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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김천여행)도선국사가 창건한 수도도량 김천 수도산 수도암 여행. 김천 수도산 수도암


김천 수도산 수도암은 859년 헌안왕 때 

도선국사가 청암사를 창건하고 

수도도량으로 세운 암자입니다.





김천 수도산 수도암 주소: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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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께서 수도산 정상 아래에서 

수도암터를 찾아내고는 너무나 기뻐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수도암은 

수도 도량으로 선풍을 일으켜 

불령산으로 불리던 산이 

수도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수도암은 6·25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전소되었으나 현재 대단한 규모 중창했습니다. 

수도암은 청암사의 부속암자이지만 

본 사찰인 청암사를 능가할 만큼 큰 규모였습니다.

 


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보물 제296호),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보물 제297호),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307호)이 남아 있으며 

창건 당시로 보이는 건물의 초석과 기단석이 남아 있습니다.



수도암은 근대 선승으로 추앙받는 경허스님과 

한국 전쟁에 전소되면서 법전대종사가 크게 중창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당우는 대적광전 약광전 선원 관음전 

나한전 노전 등이 있습니다.

 




대적광전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상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석굴암의 불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예술성은 정말 대단하다고 합니다.

 


이 불상을 9세기경에 경남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하여 

노승이 등짐으로 운반하게 되었습니다. 

노승이 절 앞까지 와서 그만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자 

산신령을 불러 칡덩굴을 없애라고 크게 꾸짓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수도암 주위로는 칡덩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필자는 노승이 등짐으로 옮겨온 불상은 

대적광전에서 스님들이 불경을 외우며 

행사를 진행해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대신 대적광전과 약광전 앞에 각각 서 있는 

삼층석탑과 약광전 안의 약광전석불좌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도암삼층석탑은 도선이 수도암을 창건하면서 세웠다고 하는데 

수도암 절터가 옥녀가 베를 짜는 형국이라 하여 

두 기의 삼층석탑을 베틀의 기둥으로 삼아 세웠다고 합니다.

 


도선국사 글귀가 선명한 

돌 기둥입니다.





약광전 석불좌상 관을 쓰고 있어 

보살상으로 보이지만 

손가짐에서 여래불로 보이며 

약광전에 모신 것을 보면 약사여래불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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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김천여행)수도산 최고의 조망처인 수도암에서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을 만나다.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


방가방가

김천 수도산의 청암사를 여행하면서 

내친김에 수도암 여행까지 하고 왔습니다.



 


청암사 수도암 주소: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수도암

청암사 수도암 전화:054-437-0700


2021/01/05 - (경북김천여행)수도산 최고의 조망처인 수도암에서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을 만나다.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

2021/01/02 - (경북여행/김천여행)청암사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 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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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불령산 수도암은 

본찰인 청암사에 비해 

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보물 제296호),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307호),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보물 제297호))의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번에는

보물 제297호인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을 

만나 보겠습니다.

 


현재의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며 

대적광전과 약광전 앞에 각각 있어 

동·서탑이라 하나 두 탑의 사이가 멀며 

조성 양식도 달라  

쌍 탑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도암에 세워진 삼층석탑은 

"옥녀가 베를 짜는 모습"이라는 

‘옥녀직금(玉女織錦)’의 위치에 세워졌으며 

삼층석탑은 베틀의 기둥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럼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을 

만나 보겠습니다.



서쪽에 세워진 대적광전 앞의 서탑은 4.25m이며 

동탑에 비해 높이가 조금 높습니다.

 


이중 기단이며 중석 각면에 

모서리 기둥과 안기둥 1주가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층마다 1매씩이며, 

1층 몸돌에만 연꽃대좌 위에 

여래좌상을 돋을새김 했습니다.

 















동쪽에 세워진 약광전 앞의 동탑은 3.76m 이며

단층 기단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렸습니다.





1층 몸돌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형태로 

모서리 기둥을 새겼습니다.

 




각면의 모서리 기둥 안쪽에 

5㎝ 깊이의 감실을 만들어 

그 안에 연꽃대좌위에 

여래좌상을 돋을새김 했습니다.



면석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은 

수도산 상부에 위치하고 있어 

조망이 끝내 줍니다.

 





단지봉과 좌일곡령, 

석화성이라는 가야산 상봉이 

바라다 보이는 최고의 위치입니다.

 






수도암은 청암사를 창건한 도선국사가 

수도도량으로 수도암을 창건했다고 합니다.



이탑은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가 조성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디지털김천문화대전·안내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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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김천여행)청암사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


통일 신라 때 청암사를 창건한 도선국사는 

수도도량으로 불령산 정상 아래에 

수도암을 창건했습니다.



 



 

청암사 수도암 주소: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수도암

청암사 수도암 전화:054-437-0700


2019/09/06 - (경북여행/김천여행)가을에 걷기 좋은 둘레길 수도산 인현왕후길 여행.

2019/08/26 - (경북여행/김천여행)가을의 문턱에 다시 찾고싶은 사찰 김천 수도산 청암사 여행

2019/08/23 - (경북여행/김천여행)김천 10대 피서지중 한 곳, 무더위도 무색하게 하는 무흘구곡 9곡 용추폭포.





수도암이 참선도량으로 워낙 유명해지다보니 

불령산이 수도산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을 만큼 

수도암은 수도도량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청암사 수도암에는 

현재 3점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청암사의 부속암자인데도 

현재 청암사보다 더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먼저 보물 제296호 

약광전 석불좌상을 만나보겠습니다. 

석불좌상을 약광전(藥光殿)에 봉안하고 있는데요 

약사전은 볼수 있으나 

약광전은 다른 사찰에서 보지 못한 전각입니다. 



청암사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은 

머리에 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마는 좁은데 그 가운데 

커다란 백호가 박혀 있습니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울 만큼 

투박하며 풍만합니다. 

눈과 코는 가늘과 짧으며, 

입술은 주툼하게 나타내어 

온화하고 중후한 느낌을 줍니다.

 


귀는 길게 늘어졌으며 

목에는 세줄인 삼도가 

그어져 있습니다. 



몸에는 얇게 선으로 표현된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좁은 어깨는 단정한 모습을 하여 

경직된 느낌입니다.

 



머리에 관을 쓴 것을 보면  

보살이라 생각되지만 

전박적인 모습이나 

손가짐을 보면 

여래상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약광전에 

모신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로 보입니다.



경직된 불상과 도식적인 옷주름 표현, 

광배와 앉아 있는 모습 등에서 

10세기경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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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도선국사의 중흥사 삼층석탑, 광양 중흥사 쌍사자석등 모작을 만나다.


광양 백운산 둘레길 7코스를 걸으면서 중간에 만났던 중흥사. 중흥사을 휘감은 편백숲이 사찰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었으며 청량감까지 들었습니다. 중흥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께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중흥사 당우는 폐사된 절터를 1963년에 중건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중흥사의 사격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석조물인 중흥사삼층석탑과 쌍사자 석등, 석조지장보살반가상 뿐입니다.




광양 여행 중흥사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90-1

광양 여행 중흥사 전화:061-763-6655


2017/11/28 - (전남맛집/광양맛집)광양백운산맛집 광양백운산자연휴양림 맛집 광양향수청국장, 광양향수청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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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사의 흥망성쇠는 중흥산성과 아주 밀접합니다. 중흥산성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초기로 보고 있는데 이는 출토된 와편 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중흥산성의 규모는 중흥사 뒤의 200~400m 대의 6개 산봉우리와 계곡을 끼고 조성된 포곡형 토성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중흥산성이 승병과 의병의 훈련 장소가 되었으며. 승병과 의병의 훈련장이란 정보를 입수한 왜군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때 의병과 승병은 모두 전사하고 중흥사도 함께 불타면서 폐사되었습니다. 필자는 중흥사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게 예술성이 뛰어나면서 화려한 중흥사 삼층석탑과 중흥사쌍사자석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중흥사쌍사자석등은 국보 제103호로 지정되었지만 중흥사에 있지 않고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의 운명도 참 기구합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조선 말기까지 중흥사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삼층석탑과 함께 궂궂하게 하늘을 받치며 그 자태를 뽐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놈들이 있었으니 그게 일제강점기 때인 1913년에 일본인이 밀반출을 시도하려다가 주민의 강력한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에는 경복궁에다 보관했습니다. 그러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이관하여 보관 중인데 하루빨리 원래 자리인 광양의 중흥사로 옮겨 왔으면 합니다.

 






현재 중흥사에는 중흥사쌍사자석등의 모조품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이 창건 당시 위치가 맞는다면 현재의 가람배치인 대웅전의 위치는 많이 달라져보입니다. 보통 금당을 중심으로 가운데 삼층석탑을 세우고 그 좌우에 석등을 배치하는 순서로 짐작하건대 말입니다.











그럼 필자가 보고 감탄과 함께 탄성을 질렀던 중흥사 삼층석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흥사 삼층석탑은 지난해 보았던 군위군의 지보사삼층석탑과 느낌에서 비슷하다 생각했으나 중흥사삼층석탑을 보면서 정교한 조감솜씨와 사방불인 여래상과 인왕상, 보살상, 사천왕상을 도드라지게 세긴 것을 보고 더욱 뛰어난 예술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곳에 필이 꽂히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그 케이스가 이번 중흥사삼층석탑인데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즐겼다가 함께한 일행은 중흥사를 빠져나가 둘레길을 따라 흔적도 없어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흥사삼층석탑은 신라 말기에 조성된 석탑이며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지금은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각과 장식이 매우 화려해서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탑의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은 하나의 돌로 되었으며 각 층의 몸돌 네 귀퉁이에는 운주인 기둥을 굵직하게 나타내었습니다.

















옥개석의 아래 층급받침은 3단이며 처마 밑은 수평으로 처리했습니다. 1층의 몸돌에는 동서남북 각 면에다 연꽃 대좌 위에 앉은 여래불을 새겼으며 이는 사방불로서 어디에나 부처님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층 몸돌을 받치는 기단은 각 면을 모두 둘씩 나누었고 앞면에는 인왕상을, 그 반대편인 뒷면은 보살상을 , 좌우 양쪽 면은 사천왕상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2.3층의 몸돌은 급격하게 작아지면서 기단과 비교하면 기단부가 너무 크게 보이는데 이는 전체적인 석탑의 안정감은 뛰어나다 하겠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모작이지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중흥사쌍사자 석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쌍사자 석등은 연꽃무늬 받침돌 위에 두 마리의 사자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서서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상입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하나의 돌을 조각해서 석등을 만들었을 정도로 그 조각 예술이 정말 빼어나다하는데 오리지널 중흥사쌍사자석등을 보지 못해 정말 많이 아쉬웠습니다. 어서 빨리 돌아오라 오버 중흥사 쌍사자 석등. 그리고 전남유형문화재 제142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시간 관계로 보지 못해서 그냥 패스합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갈 기회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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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백계산~제비추리봉산행. 한 많은 여자의 넋이 환생했다는 동백꽃이 아름다웠던 옥룡사지 동백숲과 백계산~제비추리봉 산행.


