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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봉 정상에서 도갑사로 내려서는 산길에서 본 경관으로 하산할 능선길이다. 뒷 능선 우측 지점의 큰 바위가 구정봉으로 그아래 배틀굴이 있다.
구정봉을 내려서면서 본 영암읍 쪽 전경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로 시작 되는 영암 아리랑의 가사이다.
사실 월자가 들어가는 산 이름은 많이 있다. 너무나 유명한 제천의 월악산,
부산과 가까운 좌천의 달음산, 진주의 달이산등 많은 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번에 소개하는 월출산이 달과 어울리는 최고의 산으로 치고 있다.
영암 아닌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월출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체면적 또한 여타 국립공원에 비해 규모면에서 가장
적지만 산세는 여타 국립공원에 조금도 지지 않는 호남의 5대 명산이다.
예로부터 월출산은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삼국시대인 백제때는 월나악으로 불렸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 조선시대에 들어와 월출산으로 불려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관이 뛰어난 월출산을 두고 시인묵객 또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금오신화를 집필한 매월당 김시습이
월출산을 두고 "남쪽에 제일가는 그림 같은 산이 있어니 청천에 솟아 있는 월출산이 여기로다"하며 월출산을
격찬하였다.
그림같은 월출산은 사실 산행을 할 수 있는 들머리가 세곳으로 집약된다. 도갑사와 천황사 그리고 경포대로 주로 천황사로 올라 천황봉을 거쳐 경포대로 내려 오는 코스가 일반 산행객에게 이용된다. 그리고 도갑사로 이어지는 월출산 종주 코스는 6시간 이상이 소요 되는 당일 코스로는 조금은 벅차지만 부산에서 오랜만에 찾는 산행지라 월출산 종주를 안 할수 없어 도갑사로 하산을 결정하고 출발하였다.
산행경로를 보면 천황사 입구 들머리~천황사지 갈림길~바람골경유 바람폭포 갈림길~구름다리~경포대 삼거리~통천문 삼거리~통천문~천황봉~남근바위~바람재 삼거리~베틀굴~구정봉~미황재(억새밭)~도갑사 도선수미비~도갑사 순으로 산행시간은 6~7시간을 걸리는 장거리 산행길이다.
그리고 구정봉에서 내려가는 마애불을 볼려면산행 시간은 더 잡아야한다.
먼저 천황사 입구인 탐방 지원센타 앞을 지나면 주차장과 그 뒤로 월출산임을 알리는 큰 표지석이 서 있다.
그 뒤로 펼쳐지는 월출산의 바위와 그림 같은 선경에 월출산의 품안으로 들어 선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인파로 인해 밀려 올라가는 형편으로 월출산은 그 만큼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조각상이 서 있는 자연관찰로를 통과하면 천황사 야영장 관리소,여기를 지나면서 산행이 본격 시작 된다. 천황사는 우측으로 천황봉3.1km, 구름다리1.41km,천황사0.5km의 이정표가 서있고 들머리를 지나면 산길은 작은 바위 들이 깔려 있고 산죽이 길 옆을
도열하고 있다. 10여분이면 천황사지 갈림길에서 산길은 갈리는데 매번 올때마다 천황사를 경유한후 능선을 따라 구름다리로 올랐는데 이번에는 코스를 달리하여 바람골 계곡을 따라  구름다리로 산행을 하기로 하고 우측 바람폭포방향으로 산길을 잡는다. 잠시 몇해전에 불이난 천황사를 보기 위해 올라서니 한창 불사가 진행중이다.
몇해전에는 가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 현판이 붙은 작은 건물을 볼 수가 있었다. 다시 되돌아와 천황교를 건너면 사실상 바람골로 들어선 것이다.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던 것과 달리 바람골은 한적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가뭄으로 물 마른 작은 폭포에 봄꽃인 자주괴불주머니가 나타나고  산행길은 계곡을 끼고 올라가는 바위로 된 너덜길이다.
천황사를 경유하여 바람폭포 삼거리 까지 오니 30여분이 소요 된다. 바람폭포 삼거리로 좌측은 구름다리 0.3km, 우측은 천황봉1.4km, 바람폭포0.2km을 알리는 이정표, 구름다리를 보기 위해 좌측으로 급한 계단길을 오른다.
철계단을 구름다리 삼거리까지 설치한 된비알의 오름길이다.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기고 뒤돌아 보는 바람골과 건너편의 바위능선이 장관이다.
천구만별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천마리의 거북이와 만마리의 자라같은 바위 형상이 골골마다 능선마다 모습을 달리하고 서 있는 기암들에 월출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머리를 들어보니 구름다리가 지나가고  어느새 15분이면 천황사에서 올라와는 구름다리 삼거리, 천황봉1.8km, 우 천황주차장1.9km, 천황사지0.8km의 안내판이 서 있고
