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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거제도여행)거제도 포로 수용소 유적공원,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 우리는 알아야 한다.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1950년 6월25일 발발한 한국동란을 생각하시면 몸서리를 치며 치를 떠신다. 그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집을 버리고 피난과 아비규환속에 살아온 나날들을 생각하시며 다시는 그런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손 사레를 치시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자라 왔다.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그런 부모님의 말씀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뭐, 그럴까?’하며 의구심을 가지고 자랐던 것도 사실이다.

 

 



 

 

이곳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방문하면 왜 우리의 부모님이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손 사레를 치는 이유를 조금은 알수 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83년 경상남도문화재 자료 제 99호로 지정되어 유적공원으로 보호관리되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면 더욱 좋은 교육이 되겠다.

 

 

 

 

지금이야 통영과 거제도를 잇는 거제대교와 부산가덕도와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로 인해 거제도는 섬보다는 육지에 더 가깝게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동란때는 이곳이 육지에서 가까운 섬이었지만 고립된 섬으로 전쟁 통에 생포된 포로들을 수용하는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곳이다. 지리적으로 육지와 떨어져 빠삐용처럼 섬안에서 포로를 관리하기가 좋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분수광장, 6.25 참전 16개국의 국기와 유엔기가 게양되어 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왜 생겼을까. 1950년 6월25일 새벽4시를 기해 북한인민군은38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 남침을 감행하였다. 전쟁발발과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는 그야말로 중과부적의 열세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급기야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며 임시 수도도 대전으로 옯기는 판국이었다. 국군은 미군과 유엔에서 파병한 연합군의 지원을 얻게되고 전세는 소련제 탱크로 중무장한 북한군에 티격태격 밀리며 낙동강까지 이르게 되었다.

 

 

 

 

낙동강을 넘겨주면 부산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국군과 연합군은 낙동강을 마지막 보루로 삼아 목숨을 걸고 혈전을 벌렸다. 지금도 영남지방을 흐르는 낙동강에는 우리국군의 목숨을 건 전투가 많이 전해 온다. 다행이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국군과 연합군은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을 하였다. 그러나 100만이 넘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를 하며 38도선을 경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탱크전시관, 1950년 6월25일 일요일 미명에 남침의 선봉에 섰던 소련제 T-34탱크 모형,

 

 

전쟁으로 생포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경남 거제도의 고현을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다. 인민군이 15만명, 중공군이 2만명등 17만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다. 그 포로들 중에는 여자포로도 3백명이 있었다하며 포로수용소 내부의 생활상을 자료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제네바 협정에 따라 포로들이 자치적으로 수용소 생활을 하도록 되었다. 그런중에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에 유혈폭동이 일어 났고 1952년 5월27일에는 수용소의 사령관이었던 돗드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1953년 한국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게 되고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전쟁은 끝이 아닌 잠시 쉰다는 의미의 휴전이 되고 거제포로수용소는 폐쇄되었다.

 

 

 

 

현재에도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이어져 60년이 되었지만 이는 종전이 아닌 휴전임을 항상 명심해야 더 이상의 전쟁을 막을 수 있다.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제도포로수용소는 그 당시 수용소의 건물 일부와 포로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을 볼수 있는 전쟁역사의 산교육장이다. 자녀와 함께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찾아 그 당시의 모습을 경험 해보는 것도 너무 좋을 것 같다.

 

 

흥남철수작전 기념비. '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래 배경이 되었던 흥남항에서 10만명의 피난민과 국군, 유엔군이 배를 타고 탈출.

 

 

 

 

 

 

디오라마관 국내최초 최대규모의 디오라마관.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배치상황, 생활상, 폭동현장이 생생하게 재현.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8도선에서 전면전을 개시하면서 불법남침.

 

 

국군의 사수. 밀려오는 북한군을 맞아 치열한 참호 전투를 벌리고 죽어간 아군들.