광양하면 백운산을 모두 떠올리겠지만, 도선국사께서 35년 동안 주석했다는 옥룡사의 주산인 백계산도 있습니다. 백계산은 지네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다는 비천오공의 형상이며 그 명당에 옥룡사지가 자리합니다. 옥룡사는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에 도선이 창건했는데 풍수의 대가였던 도선이 전국을 유람하며 참선과 수행을 하다 마침내 명당을 발견하고 절을 세웠던 곳입니다. 그 터의 유명세는 두말하면 잔소리겠습니다. 그런 만큼 이곳 절터가 도선의 마음에 들었는지 864~898년 입적 때까지 무려 35년을 이곳에서 주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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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명당인 옥룡사도 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1878년 고종 15년에 원인 모를 화재로 천년고찰의 옥룡사는 불타버렸고 그와 함께 천 년 동안 살아 숨 쉬든 법통도 꺼져버렸습니다. 그 후인 1920년 구례의 청주한씨 문중에서 옥룡사 땅을 매입하여 재실과 선조의 무덤으로 사용하였고 경작하면서 천 년의 흔적은 그 원형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게 있었는데 도선국사께서 옥룡사의 지기를 북돋우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나무입니다. 수령 100~300년 된 동백나무 7,000여 그루는 겨울을 이겨내며 2월~4월까지 붉은 동백꽃을 피우는데 이는 내륙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동백꽃 하면 생각나는 글귀가 있습니다. 대하소설 조정래의 ‘한강’에서 “동백꽃의 절정의 아름다움은 낙화에 있었다. 꽃이 지되 벚꽃처럼 꽃잎이 낱낱이 흩어지지 않고 꽃송이 그대로 무슨 슬픔이나 서러움의 덩어리인 양 뚝뚝 떨어져 내렸다. ~사무친 한을 풀 듯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번, 땅 위에서 또 한 번, 두 번 피어나는 꽃이었다”며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동백꽃은 우리 민족의 처절한 아픔을 표현할 때 많이 비교합니다.


 

 

조정래는 한강에서 다시 동백꽃을 “한 많은 여자의 넋이 환생했다는 꽃” 이라했습니다. “그래서 저리도 선연한 핏빛으로 곱고 처연한 느낌으로 아름다운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강’에서는 동백꽃의 아름다움은 낙화에 있다 했지만 동백꽃이 질 때 꽃송이가 통째 뚝 하고 떨어져 사형수의 목이 달아나는 모습과 닮았다며 동백꽃을 불길하게 여기는 꽃으로도 많이 생각했습니다. 이제 백계산 옥룡사지의 그 붉은 동백꽃은 모두 떨어졌지만, 그 아름다움만큼은 또다시 내년을 기다리게 합니다.


 

광양 백계산~제비추리봉 산행 경로입니다. 옥룡사지동백림 주차장을 출발하여 옥룡사지~옥룡사지·운암사 갈림길~도선국사 천년숲길~새우암자터 갈림길~눈밝이 샘 갈림길~눈밝이 샘~(눈밝이 샘 갈림길)~금목재·백계산 정상 갈림길~백계산 정상~(금목재·백계산 정상 갈림길)~금목재~ 738봉 삼거리~제비추리봉 밑 갈림길~제비추리봉 정상~휴양림(삼나무숲길·생태숲길) 갈림길~산막2지구·중점시설지구 이정표~백운산자연휴양림 케빈하우스(산막)앞~자연휴양림 입구~옥룡사지동백림 주차장 순으로 원점회귀 산행입니다. 전체적인 산행 거리는 약 12.5km이며 산행시간은 5시간~5시간 30분이면 충분합니다.



 먼저 산행은 옥룡사지·동백림 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관광안내소와 넓은 주차장, 산행 안내도 등 주변 시설이 잘 정비된 것을 보면 옥룡사지와 동백림의 유명세를 알 것 같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콘크리트 포장길을 700m 쯤 따라갑니다. 백계마을을 지나면 옥룡사 동백나무 숲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오른쪽은 ‘선의 길’방향, 300m 직진하여 옥룡사지를 보고 갑니다.

 

 

 

 

축대를 보면서 얼마 전까지 경작지로 이용했던듯 하였고 지금은 문화재 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을 뒤로하고 동백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갑니다.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동백숲을 벗어나면 옥룡사지입니다. 광양시에서 옥룡사 정비복원계획을 1994년에 세우고 토지매입을 하면서 1996년 옥룡사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옥룡사지

도선국사와 동보대사의 비석과 부도가 있었던 비석거리 발굴조사과정에서 탑비와 부도를 보호했던 2개의 비각 흔적을 찾아내었습니다. 도선국사의 부도전으로 추정되는 8각 바닥 돌 밑에는 돌로 만든 관을 발견하였고 사람의 인골이 나와 도선국사와의 연관성을 추정하며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 외 동진대사 비석조각과 옥룡사의 흔적인 기와 파편등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옥룡사지 주위로 동백숲이 장관입니다. 그리고 가장 눈길이가는 곳이 절개지의 토굴입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토굴을 보면서 혹시 도선국사와의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 생각하지만, 이곳은 땅 주인이 경작한 감자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용으로 팠다합니다. 필자도 혹시나 싶었지만 대실망이었으며 도선국사와 다른 어떤 여타 연관관계도 없다 합니다.


 

 

 옥룡사지 옆 백계산 등산로 입구

이제 백계산 산행을 시작합니다. 토굴 왼쪽 운암사로 넘어가는 고개가 백계산 등산로 입구입니다. 이정표에는 왼쪽 ‘도선국사 참선 길’ 방향입니다. 운암사 구경은 직진하여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운암사도 도선이 창건했지만 폐사되었고 모든 당우는 최근에 다시 복원하였습니다. 필자는 시간 관계상 운암사 탐방을 생략하고 바로 ‘도선국사 참선 길’인 백계사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세우암자터 갈림길

옥룡사와 주변 암자가 많았고 찾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산길은 넓고 뚜렷합니다. 약 900m가량 가면 백계산 정상(1760m)과 세우암자터(850m) 갈림길입니다. 세우암자터는 출가한 도선국사가 어머니를 모시고 봉양했던 곳이라 합니다. 백계산방향 직진하는 외길을 약 40분가량 오릅니다.


 눈밝이 샘 갈림길

산길은 조금씩 고도를 높이지만 평이한 옛길로 쉬엄쉬엄 오르면 곧 ‘눈밝이 샘’ 갈림길입니다. 왼쪽 사면 길을 약 100m 가면 오른쪽 계곡에 ‘눈밝이샘’이 보입니다. 백계산 정상 아래에서 많은 수량이 나온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눈밝이 샘

이곳 ‘눈밝이 샘’은 옥룡사 창건설화가 있습니다. 도선이 백계산에 천하명당인 비천오공(飛天娛蚣)의 혈지를 찾아내고 절을 세우려고 했으나 터 가운데 연못이 있어 상심하다 묘책을 짜내었습니다. 숯가마니를 지고와 연못에 넣고 백계산의 샘물을 마시면 눈병이 말끔하게 낫는다는 소문을 내었는데 그 소문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숯가마를 지고 눈병 환자가 몰려들었고 연못은 순식간에 메우고 옥룡사를 지었습니다. 숯을 넣고 샘물을 마셨더니 눈병은 물론이고 침침하던 눈까지 밝아져 사람들은 ‘눈밝이 샘’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샘은 비천오공의 지네 생식기에 해당하고 동향서출하는 형세라 특히 눈병에 약효가 있다는 설명. 그런데 눈 밝은 것은 잘 모르겠고 완전 시원한 게 꿀맛처럼 달곰한 느낌으로 약수는 약수였습니다. 다시 ‘눈밝이 샘’ 갈림길로 돌아갑니다.


백계산 정상 밑 갈림길

 백계산 정상 금목재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정상 못 미쳐 ‘T’자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왼쪽은 금목재·휴양림 방향이지만 먼저 오른쪽 백계산 정상 개현마을 방향으로 10분쯤 갑니다. 백계산 정상을 찍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금목재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백계산 정상을 향하는 왼쪽에는 호남정맥의 최고봉이자 광양의 진산인 백운산이 우뚝 솟아 억불봉으로 능선이 이어집니다. 백계산 정상은 유명세와 달리 주위 잡목으로 조망은 없습니다. 다시 제비추리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휴양림·옥룡사지 방향인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좀전에 만났던 삼거리에서 금목재·휴양림 쪽으로 직진합니다.


 

 금목재

금목재까지 산길은 굴곡 없는 편안한 능선길입니다. 20분쯤 가면 금목재 임도에 도착합니다. 오른쪽 임도는 백운학생수련장(2.4km) 방향이며 왼쪽 임도는 백운산 자연휴양림과 옥룡사지 방향입니다.


 

 

 

 

금목재에서 제비추리봉은 임도를 건너 능선을 계속 탑니다. 곧 나무덱 쉼터가 나오고 30분가량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제비추리봉과 도솔봉 방향으로 갈리는 738봉 삼거리 입니다.


 738m봉 삼거리

이곳에는 ‘post 3, 백운학생야영장’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며 참고만 하세요. 오른쪽은 따리봉 또는 백운산 상봉 방향이고 오늘의 최종목적지 제비추리봉은 왼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입니다. 다시 능선 길은 솟구치고 마지막 힘을 쏟아 넣으면 제비추리봉 직전 갈림길입니다.


 

 

 

왼쪽도 백운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지만 무시하고 직진하면 곧 제비추리봉입니다. 여기도 백계산과 같이 정상 조망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자연휴양림 하산은 정상에서 직진합니다.


 

 

생태 숲길(휴양림)과 삼나무 숲길(휴양림) 갈림길 이정표에서 조금이라도 빠른 하산을 위해 왼쪽 ‘생태숲길방향’으로 내려갑니다. 곧 철탑을 지나고 1㎞가량 하산하면 산막2지구·중점시설지구 이정표를 만납니다. 산막2지구 쪽으로 직진하여 15분쯤 내려가면 백운산자연휴양림 시설지구입니다. 먼저 소나무 숲에 산막인 캐빈하우스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높이 20m 이상 곧게 자란 소나무들이 우거진 휴양림은 쾌적하며 정신을 맑게 해주었습니다. 곧 쭉쭉 뻗은 소나무숲 속에 설치된 평상 야영지를 지나고 휴양림 입구로 나오는데 솔숲을 잠시 걸어와도 산행에 지친 피로를 풀어주었습니다.


 

 

 

 

휴양림 버스정류장을 지나 동백림 주차장까지는 1.5km 거리에 약 20분이 소요됩니다. 먼저 도선국사 마을인 양산마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동백림 주차장이 나오고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백계산~제비추리봉산행 교통편.

