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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고인돌 덮개돌에 공룡발자국이 있는 함안 군북 명관리 고인돌 여행. 군북 명관리 고인돌 


지석묘는 고인돌이라하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을 말합니다. 

최고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함안군 군북면을 여행하면서 명관리의 여러 고인돌을 만나고 왔습니다.





함안 군북 명관리 고인돌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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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탁자식과 바둑판식이 있습니다. 

4개의 받침돌을 놓고 그위에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게 탁자식이며 

땅을 파 돌방을 만들고 그위에 받침돌을 놓고 덮개돌을 올린게 바둑판식입니다.

 


군북역에서 백이산을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도로를 600m 따라가면 

오른쪽 논두렁에 명관리 4,5,6,7호 고인돌이 있습니다.

 


도로에서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바위로 보입니다. 

바위가 아니라는 것이 그 앞에 이름을 알리는 고인돌 표지판이 붙어 있습니다. ㅎㅎ

  


“아!! 고인돌 맞네”하며

도로가에 설치된 가드레일을 넘어 배수로를 걸어갔습니다. 

겨울이라 빈 논이지만 가을에는 누런 벼이삭이 

허리를 숙이며 풍년을 노래했을 것 같습니다.

 


명관리 4호 고인돌이 가장 큰 규모입니다. 

그리고 5,6호 고인돌은 작은 바위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명관리 7호 고인돌은 사각형의 바위모양입니다.

 


이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4호 고분군 상면에 

큰 홈이 파였는데 이게 공룡발자국입니다. 

고인돌 덮개돌에 성혈은 많이 봤는데 

공룡발자국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ㅎㅎ

 


고인돌에 공룡발자국이 있는 것은 좀체 없다고 하니 

명관리 4호 고분군이 유일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다시 도로를 따라 평광마을로 갑니다.



평광마을입구에는 500여년전에 조성한 숲이 있습니다. 

평광숲으로 불리는데 일제강점기와 6.25한국동란에 

크게 훼손되어 현재에는 50여 그루만 남아 있습니다.

 




수령 500년이 넘은 거목이 3그루가 있습니다. 

그 중에 유목(乳木) 또는 절부목(節婦木)으로 불리는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양졸숲 시비 맞은편에 밑둥치가 울퉁불퉁한 혹이 난 

나무인데 이 느티나무에 슬픈전설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왜군이 평광마을로 쳐들어 왔습니다. 

마을주민은 소식을 듣고 미리 평광숲 옆 건지산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빈마을이라 왜군은 주민을 찾는데 혈안이었고 

그때 물을 마시러 내려오는 처녀를 붙잡아 나무에 매 달고는 

주민의 숨은 곳을 데라며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처녀는 끝까지 발설하지 않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왜적은 

처녀의 가슴을 대검으로 도려내어 죽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느티나무에는 유방을 닮은 혹이 생겨났고 

하얀 물이 흘러 나와 유목이라 불렀으며 주민을 구하고 

순절했다 하여 처녀를 기려 절부목이라 부릅니다.




이 느티나무 아래에 정사각형의 바위가 명관리 1호 고인돌입니다. 

고인돌 상면에는 성혈 흔적도 보이며 원래 위치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합니다.

위 사진의 느티나무가 유목이며 그아래 바위가 명관리 1호 고인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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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명관리 평광마을 입구에 500년전에 조성한 평광숲 여행. 절부목 양졸숲 이야기


경남 함안군 군북면 명관로 357 평광동마을회관 옆에 평광숲이 있습니다. 

이숲은 평광마을입구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양졸숲'으로도 부릅니다.





 함안 평광숲(양졸숲)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로 357 평광동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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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광숲의 조성은 500여년전에 함안 군북 명관리에 인천이씨 

이계운이 벼슬을 버리고 평광마을에 정착하면서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었습니다. 

그의 6세손인 이휴복이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고향에 내려와 숲의 규모를 더욱 넓혔습니다.

 


평광숲은 한여름이면 울울창창 숲을 이루며 

동네의 정자나무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을 겪으면서 일제는 배를 건조한다고 

큰나무를 마구 베어 내었고 한국동란 때에는 

폭격을 받아 평광숲은 크게 훼손했습니다.

 



평광숲을 양졸숲이라고도 합니다. 

졸은 옹졸, 치졸를 뜻하는 말로 양졸(養捽)숲은 

‘졸렬함을 기르는 숲’이란 뜻을 가졌습니다.

 


평광숲의 면적은 약3,600평이며 수령 500년이 넘는 3개의 느티나무에 

정자가 있는 연못주위로 현재 크고 작은 나무 50여 그루가 있습니다. 

평광숲의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에 유목(乳木) 

또는 절부목(節婦木)이라 불리는 전설의 나무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왜군이 평광마을까지 쳐들어왔습니다. 

마을 주민은 이 소식을 듣고 동네 야산으로 모두 몸을 숨겼고 

왜군은 동네사람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때 산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처녀가 물을 찾아 

계곡으로 내려오다 그만 왜군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왜군은 처녀를 큰 나무에 매달고는 주민이 

숨은 곳을 발설하라고 고문을 하였습니다. 

