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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파란 하늘을 보며 걷기 좋은 밀양 아리랑길 3코스 금시당 둘레길 걷기.


방가방가 

밀양 둘레길 한곳을 소개합니다.

파란 가을하늘에 걷기 좋은 코스입니다. ㅎㅎ




밀양아리랑길 3코스 출발지 가곡동강변주차장 주소:경남 밀양시 가곡동 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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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에서 조성한 둘레길은 밀양 아리나둘레길, 

영남루 수변공원길, 추화산성길, 금시당 길이 있습니다. 

밀양 아리나둘레길은 

부북면의 밀양 연극촌과 고가, 문화체험, 

이팝꽃이 아름다운 위양지를 둘러보는 코스입니다. 



영남루 수변공원길, 추화산성길, 금시당길은 

모두 밀양 시내의 밀양강을 끼고 있어 

이 3 코스를 각각 밀양 아리랑길 1,2,3 코스라 부릅니다.

 


밀양 아리랑길 1 코스인 ‘영남루 수변공원길’은 

영남루가 있는 밀양읍성에서 시작하여 

하중도인 삼문동을 한바퀴 도는 6.2㎞거리이며 

2 코스인 ‘추화산성길’은 교동마을의 밀양향교에서

손씨 고가, 박물관, 추화산성과 봉수대를 연결하는 4.2㎞ 입니다.



3 코스 ‘금시당길’은 용두목에서 시작하여 

금시당수변길, 금시당, 월연터널, 월연정, 

추화산성, 암새들을 한 바퀴 도는 약 12.5㎞ 길로 

옛 선비의 멋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만나는 코스로 꾸며졌습니다.

 


필자는 이중에서 옛 선비의 풍류와 멋, 

자연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밀양 아리랑길 3 코스인 금시당길을 소개합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는 벌써 지났지만 

추수를 시작하는 가을철에 가장 걷기 좋은 길입니다.

 


밀양시 홈페이지에는 금시당길을 

5.6㎞라 소개하고 있으며 둘레길 경로안내판이 

제각각이라 일관성이 있게 표시해야 혼동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필자가 찾기 전날에 폭우로 삼문송림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를 건널 수 없어 영남루 아래로 

우회해서 긴 거리를 걸었습니다. 



둘레길 막바지의 암새들에는 

3번 출발지 가곡동강변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금시당유원지와 연결된 콘크리트 다리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교각 아래의 ‘용두목’ 방향 징검다리, 

용평교를 앞둔 왼쪽 갈림길은 ‘금시당길’로 

필자가 애초에 걷고자 한 길이니 참고합니다.

 


밀양아리랑길 3코스 경로를 보면 가곡동강변주차장~천경사~용두목~용두보~금시당~활성교~월연터널~월연정~추화산 봉수대~자연보호 홍보판~용평교~암새들 일주~용평교~경부선 철로 굴다리~자전거쉼터~밀양교~삼문숲~용두교~가곡동강변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입니다. 

둘레길 거리는 약 17.5 ㎞이며 

산행시간은 약 6시간 안팎이 걸립니다.

 


밀양시 가곡동 용두교 아래 가곡동강변주차장 끝에서 

강변 콘크리트 길을 갑니다. 

왼쪽에 삼문동과 연결한 밀양강의 보는 

금시당길 막바지에 걷는 길입니다. 

밀양 철교 아래와 횟집을 지나면 

청룡사 표지석에 놓인 

밀양 아리랑길 작은 팻말을 보고 

왼쪽 길로 가면 기우제를 지냈던 용두연이 나옵니다. 











나무 덱 계단을 올라서면 천경사에 닿고 

큰길을 따라가면 전망 좋은 사각 정자를 지나 

‘천사의 날개’ 포토전망대가 있는 용두목 갈림길에서 

직진 능선은 산성산 방향, 왼쪽 금시당(2,066m)으로 내려갑니다.








곧 갈림길에서 1907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근대수리시설의 효시인 

용두보를 보고 옵니다.

 


여기가 용두보입니다.



