 됩니다.


모서리가 깨진 모습과 벗겨진 단청에 상천난 나무.



☞이 모습이 우리의 문화 유산이 될 수 있는지 복원된 금정산성 3망루의 복원된 모습에 놀랬습니다.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1703년(숙종29)에 금정산에 돌로 쌓은 석성입니다. 길이만도 18.845m이며 성벽 높이는 1.5~3m쯤 이며 전체 면적이 약8.2㎢에 이른다 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국내 산성의 규모로서는 가장 큰 규모라합니다.







금정산성의 정비는 1972년부터 점차적으로 복원을 하여 현재에도 계속 진행형입니다. 그럼 이번 포스팅의 금정산성 제 3망루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안내문을 보면 금정산성 3망루는 동문에서 1km의 거리에 있으며 암반이 솟아오른 절벽위에 절묘하게 얹혀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두개의 나무로 튼튼해야 할 기둥을 잇대었다.



정산 나비바위 오른쪽에 위치를 하고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입니다. 또한 이곳에서 보는 금정산의 경치 또한 대단합니다. 가까이는 부채바위 암릉이 길게 이어지고 건너편에는 용호등으로 불리는 무명암이 이름을 명명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바위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명 의상봉으로 불리는 사자봉 옆으로는 금정산성 4망루가 외로운 듯 금정산을 굽어 보고 그 뒤로 금정산의 고당봉이 솟아 있어 금정산의 전망대 구실을 하는 곳입니다.





남쪽인 바닷가 쪽은 멀리는 해운대구의 센텀시티와 광안대교가 조망되고 장산 황령산등 부산시내의 3할 가까이 볼 수 있습니다. 금정산성에는 현재 4개의 망루가 있습니다. 현재 복원이 된 곳은 2, 3, 4망루며 1망루도 복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 해 전까지도 모든 망루가 복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다를 가까이 끼고 있어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태풍의 길목이라 망루는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1망루도 태풍으로 인해 무너져 아직 복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3년 5월에는 금정산성 3망루가 복원되었습니다. 필자가 찍은 사진의 2011년 9월 사진에는 로프가 쳐져 있어 출입을 막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해 여름 태풍에 아마 피해를 본 것 같습니다. 금정산을 자주 가다보니 그 뒤에는 철거를 하였고 다시 또 가니 기초공사를 해 두었습니다. 이번 설날 전에 3망루를 거쳐 지나가는데 복원이 되어 반갑고 하여 가보았습니다.





복원을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단청이 깨끗하게 되어 있어 외관이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내부를 보니 어디 중고 나무를 사용하였는지 나무가 모서리가 깨어지고 터지고 갈라지고 상처투성이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걸 복원했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며 기둥을 보았습니다. 3망루는 정면2칸에 측면 1칸으로 모두 6개의 기둥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중 들어가는 입구 왼쪽의 기둥은 나무를 두 개를 잇대어 놓은 모습이었습니다. 이곳은 바람이 엄청 부는 곳입니다. 태풍이 올 때마다 항상 바람이 지나가는 골목이라 비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져 망루를 다시 복원하였는데 왜 나무를 이어서 기둥을 사용하였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의문은 2014년 2월5일 풀리게 되었습니다.





숭례문 부실 공사문제는 최근까지도 뉴스에 나오고 지난 2월4일 뉴스에는 또 다시 사적지 단청의 엉터리 공사가 보도되었습니다. 계속 문화재 부실 공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금정산성 3망루의 단청도 궁금하여 금정산성을 관리하는 담당구청 문화 공보과에 전화를 하였습니다. 마침 담당자가 출장을 갔다며 오후에 통화가 되었습니다. 담당자와 통화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복원을 하면서 일부 기존의 나무를 다시 사용하였다 합니다.





6개의 기둥 중 3개를 재 사용하였다하는데 하필 잇댄 나무도 재사용된 나무 였습니다. 그리고 내부의 써까레등은 모두 기존의 나무를 재 사용하였다합니다. 단청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습니다. 공보과 담당자의 말은 재사용된 나무는 단청을 칠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새로 사용된 나무만 단청을 칠하였다합니다. 왜 단청을 기존의 나무에는 칠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역사적으로 망루의 건물이 조선시대에 지어졌고 그 당시 사용된 목재라서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함이라하면 이해를 할 수 있지만 복원한지 몇 년 안 된 망루를 다시 복원하면서 단청을 다시 입히지 않은 것은 담당자가 현장을 직접 가본 것인지 의문이 들게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장에 직접가서 눈으로 확인을 해 봤다면 외관만 단청을 칠하고 내부는 칠하지 않게 된 것을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2011년9월25일 촬영한 사진. 붕괴 위험이 있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현장 방문을 하여 내부의 단청을 깨끗하게 입혀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로 부딪히고 찍 여 상처 난 나무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까지 우리의 문화유산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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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은행나무  푸른 잎이 바람에 떨어질때면 마치 푸른비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녹우당.

