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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500년 역사 아라가야 최고 권력자의 무덤 함안 말이산 고분군 여행.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함안여행을 떠나면서 함안군의 읍소재인 가야읍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가야읍을 두른 말이산은 꼭 언덕같아 누구나 쉽게 오를수 있는 평범한 산입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325-1

함안 말이산 고분군 전화:055-580-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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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평범해보이는 산이 1500여년전 함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진 고분이 자리했습니다. 

함안 말이산고분군에는 선사시대의 흔적과 고대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사적  제51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말이산고분군 주위로 가야읍과 마을을 끼고 있어 들머리는 여러곳에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들머리기가 함안박물관이 자리한 

"함안군 가야읍 고분길 153-31"이며 주차장도 있습니다.




필자도 이곳에 주차를 하고 함안박물관을 뒤로하고 먼저 말이산고분군을 올랐습니다. 

몇년전 저녁 노을이 아름다울 때 찾았던 말이산고분군의 강한 인상 때문이었습니다.

 


함안박물관 왼쪽으로 말이산 입구를 알리는 말이산고분군의 큼지막한 안내도가 서 있습니다. 

그뒤로 둥그스럼한 선이 아름다운 봉분은 말이산 고분군의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평일인데도 많은 관광객이 말이산고분군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쯤 되었는데 직장인으로 보이는 분들이 말이산고분군에서 

삼삼오오 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여럿이 볼수 있었습니다.




어느 고분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귀로 쫑긋 세우면서 청취하는 관광객들 ㅎㅎ 

필자는 이들을 앞질러서 후다닥 능선으로 올랐습니다.  



말이산고분군은 우리 학자에 의해 지금까지 20여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조사로 말이산고분군에서 아라가야 500여년 역사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의 소리음을 그대로 한자로 옮겼습니다. 

'머리산' '우두머리의 산'을 뜻하는 '왕의무덤'이 있는 산을 뜻합니다.



가야는 낙동강을 끼고 여섯 국가가 있었습니다. 

그중 아라가야는 여섯가야를 대표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아라가야는 함안을 중심으로 창원, 진주, 의령  지역을 관할하였습니다. 

 


그런만큼 함안은 아라가야의 고도였으며 말이산고분군 

이외에도 130여군데의 크고작은 고분군이 더 있습니다.



이외에도 황궁지, 당산유적지, 산성, 토기가마 등 가야시대의 많은 유적지가 확인 되었습니다. 

이를 보면 아라가야의 대표적인 유적지는 말이산고분군으로 생각됩니다.




함안 말이산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처음 발굴되었다가 

1986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에 의해 최초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 2015년인 25호분과 26호분을 조사하면서 모두 20여차례 였습니다.

1992년~1996년 「가야문화권 중요 유적에 대한 학술조사 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가야문화권 중요 유적에 대한 학술조사 사업」으로 

아라가야 고분 전반에 대해 밝히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아라가야 약 500여년 지배층 고분군이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말이산 고분군에서 시대를 달리하는 널무덤~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굴삭돌방무덤의 

변화 과정과 전통 장례 풍속의 순장 과정 등을 확인하였습니다. 



대형 고분군 9개와 약 2007기의 고분군이 발굴조사되었습니다. ㅎㅎ

 진짜 함안에는 구분이 엄청나게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200여 기의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만 8,500여점이라하니 ㅎㅎ 어마무시 합니다.

아라가야를 상징하는 불꽃무늬토기, 수레바퀴모양토기, 굽다리등잔, 말갑옷, 새모양장식마늘쇠 등 

아라가야만의 독자적인 문화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함안 말이산고분군에서 가장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쌍고분입니다. 

이곳에서 여러 방향으로 사진을 담았습니다. 

함안의 진산인 여항산은 꼳 부처님의 머리를 닮아보였습니다.



상데미산·여항산·서북산은  6.25한국동란 최고의 격전지였습니다. 

군과 괴뢰군이  7번이나 고지를 서로 뺏고 빼앗겼을 정도로 작전상 아주 중요한 고지였습니다. 

이 고지에서 미군은 전투에 나갔다하면 족족 모두 몰살하자 '갓뎀산' '갓데미산'이라 불렀습니다. 

말이산 고분군에서도 6.25 전적지가 잘 보였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며 핀 예쁜 구절초가 가야읍을 배경으로 피었습니다.

말이산 고분군과 가야읍내가 이리 가까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점심을 먹은 분들이 산이라 하기에는 무색한 40~70m 높이의 

말이산 고분군을 산책하며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고분 사이를 거닐었습니다.



저도 고분길을 따라 남쪽의 고분 탐방을 나섰습니다.

맨 뒤에 있는 두 고분이 최고의 사진 촬영지입니다. 

물론 저 뒤로도 고분이 더 있습니다. 



경주 신라시대 고분군은 대부분 평지에 있는데 ㅎㅎ

 함안의 가야 고분군은 이런 언덕에 있습니다.

사진 왼쪽이 함안박물관이며, 

그 오른쪽 3개의 고분과 사이에 말이산고분군 탐방로가 있습니다.




고분과 고분사이의 잘록이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고갯길입니다. 