밀양강을 끼고 가는 산성산 허리 길은 

금시당에서 끝나며 활엽수와 조릿대 소나무가 

숲 그늘을 만드는 걷기 좋은 옛길입니다.

 











구단방우를 지나 암새들 갈림길이 있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주차장에서 1시간이면 금시당에 닿습니다.
















여주 이씨 명현 다섯분을 모신 

백곡제와 금시당을 보고 나와 

솔 숲길을 벗어나 

밀양 국궁장 앞 둑길을 갑니다.

 








활성유원지






금시교 밑을 돌아 오른쪽의 활성교를 건너 

삼거리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도로를 갑니다









금시당에서 30분이면 심경루를 지나 

월연터널과 월연정 입구에 도착하여 

먼저 월연터널을 보고 오른쪽 월연정에 갑니다.

 


월연터널은 폐철되어 지금은 도로로 이용되며 

일제강점기에 뚫은 2개의 경부선 터널로 

영화 똥개를 촬영하여 똥개터널로도 불립니다.

 





월연정은 1519년 이태가 세운 정자이며 

임진왜란에 불탔으나 1757년 다시 지어졌으며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밀양 아리랑 3 코스는 

월연정 왼쪽의 추화산봉수대(1.561m)방향이나 

오른쪽 조릿대 숲을 내려서서 

백송을 보고 옵니다.

 






이제부터 추화산봉수대 

이정표만 따라갑니다.

 






20여 분 소나무 숲 능선을 올라가면 

갈림길에서 왼쪽이며 능선 오거리 갈림길에서 

3 코스는 왼쪽 섬벌마을(1,508m)로 하산 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2코스인 

오른쪽 추화산봉수대(494m)와 

추화산 정상을 보고 옵니다.










복원된 추화산성에서는 왼쪽이며 

추화산 봉수대와 추화산 정상을 올랐다가 

창훈문을 지나면 다시 추화산성에서 

오거리 갈림길로 되돌아 가 섬벌마을로 직진 합니다.

 




여기서 추화산 정상의 붉은 벽돌 건물인 

창훈문(彰勳門)에 관한 유래입니다. 

필자가 추화산을 찾았을 때마다 항상 궁금해 했던 곳입니다. 





밀양 출신인 박욱과 손긍훈이 

고려 태조의 건국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박욱은 삼한벽공장군이 되었고 

손긍훈은 삼중대광사도에 추증되어 광리군에 봉해졌는데 

이 두분을 사신(祠神)이라 했습니다. 



고을의 백성이 두 분의 공덕을 받들어 

추화산 정상에 사당을 지어 모셨습니다. 

현재 창훈문은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벌목공이 지은 서낭당이라고 하는데 

이곳이 춘복재가 있었으며 손긍훈의 소상을 모시고 

후손들이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 합니다.

 






대형 자연보호 입간판이 있는 봉우리에서 

오른쪽 섬벌마을로 내려갑니다.

 





섬벌마을 도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밀양 아리랑길 안내판에서 오른쪽 둑길을 갑니다.

 






용두목 갈림길을 지나 

왼쪽 용평교를 건넌 다음 

왼쪽으로 꺾어 

하중도인 암새들을 한 바퀴 돕니다.

 








밀양IC 갈림길에서 

오른쪽 굴다리를 지나 

강 건너의 금시당을 보며 갑니다.

 


금시당 유원지



금시당



용두목 갈림길을 지나 

용평교에서 50분이면 

삼문송림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필자는 여기서 왼쪽길로 내려가 

밀양강 철교 공사 현장을 지나 

징검다리를 건넌다음 

삼문송림에서 왼쪽 보를 건너 

주차장으로 가려고 했으나 

불어난 강물로 건널 수 없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용평교를 다시 건너 왼쪽 

‘백송 깻잎 작목반’ 컨테이너를 지나 

 벚나무 둑길을 따라가면 철길로 막혀버려 

오른쪽으로 꺾으면 곧 나오는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왼쪽으로 꺾습니다.









경부선 굴다리를 연이어 지나자마자 

나오는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의 벗나무 둑길을 갑니다.








