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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 남산의 서쪽에는

배동 삼릉이 있습니다.

삼릉숲이라고도 하는데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왕릉을 둘러싸고

소나무가 일대 장관입니다.

삼릉(사적 제219호)과 이웃한 곳에는

신라 55대 경애왕릉(사적 제222회)이 있는데

이번 경주여행은 삼릉과 삼릉숲,

경애왕릉을 소개합니다.

경주 삼릉숲 주소:경북 경주시 배동 산 73-1

2021/01/26 -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방가방가 이번 여행지는 경주 서쪽에 있는 오봉산 정상의 주사암 입니다. 경주 오봉산 주사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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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은 동·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는데서 유래합니다.

아래쪽부터 보면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입니다.

모두 박씨 성을 가진

무덤이라 합니다.

2021/01/25 - (경북경주여행)피톤치드 언택트 힐링 여행지 건천편백숲 여행. 경주 건천 편백나무 숲

 

(경북경주여행)피톤치드 언택트 힐링 여행지 건천편백숲 여행. 경주 건천 편백나무 숲

(경북여행/경주여행)피톤치드 언택트 힐링 여행지 건천편백숲. 경주 건천 편백나무 숲 방가방가 아직 코르나19는 종식 될 생각이 없는 듯 계속 감염자가 늘고 있습니다. 경주 건천편백숲내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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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은 모두 원형이며

흙을 쌓아 올렸습니다.

삼릉의 가운데 무덤인

신덕왕릉은 1953년과 1963년에

2차례나 도굴을 당했다고 합니다.

내부는 횡혈식석실묘이며

동·서 내부 벽면에

붉은색, 황색, 백색, 군청색, 검정색이

칠해진 흔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당시 신라의 무덤에서는

벽화가 그려지지 않았다는데

신덕왕릉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2020/10/09 - (경북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경북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경북여행/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는 벌써 지나 10월에 들어서면서는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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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숲을 지나

남쪽의 석교를 건너면

경애왕릉이 나옵니다.

경애왕(재위 924~927)은

통일신라시대 경명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자신의 대에서 신라가 망하게 되는

비운의 왕입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재위 4년에 포석정에서

연회를 열던 중

후백제 견훤의 습격으로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다 합니다.

후백제군이 아무리 신출귀몰하게 왔다지만

왕경까지 들키지 않고 온다는 것은

참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2020/09/23 - (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배리삼존불

 

(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

(경주여행)보호한다고 지은 전각에 미소도 잃고 초록색 이끼가 뒤덮인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배리삼존불 방가방가 야외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 배리삼존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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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남산 해목령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해목령 가까이에 있는 일성왕릉을

경애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합니다.

경주 삼릉은 일대는

왕릉도 왕릉이지만,

왕릉을 에워 싼

소나무 숲이 알려져 있습니다.

뒤틀리며 올라간 소나무는

많은 사진애호가를 불러 모우는

출사지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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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과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여행.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경주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나는 문화재 중 하나가 신라 왕릉입니다. 

신라는 935년에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 의해 망할 때까지 긴 역사를 가진 왕조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왕릉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아마 경주 왕릉을 다 둘러보려면 몇 날 며칠을 잡아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5




2017/12/1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2017/04/11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11/05 - (경주여행)경주 신문왕릉.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라 31대 신문왕릉을 여행하다. 경주 신문왕릉

2016/10/31 - (경주여행)신라 27대 선덕여왕릉.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낭산 도리천의 선덕여왕릉 여행과 세가지 예지력.



 


그리고 경주의 많은 왕릉은 29대 태종무열왕을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무덤 주인을 밝히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와 유사한 기록을 보고 후대에서 모두 비정한 상태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도 삼국사기의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을 근거로 1730년경에 경주김씨 문중에 의해서 비정된 상태라 합니다.



하도 왕릉이 많아서 훌륭한 업적이나 치적이 많지 않아 생소한 왕도 있습니다. 

이번 경주 여행에서 찾았던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약 400m 거리를 두고 다정하게 있습니다. 

이 두 분의 능은 경주 통일전 옆 남산자락에 있습니다. 

여느 왕릉과 마찬가지로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예스러움이 가득 묻어나 경건하게 옷매무시를 고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신라건국을 한 6촌장중 한 분의 후손으로서 예를 갖추었습니다.



먼저 헌강왕릉을 보고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정강왕릉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헌강왕은 그래도 많이 알려진 왕입니다. 

신라 49대 왕이며 성은 김씨 이름은 정(晸)이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알려진 경문왕의 아들입니다. 

875년에 즉위해서 12년간 통치했고 886년에 승하했습니다.

 


헌강왕 재위 시절의 통일신라는 태평성세를 누려 서라벌 민가의 지붕은 모두 기와를 올렸으며 밥은 나무 대신 숯으로 짓고 온 장안에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고 합니다. 

일왕이 사신을 보내어 황금을 바쳤을 정도였다 하니 말입니다. 

또한. 헌강왕 시절에 ‘처용무’도 만들어졌습니다. 

하루는 헌강왕이 울산지방의 세죽에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물가에서 여유롭게 앉아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껴 천지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헌강왕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게 하였고 동해의 용왕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헌강왕은 신하에게 명령을 내려 이곳에다 동해 용왕을 위한 절을 짓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사라졌습니다. 

이러하여 개운포라는 지명이 현재에도 남아 있습니다.

 


동해 용왕은 헌강왕이 자신을 위해 절을 짓고 망해사라 한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일곱 왕자와 함께 헌강왕 앞에 나타나 왕의 성덕을 찬양하였습니다. 

용왕의 왕자 중에서 한 명을 궁궐에 남게 하여 헌강왕을 도와 정사를 돌보게 했는데 그 왕자가 처용이었습니다. 

처용이 하루는 궁궐에서 늦게 귀가하자 아내를 범하려는 천연두를 옮기는 귀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용이 자신이 지은 노래와 춤을 추어 역신을 물리쳤다는 설화인데 그때 춘 춤과 노래가 오늘날의 처용무입니다. 

처용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2009년 지정되었습니다. 

헌강왕릉의 높이는 약 4m이며 능의 지름은 약 15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입니다. 

현재 헌강왕릉의 하단부에 4단의 호석을 두른 상태입니다.


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



1993년 왕릉 내부 조사과정에서 벌써 도굴된 상태였으며 길이 142cm, 너비 128~96cm 크기의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는 구조입니다.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m 동서 2.7m에다 벽면은 큰 돌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는데 천장으로 올라갈수록 원형으로 모이는 형식입니다.











정강왕릉은 신라 제50대 왕을 지냈습니다.