광양 백계산 산행은 출발지인 옥룡사지·동백림 주차장에 가야합니다. 부산에서 출발은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광양행 시외버스를 탑니다. 오전 6시30분 7시 7시20분 8시20분 9시20분 9시40분 10시5분 10시10분 등 운행합니다. 광양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나와 ‘광양역입구교차로’정류장에서 광양교통 21번 백운산자연휴양림행 버스를 타고 옥룡사지 정류소에서 내립니다. 광양교통 차고지를 출발하는 광양백운산자연휴양림 버스시간은 오전 6시30분 8시10분 11시20분이며 ‘광양역입구교차로’정류장에서 5분쯤 기다리면 됩니다. 산행을 마치고 백운산자연휴양림버스정류장에서 광양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2시50분 6시50분 등 2차례 뿐입니다. 광양터미널에서 부산서부터미널로 돌아오는 버스는 오후 4시20분, 4시40분(동래노포동), 5시15분, 6시10분, 6시40분, 7시10분, 7시25분, 8시50분, 9시50분(막차)

내비게이션 옥룡사지입력


백계산~제비추리봉 고도표

백계산~제비추리봉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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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폐사지를 찾아서 옥룡사지 동백림. 도선국사의 마지막 수도처 광양 옥룡사지와 절터의 기운을 도우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림을 만나다.  


예로부터 신비의 물이라는 고로쇠 수액은 우수를 시작으로 경칩을 전후하여 채취합니다. 그리고 고로쇠 수액은 ‘뼈를 이롭게 한다’ 하여 많은 분이 이 시기에 고로쇠 물을 먹기 위해 광양 백운산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왜 고로쇠 물 하면 광양 백운산을 첫손가락으로 꼽는지 그 이유가 있습니다.





◆광양 옥룡사지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6/04/21 - (전남여행/광양여행)백운산자연휴양림. 걷기 좋은 솔숲길과 산막에서 즐기는 휴식이 꿀맛일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여행. 광양백운산 자연휴양림


2016/03/05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 백운산~신선대 산행. 뼈에 이롭다는 고로쇠와 매화꽃 산행지 광양 백운산~신선대 산행


2016/03/01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현대 무덤이 함께하는 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을 보며 명당은 똑 같은 모양입니다.


2014/10/22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 망덕포구 시인 윤동주 유고 보존집 정병욱 가옥 여행하기...


2014/09/13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면 망덕포구. 섬진강과 호남정맥의 끝과 시작인 망덕포구 가을 여행을 떠나보세요.망덕포구


2014/10/14 - (광양여행/하동여행)광양 하동 걷기 좋은 섬진강 둘레길. 광양 망덕포구~하동 하동송림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1



 

고로쇠 물은 선승이며 풍수가의 대가로 유명한 선각국사 도선(827~898)에 의해서 알려졌습니다. 도선은 백운산 토굴에서 수도 정진하여 득도에 이르렀으나 무릎이 굳어 펴지지 않아 나뭇가지를 잡았는데 그 나무가 체중에 의해 부러져버렸습니다.


 

한참을 앉은 상태로 있던 도선은 부러진 가지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었더니 굳어진 다리가 풀리면서 정신을 차렸다 합니다. 그때부터 뼈에 이로운 물이다며 골리수라 하였고 오늘날 고로쇠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도선이 고로쇠 물을 받아먹고 무릎을 펼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이곳 도선이 입적할 때까지 35년간을 주석했던 옥룡사지로 추정됩니다.


 

옥룡사는 8세기 초인 통일신라 시대 때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깡그리 사그라졌습니다. 864년~898년까지 머물렀다는 옥룡사지에서 도선의 흔적을 느껴보고 동백꽃을 만나기 위해 찾았지만 어디서고 도선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1920년경 일제강점기 때까지 도선국사의 흔적인 비석과 부도 그리고 동진대사의 부도와 탑비가 있어 비석거리라 불렸다지만 그 비석은 지금 찾을 수 없고 최근에 도선국사와 경보스님의 탑비와 부도를 다시 복원했습니다.



그러나 옥룡사는 1878년 고종 15년인 조선 말기까지 건재했으나 그해에 일어난 큰불로 옥룡사는 모두 타버렸습니다. 천 년을 넘게 법통은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지만, 한순간 화재로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면서 옥룡사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구례에 거주하던 청주한씨 문중에서 옥룡사지 절터와 주변을 매입하여 선대의 재실과 묘지로 사용하고 주변을 경작하여 더욱 본모습을 잃었습니다. 광양시에서 1996년부터 정비 복원계획을 세우고 토지매입과 옥룡사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비석거리에 탑비와 부도를 보호했던 비각건물이 두 채 있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도선의 부도 전으로 추정되는 8각 바닥 돌 아래에서 석관이 들어 있는 돌덧널을 발견하였으며 그 안에는 도선국사와의 연관성을 추정하는 인골이 나와 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옥룡사지 주위로는 100~300년 된 동백나무 7,000여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도선국사가 이곳에 옥룡사를 창건하고 절터의 기운을 보강하려고 직접 동백나무를 심었는데 그게 천년의 세월을 이어오는 동안 풍성한 동백나무 숲을 이루어 도선국사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선국사와 옥룡사 터에 얽혀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스갯소리 하나하겠습니다. 옥룡사지에는 지금 작은 토굴이 있습니다. 모든분이 왠 토굴하며 혹시 도선국사 수도처(?)로 의심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토굴은 이곳에서 감자 경작을 하던 땅주인이 감자 보관용 창고로 팠다는 문화해설사님 이야기입니다. 오해 없도록 해주세요


 

 

풍수에 밝아 전국을 돌며 참선과 수행에 전념하던 도선은 이곳을 지나다가 천하명당인 비천오공(飛天娛蚣)의 혈지를 찾아내고 옥룡사를 창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가운데 큰 연못이 있어 상심하다가 묘책을 찾아내고는 숯을 한 가마니씩 지고 와 연못에 넣고 백계산 정상 아래 샘물을 마시면 눈병이 낫는다고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눈병 환자가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눈병 환자는 샘물을 마시고 눈병이 낫고 침침하던 눈까지 밝아져 그 샘을 ‘눈밝이 샘’이라 불렀습니다. 이곳 샘은 비천오공의 생식기에 해당하는데 동향서출하는 형세를 가지고 있어 눈병에 특효가 있다 합니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하다고 생각하거나 눈병이 있는 분은 옥룡사 창건 설화를 따라 ‘눈밝이 샘’에서 약수 한 그릇 해보세요. 혹시 아나요. 보이지 않던 세상까지 훤히 보이는 투시력까지 생길지 말입니다. 저도 먹었는데 숯을 안 넣어서 그런지 아직 효과는 보지 못했지만 물맛 하나는 끝내줬습니다. 옥룡사지는 국가사적 제407호. 1998년 8월3일 지정


비천오공의 생식기라는 눈밝이샘


옥룡사지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산35-1번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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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는 뼈에 이롭다하여 골리수로도 불리는데 경칩을 전후하여 광양 백운산과 지리산등에서 은행나무과의 고로쇠나무에 수액을 뽑아 내는 것을 말한다.
그 유래를 보면 재미있다. 통일신라시대 말의 선승인 도선국사께서 산중에 좌선을 하여 도를 닦아 득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스님이 일어나다가 넘어저 잡은 나무가 뿌러지면서 그곳에서 수액이 나와 스님이 그 물을 받아 먹고 다리를 펴고 나았다하여 골리수라 부르게 되었다. 





고로쇠물이 끓는 모습

도선국사께서 가부좌를 틀어 너무 오래 동안 좌선하다보니 몸이 굳어 버린 상태에서 고리쇠를 먹고 뼈가 풀려 나았다는 신비의 물.

고로쇠물로 커피를 타 봤습니다.

올해는 이상 기온으로 인해 고로쇠의 양이 부족하다는데 그 이유를 보니 고로쇠는 낮에는 따시다가 밤에는 추워야 고로쇠나무에서 많은 물이 나오는데 올해는 추운 밤의 날씨가 낮에도 계속이어져 따뜻할 때 나오는 고로쇠물이 말라버려 그러하다고 한다.



그런데 아시는 지인분이 지리산 고로쇠 한 박스를 주문하여 택배로 보내주었는데 고로쇠물로 커피물을 끓여보니 일반 생수로 끓이는 것 보다 더 요란하게 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로쇠물에다 일회용커피를 타 먹어보니 또 다른 맛이 되는 게 아닌가. ㅋㅋ.

신비의 고로쇠커피 들어보셨나요.(맥심 광고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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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객들에게는 순천의 조계산을 봄의 산으로 여기고 많이 찾는 명산의 대열에 올린다.
그래서인지 봄이면 빠지지 않고 한번씩 가는 산으로 여겨 선암사에서 장군봉을 경유 송광사로 하산을 하는 종주산행을 주로 한다.
그러다보니 꼭 빠지지 않고 들리게 되는 선암사 절집. 승선교와 강선루의 절묘한 사진이야기는 작가분들의 촬영장소로 유명하여 한번쯤은 흉내를 내어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지만 선암사는 사실 들어가 보지 않고 바로 통과를 하는게 산꾼들에게는 관례로 여기고 있다.

 


조계산 산행을 수도 없이 하고 취재산행도 하였건만 정작 선암사와 송광사에 대한 남아 있는 사진이 별로 없어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아마 2009년 6월17일에 조계산 산행을 하게 되었다.
그때 선암사에서 아주 큰 행사인 선암사 재적 승려 총회를 하는지 많은 신도와 관광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서 궁금함에 사찰 구경을 하고 가기로 하였는데 선암사 경내는 어수선하여 정신이 없었고. 한켠에는 돌아가신 고노무현대통령님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어 묵념을 잠시하고 사진 몇컷 찍고 나왔다.
사진도 시원찮고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 포스팅할 시기를 놓쳐 쳐박아 두었는데 이번 무릎팍에 유홍준교수가 나와 선암사가 매우 아름답고 한국적인 사찰분위기로 추천을 한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이나 용기를 내어 포스팅을 해본다.

비록 철지난 사진이지만 당시 승려들이 승무도 추고 하였는데 산행시간에 쫒겨 그냥 간게 아직도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대목이다.



