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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하동여행)박경리 토지 주무대인 최참판댁드라마세트장. 가을빛이든 악양들 전망대 최참판댁


하동악양의 마지막 여행지는 화사별서 조씨고가를 보고 찾았던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최 참판 댁입니다.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 되었다는 화서별서 조씨고가는 악양에서는 조부자집이라 불렀습니다.





하동 박경리 토지 주무대 최참판댁드라마세트장 주소: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483

하동 박경리 토지 주무대 최참판댁드라마세트장 전화:055-880-2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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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조선을 세운 이성개와 함께 조선을 건국하여 개국공산에 오른 조준의 직계후손인 화사 조재희가 중앙정치에 밀려 낙향하여 지은 별서입니다. 

16년동안 지었다는 조씨고가는 사랑채, 안채, 행랑채, 대문채, 초당, 사당, 연못 등 명문권세가의 권위를 보여줄 만큼 웅장하며 우아하게 지어진 것을 안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칸의 대문채입니다. 안채와 사랑채로 연결되었습니다. 




화사별서 조씨고가는 동학농민운동과 6.25 한국 동란에 불타고 현재에는 안채와 행랑채만 남아 있습니다. 

조씨고가를 먼저 보고 찾았던 최참판댁드라마세트장은 여러 번 찾았던 곳입니다.

 

행랑채


 

그러나 이번 여행은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었던 조씨고가와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서 색다른 여행이 되었습니다. 

최참판댁 아래쪽에는 드라마 촬영 무대인 초가집과 장터가 세워져 있습니다. 




쌀두지와 절구통인가요 ㅎㅎ 시골 생활이 그리워 지며 옥수수 등 가을 분위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우물과 중문. 중문은 이외에도 여러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ㅎㅎ

 최참판댁 규모가 99칸의 대저택이라할 정도였습니다. 



외양간입니다. ㅎㅎ 모형 소가 음메음메하며 반깁니다. 




최참판댁의 주 출입구인  대문체입니다. ㅎㅎ



대문채를 들어서면 만나는 모습입니다. 



눈요기로 둘러보면 좋으나 최참판댁으로 바로 직행했습니다. 

박경리 소설 토지는 1969년 처음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에 마무리했습니다. 

무려 25년간인 긴 세월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두 번 반이 변했습니다.



초당입니다. 서희아씨가 머물렀다는 초당 앞쪽에 연못도 있어 그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매체에 연재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토지를 읽으려고 신문 구독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들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공중파인 kbs와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많은 인기 속에 방영되었습니다.

 


초당의 연못



토지는 국민드라마의 반열에 올랐고 자연스럽게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악양면 평사리를 또한 찾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현재 평사리의 상평마을에는 최참판댁 드라마세트장이 꾸며져 있습니다.



소설 속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화개장터와 소작농가 등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많은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만석꾼의 최참판댁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볼거리는 역시 최참판댁입니다.



사대부가의 여인들이 머물렀다는 안채입니다. ㅎㅎ 화서별서 조씨고가에 비해서는 규모 등에서 조금은 왜소해 보였습니다. 




중문에서 본 안채



최참판이 머물렀던 사랑채입니다. ㅎㅎ 이곳에서 보면 소설 토지에서 만석지기 최참판댁의 논이 있는 무딤이들이 내려다 보입니다. 



최참판댁드라마촬영지는 토지가 아닌 다른 많은 드라마 촬영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대부분 사극이나 근대물인 군도, 꽃들의 전쟁, 구가의서, 맏이 등 암울했던 시절의 가슴 아픈 내용이 주를 이루며 촬영되었습니다. 






사랑채는 정말 웅장하게 지어졌습니다. ㅎㅎ 

누마루에 나와서 호통치는 최참판이 그려졌습니다. 



최참판댁세트장은 일반 사대부 집과 다르지 않게 사랑채와 안채, 초당, 행랑채 등으로 나누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규모입니다. 

실제 모델이라는 화사별서 조씨고가가 건립 당시에 이런 규모가 아니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최참판댁 드라마세트장은 다른 곳의 드라마세트장과 다릅니다. 

일반 드라마세트장은 소품 위주로 꾸며져 엉성하지만 최참판댁은 실제 방이면 방 부엌이면 부엌, 마구간이면 외양간과 같이 실제 살림집과 똑같이 꾸며놓았습니다.







