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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금오서원.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를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구미 선산읍의 금오서원을 찾았습니다. 

선산 비봉산과 형제봉 산행을 하고 나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47개의 서원은 제외되었는데 금오서원은 그중 한곳이라 해서 일부로 늦은 시간이지만 찾았습니다. 

아마 꼭 보아야겠다는 열망이 더 컸다 하겠습니다.

 금오서원을 보면서 왜!!!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야은 길재 선생을 배향한 선산 금오서원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야은 길재 선생을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전화:054-482-1435

선산 금오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




2014/11/14 - (경북여행/구미여행)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야은 길재를 추모 하는 정자.

2014/11/09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90도 각진 모서리를 깎아 섬세함이 돋보이는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2014/02/13 -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1/05/25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약사암.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금오산 약사암

2013/01/02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시 선산읍 수다사. 겨울 눈이 내려 흰 연꽂으로 피어난 연악산 수다사가 장관




이는 야은 길재 선생 때문이 아니었는지 싶습니다. 

고려 말에 고려의 충절을 상징하는 ‘삼은’이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 그리고 야은 길재입니다. 

그중에서 금오서원은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입니다. 야은 길재(1353년~1419년)는 고려말과 조선 초의 성리학자로 호는‘야은’ 또는‘금오산인’이며 시호는 ‘충절’입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2층 누각 출입문 읍청루







그는 고려가 망하자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어 세자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지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의를 굽히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길재는 낙향하여 선산의 금오산 아래에서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던 분입니다. 

김숙자 등 많은 문하가 그를 따랐으며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로 그의 학통은 이어졌습니다.





선산 금오서원 동·서재







야은은 고려가 망한 후에 옛 도읍지였던 개성(송도)을 찾아 읊은 ‘고려 유신 회고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조로 길재선생의 고려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1567년(명종 22년)에 선산의 유학자가 중심이 되어 선산부사 송기충에게 서원 건립을 건의하였습니다. 

이에 경상감사를 거쳐 조정에까지 알려져 재가를 얻어 1570년(선조3년)에 금오산 아래에 건립하였고 1575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에 모두 불탔습니다.



1602년에 금오서원은 현재의 장소인 선산읍 원리의 남산 아래에 옮겨 복원하였고 1609년 광해군 원년에 다시 중건했습니다. 

금오서원은 김종직과 정붕, 박영, 장현광을 추가하여 5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2층 누각인 읍청루, 강당인 정학당, 동·서재, 내삼문, 사당인 상현묘로 구성하여 전묘후학 양식을 따랐습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오현을 모신 사당인 상현묘









정학당은 강당으로 앞면 5칸에 옆면은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입니다. 

가운데 3칸 마루를 넣고 양쪽에 1칸의 온돌방을 앞쪽에는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5량 형식의 가구구조입니다. 읍청루는 2층 누각에 누하에 서원의 출입문인 문루를 두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 팔작기와지붕 건물로 겹처마입니다. 

사당인 상현묘는 앞면 3칸에 옆면 3칸이며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이고 5량가형식입니다. 

현재 선산 금오서원은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새롭게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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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여행. 오누이탑이라 불리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이번에도 국보급 문화재를 보고 왔습니다.

국보급이 아닌 국보입니다. 

역시 국보는 나라의 보물이라서 그런지 달라도 무엇이 다른가 봅니다. 

이번에 소개할 국보는 구미에 있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입니다. 

오층석탑에서는 가장 높고 웅장하며 크다고 합니다. 

처음 제가 탑 앞에 섰을 때도 탑의 웅장함에 움직일 수 없었으며 와!!!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전화:054-481-2736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국보 해평면낙산리삼층석탑제 130호



2008/07/10 - 경북여행/칠곡여행/구미여행)칠곡 금오동천~구미 금오산 산행.사람의 얼굴일까?.부처의 얼굴일까?-칠곡 금오산

2011/05/25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약사암.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금오산 약사암

2012/12/24 - (경북여행/구미여행)흰 연꽃이 아름답게 핀 백련봉의 백길바위가 장관. 연악산(기양산)~수선산 원점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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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0 - (경북여행/구미시여행)냉산(태조산)도리사. 신라 최초 사찰 도리사의 석탑이 처음보는 특이한 석탑 형태. 도리사



그러나 삼층석탑은 이정도 높이와 크기를 여러 개 봤습니다. 

경주의 고선사지삼층석탑,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등인데 죽장사 오층석탑도 수려함과 아름다움에서 이들 탑에 비해서 조금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국보 중 하나였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일명 오누이탑 또는 남매탑이라 부릅니다. 

웬 오누이 탑 하며 주위에 아무리 둘러봐도 석탑은 하나뿐이라 남매가 힘을 합쳐서 부처님의 탑을 만들었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은 누이가 만들었다면 오빠는 낙동강 건너 해평면의 낙산리 삼층석탑을 세웠다 합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두 개 내려옵니다. 

이야기의 출발은 같지만, 중반에서 전형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꼭 설화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엄마와 심청이에 나오는 뺑덕어미나 콩쥐·팥쥐에 나오는 계모와 같은 급의 나쁜 엄마가 등장합니다.





계모라고 다 나쁜 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엄마 상은 제가 보기에는 착한 엄마와 오누이의 친모로서 남매의 죽음을 거는 내기를 말리지는 않고 다부 부추기는 엄마입니다. 

각설하고 죽장사 오층석탑이 세워지게 된 유래를 보겠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에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남매의 힘겨루기로 세워졌다 합니다.

 








때는 아마 죽장사 오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을 보면 그 당시로 추정됩니다. 

오누이는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이들 남매는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괴력인 힘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놀기 삼아 오누이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여기서 죽장사오층석탑의 이야기가 갈라집니다.





먼저 우리 정서상 착한 엄마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남매를 앉혀놓고 지난번 스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스님이 이곳이 절터라고 했다며 어머니는 이곳에다 탑을 세우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남매는 서로 탑을 내가 세우겠다 하였고 어머니는 둘이 힘을 합해서 탑을 완성하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남매는 서로 탑을 세우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딸에게는 여기서 탑을 쌓고 아들은 낙동강 건너에 탑을 쌓는 것이 어떠냐 하며 제안하면서 먼저 쌓는 쪽이 이긴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먼저 쌓기를 원했지만, 딸의 탑 쌓기가 훨씬 빨랐습니다. 