 

 

끊어진 대동강 철교,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게된 피난민들이 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건너기 위해 사투를 벌리고 있다.

 

 

M.P다리, 헌병초소가 지켜선 다리로 포로출입의 주요 관문, 이곳을 통과하면 포로들의 생활상을 경험할 수 있다.

 

 

 

 

 

 

 

 

 

 

포로생포관, 투항하거나 생포된 포로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포로수송의 모습. LST에 승선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해상 이송되.

 

 

포로사상대립관, 철모속에서 반공포로와 친공포로의 사상대립을 볼 수 있다.

 

 

 

 

여자포로관, 여자도 남자포로와 동일한 수용소 생활을 하였다.

 

 

 

 

 

 

 

 

포로폭동체험관.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친공포로의 폭동과 친공, 반공포로들간의 격돌장면을 만날 수 있다.

 

 

 

 

 

 

철모광장,포로수용소 유적관 기념 청동 조형물로 참전 16객국의 지도와 국기를 달고 있다.

 

 

야외막사, 포로수용소의 막사와 감시초소, 취사장, 생활도구까지 완벽하게 재현하였고 영화 흑수선 촬영현장이기도하다.

 

 

 

 

 

 

 

 

 

 

 

 

무기전시장,M577 장갑차, M46 전차, UH-1 헬기, 2.5톤 카고등 군수품을 전시하였다.

 

 

 

☞(경남여행/거제도여행)거제도 포로 수용소 유적공원,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관람안내시 주의점.

★역사의 현장인 유적지를 보호하고 쾌적한 관람을 위해 관람예절을 준수,

★음식물 반입과 안내견 이외의 애완동물 출입은 금지,

★전시물에 손을 대거나 손상을 입힐 수 있는 행동 삼가,

 

 

 

 

 

☞(경남여행/거제도여행)거제도 포로 수용소 유적공원,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 알기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이용 안내.

 

 ★거제도포로수용소 입장시간과 휴관일(홈페이지 캡쳐)


★거제도포로수용소 관람요금(홈페이지 캡쳐)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전시관 안내◆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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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비빔밀면 각 3,500원



 

(부산동구맛집) 부산역 초량밀면(051-462-1575), 밀면의 유래를 아세요?.

밀면은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월래 이북의 음식인 냉면의 대체음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왜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6.25 한국동란때의 일이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함경도의 흥남 내호에서 흥남 철수 작전이 전개 되었다. 그때 정한금씨도 친정 어머니와 함께 이곳 부산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친정 어머니는 흥남 내호에서 냉면집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피난을 와 고향의 음식인 냉면 생각이 간절하였다그러나 냉면은 메밀로 만드는 음식으로 전쟁 통에 그 귀한 메밀을 구하기가 어려웠다마침 그때 거제도에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들어왔는데 그 밀가루를 가져와 피난민에게 나누어 주게 되었다 한다그 구호물품의 밀가루를 가지고 고향의 냉면이 생각 날 때 마다 만들어 먹은게 부산 밀면의 시초이다.

 




 

 

 


(부산동구맛집부산역 초량밀면밀면의 원조집을 아세요.

밀면의 원조집은 어디인지 궁금하지 않나요흥남 내호에서 피난온 정한금씨와 친정 어머니는 1952년도 남구 우암동 시장통에서 처음으로 고향 내호의 이름을 따 내호냉면이란 상호로 시작을 하였다.부산은 피난민으로 넘쳐나 이북의 고향 맛을 맛보기 위해 실향민들이 많이 찾아 들었지만 지금은 부산 밀면의 원조 집으로 알려져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이집을 찾고 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중구 자갈치 인근엔 서호냉면으로 정한금씨와 이웃동네에 사시던 분이다이분도 고향 흥남 서호에서 냉면집을 하였다 한다지금 부평동 족발골목에 흥남서호냉면으로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잇고 있는 부산 밀면 원조집이다.

