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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마당바위가 있는 경주 오봉산 주사암 여행.

가방가

이번 여행지는 경주 서쪽에 있는 

오봉산 정상의 주사암 입니다. 





경주 오봉산 주사암 주소:경북 경주시 서면 도계서오길 251-355

경주 오봉산 주사암 전화:054-75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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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암은 ㅎㅎ 산 중턱도 아니고 

주사암 정상에 있는 암자입니다. 



신라시대 사찰로 인근에 지맥석으로 불리는 마당바위와 

선덕여왕의 3가지 예지력중 하나인 여근곡이 

오봉산 동북쪽 산비탈에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께서 창건하고는 

처음에는 주암사라 했습니다.

 


부산성을 쌓을 때 의상대사는 

부산성 안에다 이 주사암을 두면 

신라는 망하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 했는데 

그만 주사암을 비껴 산성을 쌓았습니다.



그 예언 때문인지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연회를 열다가 쳐들어 온 백제에 멸망하여 

그게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붉은 모래' 

즉 주사암에 관한 설화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주사암의 북쪽 바위굴에서

난승이 맹령하게 수도정진 중이었습니다.

 


난승은 여인 알기를 돌 같이 생각하는지라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도 눈길을 주지 않으며 

수도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큰소리 쳤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귀신이 

노승의 마음을 시험하려고 

신라 궁궐에서 궁녀를 잡아와 

노승 옆에 두기를 반복했습니다.



밤마다 궁녀가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니 

신라왕의 귀에까지 그 말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궁녀에게 차초지종을 들은 임금은 

괘씸하게 생각하고는 붉은 모래가 든 주머니를 주면서 

오늘밤에도 귀신이 잡아가면 동굴 주위에다 

붉은 모래를 뿌려두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날 밤에도 궁녀가 없어진 것을 안 

임금은 병력을 풀어 궁녀를 찾았습니다. 

오봉산 정상의 동굴 입구에서 

붉은 모래를 찾았다는 급보를 받은 임금은 

 


당장 병력을 풀어 노승을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노승의 주변에 갑자기 신병이 나타나 

그를 보호하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난승이 부처님이 보호하는 분이라 생각되어 

궁궐에 모셔와 나라의 스승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주사암은 노승이 수도했던 동굴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다 절을 세웠다고 합니다.

 


주사암 옆에 수백명이 앉아 쉴수 있는 

마당바위가 있습니다.



마당바위는 지맥석으로 불리는데 

여기에는 김유신에 관한 이야기가 전합니다. 



김유신이 마당바위에서 보리로 막걸리를 빚어 

사들과 함께나누어 마셨다고 합니다. 

마당바위의 조망이 끝내줍니다. ㅎㅎ

여기서 드라마 선덕여왕과 동이가 촬영되었습니다.

해발 685m에 자리한 주사암은 

자동차를 이용하여 갈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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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암

(여느 절집과 달리 두개의 큰 바위가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다. 오봉산 정 상 바로 옆에 위치를 하고 있어 식수가 사실은 귀할 것 같다. 그래서 식수는 현재 아래로 관로를 뚫어 지하수를 올려 사용을 하고 있다 한다. )  


 



신라시대 문무왕때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낙동정맥이 오봉산을 살짝 비껴가는 형상으로 신라시대 때에는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어 산성을 쌓았다.
 이름하여 부산성, 또는 주사산성으로 창건당시부터 이절에서 죽어 나간 사람이 없다하여 불사처라 하였다 한다. 그런데 지금 주사암을 방문을 해 보니 천촌리로 내려서는 등산로 입구에 근래에 세운 부도탑 한기를 볼 수 있는데 이제 불사처라는 기록은 깨어 졌는지 궁금하다.
걸어서 주사암에 가 보면 오봉산 정상에 위치를 하고 있다. 즉 다섯봉우리인 주봉과 2봉 사이에 주사암이 위치를 하고 있는데 신평리에서 보면은 오봉산 정상에서 아화리로 내려서는 능선을 만삭의 여인내가 한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한다.
그리고 부산성과 함께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부산성 축성 당시 의상대사는 예언을 하기를 부산성 안에다 이 주사암을 두면 신라는 언제까지라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는데...산성은 주사암을 비껴가 축성을 하였다 한다.
그 예언 후 몇백년 뒤에 신라는 백제에 의해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연회를 배풀다 죽음을 당하고 의상대사의 예언대로 신라는 망하는데 예언을 어찌 받아 들여야 할지.