아동산 아래 ‘자전거 쉼터’ 갈림길에서 

왼쪽 강변길은 영남루 아래 

아랑각을 지나 밀양교를 건너갑니다.







아랑각



석화



영남루 



왼쪽 삼문동 둑길을 따라 삼문송림에서 

밀양강의 보를 건너지 못하고 

오른쪽 용두교를 건너 

용평교에서 1시간 20분이면 

가곡동강변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밀양 영남루 야경




밀양 삼문송림








밀양아리랑길 3코스 교통편입니다.

밀양아리랑길 3코스 출발지인 가곡동강변주차장은 

부산역에서 기차를 이용한 대중교통편과 

승용차 이용 모두 편리합니다. 

부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밀양역으로 갑니다. 

밀양역을 나와 오른쪽 영남루 방향 도로를 따라 1㎞가량 가면 

밀양강에 놓인 용두교 직전 오른쪽에 보이는 

화물트럭이 많이 주차된 가곡동 강변주차장이 들머리입니다.

 



둘레길 걷기가 끝난 뒤엔 가곡동 강변주차장에서 

밀양역으로 간 다음 부산행 열차를 이용합니다.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경남 밀양시 중앙로 178-5 ‘가곡동강변주차장’을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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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추화산성과 추화산 봉수대 여행. 


방가방가

밀양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이번 밀양 여행은 조금 독특합니다. 





밀양 추화산 봉수대 주소:경남 밀양시 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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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시내가 아닌 

밀양 추화산 정상부에 있는 

추화산성과 추화산 봉수대입니다.



밀양의 진산은 

밀양 북쪽 끝의 청도와 경계 짓는 화악산이며 

밀양의 안산은 추화산입니다.

 


그만큼 밀양에서는 중요하게 여긴 산이며 

추화산성의 ‘추화’는 밀양의 옛 지명인 

추화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추화산성의 동문지를 먼저 만나보겠습니다. 

안내판을 보면 추화산성은 해발 243.4m의 

추화산 정상부를 빙 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입니다.

 


산성이 처음 쌓은 연대는 

출토하는 유물에서 알 수 있습니다. 

신라와 가야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면서 

쌓은 산성이며 조선시대 초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추화산성 대부분은 돌로 쌓은 석성이며 

전체 길이는 약 1.4㎞에 

현재 정상 서남쪽 300m만 그 형태가 남아 있습니다. 




동·서·남쪽에 문지가 있으며 

북쪽 골짜기에 우물과 연못, 

부속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산성은 처음에 읍성으로 사용되다가 

읍성을 밀양 시내에 쌓으면서 

산성으로 남았습니다.

 


추화산성 정상부에 

현재 추화산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안내판을 보면 추화산 봉수대는 

추화산의 제2봉 정상부에 있으며 

부산강서구 성화례산에서 봉기한 봉수를 받아 

 


분산-밀양 백산-남산(종남산)에서 

추화산봉수대가 받아 분항산을 거쳐 

경북 청도 남산으로 전하는 

영남좌도연제 제2거소 노선의 간봉선입니다.



봉수대와 그 아래 너른터는 

건물지로 보입니다.



추화산 봉수대는 남산(종남산)봉수대와 

분항산 봉수대와 함께 

봉수제도가 국법으로 확립된 

고려시대(1149년) 부터 갑오개혁(1894년)으로 

봉수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추화산은 봉수대가 자리해서 
조망은 정말 빼어났을듯 합니다.  
지금은 주위에 나무가 자라서 
가려진 곳이 많습니다만 ㅎㅎ


그래도 북쪽으로 옥교산, 화악산, 청도 남산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비학산, 보두산, 낙화산, 중산, 꾀꼬리봉이 보였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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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아리랑길 추화산 둘레길. 밀양의 옛이름 추화군의 추화산 둘레길을 걸어보니


밀양의 진산은 북으로 감싸고 청도와 경계를 잇는 화악산이요, 안산은 남산으로 불리는 종남산을 말한다. 이 외에도 밀양을 대표하는 산으로는 여럿 있다.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재약산등 1000m를 넘는 이른바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영남의 지붕하며 그 줄기에서 뻗어 나온 만어산, 정각산, 구만산등 수많은 봉우리들이 밀양을 이야기할 때 대표라 하며 언급된다. 그러나 밀양을 대표하는 산은 정녕 어디 일까?.