 




 

 



(부산동구맛집부산역 초량밀면은...

부산역 맞은편에는 초량의 밀면을 대표하는 초량밀면이 있다부산을 찾는 부산역 여행객들이나 부산 밀면 애호가들에게는 입소문이 난 집으로 시즌인 요즘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다인근에 티비에서 저렴한 맛집으로 소개되었던 2천원 밀면집이 있는데 그래도 초량밀면은 이집만의 밀면 맛을 고수하고 있다.





 

 

 

 

개인적인 맛은 비빔밀면을 더 좋아하여 비빔밀면으로 포스팅을 하였다요즘 같은 여름철 음식이라 그런지 주문과 동시에 나올 정도로 손발이 척척 잘 맞다비빔밀면을 받아 보면 놀래지 않을 수 없다벌건 소스가 면 위에 엄청 올려져 있어 처음 보는 사람은 이거 너무 메운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 한견에는 고소한 땅콩이 들어가 있다냉면이나 밀면은 겨자와 식초를 넣어야 제 맛이 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이제 남은 것은 비비기만 하면 된다한 젓가락 집어 먼저 맛을 본다메울 것 같았던 비빔밀면이 전혀 맵지 않는게 신기하다그리고 땅콩 때문인지 씹히는 고소함이 느껴져 더욱 맛이 있다중간 중간 따뜻한 육수를 곁들이는 것도 잊지 말자.




이 음식점의 맛은 저의 주관적인 입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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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유독 냉면, 또는 밀면 전문점이 왜 많은 걸까. 그것은 6.25 한국동란으로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부산까지 전선이 밀려 이북의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피난민들 중에는 이북에서 냉면집을 하신 분들도 여럿 있었다. 그 분들이 이북의 음식인 냉면이 먹고 싶어 만들어 먹고 싶어도 전쟁 통에 메밀이나 전분을 구할 수가 없어 궁리 한 게 구호물품의 밀가루로 밀면을 만들었다.

 

 

 





 

그게 부산 밀면의 시초이며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밀면 집 앞에는 줄을 어디까지 선다. 밀면도 처음의 맛과는 많이 변질이 되어 요즘 신세대에 맛는 입맛으로 변해가는 실정이다. 그리고 냉면의 맛은 어떠한가. 요즘은 전통이란 개념이 없어 진지 오래인것 같다.

 

 

 






 

유독 밀면과 냉면에는 더욱 심한 것 같다. 집집마다 맛이 틀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전통성만은 바뀌지 않았으면 한다. 그 전통성을 지키는 집이 있다. 밀면으로 포스팅을 하여 소개를 하였지만 그 당시 안주인 분께서 냉면이 전문입니다하여 북한의 냉면을 맛보기 위하여 이번에 다시 찾아갔다.

 

 

 




 

 

처음 어머님이 만든 그 맛 그대로 아직도 유지를 한다는 서호 냉면은 요즘 다른 밀면처럼 가미되지 않은 밀면 맛을 고집한다. 육수도 전통으로 사골을 고아 만들어 처음 당시 그대로 맛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의 육수와는 다른 맛이다. 냉면도 마찬가지다.

 

 

 






 

 

어머님이 흥남 서호에서 하던 냉면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곳 서호 냉면은 흥남 철수 작전 때 흥남 서호리에서 피난을 와 현재 2대인 최동훈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고 70년의 세월이 넘었다. 삼대를 이어 내려 왔는데 현재3대 따님이 직접 경영을 하겠다하여 그 당시 내부수리를 하고 하였는데 그 따님이 회사에 취업을 한다고 하여 할 수 없이 다시 떠안게 되었다.

 

 

 




 

 

 


그러나 최사장님의 고집은 어머님의 맛을 그대로 잇고 싶어 하신다. 자신은 요즘 젊은 세대의 입맛을 따라 맛을 변화 시킬 생각이 없다하시며 어머님의 맥을 그대로 잇고 나가지만 직장 다니는 딸이 다시 돌아와 이 서호냉면의 주인이 된다면 그 것은 그 애의 몫이라며 말씀하시는데....

