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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산행)삼릉숲·신선암마애불·칠불암·열암곡 마애불·천룡사지삼층석탑, 남산 문화재 답사 산행.

 

필자의 고향마을 뒤 산인 경주 남산을 찾았습니다. 필자는 경주 남산을 찾았을 때는 항상 금오봉(金鰲峰·467.9고위봉(495정상과 동·서남산의 둘레길에 주로 산행을 맞추었습니다그러다 보니 산행 중에 만나는 문화재에만 만족했습니다이번에 다시 남산을 찾았습니다. 남산의 대표급 문화재를 순례하는 산행을 하려고 말입니다.

 

 

경주 남산 삼릉숲 주소:경북 경주시 배동산 73-1

2021.10.29 - (경북경주여행)아기 장수와 아사달, 아사녀 전설 경주 아기봉산과 영지 둘레길을 걷다.

 

(경북경주여행)아기 장수와 아사달, 아사녀 전설 경주 아기봉산과 영지 둘레길을 걷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아기 장수와 아사달, 아사녀 전설 경주 아기봉산과 영지 둘레길을 걷다. 필자가 주로 장거리 산행을 많이 하다 보니 괜찮은 산행지인데 코스가 짧아 외면했던 곳이 여러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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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의 국보와 세 곳의 보물 등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필자에게는 항상 가슴 뛰는 일입니다.

삼릉에는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세 왕릉과 석조여래좌상 마애관음보살상 선각육존불 석조여래좌상 마애석가여래좌상이칠불암은 마애불상군과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있습니다,

열암곡은 석불좌상과 마애불상이천룡사지에는 삼층석탑이 그것입니다더 높아진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남산의 문화재에서 신라 천년의 숨결을 느껴보고 왔습니다.

경주  서남산주차장을 출발해 삼릉~삼릉계 석조여래좌상~상선암~바둑바위~고위봉 정상~남산 순환임도~용장사지 갈림길~삼화령 연꽃대좌~통일전 주차장·천룡사지 칠불암 갈림길~이영재~고위봉·칠불암 갈림길~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칠불암 마애불상군~고위봉·칠불암 갈림길~새갓골 주차장·고위봉 갈림길~봉수대~열암곡 석불좌상·열암곡 마애불상~새갓골 공원 지킴 터~백운암 갈림길~백운암·천룡사지 갈림길~천룡사~천룡사지(삼층석탑)~와룡사~용장3리 경로당을 지나  용장3(틈수골) 정류장에 도착합니다산행거리는 등산 안내도 기준 약 13로 이며, 6시간 안팎이 걸립니다.

이번 산행은 서남산주차장을 나와 도로를 건너 직진해 삼릉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해도 되지만오른쪽 도로를 따라 100   가면 삼릉 버스 정류장을 지나 나오는 삼릉 표석에서 왼쪽으로 꺾어 솔향기 그윽한 소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삼릉을 둘러싼 소나무가 왕릉을 향해 예를 표하듯 소나무 가지를 늘어뜨린 모습이 장관입니다

세 개의 왕릉에서 유래된 삼릉을 지나 삼릉탐방지원센터에서 오는 길과 만나  금오봉(2.3상선암(1.3)으로 직진합니다.

 

 

 

불두가 없는 석불좌상에서 마애관음보살상을 보고 옵니다.

마애관음보살상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

 

2021.02.25 - (경북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북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주에서 야외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 용장사지 두 번째 여행은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입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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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을 돌아 다시 산길에서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을 만난 뒤 되돌아 나옵니다.

 

 

완만하던 산길은 된비알 돌계단을 올라 상선암을 통과하면 6 크기의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지만 현재 낙석 위험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망산 단석산 벽도산 오봉산 선도산 구미산 옥녀봉 송화산과 경주 시내가 펼쳐지는 금오봉 전망대인 바둑바위를 지납니다.

신라 경문왕 때 음악가인 옥보고가 정자를 짓고 가야금을 타며 즐겼다는 금송정 터를 내려서면 낙석으로 볼 수 없었던 마애석가여래좌상 전망대가 나옵니다.

 

남산 최고의 절경에 자리한 마애석가여래좌상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아름답습니다.

 

상사바위

높이 15 길이 25 크기의 상사바위를 지나 서남산주차장에서 문화재 관람을 하며 천천히 오르면  2시간 30분이면 금오봉 정상에 도착합니다. 

 

2020.10.09 - (경북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경북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경북여행/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는 벌써 지나 10월에 들어서면서는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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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이 없어 정상석 왼쪽 고위봉(4.6통일전 주차장(4.2)으로 내려갑니다오른쪽은 약수계곡 마애입불상 방향.

4분이면  남산 순환임도와 만나 오른쪽 통일전 주차장(3.8)용장사지(0.9)로 향합니다왼쪽은 포석정 주차장 방향.

다시 4분이면 갈림길인데  통일전 주차장·틈수골입구로 임도를 직진합니다오른쪽 용장사지·용장마을로 하산하는 산길은 탐방로 유실로 잠정 폐쇄됐습니다

 

 

삼화령 연꽃대좌 안내판을 지나면 남쪽으로 조망이 열립니다왼쪽 백운재에서 시계 방향으로 묵장산 고위봉 태봉 열반재 황발봉과 멀리 영남알프스가 펼쳐집니다.

연꽃대좌

 

 

 

임도 왼쪽 연꽃대좌와 오른쪽 비석대좌를 둘러    8분이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천룡사지(3.4칠불암(1.8)으로 임도를 벗어납니다. 직진은 통일전 주차장 방향.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지나 안부 삼거리인 이영재에서  봉화대 능선을 따라 고위봉(2.3)으로 직진합니다. 393 봉을 지나면서 조망이 열리는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립니다.

 

 

 

2020.09.23 - (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배리삼존불

 

(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

(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배리삼존불 방가방가 야외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 배리삼존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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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에서 30분이면 용장계지곡삼층석탑 갈림길에 도착해 칠불암(0.55)으로 직진합니다.

다시 5분이면 삼거리봉에 올라섭니다왼쪽 칠불암(0.35)을 갔다 옵니다

 

 100 가면 오른쪽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보고 나와 칠불암을 갑니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남산에서 하나뿐인 국보인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두 개의 바위가 마주 보고 섰는데 큰 바위에는 삼존불을 모셨으며작은 바위 네 면에 불상을 조각했습니다.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가 왼쪽 고위봉(1.0)으로 갑니다곧 나오는 고위봉 갈림길에서 새갓골 주차장(1.95)으로 능선을 직진합니다.

 

 

 

봉수대를 오른쪽으로 돌아 새갓골 주차장과 열암곡 석불좌상 이정표를 따라 갑니다.

 

 

2019.09.26 -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서라벌인 경주에는 없다고 생각한 암각화가 있어요? 경주석장동암각화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서라벌인 경주에는 없다고 생각한 암각화가 있어요? 경주석장동암각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서라벌인 경주에도 암각화가, 여자 중요부분 모양도 새겨진 경주석장동암각화 경주 석장동의 금장대가는길에 석장동 암각화가 있습니다. 형산강 상류인 경주 서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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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이면 열암곡 석불좌상과 2007년 발견돼 ‘신발견 마애불로 불리는 열암곡 마애불상을 지납니다

완만한 길을 10여분 내려가면 주차장이 있는 새갓골 공원 지킴 터에 도착합니다

오른쪽 침식곡 석불좌상(1.5방향으로 차단기를 지나 콘크리트 임도를 올라갑니다왼쪽은 노곡2리 버스 정류장 방향

 

침식곡 석불좌상백운암 입구를 지나 약 35분이면 고위봉 아래 능선 삼거리에 도착합니다왼쪽 천룡사지로 내려갑니다.

 

천룡사 입구에서 직진하면 천룡사지 삼거리입니다.  왼쪽 틈수골 입구(1.5천룡사지로 꺾습니다.

 

100 쯤 가면 고위봉을 배경으로 선 삼층석탑이 반깁니다하산은 삼층석탑 바로 직전의 임시탐방로를 내려갑니다. 두 곳의 다리와 와룡사 용장 3리 경로당을 차례로 지나 삼층석탑에서 40분이면 용장3(틈수골)정류장에 도착합니다.

 

 

 

 

※경주 남산 금오산 삼릉 교통편입니다.

이번 산행은 대중교통도 편리하며 승용차 이용도 괜찮습니다. 승용차 이용 때는 경북 경주시 포석로 647 서남산주차장을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설정하면 됩니다. 주차비 소형 2000. 대중교통은 부산 노포동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500505506507508번 시내버스로 환승합니다.

동부터미널에서 경주행은 첫차 오전 620분부터 막차 밤 9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심야 버스는 밤 10시에 있습니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이용하거나 경주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형산강 옆 터미널정류장에서 500(오전 66206507308850950), 505(오전 550750), 507(오전 625820), 508(오전 6108109)이 출발하며, 삼릉정류장에서 내립니다. 산행 뒤 용장3(틈수골) 정류장에서 터미널로 나가는 버스는 이조 정류장에서 오후 3340444055205556106407시 등에 출발해 잠시 뒤 도착합니다. 승용차를 이용했다면 삼릉정류장에서 내리면 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경주터미널로 바로 가면 됩니다. 평일과 주말 버스 시간은 조금 변동이 있습니다. 경주터미널에서 부산행은 첫차 오전 7시부터 밤 104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경주 남산 맛집 한 곳을 소개한다.

농가 맛집으로 알려진 배동 서남산(삼릉)주차장 인근의 수정소반(054-744-1851)입니다. 청정 채소와 청정 발효 재료로 만든 담백한 음식에서 고향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느끼는 힐링 밥상입니다. 경주 남산 문화재 답사 산행과 잘 어울리는 음식점이란 평가입니다. 수정소반 정식 114000(2인 이상)

 

2018.10.06 - (경북여행/경주여행)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장항리 사지 서 오층석탑

 

(경북여행/경주여행)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장항리 사지 서 오층석탑

(경북여행/경주여행)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장항리 사지 서 오층석탑 경주 문화재 여행을 하면서 항상 찾아보아야지 하며 마음만 먹고 있었던 장항리 절터를 이번에 남산 산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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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영남알프스 9봉 경주 문복산에서 봄을 맞다. 경주 문복산

 

동부 경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산행지는

1000m 봉우리가 9개나 솟아

산군을 이룬 영남알프스입니다.

 

영남알프스 경주 문복산 대현3리 복지회관:경북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2442

2021.02.25 - (경북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북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주에서 야외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 용장사지 두 번째 여행은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입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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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산지도

트랭글캡쳐

최고봉 가지산(1241m)을 시작으로

운문산(1195m) 천황산(1189m) 신불산(1159m)

재약산(1119m) 영축산(1081m) 간월산(1069m)

고헌산(1033m) 문복산(文福山1014m)을 말합니다.

대륙산악회 회원인 성산, 곽수웅씨 등이

1971년 일본 북알프스 등반을 마치고 돌아와

재약산 산행을 하면서 영남알프스로 명명했습니다.

영남알프스는 울산 울주군, 경남 양산시 밀양시,

경북 경주시 청도군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어

근교산 동호인에게는 친숙한 산행지입니다.

 

2021.02.22 - (경주남산여행)야외박물관 경주 남산 용장사지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용장사지 용장시곡석조여래좌상

 

(경주남산여행)야외박물관 경주 남산 용장사지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용장사지 용장시곡석조

(경주여행/남산여행)야외박물관 경주 남산 용장사지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용장사지 용장시곡석조여래좌상 방가방가 이번 포스팅은 야외박물관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 여행입니다. 경주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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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영남알프스의 9봉은 물론이거니와

9봉을 연결하는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각각 소개한 바 있습니다.

지난 해 부터 영남알프스는

산악 동호인에게 더욱 인기 있는

산행지로 떠올랐습니다.

이는 울산시 울주군에서

영남알프스 9봉 완등 이벤트를 진행하는데다

코로나19로 장거리 산행을

나서지 못하는 등산동호인이

가까우면서도 고산인 영남알프스를 찾기 때문입니다.

이에 필자는

한동안 뜸했던

영남알프스 9봉을

다시 찾아 갑니다.

막내봉인 문복산을 시작으로 해

마무리는 최고봉인

가지산에서 마무리 합니다.

 

 

필자는 영남알프스 9위봉 문복산을

최단 코스인 중리에서 드린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을 찾아갑니다.

문복산은 경주와 청도를 경계하며

두 시·군에서 오르는 산길이

다양하게 열려 있습니다,

청도 삼계리에서 오르는 산길은

원광법사가 화랑도에게 ‘세속오계’를 전했다는

가슬갑사터와 개살피계곡, 수리덤계곡, 운문령 등이 있다면,

경주 중리에서 오르는 산길은

문복산의 상징인 드린바위(코끼리바위)가 있습니다.

드린바위는 암벽의 높이가 130m이며

폭은 100m에 이르는 돌출 암봉입니다.

옛날에 이 바위에는 석이버섯이 많이 났는데

청년이 묶어 놓은 밧줄에 의지해

버섯을 따고 있었습니다.

 

2021.02.18 -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여행/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방가방가 이번에는 경주 배동 삼릉에 있는 여러 석불중에서 가장 찾기 힘든데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경주 남산입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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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바위틈에서 큰 지네가 나와 밧줄을 끊는 것을

고헌산 쪽에 있던 사람이 보고는 고함을 질러

그 청년은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문복산은 문복이란 노인이 입산해

평생을 수도한데서 유래했습니다.

이번 산행은 대현리 중리버스정류장~대현3리 쉼터~대현3리복지회관~

드린바위(1.3㎞), 문복산(1.7㎞)·드린바위(1.5㎞) 갈림길~기도터~드린바위 정상~

주능선 갈림길~문복산 정상~서담골봉 갈림길~드린바위(0.5㎞),대현3리 쉼터(1.2㎞) 갈림길~

드린바위(1.3㎞),문복산(1.7㎞)·드린바위(1.5㎞) 갈림길~대현3리 복지회관~

중리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입니다.

산행거리는 약 4.8㎞이며, 3시간30분 안팎이 걸립니다.

경북 경주시 산내면 중리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진행하는 방향에

문복산 등산로 안내판을 보고

왼쪽 콘크리트 길을 갑니다.

참나무 등 활엽수가 하늘을 가리는 대현3리 쉼터에

정자와 영남알프스 포토죤,

문복산 안내판 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문복산(2.2㎞), 드린바위(2.0㎞)이정표를 보며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갑니다.

마을 뒤로 가야할 드린바위가 우뚝하며

그 뒤 문복산 정상이 붕긋하게 솟은 게

그만큼 산길이 가팔라 보입니다.

대현3리 복지회관을 지나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습니다.

곧 문복산 등산로입구가 나옵니다.

야자매트 길을 4분 오르면 갈림길에서

취재팀은 왼쪽 드린바위(1.3㎞)로 갑니다.

오른쪽 문복산(1.7㎞), 드린바위(1.5㎞) 방향은

취재팀의 하산길입니다.

날이 풀리면서 얼어붙었던 계곡에는

물소리가 들리며 나무에는 봄물이 올라

연두색 옷을 갈아입는 중입니다.

 

2021.02.17 - (경주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 남산의 서쪽에는 배동 삼릉이 있습니다. 삼릉숲이라고도 하는데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왕릉을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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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길은 무덤을 지나면서 오솔길로 바뀝니다.

원목계단이 놓인 된비알 길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정면에 육중한 덩치의 드린바위가

도깨비 뿔같이 솟았습니다.

문복산 정상(1.58㎞) 이정표를 지나면

너덜을 지나갑니다.

삼거리에서 약 40분이면

드림 바위 아래 갈림길에서

드림바위를 오른쪽으로 돌아갑니다.

7분이면 석축이 있는 기도터 갈림길에서

왼쪽 문복산(0.5㎞), 드린바위(0.2㎞) 이정표를 지나

바위에 매달린 로프길 대신

오른쪽 안전한 철계단을 오릅니다.

 

 

드린바위 안부에서 왼쪽 바위를 넘으면

드린바위 꼭대기입니다.

돌무덤에 누군가 ‘드린봉’이라 적어 놓았습니다.

이곳의 조망은 세상사 시름을

한방에 날려버리게 할 만큼 시원합니다.

오른쪽 펑퍼짐한 고개는

울산시 울주에서 경주 산내를 연결하는

‘큰 고개’을 뜻하는 대현이며(大峴),

그 뒤에 바구니를 엎어 놓은 듯한 봉우리는

영남알프스 8봉인 낙동정맥의 고헌산입니다.

시계반대방향으로 삼국 통일의 염원을 이룬

김유신 기도굴이 있는 백운산,

밀양·태화·형산강이 갈라진다는 삼강봉을 지나

단석산까지 능선이 이어집니다.

