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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대사탑과 탑비

보물 제274호와 제275호

동리산 태안사에는 두 개의 부도탑과 탑비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과 광자대사탑과 탑비로 모두 정교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조각 솜씨를 뽐내고 있는 수작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을 흔히 부도라 하는데 불교에서는 신성시하며 예배의 대상으로 여긴다. 사찰의 큰 스님이 열반에 들어 다비식을 한후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부도탑을 세워 보관을 하는데 보통 부도탑을 사찰의 입구에 만들어 둔 것을 볼 수 있다. 태안사도 일주문 옆에 광자대사부도탑과 함께 부도 밭을 조성하였는데 적인선사 혜철부도탑은 대웅전 뒤에 안치를 하였다. 태안사의 창건주이자 동리산파를 개창한 혜철선사의 부도탑을 보지 못하고 온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려초 태안사를 중창한 광자대사 윤다스님의 탑과 비로 고려 제4대 광종원년인 950년에 세워졌다. 이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신라 석조부도의 전형을 잘 따르고 있으며 탑의 기단부 부터 옥개석, 지붕돌과 상륜부에 이르기까지 팔각을 고수하고 있다.있다.

팔각 하대석 각면에는 당초문이 있고 그 위의 상단에는 각면에 안상 2좌씩 배치 되었다.

그 위에 16엽의 이중 연꽃잎이 아래로 향하고 있고 그위 중대석에 안상 1좌씩 있다. 상대석 또한 팔각으로 16엽 연꽃앞을 두텁게 새겼다. 이 상면에는 2단의 팔각형 받침이 있다. 탑신의 각면에는 탁상에 놓인 향로 문양을 새기고 그 좌우로 사천왕 입상이 양각되었다.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양식을 따와 기와골, 암막새,숫막새까지 잘 나타내고 있다. 상륜부는 꽃부리가 위로 향한 모양의 앙화와 반구형 탑의 꼭대기층 위에 바리때를 엎은 것처럼 만든 복발과 바퀴모양의 보륜, 구슬모양의 보주등이 완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부도는 상하 비례가 우아하고 정교하며 완전한 상륜부 조각 또한 매우 우수하다.

팔각원당형으로 신라 석조부도의 전형을 잘 따르고 있으며 탑의 기단부 부터 옥개석, 지붕돌과 상륜부에 이르기까지 팔각을 따르고 있다.

앞의 광자대사탑과 좌측 뒤 파괴된 비문과 탑비만 남은 이수와 귀부가 보인다.



탑신의 각면에는 탁상에 놓인 향로 문양을 새기고 그 좌우로 사천왕 입상이 양각되었다.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양식을 따와 기와골, 암막새,숫막새까지 잘 나타내고 있다. 상륜부는 꽃부리가 위로 향한 모양의 앙화와 반구형 탑의 꼭대기층 위에 바리때를 엎은 것처럼 만든 복발과 바퀴모양의 보륜, 구슬모양의 보주등이 완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수작이다.



팔각 하대석 각면에는 당초문이 있고 그 위의 상단에는 각면에 안상 2좌씩 배치 되었다.

광자대사탑비

태안사에 있는 탑비로, 고려시대 승려 광자대사 윤다(允多)의 탑비이다. 
광자대사는 태안사를 두 번째로 크게 번성케 한 스님으로, 경문왕 4년(864)에 태어나, 8세에 출가하였다. 사방을 다니다가 동리산에서 수도를 하였고, 그 뒤 가야갑사(迦耶岬寺)에서 계(戒)를 받아, 다시 동리산으로 돌아와서 승려가 되었다. 혜종 2년(945)에 82세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광자 라 내리었다. 

비는 비문이 새겨진 몸돌이 파괴되어 일부 조각만이 남아 있으며, 거북받침 위에 머릿돌만 얹혀져 있는 상태이다. 거북은 목이 짧아보이기는 하지만, 머리의 표현이나 몸 앞쪽의 조각이 사실적이고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등 위로는 비를 얹기 위한 받침대가 새겨져 있는데, 옆면에 보이는 무늬가 어떤 것을 표현한 것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머릿돌에는 네 귀퉁이마다 이무기의 머리조각이 돌출되어 있고, 앞면에는 극락조로 보이는 새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이러한 새 종류의 조각은 연곡사 동부도(국보 제53호)나, 북부도(국보 제54호)에서 잘 나타나 있다. 

비문은 거의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이지만 다행히 『조선금석총람』에 일부 글자가 빠진 채로 그 전문이 실려있어, 광자대사가 출가하여 법을 받고 전하는 과정, 공양왕의 옆에서 불심에 대한 문답을 한 일, 고려 태조 이성계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았던 일 등을 기록하고 있다.<곡성군청 홈페이지http://www.simcheong.com/kor2002/tourist/tr_index.htm>

이수와 귀부만 남아 있는 광자대사 탑비



 거북은 목이 짧아보이기는 하지만, 머리의 표현이나 몸 앞쪽의 조각이 사실적이고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는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귀부로 비문은 파괴되어 판독이 불가하며 일부만 남아 있다 한다. 머릿돌에는 네 귀퉁이마다 이무기의 머리조각이 돌출되어 있으며

극락조로 보이는 새가 돋을 새김 되어 있다.
 