그래서 딸의 탑 쌓기를 늦추기 위해서 궁리 끝에 딸에게 심부름도 시켰지만, 아들은 누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자꾸만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비장의 카드로 펄펄 끓는 팥죽을 끓여 딸에게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으면 아들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딸이 먼저 오층석탑을 완성했습니다.

아들도 누이가 이기자 탑 쌓기를 그만두었고 그게 오늘날 낙산리 삼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나이가 스무 살 즘 되었을 때 심한 충돌로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의 목숨을 빼앗는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 내기가 바로 아들은 50리 떨어진 금오산의 큰 돌을 가져오는 것이고 딸은 돌을 열 두자 높이로 탑을 쌓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먼저 끝내는 쪽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내기는 시작되었지만, 남매의 어머니는 딸이 이기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아들에게는 멀리 심부름을 보내는 등 방해 공작을 벌였습니다. 

다음날 해는 떠올랐고 딸은 마지막 돌을 탑의 꼭대기에 올리면서 탑을 완성했으나 아들은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낑낑대며 바위를 지고 오던 아들은 동네 어귀에서 누이가 완성한 탑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뒤로 나 자빠졌습니다.

 


아들은 죽는 것이 두려워 그 길로 바위를 버리고 냅다 도망쳤으며 그때 버린 바위가 아직도 동네 어귀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후자에 등장하는 남매의 어머니란 분도 참 대단합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뜯어말리지는 못할망정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정서상 맞지 않는 설화로 보이며 구미 설화집에 있는 내용입니다.





하여튼 국보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석탑 이야기이며 그때 딸이 쌓은 석탑이 오늘날 죽장사 오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현재 상륜부의 노반을 뺀 나머지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전체 높이는 약 10m에 오층석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규모입니다.



지대석은 18개의 장대석으로 탑을 지탱하게 했습니다. 

그 위에다 2단의 기단을 만들었습니다. 

아래층 기단은 14개의 넓은 돌로 구성했으며 그 위에 18개의 갑석을 올렸습니다. 

운주나 탱주는 보이지 않으며 그 대신 위층 기단은 각모서리 기둥인 운주가 2개이고 가운데 버팀 기둥인 탱주를 각각 3개씩 새겼습니다.

 






1층 몸돌 남쪽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감실이 있으며 문을 달았던 흔적인 작은 구멍이 남아있습니다. 

감실의 크기는 가로 66cm, 세로 107cm 크기로 최근 안치한 불상이 있습니다. 

각층의 몸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낮아지며 각모서리의 기둥도 없습니다. 

죽장사오층석탑은 전탑(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으로 추정하는데 옥개석(지붕돌)의 경사면이 전탑에서 볼 수 있는 층단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죽장사에서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국보인 오층석탑과 당간석 1개와 종형인 부도, 이곳이 옛 절터였음을 알리는 부재가 한쪽에 있습니다. 

죽장사는 최근에 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지만 제 눈에는 오직 죽장사 오층석탑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죽장사를 둘러보던 중 한쪽에 선산갑오동학농민군의 총지휘를 했던 한문출장군과 항일독립투사 한중석선생이 피신하고 은거했던 곳이라며 작은 기념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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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 금오산 산행. 가을 단풍이 환상이었던 도립공원 1호 금오산 산행

산좋고 물 맑아 도립공원 1호로 지정된 금오산은 구미시의 진산이다. 그러나 구미의 산이라 하지만 실제 금오산은 김천시, 칠곡군과 함께 경계선을 긋고 있는 3개 시군의 산으로 유독 구미 금오산으로 부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금오산 산행은 칠곡의 금강동천에서도 산행은 이루어지지만 금오산을 찾는 산행객 대부분이 구미 남통동에서 오르기 때문이다. 교통의 편리한 잇점도 있지만 금오산의 산세가 동고서저의 형태를 하고 있어 구미 쪽에서 보면 우락부락하며 잘 다듬어진 근육을 가진 남성미가 느껴지는 명산이다.

 


 

 

정상아래 성안에서 흘러내리는 대혜천의 절경은 산을 찾는 꾼들의 마음을 빼앗고도 남는다. 고려가 망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선산으로 낙향한 야은길재의 충절을 추모하여 세운 채미정과 도선국사가 수도하여 도를 깨쳤다는 도선굴, 폭포의 굉음이 금오산을 들썩인다는 명금폭포는 구미시민들은 큰 은혜를 배푸는 폭포라하여 대혜비폭이라 부르고 있다.

 

 

이곳은 소금강으로 불려질 정도로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대한민국 명승 제52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금오산 마애보살입상과 할아버지가 죽은 손자를 가슴에 묻으며 쌓은 공덕탑에서 숙연한 마음을 들 게하며 요즘 금오산의 새로운 볼거리가 되었다. 올해 금오산은 60년만에 현월봉을 개방하였다. 한국동란 뒤 1953년 미군이 점령을 한 후 긴 세월동안 금단의 땅이 된 금오산 정상은 올해 10월26일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고 하여 구미 대혜천폭포를 따라 금오산 산행을 하였다.

 

 

 

 

산행 경로를 보면은 금오산도립공원 탐방안내소~케이블카 승차장~금오동학 각자~대혜문~영흥정~해운사~도선굴~대혜폭포~성안갈림길~할딱고개~마애불 갈림길~오형돌탑~마애보살입상~법성사 갈림길~약사암~금오산 현월봉~헬기장~성안 갈림길~금오산성~칼다봉~대혜폭포 갈림길~연수원, 금오산 호텔 갈림길~채미정순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이다. 전체 산행 거리는 약 10.5㎞지만 거리에 비해 힘든 산행 코스다. 순수 산행 시간은 4시간이며 휴식시간을 포함한 산행시간은 6시간은 잡아야 한다.

 

 

먼저 산행을 위해 금오랜드입구를 지나 구미시 금오산도립공원 탐방안내소로 간다. 그 전에 망한 고려에 끝까지 신하의 예를 다한 야은 길재를 추모한 채미정을 둘러보자. 백이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며 살았다는 ‘채미’에서 따온 말로 조선 영조 44년(1768)에 세워진 정자이다 고려를 향한 충신의 핏빛을 닮아선지 붉은 단풍은 더욱 선명하였다.