좌측으로 돌 계단을 올라서면 구름다리로 들어선다. 많은 산행객으로 붐빈다. 몇해전에 새로 설치한 월출산 구름다리는 사자봉 중턱에서 대봉을 연결하는 현수교로 길이는 50여m. 높이는 120m로 출렁다리에서 새로 공사를 하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가교를 설치하여 누구나 안심하고 건널 수 있다. 공사 이전에는 흔들림과 고도감으로 인해 여성분들은 건너는데 어려움이 많았는데 지금은 안심하고 건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리를 건너면 산길은 사자봉으로 올라가는 철계단으로 이루어 져 있다. 경사가 심해 더운 날에는 땀께나 솓아야 할 구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면 일렬로 줄을 지어 올라 가야 되고 내려 오는데 내려오는 계단이 좀 비었다고 잠시를 참지 못하고 올라가니 내려오는 사람과 서로 뒤엉켜 병목현상으로 지체하게 되고 다른 등산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우리 등산 문화의 현 주소이다. 사자봉에서 내려 서면 안부로 정면의 큰 암봉을 좌측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숫제 돌아 간다는 개념보다는 내려 갔다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바위길을 급하게 내려서면 산길은 다시 오르막길, 숨은 턱까지 차 오른다. 좌측으로 펼쳐지는 기암들에 힘든줄도 모르고 올라선다. 다시 능선, 정면에 천황봉으로 올라서는 능선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자점이다. 올라가는 사람들의 힘든 모습도 여기서는 볼 수 있다. 정상이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로 산행을 해보면 이번 산행의 제일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을 벗어나면 경포대 삼거리, 천황봉0.4km, 좌측 경포대2.6km 이정표를 뒤로 하고 한발한발 올라선다.
통천문 삼거리로 바람골에서 바람폭포를 지나 올라오는 지점으로 통천문 삼거리라 부른다.
여기서 좌측으로 0.3km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이다.
천왕봉을 오를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곳으로 좁은 바위 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통천문을 통과하면 정상은 눈앞이 보이고 주위로 얼레지가 한창이다.
힘듬도 잠시 정상에는 넓은 암반으로 사람으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속칭 물반고기반일 정도로 북적이는 인파를 뒤로 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좌우를 돌아보는 경관은 영암 땅에 불쑥 솟은 듯 산세를 이루는 월출산이라 그 어떤 산과 비교를 하리오. 
사실 도갑사로의 하산길은 이제 산행 시작이라 할 정도로 먼 거리이다.
정상석 앞을 지나 내려서는 하산길은 떨어진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급 내리막 하산으로 꾸불꾸불 내려선다,
좌우로 보여 주는 기암들의 행렬에  잠시라도 눈을 땔 수가 없다.
남자의 거시기와 닮았다는 남근바위를 지나면 산길은 바람재 삼거리, 정상에서 50분 소요, 직진하면 구정봉 0.5km, 도갑사1.5km, 좌측은 경포대2.5km 이정표에서 같이 온 회원 한분이 무릎이 아프다며 경포대로 하산을 하신다고 한다.
끝까지 산행을 할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부산에서 온 다른 단체분께 양해를 구하고 그 편으로 부산으로 갈 수 있도록 하게 한후 경포대로 하산을하게 하였다. 나머지 회원님은 도갑사 방향으로 직진을 한다.
오르막 산길은 매본 산을 오르고 하여도 힘들다. 베틀봉 방향의 오름길도 체력 소진으로 인내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베틀굴 갈림길이 나타나고 우측은 베틀굴을 경유하여 구정봉으로 이어지고 직진하는 오름길은 도갑사 방향으로 바로 이어진다.
베틀굴을 보고 가기 위해 좌측으로 0.1km 들어서면 구정봉 아래 여자의 중요 부분과 흡사한 베틀굴과 만난다.
옛날에 전쟁을 피해 근방에 있는 여성들이 올라와 베을 짰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며 항상 축축하게 습기가 차 있다 한다.
 그 위가 구정봉으로  100m을 올라서면 된다. 정상은 바위로 되어 있는데 물이 마르지 않는 9개의 웅덩이로 되어  있는데 가뭄이 엄청 심해 바위 웅덩이의 물이 모두 말라 있다.
구정봉 정상에서 올라 간 바위 틈을 다시 내려오면 국보144호인 마애여래좌상 갈림길로 500m의 거리를 두고 있서 미황재로 하산을 서두른다.
도갑사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능선을 타는 것이 아니라 산허리를 따라 돌아가게 되어 있다. 영산강에서 반짝이는 물빛을 뒤로하고 산불 발생으로 인해 자연생태계가 바뀌어 버리고
이제는가을철에 역광을 받아 빛나는 억새로 이름을 날리며 월출산의 새로운 명소가 된 미황재,
이곳은 또 무위사로 하산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비법정 탐방로로 폐쇄가 되어 있고 산행길은 홍계골을 따라 내려선다. 지루한 하산길로 그래도 흙길로 이지고 신선봉에서 내려서는 계곡을 건너는 지점에 작은 샘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계곡을 따라 내려서는 하산길은 다시 계곡을 건너고 도선수미비를 지나면 도갑사 절집이다. 구정봉에서 60분.
승용차를 이용하면 남해고속도로~순천IC~여수 벌교 17번 국도~벌교 낙안읍성 민속마을 2번 국도~보성~장흥~강진~광주 영암방향~풀치터널~월출산 천황사쪽으로 빠진다. 날머리 도갑사에서 들머리 천황사 입구까지 택시(011-608-1733, 018-364-6666)를 타면 된다.
천황사 입구 월출산 국립공원의 들머리로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조각상이 있는 자연 관찰로
천황사와 바람골 갈림길로 많은 사람들이 천황사 방향으로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화재로 인해 소실된후 최근에 지어진 천황사 대웅전의 모습으로 초라하다.