선암사는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 아래에 자리잡은 천년고찰로 창건시기는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의 아도화상과 신라말 도선국사의 창건설이 전하는데 남아 있는 유물로서는 통일신라시대로 보기도 하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에 와 대각국사의천이 선암사의 암자인 대각암에 머물며 선암사를 중창하였다 한다. 사세가 번창하여 법당13동,전각12동등 많은 승려가 머물며 수도를 하였고 거느린 암자만해도 19개가 되었다 한다.
이많은 유물들이 정유재란때 왜군의 침입으로 전각등 많은 건물과 암자가 소실되었다 하며 1660년 정유재란 이후 경잠, 경준, 문정대사 세분이 8년간의 각고 끝에 중창을 하였다.
그후 여러번의 중창불사를 거듭하며 순조23년인 1823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과 명부전등 많은 전각이 불에 타고 만다.
다시 해붕, 눌암, 익종대사께서 6번째 중창불사를 단행하였고 청량산으로 고쳐 불리던 산이름도 다시 조계산으로 혜천사의 사찰이름도 원래이름인 선암사로 고쳐부르게 되었다.
선암사는 1948년인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때 좌우의 대립과 갈등속에서 많은 피해를 보게 되는 운명을 맞았고 조계종과 태고종의 갈등을 겪었던 사찰이다.
사적 및 명성 8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하촌애서 1.5km인 흙길을 따라 사찰 경내를 걸어가는 오솔길은 짙은 녹음으로 이어지고 부도탑을 지나면 왼쪽에 걸린 무지개다리인 승선교가 아치형으로 남아 있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인 승선교와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 강선루을 보기 위해서이다.



보물제400호로 승선교 아래에서 강선루를 바라보는 것이 사진작가들의 포인트로 유명하다. 화강암으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리로 규모가 꽤 큰편이며 반원형의 아치로서 가운데부분에는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숙종39년인 1713년에 호암대사가 6년에 걸쳐 완공하였다 한다. 최근에 해체복원공사를 다시하여 현재는 깔끔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삼인당

전라남도기념물 제46호

삼인당은 긴 알모양의 연못안에 작은 섬을 조성 하였는데 선암사 사적에 의하면 신라경문왕 2년인 862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축조하였다 한다. 삼인이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삼법인을 일컫는 말로 모든 것은 변하여 머무른것이 없고 나라고 할만한 것도 없으므로 이릏 알면 열반에 들어간다는 불교사상으로 이러한 모양과 이름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만 남아 있다.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7호

불상의 높이는 7m, 넓이는 2m의 암벽에 음각으로 새겨 놓은 마애불이다. 고려하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불상은 나발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솟아 있고 상호는 원만하며 이마에는 백호가 둥글게 표시되어 있다.











국제신문 이흥곤 기자의 선암사 해우소에 대한 글을 보면 우리나라 화장실 중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몸속의 오물과 함께 마음의 욕심도 모두 버리고 가는 곳이다. 아마도 화장실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듯하다.

선암사 곽창남 문화유산해설사는 "이 해우소는 냄새 또한 전혀 나지 않아 지금도 대학 건축 관련 학생들이 찾아와 사진과 함께 짜임새를 조사하는 등 연구대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목장승

이목장승은 조선시대 말엽에 세워진 목장승의 모조로 1987년 9월에 다시 세운 것으로 장승에 새긴 호법선신은 불법을 수호하며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성불을 하게 만드는 착한 신을 뜻한다. 방생정계를 새긴 장승은 이곳 부터는 더욱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매인 것들에게 자유를 베풀어야 함을 뜻한다. 두분 모두 험상 궂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길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승주IC~우회전 승주 낙안민속마을 선암사 방향~낙안온천 낙안민속마을~삼거리~857번 지방도~선암사 주차자순으로 도로 이정표는 잘 정비돼 있어 길 찾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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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의 대표적인 폭포인 대혜폭포로 명금폭포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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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가 수도하여 득도하였다는 도선굴:천연동굴로 암벽에 큰 구멍을 대혈이라고 한다. 풍수가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득도후 도선굴로 불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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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본 금오산 도립공원, 시원한 물줄기뒤로 왼쪽 금오산 현월봉이 우측으로는 칼다봉능선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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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들머리의 채미정과 금오산성의 대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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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동학 글씨체와 해운사가 도선굴과 일직선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금강동학:조선 중종대 선산 대망동에서 출생한 명필가 덕상인 고산 황기로가 쓴 초서로 금오산은 깊고 그윽한 절경임을 뜻한다한다.

구미 금오산(976m) 산행


“ 쉬자, 쉬자. 안 되겠다.”

 

“쉬었다 가면 더 못 올라간다.”

중년의 부부가 금오산을 오른다. 가장 힘든 구간이라는 할딱고개. 길 가운데 털석 주저앉은 아주머니는 연방 짜증을 낸다.

“못가겠는데 어이하노. (버럭 신경질을 내며) 저 우에 뭐가 있는데.”

“꼭대기 아이가.”

가파른 경사에다 바위면이 미끄러워 조심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들의 발걸음을 더 더디게 한다. 해발 1천m에 가까운 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참을 티격태격하다 바짓가랑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금오산은 도립공원이다. 국립공원보다 볼거리나 풍광이 한 단계 아래라서 도립공원인가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 단지 산세가 작을 뿐. 도선굴 대혜폭포 약사암 등은 할딱고개를 오른데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산행 전반부는 조금 가파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고 하산길은 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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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굴 오르는 길은 낭떠러지를 따라 나있다. 어른 팔뚝만한 쇠말뚝을 박은 난간을 잡고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찔하다

내리막이다. 가족산행이라면 정상 약사암에서 마애석불쪽으로 돌아 내려오면 무난하다. 산행코스는 주차장~채미정~매표소~금오동학~해운사~도선굴~대혜폭포~할딱고개~샘터~헬기장~금오산(976.6m)~약사암~전망대~법성사~주차장. 4시간 정도 걸린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시작되는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의 시비 앞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오른쪽에는 길재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 채미정이 있다. 채미(採薇)란 다른 왕조를 섬기지 않으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는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따온 말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55호.

메타쉐쿼이아 가로수 길이 이어진다. 5분 뒤에 매표소.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다. 100m 앞에 등산안내도를 보고 돌탑 사이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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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박달나무 산초나무 느릅나무 등이 등산로 주변으로 무성하게 자란다. 나무에 달린 이름표를 하나씩 확인하다 보면 금방 중턱에 닿는다.

 

금오산성 대혜문에서는 계곡을 건너지 말고 오른쪽으로 직진한다. 곧 샘터가 나온다. 지하 160곒 암반층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이윽고 해운사. 뒤로 병풍처럼 절벽이 버티고 있다. 절벽 중턱에 사람들이 서서 소리지르는 곳이 도선굴 입구이다.

조금만 오르면 도선굴과 폭포가 갈라지는 길. 도선굴에 들렀다 폭포로 간다. 도선굴은 신라말 풍수의 대가 도선국사가 득도했다는 곳이다. 낭떠러지 절벽 가운데 기묘하게 파진 구멍이다. 금오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전망대 구실을 한다. 득도는 몰라도 일주일 정도 머물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아찔하다. 굴 입구 왼쪽에는 세류폭포라는 작은 물줄기가 떨어진다.

도선굴에서 내려오면 대혜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높이 27m의 수직 벼랑을 떨어지는 물줄기가 세차다.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릴 정도로 우렁차다는 뜻으로 명금폭포(鳴金暴布)라 불리기도 한다.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라는 간판이 하나 섰다. 1977년 9월 이곳을 찾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깨진 병조각과 휴지 등으로 어지러진 것을 보고 “자, 우리 청소부터 하지”하고 말한 데서 자연보호운동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폭포에서 정상까지는 2.1㎞. 먼저 15분 정도 가파른 고개를 지나야 한다. 할딱고개로 불리는 이 길은 이제까지의 산보하듯 걷던 길과는 사뭇 다르다. 금오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숨이 찬 구간이다. 허리 한 번 펼 시간도 없다. 능선 옆 바위에 오르면 기막힌 전망이 펼쳐진다. 해발 460m 지점.

전망대에서 한숨을 돌리고 다시 출발한다. 조난표지판 8번 지점까지는 거친 오르막이다. 이 지점을 지나면 경사는 다소 완만해진다. 산허리를 밟고 나가다 해발 650m 지점에 정상 1.2㎞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10분 뒤 샘 금오정. 바로 위에 마애석불과 정상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으로 꺾어 보물 제490호 마애석불까지는 10분이면 충분하다. 능선의 돌탑 전망대를 넘으면 바로 나온다. 석불은 바위 모서리에 새긴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산불조심 기간에는 마애불상으로 가는 길이 통제된다.

정상과 마애불상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철탑. 전망대가 있고 5분 뒤에 금오산성에 닿는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계단을 따라 은근한 오르막을 15분 정도 올라야 한다. 널따란 헬기장이 있다.

정상에는 금오산 현월봉 정상석이 놓여있다. 하산은 거대한 바위틈에 지어진 약사암에서 시작한다. 약사암은 가람 자체는 볼품이 없지만 자리잡은 위치가 압권이다. 작은 봉우리에 선 종각은 구름다리로 연결돼 아슬아슬하다.

구름다리 아래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왼쪽에는 화장실이 보인다. 쭉 나가면 마애석불로 이어진다. 오른쪽에 있는 대문으로 들어간다. 좁은 마당에서 구미시내를 보고 내려간다. 눈을 들어 계곡을 훑어 내려가면 끝에 법성사가 보인다.

내리꽂는 듯한 급한 내리막. 15분 뒤 갈림길에서는 왼쪽으로. 지리산 통천문같은 바위 협곡을 지나면 다시 왼쪽 능선을 넘는다. 중간중간에 전망대가 많다.

이후에는 길이 뚜렷하다. 다시 30분 뒤 갈림길에서도 왼쪽이다. 능선을 거의 빠져나오면 무덤이 보이고 양옆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왼쪽. 개울을 건너면 ‘등산로’ 이정표가 있고 도로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금오산 입구 주차장까지는 15분 거리이다.

/ 글=김용호기자

/ 산행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떠나기 전에]

금오산의 금오(金烏)는 태양 또는 광명을 뜻하는 말이다.

금오산 대혜계곡은 구미시민들에게 태양같은 존재다. 식수를 공급하고 기름진 논과 밭, 서풍을 막아 준다. 대혜비폭이라 불리는 명금폭포는 경북 8경에 속하며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고려 때에는 남숭산(南嵩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능선은 현월봉(976m), 약사봉(958m), 서봉(851m)으로 이어진다. 정상에 초생달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현월봉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도선굴, 명금폭포, 채미정, 금오산성, 약사암 등은 수학여행 가는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산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과 함께 떠나보자.

도선국사, 임진왜란,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 등 금오산에 얽힌 역사이야기를 하면서 산행을 꾸며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하산은 약사암을 기점으로 마애석불과 법성사로 두 갈래로 잡았다. 가족과 함께라면 마애석불로의 하산을 권한다.

/사진.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교통편]

부산역에서 경부선 열차를 탄다. 무궁화호 출발시각은 오전  5:10, 5:40, 6:20, 6:35, 6:45, 7:55, 9:10, 10:30, 철도요금은 요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구미역에서 금오산까지는 12번과 12-1번 시내버스가 운행한다. 10분 정도 걸리며 30분 간격이지만 오후 4시 이후에는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거리가 가까우므로 택시를 타도  도착할 수 있다.