 경문왕의 아들로 헌강왕의 아우였습니다. 

이름은 ‘황(晃),’ 헌강왕이 승하하자 태자 요(嶢)가 돌이 안 된 어린 나이였기에 김황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886년에 왕위를 이어받아 1년간 재위하다 887년 승하했습니다.



신라 제50대 정강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3




워낙 재위기간이 짧아 뚜렷한 업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황룡사에서 열린 백고좌에 참석하였고 이찬 김요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했을 정도입니다. 

봉분의 높이는 약 4m이며 지름은 약 15.5m로 헌강왕과 마찬가지인 원형 봉토분입니다.

 봉분 아래쪽에 2단의 호석을 돌렸는데 맨 아래쪽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다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습니다.

능 앞에 1장의 넓은 돌인 상석이 있고 그 앞에 장방형의 돌을 다듬어 석단을 만들었습니다. 

 






헌강왕름과 정강왕릉의 호석에 관한 새로운 재기를 발표한 논문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에 관한 위덕대학교 이진락교수님의 연구 논문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는 민애왕릉과 비숫하며 두 왕릉의 요석 층수는 4단과 2단이 아니라 모두 3단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나오는 1910년대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기록사진과 1995년 경주 문화재 연구소에서 간행한 ‘헌강왕릉보수수습조사보고서(憲康王陵補修收拾調査報告書)’에 나오는 헌강왕릉 토층단면도 등 자료를 비교 분석하였다"는 이진락교수님의 ‘전헌강왕릉과 전정강왕릉의 호석 원형에 대한 일고찰’의 논문에서 입니다.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그러니까 논문은 두 왕릉 모두 지대석 위에 3단 요석, 그 위에 갑석을 올린 형식이라 합니다. 

이진락교수님 논문의 일부지만 이러한 사실을 보지 못했다면 헌강왕릉은 4단 호석이고 정강왕릉은 2단 호석으로만 그저 알고 넘어 갈 뻔 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왜 다른 호석을 했는지 문화재청의 정확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헌강왕릉과 전정강왕릉 호석은 이러한 사실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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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국립경주박물관 불두(부처머리). 1959년 사라호 태풍의 선물(?)이라는 경주 남산 철와골에서 발견된 초대형 불두를 경주 박물관에서 보다. 


강한 태풍이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지만 또한 더러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도 하고 갑니다.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중에서 우리 부모님 세대가 가장 끔찍했다 생각하는 태풍은 1959년 9월 17일 미명의 새벽에 한반도를 상륙한 사라호 태풍입니다. 최대풍속이 85m/s로 당시 사망과 실종자만 무려 849명과 이재민이 37만 명을 웃도는 한국 전쟁 이후 최대의 난리 아닌 난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라호도 큰 피해를 주고 가는 게 미안했던지 야외박물관이라는 경주 남산의 철와골에 대형 불두(부처 머리)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가버렸습니다.





 


이 부처 머리가 얼마나 큰지 높이는 153cm에 무게는 1.7톤으로 초대형 불두였습니다. 얼마나 크고 무거웠으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오는 것도 큰 문제였는데 군의 공병대까지 나서서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왔습니다. 불두를 자세히 보면 이목구비가 뚜렷한데 민머리에 틀어 올린 머리인 육계는 큼지막한 게 머리 위에 우뚝하고 이마에는 백호를 돋을새김했습니다. 또한, 반원형의 눈썹 하며 도톰한 눈두덩을 보면 마음씨 좋은 우리 옆집 아저씨의 모습입니다. 아쉽게도 오뚝했을 코는 사라호 태풍 때문인지 깨어졌으며 두툼한 입술은 옅은 미소가 베어져 나옵니다. 불두의 크기만으로도 석불상의 전체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입상이라면 10m 이상의 석불 상일 것이며 좌상이라도 최소한 6m 이상의 크기라야만 비례가 맞습니다.


 


그러나 철와골의 그 어느 곳에서도 이 불두를 지탱할만한 몸체를 찾을 수 없었다 합니다. 태풍에 의해 이곳으로 공중부양해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그럼 과연 이 불두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추정을 하면 경주 남산의 열암골 마애불이 그 좋은 예입니다. 열암골 불상의 비례는 불두만 1/4인 4등신에 전체 높이는 460cm입니다. 즉 기도자의 시선을 고려하여 이목구비가 선명하며 뚜렷한 부처님의 머리를 크고 잘 보이도록 하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인자한 얼굴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가까이서 보인다면 더욱 숭배심이 생긴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뜻으로서 철와골의 부처가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 철와골에는 이 불두를 받칠만한 크기의 몸체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경주남산의 미스터리 중 하나입니다. 사고 만 치고 가는 게 미안해서 아마 사라호 태풍이 선물한 게 아닌지 싶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대형 불두 발견한 곳: 경주남산 철와골

경주 남산 철와골 불두 제작시기: 통일신라 8세기 말에서 ~9세기초


★국립경주박물관 주소: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전화: 054-740-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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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남산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을 보지 않고는 경주남산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경주 남산의 모나리자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경주에서 그것도 남산 여행을 할 때는 꼭 챙겨 가는 곳이 있습니다. 아니 안가면 뭔가 서운한 게 꼭 빠진 듯한 느낌이 들어 일부러 그곳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곳이 어디냐고요??? 그곳은 바로 경주 남산의 바위 꼭대기에 조성된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입니다. 이리 설명을 해서는 조금 생소하다고요. 그럼 경주 남산에서 유일한 국보가 있는 칠불암이 있습니다.






◆경주남산 가볼만한 곳


2016/04/28 - (경주여행/경주남산여행)동남산 서출지와 이요당, 연과 베롱나무가 꽃이 필때 최고 이름값을 한다는 1500년된 서출지와 조선시대 정자 이요당 여행.

2016/04/26 - (경주여행/남산여행)염불사지 삼층석탑. 은은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는 경주 남산리 염불사지 삼층석탑 여행하기.

2013/09/11 - (경북맛집/경주맛집)경주남산맛집, 오리맛이 살아 있네 약천한방생오리전문점

2012/09/24 - (경주남산여행)보리사 마애석불. 잔잔하며 엷은 미소가 아름다운 보리사 마애석불

2012/09/28 - (경주남산여행)장인의 조각솜씨에 경탄, 화강암을 시루떡이라 생각했는지-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

2013/02/11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남산여행 상서장.시대의 풍운아 최치원과 상서장

2013/03/08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남산)보일듯 말듯한 섬세한 조각기법이 예술.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2009/05/25 - (경북여행/경주여행) 경주남산 약수계곡 마애입불상. 불두는 달아나고 없지만 경주남산에서 섬세하고 가장 큰 경주 약수계곡 마애 입불상







칠불암을 기댄 곧추선 바위 꼭대기에 얹어진 집채만 한 바위에 부조한 마애불이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입니다. 남산의 많은 문화재 중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보물 제199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경주 남산의 많은 마애불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것 같습니다.