 

 

 

붉은 빛이 토해내는 단풍을 고스란히 녹여 대혜골은 선홍색의 피로 물들였다. 계곡에 걸린 명금교를 건너면 본격적인 금오산 탐방로, 넓은 길에 큼직한 돌을 깔아 놓아 무릎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걷기가 영 불편하다. 왜 이런식으로 하였는지 개인적으로 원망스러운 길을 금오산의 대혜폭포까지 조성해두었다.

 

 

 

 

금오산성 사적비와 케이블카 승강장, 새천년을 기념하여 세운 돌탑을 지나면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단풍이 입구에서 빛을 받아 고운 자태를 뽐낸다. 이런 맛으로 가을 산행을 한다며 주위에서 탄성을 지른다. 나무계단 중간 쯤 오른쪽에 큰 바위가 나타난다 그 중간에 일필휘지의 금오동학(金烏洞壑) 글자를 볼 수 있다. 조선 중종때 명필가로 이름을 떨친 고산 황기로의 필체로 금오산이 깊고 그윽한 절경이라는 뜻이다. 하늘을 가린 키 큰 나무 사이로 역광의 붉은 단풍은 더욱 화려하며 그 속에 금오산 백운봉이 우뚝 하다.

 

 

금오산의 정상부에 계곡을 따라 이중으로 쌓은 금오산성은 고려 말에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근의 백성들이 금오산성 안으로 들어와 지켰고 조선 태종 10년(1401)에 대대적인 복구를 하여 왜란과 호란 때에도 금오산성은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최근에 복원된 대혜문을 지나면 쉼터와 168m의 암반층을 뚫어 만든 샘터 영흥정이 나오고 금오산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곧 대혜골에서 유일한 해운사다 잠깐 올라가면 해운사 뒤의 암벽이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위세며 바위 틈의 낭떨어지에 도선굴이 보인다.

 

 

 

다시 산길을 따라 오르면 도선굴 이정표 갈림길에서 도선굴 방향인 오른쪽 돌계단길을 오른다. 왼쪽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와 바위에 부딪히는 굉음에 귀가 멍멍하다. 먼저 도선굴을 보기위해 오른쪽 계단을 올라 깎아지른 벼랑을 에돌아간다.

 

 

반질반질한 암반이 매우 미끄럽고 천길 낭 떨어지에서 내려다 보는 위압감에 초심자는 부담이 간다. 곧 도선국사가 득도하였다는 자연굴 도선굴에 닿는다. 발아래 해운사가 보이며 멀리 구미시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이곳에서 마음을 비운다면 누구라도 도를 깨우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산행을 위해 대혜폭포로 되돌아 내려가면 폭포 밑으로 계단이 이어진다. 폭포 앞 전망 터에서 민낯의 명금폭포로 불리는 대혜폭포를 만날 수 있다. 높이 30m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대단한데 그 이유는 폭포 위 대혜담 연못에서 평일에는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주말에만 많은 물을 흘러 보내기 때문이다.

 

 

 

이곳부터는 탐방객과 산행객이 나누어진다. 금오산 정상은 대혜폭포 전망대에서 급경사로 설치된 나무 계단을 오른다. 금오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가파른 오르막 산길에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20분쯤이면 오른쪽 성안(1.8㎞) 방향 갈림길에서 할딱고개는 왼쪽.

 

 

 

 

아무리 강철심장이라도 이곳까지 올라오면 심장이 할딱할딱 요동을 친다는 뜻으로 보이며 왼쪽에 전망대가 있다. 고생 뒤에 보상이 따른다는 말처럼 할딱고개의 그 고생담을 잊게 하는 전망대다. 구미시는 물론이고 올라오면서 만난 도선굴과 해운사, 건너편 칼다봉 능선의 비경이 펼쳐진다.

 

 

 

 

 

 

 

지금부터 능선길을 오르지만 급경사 길이라 자신의 체력에 맞게 올라야 한다. 40분~50분 돌길과 돌계단을 번갈아 오르다 보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닿는다. 오른쪽은 정상(0.9km) 방향. 필자는 왼쪽 오형바위와 마애보살입상 방향이다.

 

 

 

 

백운봉을 비스듬히 돌아가는 왼쪽으로 깎아지른 암벽위에 전망대가 열리고 너덜길을 지나면 건너편 층암절벽에 걸린 돌탑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보인다. 돌탑이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 방향으로 돌면 먼저 떠난 손자의 공덕을 빌며 쌓은 오형돌탑에 도착한다.

 

 

 

구미를 두른 냉산, 천생산과 멀리 유학산,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등이 조망된다. 금오산 정상을 가기위해서 마애여래입상방향인 능선을 오른다. 능선을 넘어 바위 절벽을 돌아가면 큰 바위의 꺾여 진 암벽에 보물 제 490호 금오산 마애보살입상을 만난다.

 

 

 

 

 

 

독특한 형태의 입상을 뒤로하고 산사면을 돌면 법성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약사암은 오른쪽 방향. 초반 경사길를 오르면 길은 다시 편안하게 바뀌며 바위 전망대를 지나면 약사암 화장실과 요사체가 나온다. 벼랑안에 제비집처럼 자리한 약사암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높이로 보면 영남에서 지리산 법계사 다음으로 높은 곳에 있지 않나 싶다.

 

 

 

 

 

 

바위 틈의 계단을 오르면 약사암 일주문인 동국제일문을 지나고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는 정상 방향이 왼쪽으로 나 있다. 곧 옛 정상석을 지나면 새로운 금오산 현월봉 정상석과 만난다. 새 정상석 뒤로 전에 볼 수 없던 구미시가지의 모습과 약사암의 풍경을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막힘없는 조망에 그저 감탄사만 연발한다. 그래도 정상에는 이동통신사등 방송송신탑이 그대로 남아 있다. 칼다봉 방향 하산은 서쪽의 돌계단을 내려간다. 이정표에 성안·칼다봉 방향이며 하산 길은 큰 헬기장직전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급하게 내려간다.

 

 

 

 

 

 

 

 

급수탱크를 지나면 금오동천 갈림길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성안 방향. 잠시 뒤 성안 연못위 이정표 갈림길에 닿는다. 직진하면 금오정이 있는 쉼터에서 오른쪽 산길을 따라 능선을 탄다. 곳곳에 금오산성의 흔적을 만나며 산길은 능선의 산성을 따라 간다.