상대적으로 한적한 바람골 계곡
철계단 위에 걸린 월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




구름다리
예전의 구름다리 모습으로 현재의 모습과 비교가 된다.
일렬로 줄을 서서 올라야 하는 사자봉 철계단길













통천문













남근바위


아래가 바람재로 좌측으로 경포대로 하산을 할 수 있다.

바람재


구정봉


베틀굴
구정봉 정상:구정봉은 월출산의 제2봉으로 동굴 같은 좁은 길을 올라서면 장정50여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넓은 암반과 만나다. 구정봉 정상으로 편편한 바위위에는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 9마리의 용이 살았다하여 구정봉으로 불리며 옛날 구림에 살던 동차진이란
사람이 이곳에서 하늘을 향해 오만과 만용을 부리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9번의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한다.





미황재

도갑사 도선수미비

도갑사로 최근에 대웅전을 새로 건립하였다.
불사이전의 도갑사 대웅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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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도갑사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79호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도갑사는 통일신라말 헌강왕 6년인 880년에 도선국사(826~898)가 창건을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 초기에 도갑사는 번창하였서며 영암 츨신인 수미왕사가 1457년에서 1464년 가지 도갑사를 대대적으로 중창을 하여 966칸의 대가람으로 변모를 하였다 한다. 1597년인 정유재란때 도갑사는 화재로 인해 많은문화재가 불에타 소실되는 불운을 맞이하였다.
그 후에도 중창을 거듭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역시 도갑사는 잿더미가 되고 만다. 그래서 도갑사는 뚜렷한 문화재 하나 남아 있는 것은 없지만








도갑사 해탈문(解脫門)
국보 제50호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해탈문은 속세를 벗어나 불교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이문을 지나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근심 없는 부처님의 품안에 들어선다는 의미이다. 도갑사의 해탈문은 신라시대 승려인 도선국사에 창건 되었고 고려 말에 크게 증흥 되었다 한다. 이 해탈문은 1960년에 해체하여 수리를 할때 발견 된 상량문에 따르면  조선 성종 4년인 1473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석조 기단 위에 중앙칸은 통로가 되고 좌우 한 칸씩에 사천왕상을 안치하였다. 기둥은 약하게 배흘림을 한 기둥으로 사용 되었고전체적인 건축양식은 경북 영주 부석사 조사당과  유사하다. 기둥 위의 구조가 주심포식(하나의 기둥위에 하나의 공포만을 짜 올린 양식)과 다포식(기둥과 기둥사이에도 짜 올린 양식)
양식이 엮인 형태로 국내에서는 유래가 드문 건축물이다.









