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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기장여행)고산 윤선도가 6년동안 유배 생활을 했던 기장 죽성리 황학대 여행, 기장 황학대 여행


이번에 기장 여행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찾은곳이 황학대입니다.





고산 윤선도 6년 유배지 기장 죽성리 황학대 주소: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30-34




2020/05/08 - (부산기장여행)정이품송 부럽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수관인 기장 죽성리 해송 여행, 기장 죽성리 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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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대도 여러번 찾았던 곳으로 

최근에 황학대를 찾았을 때는 

아무런 시설물이 없었고 

그저 황학대 해설 안내판만 있었습니다.






이번 황학대 여행에서는 

여러 시설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나무덱 계단과 고산 윤선도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그의 시비입니다.

 







고산 윤선도는 1616년 당시 

집권세력이 국사를 전횡하는 것을 보고 

‘병진소“를 올렸고 이게 발단이 되어 

윤선도는 함경도 경원땅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1년 정도 있다가 

기장으로 이배되었습니다. 





고산 윤선도는 기장으로 이배되면서 

고산 윤선도는 기장에서 

6년동안 생활했습니다.






기장에 유배하면서 

그는 이곳 죽성에 자주 나왔습니다. 





백사장 건너편에 있는 작은 섬인 송도를 

신선이 학을 타고 하늘로 올랐다는 

중국 양자강에 있는 황학루와 비견된다고 하여 

황학대라 이름하고 자주 찾아 마음을 달랬다고 합니다.

 




유배 생활을 하면서 그는 마을 뒤 봉대산에 올라 

약초를 캐어 병마에 시달리는 

마을 주민을 보살펴 한양에서 온 

의원님으로 불렸다고합니다.

 


황학대 전경이며  

정자는 황학정입니다.



황학대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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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기장여행)여름 휴가 부산 필수 여행지 죽성 포구와 황학대 여행. 죽성 포구와 황학대


부산광역시 기장군 죽성리의 죽성포구(두호 포구)와 황학대 여행을 했습니다. 

갈맷길을 걸으면서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코스에 두호 포구와 황학대가 있습니다.





기장 죽성포구(두호포구) 주소: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30-43




2016/04/27 - (부산여행/기장여행)국립부산과학관. 다양한 과학 체험으로 기계치를 면하게 해주었던 첨단과학 전시장 국립부산과학관 여행. 국립부산과학관

2016/04/04 - (부산여행/기장여행)국립부산과학관. 국립부산과학관 특별전 장영실. 미국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장영실이 있다. 국립부산과학관 장영실

2016/02/18 - (부산여행/기장여행)조선시대 교육기관 기장향교.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 기장향교를 여행하다. 기장향교

2015/07/07 - (부산맛집/기장맛집)대변맛집, 동부산 관광단지 맛집 진주횟집. 전통방식 짚불곰장어도 일품인 활어 전문 진주 횟집에서 양념곰장어, 멸치찌개도 최고였습니다.

2011/10/08 - (부산여행/기장여행)기장 죽성 해송 왜성. 멋스러운 소나무가 어울리는 바닷가 기장 해송 국수당과 왜군이 쌓았다는 죽성왜성.


 


두호 포구는 죽성 포구라고도 불립니다. 

포구는 그만큼 한적하며 작은마을의 포구답게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두호 포구 한쪽 황학대 바위 아래에 해녀상이 세워진 것을 보면 기장 죽성리 일원에는 해녀가 아직도 많이 있는가 봅니다.



두호포구·죽성포구


이날 실제로 두호마을 앞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분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리고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멍게 해삼 등을 판매하는 곳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황학대는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입니다. 

윤선도는 1616년(광해군 8년)에 성균관 유생으로 있으면서 이이첨, 유희분, 박승종 등 집권세력을 규탄하는 ‘병진소’를 올렸다가 모함을 받았습니다.

 


그 이듬해 함경도 경원에 유배되었으며 1년 만에 기장으로 내려와 6년 동안 유배를 하다가 다시 해남으로 떠났습니다.

 

죽성포구·두호포구해녀상

윤선도가 기장에 머물면서 죽성마을 앞의 작은 바위봉우리를 황학대라 불렀습니다. 

또한, 마을 뒤 봉대산의 약초로 마을 사람의 병을 치료했는데 마을에서는 ‘서울에서 온 의원님’으로  불렀습니다.

 

황학대


황학대의 유래는 옛날 신선이 내려와 황학을 불러 타고 올라갔다는 중국 양쯔강 하류의 황학루의 고사에서 따왔다 합니다.

 


황학루는 시선으로 칭송하는 이백(이태백), 전원시인 도연명 등이 찾았을 정도로 빼어난 경치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고산은 기장 황학대의 경치도 그에 못지않을 정도로 보았을 만큼 아름다웠나 봅니다.