1000m 넘는 산도 아니요. 영남알프스에 언급되는 산도 아닌 아주 작은 밀양시내의 한 봉우리에 불과한 추화산이지 않나 싶다.
밀양은 ‘삼국지위서동이전’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변진24개국으로 ‘미리미동국’이라는 작은 부족국가에서 시작을 하였다.
변한으로 가락국에 속해 있던 것을 505년 지증왕 6년에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으로 되었다한다.
그 추화군의 시초가 이곳 추화산에서 나왔다하니 밀양을 대표하는 종산이 아닐까.
200m를 조금 넘는 높이는 사실 등산이란 이름은 무색하고 요즘 열풍을 일으키는 둘레길로 이야기를 하면 간단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이다.




추화산을 걷는 길은 여러곳이 있지만 밀양 화장장 뒤에서 둘레길을 시작하였다.
넓은 길을 따라 발걸음을 떼면 좌측으로 자두와 대추나무 과수원이 있고 사거리 고개에 올라선다. 이 고개마루에는 큰 모과나무가 당당히 서 있는데 그의 모습이 아주 특이하다.
여러개의 줄기가 서로 붙어 하나의 줄기로 자라고 있어 신기할 따름이다.

이곳을 지나면 독립투사 전홍표의 묘가 왼쪽으로 갈라지고 봉수대 가는 길은 직진한다.
잘 자란 소나무와 넓은 산길은 마치 우리를 수목원의 한 길을 걷는 기분 까지 들게하며 슬렁슬렁 한굽이를 오르면 사거리 갈림길과 만난다. 추화산 산허리를 도는 길이 좌우로 열려 있다.
봉수대는 직진을 하면 작은 고추가 맵다고 둘레길은 곧추선듯 갈지자로 이어진다.
추화산을 대표하는 짧은 순간이지만 구절양장길을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산성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의 둔덕을 올라서면 정면에 돌을 쌓아 올린 추화산 봉수대와 만난다.












옛날에는 통신방법의 하나로 사용을 하였던 것으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봉화를 올려 신호를 전했는데 여기서 추화산이란 이름이 나왔다. 추화산 성은 봉수대를 감싸며 정상일대에 쌓아 올린 가야시대의 산성이다.

한때는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로 신라와 가야가 접경을 이루고 그 이후에는 신라와 백제, 후백제와 고려가 시대를 달리하며 서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돌과 흙을 혼합하였고 이 성벽의 둘레는 약1.4km이며 동,서,남쪽 세군대에 성문을 설치하고 북쪽내려가는 계곡에는 우물과 연못 및 부속건물을 두었는데 현재 우물한개가 복원이 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성황사는 추화산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산성의 부속건물로서 두분을 성황신으로 모시고 있는데 박욱은 나말여초에 군도를 토벌하여 태조가 고려를 건국할 때 삼한벽공장군이 되었다.
또한 손긍훈도 고려태조의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사도를 추증하고 광리군으로 봉하였다 하여 이 두분를 사당의 신으로 모섰다 한다.

다시 둘레길로 돌아와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밀양시가지는 산성산에서 내려오는 용의 모습과 삼문동을 섬으로 만들며 흘러가는 밀양강의 운치하며 크고 작은 산들이 좍~ 펼쳐진다.
1.4km의 산성 둘레길도 함 걸어보자. 발아래 성벽을 밟으며 걷는 이 길은 어느 둘레길 보다도 편안하며 우거진 숲속에 불어오는 강바람에 더운줄도 모르고 걸을 수 있는 호젓한 산책길이다.
둘레길은 영천암으로 내려서는 포장길을 따라 영천암의 물맛을 보고 중국에서 들어온 범종을 둘러보며 재사고개를 거쳐 충혼탑으로 내려서면 간단하지만 여운이 남는 걷기를 할 수 있다.



