 

 

 

 





 

 

필자와 대화를 하면서 이제 맛도 찾는 사람에 따라 변해야 되는 것 아니냐 하니 그래도 우리 냉면과 밀면을 맛보기 위해 어디서도 오는데 그 분 들게 전통의 맛을 보여 줘야 하지 않는가하며 말씀 하시는 게 정녕 70년 삼대의 맥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함흥식은 메밀로 만들어 더 쫀득한게 특징이며 편백과 가오리회가 올려져 있는 그 맛을 더한다.




















2012년 6월호 등산전문지 사람과 산에

 부산 특집판이 소개 되었다.

많은 부산 음식과 함께 부산 밀면이 소개 되었는데

서호냉면의 모습과 비빔밀면, 물밀면이 소개되었다.


 

 






상호:흥남서호냉면

소재지: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족발골목 한성족발 맞은편

연락처:051-254-0123

메뉴:냉면 전문점. 함흥식과 평양식.

밀면(,비빔밀면과 물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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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밀면에 대해 여러 곳을 포스팅 하였지만

부산의 밀면은 처음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그

러니까 지금 부산에서 내노라하는

가야밀면, 국제밀면 동래밀면 조방밀면 서호냉면등등등...

모든 밀면 집은 이집에서는 명함 내기를 주저한다.




 

 

 그 이유는 밀면이란 이름 두 글자가

이곳 내호냉면에서 처음 시작된 사실을 부인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밀면 역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태동하게 된 동기는 함경도 흥남 내호에서

흥남철수작전과 함께 피난온 정한금씨는 친정어머니와 피난을 오게 되었다한다.

 

 

 친정어머니는 피난 오기 전 내호리에서 냉면집을 하였다.

그래서 피난을 온 후 고향의 냉면이 생각이나 곤 하였는데

냉면은 메밀로 만들어 전쟁통에 메밀을 구하기가 힘이 들었고

마침 그 때 거제도로 구호품인 밀가루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걸 부산에서 나누어 주었는데 그 밀가루로 만들어 본 게 부산 밀면의 시초이다.

 

 

 결국 6.25한국전쟁으로 탄생한 부산의 음식이다.

밀가루에 고구마 전분이나 감자가루를 섞어 면을 뽑아

사골 육수를 만들어 말아 먹으며

고향의 산천을 그리워하며 향수를 달랬다.

 

 

 1952년 남구 우암동 시장에 흥남 고향의 이름을 따

‘내호냉면(051-646-6195)“을 열게 되었는데 이집은

이북의 고향 맛을 느끼기 위해 실향민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이집의 면은 다른 밀면 집의 면과는

조금은 다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빔을 좋아해 비빔면으로 주문을 하였는데

소스가 꼭 딸기 쨈을 연상시킬 정도로 느낌이 왔다.

비벼 먹어 보니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맛이 좋은 것 같은 부산밀면이다.

 

 

 

 

 

 

 

 

 

 

 

 

 


 

 

 

 


 

 

 

 

 

 

 

 

 

 

 

 

 

 

 

 상호:내호냉면

소재지: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동 189-671

연락처:051-646-6195

메뉴:밀면과 냉면 전문점

밀면 원조집

주차장은 아신아파트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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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밀면의 역사는 함경도 흥남의 역사와 같이 한다.
6.25 한국전쟁때 뜻하지 않게 중공군의 개입에 의한 인해전술로
전세는 역전되고 하는 수 없이 한미 연합군은 맥아더 장군의 후퇴결정을 받고
흥남철수 작전을 감행하게 된다.
몰려드는 피난민과 연합군은 배에 옮겨타고 남한으로 향해 내려오는데
그때 10만여명이 배를 타고 탈출하였다하며 이를 두고 흥남 철수 작전이라 한다.





