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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영도여행)우리나라 근대 조선의 발상지 부산 영도 대풍포 여행. 영도 대풍포를 아세요?


대한민국 근대조선의 발상지는 부산 영도입니다. 

부산 영도 가운데에서도 대교동과 남항동일대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조선소 였던 다나까조선소와 많은 중소 규모의 조선소가  생겨났고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영도웰컴센터 주소: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 1가 1

영도웰컴센터 전화:051-419-4048




2019/03/15 - (부산여행/영도여행)봄맞이 걷기 좋은 해안길 영도 절영해안산책로·절영해랑길

2016/09/21 - (부산영도여행/영도가볼만한곳)흰여울문화마을. 영화 변호인 촬영지 흰여울문화마을이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2016/09/19 - 영도여행/영도가볼만한곳)청학동 해돋이 전망대 청학마루. 영도 최고 전망대로 손색없는 봉래산 둘레길 청학동 해돋이 벽화 마을 해돋이 전망대 청학마루를 만나다.

2015/09/08 - (부산여행/영도여행)부산항대교 전망대 청학배수지. 밤바람도 맞고 부산 야경도 구경하는 1석2조의 부산 여행 청학배수지 전망대를 추천합니다.

2015/09/09 - (부산여행/영도여행)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피난민촌 마을 청학동 해돋이 마을 벽화 여행을 하다. 청학동 해돋이마을.

2015/07/05 - (부산여행/영도여행)태종대 태종사 수국꽃 축제. 꽃불이 났다는 태종대 태종사 수국꽃 축제 보고 왔습니다.

2015/02/25 - (부산여행/영도여행)동삼동패총전시관. 부산에도 동삼동 패총 전시관에서 신석기 시대 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왜 영도가 우리나라근대조선의 발상지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를 알려면은 먼저 영도에 있는 대풍포를 알아야합니다. 

대풍포는 소형선박이 태풍을 피해 정박하는 피난처 역할을 하던 곳이며 현재 영도다리 주위로 3곳이 있습니다. 



대풍포는 “바람이 싫어서 평안하라”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도 대평동이라 불렀습니다. 

부산 영도다리를 걸어 영도 대풍포를 찾아갔습니다. 

남포역에 내리면 영도다리는 지척입니다.

 



6·25 한국동란의 대표 상징인 영도다리는 현인 선생의 `굳세어라 금순아`로 아마 전국에서 영도다리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1.4 후퇴 이후로 피난민이 대거 부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피난을 떠나기 전에 혹시 헤어지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미리 하고 떠났습니다. 

피난길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영도다리에서 하염없는 기다렸습니다. 

피난길에 헤어졌던 가족을 만나던 눈물의 다리이자 상봉의 다리, 아픔의 다리였습니다.



1966년에 들어와서 영도다리는 교통량의 증가와 영도다리를 통해 상수도공급이 들어가면서 개도다리였던 영도다리는 더 이상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13년 다시 영도다리는 하루에 한 번 오후 2시에 하늘로 치솟으며 다리를 끄떡끄떡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당시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영도 다리가 끄떡끄떡 한다' 입니다. 

영도다리 영도 쪽에는 굳세어라 금순아를 노래한 현인 선생님 동상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항상 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옵니다.

 


ㅎㅎ대풍포는 영도다리와 현인 선생님 동상 사이 계단을 내려서면 오른쪽 다리 아래로 지나갑니다.

드디어 첫번째 대풍포입니다. 

부산항대교와 영도대교 사이에 있습니다. 

'소년과 갈매기' 조형물이 물양장과 부산대교를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영도 사람들'의 조형물입니다. 

강인한 정신의 영도 사람을 표현한 듯 보였습니다. 





대풍포인 영도 물양장을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영도 대풍포에는 1876년에 개항과 함께 영도에 일본인 조선소가 들어왔습니다. 

이와 함께 일본 어선도 대풍포에 정박하여 물건도 하역하고 배도 수리하였습니다.

 


1887년에 다나카 조선소가 처음 들어서면서 여러 일본 조선소가 들어왔고 작은 포구였던 대풍포는 일본인들의 전용 선착장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 1926년 사유지를 강제로 편입하여 '영도 대풍포 매축 공도를 실시'하여 대풍포 매축지를 독점하다시피 사용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이 일대의 매축지를 반도보다 작은 육지란 뜻인 ‘갑정’이라 불렀습니다. 