 

 

 

 

 

 

칼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시원한 조망을 열어준다. 금오산 현월봉과 대혜골, 대혜담등 가을빛에 젖어든 금오산의 진면목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암릉도 넘고 하면서 50분이면 칼다봉(715m) 정상. 이제는 하산길 뿐이다.

 

 

 

 

 

 

 

칼다봉을 내려서는 초반은 갑자기 고도를 낮추는지 추락하듯 내려간다. 이후 완만한 소나무 능선을 걷다보면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은 대혜폭포. 채미정을 가기위해서는 자연환경연수원 방향인 직진길. 바로 작은 봉우리를 올라선 뒤 만나는 이정표 갈림길에서 오른쪽 금오산 호텔 방향으로 하산한다. 호텔 뒤쪽에서 채미정 방향은 작은 계곡을 건너 산길을 내려가면 채미정 앞 대혜계곡을 건너고 채미정 입구에서 산행을 마친다.

 

 

 

 

 

 

 

 

 

 

 

 

구미 금오산은 원점회귀라 자가운전도 편하지만 대중교통인 열차도 편리하다.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열차가 오전 5시5분부터 20분~1시간 간격으로 있다. 구미역에서는 금오산도립공원으로 가는 12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하면 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 동대구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탄다. 구미IC에서 빠져나온 뒤 좌회전해 구미시청으로 가다가 이정표의 금오산 방향을 따라가면 된다. 내비게이션에 금오랜드 입력.

 

 

 

금오산 고도표

금오산 지형도

금오산 다음지도 캡쳐

 

 

2014/11/14 - (경북여행/구미여행)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야은 길재를 추모 하는 정자.

 

2014/11/09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90도 각진 모서리를 깎아 섬세함이 돋보이는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2014/11/08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대혜폭포. 수량이 많은 금오산 대혜폭포의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어요????

 

2014/11/07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 금오산 오형돌탑. 어느 할배의 가슴아픈 손자사랑이 만든 금오산 오형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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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90도 각진 모서리를 깎아 섬세함이 돋보이는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구미 금오산은 도립공원 1호입니다. 경북 구미시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습니다. 고려 충신인 야은 길재의 충설을 모신 채미정과 고려시대 때부터 군사적인 요충지로 쌓았다는 금오산성, 그리고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등이 있습니다.



금오산은 역사적인 깊이만큼 고려시대 유적이 많습니다. 자연보호 운동의 효시로 알려진 구미 금오산 대혜폭포는 27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울림이 금오산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우렁차다하여 명금폭포로도 구미에서는 부릅니다. 그 만큼 구미시민에게는 금오산을 민족의 영산인 구미의 백두산으로 할 만큼 신성시 합니다.



금오산의 8부 능선에는 어느 할배의 애틋한 손자사랑이 오형돌탑으로 만들어지게 된 슬픈 사연 만나고 그곳 언저리를 돌아서면 보물 제 490호 금오산 마애 보살상이 있습니다.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90호로 일찍부터 지정된 우리의 고려시대 문화재입니다.



금오산의 최고봉 현월봉을 바라보는 모습인 금오산 마애 보살 입상은 90도로 꺾인 자연 암벽 모서리를 깎아 조각한 특이한 보살상입니다. 주위에 편편한 넓은 바위도 많은데 왜 하필 각진 모서리에 보살상을 깎았는지 속세의 한사람으로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꺾인 모서리 좌우를 이용하여 조각을 하여 입체감을 잘 나타내어 꼭 살아 있는 보살상의 느낌이 들 정도로 정교한 모습입니다. 크기는 일반 불상보다 엄청 큰 5.5m로 보살상 전체 크기에 비해서 손이 두드러지게 크며 옷 주름, 연꽃대좌등을 세심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연꽃대좌 위 발의 묘사는 투박하며 마애보살입상 좌측 뒤로 광배와 반원형 연꽃대좌등을 처리한 것으로 보면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산 24-1 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014/11/09 -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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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대혜폭포. 수량이 많은 금오산 대혜폭포의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어요????

금오산은 경북 구미시와 칠곡군 그리고 김천시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습니다. 그러나 금오산은 단연 구미의 산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구미쪽 금오산이 빼어나 채미정, 도선굴, 대혜폭포, 금오산성,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약사암 등 금오산 관광객이 모두 찾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습니다. 


 

금오산 이전의 이름은 대본산 또는 고려 때에는 남숭산이라 불렀습니다. 그럼 금오산은 언제부터 불려지게 되었는지 그 유래를 보면 신라 땅에 처음 불교를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의 이야기입니다. 아도화상이 지금의 구미 태조산 도리사에 머물 때 태양에 산다는 황금까마귀 금오가 남숭산에 노을이 걸릴때 그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하였다합니다.


 

금오산에는 구미시민의 젖줄인 폭포가 있습니다. 대혜비폭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구미시민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퇴적물로 인해 농토는 기름지게 바꾸어 주며 매년 농사는 풍년이 듭니다. 구미 백성은 폭포가 큰은혜를 내려 준다는 뜻의 대혜 폭포로 부르게 되었고 또한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하여 명금폭포로도 불렀습니다.


 

실제 주말에 찾아보면 높이 27m 암벽을 뚫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는 힐링을 느낄 만큼 장관입니다. 지난주에 찾았던 대혜폭포에서 밝힐 수 없는 폭포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ㅎㅎ 여러번 찾았던 대혜폭포는 항상 일정한 물줄기를 보여 주었습니다.산이 높아 항상 계곡의 물이 풍부하게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평일에는 대혜폭포 위의 연못인 대혜지에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주말에 연못을 개방하여 폭포로 내려 보낸다고 합니다


                                                                                                                               

 대혜폭포는 경북 8경에 속하며 경치가 빼어나 구미의 소금강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곳은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7년 9월 이곳을 찾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폭포 주변에 깨진 병조각과 휴지 등이 어질러진 것을 보고 “자, 우리 청소부터 하지”하며 병조각과 휴지등을 주운데서 자연보호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찾은 대혜폭포 사진입니다. 폭포 주변에는 노란단풍이 들어 떨어지는 폭포수와 함께 너무 멋진 풍경을 보여 주었습니다. 주로 봄, 여름철에 찾았던 폭포인데 가을에 찾는 대혜폭포가 역시 멋졌습니다.