재사고개는 교동의 충혼탑에서 범북으로 넘던 옛길로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올라가는 영남대로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적에서도 주막껄등 그당시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유적의 흔적을 찾았다한다. 이곳 재사고개는 장삿꾼이나 과객등 많은 사람들이 다닌길로 내려오는 이야기 한토막이 있다.

한겨울 자정이 지나 소금장수가 소금을 지게에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곳 고개로 올라오더니 지게을 내리고 쉬는게 아닌가. 땀을 딱으며 한숨을 돌린후 다시 청도장으로 가기 위해 지게를 지는데 소금장수는 너무 피곤해서인지 지게에 기댄체 선잠에 들고 마는게 아닌가.

그런데 반대편에서 백발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헐레벌떡 뛰어 이곳에 올라오며 가뿐 숨을 몰아쉬는데 그때 꼬끼요~~~하면서 닭울음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노인은 한숨만 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않으며 탄식을 하는데 소금장수가 그 연유를 물어니 노인은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은 오늘이 자기 재삿날인데 만주에서 이곳까지만 오면 닭이 울어 재삿날에 음복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하며 자신이 이곳 밀양에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만주로 가면 조금 나을까 싶어 식솔을 대리고 만주로 이주를 했는데 그만 병이 들어 죽게 되었고 식솔들은 자신을 만주에다 묻어두고 다시 밀양땅으로 내려간이야기등을 들려 주었다.

자식들이 이곳 고개에서 라도 재사를 지내주면 음복이라도 하고 돌아 갈 수 있는데 하며 한탄을 하는게 아닌가. 소금장수는 마을에서 수소문을 하여 찾아가니 지난밤에 부친의 재삿날이라하며 만주에서 돌아가신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지난밤의 이야기를 자식에게 들여주니 그 다음부터 음식을 만들어 이곳 고개에서 재사를 지냈다하여 재사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이일대가 공동묘지로 되어 있어 그 이야기와 맞아 들어가는 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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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이 생기기 이전 '영남'이라는 이름을 단 장소 가운데 국민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무엇일까. 물론 영남권, 영남지방 등의 광범위한 지역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추측건대 그것은 단연코 밀양의 '영남루(嶺南樓)'가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 건국 훨씬 이전인 조선시대 중반 이후부터 영남루는 진주 남강의 촉석루,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명성을 날렸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누각을 찾아 밀양강과 용두산 줄기, 종남산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학문과 삶의 길, 정세 등을 논했다. 그래서일까. 영남루는 밀양 8경 가운데 으뜸인 제1경으로 불린다. 오늘날 영남루는 밀양 여행의 1번지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주변에 산재한 수많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 밀양읍성 추화산성 너머 손씨 고택까지 가볍게 9㎞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추화산으로 오르고 있다. 산성과 봉수대가 있는 추화산 오름길은 가파르긴 하지만 갈 지(之)자 모양의 옛길을 닮아 큰 힘 들이지 않아도 걸을 수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이번 주는 지난주에 이어 제12-1코스 하편으로 영남루에서 시작해 밀양향교까지 가는 길을 엮었다. '하늘이 내린 축복의 땅'이라고 하는 밀양의 어제와 오늘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짧지만 알찬 걷기 코스다. 옛날부터 밀양 읍내를 지켜 온 두 개의 산성 성곽을 따라 걷기도 하고 천년고찰 무봉사와 조선시대 정절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아랑의 전설을 엿보기도 한다. 또 영남권의 대표적인 고택 마을인 교동 손씨 고택을 찾아 옛 사람들이 꾸며놓은 고건축물과 돌담길의 정취도 느낄 수 있어서 자녀들과 함께 걸어도 교육적으로 썩 괜찮은 길이다.