문복산 정상은 안부 갈림길로 되돌아가 직진합니다.

바위를 타고 넘는 가파른 산길은 곳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취재팀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2021.01.27 - (경북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경북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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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바위에서 25분이면 주능선 갈림길에 섭니다.

문복산은 왼쪽으로 100m만 가면 정상입니다.

정상석이 있으며 남쪽 운문령 방향에

신불산과 간월산이 멀리 보입니다.

서쪽은 마당바위를 경유하는 삼계리(4㎞) 방향.

필자는 북쪽 서담골봉(2.2㎞) 방향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필자가 올라왔던

‘드린바위, 대현3리 쉼터’ 갈림길에서 직진해

문복산 정상에서 5분이면

이정표 없는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왼쪽은 서담골봉 방향이며

중리는 직진하는 뚜렷한 길을 내려갑니다.

철쭉군락지인 가파른 길을 내려갑니다.

 

 

 

전망대에서 아기 코끼리 같다는 드린바위를 보고는

삼거리에서 약 15분이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대현3리 쉼터는 직진합니다. 오른쪽은 드린바위 방향.

산길은 쏟아지듯

내려갑니다.

드린바위 갈림길에서 30분이면

앞서 거쳤던 삼거리에서 왼쪽 대현3리 쉼터(0.5㎞) 방향으로 꺾어

왔던 길을 되짚어 15분이면 중리버스정류장에 도착합니다.

영남알프스 9봉 경주 문복산 대중교통편

이번 산행의 대중교통은 버스 환승과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아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합니다. 문복산 등산로 입구인 경주 산내면 대현리로 가는 대중교통은 경주보다는 언양이 편합니다. 부산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20분부터 밤 10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45분 소요. 언양임시시외버스터미널 안에서 355번 경주 산내행 버스는 오전에는 10시40분 한 차례뿐이며, 중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립니다.

산행 후 언양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오후 1시, 5시10분(막차) 산내에서 출발해 10~15분 후 중리 정류장을 지나갑니다. 승객이 없으면 정차하지 않고 통과할 수 있으니 미리 가서 기다립니다. 언양임시터미널에서 부산행 버스는 밤 10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경북 경주시 산내면 대현중리길 24 대현3리복지회관을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해 찾아간 뒤 마을 앞 대현3리 쉼터에 주차하면 됩니다.

 

2021.01.25 - (경북경주여행)피톤치드 언택트 힐링 여행지 건천편백숲 여행. 경주 건천 편백나무 숲

 

(경북경주여행)피톤치드 언택트 힐링 여행지 건천편백숲 여행. 경주 건천 편백나무 숲

(경북여행/경주여행)피톤치드 언택트 힐링 여행지 건천편백숲. 경주 건천 편백나무 숲 방가방가 아직 코르나19는 종식 될 생각이 없는 듯 계속 감염자가 늘고 있습니다. 경주 건천편백숲내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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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남산을 지대석으로 삼아 쌓은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 여행. 

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

 

방가방가

이번 포스팅은

경주 남산 용상사지 3개의 보물 증에서

마지막으로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을 포스팅하겠습니다.

2021/02/25 - (경북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북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주에서 야외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 용장사지 두 번째 여행은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입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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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에는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과

경주 남산 용장사지석불좌상이

용장사 옛터 동쪽 능선에 남아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지 주소: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 1-1번지

 

경주 남산 용장사하면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분인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런 기록을 보면

용장사는 조선 초기 이후까지는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수 있습니다.

현재 용장사터는

조릿대가 무성한데

석축 등이 남아 있어

절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입니다.

자연 암반을 하단의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다 윗 층 기단을 올렸습니다.

2021/02/18 -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여행/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방가방가 이번에는 경주 배동 삼릉에 있는 여러 석불중에서 가장 찾기 힘든데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경주 남산입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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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용상사지 삼층석탑은

경주 남산이 받치고

있다고도 이야를 합니다. 

이 때문에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은

경주 남산의 석탑을 대표한다 하겠습니다.

윗 층 기단의 네모서리에

우주와 가운데 탱주를 조각 했으며

상대갑석은 2장의 판석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탑신은

지붕돌과 몸돌을

따로 쌓았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부터는 그 크기가

급격히 줄어 듭니다.

 

2021/01/27 - (경북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경북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경북여행/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삼국유사 지기삼사(知幾三事)편에 서기 636년 신라 27대 선덕여왕 5년, 동장군이 엄습한 겨울인데도 경주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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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돌은

4단의 층급받침에

직선의 처마,

들려진 귀퉁이는

날렵하고  경쾌합니다.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나뒹굴던 부재를

1922년에 복원했으며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은

1963년 1월

보물 제186호에 지정됐습니다.

 

2021/02/18 -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여행/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방가방가 이번에는 경주 배동 삼릉에 있는 여러 석불중에서 가장 찾기 힘든데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경주 남산입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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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주에서 야외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 용장사지 두 번째 여행은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입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2021/02/22 - (경주남산여행)야외박물관 경주 남산 용장사지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용장사지 용장시곡석조여래좌상

 

(경주남산여행)야외박물관 경주 남산 용장사지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용장사지 용장시곡석조

(경주여행/남산여행)야외박물관 경주 남산 용장사지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용장사지 용장시곡석조여래좌상 방가방가 이번 포스팅은 야외박물관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 여행입니다. 경주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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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는

조선 초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했던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용장사지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용장사곡삼층석탑,

용장사지마애불은

모두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용장사지 주위에

많은 부재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옛 용장사는 아주 큰 규모로 보여 집니다.

2021/02/18 -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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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옆

암벽면에

용장사지마애불이

은은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마애불은 높이는 162㎝이며

자연 암벽에 조각된 것으로

균형 잡힌 신체에

단정한 이목구비가 돋보입니다.

얼굴은 풍만하며

귀는 눈에서 목까지

크고 길게 표현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나선형이며

목에는 3개의 선으로 표현된

삼도가 뚜렷하게 남았습니다.

마애불의 왼쪽 어깨 바깥 부분에

글씨가 새겨 있으나 닳아

판독하기 어렵습니다.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은

보물 제913호에 지정됐다.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

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2021/02/18 -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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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남산여행)야외박물관 경주 남산 용장사지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용장사지 용장시곡석조여래좌상

 

방가방가

이번 포스팅은

야외박물관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 여행입니다.

 

경주 남산의 99골 중에서

내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냈던 용장에서

용장골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용장사지입니다.

2021/02/18 -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여행/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방가방가 이번에는 경주 배동 삼릉에 있는 여러 석불중에서 가장 찾기 힘든데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경주 남산입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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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는

남산에서 유명한 페사지중

한곳입니다.

신라 경덕왕 때 고승이셨던 대현 스님과

조선 초 생육신 중 한분인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 용장사에서 금오신화를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용장사자지는

조선 초기 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이후에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산 금오봉 산비탈에 터를 잡은 용장사지는

지금은 조릿대로 뒤 덮혀

당시의 흔적을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금오봉 능선을 따라 들어선

용장사곡 삼층석탑,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용장사지마애불과 절터의 흔적을 보여주는

기와조각과 석탑의 부재가 남아

용장사지의 규모를 침작할수 있습니다.

2021/02/17 - (경주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 남산의 서쪽에는 배동 삼릉이 있습니다. 삼릉숲이라고도 하는데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왕릉을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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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주 남산 용장사지 여행에서는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보물 제 187호)을 만나보겠습니다.

석불을 받치는 대좌는

크고 작은 원형에 두툼한 게

경주 황남빵을 닮았습니다. ㅇㅇ

이를 층층이 쌓아 올린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대좌 위에 앉은 불상은

불두는 유실됐습니다.

2021/01/27 - (경북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경북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경북여행/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삼국유사 지기삼사(知幾三事)편에 서기 636년 신라 27대 선덕여왕 5년, 동장군이 엄습한 겨울인데도 경주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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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어깨 위에 가사와

옷을 고정하는 끈과

매듭이 새겨져 있습니다.

옷자락은 무릎 아래로 흘러내려

대좌를 덮고 있으며, 

손모양은 일반적인 모습과는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2021/01/26 -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방가방가 이번 여행지는 경주 서쪽에 있는 오봉산 정상의 주사암 입니다. 경주 오봉산 주사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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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왼 무릎위에 올렸다면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하여

다리위에 두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 옆

조금 높은 곳에서 담았습니다. 

정교한 모습을 한 석불좌상과

가사는 멀리에서도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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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방가방가

이번에는 경주 배동 삼릉에 있는

여러 석불중에서 가장 찾기 힘든데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경주 남산입곡석불두를 소개합니다.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삼릉1길 25 뒷쪽

 

2021/02/17 - (경주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 남산의 서쪽에는 배동 삼릉이 있습니다. 삼릉숲이라고도 하는데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왕릉을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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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은 불상의 좌대,

하반신, 몸통과 불두는

각각 깨어져

현재 따로 놓였지만

그 모습만은 아주 정교합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4호에

지정 됐습니다.

경주 남산입곡석불두는

남산 정상인 금오봉 서쪽

능선 끝에 자리했습니다.

왼쪽에 삼릉계곡인 냉골이,

오른쪽은 약수계곡이며

그 사이 삿갓골 입구에 자리했는데

경애왕릉 인근에 있습니다.

현재 불두와 몸통 좌대를

남북으로 나란히 놓였지만

좌대는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2021/01/27 - (경북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경북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경북여행/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삼국유사 지기삼사(知幾三事)편에 서기 636년 신라 27대 선덕여왕 5년, 동장군이 엄습한 겨울인데도 경주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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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둥그스럼하고

잘생긴 얼굴에 약간은 근엄한 표정을 가진

아주 미남형 얼굴입니다.

 

코 부분은 파손되었는데

혹시 아들을 얻으려는 미신에

누가 떼어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머리는 나선형 머리카락을 표현했으며

그위에 큼지막한

상투모양을 조각했습니다.

2021/01/26 -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방가방가 이번 여행지는 경주 서쪽에 있는 오봉산 정상의 주사암 입니다. 경주 오봉산 주사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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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큼지막하며

목에는 3개의 선인

삼도가 있습니다.

옷은 양어깨에 걸쳤으며

양다리에 타원형으로

드리운 것 같습니다.

좌대는 여러 부분으로 파괴되었으며

불상을 세웠던 사각홈이 있습니다. 

옆면은 아래위로

연꽃을 큼지막하게

장식했습니다.

전체적인 조각양식을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의 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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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 남산의 서쪽에는

배동 삼릉이 있습니다.

삼릉숲이라고도 하는데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왕릉을 둘러싸고

소나무가 일대 장관입니다.

삼릉(사적 제219호)과 이웃한 곳에는

신라 55대 경애왕릉(사적 제222회)이 있는데

이번 경주여행은 삼릉과 삼릉숲,

경애왕릉을 소개합니다.

경주 삼릉숲 주소:경북 경주시 배동 산 73-1

2021/01/26 -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방가방가 이번 여행지는 경주 서쪽에 있는 오봉산 정상의 주사암 입니다. 경주 오봉산 주사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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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은 동·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는데서 유래합니다.

아래쪽부터 보면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입니다.

모두 박씨 성을 가진

무덤이라 합니다.

2021/01/25 - (경북경주여행)피톤치드 언택트 힐링 여행지 건천편백숲 여행. 경주 건천 편백나무 숲

 

(경북경주여행)피톤치드 언택트 힐링 여행지 건천편백숲 여행. 경주 건천 편백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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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은 모두 원형이며

흙을 쌓아 올렸습니다.

삼릉의 가운데 무덤인

신덕왕릉은 1953년과 1963년에

2차례나 도굴을 당했다고 합니다.

내부는 횡혈식석실묘이며

동·서 내부 벽면에

붉은색, 황색, 백색, 군청색, 검정색이

칠해진 흔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당시 신라의 무덤에서는

벽화가 그려지지 않았다는데

신덕왕릉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2020/10/09 - (경북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경북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경북여행/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는 벌써 지나 10월에 들어서면서는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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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숲을 지나

남쪽의 석교를 건너면

경애왕릉이 나옵니다.

경애왕(재위 924~927)은

통일신라시대 경명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자신의 대에서 신라가 망하게 되는

비운의 왕입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재위 4년에 포석정에서

연회를 열던 중

후백제 견훤의 습격으로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다 합니다.

후백제군이 아무리 신출귀몰하게 왔다지만

왕경까지 들키지 않고 온다는 것은

참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2020/09/23 - (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배리삼존불

 

(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

(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배리삼존불 방가방가 야외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 배리삼존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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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남산 해목령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해목령 가까이에 있는 일성왕릉을

경애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합니다.

경주 삼릉은 일대는

왕릉도 왕릉이지만,

왕릉을 에워 싼

소나무 숲이 알려져 있습니다.

뒤틀리며 올라간 소나무는

많은 사진애호가를 불러 모우는

출사지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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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가방가

이번 여행지는 경주 서쪽에 있는 

오봉산 정상의 주사암 입니다. 





경주 오봉산 주사암 주소:경북 경주시 서면 도계서오길 251-355

경주 오봉산 주사암 전화:054-751-2816


2021/01/25 - (경북경주여행)피톤치드 언택트 힐링 여행지 건천편백숲 여행. 경주 건천 편백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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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암은 ㅎㅎ 산 중턱도 아니고 

주사암 정상에 있는 암자입니다. 



신라시대 사찰로 인근에 지맥석으로 불리는 마당바위와 

선덕여왕의 3가지 예지력중 하나인 여근곡이 

오봉산 동북쪽 산비탈에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께서 창건하고는 

처음에는 주암사라 했습니다.

 


부산성을 쌓을 때 의상대사는 

부산성 안에다 이 주사암을 두면 

신라는 망하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 했는데 

그만 주사암을 비껴 산성을 쌓았습니다.



그 예언 때문인지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연회를 열다가 쳐들어 온 백제에 멸망하여 

그게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붉은 모래' 

즉 주사암에 관한 설화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주사암의 북쪽 바위굴에서

난승이 맹령하게 수도정진 중이었습니다.

 


난승은 여인 알기를 돌 같이 생각하는지라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도 눈길을 주지 않으며 

수도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큰소리 쳤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귀신이 

노승의 마음을 시험하려고 

신라 궁궐에서 궁녀를 잡아와 

노승 옆에 두기를 반복했습니다.



밤마다 궁녀가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니 

신라왕의 귀에까지 그 말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궁녀에게 차초지종을 들은 임금은 

괘씸하게 생각하고는 붉은 모래가 든 주머니를 주면서 

오늘밤에도 귀신이 잡아가면 동굴 주위에다 

붉은 모래를 뿌려두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날 밤에도 궁녀가 없어진 것을 안 

임금은 병력을 풀어 궁녀를 찾았습니다. 

오봉산 정상의 동굴 입구에서 

붉은 모래를 찾았다는 급보를 받은 임금은 

 


당장 병력을 풀어 노승을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노승의 주변에 갑자기 신병이 나타나 

그를 보호하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난승이 부처님이 보호하는 분이라 생각되어 

궁궐에 모셔와 나라의 스승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주사암은 노승이 수도했던 동굴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다 절을 세웠다고 합니다.

 


주사암 옆에 수백명이 앉아 쉴수 있는 

마당바위가 있습니다.



마당바위는 지맥석으로 불리는데 

여기에는 김유신에 관한 이야기가 전합니다. 



김유신이 마당바위에서 보리로 막걸리를 빚어 

사들과 함께나누어 마셨다고 합니다. 

마당바위의 조망이 끝내줍니다. ㅎㅎ

여기서 드라마 선덕여왕과 동이가 촬영되었습니다.

해발 685m에 자리한 주사암은 

자동차를 이용하여 갈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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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피톤치드 언택트 힐링 여행지 건천편백숲. 경주 건천 편백나무 숲


방가방가

아직 코르나19는 종식 될 생각이 없는 듯 

계속 감염자가 늘고 있습니다. 





경주 건천편백숲내음길 주소: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 166-1


2020/09/23 - (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배리삼존불




그래서 경주 건천의 

편백숲을 찾아가는 

언택트 여행을 

소개합니다.



언택트 말 그대로 

비대면 여행지입니다. ㅎㅎ 



조용하면서 휴식 시설이 잘되어 있는 

경주 건천편백숲은

피톤치드가 어마무시하게 나오는 

힐링 여행지입니다.



건천편백나무숲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단석산 트레킹길 편백나무 숲, 

건천편백나무숲,

오봉산 트레킹길 출발지이기도 합니다.




건천편백숲은 

드라마 선덕여왕, 동이 촬영지로 알려진 

주사암 마당바위(지맥석)가 있는 

부산성 능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여행할 곳도 

무궁무진합니다.