과하지 않은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를 보면서 신라인의 미소를 생각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신라인의 미소를 머금은 듯한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경주 출신의 한사람인 저의 마음을 항상 찾을 때마다 포근하게 해줍니다.





누군가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모나리자의 아름다움에 빗대어 경주 남산의 모나리자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정말 경주 남산에서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하며 딱 어울리는 애칭 같습니다. 지금부터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만나보겠습니다.















최근에 만났던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전에 없던 안전시설물이 설치되었고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찾아가던 길이 조금은 위험해서 진입로를 돌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안전시설물인 나무 울타리입니다.







원래 이곳은 토함산 넘어 동해 일출이 장관입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햇볕을 받으면 마치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따뜻한 체온이 숨어 들어온양 갑자기 붉게 변하며 온화한 미소는 더욱 화사하게 변하고 근육은 살아 있는 듯 꿈틀 그리는 모습에 넋을 잃고 보았던 곳입니다. 그런 곳에 목책이 있어 이제 전체적인 감흥은 조금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머리에는 삼면보관 위로 보계가 솟아있어 보살상을 뜻합니다. 얼굴에 나타난 이목구비는 뚜렷하지만 약간은 통통하고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남성의 근엄한 표정과 온화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천의는 몸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대좌 아래로 흘러내리며 두 손은 가슴까지 들었습니다.








오른손은 꽃가지를 왼손은 엄지와 장지를 붙이고 가슴까지 들어 올려 설법하는 모양을 취했습니다. 또한, 오른발은 대좌 아래로 내려 연꽃 위에 올렸으며 왼 다리는 대좌 위로 올린 유희좌와 비슷한 반가좌의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아주 드문 예로서 평가받으며 대좌 아래에 뭉글뭉글한 구름을 조각하여 마치 천상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여행에서 남산을 오르지 않고는 경주를 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보지 않고는 경주 남산의 신라 예술품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저에게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2005년 당시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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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남산여행)염불사지 삼층석탑. 은은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는 경주 남산리 염불사지 삼층석탑 여행하기. 


야외박물관이자 문화재의 보고로 부르는 경주 남산은 파도파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경주 남산 여행을 계획하면서 어떤 문화재와 다시 만날까 싶어 떠나기 전부터 내 가슴은 한참을 설레었습니다.




◆경주 남산 염불사지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2/09/24 - (경주남산여행)보리사 마애석불. 잔잔하며 엷은 미소가 아름다운 보리사 마애석불


2012/09/28 - (경주남산여행)장인의 조각솜씨에 경탄, 화강암을 시루떡이라 생각했는지-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


2012/11/01 - (경주남산여행)살인미소 짓는 부처님의 모습이 경주남산 보리사 석불좌상으로 태어나다. 미륵곡석조여래좌상


2012/11/05 - (경주남산여행)각기 다른 동,서탑의 모양이 특이한 경주 남산리 삼층 석탑


2013/02/04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신발견 마애불을 보면 신이 있다고 믿을 수 밖에... 열암곡 신발견 마애대불


2012/09/30 - (경주여행)경주남산서출지. 추석날 고향 같은 분위기가 좋은 서출지와 이요당


2013/02/21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 신선이 빚었을 것 같은 우아한 모습


2011/01/12 - (경주여행/남산 신선암 마애불)신선암 마애불에서 기도하는 보살님



 

이번에는 동남산 자락에서 필자가 처음 만나는 전 염불사지 삼층석탑입니다. 워낙 문화재가 많아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따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으며 절터인 염불사지만 사적 제31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전 염불사지 동탑

 

염불하면 다 아시지요.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외우는 독경 소리를 말합니다. 많은 사찰 이름에서 염불사는 사실 생소한데 이곳에는 삼국유사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느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놓고 염불을 외우셨습니다. 그 소리가 서라벌 내 동서남북 360방 17만 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셨습니다. 매일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듣다 보니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게 되었고 스님을 염불사(念佛師)라 불렀습니다. 그 후 스님이 입적하자 흙으로 스님의 소상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에 모시게 되었고 스님이 목탁을 치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던 동남산 아래 피리사(避里寺)를 염불사(念佛寺)로 고쳐 부르며 스님의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전 염불사지 서탑

 

전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모두 무너져 있었고 탑재는 도지동의 이거사지 삼층석탑의 1층 옥개석과 조합하여 1963년 불국동 구정광장에 삼층석탑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다 2008년 1월 염불사지 삼층석탑을 복원하고자 해체하였고 2007년 6월부터 시작된 복원작업은 2009년 1월에 동·서 쌍탑인 삼층석탑을 복원 완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서탑에는 사리장엄구를 봉안했던 사리함이 다른 석탑에서 볼 수 없는 2개가 들어 있었고 3층 탑신의 방형 사리공이 투공되고 탑재 등을 종합해보면 전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염불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1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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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열암곡석불좌상. 입을 닫고 살기위함인지 마스크를 한 열암곡석불좌상.



◆경주 열암곡 석불좌상◆

경주 열암곡석불좌상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13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산 119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삼층석탑등 신라시대의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흔히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경주 남산. 남산에서 삼릉과 화랑교육원이 있는 남산리를 서남산과 동남산의로 분류한다. 두곳의 문화재는 사실 여러번 포스팅을하였다. 열암곡 석불좌상이 남남산도 봄에 다녀왔던 곳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석불좌상 주위로 눈이 그 당시에도 남아 있어 계절상 다시 곧 겨울이 올 것 같아 더 늦기전에 포스팅을 하였다. 남산에서면 인간과 함께 공존해온 숨결의 변화를 느껴보게된다. 남산 노곡리 열암계곡 7부 능선에 능선에 자리한 열암곡석불좌상은 항마촉지인의 자세로 연꽃좌대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2005년 처음으로 주변에 파손된 상태로 남아 있던 불두가 발견되어 정비를 하게 되었는데 주변에 흩어져 나뒹굴던 파편을 찾아내어 끼워맞추는보수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열암곡석불좌상을 보면은 육계는 낮고 넓다. 얼굴은 양감이 있지만 코와 입주변은 깨어진 상태로 꼭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불상을 보면은 당당한 자세로 안장감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혼신을 다하여빚어낸 어느 석공의 걸작품이다. 석불좌상의 광배는 화염문과 당초문 그리고 9구의 화불을 섬세하게고 세세하게 새겨 놓았다. 석불좌상을 받치고 있는 연화좌대는 상대는 앙련을 3단으로 두고 하대는 복련을 새겼다. 상하대 사이의 팔각 기둥인 중대석은 만들어 끼웠다. 이 불상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비슷하며 8~9C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양식과 수법을 따르고 있다.