 

 

 

                                                                                                                                                                                                                                                                                                                                                                                                                                                                                   

                                                                                                                                 




2014/11/07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 금오산 오형돌탑. 어느 할배의 가슴아픈 손자사랑이 만든 금오산 오형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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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 금오산 오형돌탑. 어느 할배의 가슴아픈 손자사랑이 만든 오형돌탑.


구미 금오산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고려 충신 야은 길재를 추모하는 사당인 채미정과 금오산성의 대혜문, 그리고 산 아래 마을에 큰 은혜를 주었다는 대혜폭포와 도선국사가 도를 깨우쳤다는 도선굴, 보물제 490호인 금오산 마애불입상, 약사암, 금오동천과 폭포, 미륵바위등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금오산은 산행과 관광을 겸하여 많이 찾는 명소입니다.

 

 

 

지난주 금오산 산행을 하고 왔습니다. 60년만에 금오산 정상을 개방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금오산 정상개방보다 더 보고 싶었던게 오형돌탑입니다.  TV에서 우연히 보게된 SBS '세상에 이런일이' 프로에 오형 돌탑 사연이 소개가 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찾아 보고 싶었던 금오산 오형돌탑. 지금은 금오산 최고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결국 기회가 찾아와 오르게 된 오형돌탑은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애뜻한 사랑이 돌탑마다 한올한올 숨어 있습니다. 먼저 오형돌탑의 사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할아버지의 손주 형석군은 태어나면서 뇌병변 장애를 앓았습니다. 말은 물론 걸을 수도 없는 손주를 위해 할아버지는 자식을 대신하여 병간호를 시작 하였고 형석이가 10살이 되던 어느날 갑자기 합병증인 폐혈증이 찾아와 형석군은 할아버지 곁을 떠났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줌의 재로 변한 손주를 안고 낙동강에서 손주를 보내야 했습니다. 태어나면서 걷지도 말을 하지 못한 손주가 바람과 강물을 타고 마음 것 흘러 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향한 마음이 너무 커 손주가 있을 낙동강이 잘 보이는 금오산에 올라와 하나둘 돌을 올려 탑을 쌓았습니다. 돌탑이 완성될 때 마다 할아버지의 염원이 담긴 돌탑은 어느새 손주 형석이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형석군이 태어나 학교를 딱 하루 간 것이 항상 마음에 아팠습니다. 또 하나의 돌탑을 만들었습니다. 돌탑의 이름은 오형학당입니다. 형석이가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하늘나라에서 오형학당으로 등교하여 할아버지가 만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의 우주선도 세워져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든 우주선을 타고 형석이가 마음 것 하늘나라를 여행하고 금오산의 오형돌탑도 할아버지가 만든 우주선을 타고 내려 와 뛰어 놀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오형 돌탑 밑에 거북이 두마리 있습니다. 작은 돌을 하나하나 올려 거북이를 완성하였는데 일찍 할아버지 곁을 떠난 손주가 다음생애에는 거북이 처럼 장수 하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이 하트에 다 모여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형석군의 얼굴이 할아버지가 만든 하트 속에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바위 아래에는 수많은 형석군이 작은 돌이되어 밝게 웃는 모습으로 놓여 있습니다.

 

 

금오산은 악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르내림이 심해 산행을 자주하는 사람들도 엄청 힘들어 하는 곳입니다. 작은 돌이다 보니 주위에 돌을 찾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을 것 같고 매주 2~3일을 올라 돌탑을 쌓고 내려 가는 그 정성도 대단합니다. 

 

 

할아버지의 손자사랑이 아니라면 누구도 엄두을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인지 태풍에도 오형 돌탑은 무너지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남았다 합니다. 

 

 

 

금오산의 '오'자와 손주 형석군의 '형'자를 합하여 오형 돌탑이 된 사연입니다. 오형 돌탑을 보고 있노라니 하늘 높은 날 오형 돌탑 위로 해맑은 어린이가 방긋 웃는 듯 청명한 날씨 입니다.

◆구미 금오산 오형 돌탑  사진으로 만나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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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시여행)냉산(태조산)도리사. 신라 최초 사찰 도리사의 특이한 석탑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는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냉산(태조산)에 있습니다 주위에 소나무가 많아 송곡리로 불려질 정도로 소나무의 운치가 천년고찰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도리사의 유래를 보면은 신라 눌지왕때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래한 고구려 아도화상이 이곳에 처음으로 절을 세웠습니다.

 




아도화상이 불교 포교를 위해 경주 땅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냉산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멀리서 바라본 냉산 골짜기에 한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화려한 모습으로 피어 있어 아 곳에다 절을 세우고 도리사라 하였습니다. 신라 최초의 사찰 답게 이곳에는 현재 특이한 모양의 도리사 석탑이 보물 제47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벽돌을 쌓은 듯한 도리사 석탑입니다. 모양부터 아주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탑은 도리사 극락전 앞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 석탑입니다. 높이는 3.3m. 우리가 많이 보아 오던 석탑과는 그 형태를 달리하는 모습으로 모전석탑에 가깝습니다. 땅위에 10매의 길게 다듬은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탑의 기단 부분을 세웠습니다.


 



기단은 사면에 네모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의 각 면에 직사각형의 판석 6~7매를 병풍처럼 둘러 세웠고, 남면 중앙부에는 문짝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 부분은 3중으로 각층마다 작은 석재를 중첩하여 얽거나 짜서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벽돌탑인 모전 석탑의 형태입니다.