이곳에 들어선 일본 조선소의 숫자가 60여 곳이며 어선을 건조하거나 수리를 전문으로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관련 조선 기자재업체도 몰려 근대조선산업의 발상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 어선은 전부 목선을 만드는 소규모의 조선소였는데 철선에 밀려 모두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1937년에 와서 우리나라 최초의 철로 만든 조선소인 대한조선공사가 세워졌으며 오늘날 한진중공업의 전신입니다. 

80년의 긴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최초 근대조선소가 한진중공업으로 이어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지금도 조선업 불황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초창기 대한조선공사는 선박의 건조보다는 선박수리업을 주업으로 하다가 1970년에 들어와 대만에서 배를 수주하여 ‘팬 코리아호’를 진수하였습니다. 

진수식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근혜·근령 자매가 참여할 정도로 큰 관심이었습니다.



평일인데도 많은 어선이 조업을 멈추고 대풍포 물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만큼 경기가 없는것인지....

하루 빨리 경기가 살아나서  물양장의 많은 어선이 조업에 나서길 기대해봅니다.




부산 남포동 영도다리 옆의 롯데백화점 남포점 건물이 우뚝합니다. 

롯데백화점 건물을 신축하면서 롯데그룹 계열인 롯데건설에서 영도다리 개도 공사를 추진하여

멈추었던 영도다리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걸어서 영도웰컴센터까지 왔습니다. 그 옆 라발스호텔 정문에 세워진 예술품입니다. ㅎㅎ

정작 소리가 나지 않는 다는 ㅎㅎ



영도 웰컴센터입니다. 영도관광안내소입니다. 건물 모양은 독특한데요 ㅎㅎ

영도대교 도개 모습을 본떠 지은 건물이라합니다. 

지금 모습이 다리가 들여 올라간 모습입니다.



계단이 놓여진것을 보면 올라가보라는 전망대였습니다. 

전망대 바로 아래 카페도 있습니다. 

일단 최고 높이의 카페위 전망대에서 

대풍포 물양장을 내려다 보며 사진을 담았습니다. 

또한 영도대교 개도 전망대라 합니다. ㅎㅎ 오후 2시에 한번 찾아 보시면 좋을 듯 ㅎㅎ

 


주위는 빌딩숲에 가렸지만 그래도 물양장을 하늘에서 볼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ㅎㅎ

영도 웰켐센터는 영도에 관한 갖가지 기념품과 커피 영도 관광 팜플렛을 얻을수 있습니다. 

마침 제가 '깡깡이길' 관광 팜플렛을 찾았는데 다 나갔다는 ㅎㅎ 관계자님 미리 미리 보충해주세요. 



롯데백화점과 부산항대교를 동시에 담아보았습니다.



다시 대풍포 물양장을 되돌아 영도다리아래로 향합니다.

이번에는 영도 대동대교맨션이 있는 대풍포를 찾기위해서입니다.

이곳에는 1926년 사유지를 강제로 편입해 

'영도 대풍포 매축 공도'를 실시했다는 대풍포 매축비가 있습니다.





대풍포 물양장에 독특하게 지어진 좀전의 그 호텔 건물 ㅎㅎ

영도 웨컴센터 건물도 보입니다.





이제 영도다리 아래을 다시 지났습니다. 

저기 용두산 공원에 부산의 상징인 부산탑도 보입니다. ㅎㅎ






드디어 영도대동대교맨션앞 대풍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도 많은 어선이 정박해 있습니다. ㅎㅎ

 아직 시기가 맞지 않아서 인지 

많은 어선이 물양장에 묶여 있습니다.






영도 대풍포 매축지 석비입니다. 

이번에 사진을 담지 못해 옛날 사진을 첨부했습니다.



고만고만한 배가 정말 엄청나게 들어서 있습니다. 

작은 수리도 하는 등 선주의 바쁜 손놀림도 보였습니다.



다시 부산항국제선용품유통센터가 있는 다음 물양장으로 가기위해 퍼뜩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해가 얼마 남지 않아서요 ㅎㅎ

너무 늦게 영도 대풍포와 깡깡이 길을 찾아서 정말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ㅎㅎ



여기서도 용두산 공원이 보입니다. 