선덕여왕의 세가지 예지력으로 

알려진 여근곡도 있고요 



국보인 단석산 

신선사마애불상군도 

가까이에 있습니다.



건천편백숲은 서경주·건천 나들목을 나와 

오른쪽 산내방향으로 꺾습니다. 



오른쪽 산사면에 누런 무채색에 

진녹색의 숲이  보이는 곳이 

언택트 여행지 건천편백숲입니다.




경부고속철도 바로 아래에 

'단석산 트레킹길 편백나무숲' 

대형 안내판이 들머리입니다.



주차장은 건천편백숲 입구에도 있지만 

좁고 몇대 될 공간이 없어 

경부고속철도교각 주위에 

주차하고 걸어갑니다.

 


도롯가 편백숲 표지판에서 

오른쪽 경부고속철도 교각을 지나면 

바로 Y자 갈림길에 

편백숲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갑니다. 

경부고속철도 터널 입구 배전반에서 

오른쪽 가파른 콘크리트 포장길을 돌아 갑니다.



건천편백숲 입구는 

터널 윗쪽에 있습니다. 

배전판에서 돌아가면 

터널 위로 올라갑니다. ㅎㅎ



편백숲내음길과 

오봉산 트레킹길 안내판 사이의 

나무 덱계단을 올라갑니다. 




편백숲 사이로 나무계단이 

직진로 올라갑니다. 

 


편백숲안에 정자도 

두 곳세워 놓아 

그곳에서 피톤치드 

여행을 하며 푹 쉬었습니다.



꼭 나무 덱 계단이 아니라도 

편백 사이의 흙길을 따라 

편백숲을 한바퀴 돌수 있습니다.

건천편백숲은 이곳 출신인 제일교포 사업가가 

1970년대에 고향산천에다 편백 10000만그루를 심은게 

오늘날 경주건천 편백숲이 되었습니다.

경주시에서 덱 계단과 안전 시설물을 설치하여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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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는 벌써 지나 

10월에 들어서면서는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도 넘겨 이제 본격적인 가을에 들어섰습니다. 



경주 무장산 주소:경북 경주 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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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무장봉 지도

트랭글캡쳐


매주 산을 찾는 동호인은 계절을 가리지 않지만 

그래도 사계절 중 가장 산행하기 좋은 계절을 꼽으라면 

많은 산꾼은 가을을 선택합니다.

 



가을이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데는 

선선한 날씨도 한 몫 하지만 

이는 억새와 붉은 단풍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풍은 설악산을 시작으로 

서서히 남하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부산 근교의 가을은 억새가 먼저 전해옵니다.

 


억새는 부산 도심의 승학산도 있지만 

부산과 가까운 경주 무장봉과 

영남알프스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무장봉은 필자가 2008년 10월 

국제신문 ‘근교산&그 너머’<597>편에 

처음 소개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영남알프스의 억새는 

전국 최고의 지명도를 가졌지만 

1000m가 넘는 고봉에다 산세가 험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산꾼이 아니라면 

즐거워야 할 억새 산행이 자칫 힘들어 

고생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그러나 영남알프스에도 

꼭 ‘고행’을 해야만 

억새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온 가족이 함께 

두 손을 잡고 오르는 

코스도 있습니다.

 


이번에 가족과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오르는 억새 산행지로 

영남알프스 억새군락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경주 동대봉산 무장봉(䥐藏峰·642m)과 

영남알프스 최대 억새군락지인 

울산 간월산(1069m)의 간월재를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600m 높이에 겨우 턱걸이하지만 

바다를 보며 펼쳐진 약 40만평의 

광활한 억새 평원이 압권인 

무장봉을 먼저 소개한다.



무장봉의 유래는 신라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삼국 통일을 완수하고 

이제 더 이상 전쟁은 없다며 

무기를 이 산에 숨겼다고 합니다.

 


투구무(䥐), 감출장(藏)인 

무장봉은 무장골의 

무장사에서 유래했습니다.

 


무장사지에는 보물로 지정된 

아미타불조상사적비 이수와 귀부, 

삼층석탑이 남아 있습니다.

 


무장봉은 무장골(모정골)로 올라 

정상을 거쳐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입니다.



무장봉 계곡 길은 2019년 미탁과 

올해 하이선의 잇따른 태풍에 

탐방로 유실이 반복되면서 

현재 복구공사로 폐쇄됐습니다.

 


정확한 복구 완료 시기는 알 수 없다는 

공단직원의 설명이었습니다. 

무장봉 억새 산행은 능선 길을 올라 

정상 일원의 억새 산행을 즐기고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 합니다.

 


무장봉 억새는 1970년대에 

오리온목장이 들어섰다가 

상수원보호구역에 지정되면서 

1996년 목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목장의 초지는 

억새밭으로 바뀌면서

영남에서 가장 유명한 

억새산행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에 

국립공원 무장봉 산행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을 해야 하며 

억새군락지와 정상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암곡마을에는 봄·가을철 

미나리가 유명합니다.



무장산 산행 경로를 보면 암곡리 왕산마을 무장산 암곡주차장~

암곡 공원 지킴터~무장봉·무장사지 삼거리~임도 끝~

억새밭 포토죤~무장봉 정상~무장봉·무장사지 삼거리~

공원 지킴터를 지나 암곡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입니다. 

산행거리는 9.5㎞이며 시간은 약 3시간30분 안팎이 걸리나 

정상부의 억새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다보면 산행시간은 무의미합니다.



경북 경주시 암곡동 

무장산암곡주차장에서 출발합니다. 

경주지역 유명 억새 관광지답게 

대형주차장이 들어섰습니다.

 


선덕여왕 촬영지를 알리는 

안내판 앞의 무장봉( 6.5㎞) 

이정표를 보고 출발합니다.

 


하천을 끼고 콘크리트길을 갑니다. 

갈림길에서 무장봉(5.9㎞)은 

오른쪽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암곡주차장에서 15분이면

암곡 공원 지킴이 터에 도착합니다.




국립공단 직원이 나와 

2m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체크하며 입장시켜 

마스크가 없는 분은 산행 할 수 없습니다.



게이트를 빠져나가면 

무장골에 걸린 나무다리를 건너 

너른 임도를 갑니다.

 


다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사각정자에서 왼쪽 나무 덱길과 

임도가 갈라집니다. 

 


두 길은 곧 만나 계곡 길과 

능선 길로 갈라지는 

임도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오른쪽 임도을 따라 

무장봉(3.1㎞)으로 향합니다. 

직진은 무장봉(5.0㎞)·무장사지(2.0㎞)방향. 

계곡길(임도)은 현재 폐쇄되어 복구중입니



10분이면 임도 끝에서 

잣나무 숲의 통나무 계단을 오르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됩니다.

 


초반에는 산길이 약간 

가파르게 이어집니다. 

가을에 들어섰다지만 

아직은 햇볕을 막아주는 

활엽수 숲 그늘이 좋은 산길입니다.

 


‘현 위치번호 경주 25-15’표지목을 

지나면서 산길은 완만해 지며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이 이어집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무장봉이 

보이지만 억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산길은 너른 길로 바뀌면서 

무장봉(1.0㎞) 이정표를 지납니다.



능선 길은 완만해지며 

무장봉의 트레이드마크인 

억새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빛을 받은 억새는 

은빛은어를 보는 듯 

눈부시게 반짝이며 

바람에 춤을 춥니다.




탐방로 옆으로 억새밭 출입을 막는 

안전 로프가 묶여 있습니다. 

팔만 뻗으면 손으로 억새의 

감촉을 느낄 수 있으나 

눈으로만 즐깁다.

 


포토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정상을 올랐다가 

오른쪽으로 하산합니다.



정상은 평평한 가운데 

무장봉 대형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전망덱에서는 동해와 포항, 

호랑이 꼬리인 호미곶, 

구룡포,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능선인 호미기맥과 

양포, 감포, 대본, 함월산이 펼쳐집니다.

 




이제 하산하여 왔던 길을 되짚어 

암곡공원 지킴 터를 지나 

정상에서 1시간30분이면 

출발지 암곡주차장에서 산행을 마칩니다.

 




경주 동대봉산 무장산 대중 교통편입니다.


이번 산행은 부산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간 다음 

도로 건너의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18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인 

암곡리 왕산마을에 내리면 됩니다. 

동부터미널에서 경주행은 오전 6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출발합니다. 

경주터미널 정류장에서 암곡(왕산)행은 

오전 8시, 10시30분에 출발합니다.





산행 후 암곡리 왕산 정류장에서 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오후 1시50분, 4시20분, 6시50분(막차)에 있습니다. 

경주터미널에서 부산 동부터미널행 버스는 

밤 10시40분(막차)까지 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경북 경주시 암곡동 54 

무장산암곡주차장을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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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배리삼존불


방가방가

야외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 배리삼존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주소:경북 경주시 배동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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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은 

1963년 1월 보물 제6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배리삼존불이라고도 줄여 말하며 

경주 남산 서쪽의 삼릉 인근에 있습니다.

 


배리삼존불은 현재 삼불사 옆에 

사방이 개방된 보호 전각안에 있습니다.

 


배리삼존불의 제작시기는 

신라시대인 7세기 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배리삼존불은 옛 선방사터에 

널부러져 있던 것을 

1923년 현재의 모습으로 세웠습니다.

 


노상에 방치되 있던 것을 근자에 

보호를 위한 전각을 지어 

그 안에 배리삼존불을 모셨습니다 ㅎㅎ




가운데 본존불은 

극락세계의 아미타여래입니다.

꼭 개구쟁이의 천진난만한 웃음끼가 

도드라진게 정말 귀여운 표정입니다.


그런데 현재 지붕이 붙은 전각으로 인해 

웃음끼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좌협시는 대세지보살상입니다. 

어깨에서 발등까지 화려한 

목걸이를 걸치고 있습니다. 

 


햇볕을 가리는 전각으로 인해 

초록 이끼가 뒤덮여 

삼존불은 지금 아파하고 있습니다.



좌협시 관음보살의 두광과 불두, 

손, 발, 옷의 주름 등

햇볕이 들지 않는 

틈에 초록색 이끼가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초록이끼는 본존불에도 

대세지보살상 보다 더 

심하게 이기가 껴 있습니다.

 불두와 견장 처럼 달린 어께, 

발에 까지 ㅎㅎ 이끼가 붙어 있습니다.



우협시인 관세음보살상은 

 머리에는 두관을 쓰고 

옅은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ㅎㅎ 초록색 이끼로 

아예 완전 몸에 

분장을 한듯합니다.



불상을 보호한다고 지은 보호각이 

도리어 삼존불을 더 손상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불의 미소를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어서 빨리 보호각을 철거하던지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매년 초록색 이끼를 딱아 낸다고 

대책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본존불의 좌대 한번 보세요.ㅎㅎ

이끼가 서리 내린 듯 

초록색으로 바뀌었습니다.




문화재 보호를 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이끼까지 낀 

본존불 아미타여래불

 


자비의 여신이라는 

관음보살상의 현재 상태, 

초록색 이끼로 방치된듯 

생각할 듯 ㅎㅎ



전각으로 햇볕이 들지 않는 

삼존불의 모습 ㅎㅎ



 삼존불 뒤편에 남아 있는 

삼방사의 조각난 부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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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알록달록 단풍색이 좋았던 경주 서출지 이요당 가을여행. 경주 서출지와 이요


경주 묘사를 지내고는 친지분들과 가까운 경주 남산리의 

서출지 인근에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ㅎㅎ

저는 밥보다는 서출지의 가을 풍경이 어떨까하며 내심 궁금했습니다. 





경주 서출지 이요당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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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신라 6대 지마왕릉을 찾아서. 경주 남산 지마왕릉




밥을 먹고 나오면서 친지분들은 가고 동생과 사촌만 남아서 

서출지를 한바퀴 돌면서 가을 정취를 만끽했습니다. 

서출지에도 이제 나무마다 가을빛인 단풍물이 서서히 들었습니다.



서출지는 둘레가 200m인 아주 작은 저수지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엄청나게 오래된 신라시대 저수지입니다. 





서출지에는 까마귀에 관한 전설로 까마귀가 소지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설화입니다. 

488년 신라때 소지왕 10년 정월 대보름날에 

남산 기슭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행차하였습니다.



그때 쥐와 까마귀가 나타나 쥐가 “까마귀 가는 곳을 따라가시오”하였습니다. 

소지왕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까마귀가 이 연못에 다다렀을 때 연못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내주었습니다. 

소지왕은 종이에 “거문고 집을 쏘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소지왕은 궁궐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집을 쏘자 

거문고 집에 숨어 있던 왕비와 중이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못에서 글이 나왔다하여 ‘서출지’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월대보름날에 까마귀가 소지왕의 모숨을 구해주었다하여 

찰밥을 주는 ‘오기일’ 풍속이 생겼습니다. 


현재 연못가에는 이요당 정자가 있습니다. 

조선 현종 5년인 1664년에 임적이 지은 정자로 서출지와 함께 

아름다운 정자로 사계절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사적 138호




특히 서출지는 여름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못둑 이요당의 배롱나무, 연못에 연꽃이 필때는 

최고의 절경으로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합니다. 

 


가을의 서출지 또한 봄 풍경 못지 않게 아름답습니다. 

통일전의 큰 나무들도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끝자락의 서출지 여행....



서출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신라시대 때 생긴 못이라 그런지 큰나무도 많았습니다.  




서출지를  지켜주는 듯 마을 입구의 노거수였을 것으로 보이는 보호수도 있습니다. 



이요당입니다. 

출입문인 일각문은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볼수 없었습니다




서출지에 수풀이 웃자라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ㅎㅎ

 


그래도 서출지 언덕에 자리한 이요당의 풍경은 그림이라 해도 좋을 아름다웁니다.



서출지 유래 안내판도 있습니다.




이리보니까 이요당이 

꼭 논두렁에 있는 듯 ㅋㅋ




늦가을이라 연잎이 완전 쪼그라 들었고요



봄에 오면 수풀을 모두 제거한 깔끔한 

서출지로 바뀌니 그때 다시 한번 와야겠습니다.






소나무와 중년의 사내들 ㅋㅋ

어울리기도 합니다. 






낙락장송인 경주 서출지 

뒤틀린 소나무는 흘러온 세월만큼 오래되었습니다. 



이요당 뒷산은 야외박물관이라는 경주 남산입니다. 

남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서출지와 이요당

가을 여행에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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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서라벌인 경주에도 암각화가, 여자 중요부분 모양도 새겨진 경주석장동암각화


경주 석장동의 금장대가는길에 석장동 암각화가 있습니다. 

형산강 상류인 경주 서천과 북천의 합류지점이며 ‘애기청소’라 불리는 곳입니다.





경주 여행 여자의 중요부분이 새겨진 경주석장동암각화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석장동 산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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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박물관이라는 남산과 소금강산 등 경주의 주요 산이 모두 관망 되는 신라 시대 서라벌의 최고 조망대로 조선 시대에는 금장대란 정자가 있었다 합니다.



경주의 신비한 여덟 가지 현상을 가리켜 경주팔괴라 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이곳 금장대의 금장낙안(金丈洛雁)입니다.




이는 신라 시대부터 금장대의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신라의 왕들이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날아가는 기러기도 금장대 아래 강변에 내려앉아 꼭 쉬어갔다고 하는데 이게 신기해서 금장낙안으로 경주팔괴에 포함되었습니다.



경주에는 고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그것을 입증하는 암각화가 금장대 아래 서천변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를 경주석장동암각화라 합니다.

 



경주석장동암각화는 규모는 길이가 3m 정도에 높이는 1.5m의 크기로 접이식 병풍같이 여러 번 꺾여진 모양입니다.



처음 암각화의 발견과 조사는 1994년 동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해서입니다.



경주석장리암각화의 그림을 보면 방패 모양인 검파형과 삼각형의 사람 얼굴 모양, 돌칼, 돌 화살촉, 꽃무늬, 사람 발자국, 짐승, 배, 여자 성기, 기하무늬 등 약 27점입니다.




특히 경주 석장동 암각화에서는 다른 곳에서 볼수 없는 도토리 모양과 꽃무늬의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선 쪼으기와 선 갈기 기법을 사용했으며 청동기시대의 암각화로 보고 있습니다.

 




금장대가 있는 작은 언덕 같은 산 아래 바위 턱의 경관이 워낙 빼어나 청동기시대에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신앙의례의 장소가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98호. 안내판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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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에서 봄나들이 하기 좋은 보문단지에서 만나는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 천군동사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천군동사지는 경주에서 대표적인 위락시설이 있는 경주 보문동 보문단지 인근에 있는 절터로 보문호의 명성에 가려있어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곳에 자리했습니다.