 

 

 


그 후 포항에 도착한 피난민은 거제도에서 생활을 하다가
부산으로 와 정착을 하였다하는데 그때의 상황을 잘 묘사한 노래가
1953년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로 시작되는 이 노래,
  뜬금없이 흥남철수니 굳세어라 금순아니 하는 이야기는
오늘 포스팅의 밀면 원조인 양대산맥의 고향이 흥남이기 때문이다.




흥남의 서호리와 이웃한 내호리로 흥남 철수 작전으로
고향을 버리고 피난온 피난민들이기 때문이다.
피난 1세대인 임윤숙님은 흥남 서호에서 냉면장사를 하였다하는데
피난을 와 할 수 없이 이곳 자갈치 농협뒤에서
흥남면옥으로 냉면집을 열었다한다.
그때 부암동에는 흥남 서호리의 이웃마을인 내호리에서 피난온
정한금씨의 친정어머니가 내호냉면을 시작하였다하며
이를 두고 흔히 부산 밀면의 1세대라 한다.


피난 1세대때에는 양집안이 서로 왕래가 잦았는데
그 밑의 2~3세대로 내려가면서 왕래가 뜸해지다가 지금은 아예 단절된 상태라
이야기를 하시는 피난2세대 최동훈사장님의 향수에 젖어 있는 모습에
그때의 고단함을 옅볼 수 있었다.
최사장님 모친이신 임윤숙님이 피난을 와 처음 문을 열었다는 흥남면옥은
그 후 함흥냉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하며
지금 자갈치역 옆의 55년 된 함흥냉면집은 이집에서
직원으로 있었던 최씨 분이 장사를 하고 있다한다.


그래서 자갈치 함흥 냉면집은 부평동 족발골목으로 옮기면서
고향마을의 서호리 이름을 따 서호냉면으로 사용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3대 70년 세월이란 이름이 간판에 새겨져 있어 그 세월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밀면 탄생배경이 미군들이 들여온 구호품의 밀가루가 거제도로 들여왔는데
부산으로 가져와 빚어낸 음식이 오늘의 밀면이다.


서호냉면은 함흥에서부터 냉면집을 하여 그맛이 궁금했지만
그 당시 밀면 맛이 궁금하여 밀면으로 포스팅을 하였다.
요즘의 밀면집에서는 그당시의 밀면 맛을 느낄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정확히 말해 사람들의 입맞을 쫒아 밀면도 많은 변화를 거쳤지만
여기 서호냉면은 어머님때부터 이어오던 그때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다.


그래서인지 젊은층 보다는 4~50대 이후 고객층이 많이 찾는다한다.
아직도 우리집 육수는 소뼈를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어머님부터 이어오던 그 맛을 그대로 유지하여
그때의 향수를 전해줄 것이라 힘주어 말하시는 최사장님,
어머님은 어디계십니까하고 여쭈니 웃으시며
살아계시면 지금 100세가 훨씬 넘었시다고 말씀하시는 최사장님,
그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 밀면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찾아 들어오시는 손님에 의해 자리를 뜰수 밖에 없었다.



 

 

 

 

 

 













밀면2세대인 서호 냉면 최동훈사장님 부부.사모님이 지난해에 넘 무리를 하시어 몸이 불편하다며 얼굴이 잘 나와야 되는데 하시는 그말씀, 사진 잘 나왔습니다. 사모님. 앞으로도 건강하세요.



상호:흥남서호냉면
소재지: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돼지족발골목 하이마트 건너편 부근
연락처:051-254-0123
메뉴:냉면과 밀면외

찾아가는길
도시철도 1호선 자갈치역에서 하차를 하여 서구청 방향으로 올라오면 부평교차로 하이마트 옆 일방통행길에 위치. 대중교통인 버스는 서구청에서 하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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