 







광배의 모습.







마스크를 한 열암곡석불좌상




열암곡석불좌상.
















열암곡신발견마애불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열암곡석불좌상 때문에 열암곡신발견마애불도 이곳에서 발견, 열암곡석불좌상.


이곳에는 전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열암곡신발견마애불 발견되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곳 열암곡의 신대륙 마애불의 발견은 참 우연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에 있던 열암곡석불좌상 때문이다.  경주의 많은 불상이 머리가 떨어져 나간 상태로 불신만 발견되고 아니면 불두만 남아 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열암골의 석불좌상도 불두는 사라지고 몸만 남아 있었다. 그게 2005년에 우연찮게 답사객에 의해 계곡에서 불두가 발견이 되었다. 2007년도에 석불좌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넘어져 불상의 존재를 알 수 없는 바위의 석불입상이 또 발견하게 된 것이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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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남산 신선암 마애불)신선암 마애불에서 기도하는 보살님

 

경주 남산은 옆의 고위산과 통 들어 남산으로 불린다. 억겁의 세월동안 깍이고 잘려나간 산사면이 바위가 되고 그 바위면을 신라인들은 가만히 두지를 못하였다. 그 바위에 신라인들은 한결 같이 바위 마다 신라인의 마음을 새겨 넣은 마애불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1.4m 높이인 신선암 마애불이다.
보물199호로 지정 되었으며 작은 감실을 만들어 한발은 자연스럽게 내리고 다른 다리는 반가부좌를 한후 연화대에 않아 동해 쪽으로 바라보며 신라의 흥망성쇄를 생각하였을까?. 신라때는 이자리에도 작은 암자가 있었을 것이며 바위면에다 홈을 만들고 지붕을 덮어 마애불을 보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작은 암자도 그리고 마애불을 보호하였던 전각도 사라지고 없지만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만은 1000년 전에 그 모습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 마애불을 찾은 날 마침 보살네분이 마애불에 올라와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고 또 빌고 하는 모습이 천년전 누군가가 여기에 올라와 소원을 빌었던 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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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농원 할매 칼국수집

날씨가 추운 겨울철에는 어떤 음식이 좋을까요.

그래도 국물이 있는 따뜻한 음식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물이 있는 따근따근한 음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먼저 손이 가는 우리밀 칼국수가 어떤가요.

이구동성으로 “예” 하는 답이 돌아온다.


사실 가족끼리 야유회나 고적답사 간단한 산행후 들릴만한 음식점을 많이 찾는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며 깔끔한 맛의 음식점을 추천해 달라는 분이 종종 있어 경주 남산에 가실분은

이집을 권해본다. “단감농원 할매 칼국수집(054-745-4761)”이다. 칼국수와 단감농원 별 이름이 맞지 않아 물어 보았는데. 칼국수집을 하기 전에 단감과수원을 하였고 그 단감 과수원에서 칼국수집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감농원 칼국수집으로 상호를 정하게 되었다 한다. 지금은 단감농원이 아닌 가정집으로 내려와 영업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집의 밀은 순수 우리밀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삼릉 인근에는 칼국수집이 10여곳 더 있지만 이집이 가장 먼저 시작을 하여 원조라면 원조집이고 입소문이 나 경주 인근에서는 꽤 유명한 집이다. 국물은 새우와 다시마 그리고 멸치로 다시 국물을 낸 후 사용을 하여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하며 쫄깃한 면발과 함께 호박등이 첨가된 우리밀 칼국수에 양념장을 넣어 먹는 그 맛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 다뜻한 아랫묵에 앉아 먹는 칼국수 함 드셔 보세요. 파전도 있습니다
칼국수 4,500원






할머니께서 미리 칼국수를 만들 수 있도록 반죽을 해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좌측에 적당한 크기로 보관을 한고 손님이 들어오면 반죽해둔 것을 밀어서 칼로 짜른후 칼국수가 됩니다.

반죽된 칼국수를 편편하게 밀었던 칼국수 입니다.
반죽후 홍두께로 편편하게 한 다음 다시 콩가루를 묻히고 있습니다.
이제 접어서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고 있습니다.


찾아가는길:경주터미널에서 500번501번502번등 봉계방면의 버스를 이용하여 경주 남산 산행로 입구인 삼릉에 하차를 하면 됩니다. 관광안내소 우측 골목으로 내려가시면 제일 끝집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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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석불입상
1963년 1월23일 지정
보물제63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65-1

경주 남산 기슭의 선방사터 인근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인  7c 작품으로 보인다. 삼존불 인근에는 삼불사란 작은 사찰이 있다.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모양으로 된 육계가 이중으로 처리 되어 있으며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표면이 매끄러우며 얼굴이 풍만하고 보조개가 뚜렷하게 처리되었고 아래로 내려 뜬 눈, 지긋이 다문 입, 통통하게 살이 오른 빰, 둥근눈썹은 인자하고 온화한 불성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불균형 스러운 모습으로 조각되어 더 친근감이 간다. 한장의 바위에 조각을 하였다.






관음보살상으로 화려한 수법으로 조각을 하였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보살상으로 입체감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왼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내려 굵은 목걸이를 잡고 있다. 머리 뒷부분인 보관에 새겨진 4기의 좌불상 을 볼 수 있다. 발아래에도 연꽃대좌로 처리를 하였고 한 장의 바위에 조각을 하였다.













대세지 보살상은 좌측의 관음보살상 보다는 간결하게 처리를 하였다. 그러나 본존불에 버금가는 중후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불상으로 입가에 퍼지는 온화한 미소와 장식을 간결하게 두른 것으로 처리를 하였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리고 왼손은 자연스럽게 내려 보병을 잡고 있다. 한장의 바위로 조각을 하였다.







삼존불을 찾아간 이날 추운 날씨에도 기도를 하시는 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삼존불이 이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삼불사의 모습입니다.


삼불사의 삼존불을 안치하는 보호각입니다. 한때는 이보호각 밖으로 담장을 둘러 놓았는데 최근에 문화재를 보호하는 보호각이 문화재를 훼손한다는 지적에 따라 담장을 철거하였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석불입상은 온화한 미소를 가진 불상으로 자연채광에 의해 미소짓는 불상의 모습이 압권이라 하는데 아직은 보호각이 천장을 덮고 있어 어두운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특별한 대책을 세워 햇빛을 받고 미소를 짓는 삼존불을 만나고 싶습니다.



