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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허불산 청강사. 4월에 가장 아름답다는 절집 허굴산 청강사를 보고오다.

우리는 야무지게 생긴 사람을 보고 속이 꽉 찼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만큼 빈틈이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연에서도 흔치 않은 이름이 있습니다. 허굴산으로 속이 굴처럼 텅텅 비었다는 뜻인데 실제로 허굴산을 가까이 가 보면 완벽하게 꽉 차 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기암괴석과 함게 황계천에 드리워진 황계폭포와 수백년은 됨직한 노송등 어느 하나 빠트림이 없이 완벽한 모인데 왜 허굴산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옛 전설에는 허굴산을 허불산으로도 불렀습니다. “산을 들어서는 입구에서 이산을 바라보면 산의 중턱에 있는 굴 안에 부처님이 좌정하여 있는 것 같아 바랑을 벗어두고 부처님을 배알하기 위해 올라가면 부처님은 없고 허굴만 있다하여 허굴산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 허굴산의 배꼽에 청강사란 아담한 절집이 현재 있습니다. 연꽃모양을 한 듯 입을 벌리고 선 큰 바위를 비집고 들어서 있는 작은 절집은 그래서 더욱 정이 갑니다. 청강사를 들어서는 입구에는 일주문 대신 수백년은 넘어 보이는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청강사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절의 유래를 보면 청강사가 있던 이곳은 원래 고려 때에 창건된 허굴사의 절터였다합니다. 그러나 절터의 흔적만 남게 되었던 이곳에 처음으로 불사를 일으킨 이는 합천군 쌍백면의 유학자 정규락선생입니다.

 


선생은 스스로 청강거사라 하였고 1891년인 20세에 진사과에 합격 하지만 국운이 일인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보고 세상을 등져 허굴산에 은둔하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이곳에 만귀암을 짓지만 선생은 입적을 하고 그의 아들인 정방해 선생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12동에 80여칸의 절을 완공하며 사찰의 규모를 갖추게 됩니다. 또한 만귀암은 부친의 아호를 따 청강사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며 현재는 불가에 귀의한 후손 혜광스님이 주지로 있습니다.



청강사는 당대의 선승 동산스님과 정강 스님도 주석을 하며 수행을 하신 곳으로 현재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은 거창 감악산 연수사에서 모셔온 인도 전단향 목불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웅전 현판은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의 글씨이며 로전과 산신각 그리고 칠성각의 현판은 서예가 오제봉선생과 정현복 선생의 글씨라합니다.



아담한 절집인 청강사는 있는 듯 없는 듯 허굴산과 함께 동화되어 있으며 청강사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4월이라 합니다. 이때쯤이면 산과 절을 에워싼 산 벚꽃이 마치 눈발이 흩 날리 듯 청강사를 감싼다합니다.



화려함은 없지만 아담하며 조용한 절집 합천 허불산 청강사를 대병면 여행시 찾아보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웅전 현판글씨는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이 섰다.


거창 감악산 연수사에서 모셔온 인도전단향 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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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 안강 금곡사 원광법사 부도. 오지속의 사찰인 금곡사에 원광법사부도가 있어요?

 

흔히 깊은 산속을 헤매다(?) 보면 반갑다 못해 살았다는 안도감을 주는 절집을 간혹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산행중 만나는 사찰은 산꾼들에게는 하나의 구세주이며 타 종교인도 한번쯤 들러 반가움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까운 경주 인근에서는 만나기 힘든 이런 곳도 있나 할 정도로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도는 곳이 한곳 있다.
신도들의 왕래로 뻔질나게 닳아빠진 일주문의 문턱을 부산인근에서는 쉽게 만날수 있고 그래서 대웅전도 모양새를 갖추고 절다운 모습을  한 많은 사찰도 있지만 왠지 나 같은 문외한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사찰은 조용하면서도 한적하고 사람들이 보기 힘든 곳에 있어야 절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런 절 다운 모습을 충족시켜 주는 곳이 있어 소개를 할까 한다.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인근의 화산골 골짜기 안에 터를 잡은 금곡사는  천년의 세월은 훌쩍 뛰어 넘은 고찰이지만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최근에 와서 중건 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화산골 안의 금곡사는 원광법사가 처음 창건한 사찰로 화랑도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하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초석이 되었으며 황룡사에서 입적한 원광법사가 이곳 금곡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부도탑으로 남아 있다 하니 그 연유가 궁금 할 따름이다.
임진왜란때 가람은 흔적도 없이 소실되고 최초의 부도탑인 원광법사의 부도탑도 파괴되어 화산골에 묻혀 있다 최근 발굴되어 정교하게 짜 맞추어져 하나의 부도탑으로 남아 있다. 화산골 금곡사 밑 사거리 갈림길에는 달랑 민가만 한채 있을 뿐이며 여기서 동서남북으로 민가를 만날 수 있는 곳이 10리를 산을 넘어 가야 만날 수 있어 그 만큼  오지중의 오지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인지 금곡사 앞까지는 아직도 비포장도로로 남아 있으며 밑의 화산골 마을 까지는 1시간10분을 걸어 가야만 마을을 만날 수 있어 찾는 신도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아 마음을 씻기에는 아주 좋은 절집인 것 같다.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이라 해보아야 초라한 모양의 기와 건물 한동이며 요사체는 가건물의 수준을 벗어 나지 못한  모습이 더욱 정감이 간다. 금곡산은 산 높이에 비해 깊은 계곡을 거느리고 있고 수량이 풍부하여 큰 저수지인 화산곡지를 가지고 있다.
가는 교통편:포항-영천간 국도를 이용하여 도덕산 옥산서원 입구를 지나면 도로 앞쪽으로 하곡지(딱실못) 재방이 보인다 이곳에서 도로 오른쪽으로 "삼기산 금곡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굴다리 지하도를 통과하면 현제 조성중인 두류공단을 지나고 화산골 마을을 지나고 화산곡지까지는 쉽게 접근할 수 있다.그 이후 임도급 비포장길이 금곡사 까지 이어진다.



  





























오지속의 사찰인 금곡사로 이어지는 주변풍경과 화산곡지 그리고 주변의 계곡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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