ㅋㅋ 이 배는 청소하는 배는 아니겠죠 

밀대 걸레를 앞에다 달고 다니는게 무슨 용도인지 궁금합니다. ㅎㅎ



그래도 대풍포 물양장은 파도가 잔잔한게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이래서 작은 배가 모두 이 안으로 피신하는가 봅니다.



물양장 주위 모습입니다. ㅎㅎ

정말 아름다운 항구 모습입니다.



여기가 부산항국제선용품유통센터가 있는 물양장입니다. 

이곳은 길이가 제법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주위에 큰배를 수리하는 조선소도 여럿 자리잡았고 대동대교맨션과 

부산항국제선용품유통센터 사이가 대풍포 매축지 입니다.




물양장에서 본 영도의 진산 봉래산입니다. 

이제 강점기 때는 일인들이 조선의 모든 것을 고갈시킨다는 뜻인 

고갈산으로 불렸다가 현재 제이름을 찾아 봉래산이 되었습니다.



큰배를 수리하는 도크도 보입니다. 



배 밖에 보이지 않아 이런 모습 때문에 부산을 제 1의 항구라 하는가 봅니다. ㅎㅎ





대풍포 물양장 3곳을 돌아 댕겼더니 해가 서산 넘으로 늬엿늬엿 넘어가 버렸습니다. 

다음 여행은 자갈치아지메와 함께 강인한 우리 어머니를 상징하는 

대풍포 깡깡이 아지메를 기리는 '깡깡이길'을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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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남항여행)봄이 오는 길을 따라서 걸었던 부산남항 역사·문화·문학 탐방길. 부산공동어장. 자갈치시장, 영도대교, 대풍포, 깡깡이 아지매길, 수리조선소길,

봄이 왔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부산 남항에도 봄이 왔습니다.







부산의 새벽을 깨우는 공동어시장 경매현장. 쓰쿠메로 불리는 아지매의 바쁜 손놀림이 있습니다.


2015/06/22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공동어시장.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부산공동어시장 경매 현장을 다녀 왔습니다.



집 앞 송도 매립지를 출발하여 부산 남항을 한 바퀴 돌기로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부산공동어시장~충무동 새벽시장~자갈치시장~영도다리~영도 남항동 수리조선소길~조선소발상지~남항도선장~용신당~남항대교를 돌아 다시 송도매립지로 오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길로 우리 근대조선과 수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빠르게 걷는다면야 3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이곳저곳 둘러보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요거는 하늘 열차라고요. 아닙니다. 저 끝에 배를 정박하면 제빙공장에서 생산된 얼음을 배에다 싣는 장치로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을 상하지 않게 보관 합니다. 특히 부산남항은 전국수산물 냉가공 업체가 60% 몰려 있으며 공동어시장 주위 남항을 끼고 이런 시설물이 아직도 여럿 남아 있습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주택가 모습입니다. 평지에 지은 집보다 산비탈을 깎아내고 들어선 집이 부산에는 더 많을 정도입니다. 집이 절벽에 붙었다하여 외지인이 보고 "저런 곳에 어찌 사노"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부산사람은 이런 삶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부산남항에는 많은 어선이 출어를 기다리며 손길이 분주했는데 특히 바닷장어라 부르는 붕장어를 잡는 어선이 많았습니다. 뱀하고 비슷한 일명 아나고는 죽은 고기를 먹고 산다고합니다. 그래서 죽은 생선을 미끼로 쓴다는데 여기 꽂힌 바늘 하나하나에 생선 토막을 끼워 붕장어를 잡아 올린다하니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먹는 아나고회의 아나고는 그물로 한꺼번에 잡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낚시로 잡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산항은 남·북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영도다리로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북항은 현재 부산국제여객터미널과 컨테이너 등 물류운송업이 주를 이룬다면 남항은 자갈치시장 앞바다를 말하며 수산업과 수산가공업, 조선업 등이 주를 이룹니다.



현재 부산남항과 북항은 일제강점기 이전인 조선 말기에는 모두 조그만 어촌 포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삼포개항을 요구하였고 개항하면서 일본의 선박 왕래가 잦아져 남항의 기능을 갖게 되었습니다. 1930년경에는 경남지역 모든 물동량이 남항을 통해 운송되었고 전국최대의 공동어시장이 자리하여 연안수산업도 활기를 띠어 명실상부한 부산대표 항만이 됩니다.