 



조각 양식과 돌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엽의 석탑으로 추정하며 석탑의 위부분은 노반위에 연꽃이 조각된 보주를 올려 둔 형태입니다. 국내의 모전 석탑은 재가 본것중에서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청도 불령사 모전석탑이 전부인데 그 만큼 귀한 석탑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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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정상에 백련꽃이 피었다하여 창건한 연화사가 전신


 부산에서 수다사를 가기위해서는 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타고 동대구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상행선인 서울방향으로 달린다 . 구미를 지나 김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또 바꾸어 타 선산인터체인지에서 내린다. 이곳에서도 68번 지방도를 타고 상주방면으로 달리는데 주위로는 유순한 모습을 한 5~600m의 낮은 산들이 솟아 있다. 무을면사무소를 지나 상송리가 수다사 들머리다.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입구의 연리지 쌍정자 전설 


천년고찰답게 수다사로 들어가는 도로가 넓게 조성이 되어 있어 찾기는 쉽다. 마을을 지나 수다사로 가다보면 저수지 옆에 큰 느티나무가 양쪽에 서 있다.  쌍정자로 불리는데 나무의 모습이 특이하다. 서로 몸이 붙어 있는 연리목으로 이나무 아래에서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 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나무에서 젊은 연인들이 찾아와 사랑의 약속을 하고 간다고 한다.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진감국사가 연화사로 창건 그 연혁


구미시와 상주시의 경계선상에 기양산으로 불리는 산이 있다. 그 산 정상 부근에 백길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있다. 이바위가 백련봉으로 불리는데 그기에는 이런 연유가 있다. 수다사연혁인 '수다사약전'의 기록을 보면 진감선사 혜소스님이 연악산 정상에 흰연꽃 한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830년 문성왕때에 이곳을 사찰을 짓고 연화사를 창건하였다. 흰연꽃은 백길바위인 백련봉을 두고하는 것 같다. 



 

 

그 후 976년에 화재로 불타고 명종15년인 1185년에 각원대사께서 중창을 하여 성암사로 개칭을 하였다. 그러나 1273년에 뜻하지 않게 수해로 인해 사찰은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한 어려운 과정을 넘겨오다 선조5년인 1572년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대사가 크게 중수를 하여 감로수를 의미하는 수다사로 고쳐 불렀다. 사명대사에 의해 수다사는 임진왜란때 승병 일만여명이 '의국법회'를 열정도로 중흥기를 맞다가 1684년인 숙종 10년에 수다사는 또다시 화재로 잿더미가 되고 대웅전과 시왕전 극락당등 현재의 건물만 남게 되었다.현재 직지사말사이다.



 

 


수다사를 찾아간 이날에도 전국은 한파에 많은 눈이 내렸다. 수다사 일주문을 들어서서 경내로 올라가니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이를 두고하는 말이랴. 바람소리만이 들리는 절마당에 난데 없이 개 짓는 소리가 나더니 어디선가 시커먼스한 놈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깜짝이야. 너 늑대야 멍멍이야.... 생기기는 험상궂게 생겼지만 달려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스님도 달려 안나오는 곳에 멍멍이가 달려 나오니 반갑기도하다. 사찰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명부전 경상북도유형뮨화재 139호 


명부전은 앞면3칸 옆면2칸 크기로 지붕의 옆 모습이 사람인(人)자 모양의 겹치마 맞배지붕으로 지어졌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위에만 있는 주심포형식으로 이 양식은 신라시대때 사용되었던 양식이며 원래의 규모는 더 큰 것으로 여겨진다. 내부에는 각원대사가 조성한 지장보살좌상등의 불상이 모서져 있다. 그리고 내부 벽에는 영조42년인 1771년에 그렸다는 '지옥도'는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다.


 

 명부전의 지장보살좌상과 불상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334호 


수다사 대웅전 내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개금불사로 인해 외형상 목조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소나무의 결을 찾을 수 있다. 


특징을 보면 DAUM문화유산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발의 두정(頭頂)에 약간의 육계의 흔적이 보이고, 가늘게 뜬 눈, 코, 입술 등의 조각 수법이 정제되어 있으며, 우너만한 상호와 짧은 양 귀, 목에 둘러진 삼도가 조화를 이루어 위엄이 있어 보인다. 법의는 통견으로 의무늬 조각이 세련되었으며, 무릎 부분이 높고 넓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수다사 사찰측에 의하면 원래 삼존상으로 조성 되었다한다. 구미시 선산읍 원각사에 있는 대세지보살상의 복장에서 수다사불상조성연기가 나왔다한다. 원래는 삼존상이었으나 양 협시는 외부로 반출되어 대세지보살상은 구미시 선산읍 원각사에 봉안하고, 관세음보살상은 대구서봉암에 옮겨 봉안되었다. 


조성연기의 기록을 보면 1650년 효종1년 9월에 연악산 수다사에서 아미타불과 두 협시 불상의 삼존상 조성했다는데 현재 수다사 대웅전에 모서져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그 당시 조성된 주존불로 여겨진다. 복장유물에 나왔던 조성연기의 종이질도 검사를 하니17세기에 만들어졌다한다.아미타불과 두 협시보살의 삼존상을 조성했다고 하는데, 이 불상이 바로 당시 조성된 주존불이었던 것이다.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수다사 석가모니 후불탱화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후불탱화는 1731년 제작된 것으로 그 당시 17세기 불화의 특징을 보여 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현재의 본존불 뒤에 걸린 탱화다. 후불탱화에 대해 '디지털구미문화대전'에서 잘 설명하여 그것을 인용하자면

 '수다사 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화는 주존 탱화로서, 폭 39~40㎝ 정도의 세마포(細麻布)를 7폭 연결하여 종이를 여러 겹으로 배접(褙接)한 바탕의 중앙 연화좌에 석가모니불이 항마촉지인으로 결가부좌하고 있다. 정수리로부터 상부로 퍼져나가는 광명은 석가모니의 설법이 시방 세계를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좌우에 8명의 보살과 사천왕이 자리 잡고 있는데, 보살은 석가모니불 좌대 양옆에 붉은 연화(蓮花)를 들고 서 있는 두 명의 보살을 제외하고는 모두 합장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화면 하단의 좌우에 있는 사천왕은 비파, 검, 용과 여의주, 창 등의 지물을 들고 있다.

