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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 최치원의 사산비명 비석 귀부였던 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을 보다


경주여행에서 야외박물관이라는 경주 남산과 국립경주박물관을 보지 않고는 경주를 보고 왔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 합니다. 그만큼 경주 남산과 경주박물관에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습니다. 특히 국립경주박물관의 야외 전시장은 경주 시내에 흩어져 있던 많은 문화재가 관리 소홀로 도굴될까 싶어 옮겨 놓았는데 그 많은 석물 하나하나가 사연과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2016/10/13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불두(부처머리). 1959년 사하라 태풍의 선물(?)이라는 경주 남산 철와골에서 발견된 초대형 불두를 경주 박물관에서 보다.

2016/10/12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장항리 석조불입상. 도굴꾼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된 장항리 석조불입상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복원된 상태로 만나다.

2016/06/07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국보 제38호 고선사지 삼층석탑. 덕동호로 수몰된 고선사터 삼층석탑과 비석받침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2016/06/10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석조관음보살입상. 경주 중생사에서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국립경주박물관의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만나다.




경주 철와골 불두(부처머리), 경주 장항리 석조불입상, 경주 중생사 관음보살 입상 등 보면 볼수록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문화재입니다. 이번에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인근에 안치된 경주 숭복사 쌍거북 비석 받침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귀부인 거북받침은 많이 봤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쌍거북를 비석 받침으로 사용한 게 별로 없었습니다. 창림사지와 무장사지, 법광사지 등 겨우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온전한 형태가 이곳 숭복사 쌍거북 비석 받침이라 합니다. 먼저 숭복사 쌍거북 비석 받침이 발견된 숭복사지가 궁금합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원성왕의 능은 토함산 서동 곡사(숭복사)에 있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를 보면 숭복사는 원성왕의 명복을 빌었던 원찰입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최치원이 지었다는 사산비명의 탑비가 있었던 곳으로 그 최치원의 사산비명의 비석이 숭복사 쌍거북을 귀부로 사용했다 합니다.



왜! 귀부로 쌍거북을 받침으로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창림사와 무장사, 숭림사는 모두 신라왕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던 사찰입니다. 창림사는 박혁거세가 신라 최초 궁궐터로 삼았던 곳이며 무장사는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이제 전쟁은 끝났다’며 모든 병기를 숨겼던 곳입니다. 896년 신라 진성왕 10년에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을 썼다는 사산비명은 국보 제47호인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 국보제 315호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국보 제8호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와 이곳 ‘신라초월산대숭복사비’입니다. 사산비명중 유일하게 파손되어 비석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거북받침인 귀부와 반 토막 난 이수만 일제 강점기인 1930년경에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져 왔다고 하며 현재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라초월산대숭복사비'도 현재까지 남아 있었다면 다른 사산비명과 함께 국보가 되는 것은 떼 놓은 당상인데 정말 아깝습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인지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에 최치원의 유일했던 사산비명을 숭복사지에다 새로 세웠습니다. 쌍거북인 귀부와 비문과 비신, 이수를 복원하여 세웠는데 비문의 글자체는 쌍계사의 진감국사 비문을 집자하였고 이수 또한 진감국사 탑비의 이수와 똑같은 모습으로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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