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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두번째 큰 섬인 영도는 예로부터 신선이 살만한 곳으로 여겨져 마을의 지명도 신선동이니 청학동 그리고 봉래산등 이상향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영도 또한 절영도에서 나왔다. 한때 이곳은 명마를 키우는 목마장이 봉래산아래 존재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 달리면 자신의 그림자도 따라 오지 못할 정도 즉 말의 그림자를 끊을 정도로 빨리 달리는 명마를 키웠다 한다. 그래서 영도를 절영도라 부르게 되었는데 그후 영도가 되었다.




그 남쪽 끝에 천길 단애를 이루는 태종대가 자리를 하고 있으니 선경이야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등대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바닷가와 저멀리 수평선에 떠 있는 대마도도 시야에 잡히는 그야 말로 부산 관광의 중심이다.
태종대는 부산을 대표하는 암석 해안으로 파도에 의한 침식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 되었다.
우거진 나무와 숲 그 아래는 수직 100m의 천길 절벽을 좌우로 만들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지금 이곳은 국가명승지 제17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동래부지에 의하면 신라시대때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 한 후 이곳에 시찰과 휴양차 들러 활쏘기를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동래 부사가 이곳까지 행차를 하여 기우제를 지낸곳이며 일본에 끌려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망부석 전설과 선녀가 하강을 하여 그 절경에 취해 도끼자루 썩는 줄 도 모르고 놀고 올라갔다는 신선대의 이야기등이 전해오고 있다.





 이곳에도 부산의 갈맷길이 조성이 되어 있다.
서구 암남동의 암남공원에서 이어지는 볼레길을 따라 송도해수욕장을 거쳐 남항대교를 건너 절영해안산책로를 끼고 이어지는 이 코스는 17.8km로 8시간이나 소요되는 코스이다.
사실 바위와 포장길의 연속인 이 길을 그래 걷는 것은 무리이며 길을 걷는 이유에서도 거리가 먼 것 같아 세 번 잘라서 걷게 되었다.
걷기는 여유와 생각을 하고 주변의 경치를 음미하며 걸어 가는 것이 그 취지이다.
땀을 흘릴 요량으로 운동이라 생각하면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게 시간이나 금전적 면에서 훨씬 좋을 것이다. 이번에는 태종대 입구에서 시작을 한다.







 예전에는 매표소가 서 있던 자리로 지금은 무료로 입장을 할 수 있게 시민의 품으로 돌아 왔다.
이곳을 지나면 갈림길로 좌측은 차량의 일방길인 내려 오는 길이다.
안내도에는 등대자갈마당 신선바위 영도등대 태종사 순환도로라 되어 있다.
우측은 전망대 남항조망지 구명사 태원자갈마당 진행방향의 순환도로로 되어 있어 우측으로 들어선다. 먼저 우측의 유람선 선착장으로 내려 간다.
 이날 누이파의 영향으로 유람선은 발이 묶여 보이지 않으며 세찬 파도만 밀려오고 있었다. 다시 나와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우측으로 자갈마당과 전망대 가는 길이 나온다.
기암의 전망대인 이곳은 송도와 암남공원 감지해변 그 뒤로 중리산을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남항전망대에서 보는 조망도 바닷 건너 서구의 천마산 가덕도등 별 다르지 않으며 예전에는 자살바위로 한때는 불리던 곳으로 지금은 모자상과 상가로 변모를 하여 그때의 상처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자상의 연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 모자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태종대 최고의 볼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등대와 신선대로 태종대의 진 면목을 아낌없이 보여 주는 곳이다. 시원한 바람을 직접 맞을 수 있고 밀려드는 파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으며 등대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게 전망대로 개방을 하였다.
그 외에도 최근에 많은 기념탑을 조성하여 더욱 풍성한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넘 화려하지 않으며 그리고 주변의 경치와도 도드라지지 않은 이곳에 어울리게 조성을 하여 쉼터가 되고 있다. 

















다시 계단을 올라와 진행 방향을 따라가면 이번에는 태종사와 6.25참전 기념비가 나온다.
영도유격부대 작전지비로 동해 3도 출신으로 1950년 10월부터 1952년 12월까지 피나는 훈련을 거쳐 적후방에 침투를 하여 특수전을 감항하였다 한다.
태종사에는 스리랑카에서 모시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관하고 있다하며 법당의 부처님 또한 국내의 부처님과 모습이 조금은 달라 보이는 스리랑카 풍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을 지나면 들어온 태종대 입구로 다시 나간다.








총 길이가 약 4.3km의 이길을 여유를 가지며 2시간 정도 소요 되었다.
태종대 유원지의 총 면적은 54만2천평이며 해발 250m의 최고봉인 태종산,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해송과 120여종의 자연식물과 수목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맑은 날에는 56km 떨어져 있는 대마도(쓰시마섬)가 보이며 일제시대때부터 군 요새지로 사용된 바람에 출입의 통제를 받아 왔고 그 당시의 시설물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지금 이용하고 잇는 순환도로는 1970년에 착공을 하여 3년만에 완공을 하였다한다. 현재는 태종대유원지로 변모를 하여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태종대를 도는 길은 순환도로의 보도블럭을 걷는 길인데 보도블럭을 걷어 내고 흙길을 조성하면 더 좋은 길이 되지 싶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포동 6번출구를 나와 8번,30번, 88번을 이용하면 되고 부산역방면 9번 출구에서 88번 101번을 이용하면 태종대까지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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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에 와 활을 쏘았다는 태종무열왕은 과연 어디에서 활을 쏘고 망중한을 즐겼을까.