*찾아가는길:경주터미널에서 500번501번502번등 봉계행 방향의 버스를 이용하여 망월사,삼불사 정류장에 하차를 하면 됩니다. 요금1500원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unisearch/Uniresult_Db_View.jsp?VdkVgwKey=12,00630000,37&queryText=경주배리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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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남산여행)경주 남산의 배동 삼릉과 경애왕릉 구경가기


경주 남산의 배리인 삼릉에는 현 재 다섯기의 왕릉이 위치를 하고 있다. 삼릉 좌우로 우측에는 경애왕릉. 좌측에는 지마왕릉이 있어 한번 들러보면 좋을 것 같다.

모두 소나무 숲 사이에 안장된 왕릉은 경주 남산을 배경으로 무심한 세월의 흔적을 남기며 현재까지 남아 있다.

현재의 왕릉이 자료나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의해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현재는 모두 하나의 역사속에 살아 있을 뿐이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터미널에서 500번501번502번등을 이용하여 삼릉에 하차한후 삼릉과 경애왕릉을 본후 삼존불 지마왕릉 포석정등을 둘러보면 하루 해 가 짧음이 아쉬울 뿐이다.

<삼릉숲>




*경애왕릉

사적 제222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3-1

신라55대 경애왕(재위924~927)을 모신 왕릉으로 삼릉의 우측에 있다. 53대 신덕왕의 아들로 927년 남산 포석정에서 연회를 열다.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는 비운의 임금이다. 삼국사기에는 경애왕을 해목령에서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일부에서는 경애왕릉이 해목령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아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 부근의 일성왕릉이 경애왕이 아닌가하고 추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높이가 4.2m로 흙으로 둥글게 쌓은 봉분으로 현재 남아 있다.





*배리 삼릉

사적 제219호

신라8대 아달라왕제 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무덤을 함께 모아 삼릉으로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자랑하고 냉골을 올라 남산을 오르는 산행로 또한 가장 많은 배동 삼릉에는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년중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아달라왕은 즉위시절 백제에서 침공을 하여 신라인을 잡아가자 아달라 왕은 친히 전장으로 달려갔고 백제군이 화친을 제의하자 포로를 석방하였다 한다. 능의 규모는 밑둘레 58m. 높이 5.4m 지름18m

효공왕이 후손이 없어 죽자 백성들과 문무백관들이 헌강왕의 사위인 신덕왕(912~917재위. 박경휘)을 추대하였다. 견훤과 궁예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진력을 하였다. 능의규모는 밑둘레 61m. 높이5.8m. 지름18m로 두차려에 걸쳐 도굴을 당하였다. 1953년과 63년에 내부조사가 진행되어 깬돌로 쌓은 횡혈식동방 형태의 무덤으로 밝혀 졌다.

경명왕(917~924재위. 박승영)은 신덕왕의 아들로 고려 태조 왕건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을 공격하여 물리쳤다. 능의규모는 밑둘레50m. 높이4.5m. 지름16m.





*지마왕릉

사적제 221호경북 경주시 배동 산30

황금대 능선 아래 포석정 인근에 있는 왕릉으로 신라6대 지마왕(112~134 재위)의 능이다.왕은 파사왕의 아들로 태어나 23년간 즉위하며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으로 부터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능의 규모는 밑둘레38m. 높이3.4m





<안내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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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소재지:경주시 배동 산72-1


경주 남산에 있는 윤을곡 마애불좌상은 포석정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포석정 주차장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남산 순환도로 올라가는 임도 길이 있다. 그 임도를 따라 900m올라가면 좌측으로 70m를 알리는 이정표와 만난다. 윤을곡 마애불 좌상은 "ㄱ“자 형태의 모습인 암벽에 새겨진 불상으로 동쪽면의 한분을 새겨놓은 분은 약사여래불이며 북쪽면인 좌측 두분중에도 한분은 약사여래불를 돋을 새김하였다.

 


 

 

바위면 양 안쪽에 계시는 두분은 안쪽을 파고 밖의 선을 돌리는 기법을 사용하였서며 중앙의 불상은 본존불로 연꽃대좌에 앉아 있는 약사여래불이며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얼굴은 크고 양족의 귀는 어께까지 내려와 크게 표현을 하였고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를 크게 나타내었다. 몸은 목을 약간 움츠리고 어께를 들어 올렸으며 가슴은 볼륨이 없는 빈약한 편이다. 오른쪽 독립적으로 있는 불상은 좌측 본존불 보다 조금 작은 108cm이다. 얼굴이 길고 턱은 각이 졌고 양감이 있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다. 본존불 처럼 몸은 움츠리고 양 어께는 올라가 있으며 상체에 비해 하체가 높아 서로 비례가 맞지 않는다.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손가락을 약간 구부린 형태이며 왼손은 배에다 대고 약함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불로 보고 있다.

왼쪽 불상은 세불상 중에 가장 예술성이 떨어지는 불상으로 이불상 어께 위 부근에 태화 9년 을묘라는 명문이 새겨진 것이 확인되어 신라 흥덕왕 10년인 835년에 조각된 불상임을 알 수 있고 한곳에 약사여래불을 두분 모신것이 특이하다. (안내문에서 내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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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입곡 석불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4호
지정일:1979년1월25일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86-3

경주 국립공원의 남산을 야외 박물관이라 말한다. 금오봉에서 내려온 능선인 삿갓봉 아래 삿갓골 마을 인근에 위치를 하고 있다. 배동 함월사 좌측에 위치한 입곡석불두는 모두 세 개로 나누어져 전시되어 있다. 2개 바위돌을 조각하여 1개는 입상의 부처님을 만들고 1개의 바위는 대좌를 만들었는데 입상의 부처님은 중간에 두동강이 나 있고 대좌 또한 께어져 주위에 나뒹굴고 있던 것을 근래에 붙여 놓았다 한다. 입상과 함께 뒷 광배의 조각솜씨도 매우 섬세하며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배를 보면 연꽃 위에 앉아 합장하고 있는 좌불상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고 광배와 부처님을 하나의 바위에 조각하여 예술성을 더욱 높였다. 아쉬운점은 훼손상태가 심해 광배의 윗부분도 깨어지고 석불의 코를 떼내 갈아 먹어면 아들을 낳는 다는 민간신앙 때문인지 코 부분이 떨어져 나가 있다. 불두는 머리 위에 상투처럼 불쑥 올라와 있고 근엄하면서 이목구비가 뚜렷한모습이다. 어께 위 까지 축 처진 큰 귀와 목에는 삼도로 3개의 선을 표현하였다. 대좌는 하나의 바위에 홈을 파고 연꽃으로 마무리를 한 연꽃대좌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 여래입상으로 추측하고 있다.
*교통편은 대릉원이 있는 네남사거리 앞 정류장이나 터미널, 경주역에서 500번501번 502번등 봉계방면의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1500원 .배동 삼릉앞에서 하차하며 함월사 좌측에 있다.