부산남항의 기능을 갖추게 된 것은 1912년 시작된 충무동과 남부민동, 자갈치 일원의 매립과 방파제 축조 공사가 완공되면서 입니다. 또한, 1934년 11월 영도다리 개통으로 남항은 자갈치와 영도 남항동 봉래동을 연결하며 대변혁기를 맞습니다. 1945년 8·15광복으로 귀국한 동포와 6·25 한국동란으로 몰려든 피난민과 함께 부산은 그야말로 혼잡 그자체였습니다.



이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바로 국제시장, 부산남항의 자갈치시장과 북항의 부두, 영도 수리조선소였습니다. 우리들의 할아버님 할머님 아버님 어머님이 자식들의 입에 거미줄을 걷어내기 위해 뼈가 가루가 되도록 일을 했던 부산남항은 오늘도 말없이 그때처럼 무덤덤이 모든 것을 그저 받아만 주고 있습니다. 






영도다리도개동영상◆


2013/11/30 - (부산여행/중구 영도여행)영도대교(영도다리), 영도대교 47년만에 들리다, 동영상으로 구경하세요



영도다리에는 최근 새로운 조형물이 들어섰습니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금순이도 있고 김상국의 "자갈치 아지매" 에 자갈치 아지매도 있습니다. 피난길에 보따리를 이고 지고 메고 부산 영도다리로 몰렸던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6.25세대가 아닌 저로서는 이 조형물을 보면서 당시 영도다리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영도다리 아래에는 점바치 골목이라 불리며 많은 점집이 있었습니다. 영도다리와 함께 유명했는데 "우리 애 좀 찾아주세요" 하며 당시 피난 온 가족의 행방을 묻는 등 불안한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50여 곳이나 될 정도로 성업했던 점집도 시대의 상황과 개발 등으로 최근에는 모두 자취를 감추어 점바치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나 떴다“

 



국민가요인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랫말로 현인은 영도구 영선동에서 태어났습니다. 2002년 타계하기까지 수많은 노래로서 대중의 마음을 품어주었습니다. 영도에서는 이를 기념하기위해 영도 편 영도다리 입구에 동상과 함께 노래비를 세웠습니다. 그의 노래 가사처럼 영도다리 난간을 부여잡고 지금도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며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피난민과 부산시민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작금의 영도다리는 그때처럼 “영도다리가 끄떡끄떡”했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 오후 2시에는 영도다리가 그때같이 끄떡하고 하늘로 치솟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이 광경을 보기위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데 당시 애환을 겪은 많은 어르신이 그때를 회상하며 추억의 영도다리 도개를 보기위해 찾고 있습니다.





영도다리를 건너면 대풍포가 있습니다. 대풍포는 우리소형어선에게는 큰바람이나 높은 파도가 일면 이곳으로 배를 피난시키는 피난처였습니다. 대풍포의 의미는 “바람이 싫어서 평안하라”고하여 마을이름도 대평동으로 부쳐졌다는데 바람을 피했던 중요한 안식처였는지는 모르지만 1900년 전후 조선 말기에는 일본인의 조선 침탈의 전진기지화가 되면서 우리에게는 피맺힌 한이 자리한 현장입니다.




1876년 개항과 함께 영도에 일본인이 하나둘 들어섰는데 그와 함께 일본 어선이 대풍포에 정박하여 하역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887년부터는 다나까 조선소등 일본 조선소가 하나둘 진출하여 일본인들은 대풍포를 자신들의 전용선착장으로 만들어버렸고 급기야 사유지를 강제로 빼앗아 1926년에는 ‘영도 대풍포매축공도’를 실시하여 이 일대를 독점하다시피 사용하였습니다.


 

일본인은 매립한 땅을 반도보다 작은 육지란 뜻의 ‘갑정(미사끼마찌’)이라 불렀으며 주택가와 일본인 조선소가 들어섰습니다. 일본 조선소는 어선을 만들면서 수리도 하였는데 약 60여 곳의 일본인 조선업체와 관련 업체가 몰렸다하니 목선을 만드는 가내수공업의 우리조선소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모두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던 곳입니다. 지금도 대풍포는 조선업체와 그와 관련된 업체들이 몰려 오늘의 남항을 이끌고 있습니다.