기장 죽성리 죽성 포구와 황학대는 기장여행에서 꼭 가보아야 할 필수여행지이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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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도 이곳을 보았을까.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보길도를 찾아가는 방법은 한반도의 남쪽끝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가면 된다. 필자도 예송리를 찾아가기 위해 이곳 땅끝마을에서 배를 이용하여 보길도로 들어갔다.  보길도는 고산윤선도의 섬이라할 정도로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 세연정, 동천석실등 제주도로 가기위한 노정에서 풍랑을 피해 잠시 들렀던 이곳 보길도에 마음이 빼앗겨 제주행을 멈추고 들어와 부연동이라 이름짓고 머물게 되는데 그만큼 보길도는 고산윤선도의 마음까지도 붙잡아 둘 정도로 매력과 함께 아름다운 섬이다. 






보길도를 가기위해 땅끝마을 선척장에서.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예의를 숭상한다는 예송리. 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그중 한곳이 보길도의 동남쪽에 자리한  예송리이다. "마을 주민이 모두 예의를 숭상하고 인륜도덕을 함양한다"는 뜻으로 마을 주변의 소나무들도 머리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고 있다하여 예송리로 부른다. 그만큼 마을 전체가 순박하며 조용한 어촌마을 풍경이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예송리 마을앞의 방풍림이 천연기념물 40호,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예송리 마을앞에도 300여년전에 마을 주민이 힘을 합쳐 방풍림을 조성하였다. 남쪽에서 올라오던 태풍의 길목으로  마을은 항상 태풍의 피해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이 만든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 4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울울창창한 성록수림 덕분에 마을은 태풍의 피해를 줄일수 있었고 그 덕분인지 물고기들의 서식지가 되어 마을은 살기좋은 동네가 되었다








예송리의 상록수림은 방풍림과 어부림을 겸하고 있다. 방풍림의 길이만도 약 800m이며  폭은 30m쯤 되는 반달 형태이다. 주종은 수종은 다양하며 그중 곰솔이 상당수 자라고 있다하며 가장 큰 곰솔나무를 당산나무로 정하여 마을의 안녕과 기원을 빌고 있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예송리의 볼거리는 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예송리의 볼거리는 상록수림과 또 한가지는 반달모양으로 이어지는 해수욕장이다. 길이만도 1km가 넘는 긴 해수욕장으로 이곳은 모래가 아닌 자갈밭 해수욕장이다. 일반 해수욕장에서는 들을 수 없는 파도소리가 이곳 해수욕장에서는 음악소리 처럼 들린다. 밀려들어온 바닷물이 빠져 나갈때 내는 "자르륵 자르륵~~~"하는 그 소리가 밤새 들여오는 예송리 해수욕장, 보길도와 함께 이곳에서 1박을 권해 봅니다. 

 


예송리상록수림과 해수욕장.




예송리해수욕장,




예송리해수욕장.




예송리상록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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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보길도의 유래는

 

보길도 고산윤선도와 함께 하는 보길도는 섬의 생김새가 쟁기에 끼우는 보습의 모양이라 그 어원인 '보고래'에서 보길도가 유래하였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다 태풍을 피해 찾아간 보길도.

 

윤선도는 병자호란으로 고향의 해남에서 그의 가솔을 거느리고 뱃길을 인조가 피신을 해 있다는 강화도로 가는 도중 인조가 항복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여 다시 뱃머리를 해남으로 돌려 그길로 제주도로 향한다.
고산윤선도가 처음 이곳 보길도에 들어오게 된것도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기 위해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태풍으로 잠시 몸을 피한것이 인연이 되었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보길도에서 윤선도가 처음지었던 낙서재 살림집

 

그길로 보길도에 눌러 앉게 되는데 그는 보길도의 격자봉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니  꽃망울을 터트리 직전의 연꽃이라 부용동이라 짓고 격자봉의 혈맥이 세번 꺽여 내려오는 곳에 처음으로 낙서재를 짓는다. 1637년인 인조 15년에 들어와 그가 가장 먼저 지었던 건물로 1650년 그가 이곳 낙서재에서 돌아가실때 까지 생활하였던 집이다.  

 

 

 

그는 이곳에다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뜻의 낙서재 현판을 걸고 조상의 위패를 모시며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무민당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의 낙서재와 곡수당은 모두 최근에 복원된 건물로 그 이전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그 흔적만이 남아 세월속에 묻혀 있었다.

 

 

 

 

보길도에는 그의 기인같은 행동이 많이 남겨져 있는데 그는 작은 바위 한개라도 허투로 보지 않고 많은 이름을 남겼다. 지금의 낙서재나 곡수당 그리고 동천석실은 그때의 흔적과 정취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이곳 툇마루에 앉아 둥근 달을 바라 보았을 것이고 저쪽 바위에 올라 하늘의 별을 세어 보았다고 생각하니 어느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부용동에 있는 모든 고산 윤선도 유적지는 '보길윤선도원림'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곡수당과 낙서재에 비해 동천석실은 고산 윤선도 선생이 독서도 하면서 부용동과 격자봉을 바라보며 주자학 연구에 혼신을 다한곳이 아닐까. 낙서재에서 바라보는 동천석실은 그야말로 바위에 위태롭게 걸린 제비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곡수당과 낙서재를 둘러 보고 이곳 입구로 찾아가니 차로는 갈 수가 없었다. 일행중에 연로하신분이 걸을 수 없는 처지라  젊은 우리들만 동천석실을 올라가자고 주장을 할 수도 없어 입구에서 돌아서 순천을 가기 위해 부두로 나왔다. 그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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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수당으러 건너편 산중턱의 바위가 동천석실이 있는 곳이다.