불두를 보면 코가 훼손되어 있고  축처진 귀가 매우 크며 근엄한 형상을 하고 있다.
큰 귀와 목에 3개의 선을 그어 삼도를 표현하였다. 

광배에는 연꽃위에 합장을 하며 좌불하고 있는 부처님이 새겨져 있으며 연꽃대좌로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입곡석불두의 뒷모습입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21,0094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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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산 공룡능선. 아기 공룡 둘리 수준으로 그래도 앙칼진 맛이 있다.

경주 남산 용장골~고위산 공룡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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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여평의 천룡사지 터에 남아 있는 신라시대 3층 석탑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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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룡사위 백운암과 칠불암으로 내려서는 소나무 숲길

헉! 헉! 숨차네…여기 남산 맞아?
급경사 비탈길·기암괴석 '공룡능선'…힘겨운 코스만큼 알짜관광 한번에
경주서 봉계행 버스타고 용장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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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에 앉아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용장사지 삼층석탑. 바위봉우리를 다듬어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탑신과 옥개석을 얹었다. 그 모습이 장엄하기 그지없다.

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들어선 후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높지는 않지만 위엄있는 산줄기가 길게 늘어서 있다. 신라인들이 천년을 두고 다듬었던 경주 남산(南山)이다. 한마리의 금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편안히 앉아 있는 형상이다.

40여개의 계곡과 산줄기로 이뤄진 남산에는 100여곳의 절터와 80여구의 석불, 60여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만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모두 44점이다. 한 구비 돌면 미소를 머금은 마애불이,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석탑이 뭍객을 맞는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만하다. 오죽했으면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을까.

  

흔히 사람들은 남산을 두고 '산행'이란 용어 대신 '답사'란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순례길만 70여개라는 표현이 너무 보편화된데다 초등학생도 너무나 손쉽게 남산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이번주 산행팀은 이런 남산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코스를 택했다. 가파른 비탈과 험한 바위벼랑, 그리고 변화무쌍한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는 예사롭지 않은 코스다. 현지 산꾼들의 입을 빌리면 '남산의 공룡능선'. 열에 아홉은 "와! 남산에도 이런 매서운 코스가 있었나"라며 힘겨워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렇다고 천성산이나 신불 간월산의 공룡능선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암릉구간이 10여곳, 크고 작은 봉우리가 8개 정도인 '아기공룡 둘리'의 등짝이다.

산행은 용장동~공룡능선~헬기장~고위봉 정상~천룡사지(삼층석탑)~백운암~백운재~봉화대~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칠불암 마애석불~봉호재~임도~삼화령~(금오봉)~용장사지 삼층석탑~마애여래좌상~석불좌상~용장사지~설잠교~용장동 순. 걷는 시간만 5시간. 문화재 관람시간은 덤으로 계산하면 된다.

용장골에서 출발했다. 산불초소 앞 '고위산'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개울을 건너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10분 뒤 정면에 상수도 보호구역 플래카드와 철조망이 보이면 계곡을 건너 우측 산길로 향한다. 5m 뒤 왼쪽, 다시 10m 뒤 우측으로 능선을 향한다. 곧 천우사 옆길. 이곳까지 왔으면 등산로 입구는 일단 찾은 셈.

동굴바위를 지나면서 공룡능선이 시작된다. 이 바위는 탁월한 전망대. 고속도로와 용장리 마을이 발아래 보이고 벽도산과 단석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죽길을 지나면 갑자기 앞이 트이면서 남산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화강암반이 곳곳에 드러나있고 그 위에 노송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너덜을 넘으면 경사진 암반. 그 뒤로 암벽. 밧줄을 잡고 힘겹게 오르면 또 암벽. 이르기를 수 차례. 정면에 고위봉이 기다린다. 잠시 내리막이 이어지다 다시 암벽. '정말 공룡능선이 맞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헬기장을 지나면 이내 고위봉 정상. 들머리에서 1시간40분 정도 걸린다.

  
  

가기 위해서다. 지금부턴 이정표가 잘 정비돼 길찾기가 쉽다. 초소를 지나 내려오면 방금 지나온 공룡능선이 한 눈에 펼쳐진다.

고위봉에서 25분 뒤 천룡사지에 닿는다. 고위봉의 절경을 배경으로 산중 평지 6만여평에 조성된 천룡사지의 백미는 역시 삼층석탑. 신라탑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산행은 탑에 닿기 직전에 본 이정표 '고위봉' 방향으로 간다. 천룡사를 지나 오거리와 연결되는 임도를 만나면 백운암 방향으로 간다. 절 입구 왼쪽 열린 길을 택한다. 산죽터널이 환상적이다. 10분 뒤 사거리. 칠불암으로 간다. 도중에 용장계곡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 길은 곧바로 칠불암으로 가고, 직진하면 봉화대를 들러 역시 칠불암으로 간다. 직진한다. 봉화골의 꼭대기에 위치한 봉화대는 지금은 흩어진 돌무더기만 남아있을 뿐 천년세월의 흔적은 오간 데 없다.

이어지는 능선길. 좌우에 시야가 트인다. 왼쪽은 고위봉, 오른쪽은 토함산. 10여분 뒤 금오봉 갈림길. 바로 금오봉으로 가지말고 우측의 신선암 마애보살과 칠불암을 보고 가자. 내려가는 길이 일품이다. 바위 사이 소나무가 그렇고 건너편 암벽 위 노송의 자태가 한폭의 동양화다. 지나는 길에 우측 토함산, 좌측 동대봉산 운제산이 보인다.

8분 뒤 신선암 마애보살. 한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천길 낭떠러지 신선대 절벽에 부처가 조각돼 있어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듯하다. 옛 석공의 노고가 한층 더했으리라. 발밑에는 칠불암. 가파른 산길로 15분쯤 내려가야 한다. 절벽을 등지고 반달처럼 깎아지른 병풍바위에 새겨진 삼존불과 그 앞의 모난 돌 4면에 조각된 사방불을 합해 불리는 칠불암은 남산 불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예술성이 뛰어나다.