제가 찾았을 때 행랑채에 한가족으로 보이는 분이 방 안에 있었는데 민박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꽤 넓어 천천히 관람해보세요.



최참판댁 제일의 사진포인트입니다. 이곳에 앉아 무딤이들의 부부송을 바라보는 사진을 담아보세요 ㅎㅎ

나는 모델이 없어 그냥 대문만 담았습니다. 




최참판댁 입구에서 열독중인 최참판 ㅎㅎ



최참판댁드라마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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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하동여행)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실제 모델 악양 화사별서 조씨고가 여행. 화사별서 조씨고가


하동여행을 하면서 정서리 상신마을에 화사별서 조씨고가를 다녀왔습니다. 

화사별서는 이씨조선의 개국공신인 조준의 직계후손인 화사 조재희의 별서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별서는 별장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본집은 경성부에 있었다 합니다.





박경리 소설 토지 실제모델 화사별서 조씨고가 주소: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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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별서 조씨고가는 악양면에서도 아주 높은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아래쪽에 나무도 자라고 해서 악양 들판이 잘 보이지 않으나 당시에는 무딤이들이라 불리는 평사리들이 훤하게 내려다보였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화사별서 조씨고가는 조재희가 중앙정치에서 밀려 낙향하여 19세기 중반에 16년에 걸쳐 지은 집이라 합니다. 

그러나 화사별서는 안타깝게도 현재 안채와 행랑채만 남아 있습니다.


 


정확한 화사별서 조씨고가의 건축 연대를 알아보려면 먼저 안채 종도리의 상량문을 확인하면 됩니다. 

종도리의 상량문에는 ‘開國五白二十七年戊午立柱上樑(개국오백이십칠년무오입주상량)’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1918년이 됩니다.

 

 

보통 상량문은 당시 건물을 지을 때를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화사별서인 조씨고가가 그때 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화사별서 조씨고가는 동학 농민과 6.25 한국동란 때 2번이나 불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동학 농민운동 때에 불탔던 조씨고가를 1918년에 다시 건립한 것이 아닌지 그리고 6·25 동란에 안채와 아래채(행랑채)만 남기고 또다시 모두 불탔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현재 안채를 보면 당시 권세가의 집임을 짐작 할 만큼 기와지붕의 규모가 웅장하고 대단했습니다. 

1칸의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연못이 있습니다. 

보통 아무리 명문가의 집이라도 집안에 연못이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래채(행랑채)

그런데 조씨고가는 별서라서 그런지 깊게 파낸 연못에다 그 가운데 석가산을 만들어 선비의 지조와 절의를 상징하는 배롱나무를 심었습니다. 

때마침 끝물의 백일홍이 그 아름다움을 뽐내었습니다.

 


연못을 두른 석축에 난 사각 구멍은 여름에 음식을 보관했던 냉장고라고 합니다. 

연못으로 들어오는 물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하니 그만큼 지혜롭게 지어진 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석축 위에 잔디가 깔린 너른 터는 사랑채가 있던 자리입니다.



종가집이라 그런지 ㅎㅎ 장독의 규모가 엄청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혼자 계시는데도 장독대가 깨끗하니 청소가 아주 잘되어 있습니다.



터의 규모를 보아서는 대단한 건물로 지어졌음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사랑채 터 위에 높은 석축을 쌓고 담장을 둘렀는데 부인 내들이 기거하는 안채입니다. 

6·25 동란에 화마가 비껴갔던 건물입니다.



사랑채와 안채의 구분을 확실하게 해놓았습니다. 

안채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고 중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형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안채는 중부지방의 ‘ㄱ’자 형태이며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건물의 규모와 함께 우아한 자태를 뽐내었습니다.

 


마침 조씨고가의 안채를 방문했을 때 조준의 직계손인 94살의 할아버지께서 툇마루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이 고래등 같은 집에 할아버지 혼자 아래채에서 생활하시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마당을 보니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고택 관람을 하는 우리로서는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어떤 고택에 가면은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가 허리까지 올라와서 폐가나 다름없는 집이 문화재란 타이틀을 달고 있어 가슴 아팠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조씨고가는 너른 집이지만 따뜻한 사람 냄새가 물씬 났습니다. 

안채 왼쪽에 지금은 텃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차밭이 있으며 화재 이전에는 초당과 사당이 있던 곳입니다.








다음 여행지로 출발하면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더니 다시 호미를 들고 풀을 뽑으러 뒤따라 나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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