그곳은 등대 아래편에 천길의 단애가 휘둘러져 있는 태종바위와 신선바위가 아닐가 싶다. 태종대를 한때는 신선대로도 불렸는데 태종바위와 신선바위를 합해서 모두 신선대로 불렸다. 언제부턴가 왼쪽의 바위를 무열왕이 쉬었을 법 하다하여 태종바위라 부르고 우측의 망부석이 있는 바위를 신선바위라 부른다.


그 이전에는 공룡들의 놀이 공간이였나보다. 태종바위 일원에 무수히 많은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어 학계의 많은 관심을 가졌다. 공룡의 멸종기때 후기 백악기말인 6500만년~7000만년전에 생선된 발자국화석이다. 그 후 하늘의 선녀들이 하강하여 평평한 이곳 바위에 내려와 놀고 갔다는 전설과 신선들이 이곳의 절경에 반해 장기를 두며 '과연 여기가 무릉도원일쎄' 무릎을 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하여 오늘날에 신선대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곳 신선바위에는 선녀들이 내려와 놀고 아이를 낳고 갔다는 이야기와 그의 흔적들이 도처에 남아 있다 한다. 바위에는 아이의 태를 끊은 가위와 실패의 흔적이 있으며 출산한 선녀의 왼쪽과 오른쪽의 무릎이 닿은 흔적이 남아 있는데 오른쪽의 흔적이 더 깊게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하는데 그것은 출산할 때 오른쪽 다리에 더 힘이 가해지기 때문이란다.

 


신선바위위에는 삼각뿔 모양의 바위가 올려 져 신기하기 까지하다. 그 바위를 망부석이라 부른다. 이 바위는 왜구에게 끌려간 지아비를 이 바위에 올라 일본쪽을 바라보며 비가 오나 눈이오나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바위로 굳어 졌다는 전설이 있다.



비단 이 여인내만의 이야기일까. 임진왜란 때 끌려간 수많은 우리 백성과 도공등의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런 아픔이 스며 있는 이곳 태종대 신선바위는 주말의 무이파로 인해 그때의 울분을 토하는 듯 파도 소리만 더욱 요란하게 울릴 뿐이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포동 6번출구를 나와 8번,30번, 88번을 이용하면 되고 부산역방면 9번 출구에서 88번 101번을 이용하면 태종대까지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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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진덕여왕 여행.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진덕여왕릉 찾아가기

 

경주시 현곡면오류리 등나무에서 500m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진덕왕릉 앞 주차장. 200m쯤 떨어진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2대 여왕에 오른 진덕왕릉을 찾아 보았다. 사촌언니인 선덕여왕과는 사촌지간으로 여왕의 위치에 오른 진덕여왕. 그의 왕릉은 한적한 변두리 안태봉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어 쓸쓸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돈다.잘 닦인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 닿은 진덕왕릉은 그 흔한 석상조차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삼국사기에는 왕을 사량부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왕릉은 흙을 높이 쌓아 올려 봉분을 둥글게 만들었고 높이는 4m 지름은 14m이다. 그리고 봉분의 둘레에 지대석을 돌려 안기둥을 만들었으며 그사이에 직사각형의 면석을 넣어고 그위에 눈썹돌을 올려 봉분의 아랫단을 보호할뿐 특별한 장식이 없는 수더분한 왕릉으로 안기둥 에는 12지신상을 돋을 새김하여 왕릉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1975년 보수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선덕여왕 말년에 발생했던 비담의 난을 김유신 김춘추와 함께 평정하며 즉위한 진덕여왕(647~654)은 비담과 그 일당 30명을 처형하고 백제의 계속된 침략에 맞서 김유신으로 하여금 국방을 튼튼하게 했던 신라 제28대 왕이다. 사촌 언니였던 선덕여왕과 마찬가지로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즉위 7년 만인 654년 사망, 김춘추(무열왕)에게 왕위가 이어졌지만 후일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진 업적은 높이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후사가 없었던 탓인지 왕릉의 분위기가 어쩐지 쓸쓸하다. 솔숲 사이로 부는 서늘한 바람을 벗 삼아 왕릉을 돌아보며 백제의 침범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나라와 불평등 동맹까지 맺어가며 고군분투했을 여왕의 고뇌와 삶에 대해 생각한다.


찾아가는 길: 부산 금정구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운임은 4000원, 소요 시간은 50분이다. 경주터미널 앞에서 현곡행 30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금장2리 정류장에서 하차, 오른쪽 오류리 방향으로 걷는다. 200m쯤 가면 오류리 등나무 앞을 지나고 이곳에서 진덕왕릉까지는 걸어서 15분쯤 걸린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내려 서라벌대로를 타고 가다 금성삼거리에서 시청 오릉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황남동주민자치센터 앞 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강변로를 따른다. 터미널과 동국대 앞을 지나 금장교 앞에서 좌회전, 1㎞쯤 가면 새로 뚫린 안강 포항 방면 68번 지방도를 타지 말고 굴다리 밑을 통과해 영천 방향으로 200m쯤 가면 우측에 진덕왕릉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회전, 1.5㎞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왕릉 앞 주차장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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