 

 

하늘을 가르는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온다. 사각사각 거리며 댓잎을 흔들고 덕음산 아래 비자나무도 어깨춤을 흔들며 소리를 낸다. 스르륵 스르륵, 후두둑 후두둑

하늘은 무엇이라도 태울 요령으로 염천 때약볕인데 어디서 비 뿌리는 소리가 들린다.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 녹우당은 '집앞의 500년 된 은행나무에서 푸른 잎이 떨어질때면 마치 푸른비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은행나무  푸른 잎이 바람에 떨어질때면 마치 푸른비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녹우당.


한여름인데도 7월의 막바지에 찾아간 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입구에는 가을의 문턱을 당기기 위함인지 목을 쭉 뺀 코스모스가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흔들린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가 있는 해남읍 연동은 백련동으로 불린다. 그런 연유인지 주차장 옆 작은 연못에는 연꽃이 푸르름도 잊고 꽃망울을 터트리며 화사하게 입맞춤을 하고 있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고산 윤선도를 알기위해서는 먼저 윤선도 유물관을 관람하자. 녹우당.


현재 오른쪽으로 새롭게 단장한 고산윤선도 유물관이 있고 녹우당은 정면의 은행나무가 보이는 직진길이다. 고산윤선도를알기 위해서 먼저 유물관을 관람하자. 고산윤선도에 대한 그의 삶과 해남윤씨 가문의 녹녹치 않는 삶이 이곳에 녹아 들어 있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500년된은행나무가 문화재. 윤효종이 아들의 진사합격을 축하하며 심었다한다. 녹우당.



녹우당 인근에는 세그루의 은행 나무가 있다. 먼저 녹우당 집앞과 전시관 뒤편에 두그루가 있다. 이 은행 나무는 다음과 같은 내력이 있다. 고산 윤선도의 4대 할아버지인 어초은 윤효종이 아들들의 진사시를 합격하며 손수 심었다한다. 그만큼 역사성과 녹우당과 함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녹우당에서는 이 은행 나무가 있어 더욱 멋스러운것 같다. 현재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수령은 500년이 넘었다 한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다방면으로 박식한 팔방미인 고산 윤선도, 녹우당.


고산 윤선도는 조선조의 문신이며 정치가 국문학자며 시조시인 예술가 한의사등 다방면으로 요즘말로하면 팔방미인으로 불리든 분으로 이곳을 대표하는 건물은 녹우당이다. 효종이 그의 스승 고산 윤선도에게 직접 하사한 집이라 한다. 고산 윤선도가 고향으로 낙향을 할때 경기도 수원의 집에서 사랑채의 건축자재를 배로 싣고 현종9년인 668년에 이곳까지 옮겨와 다시 지었다하니 그만큼 고산 윤선도도 애착이 간 것 같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500년된은행나무와 비자림이 녹우당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녹우당.



사적제 167호로 지정된 고산 운선도 유적지는 고산 윤선도의 4대조인 어초은 윤효종이 15세기에 이곳에다 살림살이 터를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600년의 기나긴 역사를 이어온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종택인 녹우당의 건축을 보면 풍수지리에 따라 지어졌는데 덕음산을 뒤로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터 중의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는 500년이 넘은 비자림 숲이 있고 녹우당과 고산사당, 어초은사당이 함께 한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문화재수공사로 녹우당은 개방을 하지 않는다.

현재 사랑채와 녹우당 그리고 부속 건물은 굳건히 문이 잠겨 있다. 녹우당 입구 대문에는 다음과 같은 알림문이 붙어 있다. '녹우당 안채 보수공사로 인하여 녹우당을 당분간 개방하지 않는다'는 공고문이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복원공사도 하여야 하고 재건축도 해야하지만 멀리서 찾아간 사람으로서 담장만 보고 돌아선다는것이 너무나 아쉬움이 큰것 같다. 기왕 보수공사를 시작하였다면 몇년의 땜질 공사가 아닌 완벽한 보안 공사로 향후 100년은 내다 보는 그런 녹우당을 후손에게 물려주면 멀리서 찾아간 분들에게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다.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녹우당.

 

 

 

 

 

 

 

 

 

 

추원당 가는 아름다운 길

 

 

옆에서 본 녹우당.

 

 

추원당 가는 아름다운 길

 

 

추원당.

 

 

 

 

추원당도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비자나무 숲.

 

 

 

 

 

 

어초은 사당.

 

 

 

 

 

 

 

 

고산사당.

 

 

500년된 비자나무 숲

 

 

 

 

보호수로 지정된 잘생긴 소나무.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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