또한 대풍포에 자리를 잡은 일본인은 1890년 영도 봉래동에서 용미산 남쪽(현재 롯데백화점 남포점 부근)을 다니는 조선인의 도선을 보고 1901년 자갈치(남포동)로 진출하기 위해 대풍포에서 자갈치를 잇는 뱃길을 개설하였습니다. 나룻배는 1910년 동력선으로 교체하였는데 영도다리가 개통된 이후에도 이 뱃길은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자갈치시장 현대화 공사로 인해 뱃길은 끊어졌고 필자도 자갈치에서 재미삼아 영도로 건너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소문에는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영도다리 개도와 함께 뱃길도 운행된다고 하는데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자갈치에서 영도 대풍포를 운행하는 추억의 뱃길도 다시 운영될 것 같습니다.



영도는 우리나라 조선 공업이 시작된 곳입니다. 이를 기념하는 ‘한국근대조선 발상 유적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남항동 대평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있습니다. 영도에 처음 조선소가 들어선 것은 1887년 현재 남항동 대평초등학교에 일본인이 세운 다나까 조선소였습니다.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진출한 1호 조선업체로 목선만 만들던 한국에서 최초 근대식 조선소의 시작입니다.



그 후 1937년 한국최초의 강철로 만든 조선소가 세워졌는데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였습니다. 80년 가까이 조선기계 조선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대한조선공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은 한진중공업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습니다. 당시 대한조선공사는 새 배의 수주보다는 중고선박 수리를 했는데 1970년대에 들어 처음으로 대만에서 수주한 ‘팬 코리아호’를 진수하여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되신 박근혜 근령 남매가 진수식에 참여했을 정도로 당시 대한조선공사 진수식은 큰 이슈이며 국가적인 큰 행사였나 봅니다. 현재 한진중공업 내에는 대한조선공사 초창기 대한민국 조선소의 흔적과 대한민국 최초 도크가 남아 있습니다. 조선산업의 역사가 바로 부산 남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사라지고 없지만, 수리조선소에는 ‘깡깡이 아지매’가 있었습니다. 자갈치 아지매도 아니고 깡깡이아지매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박수리를 전문으로 하다 보니 강철의 찌그러진 부분을 바로 핀다든지 험한 항해에서 강철판에 쓴 뻘건 녹을 벗겨내는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를 ‘깡깡이 아지매’라 불렀습니다.



 녹 제거를 위해 망치를 수천번 수만번 두드리면 ‘깡깡’ 소리도 수천번 수만번 나서 그리 불렀는데 이도 1970년대 중반부터 ‘깡깡이 아지매’가 하던 일을 콤프레샤로 모래를 쏘아 녹을 벗기는 작업으로 점차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직업을 잃은 깡깡이 아지매들은 자갈치시장과 공동어시장에서 고기를 선별하는 작업으로 옮겨갔으며 다시 이들을 ‘쓰쿠메’라 불렸습니다. 라디오의 장수 프로그램 중 자갈치아지매가 있습니다. 이분들도 억척스럽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어머님인 진정한 자갈치아지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가 부산 영도 대풍포 대한민국 조선소의 발상지입니다. 오늘의 모습 사진으로 보세요


















남항동에는 용신당이 있습니다. 필자는 이번에 이곳을 방문하고 처음 알았는데 여기 모셔진 용왕 할매는 우리나라 신이 아닌 일본 할매를 모셨다합니다. 왜 일본 할매 신을 이곳에 모셨는지 많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영도다리를 건설하면서 많은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었고 그때 죽은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용신당을 건립했다합니다. 영도다리가 개통되면서 밤만 되면 영도다리 아래에서 사람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이는 다리공사를 하다 불귀의 객이 된 원혼이 원통하여 구천을 떠돌고 있다며 그들의 원혼을 달래줘야 한다고 모두들 수군 그렸고 마침내 이곳에 용신당을 짓고 위령제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뒤 용신당에는 바다에서 조업하다 숨진 뱃사람들의 넋을 달래는 곳이 되었으며 출항을 앞둔 선주는 이곳에서 풍어로 만선과 안전운항을 기원하는 용왕제를 올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용신당은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파괴되어 다시 지어졌습니다. 필자가 찾은 이날에도 용신당에는 어느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렸는데 그 소리가 문밖까지 들렸습니다.