구미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는 구미역에서 부산행 열차는 무궁화호 오후 4시56분, 5시30분, 6시41분, 8시30분, 새마을호 오후 4시59분에 있다.

원점회귀 산행이므로 자가운전을 할 수도 있겠지만 거리가 멀어 부담스럽다. 개인적으로 간다면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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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의 범종각이 아슬아슬한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보는 맛이 그만이다. 그리고 약사암 일주문으로 들어서는 길이 다른 사찰에 비해 특이하다.  좌우로 옹립한 바위 절벽을 통과해야만 약사암으로 들어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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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딱고개와 할딱고개 전망대에서 본 명금폭포 상류, 도선굴로 돌아가는 철제 안전 시설물이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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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인 마애보살입상으로 바위모서리에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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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산 정상을 현월봉이라 한다, 정상에 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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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굴 옆의 폭포로 세류폭포라 하며 임진왜란 때에는 난을 피해 올라온 주민들이 칡덩굴을 잡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 먹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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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구례여행)구례 오산 사성암. 떨어질라 바위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구례의 사성암

사성암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33호
전남 구례군 쿤척면 죽마리
백제 성왕 22년인 544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서며 창건 당시에는 오산암으로 불렸는데 산이름이 오산이라 오산암으로 지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후 여러 선성들이 수도를 하였는데 연기조사와 원효대사, 도선국사,진각선사 이 네분이 수도를 하였다 하여 사성암으로 거쳐 부르게 되었다. 사성암은 처마 끝의 제비 둥지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특이하게도 바위 틈을 비집고 법당을 세우기 위해 긴 다리를 세워 그 위에 건물을 올린 모습이 금강산의 보덕암과 비교하기도 한다.  구례10경의 9경에 오산과 사성암이 들어 있고 구례읍의 진산으로 여기고 있으며 최근에 종방 된 추노와 그 이전의 박경리 원작인 토지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사성암 약사전의 모습으로 법당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보면 위태롭게 그지없다.

약사전 밑부분으로 기둥과 벽사이에 만자와 화려한 문양을 넣었다.


약사전을 참배하고 내려 오는 관광객의 모습입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오는 듯합니다.


마애 약사 여래불
전라남도 문화재 222호 지정
사성암의 마애약사여래불은 원효스님이 득도를 한후 손톱으로 바위에다 홈을 내어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약사전 안의 자연석에 높이가 약 25m로 음각 되어 있고 현재는 그 홈 마다 금으로 입혀져 있다. 왼손에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약사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800년된 귀목나무

지장전의 모습입니다.

지장전에 안치 된 불상입니다/


소원바위

일명 뜀바위라 불리는 소원바위는 섬진강을 따라 뗏목을 팔러 하동장에 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지쳐 숨을 거둔 아내와 그 아내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 낙담한 나머지 숨을 거두었다는 남편의 애뜻한 부부애를 기린 전설의 바위이다.섬진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바위로 전설이 더욱 실감난다. 한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하여 많은 참배객들이 들러는 곳이기도 하다.
  



도선국사가 수도를 하였다는 도선굴로 산신각 옆에 자리를 하고 있다. 이굴은 특이하게도 앞뒤로 뚫여 있어 통과를 할 수 가 있다.

사성암 위에서 본 모습으로 바위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 서 있는 법당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위 옆으로 좁은 통로를 내어 한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나있고 그 옆으로 돌담이 쳐져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찾아가는 길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는 오전 7시와 9시 11시 등 하루 6회 운행한다. 2시간50분 소요, 1만3600원. 구례터미널에서 들머리인 문척면 죽마리 죽연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10시, 11시40분, 12시20분 등에 출발한다. 버스를 놓쳤을 경우 택시를 이용하면 6000원 안팎이다. 산행 후 동해마을에서 구례읍까지 가는 버스는 오후 1시20분과 오후 6시30분에 있다. 택시(011-618-5125) 이용 요금은 6000원가량.

자가용의 경우 남해고속도로 하동IC에서 내린 후 국도 19호선을 타고 이정표 기준 구례 쌍계사 하동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화개장터와 연곡사(피아골) 입구 앞을 지나 구례 방면으로 좀 더 가다보면 사성암 표지판이 보인다. 간전 사성암 방면으로 865번 지방도로를 타고 좌회전, 간전교를 건넌 이후 사성암 표지판만 따라서 10㎞ 정도 가면 들머리인 죽마리 죽연마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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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봉 정상에서 도갑사로 내려서는 산길에서 본 경관으로 하산할 능선길이다. 뒷 능선 우측 지점의 큰 바위가 구정봉으로 그아래 배틀굴이 있다.
구정봉을 내려서면서 본 영암읍 쪽 전경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로 시작 되는 영암 아리랑의 가사이다.
사실 월자가 들어가는 산 이름은 많이 있다. 너무나 유명한 제천의 월악산,
부산과 가까운 좌천의 달음산, 진주의 달이산등 많은 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번에 소개하는 월출산이 달과 어울리는 최고의 산으로 치고 있다.
영암 아닌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월출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체면적 또한 여타 국립공원에 비해 규모면에서 가장
적지만 산세는 여타 국립공원에 조금도 지지 않는 호남의 5대 명산이다.
예로부터 월출산은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삼국시대인 백제때는 월나악으로 불렸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 조선시대에 들어와 월출산으로 불려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관이 뛰어난 월출산을 두고 시인묵객 또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금오신화를 집필한 매월당 김시습이
월출산을 두고 "남쪽에 제일가는 그림 같은 산이 있어니 청천에 솟아 있는 월출산이 여기로다"하며 월출산을
격찬하였다.
그림같은 월출산은 사실 산행을 할 수 있는 들머리가 세곳으로 집약된다. 도갑사와 천황사 그리고 경포대로 주로 천황사로 올라 천황봉을 거쳐 경포대로 내려 오는 코스가 일반 산행객에게 이용된다. 그리고 도갑사로 이어지는 월출산 종주 코스는 6시간 이상이 소요 되는 당일 코스로는 조금은 벅차지만 부산에서 오랜만에 찾는 산행지라 월출산 종주를 안 할수 없어 도갑사로 하산을 결정하고 출발하였다.
산행경로를 보면 천황사 입구 들머리~천황사지 갈림길~바람골경유 바람폭포 갈림길~구름다리~경포대 삼거리~통천문 삼거리~통천문~천황봉~남근바위~바람재 삼거리~베틀굴~구정봉~미황재(억새밭)~도갑사 도선수미비~도갑사 순으로 산행시간은 6~7시간을 걸리는 장거리 산행길이다.
그리고 구정봉에서 내려가는 마애불을 볼려면산행 시간은 더 잡아야한다.
먼저 천황사 입구인 탐방 지원센타 앞을 지나면 주차장과 그 뒤로 월출산임을 알리는 큰 표지석이 서 있다.
그 뒤로 펼쳐지는 월출산의 바위와 그림 같은 선경에 월출산의 품안으로 들어 선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인파로 인해 밀려 올라가는 형편으로 월출산은 그 만큼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조각상이 서 있는 자연관찰로를 통과하면 천황사 야영장 관리소,여기를 지나면서 산행이 본격 시작 된다. 천황사는 우측으로 천황봉3.1km, 구름다리1.41km,천황사0.5km의 이정표가 서있고 들머리를 지나면 산길은 작은 바위 들이 깔려 있고 산죽이 길 옆을
도열하고 있다. 10여분이면 천황사지 갈림길에서 산길은 갈리는데 매번 올때마다 천황사를 경유한후 능선을 따라 구름다리로 올랐는데 이번에는 코스를 달리하여 바람골 계곡을 따라  구름다리로 산행을 하기로 하고 우측 바람폭포방향으로 산길을 잡는다. 잠시 몇해전에 불이난 천황사를 보기 위해 올라서니 한창 불사가 진행중이다.
몇해전에는 가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 현판이 붙은 작은 건물을 볼 수가 있었다. 다시 되돌아와 천황교를 건너면 사실상 바람골로 들어선 것이다.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던 것과 달리 바람골은 한적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가뭄으로 물 마른 작은 폭포에 봄꽃인 자주괴불주머니가 나타나고  산행길은 계곡을 끼고 올라가는 바위로 된 너덜길이다.
천황사를 경유하여 바람폭포 삼거리 까지 오니 30여분이 소요 된다. 바람폭포 삼거리로 좌측은 구름다리 0.3km, 우측은 천황봉1.4km, 바람폭포0.2km을 알리는 이정표, 구름다리를 보기 위해 좌측으로 급한 계단길을 오른다.
철계단을 구름다리 삼거리까지 설치한 된비알의 오름길이다.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기고 뒤돌아 보는 바람골과 건너편의 바위능선이 장관이다.
천구만별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천마리의 거북이와 만마리의 자라같은 바위 형상이 골골마다 능선마다 모습을 달리하고 서 있는 기암들에 월출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머리를 들어보니 구름다리가 지나가고  어느새 15분이면 천황사에서 올라와는 구름다리 삼거리, 천황봉1.8km, 우 천황주차장1.9km, 천황사지0.8km의 안내판이 서 있고
좌측으로 돌 계단을 올라서면 구름다리로 들어선다. 많은 산행객으로 붐빈다. 몇해전에 새로 설치한 월출산 구름다리는 사자봉 중턱에서 대봉을 연결하는 현수교로 길이는 50여m. 높이는 120m로 출렁다리에서 새로 공사를 하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가교를 설치하여 누구나 안심하고 건널 수 있다. 공사 이전에는 흔들림과 고도감으로 인해 여성분들은 건너는데 어려움이 많았는데 지금은 안심하고 건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리를 건너면 산길은 사자봉으로 올라가는 철계단으로 이루어 져 있다. 경사가 심해 더운 날에는 땀께나 솓아야 할 구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면 일렬로 줄을 지어 올라 가야 되고 내려 오는데 내려오는 계단이 좀 비었다고 잠시를 참지 못하고 올라가니 내려오는 사람과 서로 뒤엉켜 병목현상으로 지체하게 되고 다른 등산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우리 등산 문화의 현 주소이다. 사자봉에서 내려 서면 안부로 정면의 큰 암봉을 좌측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숫제 돌아 간다는 개념보다는 내려 갔다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바위길을 급하게 내려서면 산길은 다시 오르막길, 숨은 턱까지 차 오른다. 좌측으로 펼쳐지는 기암들에 힘든줄도 모르고 올라선다. 다시 능선, 정면에 천황봉으로 올라서는 능선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자점이다. 올라가는 사람들의 힘든 모습도 여기서는 볼 수 있다. 정상이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로 산행을 해보면 이번 산행의 제일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을 벗어나면 경포대 삼거리, 천황봉0.4km, 좌측 경포대2.6km 이정표를 뒤로 하고 한발한발 올라선다.
통천문 삼거리로 바람골에서 바람폭포를 지나 올라오는 지점으로 통천문 삼거리라 부른다.
여기서 좌측으로 0.3km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이다.
천왕봉을 오를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곳으로 좁은 바위 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통천문을 통과하면 정상은 눈앞이 보이고 주위로 얼레지가 한창이다.
힘듬도 잠시 정상에는 넓은 암반으로 사람으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속칭 물반고기반일 정도로 북적이는 인파를 뒤로 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좌우를 돌아보는 경관은 영암 땅에 불쑥 솟은 듯 산세를 이루는 월출산이라 그 어떤 산과 비교를 하리오. 
사실 도갑사로의 하산길은 이제 산행 시작이라 할 정도로 먼 거리이다.
정상석 앞을 지나 내려서는 하산길은 떨어진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급 내리막 하산으로 꾸불꾸불 내려선다,
좌우로 보여 주는 기암들의 행렬에  잠시라도 눈을 땔 수가 없다.
남자의 거시기와 닮았다는 남근바위를 지나면 산길은 바람재 삼거리, 정상에서 50분 소요, 직진하면 구정봉 0.5km, 도갑사1.5km, 좌측은 경포대2.5km 이정표에서 같이 온 회원 한분이 무릎이 아프다며 경포대로 하산을 하신다고 한다.
끝까지 산행을 할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부산에서 온 다른 단체분께 양해를 구하고 그 편으로 부산으로 갈 수 있도록 하게 한후 경포대로 하산을하게 하였다. 나머지 회원님은 도갑사 방향으로 직진을 한다.
오르막 산길은 매본 산을 오르고 하여도 힘들다. 베틀봉 방향의 오름길도 체력 소진으로 인내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베틀굴 갈림길이 나타나고 우측은 베틀굴을 경유하여 구정봉으로 이어지고 직진하는 오름길은 도갑사 방향으로 바로 이어진다.
베틀굴을 보고 가기 위해 좌측으로 0.1km 들어서면 구정봉 아래 여자의 중요 부분과 흡사한 베틀굴과 만난다.
옛날에 전쟁을 피해 근방에 있는 여성들이 올라와 베을 짰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며 항상 축축하게 습기가 차 있다 한다.
 그 위가 구정봉으로  100m을 올라서면 된다. 정상은 바위로 되어 있는데 물이 마르지 않는 9개의 웅덩이로 되어  있는데 가뭄이 엄청 심해 바위 웅덩이의 물이 모두 말라 있다.
구정봉 정상에서 올라 간 바위 틈을 다시 내려오면 국보144호인 마애여래좌상 갈림길로 500m의 거리를 두고 있서 미황재로 하산을 서두른다.
도갑사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능선을 타는 것이 아니라 산허리를 따라 돌아가게 되어 있다. 영산강에서 반짝이는 물빛을 뒤로하고 산불 발생으로 인해 자연생태계가 바뀌어 버리고
이제는가을철에 역광을 받아 빛나는 억새로 이름을 날리며 월출산의 새로운 명소가 된 미황재,
이곳은 또 무위사로 하산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비법정 탐방로로 폐쇄가 되어 있고 산행길은 홍계골을 따라 내려선다. 지루한 하산길로 그래도 흙길로 이지고 신선봉에서 내려서는 계곡을 건너는 지점에 작은 샘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계곡을 따라 내려서는 하산길은 다시 계곡을 건너고 도선수미비를 지나면 도갑사 절집이다. 구정봉에서 60분.
승용차를 이용하면 남해고속도로~순천IC~여수 벌교 17번 국도~벌교 낙안읍성 민속마을 2번 국도~보성~장흥~강진~광주 영암방향~풀치터널~월출산 천황사쪽으로 빠진다. 날머리 도갑사에서 들머리 천황사 입구까지 택시(011-608-1733, 018-364-6666)를 타면 된다.
천황사 입구 월출산 국립공원의 들머리로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조각상이 있는 자연 관찰로
천황사와 바람골 갈림길로 많은 사람들이 천황사 방향으로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화재로 인해 소실된후 최근에 지어진 천황사 대웅전의 모습으로 초라하다.

