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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행/여수가볼만한곳)여수 고소대, 타루비, 통제이공수군대첩비, 여수천사벽화골목 여행


전라좌수영·삼도수군통제영에 전란으로 불탔던 진해루 대신 새워진 건물이 국보 제324호인 진남관입니다. 이충무공이 머물렀던 전라좌수영·삼도수군통제영인 진남관을 마주하고는 고소대와 이충무공의 공적을 새긴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공을 추모하여 세운 눈물의 ‘타루비’가 있습니다.





고소대(타루비·통제이공수군대첩비)주소: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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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남관 아래 임란 유물전시관 인근에 있는 좌수영 다리를 건너면 정자인 매영정이 지어져 있습니다. 이 뜻을 보면 봄이면 전라좌수영·삼도수군통제영 건물 주변에 매화가 만발해서 매영성으로 불렸으며 진남관으로 통했던 길이 도로가 생기므로 끊어져 좌수영 다리를 놓아 옛길을 다시 이어서 오가는 길손에게 옛일을 되새겨 보도록 하는 의미에서 매영정을 지었다는 안내문이 있습니다.

 

 

 

 

이곳은 여수의 벽화 거리인 ‘천사벽화골목’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여 많은 관광객이 천사벽화골목과 고소대, 타루비,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찾고 있습니다. 먼저 천사벽화골목에는 이순신 장군의 스토리가 양쪽 벽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천사 이름에 맞게 그 길이가 1,004m이며 구 해양공원의 이순신광장에서 진남관의 좌수영 교까지입니다

 

 

 

 

이 지역 주민이 1,800만 원을 모금하여 완성된 벽화골목이라 하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진남관의 좌수영 교에서 타루비가 있는 고소대까지는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스토리텔링 하여 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순신은 28살의 늦은 나이에 무과에 도전합니다.

 

 

활쏘기, 말타기 등의 시험을 보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졌고 주위의 버드나무를 꺾어 껍질을 벗겨내 접질린 발목을 고정하며 끝까지 시험을 봤지만, 낙방의 고배를 마십니다. 그리고 4년 뒤인 32세에 식년 무과에 합격했습니다.

 

 

 

 

처음 받은 보직이 남해안의 해안가가 아닌 지금의 평안북도 삼수군인 압록강 유역이며 여진족과 국경이 접해있던 곳입니다. 이후 여러 부임지를 옮겨 다녔으며 1591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에 류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영에 부임합니다. 당시 남해에는 출몰하는 왜적의 노략질이 심해 큰 고민에 빠졌지만 이순신 장군은 만반의 태세를 갖추며 남해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보유한 군선을 수리하고 새로 건조하며 또한 나대용에게 거북선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임진년에 왜군이 부산포로 몰려들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왜군은 순식간에 조선을 짓밟았지만 23전 23승의 세계해전 역사상 전무후무하다는 이순신 장군이 철통같이 지켰던 남해로 인해 조선은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그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에서 관음포로 달아나는 왜군을 끝까지 쫓아가다 그만 적의 흉탄을 맞았고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일대기가 천사벽화골목을 장식하고 있으며 힘이 없다면 언제라도 외침(外侵)을 받을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역사의 산교육장입니다.

 

 

 

 

 

 

그림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그 끝에는 당시 장대로 사용했던 포루인 고소대에 닿습니다. 이충무공이 이곳에서 군령을 내렸다 합니다. 현재 이곳에는 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이 비석의 건립 경위를 기록한 동령소갈비와 노량해전에 전사하자 장군의 죽음을 슬퍼하며 부하들이 세운 타루비가 있습니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는 좌수영대첩비로도 부르며 이순신 장군과 그를 따르던 수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비석으로 국내 비석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합니다. 1615년인 광해군 7년 이순신 장군을 모셨던 유형이 황해도 병마절도사로 있으면서 가장 좋은 돌을 보내어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의 글씨는 김상용이 썼고 비문의 내용은 오성 이항복이 짓고 글씨는 당시 명필이었던 김현성이 썼다 합니다. 보물 제571호. 그리고 보물 제1288호 타루비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따르던 부하들이 장군을 추모하며 1603년인 선조 36년에 세운 공덕비입니다.

 

 

 

 

타루의 뜻은 중국고사로 “비석을 바라보면 눈물을 흘리게 된다”를 뜻해 이순신을 추모하는 부하들의 심정을 타루비를 보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동령소갈비는 1698년인 숙종 24년에 대첩비를 건립하는 경위와 참여 인물 등을 기록한 비석으로 진안 현감이었던 심인조가 남겼습니다.

 

 

 

 

이 비석들은 그 후 일제강점기인 1942년 여수경찰서장으로 있던 일본인 마쓰키가 조선의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비각을 헐면서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타루비를 숨겨버렸습니다. 광복 후인 1946년 경복궁에서 발견되어 그다음 해 이곳에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진남관을 둘러보면 꼭 함께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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