처녀가 입을 열지 않자 왜군은 장검으로 

처녀의 가슴을 도려내어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처녀를 달아맨 나무 양편에 사람 유방을 닮은 

혹이 생기면서 이곳에서 하얀물이 흘러나오자 유목이라 불렀습니다. 

마을 사람을 구하고 순절한 처녀의 

절개를 기려 절부목으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양졸숲에는 화가 이우환의 양졸숲 시비와 500년이 넘은 고목 아래 

장방형의 바위는 인근에서 옮겨 놓은 고인돌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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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충절의 상징인 중국의 백이와 숙제 형제 못지 않다는 군북 어계 조려 생가 여행. 어계고택


함안 군북면의 어계생가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어계는 조려(1420~1489)선생의 호입니다. 

자는 주옹이며 함안에서 출생했습니다. 





충절의 상징 어계생가 주소:경남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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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계생가(어계고택)를 여행하기 전에 먼저 

어계 조려 선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세조가 계유정란을 일으켜 조카 단종의 왕권을 빼앗자 

이에 항거한 분들중에 사육신과 생육신이 있습니다. 



생육신중 한분이 어계조려선생이며

함안에 낙향하여 은거하며 지냈습니다. 

어계조려는 한달에 3번씩 왕복 천리길인 영월의 단종을 찾았습니다.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 실패하여 사사되었고

 단종에게도 책임을 물어 시약을  받고 승하했습니다. 


  


조려선생은 단종의 승하소식을 듣고는 그길로 말을 달렸습니다, 

마음은 급하고 말은 느린것 같고하여 하림리를 지나면서 

채찍으로 말을 때리며 독려하였습니다.



하림리 서산사 입구를 흐르는 모로천에 큰 바위절벽이 있습니다. 

평소에 어계선생이 낚시로 소일을 하던 곳으로 말채찍으로 

때리며 달렸다하여 고마암(叩馬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어계선생은 청령포에 도착했으나 전날밤 많은 비가 내려 

 불어난 강물로 도저히 건널수 없었습니다.  


마음은 급하고 해서 어계 조려선생은 강으로 뛰어들려는 찰라 

어디선가 호랑이가 나타나 어계선생을 등에 태우고 무사히 강을 건넜습니다.




다행히 단종에게 신하의 예를 다하고 방에서 나왔습니다. 

호랑이는 그때까지도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호랑이의 등을 타고 강을 무사히 건너왔는데 

영월읍지 등에 ‘호배도강전설(虎背渡江傳說)’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두임금을 섬기지 않은 충절은 호랑이도 알았나 봅니다. 

조선 숙종은 단종을 노산대군으로 추봉하면서 

조려 선생을 두고는 중국 고사의  수양산에서 

고사리만 캐 먹다가 고사리도 주나라 꺼라는 말을 듣고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 형제 못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뒤부터 어계생가와 마주보고 있는 쌍안산과 쌍봉산의 

두봉우리를 백이산과 숙제봉으로 바꿔 불렀습니다. 




생육신으로 단종과 군신의 의리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은 

어계 조려선생은 누구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는 조려 선생의 할아버지인 전서공 조열선생 때문이라 보여집니다. 

어계생가  오른쪽 처마 아래에는  '금은유풍(琴隱遺風)'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이성계가  역성 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웠습니다. 

그때의 이야기입니다. 



고려 공민왕때 벼슬이 공조전서에 올랐으며 

거문고와 시, 서화에 아주 능한 분이었습니다.




조열이 달밤에 거문고를 타면 몇 리 밖에서도 

그 소리가 들렸을 정도였다고 하니 말입니다. 



조열은 공민왕에게 이성계의 병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축출당해 낙향하여 원북에 은거하며 지냈습니다.

 

어계생가 사당영역



이성계가 정권을 잡은 다음 4년만에 

경복궁을 완공하고 낙성연회를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이성계는 조열을 불러 거문고를 타 달라 하였으나 

공민왕이 여러 번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았다며 거절했습니다.



또한, 태조의 뒤를 이은 정종이 부왕인 태조의 어진을 부탁하였으나 

공민왕의 어진도 거절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그릴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화가 난 경종은 조열을 옥에 가두었고 태조가 

소식을 듣고는 석방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태조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 충신은 알아보았던거 같습니다. 

'금은유풍'은 공민왕에 대한 조열 선생의 굳의 절의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어계고택은 대문채와 원북재, 사당영역으로 나눕니다. 

대문채는 3칸이며 가운데 솟을 대문 양쪽에 방을 넣었습니다. 

어계고택의 주건물은 원북이며 

앞면 4칸에 옆면 2칸인 일자형건물로 단순하게 지어졌습니다. 



부엌은 없고 가운데 대청과 좌우로 온돌방만 

갖추어져 있어 재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북재 뒤편의 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이며 국왕이 하사한 

향로와 어계선생이 사용하단 죽장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어계고택 주차장에서 백이산과 숙제봉이 바로 보입니다.   

어계조려 선생이 태어난 곳을 어계생가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집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어서 어계고택으로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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