이런것을 보면 삶과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는게 아닙니다. ㅎㅎ



현재 말이산고분군은 깨끗하게 벌초된 상태이며 아주 관리를 잘하고 있습니다. 



소나무와 고분

정말 멋진 풍경입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나무쉼터에서 쉬어 가고 싶지만 갈 곳이 많아서 패스해야 했습니다.



말이산 고분군에서 본 함안의 농촌 풍경 ㅎㅎ

 모두 가을 걷이가 끝나 보였습니다. 




고갯마루로 내려가는 대나무 숲길입니다. 

늦가을임에도 대나무는 초록의 싱그러운 빛을 전혀 잃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고갯길이었는데 이제 왼쪽은 막혀 있고 공적비 등 여러 비석이 서 있습니다. 



보호수로 보였던 큰 나무를 지나면 현재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중인 고분이 있었습니다.

고분 발굴 현장입니다. 




출입을 할수 없도록 울타리로 막고 있습니다. 

고분의 형태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으나 고분 탐방을 뒤로하고

 함안박물관으로 되돌아 가야 했습니다.



보면서 지나간 고분을 이제 역으로 보며 갑니다. 

벌초를 최근에 해서인지 ㅋㅋ 목걸이를 두른 고분입니다. ㅎㅎ



여기서 함안박물관은 왼쪽으로 내려갑니다.



저기 함안박물관이 보입니다. ㅎㅎ

어서 빨리 내려가서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나온 아라가야 유물을 만나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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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리고분군을 만나다.


창녕군 창녕읍 내에서 만나는 고분군은 두 곳 있습니다. 

1963년 1월에 사적지로 지정했으며 사적 80호인 창녕 교리고분군과 사적 81호인 송현리고분군 입니다. 

2011년 7월 문화재청이 역사와 특성에서 두 고분군이 비슷하다고 인정되어 2011년 7월 통합해서 사적 제514호로 재지정했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4

창녕교동고분군 연락처:055-530-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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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의 보고인 경주에 버금간다는 창녕에도 고대부터 내려온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경남의 경주라 일컫습니다. 

왜 창녕에 많은 고분과 문화재가 있는지를 보면 이곳 창녕은 오래전부터 소국가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한의 12개 국가 중 하나였던 불사국으로 비화가야라고도 합니다.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수록된 삼한 소국의 이름이며 불사국은 경남 창녕의 옛 이름인 ‘비사벌(非斯伐)’에서 나왔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습니다. 

창원교동고분군과 송현리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능선의 목마산성 아래인 구릉지에 널리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다시에 의해서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에 1917년 분포조사를 시행하였고 1918년과 1919년에 11기의 고분 발굴이 이루어졌으나 제21호와 31호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등 완전 날림씩 발굴조사에 유물 반출만 이루어졌던 모양입니다.



당시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의 규모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마차 20대 분량과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예품이 박 쏟아져 나왔다 하니 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 유물만 소장해 있으며 현재 유물 대부분은 소재 불명 상태라 합니다.



당시 자료에는 금동관, 금동관모, 금·은제수식 등 많은 금장신구와 각종 마구류, 비늘 갑옷, 철제 무기류, 철제농기구와 토기 등이 나왔으며, 이는 창녕교동고분군의 출토 유물의 성격이 신라 서라벌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를 보고 교동고분군은 5~6세기 전반의 고분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다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의 고분은 현재 밝혀진 숫자만 103기나 됩니다.

제가 교동고분군을 답사하고는 먼저 큰 규모에 놀랐습니다. 

창녕박물관 왼쪽에도 여러 기의 큰 고분군이 있었으며 24번 국도 건너편에도 한 무더기의 고분이 구릉을 끼고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당집이 있는 고개 건너편에도 많은 고분군이 정비되어 관리하는 것을 보면서 김해, 고령, 대구와 경주 등 여러 고분군에 비해서 규모에서 창녕교동고분군도 전혀 빠지지 않을 듯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1992년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2004년 경남문화재연구원, 200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창녕교동고분군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동아대박물관에서는 1~4호의 고분을 발굴하였습니다. 횡구식 석실 구조를 확인했으며 이 고분에서도 다양한 토기류와 각종 금속유물이 나왔고 고분의 구조와 나온 유물에서 5세기 중반 이후에 조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04년 창녕문화공원 조성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횡구식석실분 13기와 통일신라 폐와무지, 조선시대 배수로 삼가마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고분군의 축조구조와 출입구의 형태 변화와 출토유물에서 고분의 조성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중반이라 보고 있습니다.







2009년의 창녕교동고분군 주차장 부지 발굴조사와 2011년 2012년 일제 강점기 때 발굴되었던 7호분의 고분군 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일제는 고분발굴조사를 하면서 고분은 뒷전이고 유물 수습과 반출을 하여 당시 남은 기록을 비교하며 우리 문화재 발굴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봉토와 축조과정, 매장 주체부의 내부구조를 파악할수 있었으며 이를 학술연구자료와 고분의 보존 정비에 기초자료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ㅎㅎ 발굴조사 과정에서 딱 철기 2점만 나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서 당시에 얼마나 유물을 쓸어 담아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발굴조사를 기초하여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는 고분으로 재정비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남 창녕 교동고분군을 보고 나서 이제 송현리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참고:2013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교동고분군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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