 

 

동천석실의 모습.

 

 

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동와와서와로 동쪽과 서족에 잠깐 휴식을 위해 지은 움막.

 

 

 

 

보길윤선도원림 동천석실

 

 

동천석실 입구 . 이곳에서 걸어야 한다.

 

 



 

 

고산 윤선도 홈페이지:http://yungosan.hosting.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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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유적지)고산윤선도를 알기 위하여 반드시 봐야 하는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해남을 대표하는 인물 윤선도.



전남 해남하면 떠 오르는 인물이 있다. 해남하면 윤선도 윤선도하면 해남으로 상충되는 해남를 대표하는 분이 고산 윤선도다. 고산 윤선도 또한 부산 기장과도 인연이 남다른 분이다. 기장의 황학대에서 7년간의 유배 생활을 한 흔적들이 그곳에서 옅볼 수 있다. 이곳에서 해남으로 다시 유배생활을 떠났다는 이야기...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유적지)고산윤선도를 알기 위하여 반드시 봐야 하는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팔방미인 고산 윤선도.


조선조의 문신이요 정치가요 시조시인으로 다방면으로 일천하신 고산윤선도 선생의 유적지가 이곳 두륜산 도립공원 인근인 해남읍 백연동인 연동리에 남아 있다. 600년 전통의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종택인 녹우당을 덕음산이 감싸고 있는 형태로 전국 최고의 명당터 중 한곳이라 한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유적지)고산윤선도를 알기 위하여 반드시 봐야 하는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해남윤시 종택 녹우당.


현재 이곳 고산유적지인 녹우당 앞에는 오랜역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은행나무와 비자림이 남아 있고 사랑채인 녹우당과 윤씨 고가들이 현재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먼저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을 보자.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유적지)고산윤선도를 알기 위하여 반드시 봐야 하는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윤두사 윤덕희 윤용 삼대의 뛰어난 그림 실력. 



해남윤씨 어초은공파의 600년 역사의 유물이 잘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윤선도 뿐만아닌 그와 윤씨가의 이름을 드날린 우리나라 풍속화의 시원인 공재 윤두서 낙서 윤덕희 청고 윤용등 다방면으로 뛰어난 윤선도와 그의 후손들이 모두 예술가의 피를 물려 받아선지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분들이 즐비한 해남윤씨가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유적지)고산윤선도를 알기 위하여 반드시 봐야 하는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팔방미인 고산 윤선도.



고산윤선도의 삶을 보자. 그의 인생의 대부분은 귀양과 은거로 점철된다. 남인의 거두로서 26세에 진사시에 급제하고 30세에 이이첨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7년간의 유배생활을 하였다. 42세에 별시에 급제를 하고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되었다. 그 후 해남금쇄동과 보길도에서 은거하며 ‘산중신곡’ ‘어부사시사'의 저서를 남겼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유적지)고산윤선도를 알기 위하여 반드시 봐야 하는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팔방미인 고산 윤선도의 손자 윤두서.



윤두서는 26세에 진사과에 급제한 뒤 정계에 나아가지 않고 그는 학문에 힘을 쏟아 경학 시문학 병법 천문 음악 공예 수학 기하학 의학 복서 지리등 다방면으로 해박한 지식을 가졌고 특히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윤두서 자화상은 국보 제24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는 인물화와 말을 즐겨 그렸고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풍속화를 많이 남겨 풍속화의 시원으로 불리고 있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유적지)고산윤선도를 알기 위하여 반드시 봐야 하는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고산 윤선도의 아들 윤덕희.



윤덕희(1685~1766) 벼슬은 정릉현감을 지냈고 아버지 윤두서의 영향을 받아 그도 그림에 남다르게 뛰어났다. 특히 인물과 산수인물 말등을 잘그렸다. '도담절경도' '미인감도' '월아송하관폭도'등이 남아 있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유적지)고산윤선도를 알기 위하여 반드시 봐야 하는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윤두서의 손자 윤용.



운용(1708-1740)도 28세에 진사시에 올랐고 그도 할아버지 윤두서와 아버지 윤덕희의 피를 이어 받아선지 그림과 글씨에 뛰어났다. 그의 재능을 하늘도 시샘하였는  33세의 일기로 사망을 하였다. 특히 화조 나비 잠자리등의 조총도에서는 남들이 따를 수 없는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살펴 꼭 같은 그림을 그렸다는 정약용의 평가가 전한다. 그의 작품은 '나물캐는 여인'등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윤두서 윤덕희 윤용의 3대에 걸친 그림을 감상하세요


























국보제 240호인 윤두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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