경주 천군리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천군동 550-2



2019/02/08 - (경북여행/경주여행)나원백탑으로 불렸다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만나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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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보문단지 인근에 천군동사지가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으며 우연히 자료 검색을 하다 천군동사지에 동·서 삼층석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번 경주여행길에서 찾았습니다.

 


폐사지 대부분이 옛 절의 이름과 창건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이곳 천군동사지도 정확한 창건연대와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 천군동에 있는 절터라 해서 그저 경주천군리사지 또는 천군동사지라 부릅니다(천군동사지 사적 제82호)



경주천군동사지는 두 삼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을 확인 할수 있어 사찰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삼층석탑이 무너졌으며 탑재와 추춧돌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일본인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중문·금당·강당 자리를 일부 확인했습니다.

 


두 탑은 그 이듬해인 193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천군동사지의 가람은 통일신라시대양식인 쌍탑에 1금당 양식을 따랐습니다. 

앞에 중문이 있고 그 안쪽에다 동·서 쌍탑을 세웠으며 쌍탑 뒤로 금당과 강당을 두고 둘레에는 회랑지가 자리했습니다.



남아있는 주춧돌 등의 흔적을 보면 중문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금당은 앞면과 옆면이 모두 5칸이며 강당은 앞면 8칸에 옆면이 3칸 크기입니다. 

중문에서 강당까지의 거리가 79m이며 폭은 대략 61m입니다.



특히 천군동에서 발굴된 유물 중에 궁궐의 지붕 맨 윗부분 양쪽 끝에 장식하던 치미가 발굴되었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우리나라에 치미는 몇 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주의 관문인 경주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만나는 나정교 좌우 앞과 뒤에 황금색 모양의 치미를 세웠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웅장합니다.



그만큼 그 크기가 대단하며 이게 기와건물의 지붕 양쪽 끝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치미가 나왔다는 것을 보면서 천군동사지도 당시 신라 궁궐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사찰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천군동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인 쌍탑식 절배치이며 주위에 경작한 논밭으로 변해 있어 당시의 모습은 확인할수 없을 정도로 훼손 상태가 심합니다. 

복원된 동서 쌍탑은 그래도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168호)은 이중 기단에 삼층의 탑신이며 두탑은 서로 닮은 쌍둥이 탑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나 양식이 거의 같습니다. 

동탑의 머리장식인 상륜부는 분실되어 없지만, 그에 반해 서탑은 탑 꼭대기 머리장식인 노반 등이 일부 남아 있어 탑의 면모를 갖추어 더욱 위엄 있어 보입니다.

 




기단에는 양쪽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2개의 기둥을 새겼으며 3층의 몸돌에도 양쪽 모서리에다 각각 기둥을 조각했습니다.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붕돌의 밑면인 층급받침은 5단이며 처마선은 짧고 급하게 떨어지면서 네 귀퉁이는 살짝 치켜 올려졌습니다.

 




몸돌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하나 도굴되었는지 사리장신구 등은 찾지 못했다 합니다. 

경주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분위기인 장중함이 느껴지며 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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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나원백탑으로 불렸다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만나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경주 금박산 아래 나원리 오층석탑을 여행했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국보에 지정된 석탑입니다. 

경주 야외박물관이라 하는 남산과 그 주위에 있는 석탑이 아니라 형산강 건너 외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로서는 경주 여행을 여러 번 했지만,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항상 마음만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원백탑 경주나원리오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나원리 672




2018/09/19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남산에서 가장 당당한 경주 창림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다.

2018/10/06 - (경북여행/경주여행)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장항리 사지 서 오층석탑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06/07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국보 제38호 고선사지 삼층석탑. 덕동호로 수몰된 고선사터 삼층석탑과 비석받침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2016/04/26 - (경주여행/남산여행)염불사지 삼층석탑. 은은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는 경주 남산리 염불사지 삼층석탑 여행하기.


2014/05/21 - (경주여행/감은사지 이견대 문무대왕수중릉 여행) 호국용 문무대왕의 혼이 깃든 경주 감은사지 이견대 대왕암 이른 봄여행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진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독야청청하다보니 그런가봅니다. 

이번에 다시 경주를 찾게 되었습니다. 

경주에서 모든 일을 끝내고는 이번에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반드시 찾아보기로 작정을 하고 부산에서 출발했습니다.



일을 마무리 하고 하늘을 보니 벌써 해는 노루 꼬리만큼 남았고 마음은 덩달아 급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어서 빨리 차를 몰아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해는 벌써 꼴깍 넘어가 버린 뒤였고 햇빛이 사라진 석탑을 보면서 참 많은 아쉬움을 달래야만했습니다.




석탑에서는 빛이 연출하는 명암이 중요한 한부분을 차지하는데 말입니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석탑의 그림자는 느낄 수 없었으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며 한자리를 지켜온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묵직하며 장중함은 빛의 오묘함이 아니라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현재 절터의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석탑의 정식명칭은 나원리에 있는 오층석탑이라 하여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이라 부릅니다. 

신라 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는 사찰의 영화는 오층석탑만이 남아 천년세월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원리오층석탑 주위에서 ‘의봉4년개토’란 이름의 와당 기와파편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679년 문무왕 19년을 뜻합니다. 

이를 보면 최소한 이곳 오층석탑의 절터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래전부터 이곳이 ‘난원사터’란 이야기와 809년 신라헌덕왕 때에 승려 대각이 창건하여 국운창달을 기원하던 사찰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져오고 있다 합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의 건랍연대를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1995년 석탑이 해체 전까지는 모두 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의 건립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발굴된 사리함에서 나왔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1995년~1996년에 해체·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문화재 도굴로 보이는 1층 탑신이 30㎝ 정도 벌어져 붕괴의 위험이 우려되어 해체·복원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오층석탑의 3층 옥개석 부근에서 밀폐된 사리공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리공 안에서 사리함이 나왔는데 사리함의 뚜껑에는 연화당초문과 사면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개봉한 사리함에는 금동 소탑과 금동 소불상 등 많은 사리장엄구가 함께 나왔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리함 안쪽에 무구정광경의 다라니 묵서가 발견되었고 따라서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의 정확한 건립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은 산스크리트어이며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된 게 704년이라 합니다. 

이를 근거로 보면 나원리오층석탑은 그 이후에 건립되었으며 석탑 기단부의 결구 방식 등에서 보면 8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을 추정할수 있다고 합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석재가 흰색을 띠고 있어 ‘나원백탑’이라 하며 '신라팔괴'의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이중의 기단에 오층의 탑신을 올렸습니다.

 2층인 기단과 1층 몸돌, 1·2층의 지붕돌인 옥개석을 뺀 나머지는 모두 하나의 돌로 짜맞추어 졌습니다.






아래 기단은 면석이 1매이며 양모서리(우주)에 각각 1개의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가운데에 3개의 탱주(기둥모양)를 새겼습니다. 

윗기단은 양모서리(우주)에 각각의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가운데에는 2개의 탱주를 새겼습니다.





탑신부인 몸돌 5개는 양모서리에만 기둥모양을 각각 새겨놓았습니다. 

몸돌 위에 올린 옥개석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렸으며 밑면에는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상륜부에는 현재 머리장식의 일부인 노반만 보였는데 밑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쇠막대인 찰주가 끊어져 남아 있습니다.








경주에서는 몇 개 안되는 오층석탑이지만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신라 불교예술의 걸작품은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경주를 여행하면서 많은 석탑을 보았습니다. 

크기와 무게감 등을 생각해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황복사지 삼층석탑, 창림사지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정혜사지13층석탑,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등이 있습니다.

 










경주의 석탑은 다른 지방과 다르게 그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가슴속에 꽉 차듯이 밀려왔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역시 고대하고 기대한 만큼 큰 감동이 쓰나미 처럼 밀려왔습니다. 

군더더기가 전혀 붙어 있지 않은 모습에 근육질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남성을 보는 듯 석탑의 자태는 아름다웠습니다.

 



늦은 시간에 찾았던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나를 다시 찾을 수 있게끔 흥분시켰습니다. 

경주여행을 다시 계획할 때 가장 먼저 한 번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국보 제39호에 1962년 12월에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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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장항리 사지 서 오층석탑


경주 문화재 여행을 하면서 항상 찾아보아야지 하며 마음만 먹고 있었던 장항리 절터를 이번에 남산 산행을 하며 큰마음 먹고 찾았습니다. 

남산에서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고 토함산 동쪽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남산을 나와 보문호를 거처 추령 터널로 향했습니다.




경주 장항리 사지 서 오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1083




2018/09/19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남산에서 가장 당당한 경주 창림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다.

2017/12/1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11/01 - (경주여행)황복사지 삼층석탑. 신문왕의 명복을 빌며 세웠다는 국보 제37호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다.

2016/10/12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장항리 석조불입상. 도굴꾼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된 장항리 석조불입상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복원된 상태로 만나다.

2016/10/13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불두(부처머리). 1959년 사라호 태풍의 선물(?)이라는 경주 남산 철와골에서 발견된 초대형 불두를 경주 박물관에서 보다.



추령 터널을 통과해서 한수원 본부를 지나고 어찌어찌 따라 올라갔더니 토함산 터널을 통과해서 불국동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시간은 늦어지고 날은 어두워가고 마음만 급해졌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작동하여 다시 토함산 터널을 되돌아와 많은 우여곡절 끝에 건너편 산비탈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장항리 사지 오층석탑 앞에 닿았습니다.

 




산골짜기 오지에 주차장도 제법 넓게 조성해 있고 해서 역시 국보는 국보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장항리 사지에 관한 정보는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가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불상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불상의 모습이 꼭 대리석 같은 바위로 조각한 듯 보여 너무 이국적인 불상 같아 처음에는 우리 문화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불상이 장항리 사지에 있던 불상이며 처참할 정도로 파괴되어 일부 복원하여 어쩔 수 없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중입니다. 

이 불상을 안치했던 좌대가 현재 장항리사지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일을 떠올리며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순서가 있는 법이라 장항리사지 앞으로 깊은 계곡이 흘러 나무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장항리 사지가 있는 계곡은 대종천 최상류이며 절의 창건연대나 절의 명칭도 아직 알려지지 않아 아랫마을인 장항리의 명칭을 따와 장항리 사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다리만 건넌다고 바로 절터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직선으로 곧추선 덱계단을 다리가 후들후들 거릴 정도로 치받아 올라야만 오층석탑과 만납니다. 

기대하고 기대한 만큼 그 감동은 쓰나미가 몰려오듯 엄청났습니다. 

일전에 남원 실상사의 백장사 삼층석탑을 보고 느꼈던 그때의 감동이 그대로 살아났습니다.

 




국보 10호인 백장사삼층석탑과 장항리사지에 남아 있는 동·서 오층석탑과 불상 좌대에 정교하게 조각된 조각 예술품을 보면서 서로 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백장사삼층석탑과 석등은 장항리사지 동·서 오층석탑과 좌대는 동병상련인지 같은 사연을 가졌습니다. 

백장사삼층석탑과 석등도 도굴범이 석탑과 석등을 처참하게 파괴해 버렸습니다.

 






장항리 사지 또한 일제강점기인 1923년 한적하다 못해 적막했던 이곳에 도굴범들이 들이닥쳐 오층석탑과 불상 안에 값비싼 보물이라도 들었다고 생각하여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여 폭파시켜 버렸습니다. 

장항리사지 동·서 오층석탑과 불상은 산산이 조각나 깨져 무너졌습니다.

 




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장항리 석조불상도 그때 조각조각으로 파괴되었고 파손된 부재가 흩어져 나뒹굴다 훼손과 분실을 우려하여 박물관으로 옮겨놓았습니다. 

그 후 조각을 찾아내어 짜맞추어 시멘트로 하나하나 붙여나갔고 찾지 못한 조각은 경주 남산에서 똑같은 재질의 바위를 찾아내어 잘라서 석조불상과 맞추어 현재의 모습으로 전시 중입니다.





이 석조불상을 두고 석굴암의 본존불과 비슷할 정도로 세련미가 철철 넘치는 불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온전하게 복원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 석조불상을 받쳤던 좌대는 장항리사지에 남아 있으며 익살스러운 사자 모습의 조각이 인상 깊었습니다.







장항리 사지 동·서 오층석탑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것을 1932년에 흩어진 부재를 모아 그래도 온전한 모습의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만을 복원하였으며 동 오층석탑은 1층의 탑신 위에 5개의 지붕돌이 차곡차곡 올려진 모습입니다. 

동탑과 비교하면 서탑은 약간 깨어지고 상륜부의 소실을 빼고는 온전한 상태로 보전 중입니다.

 


금당 터에 복원된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은 2단의 기단에다 오층의 탑신을 올려 한눈에 8등신의 몸매를 자랑하듯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기단부는 비교적 넓게 만들어 안정감이 있습니다. 네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는 기동모양을 조각했습니다.

 






몸돌과 지붕돌인 탑신부는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특이하게 1층의 몸돌에는 사면에다 문을 지키고 서 있는 한 쌍의 인왕상을 각각 조각해 놓았습니다. 

심하게 마모된 부분도 있지만 정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꼭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붕돌의 낙수면은 평평하고 얇으며 네 귀퉁이를 추어올려 날렵함과 경쾌함에 5단의 층급 받침을 두었습니다.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네모난 받침돌만 현재 남았습니다. 

장항리사지서오층석탑에서 1층 몸돌의 인왕상에서 보여주는 특징은 통일신라 8세기 전반기에 처음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석탑도 그때 제작된 것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장항리사지 동 오층석탑도 폭파로 파괴되어 계곡에 흩어진 것을 모아 놓았으며 쌍탑에 1금당인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람배치로 강당과 회랑의 자리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경주 장항리 사지 사적 제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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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남산에서 가장 당당한 경주 창림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다.


경주 남산 삼릉 가는 길을 걸으면서 찾았던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현재 창림사지는 울타리가 둘려 있으며 문화재 조사가 중단되었는지 조사가 끝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확인할 수 없게 덮어둔 상태입니다. 

창림사지는 문화재청과 계림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하였다고 안내판에 나와 있습니다.




경주 남산 창림사지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6-1




2018/07/03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신라 6대 지마왕릉을 찾아서. 경주 남산 지마왕릉

2018/06/27 - (경주여행)경주 삼릉 가는길 양산재와 경주 나정 여행

2018/06/26 -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7대 경주 일성왕릉를 찾아서, 경주 일성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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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 (경북여행/경주여행)임진왜란 의병장 김호장군고택 경주 월암종택.

2018/03/22 -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과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여행.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이곳에서 창림사지로 추정되는 금당지와 회랑지, 종각자리 등과 상·중·하 세 구역으로나누어진 대단한 규모임이 확인 되었습니다. 

창림사는 신라 박혁거세가 세운 궁궐터에 지어진 사찰로 알려졌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해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 초기까지 전해져오다 폐사되었다고 합니다.






폐사지에서 출토된 기왓장에 ‘창림사’라는 글자가 새겨있는 것을 보고서 창림사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비신이 없는 쌍귀부가 남아 있는데 두 거북이의 머리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발굴조사에서 동·서탑지와 팔부신중이 새겨진 탑의 상층 기단석면 등 여러 석탑의 부재와 건물터를 발굴했습니다.

 


‘무구정탑원기’가 창림사지 삼층석탑의 사리공에서 발견되어 그 내용을 근거로 855년 신라 문성왕 때에 조성된 석탑으로 확인했으나 그만 분실하여 창림사 삼층석탑은 찾았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모사해두었던 모사본만 남아 있었습니다.






‘무구정탑원기’는 탑의 건립에 관한 기록이며 참여한 인원, 석탑의 발원내용 등을 기록한 금동판입니다. 

금동판인 ‘무구정탑원기’는 사찰 문화재 일제 조사를 하다가 이천 용주사의 효행박물관에서 우연하게 발견했습니다.

 



창림사지 삼층석탑은 이중기단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린 전형적인 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따랐습니다. 

창림사지 삼층석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중 기단의 상부에 팔부신중이 양각해 있습니다. 

이는 불법을 지키는 여덟 수호신으로 조각수법과 규모에서 매우 뛰어난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입니다.








저도 전국의 많은 석탑을 만나고 다녔지만 왜 지금까지 창림사지 삼층석탑을 찾지 않았지 할 정도로 그 규모가 대단하고 웅장했습니다. 

팔부신중상이 새겨진 다른 석탑인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과 국보 제35호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등 국보와 비교해도 조각수법과 기량면에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를 보면 그만큼 창림사지 삼층석탑의 작품성이 우수하다고 하겠습니다. 

창림사지 삼층석탑은 오랫동안 비지정 문화재로 수모를 받아오다가 2015년 3월 보물 제1867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창림사지 삼층석탑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방치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76년에 와서야 파괴된 부재를 새로 끼워 맞추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습니다. 