상대적으로 한적한 바람골 계곡
철계단 위에 걸린 월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




구름다리
예전의 구름다리 모습으로 현재의 모습과 비교가 된다.
일렬로 줄을 서서 올라야 하는 사자봉 철계단길













통천문













남근바위


아래가 바람재로 좌측으로 경포대로 하산을 할 수 있다.

바람재


구정봉


베틀굴
구정봉 정상:구정봉은 월출산의 제2봉으로 동굴 같은 좁은 길을 올라서면 장정50여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넓은 암반과 만나다. 구정봉 정상으로 편편한 바위위에는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 9마리의 용이 살았다하여 구정봉으로 불리며 옛날 구림에 살던 동차진이란
사람이 이곳에서 하늘을 향해 오만과 만용을 부리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9번의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한다.





미황재

도갑사 도선수미비

도갑사로 최근에 대웅전을 새로 건립하였다.
불사이전의 도갑사 대웅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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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도갑사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79호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도갑사는 통일신라말 헌강왕 6년인 880년에 도선국사(826~898)가 창건을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 초기에 도갑사는 번창하였서며 영암 츨신인 수미왕사가 1457년에서 1464년 가지 도갑사를 대대적으로 중창을 하여 966칸의 대가람으로 변모를 하였다 한다. 1597년인 정유재란때 도갑사는 화재로 인해 많은문화재가 불에타 소실되는 불운을 맞이하였다.
그 후에도 중창을 거듭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역시 도갑사는 잿더미가 되고 만다. 그래서 도갑사는 뚜렷한 문화재 하나 남아 있는 것은 없지만








도갑사 해탈문(解脫門)
국보 제50호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해탈문은 속세를 벗어나 불교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이문을 지나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근심 없는 부처님의 품안에 들어선다는 의미이다. 도갑사의 해탈문은 신라시대 승려인 도선국사에 창건 되었고 고려 말에 크게 증흥 되었다 한다. 이 해탈문은 1960년에 해체하여 수리를 할때 발견 된 상량문에 따르면  조선 성종 4년인 1473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석조 기단 위에 중앙칸은 통로가 되고 좌우 한 칸씩에 사천왕상을 안치하였다. 기둥은 약하게 배흘림을 한 기둥으로 사용 되었고전체적인 건축양식은 경북 영주 부석사 조사당과  유사하다. 기둥 위의 구조가 주심포식(하나의 기둥위에 하나의 공포만을 짜 올린 양식)과 다포식(기둥과 기둥사이에도 짜 올린 양식)
양식이 엮인 형태로 국내에서는 유래가 드문 건축물이다.









1995년~1999년 까지 도갑사는 네 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옛 가람의 배치를 확인하고 현재는 복원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대웅전 뒤편 건물지 발굴 조사에서 백제시대 기와편이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 이전 부터 이미 사찰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도갑사 석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0호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석조는 큰 돌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사용하거나 곡물을 씻는데 쓰는 일종의 돌그릇이다.
물을 채워 연꽃을 심는 그릇으로 사용 되기도 하였서며 이 석조는 화강암을 재료로 하여 만든 작은 통나무배와 같은 모양으로 아래부분에 배수구를 갖추었다.
길이 467cm, 폭116cm, 높이 85cm.
강희 21년 임술이라 새겨진 글자가 확인 됨에 따라 조선 숙종 8년인 1682년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도갑사 오층석탑
보물 제1433호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도갑사 탑은 5층으로 돌을 깍고  다듬어서 만든 탑으로 기단과 몸체에
해당하는 탑신, 탑의 몸체들을 덮고 있는 지붕 모양의 옥개석과 탑의 머리 부분을 장식하는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탑 전체를 받치는 즉 기단을 만들기 위해 쌓은 돌인 지대석과 하나의 층으로 된 기단부의 면석 즉 기단의 받침돌과 포개어 얹는 납작한 돌 사이에 대는 넓은 돌은 4장의 널찍한 돌로 짜 맞추었다.
1층에서 4층으로 올라 갈 수록 각층의 몸체들이 낮아져 안정감이 있고 한층의 몸체들은 보통 하나의 돌로 처리를 하는 데 4자의 평돌로 짜 맞춘 것이 특이하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 초기로 보고 있다.





영암 월출산의 대웅전이 최근 복원 불사를 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다. 영암 월출산 도갑사(주지 월우스님)가 550여 년 만에 대웅보전을 중층으로 복원하고 지난 11일 낙성 봉행하였다 합니다. 이 사진은 4월 19일 촬영한 사진 입니다.






도갑사 수미왕사비(道岬寺 守眉王師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52호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수미왕사비는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자취를 기록한 비로 수미왕사는 조선 세조 때의 승려로 13세에 도갑사에 출가를 하였다. 법주사 등지에서 경전공부후  황폐화 된 도갑사로 돌아와 도갑사 중창에노력하였다. 그리고 한문으로 된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간경도감에서 불경을 번역하였고 세조는 그에게 묘각(妙覺)이란 호를 내리고 왕사로 책봉하였다 한다.






수미왕사비는 돌거북인 귀부와 비의 몸체 그리고 용을 아로 새긴 비의 머리부분인 이수가 잘 남아 있다.
돌거북의 머리는 특이하게 인상을 찌푸린 용의 얼굴을 형상화 하였고 목이 짧아 등 껍질이 두꺼워 보인다. 이수에는 꽃잎처럼 화사하게 피어오른 구름 무늬와 서러 어굴을 마주 보고 있는 두마리의 용이 섬세하게새겨져 있다.
비의 총 높이는 3.34m, 비신의 높이 2m, 비신의 폭 1.08m, 비신의 두께 21cm. 숙종 15년인 1689년에 만들어
19년인 1693년에 세웠고 고려 전기의 양식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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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산 태안사 대웅전으로 화려한 단청을 하고 있으며 6.25때 불탄 것을 그후 다시 복원을 하였다.













태안사로 들어오면 만나는 매표소 우측으로 태안사 표지석과 아름다운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동리산 태안사>
동리산 태안사는 통일 신라 말기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이루며 신라 경덕왕 742년에 세 스님에 의해 태안사가 창건되었다. 적인선사 혜철, 광자대사에 의해 대사찰로 변모를 하였다.
풍수지리사상의 대가인 도선국사도 혜철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한다. 신라시대때는 대안사. 조선후기때부터 태안사로 불렸다 하며. 태안사를 품고 있는 동리산은 봉황이 먹고 산다는 오동나무가 열리는 숲속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고려 중기에 태안사의 말사였던 송광사가 독립을 하고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태종의 둘째 왕자인 효령대군도 머물렀으며 정유재란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되고 6.25동란으로 대웅전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는다.
경내에는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제273호), 광자대사탑과 탑비(보물제274호~275호), 대바라(보물제956호), 천순명동종, 능파각등 일주문과 고려후기 3층석탑등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일주문과 능파각만 남고 모두 불타버린 것을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전쟁의 소실을 피한 능파각은 계곡의 물과 경치가 넘 아름다워 능파라한다.