총거리는 9㎞ 남짓이고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따지면 3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영남루, 밀양관아, 아랑각, 무봉사, 밀양읍성, 추화산 봉수대와 산성, 충혼탑, 밀양시립박물관, 교동 손씨 고택, 향교까지 여유있게 찬찬히 둘러 보려면 5시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

   
밀양시 교동 손 씨 고택 마을의 흙돌담 골목길에 옛 정취가 물씬하다.
제12-1코스 상편의 종착점이었던 밀양교 부근 밀양시 내일동 영남루 앞에서 우선 밀양관아(密陽官衙)로 향한다. 북쪽으로 인도를 따라 3분쯤 가면 내일동사무소 건너편에 포졸 2명의 밀랍인형이 보초를 서는 밀양관아가 있다.


다시 영남루 입구 광장으로 돌아가서 영남루를 바라볼 때 오른쪽인 1시 방향 강변길로 내려선다. 석화(石花)와 아랑각을 먼저 본 후 영남루로 오르기 위해서다. 곧바로 석화가 나타난다. 동심원을 그리는 듯한 돌의 모양이 국화꽃을 닮았다고 해서 석화라 불리는 이 돌들은 영남루 경내 안팎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자연 현상이다. 석화 안내판 바로 옆에는 아랑각이 있다. 조선 명종 때 밀양 부사 윤 씨의 딸인 아랑이 영남루에 달구경 나왔다가 유모와 밀통한 괴한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자결했고, 그 이후 주민들은 그녀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사당인 아랑사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고 왼쪽 쪽문으로 나가 보면 '사건의 현장'을 알려주는 비석이 있다. 지금도 밀양 최대의 축제인 '아랑제'가 열리고 있고 아랑아가씨까지 선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랑이 밀양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할 만하다.


◇ 아랑각 석화 천진궁 박시춘옛집까지 이야기거리 즐비

   
아동산이라고도 불리는 밀양읍성 성곽 위를 걷는 둘레길 개척단.
아랑각에서 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보물 제147호인 영남루가 보인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 찬찬히 건물도 돌아보고 남쪽의 밀양강과 일자봉(산성산) 용두산 줄기, 종남산 일대와 밀양시가지를 감상하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다. 스피커에서는 지역의 민요인 '밀양아리랑'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영남루 뒤의 천진궁(天眞宮)을 둘러보고 밀양이 낳은 한국 가요계의 거목인 작곡가 박시춘 선생(1996년 작고) 생가 복원지도 돌아 본 후 무봉사(舞鳳寺)로 향한다. 신라 혜공왕 9년(773년) 법조 대사가 현재 영남루 자리에 있던 영남사의 부속 암자로 건립한 무봉사는 보물 제493호인 석조여래좌상도 유명하지만 '태극나비'로 더욱 유명하다. 날개에 태극무늬가 그려진 이 나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봉사에서만 발견되는 것인데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만 나타난다고 전해온다. 표충비, 얼음골, 만어사 경석 등과 함께 '밀양 4대 신비'로 통한다.


   
밀양교에서 바라본 영남루 아래로 밀양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무봉사를 나와 일주문 우측의 샛길로 오르면 사명대사 동상을 만나고 조금 더 오르면 아동산에 위치한 밀양읍성이다. 사위가 탁 트인다. 날씨 맑은 날에는 동쪽의 영남알프스 능선까지 보인다. 성곽을 따라 올라 망루 겸 정자인 무봉대에서 심호흡을 한 후 동문고개다. 일단 도로를 건넌 후 오른쪽으로 30m쯤 가서 왼쪽 작은 마을 앞 공터 쪽으로 꺾는다. 샛길이 나오고 텃밭 우측 길을 따라 5분만 가면 다시 왕복4차로인 큰 도로를 만나는데 건너편에 '대공원' 방향을 가리키는 조그마한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에 조금 떨어진 횡단보도를 건너 이정표에서 대공원 방향으로 산길을 탄다.