팔부신중 중 현재 네 분의 팔부신중만 남아 있는 이유는 모두 새로운 부재로 보강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건립 당시 석탑의 원형은 잃어버렸으나 복원된 창림사지 삼층석탑은 그래도 남산자락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예술성이 뛰어난 석탑임이 틀림없습니다. 

창림사지 삼층석탑은 남산 자락에 우뚝 솟은 그 모습이 정말 당당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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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신라 6대 지마왕릉을 찾아서. 경주 남산 지마왕릉


신라 제6대 왕인 지마왕릉을 찾았습니다. 

지마왕릉은 포석정과 배동삼존석불 사이에 있습니다. 

그럼 지마이사금(재위 112~134)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마이사금은 성은 박씨이며 이름은 지마, 지미입니다. 아버지는 신라 5대 파사이사금이며 태자였습니다.

 




경주 지마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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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허루갈문왕의 딸인 사성부인이며 비는 마제갈문왕의 딸인 애례부인 김씨였습니다. 

즉위한지 4년만인 115년 가야가 국경을 건너 노략질을 일삼자 지마이사금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오늘날의 양산시 물금의 낙동강을 건너 가야를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가야의 역습에 걸려 겨우 목숨을 건져 돌아왔으며 그 이듬해 다시 군사를 일으켜 가야로 쳐들어갔습니다.

 




가야는 성문을 굳게 잠그며 별반 대응을 하지 않았고 지마의 군대는 우기와 겹쳐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야 정벌의 꿈을 접었습니다. 

121년에는 왜구가 쳐들어오고 다시 이듬해 재침한다는 흉흉한 소문에 민심이 들끓자 사태를 수습하고 왜구와 화친을 맺었습니다.

 





이제 한숨을 돌리나 했는데 이번에는 난데없는 말갈족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지마이사금은 백제에 구원병을 요청하였고 백제는 다섯 장수를 보내어 말갈족을 격퇴하면서 두 나라는 7대 일성이사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34년 지마이사금이 아들 없이 죽자 그의 작은아버지인 일성이사금이 왕위를 이어받았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신빙성이 좀 떨어진다 하겠습니다. 

지마왕의 재위 시절에는 하늘과 땅에서 천재지변이 여러 번 일어나는 등 많은 변고가 있었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마왕릉은 능의 밑 둘레가 38m이며 높이는 3.4m에 흙으로 봉분을 쌓은 단순한 형태입니다.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와 왜구.말갈의 침입을 막아 국방을 공고히 했다고 안내판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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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신라 7대 경주 일성왕릉를 찾아서, 경주 일성왕릉


경주 서남산 아래에 있는 일성이사금(재위134~154)의 능인 일성왕릉을 보고 왔습니다. 

일성왕릉이라고 알려졌지만 이 능은  1730년경에 당시 경주김씨와 경주박씨 두 문중에서 족보를 만들고 시조인 왕릉 찾기를 하면서 사료나 고증으로 일성왕릉이라 추정하면서 비정한 곳입니다.

이외에도 신라왕릉 대부분이 비정된 상태입니다.




 경주 일성왕릉 신라일성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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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6촌장이 박혁거세를 초대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2대 남해 차차웅의 뒤를 이어 3대 유리이사금은 유언을 하면서 박씨가 왕이 아닌 석씨인 석탈해가 4대 이사금에 오르게 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일성왕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삼국사기에는 유리이사금의 장자라고 하며 삼국유사에서는 유리이사금의 조카라는 설과 지마왕의 아들이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사료가 정확하지 않는데 일성왕은 유리이사금의 아들이나 아도갈문왕의 아들로 보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저도 일성왕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대해 소설을 한번 써 봤습니다.



3대 유리이사금에는 아도갈문왕과 파사이사금의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석탈해왕의 뒤를 이어 유리이사금의 차남인 파사이사금이 5대 왕에 등극하고 6대는 파사왕의 아들인 지마가 이사금에 오르면서 다시 박씨로 정권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7대는 일성이사금입니다. 

일성이사금은 지마이사금의 아들이 아니고 아도갈문왕의 아들로 본다면 지마이사금과는 사촌지간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왜! 일성이사금에게 왕권이 돌아왔는지에 대해 알수 없으나 지마에게 후사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여튼 제가 추리한 이 대목을 뒷받침하는 게 148년 일성이사금 15년에 박아도를 갈문왕으로 봉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갈문왕이 무엇입니까? 사후에 왕의 자리를 추봉하는 왕을 말합니다. 

일성왕은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고 아버지를 아도갈문왕에 추봉하여 정통성이 있는 이사금임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로부터 종종 아버지를 왕으로 추봉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알리는 경우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일성왕의 아버지는 아도갈문왕이라 추증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거는 역사학자가 밝히는 거고 저는 그냥 제 생각을 유추해 해봤습니다. 

어머니는 이간생부인이며 왕비는 지소례왕의 딸 박씨 부인이라설 등이 있습니다. 

재위기간 동안 말갈족의 잦은 침입으로 국력의 소모가 많아 대응책 마련에 많은 고심했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장려하여 제방을 쌓고 땅을 개간하도록 하였으며 금은주옥 등 사치품 사용을 금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보면서 일성왕은 재위기간에 백성을 잘 다스린 왕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성왕이 승하하자 8대 태자 아달라이사금이 해목령 아래 의전동 묘좌 언덕에 장사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남산 해목령에 장사지낸 경애왕릉이라 추정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능은 조선 영조 6년인 1730년경에 알려졌습니다.

아마 그때  두문중에서 서로 나눠 먹기에서 일성왕릉으로 비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주 일성왕릉은 나정과 양산재, 남간사지가 있는 탑동의 서남산 북쪽인 해목령에서 뻗은 능선의 경사면에 자리했습니다. 

왕릉의 봉분은 지름이 16m이며 높이는 5m 쯤됩니다. 

현재 봉분 아래쪽에는 호석으로 추정되는 자연석 일부가 드러나 있습니다. 

봉분 내부에는 석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며 2단의 축대는 능을 보호하려고 후대에 쌓은 것으로 보입니다. 

경주 일성왕릉 사적 제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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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삼릉 가는길 천관사지 여행. 경주 천관사지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과 그의 젊은 날 연인이었던 천관녀의 전설이 있는 경주 천관사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학창시절 김유신과 함께 등장하는 천관녀의 이야기는 골치 아픈 다른 수업시간에 비해 머리에 쏙쏙 들어와 저장되어 장년의 나이가 된 지금도 잊지 않고 김유신 이야기만 나오면 천관녀가 함께 떠오릅니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천관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43

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천관사지 연락처:054-481-4763




2018/06/22 - (경북여행/경주여행)임진왜란 의병장 김호장군고택 경주 월암종택.

2018/01/19 - (경북여행/경주교동여행)경주 교동 최씨고택.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 최씨고택 여행.

2016/10/16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에밀레종, 성덕대왕신종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2016/10/14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 최치원의 사산비명 비석 귀부였던 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을 보다

2016/10/13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불두(부처머리). 1959년 사라호 태풍의 선물(?)이라는 경주 남산 철와골에서 발견된 초대형 불두를 경주 박물관에서 보다.

2016/10/12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장항리 석조불입상. 도굴꾼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된 장항리 석조불입상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복원된 상태로 만나다.



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경주의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경주 남산과 연결된 마석산 산행을 하고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곳 지명이 말무덤이 있었고 산 이름도 마석산이고 저수지도 있고 해서 막연하게 이곳이 천관녀 집 앞에서 김유신에게 칼을 맞아 죽었다는 그 말무덤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천관녀가 있었다는 집이 이곳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위를 보면 절터가 있었을 듯한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김유신이 술 한잔을 걸치고 졸면서 말을 타고 오는 길과 오버랩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경주시 외동읍 북토리의 그 말무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말무덤은 맞는데 김유신에게 칼로 베어 죽었다는 그 말의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울산 치술령의 망부석으로 유명한 신라충신 박제상이 일본으로 왕자를 구하러 가면서 타고 온 말의 발목에 편지를 매달아 집으로 돌려 보냈는데 이게 그만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헤매다 지쳐 이곳에서 죽었었습니다.

마을 사람이 불쌍해서 고이 묻어주었던 게 지명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오며 현재도 그 말무덤이 남아 있다 합니다.

 


김유신의 그 말과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경주시 교동 인근 탑동에 천관이란 지명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천관사의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최근에 경주 ‘삼릉 가는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마침 천관녀의 전설이 있는 천관사지 앞을 지나기에 얼마나 반가웠던지 전설로만 알고 있던 곳을 또 한곳 지나가는구나 싶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그저 김유신과 천관녀의 이야기만 아주 짧게 나와 있어 인터넷을 뒤적이다 국립문화제 연구소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2004년)’를 보게 되었습니다. 

천관사지에 관한 방대한 사진과 자료가 상세히 나와 있어 내심 반가웠습니다. 

천관사지보고서를 보면 천관사에 관한 남아 있는 기록 중 가장 빠른 게 고려 명종 때 이인로(1152~1220)가 지은 파한집(破閑集)이며 그다음은 고려 중기 이공승(李公升 1099~1183)이 천관사를 지나면서 지은 시가 있다 합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김경신(金敬信 785~798)이 천관사의 우물로 들어간 꿈을 꾸고 왕위에 올랐다는 원성왕에 관한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경주부 고적조에서 천관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고려 중기 이공승이 찾았을 때까지는 천관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인로의 파한집에는 우리가 전설로 알고 있는 김유신과 천관녀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김유신이 젊었을 때입니다. 

어머니인 만명부인은 항상 김유신에게 엄한 가르침으로 가정교육을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김유신이 천관의 집에 머무르고 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만명부인은 김유신에게 따끔한 가르침으로 아들을 타일렀습니다. 김유신은 어머니에게 앞으로 다시는 천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맹세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김유신은 술을 먹고 피곤한 나머지 말 위에서 잠깐 졸았는데 깨어나서 보니 천관녀의 대문 앞이었습니다. 

천관녀가 반가운 마음에 벗은 발로 뛰쳐나왔지만, 김유신은 “어찌 주인의 마음을 모르느냐”며 타고 온 말의 목을 베고 말안장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이에 천관녀는 실망하여 김유신을 원망하는 노래를 한 곡 지었으며 그게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성취하고 천관녀의 집을 다시 찾았으나 집은 사라지고 터만 있어 절을 짓고는 옛 여인의 이름을 따서 천관사라 하고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합니다. 

천관사지는 경주시 교동 244번지 일대이며 사적 제340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천관사지는 도당산아래 구릉지로 1960년 이전에는 대부분 밭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다 보문호가 완공되고는 이곳에 농수로가 연결되어 밭을 계단식 논으로 개간했습니다. 

지금의 옛천관사지는 빈터로 변해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당시 논으로 바꾸는 개간공사를 하면서 천관사지의 유구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당시 보고서에는 “탑지는 작은 둔덕을 이루며 지대석 서면이 노출된 상태였고 논두렁에는 기단갑석 3매와 장대석 초석 등이 논의 축대를 쌓으면서 보강하는데 사용되었다”라했습니다.

 천관사지의 석탑 기단부에서 발견된 팔부신장상등과 1974년 3월에 ‘대태각’ 명의 석장이 발견되어 고물상에서 찾는 등 천관사지에서 출토된 석재와 초석의 많은 석물이 외부로 반출되어 인근 학교 정원의 조경과 가정집의 장독대나 담장, 디딤돌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천관사지의 훼손상태를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천관사지의 규모를 보면서 한쪽에 남아 있는 깨어진 석재가 사실 몇 개 없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천관사지 발굴조사는 2000년 5월 25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탑지 1개소와 건물지 2곳, 우물 1곳, 석조시설 1곳 등을 조사하였고 그 이듬해 5월에 건물지 6곳과 우물 2곳, 석조시설 1곳과 담장, 배수로 등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3월에 유구 훼손 방지로 복토한 상태입니다.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

국립문화제 연구소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2004년) 사진 캡쳐



천관사지에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특이한 점은 팔각삼층석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천관사지 팔각삼층석탑 부재인 팔각연화문옥개석이 전시 중이며 다음 기회에 경주박물관 여행을 할 때 꼭 챙겨보아야겠습니다.

 탑지의 부재와 상세한 천관사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문화재청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WGB8Vd8JfK0javzSzjuPqLZuaOaBc3jd1pbyGJTF8gFdqRazgD9sMdjOjuYWWhlZ?nttId=18160&bbsId=BBSMSTR_1021&pageUnit=1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NS_03_07_01)를 참고하세요. 내용이 빵빵합니다. 

저도 보고서를 저장해 놓고 다시 한 번 더 보고서를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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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임진왜란 의병장 김호장군고택 경주 월암종택. 경주 김호장군고택


단일 시로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곳이 경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주는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고입니다. 

그 많은 문화재 중에서 이번에는 절충장군 부산첨사 김호 장군 고택을 찾았습니다. 

김호장군 종택은 그의 호를 따서 월암종택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경주 김호장군고택 경주 월암종택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633

경주 김호장군고택 경주 월암종택 전화:054-772-9455



2018/01/19 - (경북여행/경주교동여행)경주 교동 최씨고택.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 최씨고택 여행.

2017/12/1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2017/04/11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2016/11/10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여행. 가보지 않아도 가본것 같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정, 화쟁국사비부,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만나다.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11/05 - (경주여행)경주 신문왕릉.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라 31대 신문왕릉을 여행하다. 경주 신문왕릉




처음 김호장군 월암종택을 방문하면서 조선시대 한 장수의 집이구나 하면서 쉽게 생각했습이다. 

그러나 역사가 400여 년이 넘은 고택이며 가정집 건물로는 몇 안 되는 오래된 건물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감짝 놀랐습니다. 

안내판을 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큰 공을 세운 부산첨사 김호장군의 생가”로만 표기해 놓았습니다.

 


김호장군 월암종택 포스팅을 하면서 김호장군님의 연역을 알아보았습니다. 

김호장군은 1534년 경주부의 월남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570년(선조 3년) 식년 무과에 을과로 급제해 일찍부터 무인으로 20여 년 근무하다가 훈련원봉사를 끝으로 고향인 경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노비와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조직했습니다.





경주부윤은 그에게 경주 오봉산에 있는 부산성을 방비토록 했으며 경상초유사로 있던 학봉 김성일도 경상좌도 의병도대장에 김호를 임명했을 정도로 충·절·의가 남달랐던 분 같습니다. 

경주사람은 김호장군을 남면대장이라 따로 불렀습니다. 

이는 백운산(열박산)의 남쪽에서 오는 왜적을 모두 막아냈다 하여 붙은 별칭이라 합니다.

 




영천성 탈환에 여러 경주의 의병장과 나서기도 했으며 휘하에 1,400명의 부하를 이끌고 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워 절충장군 부산첨사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부임하지 않고 경주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계속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경주읍성 탈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경주부에 들어온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다가 언양에서 올라오는 적의 기병 500기와 노곡에서 맞붙어 왜적을 궤멸시키고는 자신 또한 전사했습니다.



이전투가 당시 경주에서 일어난 임진왜란 전투에서 가장 큰 승리였다 합니다. 

김호장군을 경주사람은 동도오절중 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이는 조선시대 때 경주를 동도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김호장군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숨지자 첫째와 둘째 아들 또한 홍의장군 곽재우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의병활동을 하다 전사한 호국집안입니다.

 

경주월암종택 우물


경주 남간사지 석정, 비슷하지 않나요



김호장군은 사후 당상관에 추증과 전란이 평정되고는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습니다. 

영조 34년에 가선대부 형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추증되었으며 김호장군 경주월암종택은 중요민속자료 34호입니다.

 


김호장군 종택인 월암종택은 17세기경에 세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심건물인 안채가 대략 400년 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호종택에서 경주향교와 남간사지에서 본 똑같은 형태의 돌우물인 석정이 사랑채 터 앞에 있었습니다.



경주향교의 돌우물에 비교해서는 그 규모가 아주 작았고 남간사지 우물과는 그 크기가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곳의 우물이 모두 앉은뱅이 식인 신라시대 우물인데 김호장군 종택의 우물 또한 똑같은 양식이며 주변에 신라 절터 유구가 남아 있는 게 오래전에는 절터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안채가 있고 왼쪽에 초가집으로 엮은 아래채가 있습니다. 

주인장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계십니까?” 하고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문채에 붙은 작은 방에서 인기척이 나면서 두 사람이 나왔습니다. 

현재 김호장군종택은 전통한옥체험을 하는 민박집으로 운영 중인데 민박손님이었습니다.



그러자 부엌에서 쥔장이 나왔습니다. 정중히 집을 좀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양해를 구했고 “흔쾌히 구경하세요” 하기에 종택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보기 힘든 초가집이 있습니다.” 하니까 “원래는 초가집이 아니었고 모두 기와집이었습니다” 하시면서 처음에는 대문도 현재의 자리가 아니고 방향도 다르다고 했습니다.