능파각은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는 금강문의 역활을 가지고 있어  능파각의 다리를 건너면 불교의 셰계로 들어 온다는 뜻이 있다한다.


<태안사 능파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제82호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20

능파각은 문성왕 12년인 850년에 태안사가 창건될 때 혜철선사가 함께 지었고 그후 고려 태조24년에 광자선사가 고쳐 지었다 한다.

그 뒤 다시 파손되었던 것을 영조43년(1767)에 다시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능파각은 정면3칸 측면1칸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자 인(人) 모양으로 맞배지붕이다. 계곡 좌우로 석축을 쌓아 석축위에 통나무를 걸치고 나무위에 판자를 깔았다. 그위에 주초를 대신한 하인방을 걸치고 기둥을 세워5량의 맞배지붕을 올였어며 처마는 겹치마이다.

계곡의 물과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능파라 하는데 능파각의 특징은 다리와 금강문 누각을 함께 구성하여 이다리를 건넘으로 해서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 던 저 버리고 불교의 세계로 들어 온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다. 능파각은 태안사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태안사 일주문은 태안사에서 6.25전쟁때에 소실이 되지 않은 건물로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능파각을 지나 태안사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이 주변의 풍치와 함께 오래 남을 아름다운 구간이다. 일주문을 향해 걸어 가는 관광객.

봉두산인 태안사는 일주문 현판에 동리산 태안사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봉두산과 동리산은 서로 관계가 있는 산명으로 봉황이 먹고산다는  오동나무가 열리는 숲속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태안사 일주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제83호

태안사 일주문은 6.25전쟁에서 능파각과 함께 화를 면하였다. 고려 태조 20년(937)경에 광자선사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일주문은 각현선사, 영월선사가 중수하였다 하며 1980년에 보수공사를 하였다 한다.

건축 양식은 단층 팔작집으로 전후 주칸에는 3구, 측면에는 1구의 공간포를 짜 올린 다포식 건물로 앙서로 된 살미첨차들로 내외 사출목의 공포를 짜서 아주 화려한 건출물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원래는 태안사입구 광자대사 부도탑 옆에 있었는데 복원을 하며 이곳으로 옮겼다 한다.

삼층 석탑 주위로 연못을 조성하여 웅장하며 신비감이 감돌며  태안사와 함께 잘어울려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태안사 삼층석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제170호

원래 사찰입구 부도탑이 있는 광자대사 부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기단부와 탑신부 일부의 부재가 유실 된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복원을 하여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한다.

탑의 구조는 원래 2층 기단인 3층 석탑으로 연못으로 옮기면서 기단의 지대석을 높게하여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며 웅장하게 보인다. 그리고 360도를 호수로 조성하여 더욱 웅장하며 신비감이 도는 석탑으로 구성미가 태안사와 함께 조화를 이룬다.

탑신부의 각 옥개석 층급받침은 4단이며 옥개석 상면에는 2단 괴임을 조출하여 고식을 보여 주고 있다. 상륜부는 모두 새부재를 보충 사용하였고 고려초기 작품으로 보고있다.

교통편은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석곡(구례)IC~구례 석곡 태안사(19㎞) 좌회전~구례 순창 옥과 좌회전~구례 압록~태안사 압록유원지 직진~죽곡면~구례 압록 18번~(태평삼거리에서)구례 압록 우회전~태안사 840번 지방도 우회전~순천 태안사 방향 좌회전~태안사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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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뒤덮은 기암괴석 천태만상을 수놓다
오묘한 암릉지대 수석 전시장 방불
탁트인 조망· 시원한 계곡 '이름값'
불가선 천불산… 부처님 도량 연상

 
  우리 나라 그 어떤 산과 비교해도 경관 면에서 전혀 뒤질 게 없다는 절승의 남산제일봉. 불가에서는 능선을 뒤덮고 있는 기암괴석이 천 개의 불상과 같다고 해 천불산(千佛山)이라 부른다.


 



경남 합천 거창과 경북 성주에 걸쳐있는 가야산 국립공원에는 '석화성(石火星)' 가야산이라는 명산이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 숨은 명산이 또 하나 있다.

가야산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남산제일봉이 그것이다. 만추의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홍류동 계곡을 가운데 두고 북쪽에 가야산이 있다면 남산제일봉은 남쪽에 위치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서, 혹자들은 남산제일봉을 두고 가야남산이라고도 한다. 가야산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산세를 지니고 있는 탓이다. 남산제일봉은 한마디로 바위산이다. 기암괴석과 날카로운 암봉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으며 온 산을 뒤덮고 있다.

하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설악이나 월악처럼 접근조차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오묘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장흥 천관산이 떠오를 정도로 친근감이 든다.

불가에선 남산제일봉을 천불산(千佛山)이라 일컫는다. 실제로 들머리의 천년고찰 청량사를 알리는 커다란 이정석에는 남산제일봉 대신 '천불산 청량사'라고 음각돼 있다.

송림 사이로 오글오글 솟은 기암괴석이 아마도 천 개의 불상이 능선을 뒤덮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명명된 모양이다.

도선 국사가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운주사를 품은 영구산 계곡과 산등성이에 천불천탑을 세우려 했듯이 청량사의 이름없는 한 노승이 도선을 그리면서 남산제일봉의 수많은 기암괴석을 보고 부처님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흔히 산꾼들은 매화산과 남산제일봉을 혼용하고 있다.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매화가 피어있는 형상인 매화산(954m)은 남산제일봉(1010m)에서 남동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산. 남산제일봉은 매화산 자락의 하나의 봉우리로 보면 무난하다. 지리산의 적지 않은 봉우리 중 천왕봉이 으뜸이듯 매화산에선 남산제일봉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매화산 남산제일봉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합당할 듯 싶다.

산행은 국립공원 가야산 청량동 매표소~청량사 갈림길~청량사~주능선~잇단 철계단~남산제일봉~돼지골~계곡합수점~임도~해인관광호텔 주차장~치인리집단시설지구(버스정류장) 순. 순수 걷는 시간은 3시간 안팎. 화려한 암릉미, 막힘없는 조망, 시원한 계곡수로 크게 요약된다.

매표소 바로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포장로를 따라 걷는다. 경사가 제법 만만찮다. 길 좌우에 숲을 이룬 노송의 자태가 수려하고 아름답다.

400m쯤 오르면 청량사 갈림길. 갈래길 사이에 음수대와 '남산제일봉 1.9㎞'라 적힌 이정표가 나란히 서 있다. 등산로는 좌측이지만 사찰쪽에서도 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절 구경을 위해 직진한다.

고운 최치원이 즐겨 찾았다는 신라 천년고찰 청량사의 첫 인상은 부산스럽지 않고 단정하다. 설영루를 통과해 대웅전으로 향한다. 각각 보물인 석등과 석탑, 그리고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둘러보고 '천불산 등산로'라 적힌 이정표를 따라 간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본격 등산로로 진입한다.

주능선까지는 숲이 울창하고 오름길이 연속인 그저 평범한 산이다. 돌계단과 침목계단을 연이어 오른다. 은근히 힘이 든다.

35분쯤 뒤 주능선. '민초정 0.3㎞, 남산제일봉 0.8㎞'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으로 향한다. 3분 뒤 전망대. 비로소 '돌불꽃' 가야산과 마주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 왼쪽으로 두리봉, 오른쪽 시계방향으로 저 멀리 팔공산 비슬산 화왕산 관룡산 자굴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발 아래는 매표소 바로 아래의 황산저수지와 그 뒤로 88고속도로가 확인된다. 무엇보다 천 개나 된다는 크고 작은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자태가 처음으로 한 눈에 들어온다.

 
  남산제일봉 정상에서 본 가야산. 왼쪽에는 해인사가 보인다.
기암괴석군(群)에 발걸음이 멈춘다. 돌고래, 다정스레 손잡은 연인, 나들이 나온 가족 등 사람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천태만상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모여있다. 잠시 올라보자. 정면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매화산, 왼쪽 발아래로는 청량사 경내가 한 눈에 펼쳐진다.

이때부터 발걸음을 옮길수록 기이하고 아기자기한, 때로는 집채만한 기암괴석의 잇단 행렬이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치 키재기 경연을 하듯 첩첩이 쌓여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봉우리가 절승이다.

잠시 숲길을 지나면 다시 시야가 트이며 가야산이 더 가까이 보인다. 눈 앞에는 철계단이 아이들의 장남감 소방차 사다리처럼 기암괴석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본격 암릉지대. 70도 가량 되어 보이는 철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암봉 오른쪽으로 에돌아 가기도 한다. 때론 직접 타고 오르기도 하고 바위 틈새로 기어오르기도 한다. 중간중간에 급경사 침목계단과 돌계단도 이어진다.

이렇게 암봉을 힘겹게 넘자 정면에 또 하나의 암봉이 기다린다. 정상이다. 역시 철계단부터 시작되지만 중간중간에 예기치 못한 산길을 만난다. 집채만한 암벽 옆을 따라가기도 하고 편안한 숲도 잠시나마 지난다. 마침내 정상. 기암괴석군에서 50분.

정상석은 없다. 대여섯 평 되는 이곳 정상에도 기암괴석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정상석이 왜소해 보일 것을 우려한 배려이리라.

 
  들머리 청량사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과 석등. 둘 다 보물이다.
우선 사위에 막힘없는 조망감이 절정을 이룬다. 가야산은 물론이고 해인사 홍제암도 확인된다. 발 아래 움푹 파인 곳이 홍류동 계곡이다. 해인사 반대방향으론 정상에 철탑이 서 있는 오도산과 두무산 비계산 별유산 의상봉 작은가야산 남산깃대봉 단지봉 좌일곡령, 그 뒤로 덕유산 남덕유 금원 기백 황석 거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비슬산쪽엔 대구 시가지도 보인다.

하산은 반대편 철계단으로 내려선다. 주변의 기암괴석들이 마치 활짝 핀 꽃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다. 명산의 반열에 올려도 전혀 손색이 없다. 철계단이 끝나는 지점은 갈림길. 단지봉을 거쳐 고운암 또는 별유산 의상봉으로 가는 능선종주길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법정 탐방로로 막혀 있다. 때문에 오른쪽 나무계단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내려선다.

이전과 달리 부드러운 숲길이다. 혹 길이 날머리인 해인사(치인리) 집단시설지구와 반대방향이라고 오해하기 쉬우나 길이 크게 시계방향으로 휘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는 없다.

샘터를 지나면서 물길과 만난다. 돼지골이다. 정상에서 30분 소요.