첫 갈림길에서 왼쪽 밀성 박씨 묘 방향으로 간 후 무덤 뒤 능선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 길을 택한다. 공동묘지 옆 길을 따라 살짝 내리막을 걸으면 작은 임도 사거리가 나온다. 왼쪽에는 화장장, 직진하면 대공원 방향이지만 우측으로 임도를 따른다. 5분쯤 가면 수십 개의 둥치가 세월이 가면서 서로 엉겨붙은 것 같은 특이한 모양의 커다란 모과나무를 지난다. '밀양 독립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을강 전홍표 선생의 묘소 안내판을 통과한다. 추화산성(推花山城)으로 오르는 길이다. 솔 향기 짙은 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해발 240m인 추화산 정상 봉수대. 추화산은 신라시대에 이 산의 이름을 따서 밀양 일대를 추화군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지역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다. 특히 추화산성은 가야와 신라, 후백제와 신라 등이 서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반증해 주는 유적이다. 봉수대에서 내려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산성을 한 바퀴 도는 길을 걷는다. 벤치 우측 길로 접어 들어 임도를 따라 5분쯤 가면 우측에 성곽 복원물이 있는 갈림길. 왼쪽으로 돌아서 계속 임도를 따른다. 10분 후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일단 왼쪽으로 100m쯤 올라가서 왼편에 있는 성내 우물을 본 후 다시 돌아온다. 우측 내리막을 따라 가면 영천암 입구 삼거리. 우측에 영천암이 있는데, 물 맛 좋은 샘터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인 백운사 범종이 있다.


◇ 박물관 독립운동기념관까지… 자녀 동반 코스로 적합


다시 삼거리로 돌아 나와 포장길을 따라 200m쯤 내려서면 왼쪽으로 살짝 벗어나는 흙길을 만난다. 포장길을 버리고 이 흙길을 택한다. 3분 후 무덤 몇 개가 있는 제사고개에서 내리막을 타면 7분 후 충혼탑. 최근에 완공된 이 충혼탑은 한국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산화한 이 지역 출신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다. 충혼탑에서 5분 거리에 밀양시립박물관이 있다. 밀양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유적과 근현대의 유적들, 밀양 백중놀이를 비롯한 민속놀이, 약산 김원봉을 비롯한 항일독립투사들의 기록 등이 소중하게 전시돼 있는 곳이니 천천히 둘러볼 만하다. 박물관 앞 뜰에는 바닥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인근 어린이들의 여름철 놀이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박물관 정면 도로 우측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넌 후 200m쯤 가면 교동 손 씨 고택에 닿는다. 우측의 운치 그윽한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면 크고 작은 고택들이 길손을 맞아준다. 그 중 '열두대문'이라는 한정식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고가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한 때 99칸에 달하는 대 저택이었다. 조선 숙종 때인 17세기 중반 손성증이 최초로 지었다고 전해온다. 손 씨 고가 뒤에는 밀양 향교가 있다. 1602년 건립된 밀양 향교는 대문 역할을 하는 풍화루(風化樓)와 대성전 등이 있는데, 크기가 유독 커서 경주향교 진주향교와 함께 영남 지역에서는 가장 큰 향교로 손꼽힌다. 이 향교로 인해 동네 이름도 교동이 됐다.



향교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문이 있는데 이 문을 지나서 2분쯤 골목길을 걸어나오면 교동농협 앞 버스정류소다. 이곳에서 코스를 마무리한다.


# 교통편

- 밀양역에서 영남루 행 시내버스 수시로 있어

부산역에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열차로 밀양역까지 간다. 무궁화호 첫 차는 오전5시10분에 있고 20~4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 앞에서 영남루 가는 시내버스는 수시로 있다. 1, 1-2, 5, 6번 등 다양하다. 10분 소요. 코스 종점인 교동농협앞 버스정류소에서도 밀양역 행 시내버스가 자주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에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긴늪사거리에서 직진, 밀산교를 건넌 후 표지판을 따라 영남루 앞으로 가면 된다.