 


쥔장은 대문은 집 앞 공터 바깥인 마을 길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랑채도 안 보이고 대문에서 안채가 바로 보이는 게 건물 배치가 조금 이상합니다" 하니까 "대문 오른쪽에 현재 정원으로 꾸며진 곳이 사랑채가 있던 곳입니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때 화재로 전소하여 급하게 짓다 보니 아래채를 초가집으로 짓게 되었고 사랑채는 아직도 복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채가 있던 자리를 자세히 보았는데 연못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꽤 풍치 있는 누마루가 있는 정자식 사랑채였을 것이라 짐작되었습니다. 

안채는 앞면 5칸에 옆면 1칸 규모로 왼쪽부터 부엌·방·대청·방인 아주 단순한 구조이며 대청에는 문짝을 달았습니다. 

아래채는 앞면 3칸에 옆면 1칸인 초가지붕입니다.

 왼쪽부터 방·방·부엌 순이며 굴뚝은 부뚜막 한쪽에 설치한 특이성을 보여줍니다. 

전형적인 남부지방의 공간구성입니다. 

종택 내에 김호장군 사당도 모셔져 있습니다. 

경주 남산 아래에 포석정, 배리삼존불, 삼릉, 남간사지와 청림사지 그리고 양산재, 나정, 신라왕릉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에 있어 민박체험 하기에 정말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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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과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여행.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경주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나는 문화재 중 하나가 신라 왕릉입니다. 

신라는 935년에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 의해 망할 때까지 긴 역사를 가진 왕조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왕릉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아마 경주 왕릉을 다 둘러보려면 몇 날 며칠을 잡아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5




2017/12/1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2017/04/11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11/05 - (경주여행)경주 신문왕릉.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라 31대 신문왕릉을 여행하다. 경주 신문왕릉

2016/10/31 - (경주여행)신라 27대 선덕여왕릉.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낭산 도리천의 선덕여왕릉 여행과 세가지 예지력.



 


그리고 경주의 많은 왕릉은 29대 태종무열왕을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무덤 주인을 밝히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와 유사한 기록을 보고 후대에서 모두 비정한 상태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도 삼국사기의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을 근거로 1730년경에 경주김씨 문중에 의해서 비정된 상태라 합니다.



하도 왕릉이 많아서 훌륭한 업적이나 치적이 많지 않아 생소한 왕도 있습니다. 

이번 경주 여행에서 찾았던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약 400m 거리를 두고 다정하게 있습니다. 

이 두 분의 능은 경주 통일전 옆 남산자락에 있습니다. 

여느 왕릉과 마찬가지로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예스러움이 가득 묻어나 경건하게 옷매무시를 고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신라건국을 한 6촌장중 한 분의 후손으로서 예를 갖추었습니다.



먼저 헌강왕릉을 보고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정강왕릉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헌강왕은 그래도 많이 알려진 왕입니다. 

신라 49대 왕이며 성은 김씨 이름은 정(晸)이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알려진 경문왕의 아들입니다. 

875년에 즉위해서 12년간 통치했고 886년에 승하했습니다.

 


헌강왕 재위 시절의 통일신라는 태평성세를 누려 서라벌 민가의 지붕은 모두 기와를 올렸으며 밥은 나무 대신 숯으로 짓고 온 장안에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고 합니다. 

일왕이 사신을 보내어 황금을 바쳤을 정도였다 하니 말입니다. 

또한. 헌강왕 시절에 ‘처용무’도 만들어졌습니다. 

하루는 헌강왕이 울산지방의 세죽에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물가에서 여유롭게 앉아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껴 천지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헌강왕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게 하였고 동해의 용왕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헌강왕은 신하에게 명령을 내려 이곳에다 동해 용왕을 위한 절을 짓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사라졌습니다. 

이러하여 개운포라는 지명이 현재에도 남아 있습니다.

 


동해 용왕은 헌강왕이 자신을 위해 절을 짓고 망해사라 한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일곱 왕자와 함께 헌강왕 앞에 나타나 왕의 성덕을 찬양하였습니다. 

용왕의 왕자 중에서 한 명을 궁궐에 남게 하여 헌강왕을 도와 정사를 돌보게 했는데 그 왕자가 처용이었습니다. 

처용이 하루는 궁궐에서 늦게 귀가하자 아내를 범하려는 천연두를 옮기는 귀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용이 자신이 지은 노래와 춤을 추어 역신을 물리쳤다는 설화인데 그때 춘 춤과 노래가 오늘날의 처용무입니다. 

처용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2009년 지정되었습니다. 

헌강왕릉의 높이는 약 4m이며 능의 지름은 약 15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입니다. 

현재 헌강왕릉의 하단부에 4단의 호석을 두른 상태입니다.


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



1993년 왕릉 내부 조사과정에서 벌써 도굴된 상태였으며 길이 142cm, 너비 128~96cm 크기의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는 구조입니다.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m 동서 2.7m에다 벽면은 큰 돌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는데 천장으로 올라갈수록 원형으로 모이는 형식입니다.











정강왕릉은 신라 제50대 왕을 지냈습니다.

 경문왕의 아들로 헌강왕의 아우였습니다. 

이름은 ‘황(晃),’ 헌강왕이 승하하자 태자 요(嶢)가 돌이 안 된 어린 나이였기에 김황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886년에 왕위를 이어받아 1년간 재위하다 887년 승하했습니다.



신라 제50대 정강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3




워낙 재위기간이 짧아 뚜렷한 업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황룡사에서 열린 백고좌에 참석하였고 이찬 김요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했을 정도입니다. 

봉분의 높이는 약 4m이며 지름은 약 15.5m로 헌강왕과 마찬가지인 원형 봉토분입니다.

 봉분 아래쪽에 2단의 호석을 돌렸는데 맨 아래쪽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다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습니다.

능 앞에 1장의 넓은 돌인 상석이 있고 그 앞에 장방형의 돌을 다듬어 석단을 만들었습니다. 

 






헌강왕름과 정강왕릉의 호석에 관한 새로운 재기를 발표한 논문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에 관한 위덕대학교 이진락교수님의 연구 논문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는 민애왕릉과 비숫하며 두 왕릉의 요석 층수는 4단과 2단이 아니라 모두 3단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나오는 1910년대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기록사진과 1995년 경주 문화재 연구소에서 간행한 ‘헌강왕릉보수수습조사보고서(憲康王陵補修收拾調査報告書)’에 나오는 헌강왕릉 토층단면도 등 자료를 비교 분석하였다"는 이진락교수님의 ‘전헌강왕릉과 전정강왕릉의 호석 원형에 대한 일고찰’의 논문에서 입니다.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그러니까 논문은 두 왕릉 모두 지대석 위에 3단 요석, 그 위에 갑석을 올린 형식이라 합니다. 

이진락교수님 논문의 일부지만 이러한 사실을 보지 못했다면 헌강왕릉은 4단 호석이고 정강왕릉은 2단 호석으로만 그저 알고 넘어 갈 뻔 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왜 다른 호석을 했는지 문화재청의 정확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헌강왕릉과 전정강왕릉 호석은 이러한 사실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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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교동여행)경주 교동 최씨고택.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 최씨고택 여행.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최씨 고택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경주최씨 고택은 400여 년 동안 12대 9 진사를 배출한 만석꾼 집안으로 경주에 살았던 저는 경주 최부잣집이라 불렀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은 교동에 있습니다. 교동이란 지명은 682년 신라 신문왕 2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고려 때에는 향학이, 조선 시대에는 경주향교가 자리해서 교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경주여행 교동최씨고택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69




2017/12/1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11/10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여행. 가보지 않아도 가본것 같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정, 화쟁국사비부,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만나다.

2016/11/12 - (경주여행)경주 사천왕사지. 황량한 폐사지에 잡초만 무성, 초석만 천년 흔적을 말해주는 경주 사천왕사지 여행.

2016/11/08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신라 52대 효공왕릉. 신라 52대 효공왕릉 여행.


경주최씨 고택은 1700년경에 지금의 건물을 지을 때 경주향교의 유림이 반대하자 향교의 뜻을 적극 받아들여 향교건물 보다 두 단 낮게 터를 깎아내고 99칸의 저택을 지었습니다. 당시의 그런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경주최씨 최진립 장군의 성품에 기인한 후손의 뜻인지 모르겠지만, 건물의 규모에 비해서 경주최씨 고택은 화려하지 않고 그저 아담한 시골 아낙네를 닮은 듯 소박합니다.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는 경주최씨 최진립장군 사당이 있으며 여기서 조선 중기에 교동으로 옮겨와 경주 교동 최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에 화재가 일어나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가 화마에 불타버렸으나 2006년 큰 사랑채를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에 보니까 작은 사랑채에는 주춧돌만 남아 있었는데 복원을 하려는지 정비된 모습이었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와 고방 등이 현재 남아있습니다. 경주 최부잣집 하면 ‘타인능해’의 철학이 숨 쉬는 구례의 운조루와 같이 흉년에 주위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곳간을 열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사랑채에는 문객들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문객이 많은 집안을 보면 매일 많은 손님이 찾아오고 자연스럽게 접대가 많다 보니 대부분 그 집만의 비법인 가양주가 내려옵니다. 경주최씨 가양주 하면 술 좋아하시는 분은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경주 교동법주는 경주최부자집에만 내려오는 전통주이며 중요유형문화재 제86-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경주 교동법주의 유래를 보면 조선 숙종 때에 궁중의 음식을 관장했던 최국선이 낙향하여 빚었던 술로 궁중에서 유래된 비법으로 빚은 술이라 합니다. 교동법주는 9월에서 다음 해 4월까지가 술을 빚는 최적기라 합니다. 밑술로 밀누룩과 찹쌀을, 덧술로 찹쌀을 넣어 빚어서 100일 동안 숙성을 거쳐야만 미황색의 교동법주가 완성됩니다.

 


외관이 맑고 투명한 교동법주는 그윽한 향기와 맛을 가져 누구나 좋아하는 술이라는 평가입니다. 지금은 그의 10세손인 최경씨가 교동법주 기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럼 경주최씨 고택을 둘러보겠습니다. 일자형의 출입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복원한 큰 사랑채가 보무도 당당합니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복원을 기다리는 작은 사랑채의 주춧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단체 관광객이 있어 먼저 안채를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큰 목조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경주최씨 최부잣집의 부의 상징인 곳간입니다.



우리나라 목재 곳간건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되었다 합니다. 앞면 5칸에 옆면 2칸이며 700~800석의 쌀가마를 보관했다 하니 어마하게 큰 건물로 아마 단독 건물로는 경주최씨 고택에서 가장 높고 큰 건물 같았습니다.

 




안채로 들어가는 쪽문을 지나면 건물은 ‘ㅁ’자 형태입니다. 안채 건물은 건립 당시 8동이었다 하나 지금은 3동만 남아있습니다. 장독대와 붉은 벽돌로 만든 높은 굴뚝을 보면서 교동 최씨 고택의 위상을 새삼 느끼게되었고 사랑채로 돌아 나왔습니다.



현재 화재로 타서 복원된 큰 사랑채가 있지만 불타기 전의 큰 사랑채는 조선 말기와 근대 시기에 나라를 되찾고자 독립운동과 의병에 뛰어들었던 많은 분이 머물렀다 합니다. 대표적인 분은 구한말 태백산 호랑이로 불렸던 영덕의 신돌석 장군, 면암 최익현 선생, 스웨덴의 구스타트 왕세자, 의친왕 이강 등입니다.






경주최씨 고택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게 된 것은 경주 교동 최씨만의 가훈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 기에는 땅을 널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집안의 부를 후대에까지 잇는다는 것이 힘이 드는데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은 최진립 장군의 뒤를 이어 12대를 잇는 만석꾼 집안이 계속 이어진 것을 보면 대단한 집안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언뜻 보면 아주 쉬워 보입니다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자기 호주머니에 한 개가 있다면 한 개 더 갖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자신을 잘 다스림으로써 오늘날 존경받는 경주 교동 최부잣집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주 최부자집 12대 만석꾼이었던 독립유공자 최준 선생은 만석이나 되는 모든 재산을 나라를 찾는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내어 놓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국권 회복단과 대한 광복회에 군자금을 지원하였으며 대한 광복회의 재무를 맡아 활동하다 옥고를 치루기도 했습니다.





또한, 백산 안희재 선생과 백산상회를 설립하고 대표로 취임해서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하였고 상해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께도 군자금을 보내는 등 대한 독립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전 재산을 교육에 투자하여 나라를 이끌어 나갈 동량을 키우려고 대구에다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했는데 이게 오늘날 영남 대학교의 전신입니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을 돌아 나와 인근에 경주향교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경주 교동에서 마약 김밥으로 불리는 교동 김밥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반디인지 비단벌레인지 전동차가 요란하게 경주교동을 깨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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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여행)경주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 남산 감실부처 할매부처로 불리는 경주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을 지탱하는 바위는 모두 소홀히 취급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남산의 수많은 바위에 신라인의 숨결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경주 남산을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지붕 없는 박물관 또는 야외박물관이라 말합니다. 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보 1점에다 수많은 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되었고 단일장소로서 남산은 가장 많은 문화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주남산 불곡석불좌상(불곡마애여래좌상)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산 56

경주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 보물 제198호



2016/07/09 - (경주 남산 여행/경주 남산 가볼만한 곳)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의 많은 불상과 석탑 문화재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경주남산칠불암마애불상군

2016/06/20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남산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을 보지 않고는 경주남산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경주 남산의 모나리자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2016/04/28 - (경주여행/경주남산여행)동남산 서출지와 이요당, 연과 베롱나무가 꽃이 필때 최고 이름값을 한다는 1500년된 서출지와 조선시대 정자 이요당 여행.

2016/04/26 - (경주여행/남산여행)염불사지 삼층석탑. 은은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는 경주 남산리 염불사지 삼층석탑 여행하기.

2013/03/08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남산)보일듯 말듯한 섬세한 조각기법이 예술.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그리고 지금도 확인되지 않은 많은 문화재가 바위 속에서 세상에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는 말인데 경주 남산에서 유행하는 웃스게 소리가 있습니다. 발에 채는 돌멩이도 문화재 일줄 모르니까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문화재가 있나 싶어 ㅎㅎ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경주 남산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 경주 남산여행에서는 아직 가보지 못했던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입니다. 경주 남산 불곡마애여래좌상은 주변의 보리사 석조여래좌상과 탑곡 여래불상군이 골짜기를 달리하며 몰려 있습니다. 항상 보리사와 옥룡암의 불상은 여러 번 찾았으나 조금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불곡마애여래좌상은 좀체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터에 이번에 답사하게 되어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감실에 모신 부처님은 여럿 있지만 바위를 조각한 석조불상과 바위면을 새긴 마애불에서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하물며 경주 남산의 많은 부처님에서는 더 귀한 존재입니다. 경주 남산에서 만나는 감실 부처라는 신선암 마애불도 있지만, 이는 감실 흉내만 조금 낸 수준이라 한다면 불곡마애여래좌상은 온전하게 자연석을 1m 쯤 깊숙하게 파내고 그 안에다 돋을새김으로 1.42m 부처님을 조각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경주 남산의 감실부처는 남자가 아닌 여자의 모습입니다. 처음 불곡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어! 우리 엄마내”하며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진짜 엄마를 닮았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인 단아한 여인상인데 그 모습 때문인지 경주 남산 할매부처라는 애칭이 붙었습니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의 제작 시기는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선덕여왕 재위 때인 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으며 감실부처의 모델은 신라 여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선덕여왕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는 당시 여왕의 이미지와 함께 황룡사 구층목탑, 첨성대, 배동석불, 경주 남산 삼화령 애기부처 등 융성했던 신라불교 시기였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을 보면 마음씨 좋으며 후덕한 엄마의 모습에 왜! 이제야 찾아왔는지 많이 후회되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뵙고 싶어 바위를 올랐습니다. 누구의 정성인지 모르겠지만 굵은 양초가 여러 개 불을 밝히며 꺼지지 않고 제 몸을 태우고 세상을 밝히는 게 꼭 할매 부처의 마음을 보는 듯했습니다.



할매부처의 머리부분은 두건이 귀부분을 덮은 듯 보였으며 둥근 얼굴에 눈은 돌하르방의 왕방울 같이 큼지막하게 표현했습니다. 어깨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옷은 양쪽 어깨에 걸친 통견입니다. 양손은 축 늘어진 소매 속에 서로 포개어 감춘 듯 보이며 부자연스러운 자세에서 발은 오른쪽만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할매부처는 고개를 살짝 숙인게 성당의 마리아상과도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두 종교의 관점이 같아서인가봅니다. 감실부처는 감실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자연채광을 한 온화한 부처의 얼굴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하루해가 가장 낮게 비칠 때인 동지를 전후해서 불그레한 빛이 바위를 비추면 꼭 살아 움직이는 듯 따뜻한 피가 흘러 바위가 화색이 돌면서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온전한 부처님이 드러납니다.