 






이제 부산 남항 한바퀴는 막바지입니다. 남항대교도 코앞이고 영화 변호인을 촬영했던 흰여울길의 아름다운 모습도 지척입니다. 오늘 남항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알게되었습니다. 이제 겨울은 봄에 자리를 내어주듯 두꺼운 이불을 걷어내고 따뜻한 봄을 찾아 역사길이자 문화·문학의 길인 부산 남항 길을 한 번쯤 걸어보세요. 봄기운이 '쑥' 밀려옴을 느낄것입니다. 





( 부산남항홈피캡쳐)




2016/02/19 - (부산여행/부산남항여행)겨울 부산 남항. 맹추위가 기승을 부릴때 부산의 바다 남항 여행을 해보세요.


2015/10/19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 송도해수욕장에서 고등어축제 했다 아잉교. 굽고 지지고 회치는거 구경 한번 해보소. 부산 송도 고등어축제


2015/06/22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공동어시장.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부산공동어시장 경매 현장을 다녀 왔습니다.


2014/12/29 - (부산맛집/중구맛집)남포동, 광복동 맛집 설빙본점. 빙수 계절이 없습니다. 겨울철에 먹는 퓨전빙수도 맛 있어요. 설빙 창선동 본점



2014/12/28 - (부산맛집/중구맛집)광복동 남포동 용두산공원 맛집 청기와 숯불갈비. 부산 중구 남포동 광복동에서 한우고기가 땡 길 때 찾는 청기와 숯불갈비.


2008/10/07 - (부산여행/중구여행)40계단 문화 테마거리 여행. 부산의 특이한 이름인 "40계단" 추억을 아시나요


2008/10/09 - (부산여행/중구여행)백산기념관 여행.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선생님을 만나보실수 있습니다.


2008/10/22 - (부산여행/중구여행)용두산 몽마르트 언덕 여행. 용두산 공원에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이 생겼습니다.


2013/11/25 - (부산여행/영도/중구여행)부산 영도다리, 영도대교(다리)가 47년만에 올라가요. 영도대교 개통식


2014/11/30 - (부산여행/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온누리에 기쁨을...제6회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2015/07/09 - (부산여행/중구여행)동광동 인쇄 벽화 골목, 40계단 문화관. 부산 동광동 인쇄골목 천·지·인과 40계단 문화관 부산 중구 여행 한바퀴.


2015/05/03 - (부산여행/중구여행)조선통신사 축제. 한국과 일본 국가 사절단 조선통신사 행렬 축제가 열리다. 조선 통신사 축제


2015/09/08 - (부산여행/영도여행)부산항대교 전망대 청학배수지. 밤바람도 맞고 부산 야경도 구경하는 1석2조의 부산 여행 청학배수지 전망대를 추천합니다.


2015/07/05 - (부산여행/영도여행)태종대 태종사 수국꽃 축제. 꽃불이 났다는 태종대 태종사 수국꽃 축제 보고 왔습니다.


2015/02/25 - (부산여행/영도여행)동삼동패총전시관. 부산에도 동삼동 패총 전시관에서 신석기 시대 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15/02/24 - (부산여행/영도여행)태종대 유원지.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태종대.


2014/02/20 - (부산여행/영도여행)변호인촬영지 절영산책로에서 봄을 마중하다. 흰여울길.


2014/01/04 - (부산여행/영도여행)영도 국립해양박물관. 해양박물관에서 반구대 암각화를만나다.국립해양박물관


2013/11/30 - (부산여행/중구 영도여행)영도대교(영도다리), 영도대교 47년만에 들리다, 동영상으로 구경하세요


2013/11/27 - (부산여행/중구영도여행)영도대교(영도다리) 개통식 이모저모. 영도대교


2013/03/22 -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신선이 된 기분이 이런 기분. 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2014/02/21 - (부산맛집/영도맛집)영도다리맛집 재기돼지국밥. 변호인으로 유명해진 돼지국밥 남항시장 맛집으로 주민이 인정 재기돼지국밥.


2014/02/17 - (부산맛집/영도맛집)삼진어묵전시체험관. 독특한 판매장으로 유명 빵집도 울고 갈 부산 오뎅의 원조 삼진어묵 전시 매장.


2012/06/29 - (부산영도맛집) 물회 맛있게 드시는 방법 자 따라 해 보세요. 엄청난 맛에 놀라다-원조포항물회


2015/09/09 - (부산여행/영도여행)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피난민촌 마을 청학동 해돋이 마을 벽화 여행을 하다. 청학동 해돋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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