# 떠나기 전에

- 답사 후 '똥개' 촬영지 삼문동 '추억의 거리' 가 볼만


'영남제일루'라고도 불리는 영남루는 원래 밀양의 손님들을 머무르게 했던 건물이다. 최초 건립은 고려 말인 1365년 밀양 군수 김주가 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조선시대 들어 여러 차례 중건을 거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84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거대한 건물인 영남루는 좌우의 건물과 복도 또는 계단으로 연결돼 더욱 웅장하면서도 조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천정에 조각된 문양과 용의 몸통을 형상화 한 대들보, 용 그림, 네 귀퉁이의 남주작 북현무 좌청룡 우백호 그림 등이 모두 빼어난 예술 작품을 이룬다. 이 건물에 특히 용 조각과 그림이 많은 것은 옛날 사람들이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을 화마로부터 지키기 위해 물과 가까운 용을 많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믿거나 말거나' 속설도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연인들이 영남루와 아랑각 일대에서 데이트를 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속설 때문에 요즘도 젊은 연인들은 영남루에서는 데이트 하기를 꺼린다고 한다. 시집을 가지 못한 아랑 낭자의 심술때문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코스 탐방을 마치고 시간이 남는다면 영화 '똥개'의 주 촬영지인 삼문동 '추억의 거리'를 방문해 볼 만하다. 골목마다 1970년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 밀양 천진궁의 영욕

- 역대 시조王 위패 모신 성소, 일제가 헌병대 감옥으로 악용
- 독립운동가·우국지사 고초 겪어
- 광복 후 밀양시민 노력으로 천진궁으로 이름바꾸고 복원


   
경남 유형문화재 제 117호로 지정된 밀양시 소재 천진궁.
밀양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영남루. 이곳을 방문하면 반드시 보게 되는 또 하나의 오래된 건축물이 하나 있다. 영남루와 뒷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천진궁(天眞宮)이 바로 그것이다. 1665년(조선 현종 6년)에 건립됐으며 현재 경남 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된 천진궁 건물은 우리 민족이 건설했던 역대 국가 시조 왕들의 위패를 모셨던 성스러운 곳이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치욕적인 수모를 겪는 등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당초 이 건물은 시조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공진관(拱振館)의 부속 건물이었다가 1722년부터 공진관을 대신해 위패를 모신 사당 겸 객사 건물로 이용됐다고 한다.

위패의 배치는 남쪽을 향해 봤을 때 중앙에 민족의 시조왕인 단군왕검의 위패를 두고 왼쪽 벽에 부여와 고구려, 가야 시조왕과 고려 태조의 위패를 봉안했다. 또 오른쪽 벽에는 발해와 백제 신라의 시조왕 및 조선 태조의 위패를 둔 성스러운 장소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 일본의 행패가 시작되면서 수난을 겪게 된다.

조선을 침략하고 강제로 이 땅을 빼앗은 일본 측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이곳에 모셔져 있던 역대 시조왕들의 위패를 지하 땅에 묻어버리고 헌병대 감옥으로 이용한 것이다. 숱한 우국지사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광복 이후 공진관의 복원을 위한 밀양 시민들의 노력이 펼쳐졌다. 그리고 1957년에 건물 이름을 천진궁으로 바꾸고 정문을 만덕문으로 지어 시조왕들의 위패를 다시 모심으로써 민족 정통성 확립을 위한 노력이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된다. 대리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가진 주심포식 건물인 천진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웅장한 위상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의 건축적 의미를 떠나 일제에 의한 고난의 역사를 되새기는 것 또한 둘레길을 걷는 이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매년 봄에 어천대제(음력 3월15일), 가을에는 개천대제(음력 10월3일)가 열린다.

한편 영남루와 밀양읍성 망루 사이에 있는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생가 복원지 안내판을 읽다 보면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914년에 태어나 1996년 작고할 때까지 애수의 소야곡, 전우야 잘자라, 굳세어라 금순아, 전선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한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감정을 달래 준 숱한 명곡을 남긴 박 씨지만 '친일 작곡가'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에 작곡한 아들의 혈서, 목단강 편지, 결사대의 안해, 혈서지원 등 단 4곡의 노래로 인해 2005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인사 명단 발표 때 그의 이름이 포함됐다. 한국 가요계의 거목으로서 대중가요 작곡가 최초로 1982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을 서훈받기도 한 그였지만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천진궁을 코앞에 둔 그의 옛집 앞에 서면 누구라도 착잡한 심정을 가눌 수 없을 것이다.

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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