 



이 감실 부처님으로 인해서 부처님이 계시는 골짜기를 뜻하는 불곡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은 많은 부처님이 있습니다. 대부분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지만 그 이전의 고신라 부처는 몇분 남아 있지 않는데 그중에 감실할매부처는 고신라 부처로서 현재 남아 있는 초고령 부처님 중 한 분입니다. 경주 남산 여행에서 꼭 보고와야 할 부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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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신라의 고도는 서라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경주가 옛날 신라의 수도입니다. 그런 경주에 현재 신라의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대역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 대역사가 월정교 복원공사입니다. 월정교는 경주를 관통하는 하천인 남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천에는 신라 천 년을 상징했던 다리가 하나가 아니고 두 곳이 있었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주 월정교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74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11/08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신라 52대 효공왕릉. 신라 52대 효공왕릉 여행.

2016/11/05 - (경주여행)경주 신문왕릉.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라 31대 신문왕릉을 여행하다. 경주 신문왕릉

2016/11/02 - (경주여행)경주 보문리 사지. 경주 보문들의 천년 흔적 보문사지 여행.보문사지

2016/11/01 - (경주여행)황복사지 삼층석탑. 신문왕의 명복을 빌며 세웠다는 국보 제37호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다.


그 두 곳의 다리가 월정교와 춘양교입니다. 두 곳 모두 지금까지 무너진 교각 잔해만 하천바닥에 널부러저 있었습니다. 그 두 교각 중 한 곳인 월정교가 현재 새로운 대역사를 쓰고 복원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월정교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여행이라 했지만,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멀찍이서 주변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궁금해서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언제쯤이면 공사가 끝나는냐고예 ㅎ ㅎ 그 관계자의 말로는 월정교 공사는 거의 끝났으며 주변 조경공사만 마무리하면 된다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내년 봄에는 모든 공사가 끝나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내년 봄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처음 월정교 복원공사를 본 게 아마 2년 전 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도 월정교 외관은 마무리된 것 같았는데 그러다 잊고 지내다, 최근에 블로그에서 월정교 야경 사진을 보고 당장 달려가야겠다 싶었습니다. 월정교 야경사진은 남천에 흐르는 불이 반영되어 정말 내 마음을 홀딱 반하게 만들었습니다. 포스팅 날짜를 보니까 그때가 11월 초순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남산 둘레길을 겸하면 되겠다 싶어 경주를 찾았습니다. 이른 아침인지라 상쾌한 기분을 즐기고 싶어 경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월정교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3km 남짓한 거리를 걸으면서 경주의 다른 문화재를 곁눈질로 보는 즐거움도 누렸습니다. 계획은 도착해서 낮의 월정교를 찍고 둘레길을 걸은 다음 야경을 담으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는 생각으로 월정교에 도착했지만, 월정교와 맞닥뜨린 나의 두 눈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실망보다 더한 낙담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블로그의 반영 야경은 어떻게 찍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월정교는 아직 겉모습만 마무리되었고 주변은 황량함 그대로였으며 특히 반영이 아름다웠던 월정교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물이 담겨 있을 만한 웅덩이도 없을 뿐 아니라 남천의 물도 말라 조금의 반영도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웅장한 월정교의 누정과 교각의 모습에 그저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신라 시대의 월정교가 과연 이런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이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습니다. 그래도 섬세한 누각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천년 고도 경주를 상징하는 건물로서는 손색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월정교는 춘양교와 함께 서라벌의 왕궁을 들어서는 다리였습니다. 두다리는 신라 경덕왕 19년인 760년에 궁궐 남쪽을 흐르는 문천에다 놓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1280년인 고려 시대 충렬왕 6년에 중수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500년 이상을 신라와 고려 시대를 넘나들면서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한 것은 틀림이 없나 봅니다.

 





월정교를 들어서면 곧바로 반월성의 끝과 연결되고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요석궁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자료로만 요석궁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조선 시대에 세워진 경주향교와 최 부자 고택이 있고 경주 교동마을의 고택체험과 상가로 탈바꿈했습니다. 현재 복원된 월정교의 19m 아래에는 요석공주와 원효대사 간의 연결 고리가 된 ‘유교’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원효는 의상과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도중에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닫고 그 길로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와 노래로서 민중 속을 파고드는 포교에 힘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효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느냐.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다듬고자 하는데”라며 노래하고 다녔습니다.






태종무열왕은 원효의 노랫말을 알아듣고는 원효대사를 왕궁으로 불렀습니다. 원효는 태종무열왕이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는 바로 그 길로 궁궐로 향했습니다. 원효는 문천(지금의 남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풍덩 하고 빠져 걸쳤던 옷이 모두 젖어버렸습니다. 그 전갈을 태종무열왕이 받고는 당장 급한 거 없다며 먼저 젖은 옷과 몸을 말리라며 요석궁에 머물게 했습니다.

 


요석궁에는 무열왕의 공주인 요석공주가 머물던 궁이며 그날 밤 당장 사달이 났습니다. 그 사이에서 신라의 성현 중 한 분인 설총이 태어났습니다. 그 후 원효는 파계하여 소성거사라 하면서 대중 속을 파고드는 포교를 했습니다.. 원효가 발을 헛디뎌 빠졌던 다리의 흔적이 월정교 바로 아래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원효가 문천의 다리를 건널 때는 복원된 월정교처럼 누각을 올린 다리가 아닌 그저 평범하고 난간 없는 다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정교 발굴조사에서 배 모양의 교각을 확인했는데 이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센 물살을 고려한 듯 보입니다. 다리 길이는 60.57m이며 교각의 폭이 13m 인 것을 보면 오늘날 건설해도 거대한 다리라 생각됩니다. 교각 사이의 발굴조사에서 타다남은 목재와 기와 조각이 나왔던 것을 추정하면 교각 위에다 누각이 연결된 누교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이런 거대한 다리가 완공되었던 것도 놀랐지만 그 위에다 누각을 올린 다리라니 이를 보면 신라의 건축기술도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월정교의 복원은 2008년~2013까지 66.15m의 교각과 누교 복원을 마쳤으며 그리고 총 110억 원을 들여 2017년까지 교량의 양쪽 끝에다 앞면 5칸, 옆면 3칸, 최고 높이 15.67m의 중층 건물인 문루를 각각 완공했습니다. 문루는 옆에서 보면 여덟 팔자 형태인 팔작기와지붕에 주심포양식입니다. 월정교는 2016년 형산강 8경에 선정되었고 국가지정문화재에 춘양교와 함께 사적 제457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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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경주 최부자 최 씨 고택을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경주향교에 갔습니다. 경주향교는 요즘으로 치면 국립대학입니다. 사립교육기관인 서원과 함께 조선 시대의 양대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경주향교의 전신은 신라 시대로 올라갑니다. 682년 신문왕 2년에 처음 세워졌던 국학이 있었던 곳이며 고려 시대에는 향학, 조선 시대에는 향교로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계속 지방교육기관이 들어섰습니다.





경주향교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경주향교 전화:054-772-3624


2008/10/18 - (경북여행/경주여행)무장사지 삼층석탑과 무장사지아미타불 조성 사적비 이수및 귀부 여행. 태종무열왕이 전쟁후 병기와 투구를 감춘 곳, 경주무장사지 입니다.

2010/07/20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진덕여왕 여행.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진덕여왕릉 찾아가기

2013/03/10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 이것.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2013/03/08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남산)보일듯 말듯한 섬세한 조각기법이 예술.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2013/03/05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야외 박물관 경주 남산 남북 종주 산행.




그리고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둘째 공주였던 요석공주가 과부가 되어 머물렀던 요석궁이 있었으며 훗날 이곳에서 원효와의 로맨스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주 향교 포스팅입니다. 경주향교의 건립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492년 조선 성종 23년에 경주부윤 최응현에 의해서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성전 등 경주향교의 주요건물은 모두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대성전에 봉안했던 성현의 위패는 경주 안강의 도덕산 두덕암(현재 도덕암)으로 옮겼으며 1600년 선조 33년에 경주부윤인 이시발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먼저 중건하면서 위패를 다시 모셔왔습니다.



4년 뒤에는 윤성이 대성전 앞의 동·서무를 중건하고 1614년 광해군 6년에는 부윤 이안눌이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를 중건함으로써 소실되었던 경주향교의 면모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 후 1668년과 1979년에 보수를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향교는 약 5천 평으로 경상북도 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 합니다.

 







명륜당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보았던 여러 향교는 모두 전학후묘였다면 경주향교의 건물배치는 전라도 나주향교·부여향교·전주향교와 강원도 강릉향교 등과 같은 전묘후학인 문묘 영역이 강학영역의 앞쪽에 배치하는 형식을 따랐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 향교의 대표적 형식이라 하는데 저도 여러 향교를 찾았지만, 문묘인 대성전이 앞쪽으로 나오는 형식은 경주향교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경주향교의 대성전과 동·서무는 공자 이외에 성현의 위패를 봉안하여 배향하며 전묘후학의 형식을 따른 향교의 공통점은 대부분 옛 도읍지에 있는 것을 보면 이는 왕들이 공자를 비롯한 성현을 먼저 문묘하는 것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합니다. 경주향교도 조선 시대에는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국가로부터 받아 교생을 가르친 국가교육기관입니다.







대성전은 공자의 시호인 ‘대성지성문성왕’에서 따왔으며 공자의 위패를 중심으로 연국복성공인 안자, 성국종성공 증자, 기국술성공 자사, 추국아성공 맹자 등 중국의 5성과 경주에서 태어난 홍유후 설총, 문장후 최치원, 문원공 이언적 선생 등 3현을, 문묘에 배향한 퇴계 이황, 율곡이이, 김굉필, 조광조, 김집, 송시열 등 우리나라의 18현을 봉안해 음력 2월과 8월 초정일에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존영각


존영각





문묘인 대성전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인 주심포계 외1출목 이익공식(새 날개처럼 생긴 공포 양식) 건물로 내력 또한 분명합니다. 건물의 공포와 창호, 가구는 옛방식의기법이 잘 남아 있고 대성전의 용마루 받침대인종도리에서 건물의 중건연대와 참여했던 장인 등 당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묵서명이발견되었습니다.


대성전



대성전은 경주향교의 중요건축물이며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으로 우수한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국가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경주향교는 입구의 큰문인 외삼문은 출입할 수 없게 잠겨있습니다. 이곳을 통하면 내삼문을 거처 대성전으로 바로 통하지만 문묘 공간이라 출입할 수 없습니다.





경주향교를 보기 위해서는 관리실과 통하는 쪽문을 통해 들어가야 합니다. 먼저 만나는 게우물입니다. 신라 시대 국학이 건립될 때부터 남아 있던 유물로 현재 경주향교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것 같습니다. 널다란 돌 2개를 짜맞추어바닥을 깔고 낮게 테두리를 다듬었으며 요즘 우리가 보는 우물의 모습과는 약간 달라 보입니다.













뚜껑이 덮여있어 알 수 없지만 얕은 우물이라 두레박이 아닌 바가지로 물을 퍼 담을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강학장소였던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거처로 사용했던 동·서재를 만나고 대성전은 동재나 서재 앞쪽 긴 담장 사이를 따라가면 대성전 출입문인 내삼문이지만 문은 굳게 잠겨있어 바깥에서 까치발로 내부 전경을 보고 돌아 나왔습니다. 경주향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이며 대성전은 보물 제1727호로 지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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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구황동 모전석탑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설의 사찰인 도림사가 구황동 모전석탑지.  


이번 경주 여행은 폐사지입니다. 황룡사지, 사천왕사지 등 폐사지라도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지를 뜻하는 감투(?)를 하나쯤 모두 쓰고 있는데 구황동 폐사지는 많은 부재가 남아 있음에도 문화재 지정 타이틀이 없이 그저 울타리만 둘려 잡초더미에 묻혀 있습니다. 이곳은 분황사와 황룡사지에서 도로 하나를 두고 있는 폐사지입니다. 사찰의 이름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인지 모르지만, 동네 이름을 따와 구황동 모전 석탑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구황동 모전석탑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2016/11/10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여행. 가보지 않아도 가본것 같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정, 화쟁국사비부,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만나다.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아니 사실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찰 이름을 비정할 수는 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면 현재 구황동 모전 석탑 지에서 일제강점기인 1930년경에 일본인이 ‘도림(道林)이란 기왓조각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추정해보면 도림사가 맞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으며 삼국유사에 ‘도림사는 입도림 곁에 있었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는 신라의 수도 즉 서라벌 입구에 자리했던 절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구황동 모전 석탑지가 도림사 폐사지가 맞다면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옵니다. 무엇이 재미있냐고요? 모두 아시는 이야기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신라 48대 왕은 경문왕입니다. 경문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경문왕은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더니 자신의 귀가 당나귀 귀와 같이 길어져 있었습니다. 왕은 깜짝 놀라 큰일 났다며 좌불안석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당나귀 귀같이 귀가 길다는 비밀은 왕후와 신하들 모두에게도 비밀로 하였지만, 자신의 왕관을 만드는 사람인 복두장에게 만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경문왕은 복두장에게 만약에 비밀을 발설하면 죽음뿐이라고 입단속을 시켰습니다. 하하 그리고 보면 사람이란 남이 모르는 비밀을 자신만 알고 있다면 입이 얼마나 근질근질 했겠습니까.

 


그것도 임금님 귀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요즘 같으면 ’특종‘감인데 말입니다. 아마 복두장이는 그 비밀을 말하고 싶어 제 명에 못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복두장이는 시름시름 몸을 앓았고 죽기 전에 비밀을 다 털고 갈 욕심에 도림사의 대나무 숲에서 “우리 임금님은 당나귀 귀”하며 큰소리로 외쳤고 복두장이는 죽었습니다. 그 후 바람만 불면 도림사 대나무 숲에서는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며 복두장이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경문왕은 큰일 났다며 사람을 시켜 도림사의 대나무숲을 모두 베게 하고 산수유를 심게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하며 소리가 났다 합니다. 이게 실제 사실이라면 경문왕은 황당해 했겠습니다.

 


모두 초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재미있게 들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전설의 실제 도림사라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느낌입니다. 구황동 모전 석탑 지가 도림사였다 생각하니 어디선가 갑자기 복두장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곳 구황동 모전 석탑지의 남아 있는 부재를 보면 통일신라 시대 모전 석탑 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전 석탑은 중국의 벽돌탑을 모방하여 만든 탑이라 하여 모전 석탑 또는 전탑이라 하며 남은 부재로 짐작해보면 분황사 모전 석탑과 같은 형태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허물어져 산산이 조각났지만 남·북 감실의 돌기둥 2쌍만은 그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돌기둥이 배치된 모양으로 짐작해보면 탑은 정사각형이며 한 변의 길이가 4.5m쯤 되는 크기입니다.



이는 한 변이 13m인 분황사보다는 크기 면에서 아주 작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1층 탑신의 사면에다 감실을 넣고 사방불을 모신 형식이며 돌기둥에는 사천왕인 인왕상을 조각했는데 그 섬세함이 통일신라 조각 기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한 쌍의 인왕상 돌기둥은 금강역사상으로 국립경주박물관 고분관 입구에다 배치해 놓았다 합니다. 그러나 구황동 모전 석탑지의 부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게 화강암 석탑의 지붕돌인 옥개석과 탑신을 바쳤던 지대석입니다. 이를 보면 모전 석탑에 의문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는 사학자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구황동 모전 석탑지에 남아 있는 부재인 인왕상 돌기둥 등을 보면 모전 석탑임이 틀림없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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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사천왕사지. 황량한 폐사지에 잡초만 무성, 초석만 천년 흔적을 말해주는 경주 사천왕사지 여행. 


경주는 신라와 통일신라를 거쳐오면서 오늘날 수많은 불교 문화재가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이 나뒹굴어 혹시 돌멩이도 문화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경주를 문화재의 보고라 합니다. 그러나 경주여행을 하면서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 게 더러 있는데 폐사지에서 그 많은 불교 문화재가 흔적도 찾을 수 없을 때 입니다. 이번과 같은 사천왕사지 방문이 꼭 그런 경우입니다. 






경주 사천왕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935-2



사천왕 사지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세 가지 예지력에 등장하는 사찰입니다. 어느 날 선덕여왕은 신하들에게 자신의 죽을날을 미리 알려주며 도리천에 장사지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을 이해 못 한 신하들은 선덕여왕에게 도리천이 어딥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다 그날에 진짜로 선덕여왕은 승하하였고 신하들은 모여 선덕여왕의 유언대로 낭산에다 장사지내며 왜 여기가 도리천이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리고 30년쯤 후에 선덕여왕릉 아래 사천왕사란 절이 세워졌습니다. 