호랑버들나무 앞에서 계곡을 건너 10여 분 계곡과 나란히 달린다. 계곡수 탓인지 바람이 더욱 더 시원하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계곡 합수점. 치밭골과 만난다. 합수지점에 조그만 동굴이 눈길을 끈다. 유량이 늘어 제법 너른 소와 낮은 폭포도 보인다.

등로는 임도 수준의 산책로로 변한다. 사실상 산행 끝. 5분 뒤 해인관광호텔 주차장을 지나고, 여기서 집단시설지구 버스 정류장까지는 9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민초정'은 김동영씨 아호따온 샘터

 
당초 산행팀은 남산제일봉에 올라 단지봉을 거쳐 청량사와 함께 최치원이 말년에 머물렀다는 고운암으로 하산할 계획이었으나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비법정 탐방로로 묶여 있어 시원한 계곡이 일품인 돼지골로 하산했다. 때문에 산행시간이 예정보다 단축됐다.

민초정과 관련, 한마디. 주능선에 오르면 '민초정 0.3㎞'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처음엔 민초정을 크고 작은 기암괴석이 몰려 있는 지점(사진)으로 파악했다. 언젠가 화순 운주사를 찾았을 때 수많은 불상 중 볕을 쬐러 나온 가족불상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우리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묘사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말이다.

정확한 위치와 유래 등을 알아보기 위해 산행 후 가야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문의했다. 유감스럽게도 정확히 아는 직원은 없었고, 대신 퇴직한 직원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사연은 이랬다. 민초는 'YS의 왼팔'이었던 고 김동영의 호였다. 10여 년 전 거창이 지역구인 그는 남산제일봉에 오른 후 당시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하면서 조그만 샘터를 손 봐 자신의 호인 민초를 붙여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민초정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민초정은 그와 함께 하늘나라로 가버렸는지 지금은 없었다. 퇴직한 그 분이 설명을 친절하게 했지만 산행팀은 하산할 때 샘터를 하나 봤을 뿐 오름길에선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민초정(民草쬱)이 민초정(民草亭)으로 변할 뻔한 위기는 다행히 넘겼다.

마지막으로 오가는 산꾼들의 목을 축여주기 위한 고 김동영 씨의 산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뒤늦게나마 근교산 지면을 통해 꼭 전하고 싶다.


# 교통편

- 대구서 해인사행 버스 이용 권장

부산서 합천행 버스는 많지만 합천서 해인사로 가는 버스는 오전 10시40분 한 차례밖에 없다. 때문에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간 후 거기서 수시로 다니는 해인사행 버스를 타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부산역에서 열차편을 이용, 동대구역에서 내린 후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부터미널이 가까운 성당못역에서 내린다. 서부터미널에서 해인사행 버스는 오전 9시25분, 9시40분 등 20~4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요금은 4500원이다. 하차는 해인사 직전 청량사 입구인 구원(리)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여기서 들머리 청량동 매표소까지는 걸어서 30분 걸린다.

해인사 집단시설지구 버스정류장에서 대구 서부터미널행 버스는 20~3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오후 7시5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 화원TG~화원 방향으로 나와 다시 U턴, 다시 고속도로 광주 마산 방면~굴다리 통과~화원TG~88고속도로 광주 성산~해인사IC~해인사 가야산 방향 우회전~청량사 남산제일봉 방향~근민교 지나~가야산 국립공원 청량동 매표소 옆 주차장. 날머리 집단시설지구 버스정류장에서 차가 있는 주차장까지는 택시(055-932-7262)를 이용하면 된다. 1만 원.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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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찾는 근교산 <> 합천 오도산

 
"숲이 우거져서 올라가시면 멧돼지 많을거요. 새끼 데리고 다니는 놈들은 사나우니까 특히 조심들 하소. 또 이 산엔 69년도에 방목됐다가 산속으로 도망쳐버린 흑염소떼가 새끼를 쳐 야생상태로 서식하고 있어요."

경남 합천 오도산(吾道山.1133.7m)을 찾은 다시찾는 근교산취재팀에게 마을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짜릿한 설레임을 느끼게 했다. 군사목적으로 개설된 도로가 산 아랫자락에서 이마빼기까지 휘감고 있는데도 아직 그렇게 깊고 깨끗하단 말인가.

하지만 취재팀이 이 멧돼지나 야생흑염소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이번 산행은 여름철 산꾼들에게 흥분과 재미를 선사하는 `계곡산행'이기 때문이다.

계곡산행은 젖은 바위에서도 잘 미끄러지지않는 계곡등산용 샌들을 신고 산길 대신 계곡물길을 거슬러 산을 오르는 산행의 한 방식이다. 여름등산만의 별미다. 합천 오도산은 계곡산행의 조건을 빼어나게 갖췄고 깊은 유서도 전해지는 수려한 근교산이다.

신라 말엽 유명한 도선(道詵)국사가 그 기운과 자태에 탄복해 머물며 수련한 산이기도 한데, 멀리서 보는 외관과 달리 참한 계곡을 여럿 품고 있다. 폭포골 지실골 한시골 두산지음골등의 물길이 산을 호위하고 있다. 오도산은 또 웬만한 근교의 산들은 따르지 못할 호화로운 산세조망이 일품이다.

취재팀은 계곡산행경로를 합천군 묘산면 반포리 안마을을 기점으로 잡아 폭포골-오도산정상-지실골-임도-오도산자연휴양림공사현장-압곡리 지실부락 하산길로 잡았다.

계곡으로 시작해 계곡으로 끝나는 군침도는 여름코스다. 산행시간은 6시간-6시간30분. 알맞게 불어오른 청정계곡을 따라 오르는 폭포골 오름구간은 시원하고 상큼하다.

묘산면소재지에서 반포리까지 들어가 도로변에 서 있는 반포마을 표지판을 보고 부락으로 들어서면 산행은 시작된다.

반포마을회관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간다. 이내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개울이 나서는데 건너지말고 왼쪽으로 꺾어 개울을 따라 산쪽으로 올라붙는다. 샛길 무시하고 10여분 직진하자 개울 징검다리 하나를 건너선 뒤 계곡으로 내려설수 있다. 지금부터 시원짜릿한 계곡산행이다(다만 비가온 직후는 물길산행을 삼가야한다). 작은 폭포와 아담한 소(沼), 깨끗한 계류를 밟는 기분이 상쾌하다.

미끄러운 바위가 버틴 난코스는 2곳 정도. 40여분만에 물길 합수지점에 닿고 이곳서 오른쪽으로 물길을 15분 정도 더 올라간 지점에서 계곡을 버리고 왼쪽 산사면으로 올라붙어야 한다. 뭍으로 올라붙는 입구가 명확치않아 취재팀은 신경써 리본을 부착해뒀다. 샌들은 등산화로 갈아신고 반바지는 긴바지로 바꿔입고 본격 `산행'을 시작한다. 산으로 올라서서 잠시 등산로가 매우 불확실하고 잡목수풀이 심하게 우거진 구간을 30여분 힘겹게 헤쳐나갔다. 하지만 이내 능선으로 향해 난 길을 만날수있고 묘지도 1기 지나치게 된다. 어느 정도 오르면 정면으로 오도산정상과 정상의 군사시설물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을 버린지 약 40여분만에 취재팀은 아스팔트도로위로 올라섰다. 도달한 지점은 도로반사경 바로 뒤편. 여기서 위로 30여m 걸어간 뒤 다시 도로난간을 넘어 서 산쪽으로 들어선다. 이 지점에서 갈림길이 열리는데 이번 산행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분기점이다. 왼쪽 직진길은 산사면을 에돌아 처음 만나는 너덜지대에서 너덜건너편 가장자리를 타고 5분 정도 올라선후 반대편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 뒤로도 수풀과 가시덤불로 전진이 매우 힘든 잡목구간과 2군데의 너덜지대를 더 오른다. 이 길은 매우 험할 뿐만 아니라 희미하다. 무엇보다 아직 안정되지 않은 너덜의 돌들이 앞사람의 발길에 여차하면 굴러내려 부상과 실족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초심자 또는 단체산행팀은 삼가야한다. 정상 바로밑 도로까지 올라서는 시간도 1시간 이상 소요된다.

반면 출발지점에서 오른쪽 오르막은 능선구간이다. 길도 편하고 조망도 빼어나며 20분 정도면 다음 목적지까지 올라설 수있다. 취재팀은 두 구간을 모두 답사해 리본을 부착했으나 2번째 길을 추천한다.
정상바로 밑 도로에 올라섰으나 정상이 군사시설물이라 오를 수가 없다. 이 도로의 가장 높은 지점까지 가는 것에 만족해야한다.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야트막한 야산 하나가 반사경 뒤로 봉긋 솟아있는 지점이 가장 높다. 이 곳 조망은 꿈결같다. 멀리 지리산 남덕유 북덕유능선, 좀 가까이 매화산 가야산 의상봉 별유산등의 파노라마는 주위에선 좀체 보기 힘든 장관이다.

하산은 위에 언급한 도로변 야산으로 올라서 반대편으로 내려서면서 시작한다. 15분 정도 가서 길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지실골까지 내려가야하는데 숲이 짙은 이 구간 등산로가 매우 불확실하다. 20분쯤 내려서다 갑자기 길이 끊기는 듯한 지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10여분 더 내려가면 지실골 물길을 만난다.

그 뒤로는 별 걱정없지만 계곡 말고는 다른 산길이 없어 비로 물이 불었을때는 하산이 곤란해진다. 1시간20분 정도면 계곡에서 완전히 벗어나 임도에 올라선다. 임도 끝은 자연휴양림공사가 한창이다.

# 교통편

 
합천군 묘산까지 가려면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서 국도로 가는 거창행버스를 탄다. 오전 7시50분, 9시20분등 하루 6회. 막차 오전 6시. 2시간20분 소요. 묘산서 반포마을까지는 묘산파출소옆 대흥수퍼마켓 버스정류소에서 하루 15회 버스운행. 요금 600원. 택시 2천원. 면내 개인택시 (0599) 9320082, 9336003, 9326618등. 하산 때도 이용가능. 하산지점 압곡리 지실마을입구서 묘산면까지 8천원 정도. 하산해서는 택시를 이용하거나 압곡리 입구 도로까지 걸어나가 권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이용. 1시간20분 간격 운행.

합천군 묘산은 토종흑돼지 산지로 유명하다. 합천군이 지정한 명품. 묘산면소재지서 약간 벗어난 곳에 고향식당(05999331180)에 가면 맛볼수 있다. 농촌진흥청이 찾아낸 토종돼지를 사육하는 인근 웅기마을 8가구에서 돼지를 공급받는다. 일반 돼지고기보다 다소 비싸지만 담백하고 돼지냄새가 없어 즐겨볼 만하다.
참고로 교통편은 변동사항이 있습니다. 각 지자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문의 하세요




조봉권기자

입력: 2002.01.17 16:47 / 수정: 2006.11.2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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