교통편: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석곡(구례)IC~구례 석곡 태안사(19㎞) 좌회전~구례 순창 옥과 좌회전~구례 압록~태안사 압록유원지 직진~죽곡면~구례 압록 18번~(태평삼거리에서)구례 압록 우회전~태안사 840번 지방도 우회전~순천 태안사 방향 좌회전~태안사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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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산 태안사 대웅전으로 화려한 단청을 하고 있으며 6.25때 불탄 것을 그후 다시 복원을 하였다.













태안사로 들어오면 만나는 매표소 우측으로 태안사 표지석과 아름다운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동리산 태안사>
동리산 태안사는 통일 신라 말기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이루며 신라 경덕왕 742년에 세 스님에 의해 태안사가 창건되었다. 적인선사 혜철, 광자대사에 의해 대사찰로 변모를 하였다.
풍수지리사상의 대가인 도선국사도 혜철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한다. 신라시대때는 대안사. 조선후기때부터 태안사로 불렸다 하며. 태안사를 품고 있는 동리산은 봉황이 먹고 산다는 오동나무가 열리는 숲속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고려 중기에 태안사의 말사였던 송광사가 독립을 하고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태종의 둘째 왕자인 효령대군도 머물렀으며 정유재란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되고 6.25동란으로 대웅전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는다.
경내에는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제273호), 광자대사탑과 탑비(보물제274호~275호), 대바라(보물제956호), 천순명동종, 능파각등 일주문과 고려후기 3층석탑등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일주문과 능파각만 남고 모두 불타버린 것을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전쟁의 소실을 피한 능파각은 계곡의 물과 경치가 넘 아름다워 능파라한다.



능파각은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는 금강문의 역활을 가지고 있어  능파각의 다리를 건너면 불교의 셰계로 들어 온다는 뜻이 있다한다.


<태안사 능파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제82호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20

능파각은 문성왕 12년인 850년에 태안사가 창건될 때 혜철선사가 함께 지었고 그후 고려 태조24년에 광자선사가 고쳐 지었다 한다.

그 뒤 다시 파손되었던 것을 영조43년(1767)에 다시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능파각은 정면3칸 측면1칸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자 인(人) 모양으로 맞배지붕이다. 계곡 좌우로 석축을 쌓아 석축위에 통나무를 걸치고 나무위에 판자를 깔았다. 그위에 주초를 대신한 하인방을 걸치고 기둥을 세워5량의 맞배지붕을 올였어며 처마는 겹치마이다.

계곡의 물과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능파라 하는데 능파각의 특징은 다리와 금강문 누각을 함께 구성하여 이다리를 건넘으로 해서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 던 저 버리고 불교의 세계로 들어 온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다. 능파각은 태안사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태안사 일주문은 태안사에서 6.25전쟁때에 소실이 되지 않은 건물로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능파각을 지나 태안사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이 주변의 풍치와 함께 오래 남을 아름다운 구간이다. 일주문을 향해 걸어 가는 관광객.

봉두산인 태안사는 일주문 현판에 동리산 태안사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봉두산과 동리산은 서로 관계가 있는 산명으로 봉황이 먹고산다는  오동나무가 열리는 숲속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태안사 일주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제83호

태안사 일주문은 6.25전쟁에서 능파각과 함께 화를 면하였다. 고려 태조 20년(937)경에 광자선사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일주문은 각현선사, 영월선사가 중수하였다 하며 1980년에 보수공사를 하였다 한다.

건축 양식은 단층 팔작집으로 전후 주칸에는 3구, 측면에는 1구의 공간포를 짜 올린 다포식 건물로 앙서로 된 살미첨차들로 내외 사출목의 공포를 짜서 아주 화려한 건출물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원래는 태안사입구 광자대사 부도탑 옆에 있었는데 복원을 하며 이곳으로 옮겼다 한다.

삼층 석탑 주위로 연못을 조성하여 웅장하며 신비감이 감돌며  태안사와 함께 잘어울려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태안사 삼층석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제170호

원래 사찰입구 부도탑이 있는 광자대사 부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기단부와 탑신부 일부의 부재가 유실 된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복원을 하여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한다.

탑의 구조는 원래 2층 기단인 3층 석탑으로 연못으로 옮기면서 기단의 지대석을 높게하여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며 웅장하게 보인다. 그리고 360도를 호수로 조성하여 더욱 웅장하며 신비감이 도는 석탑으로 구성미가 태안사와 함께 조화를 이룬다.

탑신부의 각 옥개석 층급받침은 4단이며 옥개석 상면에는 2단 괴임을 조출하여 고식을 보여 주고 있다. 상륜부는 모두 새부재를 보충 사용하였고 고려초기 작품으로 보고있다.

교통편은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석곡(구례)IC~구례 석곡 태안사(19㎞) 좌회전~구례 순창 옥과 좌회전~구례 압록~태안사 압록유원지 직진~죽곡면~구례 압록 18번~(태평삼거리에서)구례 압록 우회전~태안사 840번 지방도 우회전~순천 태안사 방향 좌회전~태안사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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