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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기념관)

(사명대사 생가터인 유적지는 4만9146㎡의 부지에 사당인 숙청사,어린 유년기를 보낸곳을 육영당, 그리고 거처를 하던 사랑채를 사명당으로 각각 복원하였다 합니다)

(경남여행/밀양여행)사명대사 생가와 기념관. 사명대사의 고향 마을인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 댕겨 왔습니다.


1992년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16호로 지정됨
소재지: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399번지
연락처:055-359-5647
사명대사는 조선 중종 39년인 1544년에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풍천임씨 집안의 둘째아들로 태어 납니다.
사명당이 태어난 고라리는 풍수지리설에 의 한 명당으로 주변에 하서산에서 이어진 능선이 영취산 종암산으로 흘러내린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고라리에서 그의 조부 때 부터 터를 잡아 살았는데 사명당은 커면서부터 매우 독특하였던 어린이 인 것 같습니다.




“번뇌를 하지 않고 쓴 글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며. 부모님이 세상을 떠 자 그는 명종14년인 1559년에 김천의 황학산 직지사로 찾아가 신묵대사에 의해 출가를 하게 됩니다.

그후 그는 또다시 금강산의 보현사에 찾아가 서산대사의 제자가 됩니다. 1592년 사명당은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도를 하던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승문을 나와 승려들과 규합하여 평안도 순안으로 가 스승 서산대사가 이끄는 승병과 합세를 합니다. 그는“의승도 대장”이 됩니다.
여러번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또한 1593년 명나라의 구원군과 함께 합세하여 평양성을 탈환하는 전투에서도 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번 왜구의 적진으로 찾아가 왜군의 상황을 염탐하기도 하고 휴전협정의 담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사명당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선조37년인 160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적장과 담판을 하여 전쟁 중에 잡혀간 백성 3000여명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쾌거도 올립니다.
8개월간 일본에서 머문뒤 돌아와 그는 모든 공직을 버리고 묘향산으로 들어가 수도에 전념하였다 합니다.
그후 그는 해인사에서 입적하게 되는데 광해군이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를 내렸다 합니다.

지금도 해인사에 가면 홍제암이란 암자가 있습니다. 여기서 입적한 사명당의 시호에서 따 왔다 합니다. 사명대사의 부도탑도 현재 홍제암에 있다합니다

사명대사 유적지인 기념관과 생가지에서는 최근까지 입장료 2000원을 징수하였는데 지난 10월24일 입장료를 폐지하고 무료관람을 실시하고 있다합니다. 우리 부산의 충렬사와 대조가 됩니다.

*생가터 둘러보기









*기념관 둘러보기






 찾아가는 길: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밀양 청도 방향~창녕 밀양 24번~마산 창원 시청 법원 검찰청 방향~창녕 부북 24번 우회전~창녕 청도면 24번~합천 창녕~무안면~무안 부곡 30번 좌회전~창녕 부곡온천~사명대사 유적지(5㎞) 크게 우회전(영산정사)~갈림길에서 왼쪽(영농법인 농정, 갈탄보일러)~영취산 하서산 등산안내도 지나~영산정사 방향~다례 서가정 사명대사 유적지 영산정사 우회전~다례 서가정~사명대사 유적지순입니다.

*사명대사 기념관과 유적지는 밀양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클릭하시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http://tour.miryang.go.kr/01/04_01.php?pT_idx=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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