왜 사천왕사가 지어졌으며 도리천이라 하는지 그 이유를 보겠습니다. 사찰의 일주문을 들어서면 첫 번째로 나오는 전각이 대부분 천왕문입니다. 이곳에 네 분의 사천왕을 모셨는데 모두 험상궂게 생겼으며 사찰로 들어오는 모든 악귀 등 부처님의 나라인 절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사천왕입니다. 불교에서 말하기를 28개의 하늘나라가 있으며 그중에서 첫 번째 나라가 사천왕이 지켜주는 시왕천이며 두 번째 나라가 부처님의 나라로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입니다. 그러니까 사천왕사 위인 즉, 선덕여왕릉이 부처님의 나라인 도리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덕여왕의 도리천 예언은 맞아떨어졌으며 이 모든 게 삼국유사에 나와 있습니다. 


그럼 사천왕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천왕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각각 기술하고 있습니다. 679년 신라 문무왕 19년에 명랑법사가 부처님의 힘으로 당나라 군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낭산 남쪽의 신유림에 창건했다 합니다. 당나라군이 쳐들어오자 임시 건물을 짓고 명랑법사는 중국에서 배운 밀교인 문두루비법으로 바람을 불게 하고 파도를 일으켜 당나라 배를 모두 침몰시켰습니다. 이는 범어로 문두루는 무드라(mudry)의 음사로 ‘신인(神印)’으로 번역됩니다. 명랑법사는 1.2차 당나라군을 물리치고 나서 건물을 다시 고쳐 짓고 사천왕사라 했다 합니다. 현재 사천왕사지의 구조를 보면 통일신라 양식인 금당이 1개에 동·서탑 두 개의 목탑 형식으로 가람배치를 했는데 이는 통일신라 양식으로 사천왕사에서부터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사천왕사는 주춧돌과 목이 달아난 귀부 2개, 당간지주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어 당시 국찰의 면모를 갖추었던 사천왕사는 대사찰의 사격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폐허로 남아있던 사천왕사지는 일제강점기 때인 1918년 처음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으며 1922년, 1928년에도 사천왕사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2006년에 들어 와 서탑지의 정밀조사가 다시 이루어졌습니다. 사천왕사의 체계적 인 발굴조사로 탑의 기단부와 하부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반파된 채로 남아 있던 녹유사천왕상전이 기단석에서 발견되어 사천왕상의 배치 등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합니다. 이 녹유사천왕상은 당시 신라 최고의 조각승인 양지스님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녹유사천왕상은 눈을 부릅뜨고 귀는 축 늘어 졌으며 익살스러운 치아와 생동감 넘치는 인체표현 등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갑옷과 테두리의 장식된 꽃무늬 등 모든 거 하나까지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하여 통일 신라 불교예술의 극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2016/10/31 - (경주여행)신라 27대 선덕여왕릉.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낭산 도리천의 선덕여왕릉 여행과 세가지 예지력.

2016/11/05 - (경주여행)경주 신문왕릉.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라 31대 신문왕릉을 여행하다. 경주 신문왕릉

2016/04/29 - (경북여행/경주여행)능지탑지. 문무대왕 화장터로 알려진 경주 능지탑지 여행. 능지탑지

2016/06/10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석조관음보살입상. 경주 중생사에서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국립경주박물관의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만나다.




사천왕사지 당간지주


현재 사천왕사지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은 사천왕사 입구에 세워진 사천왕사 당간지주입니다. 보통 사찰의 입구에 절을 알리는 당을 거는 깃대를 당간이라 하며 그 당간을 잡아주는 두 기둥을 말합니다. 지면에서 높이가 230cm에 당간의 폭은 50cm이며 현재 당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특이한 점은 3개의 구멍이 있는데 가운데가 원형이고 나머지 상·하는 네모 구멍입니다. 또한, 당간을 받쳤던 당간 받침돌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경주 사천왕사지 목이 달아난 미석 받침돌 귀부


사천왕사지를 알리는 표지석


경주 사천왕사지 목탑지


사천왕사의 목탑지는 1금당 2 목탑의 양식을 따랐습니다. 동·서 2개의 목탑으로 금당지 앞에 좌우에 세워졌습니다. 동탑은 1.3m 높이로 흙을 쌓은 기단 위에 3칸 정사각형을 하고 있습니다. 목탑의 받침돌인 초석은 각각 정사각형이며 크기는 약 50cm입니다. 초석의 가운데 심초석은 약 118cm 크기의 네모 반듯한 모양이며 그 가운데 한 변의 길이가 30cm에 7cm 깊이로 패인 사리공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서탑지 또한 초석과 심초석이 동탑지와 같은 형태입니다.




경주 사천왕사지 금당터


금당지는 사찰의 가운데 위치하며 대웅전을 말합니다. 이곳 사천왕사의 중심부에도 금당의 기둥을 받쳤던 초석이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며 남아 있어 금당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왼쪽 가운데 현재 없어진 3개의 초석은 무덤을 조성하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남아 있는 초석으로 금당지의 크기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건물입니다. 그 가운데에 불상을 안치했던 지대석으로 추정되는 가로 약 200cm, 세로 약 100cm인 정사각형 받침돌 2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주 사천왕사지 좌·우경루터


금당지에서 북쪽으로는 사천왕사 좌·우경루터입니다. 사천왕사의 좌·우경루는 금당지 앞의 동·서 목탑지와 배치되도록 세워졌습니다. 초석의 배치를 보면 경루는 3칸 4방의 건물이며 초석의 중심에 지름이 20cm 크기인 둥근 구멍이 패여 있어 아마 이곳에 어떤 시설물이 있었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2006년 경주 사천왕사지 발굴 현장의 사진입니다. 가운데 금당지와 동·서 목탑지 그리고 좌·우경루터를 사진으로 확인할 수있습니다.(사진 국제신문 서순룡 기자)


사진 국제신문 서순룡 기자 


녹유벽전(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녹유벽전이란 녹색 유약을 바른 벽돌을 뜻하며 동목탑지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동목탑의 기단부를 장식했던 면석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녹유벽전(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서탑목지에서 발견된 녹유벽전으로 기단부를 장식했던 면석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폐사지인 사천왕사를 방문하면서 정말 아쉬웠습니다. 황량하게 변해버린 터에 잡초만 무성하고 그사이에 초석만 드문드문 보여 발굴 당시의 모습과 발굴과 함께 나왔던 유물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사천왕사지에서 ‘녹유벽전’ 이외에도 ‘녹유사천왕상’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이곳의 유물은 현재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참 궁금하고 아쉬운 부분입니다.(경주 사천왕사지 사적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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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분황사 여행. 가보지 않아도 가본것 같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정, 화쟁국사비부,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만나다.


경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분황사모전석탑 여행을 하면서 이번에는 분황사 모전 석탑을 제외한 분황사 내에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인 원효대사의 비석을 받쳤던 화쟁국사비부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호로 신라 호국용의 전설이 있는 석정, 그리고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9호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소개하겠습니다.





분황사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12

분황사 전화: 054-742-9922




그러나 먼저 분황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가야겠습니다.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창건하였습니다. 창건과 함께 모전 석탑이 완성되었는데 당대의 유명한 선승인 자장율사와 원효대사가 주석하면서 분황사의 사격을 더 높였습니다


분황사 석정


솔거가 그렸다는 관음보살상 벽화가 있었다 하며 755년 신라 경덕왕 14년에 강고내말이 구리 306,700근으로 약사여래상등을 주조하여 봉안했던 약사여래좌상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또한, 분황사는 당간과 지주, 중문, 석탑, 3금당, 강당, 회랑을 갖춘 대가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말인 1238년 고종 25년에 몽골군과 조선 시대에 일어난 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분황사의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습니다.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분황사는 두 전란이 끝나고 1609년인 광해군 1년에 중창하였으며 보광전에는 약사여래입상이 현재 분황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먼저 분황사의 석정을 보겠습니다. 신라 호국용의 설화가 전해오는데 돌우물로 겉면은 8각이며 내부는 둥근 원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우물을 ‘호국룡변어정’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합니다. “분황사 우물과 금학산 아래 동천사의 동지와 청지로 각각 불리는 우물에는 통일신라를 지킨다는 호국용이 살고 있었습니다. 때는 원성왕 11년인 795년입니다. 중국 당나라 사신이 와서 각각의 우물에 있는 호국용을 물고기로 만들어 잡아갔습니다.



어느 날 두 여인은 이 사실을 알고 원성왕을 찾아와 남편을 찾아달라 부탁하였습니다. 이에 원성왕은 사람을 시켜 당나라 사신이 잡아간 물고기로 변한용을 다시 돌려받아 자신들의 우물에 각각 풀어주었습니다.



이 우물은 통일신라 시대에 설치한 우물로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 탄압으로 고려까지 국교로 이어온 불교가 유교에 억압을 받았습니다. 급기야 사찰 내의 모든 돌부처의 목을 날라갔으며 이 석정에다 처박아 넣었던 아픔이 있습니다. 현재 통일신라의 돌우물 중에서 가장 크며 오늘날까지 우물로 사용될 만큼 상태가 깨끗하다 합니다.

 


이번에는 인근의 원효대사 받침돌로 사용된 분황사 화쟁국사비부입니다. 화쟁국사비는 1101년인 고려 숙종 6년 8월에 내린 조서에 분황사에 세워졌습니다. 숙종은 원효가 동방의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원효대사를 칭송하는 비석이나 시호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대상화쟁국사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유사가 비를 세우게 했습니다.



현재 비신은 사라지고 없으며 비 조각만 한두 개씩 발견되어 화쟁국사비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합니다. 비를 꼽았던 비대석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인 ”차신라화쟁국사지비적“이 음각되어 있으며 직육면체인 비대에 비신을 꽂는 직사각형의 홈이 패여 있습니다. 이번에는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입니다.


분황사 보광전 약사여래불


보광전은 1998년 3월에 수리하면서 건물을 해체하였습니다. 그때 벽화를 볼 수 있었으며 임진왜란에 소실되었다는 기록과 1680년 5월에 중건하였으며 약사여래상은 만력 기유년인 1609년에 구리 5,360근으로 주조하여 봉안했다고 상량문에 나와 있다 합니다.

 


약사여래입상의 높이는 3.45m로 1800년대에 만들어진 청동제 불상입니다.  왼손에 들은 건칠제 약함 뚜껑 안쪽에 “건륭 39년 을미 4월 25일 조성야 “란 붉은 글씨가 남아 있으며 이는 1774년인 영조 50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입상은 처음에는 755년 강고내미가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원형은 거의 파괴되어 조선시대에 들어와 새롭게 보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분황사 약사여래입상은 얼굴이 둥글고 넓으며 낮은 상투 모양이 표현된 머리에는 석회를 뭉쳐 만든 나선형 머리카락을 부착하였습니다. 





양 어깨에 걸친 법의는 두껍게 처리했는데 이는 장대한 신체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대의 사이에 화형으로 접고 띠를 두른 군의가 ‘U '자형으로 층단을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무릎 밑에 이르러 3단으로 접혀 있습니다.



대좌는 아무런 조식이 없는 판석으로 대신하고 불상 앞에 놓인 석제 불단은 사천왕상이 새겨진 통일신라 시대의 탑몸돌의 받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불상의 양식을 보면 조선 후기로 제작연대가 확실하여 불상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 참고)


 

분황사 관람안내

분황사 입장료: 어른 1,300원, 청소년및 군인 1,000원, 어린이 800원

 분황사 입장시간:08:00~17: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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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은 무조건 경주였습니다. 국사 시간에 많이 접했던 신라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본다는 즐거움으로 가슴 설레었던 경주 여행은 그중에서도 필수 코스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자동차로 쌩쌩 달려 도착하지만, 당시에는 고사리 같은 손을 맞잡고 걸어서 석굴암을 올랐습니다.





분황사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구황동)분황사



또한, 불국사도 여행하였고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분황사였습니다. 이를 두고 흔히 경주 3대 여행지라 했습니다. 경주여행에서 꼭 빠지지 않고 본다는 분황사 9층 석탑은 불국사와 석굴암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어린 시절 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초등학생의 어린 마음에 아무리 봐도 3층뿐인데 왜 9층 석탑이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과 같은 석탑이라 하는데도 전혀 모양이 달라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그저 아주 특별하구나 하며 뇌리에 강하게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게 벌써 40년도 훨씬 전 일입니다.



경주는 제가 태어난 고향입니다. 그 때문에 매년 한두 번씩 여행 삼아 찾아갑니다. 그때마다 분황사는 강한 뇌리감 때문인지 가보지 않아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해 항상 빼놓고 여행을 했습니다. 이제 성인이 되어 우리 문화재 찾는 것을 좋아해서 여러 곳의 탑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탑의 특성도 알게 되었고 덩달아 분황사 9층 석탑을 모전 석탑이라 부르는 것과 그 재질과 왜 9층 석탑이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경주 분황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가보지 않아도 가본 곳 같은 분황사라 초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처음 가봤습니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과 분황사는 그대로 똑같았습니다. 그만큼 나에게 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분황사는 신라 시대 634년인 선덕여왕 3년에 창건하였고 분황사 9층 석탑도 세워졌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을 보드라도 이웃한 황룡사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큰 규모로 보이지만 지금 분황사는 9층 석탑을 빼면 너무나 초라한 모습입니다.



분황사는 분황사 9층 석탑인 모전석탑이 분황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덕여왕 시절인 창건 당시의 분황사는 당대의 선승인 자장율사와 원효대사가 주석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643년 당나라 유학 중 왕명을 받고 자장율사는 대장경 일부와 불전에 필요한 번당, 화개 등을 들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이에 선덕여왕은 분황사에 머물게 하면서 대국통의 벼슬을 내렸습니다. 또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원효는 분황사에서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면서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원효가 죽자 그의 아들인 설총은 원효의 뼈로 소상을 만들어 이곳 분황사에 모셨으며 소상은 고려 시대까지 남아 있었다 합니다.

 


당시 선덕여왕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조용한날이 없었습니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치열함 속에 선덕여왕은 국교인 불교에 의지하며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9층 석탑의 거대한 탑을 세웠으며 이로써 신라왕실의 권위를 더욱 굳건히 하고 백제와 고구려에 국력을 과시하는 포석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분황사 9층 석탑은 3층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게 9층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정말 웅장하였을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고려 말 몽골의 침입과 조선 시대 임진왜란으로 분황사 9층 석탑은 파괴되었고 남아있던 전각 대부분도 소실하였다는 기록이 동경잡기에 있습니다. 이번 분황사 포스트는 분황사 모전 석탑입니다.



그 외 분황사에 남아 있는 원효대사 비석 받침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 화쟁국사비부와 신라 호국용의 설화가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2호 석정, 그리고 보광전의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9호 약사여래입상은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분황사 9층 석탑은 화강암 재질인 기존 석탑과는 형태가 다르게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 만들었다 하여 이를 모전 석탑이라 합니다. 모전 석탑은 중국에서 유행했던 양식이 신라의 석탑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통일신라로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인 화강암의 석탑으로 바뀌었습니다.





분황사 모전 석탑을 보면 자연석을 다듬은 막돌을 1.06m의 높이로 쌓아 그 기단 위에 넓은 화강암을 바닥 돌로 삼았습니다. 바닥은 정사각형의 형태로 한 변의 길이가 대략 13m이며 그 위에 벽돌 모양의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전탑입니다. 1915년 일제는 허물어진 분황사 9층 석탑을 수리한다고 해체하여 지금의 상태로 만들어 현재 3층 석탑이 된 연유입니다.

 




당시 2층과 3층 사이에는 돌로 만든 함속에 사리장엄구가 들은 은제 사리함 등이 나왔다 합니다. 1층 탑신의 네 곳에는 불상이 들었던 것으로 보이는 감실을 두었으며 출입구가 있습니다. 출입구 좌·우에는 사천왕인 인왕상을 두었는데 근육의 볼륨감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인왕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출입구에는 여닫는 석문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기단의 네 귀퉁이에는 동물상을 배치했으며 왼쪽은 사자와 흡사하고 오른쪽은 암사자를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추어 눈에는 물개와 흡사한 모습입니다.









이는 불국사의 다보탑에 배치한 사자 석상과 같은 이치로 불교에서 불탑을 수호하는 동물은 사자입니다. 분황사 모전석탑의 사자상도 그와 같은 의미로 보입니다. 분황사 모전석탑은 신라 석탑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자 신라 시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석탑이며 현재 국보 제30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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