  

다시 금오봉 갈림길로 돌아와 금오봉으로 향한다. 이른바 봉화대 능선으로 산행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편안한 길이다. 35분 뒤 임도와 만난다. 통일전 쪽에서 올라오는 길로, 금오봉 턱밑을 지나는 관광임도다. 자연상태로 보존된 고위봉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10분 뒤 삼화령. 고위 금오봉과 함께 남산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봉우리를 지칭한다. 머리 위 삼화령 꼭대기에는 미륵불은 오간 데 없고 지름 2m의 연화대좌만 남아 있다.

7분 뒤 좌측에 용장사지 가는 길. 직진하면 금오봉 정상 방향. 왕복 30여분 걸리므로 시간이 날 경우 다녀오자.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용장사지에서는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석불좌상을 잇따라 만난다. 이중 삼층석탑은 200m가 넘는 바위봉우리를 다듬어 하층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상층기단을 쌓고 탑신과 옥개석을 얹었다. 산중에 앉아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모습이 장엄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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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하였다는 용장사지, 지금은 묘지와 잡초만 무성하며 그때의 영화를 생각하게 한다.


 
밧줄을 타고 내려와 잠시 용장사지(금당터)를 둘러본 후 본격 하산한다. 산죽터널을 지나면 용장계곡(용장골). 고위봉과 금오봉 사이로 흐르는 용장계곡은 남산의 계곡 중 가장 깊고 맑은 물이 사계절 흐르는 곳. 지리산 계곡이 부럽지 않다. 김시습의 법호를 딴 아름다운 다리 설잠교를 건너 계곡을 따라 25분 정도 걸으면 산행 들머리인 산불초소 앞에 닿는다.

# 떠나기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불교 노천박물관'

  

국토정보지리원의 지형도에는 남산을 금오산(金鰲山·468m)과 고위산(高位山·494m)으로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서에는 남산으로 많이 기록돼 있다. 경주남산연구소나 신라문화원 등 시민단체는 이러한 용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남산이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남산 안에 금오봉과 고위봉이 있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했다. 남산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 노천박물관.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간 근교산 시리즈에서 남산은 몇 차례 소개됐다. 삼릉의 오붓한 산길, 천룡사지에서 틈수골로 가는 하산길, 봉화대에서 마석산으로 이어지는 때묻지 않은 능선길 등이 주요 등산로.

이번 코스는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공룡능선과 산행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동서방향의 고위능선과 남북방향으로 뻗은 봉화대능선, 그리고 남산 계곡 중 가장 깊고 맑은 계곡물을 자랑하는 용장골. 무엇보다 칠불암, 용장사지, 천룡사지 등 남산의 알짜배기 볼거리를 한번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가족과 함께 봄맞이 산행을 떠나보자.



# 교통편
# 경주서 봉계행 버스타고 용장서 하차

  
  단감농원 할매칼국수집의 칼국수와 파전, 그리고 동동주.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508-9966)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00원.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선 봉계 방면 버스를 타고 용장에서 내린다. 500 503 505 506 507 508번 등. 들머리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나와 직진~35번 국도 언양 방면 우회전~나정 포석정 삼릉 지나 용장동 순. 길 우측에 '용장암소숯불' 큰 간판이 보이면 맞은 편인 왼쪽에 '용장사지 천우사 기와집밥상 고위산' 이정표 및 간판이 보인다. 좌회전해 하천을 따라 간다. 들머리 입구에 유료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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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에는 '단감농원 할매칼국수집'(054-745-4761)이 있다. 우리밀로 만드는 칼국수다. 근처 10여곳 칼국수집이 있지만 원조다. 손두부 동동주도 일품이다. 골목 깊숙이 숨어 있어 물어물어 찾아가자.


글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51 사진=이창우 산행대장(051)245-7005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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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암 마애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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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봉황골의 칠불암 마애석불은 삼존불과 사방불로 조성되어 있어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좌우 여러방향에서 본 칠불암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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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골의 용장사지터에 조성된 용장사곡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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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으로 자연암벽을 이용하여 조각을 하였어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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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곡 석불좌상, 미륵장육상으로 추정되는 석불좌상으로 삼륜대좌위에 모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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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잠은 매월당 김시습91435~1493)의 법명으로 유서 깊은 용장골 골짜기에 용장사터가 있었서니 용장사에서 김시습은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와 유금오록을 집필하여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용장골을 건너는 다리에 설잠교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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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찾는 근교산 경주 남산(금오산~마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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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을 대표하는 상선암 마애석가여래좌상. 그뒤로 형산강 상류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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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의 금오산과 고위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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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가 달아난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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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육존불로 바위면을 끍어 육존불을 모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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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계곡 마애입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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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석

산에 불이 났다. 산비탈 하나가 통째로 화마에 휩싸였다. 수십년된 소나무들은 시커멓게 그을렸다. 한창 물이 올라야 할 이때 밑둥이 잘려 흉물스럽게 썩고 있다. 그루터기만 덩그렇게 남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 몇 그루가 섰다. 가지, 줄기는 물론 아슬아슬하게 달린 솔방울까지 검게 탔지만 그 속에서 돋아난 시퍼런 솔잎. 한때 울창했을 가지마저 다 부러지고 이제 한 뼘이나 될까말까한 작달막한 새 가지에 새 솔잎이 푸르름을 더한다.

경주 남산을 흔히 노천 박물관이라 일컫는다. 신라 천년의 숨결을 아직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남산 골짜기마다 서린 신라의 정신은 화상을 입은 몸으로 싱싱한 솔잎을 피워 낸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남산의 자락 금오산 비탈에 서서 시커먼 소나무가 피워 낸 푸른 잎사귀를 보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품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산행코스는 삼릉~석조여래좌상~상선암~전망대~금오산~476m봉~바람재~작은마석산~금천사~노곡리. 약 6시간 소요.

삼릉 정류장에 내려 길을 건넌다. 고개를 직각으로 젖혀야 가지가 보일 만한 미끈한 소나무 숲이다. 상선암 이정표를 따라 간다. 100m쯤 가면 삼릉. 능을 향해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가 왕에 대한 무한한 경배를 표하는 듯하다.

곧은 소나무, 굽은 소나무, 누운 소나무. 인간사의 고난과 절개와 기쁨을 표현하는 것 같다. 숲을 지나다 보면 너무나 예쁘게 자란 소나무들과 사랑에 빠진다.

15분쯤 가면 상선암과 금오산 갈래길. 상선암으로 오른다. 석조여래좌상과 마애관음보살상이 나온다. 다시 5분이면 선각육존불. 이때부터는 발걸음이 더뎌진다. 온갖 바위가 다 예술품으로 보이고 혹시 그 동안 발견되지 않은 신라 문화 유산을 내가 찾아 내지 않을까 두리번 두리번.