1995년~1999년 까지 도갑사는 네 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옛 가람의 배치를 확인하고 현재는 복원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대웅전 뒤편 건물지 발굴 조사에서 백제시대 기와편이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 이전 부터 이미 사찰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도갑사 석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0호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석조는 큰 돌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사용하거나 곡물을 씻는데 쓰는 일종의 돌그릇이다.
물을 채워 연꽃을 심는 그릇으로 사용 되기도 하였서며 이 석조는 화강암을 재료로 하여 만든 작은 통나무배와 같은 모양으로 아래부분에 배수구를 갖추었다.
길이 467cm, 폭116cm, 높이 85cm.
강희 21년 임술이라 새겨진 글자가 확인 됨에 따라 조선 숙종 8년인 1682년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도갑사 오층석탑
보물 제1433호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도갑사 탑은 5층으로 돌을 깍고  다듬어서 만든 탑으로 기단과 몸체에
해당하는 탑신, 탑의 몸체들을 덮고 있는 지붕 모양의 옥개석과 탑의 머리 부분을 장식하는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탑 전체를 받치는 즉 기단을 만들기 위해 쌓은 돌인 지대석과 하나의 층으로 된 기단부의 면석 즉 기단의 받침돌과 포개어 얹는 납작한 돌 사이에 대는 넓은 돌은 4장의 널찍한 돌로 짜 맞추었다.
1층에서 4층으로 올라 갈 수록 각층의 몸체들이 낮아져 안정감이 있고 한층의 몸체들은 보통 하나의 돌로 처리를 하는 데 4자의 평돌로 짜 맞춘 것이 특이하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 초기로 보고 있다.





영암 월출산의 대웅전이 최근 복원 불사를 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다. 영암 월출산 도갑사(주지 월우스님)가 550여 년 만에 대웅보전을 중층으로 복원하고 지난 11일 낙성 봉행하였다 합니다. 이 사진은 4월 19일 촬영한 사진 입니다.






도갑사 수미왕사비(道岬寺 守眉王師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52호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수미왕사비는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자취를 기록한 비로 수미왕사는 조선 세조 때의 승려로 13세에 도갑사에 출가를 하였다. 법주사 등지에서 경전공부후  황폐화 된 도갑사로 돌아와 도갑사 중창에노력하였다. 그리고 한문으로 된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간경도감에서 불경을 번역하였고 세조는 그에게 묘각(妙覺)이란 호를 내리고 왕사로 책봉하였다 한다.






수미왕사비는 돌거북인 귀부와 비의 몸체 그리고 용을 아로 새긴 비의 머리부분인 이수가 잘 남아 있다.
돌거북의 머리는 특이하게 인상을 찌푸린 용의 얼굴을 형상화 하였고 목이 짧아 등 껍질이 두꺼워 보인다. 이수에는 꽃잎처럼 화사하게 피어오른 구름 무늬와 서러 어굴을 마주 보고 있는 두마리의 용이 섬세하게새겨져 있다.
비의 총 높이는 3.34m, 비신의 높이 2m, 비신의 폭 1.08m, 비신의 두께 21cm. 숙종 15년인 1689년에 만들어
19년인 1693년에 세웠고 고려 전기의 양식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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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른 봄이라 고목은 새싹을 다 피우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서 있었다.

봄이면 새잎을 달고 오고가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할 것 같다. 가지가 좌우로 뻗어 여름철에는 넓은 그늘을 만들어 쉼터 역활을 할 것이며 도갑사를 450년 동안 지켜온 터줏대감이 이 팽나무이다.
허리둘레는 장골 둘이서 양팔을 뻗어 겨우 잡을 수 있는 4.4m이며 팽나무의 높이 또한 8m로 낮지만 풍겨오는 무게감은 보는 이를 압도 하고도 남는다.  
1924년 12월 3일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고 위치는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58-2번지 도갑사 상가건물 한켠에 서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고목 답게 가지를 받이는 기둥이 여러개 서 있어 세월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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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갑사 도선수미비(道岬寺 道詵守眉碑)
보물1395호

위치: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이비석은 도갑사 도선 수미비로 도갑사를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이비를 만드는데 17년이 소요 되었다하며 조선효종 4년인 1653년에 완성 되었다 한다. 빗돌을 받치고 있는 돌 거북이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고개를 절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며 돌거북의 등 가장자리에 말린 연꽃잎이 세겨져 있다. 용의 모습을 새긴 비의 머리인 이수는 두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항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구름이나 연꽃잎이 아닌 연잎으로 비의 무게를 받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의 양식으로 볼 수 있다한다. 비의 높이는 4.8m, 폭은 1.4m이며 1500자의 글이 새겨져 있다.비석의 몸체 앞뒤로는 글씨가 새겨지고 양쪽 면은 용의 모습이 새겨져 더욱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도갑사 절에서 미륵전 방향으로 향하는 월출산 미황재 방향으로 오르는 길에 계곡을 건너면 기와를 인 팔작지붕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이 도선수미비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하여 놓은 비석으로 보통 귀부와 이수만 남고 빗돌은 파괴 된 경우가 많은데 수미비는 깨끗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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