보살상 위 좌우에는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이 양옆에 배치되어 있는데, 범천은 3목(目)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외 상단에는 다른 세계에서 온 부처,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을 포함한 10대 제자, 신장(神將) 들이 에워싸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 「수다사 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화」의 주제는 석가모니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법하던 영산회(靈山會)를 그린 것으로 판단된다. 이 탱화는 모사본이며 진품은 직지사에 보관하고 있다.

http://gumi.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1201942


 

 

 

 ☞(경북여행/구미여행)연악산 수다사. 수다사 건륭37년명 동종


수다사 건륭37년명 동종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건륭 37년 명문이 뚜렷하다, 즉 1772년(영조 48)에 조성된 것이며  '디지털 구미 문화대전'을 보면 '범종의 형태나 보살상과 유곽, 용뉴 등의 양식 및 수법은 다른 예와의 비교, 연구에 기준이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수다사 대웅전 내에 위치한다. 대웅전 불단 오른쪽 아래에 있으며, 사찰내에 있는 유일한 동종이다. 4구의 보살상과 유곽 사이에 대를 만들고 그 안에 명문을 새겼다. 명문은 9곳에 1행씩 모두 9행이 새겨졌는데, 그 내용은 ‘건륭삼십칠년임진 삼월일 화주근징장승통광능 경상우도 선산 서령 연악산 수다사 중종개조 중이백근야 삼강(乾隆三十七年壬辰三月日 化主僅澄將僧統廣能 慶尙右道 善山 西嶺 淵岳山 水多寺 中鍾改造 重二百斤也 三綱)’이다.'

http://gumi.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1201942


 

 

또하나의 볼거리는 이곳의 300년된 배롱나무는 봄이면 화려한 백일홍으로 장관을 이룬다. 수다사를 방문하였을때는 눈이 와 있었는데 기양산(연악산)~수선사 산행을 할때 폭설이 내려 하산 후 수다사는 그야말로 설국을 보여 주었다. 그때 다시 담은 사진을 함께 올렸다. 수다사는 겨울의 설국도 아름답지만 단풍이 드는 가을철에는 붉은 색으로 치장을 하여 더욱 화려한 수다사가 된다. 



 

 

 

 

 

 

 

 

 

 

 

 

흰연꽃을 의미하는 백길바위, 백련봉이라 부른다.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 연악산 수다사 교통편


부산에서 구미를 거쳐 선산읍으로 가서 수다사 방향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미 가는 버스는 오전 830, 940분에 있다구미터미널에서는 20번 버스를 타고 선산터미널로 가서 21, 21-1, 121번 버스를 갈아타고'상송수다사입구정류장에 내려 수다사까지 걸어 들어가면 된다구미에서 부산 행 버스는 오후 435, 740, 850(막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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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송리마을을 지나면 만나는 쌍정자

 

☞(경북여행/구미여행) 구미, 상주 명산 기양산~수선산 산행 개요


연악산(기양산)과 수선산은 경북 상주시 청리면과 낙동면 그리고 구미시 무을면에 두 시를 경계하며 솟아 있다. 백두대간 능선의 국수봉에서 뻗어 내려온 능선이 여남재에서 잠시 숨을 돌린후 솟구친 산이 연악산 즉 기양산이다. 기양선 옆으로 수선산과 연결된다. 돌티재를 지나면 북으로 상주의 명산인 갑장산과 연결된다. 기양산은 두 지역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먼저 구미에서는 수정산 천마산 연악산으로 상수에서는 기양산 마공리에서는 조양산으로 부른다니 한산을 이리 부르는 것도 찾기가 힘들다.






 

 

☞(경북여행/구미여행) 구미, 상주 명산 기양산~수선산의 유래는....


수선산의 유래를 보면은 연산군시절에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이곳 수선산 골짜기로 많은 선비들이 숨어 들어와 은둔하며 지냈다는 뜻이라 한다. 그럼 연악산은 어떠한가. 구미시청 홈페이지를 보면 연악산과 수다사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있다. ()은 용연(龍淵)이란 뜻이요, ()은 옛날에 연화악(蓮花岳)이다. 연화(淵花)는 구품연대(九品蓮臺)를 의미한 것이니 구품은 극락국이요, 산은 연악으로 상연하연(上蓮下蓮)의 뜻이라 한다.

또한 상송리는 상송연이다. 상연(上蓮)은 천증수(天增壽)라 하여 대선사(大禪師)께서 말씀하시되, 상송정(上松亭)이 상연(上蓮)이므로 상송리라 칭한다.

수다사(水多寺)란 많은 중생의 청정법계도량(淸淨法界道場)이라는 뜻이니 여기서의 "()"는 관음(觀音), 감로법수(甘露法水)이다. 감로(甘露)는 관음의 모든 중생의 고통과 징악한 병고와 위급할 때에의 구세수(救世水) 즉 감로수를 의미한다.

수다사 약지(水多寺略誌)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5(지금으로부터 1144여년 전)에 진감국사(眞鑑國師)께서 연악산 상봉인 미봉(彌峰)에 백연(白蓮)이 한송이 피어있는 것을 보시고 이곳에 절을 창건하시어 연화사(淵華寺)라 이름지었다.“ 현재에도 산행중에 진감국사께서 백길바위에 흰연꽃이 핀 것을 보고 연화사를 창건하였다는 바위를 볼 수 있고 사명대사가 수도하였다는 수불암등 유서 깊은 숨은 산이다.


 

 수다사 달마대사상에서 산행시작


 

 

 

 수다사 뒤 임도 끝에 있는 이정표

 

☞(경북여행/구미여행) 구미, 상주 명산 기양산~수선산 산행 경로...


기양산~수선산 산행 경로를 보자. 수다사~연화교~무릉풍물유래비~연악산 이정표~절터~연악산 능선 상송리 갈림길(이정표)~헬기장~백길바위 갈림길~백길바위(~다시 갈림길)~바윗길·우회로 갈림길(수불암)~기양산 서봉~기양산 정상~마공리·수선산 갈림길~벤치~수선산 정상~삼거리(임도갈림길이정표)~전망대~전망대·이정표를 지나 임도에 내려선 뒤 수다사로 돌아온다. 전체 산행거리는 10.5정도로 순수 산행시간은 4시간30분이며 휴식을 포함하면 5시간30분 안팎 걸린다. 요즘은 겨울철이라 이곳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 그래서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리므로 산행시간에 유의를 하여야 한다.




 

 

 가파른 바위능선으로 로프가 묶여 있다.

 

 능선의 상송리 갈림길 이정표

 

☞(경북여행/구미여행) 구미, 상주 명산 기양산~수선산 산행은 구미 수다사 원점산행


산행은 수다사 일주문 지나 다리를 건넌 뒤 절 주차장에 달마대사 조각상이 있다. 왼쪽 연화교를 건너가면 산행이 시작된다. 100m 정도 걸어가면 '무릉풍물유래비'가 서 있다. 유래비 오른쪽으로 산길이 열려있다.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수다사가 오른쪽으로 보이고 길은 계곡을 왼쪽으로 두고 이어진다. 옛 임도 길을 따라 걷는다. 10분가량 가면 길이 끊어지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을 잠시 거슬러 오르면 왼쪽으로 다시 너른 길이 나타난다. 폐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이정표(연악산 정상 1.6)가 서 있다. 연악산 정상 방향의 왼쪽 가파른 사면으로 올라간다.



