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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진주여행)명석면 광제산 봉수대 여행, 진주 광제산 봉수대


방가방가

오늘 여행지는 진주 명석면에 있는 

광제산(420m) 정상에 세워진 봉수대입니다.

광제산봉수대 광제봉수대라 불립니다.





진주 광제산봉수대 주소:경남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산 216




2020/06/17 - (경남여행/진주여행)'돌이 울었다'하여 운돌인 명석이 진주의 행정명인 명석면이 된사연. 진주 명석각

2020/06/10 - (경남진주맛집)진주성 전투의 마지막 성찬인 진주육회비빔밥이 꽃밥이라 불려요. 진주 중앙시장 제일식당

2013/05/31 - (경남맛집/진주맛집)진주에서 먹었던 뼈속까지 얼얼한 냉면에 무더위도 슁~~~ 사리원 설렁탕 곰탕


봉수대가 있어서 그런지 전망 하나만은 

동서남북 끝내주었습니다.

그러나 답사 당일 날씨가 좋지 않아 

멀리까지는 조망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광제산 봉수대에서 지리산 천왕봉도 보이며 

망진산, 달음산, 진양호, 진주시내 등 

주위 조망이 다보인다고 안내판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ㅎㅎ

 


광제(廣濟)란 ‘넓게 백성을 구제한다’란 의미를 가졌습니다. 

광제산 아래 '큰 덕'을 뜻하는 덕곡리를 보면 '광제'의 의미를 알수 있습니다.

 


광제산과 이웃한 집현산 사이에 

큰 고개는 무넘이 고개이며 

아주 오랜 옛날에 천지가 물바다였을 때 

물이 넘나든 고개였다고 합니다.

집현산은 봉우리가 집채만큼 남고 다 잠겼으며 

광제산은 광주리만큼 남았다하여 

광제산이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광제산봉수대는 전국의 5개 직봉가운데 

동래 다대포에서 서울에 이르는 2간봉이었습니다.

 


남쪽으로 남해 금산에서 봉수를 받아 

창선 대방산~사천각산~ 진주 망진산을 거쳐 

광제산에서 산청 신안 벽계봉수대~합천 금성산 봉수대를 거쳐 

충주 망이산으로 봉수가 연결되었습니다.




봉수대는 오장과 봉수군 32명이 근무할 만큼

큰 규모로 연대가 3개 있었습니다.

오른쪽에 봉수군이 사용했던 샘터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봉수는 기록으로 나타 나는게 고려 중기이며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봉수대 체계가 정비된 것은 고려말에서 조선초 입니다. 

때가 왜구의 침입이 극심할 때이며 

광제산봉수대 역시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습니다.

 


광제산봉수대는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었다가 

200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158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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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진주여행)'돌이 울었다'하여 운돌인 명석이 진주의 행정명인 명석면이 된사연. 진주 명석각  


방가방가

오늘은 진주시 명석면에 있는 돌을 소개합니다. 

몽돌보다는 큰 돌인데요? ㅎㅎ

 이 돌맹로 인해 명석면의 행정명이 되었습니다.





돌이 운다하여 운돌인 명석각 주소:경남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2020/06/10 - (경남진주맛집)진주성 전투의 마지막 성찬인 진주육회비빔밥이 꽃밥이라 불려요. 진주 중앙시장 제일식당

2013/05/31 - (경남맛집/진주맛집)진주에서 먹었던 뼈속까지 얼얼한 냉면에 무더위도 슁~~~ 사리원 설렁탕 곰탕




대단한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돌 2개가 관연 어떤 일을 했기에 

이리 전각속에 보호를 하고 있는 지 알아보겠습니다. 



때는 고려 말로 올라갑니다. 

당시 남해안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 

진주성 보수공사를 하게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집현산의 돌 한쌍이 

진주성을 받치는 굄돌이라도 되고자 

산을 굴러 내려와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진주성 보수공사가 

모두 끝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집현산 돌 한쌍은 오도가도 못하고 

그자리에 주저 앉아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합니다.

 


돌이 울었다하여 '운돌'이라 불렀는데 

그게 한자음으로 바뀌면서 울명(鳴)자를 써서 

명석(鳴石)이라 불렀고 명석을 전각안에 보호하여 

명석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ㅎㅎ

그리고 진주 명석면의 행정명이 되었습니다.




명석도 사람처럼 죽어서 이름을 남겼습니다. ㅎㅎ

명석은 '나라를 보위하고 충성을 받친 돌'이라 하여 

'보국충석(報國忠石)'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명석은 다산과 풍요를 빌던 선돌로 

명석면에서는 음력 3월3일에 면민이 모여 동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진주 명석면의 명석은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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