5분쯤 가면 검은 표지석이 있다. 왼쪽으로 올라 보물 제666호 석불좌상. 손상된 부분을 시멘트로 발라 석불은 부루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석불좌상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서 계곡을 건넌다. 무안박씨 묘를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여기서 상선암까지는 약 10분. 약수를 한사발 마시고 다시 출발. 5분 뒤 마애석가여래좌상 앞에 이른다. 은은한 미소로 냉골과 상선암을 굽어보고 있다.

올라서면 네 갈래길이다. 오른쪽 금오산으로.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멀리 경부고속도로와 남산 삼릉계곡 입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키 3m쯤 될까한 소나무가 섰다. 바위 틈에 뿌리를 박고 곱게 자랐다.

절벽을 타고 걷다 보면 지나온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100m 정도 가면 왼쪽 바위틈에 산신당이 있다. 갈래길에서 직진한다. 땀을 식힐 만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잠시후 금오산 정상(468m).

11시 방향으로 치술령, 10시 방향으로 마석산이다. 토함산에 안긴 경주 시내가 아득히 보인다. 고즈넉한 산에 뻐꾹새만 뻐꾹뻐꾹 운다.

임도를 보고 내려선다. 산불 피해지역에 남산 자생 소나무를 심었다. 1m쯤 될까말까한 엇비슷한 키에 하늘로 팔을 벌린 새로난 순 모양이 사막의 선인장 같다. 100m 가다 임도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왼쪽 능선으로.

능선 하나를 넘어 임도와 다시 만날 때쯤 오른쪽으로 용장골이다. 김시습이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했다는 용장사지가 있다. 임도에 내려서기 직전 연꽃 무늬가 선명한 삼화령 대연화 좌대. 좌대에 앉으면 용장골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임도에서 왼쪽으로. 15분쯤 가면 ‘전망대 2.5㎞ 칠불암 2㎞’ 이정표. 임도에서 나와 오른쪽 능선을 탄다. 10분에 걸쳐 두번 가파른 오르막이 있다. 정상에선 오른쪽으로 직진. 20분쯤 가다 갈래길이 나오면 왼쪽.

용장마을 3.4㎞를 가리키는 이정표 앞에선 직진한다. 5분쯤 가면 ‘칠불암 200m 금오산 2.9㎞’ 이정표.

여기서 왼쪽으로 몇 걸음 가자. 기막힌 전경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해발 500m도 되지 않는 남산의 산비탈 하나가 온통 바위로 이뤄진 장관을 펼쳤다. 지금까지 순탄하던 것과 달리 여기서부터는 다소 거칠고 갈래길이 많다.

‘새갓골석불좌상 750m’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면 능선을 빠져 왼쪽 아래로 내려선다. 내리막을 걷다 묘지 3기를 지나면 갈래길을 만난다. 왼쪽으로.

임도에 들어서 갈래길을 만나면 직진하고 10분쯤 걷다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선다. 10분 뒤 또 갈래길. 직진하고 다시 10분 뒤 임도 갈래길에선 왼쪽으로. 바로 등산로와 연결된다. 5분쯤 가다 갈래길에선 직진한다.

다소 지루하고 헷갈리는 등산로가 끝나고 임도를 만난다. 직진. 벌목지대와 무덤을 연속으로 지나다 능선에 오른다. 왼쪽으로 꺾이는 지점에서 임도를 벗어나 능선 등산로에 붙는다. 20분쯤 가면 다시 임도와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하산.

잠시 내려가다 왼쪽에 무덤이 있고 앞에 산죽 터널이 나오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여기서 금천사까지는 약 20분.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15분쯤 가면 노곡2리 백운대마을이 보인다.

논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면 산행이 끝난다.

/ 김용호기자

/ 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떠나기 전에

경주 남산은 신라 오악의 하나로, 옛 서라벌의 남쪽 땅에 웅크리듯이 솟아오른 작지만 큰 바위산이다. 500m도 안 되는 동네 뒷산 같은 야트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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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금오산(金鰲山· 471m)과 고위산(高位山·494m)을 가르켜 부르는 이름이다. 뻗어 내린 능선과 수많은 골짜기, 그리고 봉우리마다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재가 산재해 있으며 신라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신라 불교의 성지이다. 110여개의 절터, 118체의 석불과 마애불, 석탑과 폐탑이 96기에 이른다.

볼거리가 많은 남산 산길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가족산행으로는 삼릉-석조여래좌상-선각육존불-보물 제666호 석불좌상-상선암-마애석가여래좌상-금오산 정상- 옥수골마애대불-삼릉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3시간이면 충분하다.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 문화재에 대한 자료를 갖추면 더욱 좋은 가족산행을 할 수 있다.

근교산 지면에 소개되었던 포석정-금오산-고위산-천룡-틈수골 코스는 남산종주의 대표적인 코스로 5시간이면 산행을 할 수가 있다.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교통편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10분 간격 출발. 경주에선 삼릉행 시내버스를 탄다. 500 501 593 506 507번. 500번이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나머지는 하루에 서너 차례 있다. 25분 소요.

산행 끝지점인 노곡2리 옛날순대집 앞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506번이 16시25분과 18시50분에 지나간다. 508번은 18시30분쯤에 있다. 경유지이므로 시간은 정확치 않다. 여유를 둬야 한다. 여기서 20분쯤 걸어 이조마을까지 내려가면 봉계에서 내려오는 경주행 버스가 30분마다 지나간다. 금아교통 054-742-2690.

교통편은 변경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kyh73@kookje.co.kr
입력: 2002.05.2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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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부근에서 본 전경으로 왼쪽사진은 갈길인 고위산과 마석산의 전경이며 오른쪽사진은 건너 토함산의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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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에서 삼화령으로 내려가는 능선상에 대연화 좌대가 설치 되어 있다. 불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연꽃 무늬가 뚜렷한 좌대만이라도 앉아 있는 위치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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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화 좌대에서 본 고위산과 과 우측은 삼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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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화령에서 봉수대 방향으로 가다보면 칠불암 갈림길 이정표와 만나다, 칠불암 방향 중간에 바위벼랑을 끼고 보면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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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갈림길의 이정표와 바위절벽 밑으로 칠불암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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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갈 능선인 마석산이 왼쪽으로, 건너편 산은 박제상의 전설이 서린 치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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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의 공룡능선인 이무기 능선 고위산을 지나 틈수골능선상에서 보았다. 그뒤로 남성미가 넘치는 금오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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