 

그리고 주사암의 창건설화에 대해서는 현 주사암이 있는 위치 뒷면인 북쪽으로는 바위굴이 있었는 것 같다.
그 굴속에 난승이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여인네 알기를 돌 같이 아는지라, 아무리 빼어난 미녀가 와도 자신의 마음을 빼앗지 못할 것이며 수도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 호언장담을 하였다한다.
그의 말을 들은 귀신은 노승의 마음을 시험해 볼 욕심으로 반월성의 궁궐에서 궁녀를 잡아다가 노승 옆에 두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밤마다 궁녀들이 나갔다 들어오니 반월성의 왕에게 까지 이야기가 귀에 들어가고 임금은 괘씸하게 여겨 궁녀에게 붉은 모래 즉 주사를 주며 오늘밤에도 그런일이 생기면 동굴 주위에 붉은 모래를 뿌려라는 명을 내렸다.

(바위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주사암의  모습입니다. 산사면에 계단을 내어 건물을 배치하였습니다.)

궁녀가 없어진 것을 안 임금은 모든 병력을 풀어 찾아보니 오봉산 정상 부근에서 붉은 모래를 찾게 되어 뒤에 큰 동굴이 있는지라 병력을 동원하여 노승을 잡을려 하니 그 노승의 주변에는 신병들이 보호를 하고 있었다.
왕은 부처님이 보호를 하는 분으로 여겨 궁궐로 모셔 나라의 스승으로 삼았다 한다.
노승이 수도를 하였던 그 굴을 밀어 내고 그 자리에 주사암 사찰을 창건하였다 하며 1400년을 이어온 주사암은 가람의 배치 또한 다른 절과 달리 좁은 면적으로 인해 한일(一)자 가람을 하고 있다.
보통 사찰은 대웅전을 중심에 모시고 좌우로 가람을 배치하는 아(亞)자 형태이지만 주사암은 영산전을 제일 앞에 두고 가람을 배치하여 지형을 적절히 이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도 주사암을 찾아 들어 가는 길은 여느 절집과 달리 일주문이 없다. 일주문은 두 개의 큰 바위가 일주문을 대신하고 그 사이로 들어서면 주사암 절집과 만날 수 있다.

 

주사암 옆에는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을 빼 놓을 수 없다. 수백명이 거뜬이 쉴 수 있는 마당바위가 있어 지맥석이라 불리는 이 바위는 보리를 늘어 술을 빚어 부하들과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지금도 천촌리 쪽으로 바라보는 바위의 끝에 나가보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이다.

 

입구에서 본 주사암입니다. 화장실은 아주 멀리 두고 있습니다. 좌측의 건물이 정낭입니다.

건물이 3동 길게 배치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안쪽의 석등이 보이는 곳이 영산전입니다.




영산전 위의 삼성각으로 주사암에서 가장 위쪽으로 배치를 하였습니다.

삼성각을 내려 오면서 본 주사암입니다. 앞에 영산정을 볼 수 있습니다. 

천촌리 방향으로 내려 보고 있는 범종각입니다.




주사암 영산전입니다. 주사암의 대웅전으로 이절의 중심건물 입니다. 좁은 지역의 층계식 터에더 조성을 하여 규모면에서는 아주 적은 것 같이 소박합니다. 창건연대는 조선시대 후기로 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부속건물들

밑에 보이는 건물이 공양간입니다.

바위아래 자리 잡은 공양간입니다. 천촌리에 내려가는 길은 공양간 아래로 나 있습니다.

아래에서 본 주사암 모습입니다. 바위를 축대로 쌓은 것으로 봐서 아주 급한 산사면에 조성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사암 창건 이래 죽어 나간 사람이 없어 불사처라 하는데 근래에 조성 된 것으로 보이는 부도탑입니다.

주사암 옆의 마당 바위로 김유신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옵니다. 일명 지맥석으로 김유신이 마당바위에 보리를 늘어 술을 빚어 부하들과 나누어 마셨다합니다. 수백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넓이 입니다.

만삭의 여인이 배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의 오봉산입니다. 신평리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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