 

 

 

 

백길바위갈림길



 백련이 피었다는 백길바위로 백련봉으로 불린다.

 

 

  

☞(경북여행/구미여행) 구미, 상주 명산 기양산~수선산 산행 개요


등산인들이 뜸해서인지 아직은 그리 산길이 뚜렷하지는 않은 것 같다. 쓰러진 소나무를 지나 오르면 옛 절터로 평탄하며 길이 오른쪽으로 꺾인다. 100m가량 가면 등산로는 왼쪽으로 꺾이며 능선을 타고 오른다. 급경사로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두었다. 이곳에서 능선의 상송리 갈림길까지 올라가는 길이 이번 코스에서 가장 어려운 구간이다. 평소에는 어려움이 없이 오를 수 있지만 겨울철 빙판과 적설로 인해 로프를 매어둔 바윗길이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 또 한 번 바윗길에 로프를 잡고 가파른 사면을 올라야 한다. 나무계단에 이어 다시 로프를 잡고 오르면 곧 이정표가 선 능선 삼거리다. 왼쪽은 상송리(1.7)로 내려가는 길이고 연악산 정상 방향은 오른쪽이다.




 송암지. 겨울철에는 위험할 것 같아 우회하였다.

 

 

 

 연악산과 기양산으로 불리는 정상. 정상석이 두개 서 있다.

 

 

 

☞(경북여행/구미여행) 구미, 상주 명산 기양산~수선산 백길바위 전설...


완만한 능선을 따라 가면 오래된 헬기장을 지나고 5분 뒷면 수다사의 전신인 연화사를 창건하게 만든 백길바위 갈림길과 만난다. 이정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잠시 들어가면 흰눈을 덮어 쓴 백길바위를 볼 수 있다. 정상은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5~6분 급경사를 오르면 바위 봉우리를 바로 오르는 길과 우회하는 길이 갈라진다. 두길다 연악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어느 쪽으로 가도 되지만 사명대사가 수행했다는 송암지(수불암)는 바윗길이라 겨울철 눈이 덮여 있을 때는 위험하니 우회하는 것이 좋다.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잠시 뒤 두 길은 서로 만난다. 다시 로프를 잡고 안부로 내려선 후 다시 완만한 능선을 오르면 기양산 서봉이다. 정상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이 선답자의 리본이 몇장 붙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마공리 마을 회관으로 내려가는 산길이 열려 있다. 다시 4~5분 능선을 걸으면 연악산(기양산) 정상이다. 서쪽으로는 무곡리·마공리 방향, 남동쪽으로는 수다사 들어서기 전 눈에 덮인 상송리마을과 논밭이 내려다보인다.




 

 

 

 

 

 마공리 마을회관 갈림길 



 

 

 

 

☞(경북여행/구미여행) 구미, 상주 명산 기양산~수선산. 마공리 마을회관 갈림길


수선산 방향은 이정표의 마을회관(4.2) 쪽인 오른쪽 내리막길이다. 가야할 능선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완만한 길을 가다가 680m봉을 지난 뒤 로프를 잡고 내려서는 급경사 길이다. 안부를 지나 잠시 올라가면 이정표가 선 삼거리다. 여기서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4.2)로 내려가게 된다. 수선산 정상(1.2) 가는 길은 오른쪽이다. 로프를 잡고 급경사를 내려서면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능선이 깊은데는 무릎이상까지 빠진다. 20분 정도 가면 야트막하고 봉우리에 나무벤치 두 개가 설치돼 있다. 15분 정도면 잡풀이 무성한 수선산 정상이다. 정상석은 따로 없고 이정표가 대신하고 있다. 왼쪽은 갑장산 방향으로 돌티고개(3.1km)로 내려가고 수다사 원점회귀를 위해서는 오른쪽 임도(1.1) 방향으로 내려간다. 10분가량 완만한 길을 내려가다가 안부를 지나 잠시 올라서면 갈림길인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은 이실마을 방향이고 수다사는 오른쪽 임도 방향으로 꺾어 능선을 타고 간다.



 

 

 

 

 

 수선산 정상

 

 

 

 삼거리 

 

 

 

☞(경북여행/구미여행) 구미, 상주 명산 기양산~수선산 산행 개요


잠시 후 오른쪽으로 수다사가 내려다보이는 바위 전망대다. 10분 정도 작은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면 전면에 툭 튀어나온 바위가 나타나고 그 위에 이정표(임도 0.6)가 서 있다.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기막힌 전망대가 펼쳐진다. 과연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선비들이 숨어 들어와 은둔하였을 것 같은 그런 곳이다. 바위 위에 서면 막힘 없이 주변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수다사에서 장자골·이실마을로 연결되는 임도가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정표에서 10m 정도 가면 하산길이 갈라진다. 왼쪽 길도 임도에 닿지만 수다사까지 빠른 하산길은 정면 방향의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15분 정도면 임도에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 간다. 100m 정도 내려가 임도가 오른쪽으로 휘는 지점에서 정면으로 내려서면 수다사로 바로 내려가는 산길이 있다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폭설로 인해 확인을 하지 못하고 임도를 따라 내려왔다. 30분이면 수다사 마당에 내려선다.




 632봉 전망대

 

 

 

 수다사 임도로 내려선다

 

 

 

 

 

 하산한 뒤의 수다사 모습 올라갈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수다사일주문 

 

☞(경북여행/구미여행) 구미, 상주 명산 기양산~수선산 구미 수다사 교통편


부산에서 구미를 거쳐 선산읍으로 가서 수다사 방향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미 가는 버스는 오전 830, 940분에 있다. 구미터미널에서는 20번 버스를 타고 선산터미널로 가서 21, 21-1, 121번 버스를 갈아타고 '상송수다사입구' 정류장에 내려 수다사까지 걸어 들어가면 된다. 구미에서 부산 행 버스는 오후 435, 740, 850(막차)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동대구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으로 옮겨 탄다. 김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바꿔탄 뒤 선산IC에서 내린다. 여기서 68번 도로를 타고 상주 방면으로 가다가 무을면사무소를 지나가면 곧 수다사 들머리다. 수다사 못미처 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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